-
-
겨울 가면 봄이 오듯, 사랑은 또 온다 - 노희경이 전하는 사랑과 희망의 언어
노희경 지음, 배정애 사진.캘리그라피 / 북로그컴퍼니 / 2015년 12월
평점 :

"이 책은 내 마지막 대사집이 될 것이다!"
'노희경' 작가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건 <거짓말>이라는 드라마를 통해서입니다. 그리고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작품은 그녀의 이름 석 자를 제 마음에 각인시켰습니다. 그녀의 작품을 보며 '대본을 구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품었습니다. 나중에 알았는데 방송국에서 가장 빠르게 사라지는 대본이 노희경 작가의 것이라 들었습니다. 인터넷에서도 그녀의 대본을 구하려는 시청자(독자)들이 많았습니다. TV로 시청할 수 없을 때에도 그녀의 작품이 나오면 대본을 구해 읽기 시작했습니다.
<겨울 가면 봄이 오듯 사랑은 또 온다>, 이 책은 노희경 작가의 명사대를 모은 대사집입니다. 노희경 작가가 직접 묶어낸 대사집이라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싶습니다. '그녀가 우리에게 다시 들려주고 싶은, 그녀의 마음속에, 우리의 기억 속에 그녀가 남기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을까?'를 확인할 수 있게 해주니까요. 그래서 이 빨강 책은 그녀가 조심스레, 조금은 쑥스러운 듯 우리에게 건네는 다정한 편지 같습니다.

"사랑이 또 온다고 해줘. 또 온다고 ..."(# 거짓말)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고 성우(배종옥 분)가 했던 말입니다. 강렬했던, 너무도 강렬했던 그리하여 '이런 글을 쓰는 작가는 누구지?' 궁금하게 했던 바로 그 대사입니다. 먹먹해진 가슴으로 성우와 함께 울던 그 순간을 지금도 또렷이 기억합니다. 사랑은 없다고 확신하며 살던 내 차가운 가슴이 쩍-하고 갈라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습니다. 사랑이 믿고 싶어졌으니까요. <겨울 가면 봄이 오듯 사랑은 또 온다>를 읽어보니, 노희경 작가는 사랑을, 사랑의 힘을 믿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줄곧 그것을 우리에게 말해왔다는 것도요.

"사람이 사람한테 해줄 수 있는 건 용서가 아니라, 위로야"(# 그 겨울 바람이 분다)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가 마니아를 만들어내고, 작품이 나올 때마다 명대사가 회자되는 것은, 그녀가 건네주는 위로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도 위로해주지 않는,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마음을 노희경 작가만은 알아줄 것 같은 믿음이 생깁니다. 그녀가 우리에게 건넨 말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누가 그러더라. 세상에서 가장 폭력적인 말이 남자답다, 여자답다, 엄마답다, 의사답다, 학생답다, 뭐 이런 말이라고. 그냥 다 처음 살아보는 인생이라 서툰건데 그래서 안쓰러운건데 그래서 실수해도 되는건데"(# 괜찮아 사랑이야). 어떻게 그런 작은 체구에서 이처럼 큰 이해와 사랑이 뿜어져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노희경 작가의 작품은 사람 마음을 순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드라마에 나오는 등장인물도, 내 주변을 둘러싼 어떤 사람도 미워할 수 없게 하는 힘이 있지요. 그녀의 작품에서 저는 악역을 본 일이 없습니다. 드세고 거친 사람도, 독한 말들을 쏟아내는 사람도, 나쁜 일을 한 사람도, 심지어 사람을 죽인 사람까지 그녀의 작품을 통해 만나면 모두를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손가락질이 아니라 토닥토닥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들어주었으니까요. 그녀는 진정 큰 사람입니다.

"사랑은 계절같은 거야.
지나가면 다시 안 올 것처럼 보여도 겨울 가면 봄이 오듯,
사랑은 또 온다"(# 거짓말)
"네가 30년 동안 사랑을 못했다고 해도,
300일 동안 공들인 사랑이 끝났다고 해도, ... 괜찮아.
다시 사랑을 느끼는 건 한순간일 테니까"(# 괜찮아 사랑이야).
"옛날 어떤 마을에 깊고 깊은 동굴이 하나 있었어.
그 동굴에는 천년 동안 단 한 번도 빛이 든 적이 없었지.
천년의 어둠이 쌓인 깊은 동굴...
사람들은 그 어둠을 무척이나 두려워했지. 지금의 너처럼.
사람들은 모두 천년의 어둠을 걷어내기 위해,
천년의 시간이 걸릴 거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빛이 드는 건, 지금처럼... 한순간이야"(# 괜찮아 사랑이야).
시어처럼 아름다운 대사들입니다.
이왕 말하는 거, 나도 이런 말을 하며 사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사집을 읽는 즐거움은 드라마를 보면서 놓쳤던 말들과 다시 만나고,
그 대사를 곱씹으며 나만의 영상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말을 탐색하고 마음을 탐색하는 드라마 작가로 사는 게 더 없이, 많이 행복하다."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대사집을 내놓는 노희경 작가의 다음 목표(?)는 대사 없는 드라마를 쓰는 것이랍니다. "대사를 잘 쓰려 애쓰던 서른을 지나고, 말로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고 싶은 사십의 야망을 지나, 이제 오십의 나는 말 없는 드라마를 쓰고 싶다." 말이 없는 드라마로 얼마나 더 절절하게 말을 걸어올지 기대하게 되는 대목입니다.
말 같지도 않은 말, 이야기 같지도 않은 이야기를 뻔뻔하게 쏟아내면서도 드라마 작가 행세를 할 수 있는 세상에 '노희경' 같은 아름다운 작가가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막장 드라마보다 시청률은 낮을지 모르지만 결국의 그녀의 말만이 남을 것입니다. 마음에 떨어진 그녀의 아름다운 말들을 하나의 씨앗처럼 오래 품으려 합니다. 내 삶을 통해 열매 맺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말입니다. 그 열매는 분명 싱싱하고 풋풋한, 강력하고 강렬한 사랑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