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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교양, 미술이 묻고 고전이 답하다 - 18권의 철학·문화·사회·경제 고전을 54점의 그림으로 읽는다
박홍순 지음 / 비아북 / 2015년 7월
평점 :
품절
"삶의 가치에 대한 고민은 자취를 감추고 내일의 행복을 위한 오늘의 경쟁만이 계속된다"(5).
성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경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삶의 가치와 인생의 본질에 다가가기 위해 생각하는 힘을 좀 길러야겠다는 간절한 요즘입니다. 하루종일 끊임없이 생각하고, 판단하고, 선택하기 바빴는데, 왜 잠자리에만 누우면 알맹이가 빠진 듯 공허한 그림자만이 텅 빈 마음 가득 드리우는지 갑갑하기만 합니다. <세상의 모든 교양, 미술이 묻고 고전이 답하다>는 그런 밤에 읽기 좋은 책입니다.
이 책의 일차적인 목적은 고전 읽기입니다. 친구들끼리는 '고전 때문에 고전한다'는 농담을 주고받기도 합니다. 읽어야 할 책인 건 알겠는데 읽어내기가 녹록치 않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이처럼 "고전을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 어디서부터 어떻게 접근하여 풀어 나가야 할지를 알려주고 막막함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7)은 마음으로 기획된 책입니다. 그런데 이 책이 주목받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고전을 풀어나가는 도구로 '미술 작품'을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미술 작품을 각 장의 도입부로 삼아 해당 고전에 관심과 문제의식을 가지도록 의도했"(10)습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언젠가 읽었던 보티첼리 이야기가 떠올라 슬며시 미소 지었습니다. 평행이론이라고 할까요. 이 책과 보테첼리 일화가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보티첼리의 그림 때문에 인문 교양 공부 열풍이 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보티첼리는 주로 신화를 주제로 한 시를 그림으로 그렸는데, 인문 교양이 있는 사람은 보티첼리의 그림을 척 보면 무슨 뜻인지 알고 미소를 지었지만, 인문 교양이 없는 이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야 했기 때문이랍니다. 보티첼리의 그림이 인문 교양 열풍을 불러온 것처럼, <세상의 모든 교양, 미술이 묻고 고전이 답하다>는 "한 화면 안에 집약적 정보"를 담고 있는 미술 작품을 통해 깊이 있는 고전 읽기를 꾀하고 있습니다.
"정보 범람이 본질을 가리고 사람들을 바보로 만든다"(332).
이 책은 "생각에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네 분야, 즉 철학, 문화, 사회, 경제"를 큰 카데고리로 하여 각각에 관련된 고전을 다루고 있습니다. 철학 분야에서는 "시대별로 이성을 둘러싼 서로 다른 대표적 관점"을 탐구하며, 문화 분야에서는 문화의 원시적 기원에서부터 현대 소비사회의 문화적 특징까지 큰 줄기를 살핍니다. 사회 분야에서는 "법, 제도, 관료제, 대중사회, 자유, 여가 등 현대사회에서 논란이 되는 핵심 주제를 중심으로 고전을 배치했"고, 경제 분야에서는 "소유, 시장, 지식 경제 등 경제와 관련한 핵심 논쟁점에 접근하도록 몇 가지 주제로 구분했"습니다(8-9).
이 책의 강점은 미술 작품을 통해 고전이 전하고자 하는 문제의식을 더욱 강렬하게 드러내 보여주고, 고전의 핵심 내용을 읽고 분석하는 방식으로 오늘날 우리가 잊고 사는 "우리의 자화상"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주제는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입니다. 학창시절 인상 깊게 읽었던 작품이라 그런지 저자의 논점과 풀이에 더 관심이 갔습니다. 그리고 그때는 열심히 읽으면서도 다 이해하지 못하고, 깊이 깨닫지 못했던 내용의 핵심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저자의 이야기 중에 지식의 주입이 계속 될수록 생각할 틈이 없어진다는 이야기가 마음에 깊이 와닿았습니다. "현대인은 실제로 깨어 있는 모든 순간에 우리의 감각을 사로잡는 끊임없는 자극의 폭격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데,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무언가를 생각하기 보다는 그냥 그날그날 전달되는 데이터를 머릿속에 입력하는 방식으로 지적 활동을 대신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333)는 것입니다.
저자가 인용한 프롬의 이야기를 재인용하면, "도시가 폭격당해 몇 천 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뉴스에 이어, 아무런 부끄러움도 없이 비누나 술 광고가 삽입"되는 매체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될수록 "인간은 '흥분되는 일이 없어지고, 감정이나 비판적인 판단은 저해' 받게 되며,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평탄하고 무관심한 성질을 갖게 된다"(335-337)는 메시지가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지식이 아니라, 이런 비판적 시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이기도 합니다. 단순히 지적 교양과 그러한 욕구를 채워주는 책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무관심한, 우리가 심각하게 착각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 그 실체를 바로 볼 수 있도록 도와주니까 말입니다.
<세상의 모든 교양, 미술이 묻고 고전이 답하다>는 고전 길라잡이 같은 책이면서도, 길라잡이로 끝나지 않고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는 책입니다. 고전을 읽는 시각뿐만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오늘을 반성하고 나를 둘러싼 세계를 반성하도록 이끌어줍니다. 생짜로 고전을 읽는 것보다 훨씬 재밌는 강의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아까운 인생 소탐대실하지 않으려면 꼭 읽어봐야 할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서도 무엇보다 중요한 미덕은 "재밌다"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책, 재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