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미술관에서 만난 심리학 - 미술과 문학에 숨은 심리학 코드 읽기
박홍순 지음 / 북스코프(아카넷) / 2015년 9월
평점 :
"확고한 이성이라는 믿음이야말로 환상이다"(35).
보통은 '나를 이해하기 위해서' 심리학을 공부한다고 하는데, 심리학이 지극히 사적인 개인의 심리 외에도 사회적 현상을 설명하는 훌륭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이 책을 읽으며 처음으로 해봤습니다. 사회학사상사를 공부할 때, 사회학과 심리학은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 학문적 분위기가 강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심리학과 사회학의 통섭은 남과 북의 통일만큼이나 엄청난 시너지효과를 가져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품게 됩니다.
<미술관에서 만난 심리학>은 우선,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작품을 실마리로 내용을 풀어가는데, 가는 길목에 여러 문학작품과 미술작품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문학과 미술은 심리학 코드를 풀어가는 이정표 역할을 할 뿐, 그 자체를 재해석하고 이해하는 것이 목표는 궁극적 목표는 아닙니다. 이 책은 제목에 비해 훨씬 큰 시도를 하고 있는 책입니다. "심리학을 처세를 위한 도구 정도로 생각하는 처세술의 심리학"이나 "자기만의 방공호 안에서 세상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핥는, 힐링과 도피의 심리학"에 대한 반동으로 태어난 책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저자는 "많은 사람이 관심을 두는 내밀한 심리상의 쟁점을 매개로 하되 심리학과 맞물려 있는 철학적, 사회적 기반을 놓치지 않도록 주의했다"고 밝힙니다. 요즘 우리나라는 한 권의 책이 빅 히트를 치자 '아들러 심리학 열풍'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관련 책들이 쏟아지고 있는데, 이 책은 그런 심리학적 이해가 갖는 한계가 무엇인지 분명히 보여주고 보다 큰 시각을 갖도록 인도하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미술관에서 만난 심리학>은 총 3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1부는 심리학의 기본 이론, 다시 말해 "프로이트를 비롯한 정신분석의 토양"을 깊이 있게 설명합니다. 우리가 맹신했던 이상(의식)의 환상, 숨겨진 무의식의 존재, 나아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지만) 무의식이 마음의 숨겨진 주인이라는 것, 정신의 상당 부분은 축적된 기억에 의존하는데 무의식적 욕구가 기억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무의식을 구성하는 기억은 굴절되고, 저장되고, 왜곡된다는 것, 따라서 "마음과 무의식의 구조를 이해하는 작업은 보다 신중하고 집요한 노력을 요구한다"(56)는 것을 설명하고 환기시킵니다.
"무의식은 개인적인가, 사회적인가?"
그런데 이 책은 여기서 한 발 앞으로 나아갑니다. "정신분석을 포함한 심리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쟁점은 무의식의 형성 원인을 개인과 사회 중에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의 문제다"(78).
프로이트의 경우 "성적 욕구를 사고와 행동 이해의 핵심 고리"로 삼았고, 아들러는 "독특한 개인적 배경", 다시 말해 가족 관계로 눈을 돌렸습니다(개인심리학의 관점). 저자는 "심리 형성을 사회적 환경보다는 사적인 공간이라 할 수 있는, 가족 관계에서 겪는 유아기 경험에서 찾는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은 현대 심리학에서 보다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95-96)고 지적합니다. 그러나 행동유전학적 관점은 심리적 성격의 결정 요인으로 "환경적 요인이 아니라 유전적 요인이 인간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함으로 새로운 지평을 열었고, 사회학적 관점은 "아무리 비슷한 유전적 형질이나 가정환경을 가진 인간이더라도 공동체에 기초한 농업사회와 치열한 경쟁을 운명처럼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 공업사회에서 서로 다른 성향을 띄게 되지 았을까? 그렇다면 은밀해 보이는 심리적 영역도 사회 환경에 속박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101)라는 질문을 던져주었습니다.
우리가 주목할 점은 현대사회는 "가정이라는 단위가 그다지 독립적인 영역이 아니라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개인의 성격과 심리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강력한 요인으로 그동안은 개인의 가정사에'만' 집중해왔다면, 이제는 사회적 측면의 중요성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책은 현대사회의 심리적 환경 몇 가지를 흥미롭게 분석합니다. 예를 들면, "대량소비를 중심으로 하는 소비사회 논리"(107)는 나르시시즘을 권하고, "약을 팔기 전 병을 팔아야 한다는 논리가 시장을 지배"(212)을 지배하는 현대사회는 만들어진 우울증(사회공포증)과 확실한 치료제를 권하고, 복잡한 사회적 관계와 관계의 그물망 안에서 동시애 여러 역할을 담당해야만 하는 현대인들은 "다중인격을 받아들이도록 강하게 압박"(387)받습니다.
이 책을 통해 가장 큰 경각심을 갖게 된 것은 "사회적으로 조장된 감정", 즉 열등감 콤플렉스입니다. "이미 만들어진 사회질서에 역행하여 해를 줄 수 있는 일체의 행동을 했을 때, 학습된 무기력 실험에서의 전기충격이나 소음처럼 개인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반복 주입받는다. 직장에서는 승진이 지체되거나 탈락하는 방식을 통해, 사회관계에서는 고립의 위험성을 통해 순응하도록 요구된다. ... 나아가 현실의 사회는 지배세력의 특정한 이해를 위해 병적인 열등감, 즉 열등감 콤플렉스를 집단적으로 학습하도록 만든다. 지배체제의 안정서을 공고히 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유포된 열등감 콤플렉스가 빈곤문제와 만나면 극심한 사회적 빈부격차를 정당화하는 효과적인 역할을 한다. 열등감 콤플렉스는 가난한 사람이 자신이 빈곤한 이유가 사회보다는 개인의 무능에 있다는 식으로 여기게 만든다. 이는 자신이 열등하기 때문에 현실의 고통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것으로 다가온다. 불평등한 사회체제에 대한 불만이나 저항은 사그라진다. 열등감 콤플렉스를 통해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을 비롯한 빈곤층의 집단적 무기력을 만들어낸다"(242).
<미술관에서 만난 심리학>은 개인의 심리적 요인, 특히 병적인 요인을 개인의 은밀한 가정사에서만 찾을 것이 아니라, 개인의 은밀한 가정에 커다른 영향을 끼치고 있는 사회적 요인에도 눈을 돌릴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심리 치료를 받으며 극단적인 경우 무엇이든 '부모님(양육자) 탓'을 하는 경향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보다 큰 시각으로 보면 우리에게 상처를 준 '부모님'도 사실은 상처받은 피해자로 다가올지 모르겠습니다. 이 책은 문학작품이나 미술작품 안에 수수께끼처럼 숨겨진 심리학적 코드를 단지 흥미롭게 읽으려 하는 독자에게는 그 '진지함'(!)이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무게감이 있는 책입니다. 개인심리학에서 한 발 더 나아가고 싶은 독자나 처세심리학, 힐링과 도피의 심리학에 지친 독자에게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