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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톈의 이것이 바로 인문학이다 - 천재 동양 철학자들의 생각의 향연을 듣다
이중텐 지음, 이지연 옮김 / 보아스 / 2015년 8월
평점 :
많은 사람이 중화민족은 어떻게 이처럼 수많은 위대한 사상가를 배출할 수 있었으며, 그들은 어떤 이유로 춘추 전국 시대에 집중적으로 출현했는지 자못 궁금해할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그들의 사상은 왜 이처럼 오랜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강인한 생명력과 영원한 매력을 지니게 된 것일까?(410-411)
한동안 아버지가 '중화TV'라는 채널로 '삼국지' 강의를 열심히 챙겨보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 사람의 책을 구할 수 없는지 아버지가 물어서 '이중톈'이라는 이름 석 자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중톈'은 "역사학자이자 고전해설가이며 중국 최고의 학술 스타이자 스타 작가"였습니다. "<포브스>가 발표한 중국 갑부 순위 47위에 오르기도" 했다고 하니 그가 "중국대륙에서 얼마나 유명한 스타 작가"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고전 해설로 그가 이처럼 유명한 스타 작가가 된 것은 중국의 시대적인 요청도 한 몫했을 것입니다. 중국인들은 인구 억제 정책으로 한 아이를 키우는 가정이 많은데 자본주의 등의 유입으로 사회가 큰 혼란을 겪으면서 '버릇 없는 자녀'가 큰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때 이중톈의 고전강의는 잊고 있던 정신적 유산을 일깨웠고, 사회 문제에 대한 새로운 대안으로 다가갔으리라 짐작해봅니다. 중국인들은 경제만큼 사상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 민족이고, 그래서 그들이 강대국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중국인들의 이러한 모습은 오로지 '경제'만 붙들고 있는 우리의 진짜 가난이 무엇인지 비춰주는 듯합니다. 돌아갈 사상이 있고, 붙들어줄 정신이 있는 그들의 유산이 부럽습니다.
<이중텐의 이것이 바로 인문학이다>는 크게 보면 백가쟁명의 3대 전쟁, 다시 말해 유가와 묵가, 유가와 도가, 유가와 법가의 논쟁에 대해 살펴본 책입니다. 그리고 그의 백가쟁명 이야기는 "모든 일의 시작인 공자"로부터 시작됩니다. "공자는 민간 시상가의 신분으로 천하 대사에 자신의 의견을 발표하는 선례를 만들었"(411)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합니다.
이중톈은 백가쟁명을 통해 선진이 남겨준 사상문화 유산을 이렇게 정리합니다. "묵가는 사회에 대한 관심을 두어 이상 사회의 모습을 남겼다. 그것은 바로 평등, 호혜, 박애다. 도가는 인생에 관심을 두어 인생에서 추구해야 할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것은 바로 진실, 자유, 관용이다. 법가는 국가에 관심을 두어 치국의 이념을 남겼다. 그것은 바로 공개, 공평, 공정이다. 유가는 문화에 관심을 두어 핵심 가치를 알려 주었다. 그것은 바로 인애, 정의, 자강이다. 또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묵가는 공동체를 건설하는 아름다운 이상을, 도가는 인생의 길을 제시하는 지혜의 결정을, 법가는 변혁에 대응하는 사상 자원을, 유가는 민심을 모으는 가치체계를 남겼다"(597).
그들의 사상문화 유산을 가르치며 이중톈이 중요하게 던지는 질문은 이것입니다. "이처럼 수많은 위대한 사상가들이 어떤 이유로 춘추 전국 시대에 집중적으로 출현했으며, 그들의 사상은 왜 이처럼 오랜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강인한 생명력과 영원한 매력을 지는가?" 위대한 사상가들이 춘추 전국 시대에 집중적으로 출현한 이유로는 "사고의 성숙", "사회 격변", "사인의 부상"을 꼽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국가와 사회에 많은 풍파가 일었던 격변기에 위대한 사상가들이 집중적으로 출현했다는 것입니다. 사회의 격변이라는 거센 소용돌이가 치열한 사상적 논쟁을 낳았다는 것입니다. "사실상 이 고난의 500여 년 동안 전쟁과 동란, 궁중 정변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서로가 서로를 속이며, 전화의 불길이 사방을 메우고, 핏물이 강을 이루었다. ... 이에 중요한 과제가 모두의 눈앞에 놓이게 되었다. '이 사회는 대체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 그렇다면 누가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을 해 줄 수 있는 것일까?"(470-471)
"이 사회는 대체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 내던져졌을 때, 이중톈은 이 문제에 대답을 해준 사람들이 바로 사, 농, 공, 상, 중 사(士)에 속하는 계층이었고, 특수한 신분, 역사적 사명, 엘리트 의식으로 충만한 사(士) 계층만이 오직 이 문제에 답할 수 있었던 이유를 흥미롭게 풀어줍니다. 출신과 지위를 문제 삼지 않아야만 엘리트 계층이 양성될 수 있다는 것을 역으로 보여주기도 합니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신선하게 와닿았던 부분은 바로 '공자에 대한 진실'입니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고 외쳤던 분도 계시지만 이중톈의 강의는 공자에 대한 인식을 바꿔주었습니다. 공자는 이제 성인이라기보다 고군분투했던 진실한 정치인의 이미지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그도 살았을 때는 문제가 많았습니다. 관직, 관직, 관직을 외치며 끊임없이 관직에 연연했지만, "생전에 자신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동분서주했음에도 가는 곳마다 벽에 부닥쳤고, 노심초사했지만 끝내 아무런 수확도 없었으며, 무리를 잃은 기러기처럼 서글펐고, 상갓집 개처럼 초라했다"(412). 그러나 그는 "안 될 줄 알면서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관직에 연연했던 이유는 공자의 학문이 정치학이고, 윤리학이었기 때문입니다. 정치학이든 윤리학이든 모두 실천이 중요한데, 공자는 정치적 청사진을 구체적으로 실천하고자, 학문적 주장을 실천하고, 인생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관직에 연연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공자의 한마디가 오래도록 마음에 남습니다.
《논어》 <태백> 편을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공자가 말했다. "천하에 도가 있어 태평하면 자신을 드러내 벼슬길에 오르고, 도가 없어 태평하지 않으면 은거해야 한다. 나라에 도가 있는데도 가난하고 천하게 사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며, 나라에 도가 없는데도 부유하고 귀하게 사는 것은 더욱 부끄러운 일이다"(38).
성경에 보면, 소돔과 고모라는 의인 열 명이 없어 멸망하고 맙니다. 우리에게 "나라에 도가 없는데도 부유하고 귀하게 사는 것은 더욱 부끄러운 일이다"라는 신념을 가진 정치가 열 명만 있다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요? 춘추 전국 시대라는 사회 격변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들에게 던져졌던 중요한 과제, "이 사회는 대체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 하는 물음, 그것은 공자와 같은 신념을 가진 한 사람의 정치가에 목마른 우리 국민 앞에 여전히 놓여 있는 과제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그에 답했던 천재 동양 철학자들의 치열한 고민과 사유와 논쟁을 담은 이 책을 읽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는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