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 코너스톤 세계문학 컬렉션 2
조지 오웰 지음, 박유진 옮김, 박경서 / 코너스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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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 …  1984 …  2015




"미래에게, 과거에게 또는 사람들이 각자 다르고 홀로 살지 않으며 사상이 자유로운 시대에게, 진실이 존재하고 일어났던 일을 없었던 일로 만들 수 없는 시대에게, 획일성의 시대로부터, 고독의 시대로부터, 빅 브라더의 시대로부터, 이중사고의 시대로부터… 안부를!"(42)


가장 위대한 20세기 영미소설 중 하나로 손꼽히며 전세계 젊은이들의 필독서라는 조지 오웰의 <1984>를 드디어 읽었습니다. 사실 이 책은 제 개인의 별점이 무의미한 작품입니다. 역사가, 세대를 초월한 전세계의 독자가 이미 그 가치를 인정한 작품이니까요. 아마도 한 사람의 독자로서 제가 할 수 있는 평가는 '코너스톤 세계문학 컬렉션'으로 읽어본 <1984>는 번역이 매끄럽다 정도일 겁니다. 다만, "역사적 진보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린 시대"라는 20세기 전반기의 암울한 정치 상황 속에서(1948년) 미래 시대의 고도관리사회를 상정하여(1984년) 미래와 소통하고자 했던 조지 오웰에게 응답해야 할 미래 세대가, 2015년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바로 우리가 아닐까 하는 어떤 시대적 사명감 같은 것이 강하게 밀려들었다고나 할까요.




"그는 아무도 듣지 않는 진실을 말하는 외로운 유령이었다"(41).


조지 오웰의 <1984>는 세계 3대 디스토피아 소설로 불린다고 합니다. 이 책의 해설을 맡은 이는 "유토피아가 인간이 꿈꿀 수 있는 최고의 '이상향'이라 한다면, '디스토피아'는 인류가 현재로부터 예견해 볼 수 있는 최악의 미래가 되는 셈"인데, "디스토피아 문학은 현대인의 무력감과 절망감을 표현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417). 그래서인지 단순히 하나의 문학작품으로 이 책을 읽으려 해도, 마치 이 책에 등장하는 '윈스터'와 같이 전체주의와 외로운 사투를 벌이듯 이 작품을 써내려간 작가 오웰의 깊은 절망감 속에 우리의 현실이 자꾸 겹쳐지는 것은 '헬조선'이라 명명된 우리 시대의 무력감과 절망감이 맥을 같이 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윈스턴은 자신이 괴물이 된 채 괴물 같은 세상에서 길을 잃고 해저 수풀을 헤매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는 혼자였다. 과거는 죽었고, 미래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40).


1984년 십대였던 저는 언니, 오빠들의 피끓는 투쟁을 보며 자랐습니다. 데모대들의 격렬한 저항과 잔혹한 진압 이야기를 보고 들었고, 어떤 날은 지독한 체류탄 가스 때문에 수업을 중단하고 집으로 돌아갔던 날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분명 정의와 이상을 위해 싸우고 있다고 믿었고, 그래서 그 투쟁을 이어받은 친구들도 많았습니다. 저들이 이 나라를 이끌어가면 우리 삶은 어떻게 바뀔까 상상한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헬조선'이라는 지옥을 만들어내고, 20대들을 빚쟁이로 만들어 사회에 첫발을 딛게 하는, 출발부터 금수저 흙수저의 불평등을 나눠주는, 어른들, 책임자들은 도대체 누구일까요? 가끔 그때 데모를 했던 선배, 그리고 친구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질 때가 있습니다. 지금의 청년들처럼 분명 우리도 어른들의 불의와 불평등과 불합리에 항거했던 젊은이들이었는데, 그랬던 세대가 지금 '헬조선'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걷잡을 수 없는 무력감에 빠져들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가질 수 있는 희망이라곤 아무도 듣지 않는 진실일지언정 조지 오엘처럼 포기하지 않고 분개하는 한 사람의 '외로운 유령'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왜 저들은 정말 중요한 문제에 저렇게 고함치지 않는 걸까?"(96)

 

(해설자의 정리를 빌리자면) 오웰은 아 직픔을 통해 전체주의자들이 통치 권력을 공고히 하는 통치 수단을 폭노하는데, 첫 번째는 과거 통제, 두 번째는 이중사고, 세 번째는 '2분 증오'라는 이데올로기 주입 교육, 네 번째는 사고의 영역을 줄이기 위한 '신어' 창조입니다. (마치 지금 우리가 벌이고 있는 역사교과서 논란처럼) 과거 통제를 위해 기록은 파기되고, 진실은 위조되고, 역사는 조작되고, 필요할 때마다 이용해 먹을 수 있는 원시적 애국심을 부추기고, 사상경찰들이 모든 사람을 온종일 감시하며, 고문과 모욕으로 반박하고 사고하는 능력을 파괴하는 통치 수단들이 단순히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닌 것을 보면, 이 책을 더 열심히 읽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권력에 취한 자들인가 봅니다. 


<1984>의 주인공은 희망은 '프롤'(프롤레타리아)에게 있다고 믿지만, 통치 권력을 공고히 하는 자들은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믿습니다. 빈곤과 무지 안에 갇힌 프롤은 자신의 힘을 때닫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전반적인 이념이 없으니 사소한 불평거리에만 집중하고, 어떤 주제에 대해서든 깊이 생각하고자 하는 의욕도 능력도 없는 한 그저 휑하고 음침하고 무기력한 채 빈곤과 무지에 갇혀 지낼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은 윈스턴과 같은 인간의 본성을 지키려고 하는 의식 있는 젊은이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인간의 사적 사유 체계가 완전히 말살된 먼 미래의 디스토피아 사회를 보여준다"(430).


이 책을 읽어보면 권력을 쥐고 있고, 권력에 취한 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사람들이 사고하고, 생각하고, 상상하는 것입니다. 주인공의 정치적 투쟁은 '과거에 대한 기억 찾기'와 '일기 쓰기'부터 시작됩니다. 어쩌면 이런 몸부림이 아무런 정치적 힘을 가지지 못하고, 무기력해보일지라도, 우리는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물어야 합니다. 뱃속에서부터 당연히 누려야 할 어떤 권리를 빼앗겼다는 느낌이 든다면, "삶이란 건 언제나 이 모양이었나? 음식은 언제나 이런 맛이었나?"(83)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분개한 마음으로 묻고 또 물어야 합니다. 희망을 잃어버린 이 세대에게, 무기력에 사로잡힌 이 세대에게, 빈곤과 무지에 갇힌 이 세대에게 이 작품은 생각해야 한다고, 써야 한다고, 생각하고 생각하고 써야 한다고, 상상해야 한다고 외치는 듯합니다. 달라지는 것은 없을지라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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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져버린 사소한 거짓말
리안 모리아티 지음, 김소정 옮김 / 마시멜로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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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 명이 죽었다"(594).


도대체 그날 그밤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었던 것일까? 폰더 부인은 피리위 초등학교 학부모가 참석하는 퀴즈의 밤 행사에서 온갖 욕설과 욕두문자가 날아다니고, 미친 듯한 고함소리가 서늘한 밤하늘을 뚫고 지나가는 것을 목격합니다.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사이 멀리서 사이렌 소리와 여인의 비명이 동시에 들려왔습니다. 그날 밤, 병원에 실려온 피리위 초등학교 학부모 가운데 한 명은 발목이 부러졌고, 한 명은 쇄골이 부러졌고, 한 명은 코가 부러졌고, 한 명은 갈비뼈에 금이 갔고, 세 명이 눈에 멍이 들었고, 두 명이 심하게 찢어져서 꿰매야 했고, 아흔 네 명이 머리가 빠개질 정도로 아프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한 명이 죽었습니다(594).



 

"모두 끔찍한 오해였을 뿐이에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상처를 받았고 결국 모든 게 걷잡을 수 없게 됐어요. 세상일이란 게 원래 그렇잖아요. 갈등은 모두 누군가의 마음이 다치는 걸로 시작해요"(10).


폰더 부인의 목격담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다시 퀴즈 대회의 밤 6개월 전으로 돌아갑니다. 6개월 전, 마흔 살의 매들린과 스물네 살의 제인은 피리위 초등학교 예비학교 학부모로 만나 인연을 맺습니다. 거침없는 성격의 매들린은 어딘가 좀 비밀스러운 구석이 있는 싱글맘 제인에게 끌립니다. 제인을 보면 재혼 전, 홀로 아이를 키워야 했던 싱글맘의 외로움과 아픔이 절로 떠올랐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날 이후로, 매들린과 제인, 그리고 아름다운데다 부자 남편까지 남부러울 것 없는 매들린의 친구 셀레스트까지 셋은 서로에게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됩니다. 


<커져버린 사소한 거짓말>은 이 세 여인을 둘러싼 이야기입니다. 작가는 퀴즈의 밤 행사에서 벌어진 난동을 미스테리하게 독자들에게 던져준 뒤, 행사에 참석한 학부모들의 경찰진술, 그리고 세 여인(매들린, 제인, 셀레스트)의 이야기를 교차하며 독자가 맞춰나갈 퍼즐을 하나씩 내어놓습니다. 도대체 그날 밤 난동은 왜 일어난 것인지, 정확하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증만 계속 증폭되는 가운데 그날 밤 사건은 도무지 실체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600페이지에 달하는 장편을 거의 다 읽어갈 때까지 그날 밤 누가 죽었는지, 왜 죽었는지, 아니 그 죽음이 살인사건이었는지 사고였는지조차 밝혀지지 않은 채 작가와 독자의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벌어집니다.




폭력과 상처, 그리고 여자 (스포주의!)


<커져버린 사소한 거짓말>의 키워드는 '거짓말'이 아니라 '폭력'과 '상'처, 그리고' 여자'라고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이 책은 여성학 수업 독서토론 도서로도 안성맞춤일 듯합니다. 현대 여성을 둘러싼 사회 문제가 이 한 권에 다 집약되어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이혼과 재혼, 그리고 재혼가정의 문제, 싱글맘, 비밀스러운 가족폭력, 강간, 학부모 노릇과 전업주부의 자격지심, 불륜, 외모 트라우마까지 전방위 여성문제를 다룹니다. 많은 말을 쏟아내기로 유명한 김수현 작가표 드라마처럼 작가 '리안 모리아티'는 전작 <허즈번드 시크릿>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 작품에서도 엄청난 양의 이야기를 쏟아냅니다. 그녀의 수다본능이 힘겹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아마도 섬세한 심리묘사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재혼한 전남편의 가정과 부딪히며 느끼게 되는 매들린의 복잡한 감정선, 은밀한 폭력에 노출되어 있지만 그것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셀레스트의 다중적인 심리, 어린 나이에 싱글맘으로 살아가는 제인의 중첩되는 고통까지 여성들의 심리묘사에 아주 탁월한 작가입니다. 


더불어 여성을 둘러싼 사회환경과 사회문제까지 더해져 독자들에게 다채로운 읽을거리를 제공합니다. 독자를 가르치려는 듯 대놓고 문제삼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일상적인 스토리와 맛깔스러운 대사 속에 암시적으로 다가옵니다. 예를 들면, "학부모라는 역할을 아주 강하게 의식하는 사람들이야. 무슨 종교처럼 말이야", "여자의 자부심은 전적으로 외모에 있기 때문이에요. 그게 이유예요. 우린 외모지상주의에 사로잡힌 세상에서 살고 있으니까요. 여자에게 가장 중요한 건 남자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느냐 아니냐인 세상요", "그 망할 유능한 안내한테 열등감을 느낄 때가 많다고. 연봉도 엄청나고 중요한 데 나가잖아",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게 사실은 내가 학교에 가는 것과 같은 거였어? 세상에, 그런 생각은 정말 한 번도 해본적이 없는데"와 같은 문장들입니다. 아이의 가계도 숙제를 둘러싼 다음과 같은 대화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줍니다. "저런, 지기야. 아빠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정말 많단다." 매들린이 말했다. 세상에, 아마도 정말 그럴 거다. 피리위 반도에만 해도 싱글맘이 정말 많다. 아무래도 내일 반스 선생님을 만나봐야겠다. 이런 바보 같은 숙제는 더는 내지 말라고 해야 해. 지금 같은 세상에서 구멍이 숭숭 뚫리고 깨진 가족을 말쑥한 작은 상자에 구겨넣으려 하다니, 말이나 되는 얘기야?"(263)


<커져버린 사소한 거짓말>은 매들린, 제인, 셀레스트라는 세 여성을 둘러싼 상처와 비밀을 중심으로 사소한 논쟁이 어떻게 잔혹한 폭력으로 발전하는지를 보여줍니다. 리즈 위더스푼과 니콜 키드먼 제작 주연의 미드 방영이 확정되었다고 하는데, 니콜 키드먼이 맡은 배역이 궁금해집니다. 거침없는 성격의 매들린 역에도 잘 어울리겠지만, 신비할 정도로 아름다운 셀레스트와도 잘 어울려 보이기 때문입니다. 


우주시대를 지향하는 21세기를 살고 있어도 여성들은 여전히 사회적 약자일 때가 많습니다. 여전히 수많은 폭력에 노출되어 있으며, 심지어 가족 안에서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소비되고 희생을 강요 당하는 삶을 살기도 합니다. 책의 어느 부분에선가 매들린이 "내 문제는 잘 풀지 못하는데, 이상하게 남의 문제는 답이 훤히 보인다"는 말을 합니다. 실제로 매들린이 끙끙 앓게 되는 난제를 셀레스트가 한방에 해결해주기도 하고, 제인을 멘붕에 빠뜨린 문제를 매들린이 거뜬히 해결해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쩌면 이것이 우리가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내 문제를 객관화해서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 책을 읽어가며 매들린과 제인과 셀레스트에게 남몰래 조언을 하다보면 그동안 풀지 못했던 내 문제에 대한 답이 어느 순간 훤히 보일지도 모르니까요. 600페이지가 넘는 장편이지만 지루할 틈이 없는 촘촘한 소설입니다. 스토리만으로도 충분히 흥미진진한데, 한발 더 나아가 여성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읽는다면 다각도에서 보다 의미 있는 독서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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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들어도 좋은 말 - 이석원 이야기 산문집
이석원 지음 / 그책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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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인연이 내게 새로움을 줄 수 있을까.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에 가면

난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을까(142).


이토록 '솔직한' 산문집이라니. 그 솔직함에 놀라 '산문집'이 픽션인지 논픽션인지 다시 확인을 해봐야했습니다. 촌스러울 정도로 이 책이 픽션이냐 논픽션이냐에 집착했던 이유는 누군가의 은말한 연애를 관음증 환자처럼 몰래 훔쳐본 기분이 들기 때문입니다. 작가와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 보지 못할 것만 같은 이 기분은 또 무엇인지.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은 '언니네 이발관'이라는 인디밴드에서 보컬'도' 맡고 있는 이석원 작가의 두 번째 산문집입니다. 산문집 특유의 자유로운 형식 속에서, 굳이 구분(?)을 하자면 40대 이혼남으로 살고 있는 작가가 참으로 우연하게 다가온 새로운 인연과의 만남을 일기를 쓰듯 써내려갔습니다. '브릿지존스의 일기' 남성 버전같은, 그 남자의 일기입니다.




(지금) 모해요? 까지도 괜찮지.

시간이 되냐는 뜻일 수 있으니까.

그치만 (오늘) 모했어요? 로 넘어가면 곤란해.

친구 사이에 물어볼 말은 아니니까(181).


사랑은 그녀(그)와의 게임 같은 줄다리기일까요? 아니면 나홀로 싸워야 하는 내면의 전쟁일까요? 사소한 몸짓, 사소한 말 한마디도 중요한 의미를 품지 않은 것이 없고, 정답도 없는 그 의미를 해석하느라 홀로 씨름을 하며 날밤을 새는 것은, 그녀(그)도 내가 그녀(그)를 사랑하는 만큼 나를 사랑하는지 증거를 찾고 싶은 것일테지요. 더구나 분명히 선을 긋는 상대와 이미 그 선을 넘어가 버린 내 감정이 충돌하고 있을 때, 사랑은 아프고, 깔끔하게 무시해버리고 싶지만 아프니까 사랑이라는 것을 또 아프게 인정해야만 합니다. 


작가는 "마음은 놔두고 몸만 기형적으로 친해지"(189)는, 사랑인지 아닌지 모를 모호한 관계 속으로 빨려들며 이렇게 스스로를 위로합니다. "사람이 견딜 수 없는 것들을 견뎌야 하는 이유는 / 이 모든 게 한 번 뿐이기 때문. / 사랑도 고통도 / 하늘도 꿈도 바람도"(192).  




뭐해요?


언제 들어도 좋은 말(384).


작가가 말하는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은 "뭐해요?"라는 그녀의 연락이었습니다. "뭐해요?"라는 단 세 단어 문자로 나를 떨리게 하는 사람이 내게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또 주책스럽게도 직업은 의사이며 성이 김씨인 그분과 잘 사귀고 있는지 작가에게 자꾸면 물어보고 싶어집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은 세계와 세계가 만나는 일.

그래서 나는 사람을 만날 때 그 사람의 세계가 넓길 바란다.

내가 들여다볼 곳이 많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나눌 수 있는 것들이 많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가끔은 세계가 전혀 없는 사람도 있더라.


그러니 상대의 입장에서 내가 품은 세계는

면적이 얼마나 되는지도 한 번쯤 생각을 해봐야 한다(84).


책을 읽는다는 것이 그것을 쓴 사람과 읽는 사람의 만남이라면, 또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이 세계와 세계와 만나는 일이라면, 동갑이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석원' 작가는 내게 아주 낯선 세계이기도 했습니다. 제법 밑줄까지 쳐가며 이 책을 읽었는데, "들여다볼 곳이 많은 사람"이었다고 기억될 것 같습니다.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이지만 신변잡기처럼 가볍게만 느껴지지 않았던 것은 그의 문체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며, 한 자 한 자 파내려가듯이 진심을 담아낸 생에 대한 그의 치열한 고민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가까운 사람들은 그를 조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이 이야기가 되는 사람에게는 내가 언제 어떤 모습으로 그의 책에 등장할게 될지 모를 위험이 도사리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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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말해 준 것
닐 도날드 월쉬 지음, 황하 옮김 / 연금술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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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극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힘든 싸움에 사로잡혀 있다. 나날의 싸움이다. 단지 행복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존하기 위한, 살아 나기 위한, 다만 현 수준을 유지하기 위한 싸움이다. ... 이것이 지금 무엇인가 잘못되어 있다는 가장 큰 단서이고, 가장 큰 힌트이며, 가장 확실한 신호이다. 어느 합리적 기준으로 보든 행복해야 할 사람들조차 행복하지 못할 때, 사회의 문화적 체계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14).


삶의 밑바닥에서 자신의 삶을 엉망진창으로 만든 신에게 분노에 찬 편지를 써내려 가기 시작"했는데, 놀랍게도 마치 받아쓰기를 하는 것처럼 신의 대답이 주어졌고, 종이 위에서 계속된 신과의 대화를 타이핑해 출판사로 보낸 것이, 총9권에 달하는 <신과 나눈 이야기>시리즈이며,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메시지'만을 가려뽑고 더 확장시켜 설명한 책이 바로 이 책 <신이 말해 준 것>이라고 합니다.

이 책이 출발 지점으로 삼고 있는 문제의식은 귀담아 들을 만합니다. 무엇인가 잘못되어 있는, 잘못 돌아가고 있는 세상에 대한 인식은 누구보다 '종교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신앙생활'을, 특히 나눔이 없는 생활을 반성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종교의 약점, 종교인의 약점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듯 예리한 질문을 던지기도 합니다. 특정 종교를 떠나서 "신을 '믿는 사람'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신에 대한 생각은 많은 사람들이 전체 도덕 법칙을 세우는 토대가 된다"(27)는 측면에서, 또 "신에 대한 생각과 개념이 우리 자신과 삶에 대한 생각과 개념을 만"(116)든다는 측면에서 이 책이 던지는 화두는 유의미하게 다가옵니다.


그러나 이 책이 전하는 신의 심오한(?) 메시지는 그리 새로울 것 없는 '범신론적 합일주의', 또는 '범신론적 신비주의'라는 카테고리 안으로 분류해 넣을 수 있을 듯합니다. 또한 신과 우리는 하나이고, 그러니 인간은 곧 신이라는 논리적 측면에서 뉴에이지적 메시지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신에 대한 오해(?)를 벗기고자 시도하며, '더 나은 길'도 아니고, 그렇다고 새로운 길도 아니고, 다른 길을 소개하고 있다고 말하는 이 책을 읽고 있으면 기독교 신앙을 타겟으로 하고 있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기독교 신앙은 구원받을 수 있는 '오직 한 길'만을 말하고 있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기독교 신앙을 가진 신자의 입장에서는 경계해야 할 책으로 분류하고 싶습니다.


편협한 기독교 신앙으로 이 책의 메시지를 외면한다고 비판할 독자들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좋은 말이 곧 옳은 말은 아니라는 점을 상기하고 싶습니다. 선악과나무 밑에서 사탄은 "결국은 너희가 하나님(신)과 같이 될 거야"라고 유혹했습니다. 이 책의 메시지도 일견 달콤한 측면이 있습니다. 쓴소리도 들어야 할 때는 들어야 하지만, 좋은 말도 위험할 때는 멀리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생각이 됩니다.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은 신앙인들에게 권하고 싶지 않은 책입니다. 그리고 저자에게 우리에게 던졌던 메시지를 다시 돌려주고 싶습니다. "당신은 다른 사람에게 위협받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당신의 믿음에 의해 위협받고 있다"(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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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drl32 2023-11-26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초 성서책들의 과연 사람의 손을 않탔을까 온전히 신의말로만 이루어졌을까 신이라는 이름하에 맹신하고있는건아닌지 신의 말이 아닌 인간의 정신세계를 그 옛날사고방식으로 이야기로 써놓은것뿐인건아닌지 의심해보는게 더 현명한듯
 
미술관에서 만난 심리학 - 미술과 문학에 숨은 심리학 코드 읽기
박홍순 지음 / 북스코프(아카넷)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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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고한 이성이라는 믿음이야말로 환상이다"(35).



보통은 '나를 이해하기 위해서' 심리학을 공부한다고 하는데, 심리학이 지극히 사적인 개인의 심리 외에도 사회적 현상을 설명하는 훌륭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이 책을 읽으며 처음으로 해봤습니다. 사회학사상사를 공부할 때, 사회학과 심리학은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 학문적 분위기가 강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심리학과 사회학의 통섭은 남과 북의 통일만큼이나 엄청난 시너지효과를 가져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품게 됩니다. 


<미술관에서 만난 심리학>은 우선,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작품을 실마리로 내용을 풀어가는데, 가는 길목에 여러 문학작품과 미술작품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문학과 미술은 심리학 코드를 풀어가는 이정표 역할을 할 뿐, 그 자체를 재해석하고 이해하는 것이 목표는 궁극적 목표는 아닙니다. 이 책은 제목에 비해 훨씬 큰 시도를 하고 있는 책입니다. "심리학을 처세를 위한 도구 정도로 생각하는 처세술의 심리학"이나 "자기만의 방공호 안에서 세상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핥는, 힐링과 도피의 심리학"에 대한 반동으로 태어난 책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저자는 "많은 사람이 관심을 두는 내밀한 심리상의 쟁점을 매개로 하되 심리학과 맞물려 있는 철학적, 사회적 기반을 놓치지 않도록 주의했다"고 밝힙니다. 요즘 우리나라는 한 권의 책이 빅 히트를 치자 '아들러 심리학 열풍'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관련 책들이 쏟아지고 있는데, 이 책은 그런 심리학적 이해가 갖는 한계가 무엇인지 분명히 보여주고 보다 큰 시각을 갖도록 인도하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미술관에서 만난 심리학>은 총 3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1부는 심리학의 기본 이론, 다시 말해 "프로이트를 비롯한 정신분석의 토양"을 깊이 있게 설명합니다. 우리가 맹신했던 이상(의식)의 환상, 숨겨진 무의식의 존재, 나아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지만) 무의식이 마음의 숨겨진 주인이라는 것, 정신의 상당 부분은 축적된 기억에 의존하는데 무의식적 욕구가 기억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무의식을 구성하는 기억은 굴절되고, 저장되고, 왜곡된다는 것, 따라서 "마음과 무의식의 구조를 이해하는 작업은 보다 신중하고 집요한 노력을 요구한다"(56)는 것을 설명하고 환기시킵니다. 



"무의식은 개인적인가, 사회적인가?"


그런데 이 책은 여기서 한 발 앞으로 나아갑니다. "정신분석을 포함한 심리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쟁점은 무의식의 형성 원인을 개인과 사회 중에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의 문제다"(78).


프로이트의 경우 "성적 욕구를 사고와 행동 이해의 핵심 고리"로 삼았고, 아들러는 "독특한 개인적 배경", 다시 말해 가족 관계로 눈을 돌렸습니다(개인심리학의 관점). 저자는 "심리 형성을 사회적 환경보다는 사적인 공간이라 할 수 있는, 가족 관계에서 겪는 유아기 경험에서 찾는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은 현대 심리학에서 보다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95-96)고 지적합니다. 그러나 행동유전학적 관점은 심리적 성격의 결정 요인으로 "환경적 요인이 아니라 유전적 요인이 인간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함으로 새로운 지평을 열었고, 사회학적 관점은 "아무리 비슷한 유전적 형질이나 가정환경을 가진 인간이더라도 공동체에 기초한 농업사회와 치열한 경쟁을 운명처럼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 공업사회에서 서로 다른 성향을 띄게 되지 았을까? 그렇다면 은밀해 보이는 심리적 영역도 사회 환경에 속박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101)라는 질문을 던져주었습니다. 


우리가 주목할 점은 현대사회는 "가정이라는 단위가 그다지 독립적인 영역이 아니라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개인의 성격과 심리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강력한 요인으로 그동안은 개인의 가정사에'만' 집중해왔다면, 이제는 사회적 측면의 중요성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책은 현대사회의 심리적 환경 몇 가지를 흥미롭게 분석합니다. 예를 들면, "대량소비를 중심으로 하는 소비사회 논리"(107)는 나르시시즘을 권하고, "약을 팔기 전 병을 팔아야 한다는 논리가 시장을 지배"(212)을 지배하는 현대사회는 만들어진 우울증(사회공포증)과 확실한 치료제를 권하고, 복잡한 사회적 관계와 관계의 그물망 안에서 동시애 여러 역할을 담당해야만 하는 현대인들은 "다중인격을 받아들이도록 강하게 압박"(387)받습니다. 


이 책을 통해 가장 큰 경각심을 갖게 된 것은 "사회적으로 조장된 감정", 즉 열등감 콤플렉스입니다. "이미 만들어진 사회질서에 역행하여 해를 줄 수 있는 일체의 행동을 했을 때, 학습된 무기력 실험에서의 전기충격이나 소음처럼 개인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반복 주입받는다. 직장에서는 승진이 지체되거나 탈락하는 방식을 통해, 사회관계에서는 고립의 위험성을 통해 순응하도록 요구된다. ... 나아가 현실의 사회는 지배세력의 특정한 이해를 위해 병적인 열등감, 즉 열등감 콤플렉스를 집단적으로 학습하도록 만든다. 지배체제의 안정서을 공고히 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유포된 열등감 콤플렉스가 빈곤문제와 만나면 극심한 사회적 빈부격차를 정당화하는 효과적인 역할을 한다. 열등감 콤플렉스는 가난한 사람이 자신이 빈곤한 이유가 사회보다는 개인의 무능에 있다는 식으로 여기게 만든다. 이는 자신이 열등하기 때문에 현실의 고통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것으로 다가온다. 불평등한 사회체제에 대한 불만이나 저항은 사그라진다. 열등감 콤플렉스를 통해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을 비롯한 빈곤층의 집단적 무기력을 만들어낸다"(242). 


<미술관에서 만난 심리학>은 개인의 심리적 요인, 특히 병적인 요인을 개인의 은밀한 가정사에서만 찾을 것이 아니라, 개인의 은밀한 가정에 커다른 영향을 끼치고 있는 사회적 요인에도 눈을 돌릴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심리 치료를 받으며 극단적인 경우 무엇이든 '부모님(양육자) 탓'을 하는 경향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보다 큰 시각으로 보면 우리에게 상처를 준 '부모님'도 사실은 상처받은 피해자로 다가올지 모르겠습니다. 이 책은 문학작품이나 미술작품 안에 수수께끼처럼 숨겨진 심리학적 코드를 단지 흥미롭게 읽으려 하는 독자에게는 그 '진지함'(!)이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무게감이 있는 책입니다. 개인심리학에서 한 발 더 나아가고 싶은 독자나 처세심리학, 힐링과 도피의 심리학에 지친 독자에게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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