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켈러의 기도 - 의무를 지나 기쁨에 이르는 길 찾기
팀 켈러 지음, 최종훈 옮김 / 두란노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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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기도를 들으시기로 작정하셨다"(310).



말하는 것만큼 쉬운 것도 없지만, 말을 잘하는 것만큼 어려운 것도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기도만큼 쉬운 것도 없지만, 기도만큼 어려운 것도 없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담임목사님은 자주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사랑은 동사다. 하는 것이다. 기도도 동사다. 기도는 '하는' 것이다." 기도는 이론보다 실천이라는, 다시 말해 기도에 '관해' 배우려고 힘쓰기 보다, 기도 '하는' 데 더 힘쓰라는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팀 켈러의 <기도>는 기도에 '관해' 가르치는 책이며, 기도 '하는' 데 힘쓰도록 이끌어주는 책입니다. 기도는 동사이기 때문에 이론보다는 실천이 먼저이지만, 이 책을 읽으며 한 번쯤 기도를 이론적(!)으로 점검을 할 필요는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팀 켈러 목사님의 책이 좀 그런 경향이 있는데, 이 책 역시도 읽어내기 쉬운 책은 아닙니다. 기도에 '관해' 얼마나 예리하게 파고드는지 좀처럼 지칠 줄 모르는 그 지적 탐구력이 경탄스러울 정도입니다. 기도에 관한 가르침 중에서 성도가 귀담아 들어야 할 가르침 중 하나는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명상이나 황홀경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물론 기도를 통해서 신비로운 체험을 할 수 있지만, 기도는 본질적으로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요 만남이지 자아를 잊고 신(우주)과 합일을 이루는 황홀경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팀 켈러는 이성적 신비주의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신비주의를 향한 경고는 중요하지만, "기도가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만남, 그 경이롭고, 신비하며, 외경스러운 체험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72)는 한마디로 기도의 신비를 잘 정리해주었습니다. 


<팀 켈러의 기도>는 기도란 하나님과 나누는 대화인 동시에 만남이라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팀 켈러는 실제적인 기도 훈련을 위해 어거스틴과 루터, 칼뱅의 가르침과 기도 습관, 그리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을 본보기로 삼습니다. 그리고 찬양, 고백, 감사, 간구로 이어지는 전통적인 형태의 기도를 다시 우리 기도생활에 적용해줍니다. 기도에 관한 성경적 탐구, 위대한 스승들의 가르침, 많은 저작들을 탐구하는 가운데 가장 두드러지고 공통된 가르침 한 가지는, 기도를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 말씀에 풍덩 뛰어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를 하려면 먼저 성경을 펴고 그 간구를 들이실 분에 관해 배워야 한다. 성경을 읽으며 깨달을 때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알게 된다"(87), "기도의 목표가 진실하고 인격적인 교제라고 본다면, 온 마음을 다해 성경에 기록된 한 구절 한 구절에 깊이 몰입하는 게 기도하는 법을 베우는 유일한 길이다"(88)는 가르침이 계속 반복됩니다.


팀 켈러 목사님은 갑상선암 진단을 받고 아내 케시마저 크론병 증세와 씨름하며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에 빠져 헤매던 어느 날, 반드시 매일 밤 빠지지 않고 기도해야 한다는 아내의 말에 머릿속에 불이 반짝 켜지는 기분이었다고 합니다. 기도 말고는 답이 없는 절박한 그때에 그동안 올바른 기도를 드리지 못했다는 자각이 깊어졌고, 기도 생활을 더 높은 차원까지 끌어올리고 싶어 관련 서적들을 닥치는 대로 읽으며 기도에 관한 실험을 시작한 결과물이 바로 이 책입니다(25-26). 그렇게 기도를 배우며 갑상선암 수술을 무사히 마치자마자 개인적인 경건 생활에 변화를 주었는데, 첫째는 시편을 통독하면서 규칙적으로 시편 말씀에 기대어 기도하는 습관이 들기 시작했고, 둘째는 성경을 읽은 다음, 기도로 넘어가기 전에 반드시 시간을 내서 묵상하는 훈련을 했으며, 셋째는 아침만이 아니라 아침저녁으로 기도하는 데 온 힘을 기울였고, 넷째는 더 큰 기대를 품고 기도하기로 한 것입니다(35). <팀 켈러의 기도>가 우리의 기도생활을 이끌어가고자 하는 목표 지점이 바로 여기입니다. 성경 말씀에 기대에 기도하고, 아침 저녁으로 매일 기도하고, 더 큰 기대를 품고 기도하도록 하는 것 말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기도를 배우고 훈련해야 하며 여기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기도는 성도의 의무이며, 때로 고된 노동과 같이 힘겨운 과정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팀 켈러의 기도>는 기도는 의무를 지나 무궁하고도 신비한 기쁨에 이르는 여정임을 가르쳐줍니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그동안 기도를 했지만 기도를 한 것이 아니었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났습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하나님께 호소하고, 필요가 있을 때 하나님께 간구하는 일 외에는 하나님과의 만남과 대화에 집중하지 못했음을 회개했습니다. 이 책의 가르침을 실천한느 첫 걸음으로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시편을 한 편씩 읽고 묵상하고 있습니다. 성경 속에서 간구할 제목을 찾는 일이 즐겁습니다. 또 주기도문 속에 얼마나 놀라운 간구가 함축되어 있는지 다시 묵상하며 이전과는 전혀 새로운 마음으로 주기도문으로 기도를 하고 있기도 합니다. 쉽고 재미있는 책은 아니었지만, 기도에 관해 가장 실질적이고 깊이 있는 답변을 해주는 책입니다. 팀 켈러와 같이 기도생활을 더 옾은 차원으로 끌어올리고 싶은 분들에게 기꺼이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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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를 읽다 - 실감나게 읽는 성경 속 광야 이야기 광야 시리즈
이진희 지음 / 두란노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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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의 생존 법칙 ★ 더 깊은 광야로 들어가 하나님을 만나라



나에게는 그 침묵과 공허가 너무 큽니다. 

나는 보려 해도 볼 수 없고,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으며, 

(기도할 동안) 혀를 움직이려고 해도 말할 수 없습니다.

당신이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시길 원합니다. 

마치 모든 것이 죽은 것처럼 내 안에 너무나 끔찍한 어둠이 있습니다.

테레사 수녀가 한 신부에게 보낸 이 편지의 일부를 몇 번이나 다시 읽었습니다. 성자라고 해서 언제나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산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영적 침체가 찾아올 때마다 나를 더 힘들게 했던 건, 나를 바라보는 믿는 자들의 시선이었습니다. 교회에 오면 더 억지 미소를 짓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하느라 희미하게 남아 있는 진까지 다 빠져버릴 지경이었습니다. 그렇게 광야에 들어설 때마다 첫 증상은 교회를 피하고, 사람을 피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알고 있습니다. 광야는 일생에 단 한 번 지나는 길이 아니며, 광야를 지난다고 부끄러워 하거나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으며, 사막처럼 영혼이 쩍쩍 갈라지는 바로 그때가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 만나야 하는 시간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이 모두가 광야를 지나오며 깨닫게 된 사실들입니다.


그런데 <광야를 읽다>는 광야 속에 이보다 더 깊은 영적 진리가 숨어 있음을 일깨워줍니다. 이 책은 "수년에 걸쳐 세계 곳곳에 있는 광야들을 직접 탐방한 광야 전문자가 성경에 입각하여 14개의 키워드로 풀어낸 광야 이야기"입니다. 한마디로 광야 생존법을 가르쳐주는 책이라고 평하고 싶습니다. 바로 지금 영적 침체나 물리적인 광야 길을 겪고 있는 분들에게는 길을 찾아나가는 가이드가 되어줄 것이고, 광야를 지나온 분들에게는 미처 다 깨닫지 못했던 하나님의 은혜를 일깨워줄 것이며, 무엇보다 하나님을 더 깊이 알기 원하는 분들에게는 광야를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과 직접 만날 수 있는 은혜의 장소가 되어줄 것이라 확신하는 책입니다.





 




 

광야에서는 축복이 아닌 은혜를 구하라



이 책을 광야 생존법이라 이름 붙이고 싶은 것은, 광야에서는 풍성한 삶이 목표가 아니라, 오직 하나 살아남는 것이 목표라는 사실을 확실히 각인시키며, 광야길을 무사히 통과하여 가나안에 들어가는 방법을 아주 실감나게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광야를 지날 때 우리가 구해야 할 것,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생생하게 그려주는데, 광야와 같은 인생길을 걸으며 '성공'이라는 환영을 좇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가 마음 깊이 와닿았습니다. 광야에서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은 축복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라는 이 단순한 교훈이 마음의 헛된 욕망들을 태우고 새로운 목마름을 심어주었습니다. 그동안 생수를 구해야 하는데 황금은 구한 것은 아닌가,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은혜에 감사하지 못하고 곳간을 채워달라고 안달복달한 것은 아닌가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인생은 성공의 사다리를 오르거나 높은 산 정상을 정복하는 싸움이 아니라, 광야 길을 통과하는 것이라는 사실은 지금 나를 이끌고 있는 인생 목표는 물론, 인생 전체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해주었습니다. 




 




낙타는 매일 주인 앞에 와서 무릎을 꿇고 하루를 시작한다



<광야를 읽다>를 통해 배운 생생한 광야 이야기는 성경 진리를 더 깊이 깨닫도록 해줍니다. 이 책을 통해 성경을 읽는 눈이 더욱 확장되었는데, 엘리야가 쉬었던 로뎀나무의 그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풍성한 나무의 그늘이 아니라는 것, 의의 길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올바른 길이 아니고, 양들이 다니는 길을 말한다는 것, 시편 23편의 양들은 알프스 산맥과 같은 푸른 초장이 아니라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광야에 사는 양들이라는 것, 광야에서는 비가 아니라 이슬의 은혜가 필요하다는 것, 베두인들의 단순한 광야의 삶은 항상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 등 새로운 지식을 많이 얻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가슴을 울렸던 광야 이야기는 '낙타'입니다. "낙타는 아침에 주인 앞에 와서 무릎을 꿇고 짐을 실으면 하루 종일 묵묵히 자기에게 주어진 짐을 지고 가다가 해가 떨어지면 주인 앞에 와서 또다시 무릎을 꿇는다"(160)고 합니다. 이 낙타 이야기서 오늘 하루의 삶이, 매일의 삶이, 우리의 신앙여정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새롭게 배웠습니다. 아침이면 주인 앞에 와서 무릎을 꿇고 하루를 시작하는 낙타처럼 그렇게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짐을 지고 그 하루를 묵묵히 살며, 저녁이 되면 다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해보았습니다. 


<광야를 읽다>는 우리의 헛된 욕심들을 모두 내려놓고 겸손히 은혜의 자리로 인도하는 힘이 있습니다. 광야를 지날 때는 커봤자 1미터도 안 되는 로뎀나무 그늘이라도 찾아가야 한다는 것, 그 한조각의 은혜에도 진심으로 감사해야 한다는 것, 광야를 지날 때는 장맛비와 같은 커다른 축복을 기대하기보다 날마다 내려주시는 이슬비 같은 은혜에 만족해야 한다는 진리도 마음에 새겼습니다. 이슬 같은 은혜와 축복만으로도 광야에서는 충분히 버텨낼 수 있다(169)는 사실을 기억하며 이슬 한 방울의 은헤에도 깊이 깊이 감사하는 하나님의 딸이 되고 싶었습니다. 


엄마가 제게 남겨주신 신앙유산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낮추실 때는 납작 엎드려야 한다"는 말씀을 자주하셨습니다. 산은 오르다 힘들면 내려올 수 있지만 광야는 되돌아 나갈 수 없다는 것, 광야를 통과하는 방법은 더 깊숙이 광야로 들어가는 것 뿐이라고 합니다. 전에는 광야 길에 들어서면 어떻게 하면 이 길을 빨리 벗어날 수 있을까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니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면 이 길을 잘 견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광야에서 맛볼 수 있는 은혜를 즐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광야를 견디는 것도 사명을 감당하는 길이라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무엇인가를 견뎌 내며 살아가고 있다. 다 나름대로 힘들게 견디면서 생존한다. 광야와 같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견딤의 은혜다. 견딜 수 있는 힘을 공급받는 것이다. 견뎌 내는 사람만이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다"(192).


이 책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지친 영혼들에게 이슬비와 같이 젖어들며 감사를 다시 찾아주는 책입니다. 책을 잡은 자리에서 단숨에 읽어내려갈 정도로 재밌게 읽은 책입니다. 성경을 더 깊이 알고 싶은 분들, 광야를 지나며 위로와 지혜가 필요한 분들에게 강력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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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 셀프 트래블 - 2015~2016 최신판 셀프 트래블 가이드북 Self Travel Guidebook 16
박정은 지음 / 상상출판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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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준비하는 두근두근 해외여행 ★ 이번엔 프라하다!



시원한 에어컨 아래 앉아서 향긋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혼자서 느긋하게 프라하 거리를 산책 중입니다. 더운 여름 날, 신선놀음이 따로 없습니다. 프라하의 거리 속으로 당장이라도 뛰어들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때를 기다리며 이렇게 책으로 미리 가보는 것도 나름의 즐거움이요, 공부입니다. 제게는 이만한 피서가 또 없을 듯합니다. 


프라하는 유럽 일주를 꿈꾸는 친구들이 코스 안에 꼭 넣는 곳이기도 하면서, 이미 다녀온 친구들 사이에 호불호가 확실히 갈리는 곳이기도 합니다. 기대했던 것만큼 볼 것이 없었다는 친구들도 있고, 가장 유럽다운 분위기였다는 친구들도 있고, 조용해서 심심했다는 친구들도 있고 조용해서 좋았다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프라하는 밤의 도시다!


셀프트래블 시리즈의 장점은 이 한 권만 있으면 일단 자유여행에 필요한 정보는 일단 모두 손에 넣은 셈이라는 안도감이 든다는 것입니다. <프라하 셀프트래블>도 마찬가지입니다. 프라하의 매력은 물론 여행 일정과 코스, 추천 숙소, 꼭 먹어야 할 음식, 쇼핑 명소에서부터 프라하와 체코의 역사, 그리고 깨알 같은 여행 팁까지 프라하를 처음 찾는 자유여행자를 챙기는 세심한 마음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해외 여행은 일단 언제 떠날 것인가 큰 그림을 그려놓고 세부 계획을 짜는 것이 좋은데, <프라하 셀프트래블>을 보니 프라하 여행의 적기는 바로 지금, 6-8월 경이라고 합니다. "평균기온이 16도 정도로 우리나라 여름에 비해 덜 덥고, 강수량이 있는 편이지만 우리나라보다 습도가 낮아 여행하기에 좋다"고 합니다. 가을, 겨울이나 초봄까지는 쌀쌀한 날씨 때문에 아무래도 관광 적기는 아닌 듯합니다. 차가운 겨울에 가면 공산정권이 남긴 우울한 잔해와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엉뚱한 상상을 하기도 했지만요. 


또 하나 프라하 자유여행 일정을 짤 때 꼭 챙겨야 할 여행 팁 중에 하나는 "낮과 저녁의 일정을 생각해두자"는 것입니다. 어쩐 일인지 프라하라고 하면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지는 이국적인 거리 풍경이 머릿속에 많이 그려졌는데, 프라하가 밤의 도시라는 걸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습니다. 프라하에는 낭만적인 밤을 즐길 수 있는 장소들이 여러 곳 있는데, 해지는 풍경이 예술인가 봅니다. 만일 프라하에 가게 된다면 특히 프라하 성에서 바라보는 카를교와 구시가지의 야경을 절대 놓치고 싶지 않더라고요.







 


 

 




프라하에서는 걸어야겠다!



<프라하 셀프트래블>을 통해 미리 가본 프라하는 한마디로 걷고 싶은 길이었습니다. 미로 같은 중세 골목에서는 길을 잃기 쉽고, 또 천문학 시계의 종치는 모습을 보기 위해 몰려든 관광객들로 가장 번잡한 구시청사에서는 소매치기를 조심해야 한다고 하지만, 아름다운 조각상과 중세의 모습을 간직한 카페 등이 즐비한 프라하는 꼭 천천히 걸으며 그 고유한 분위기 속으로 잠겨 들어야 할 것만 같습니다. 특히 관광객들이 많이 몰리는 천문학 시계탑에서 하벨 시장에 이르는 핵심 루트보다는 프란츠 카프카 박물관에서 댄싱 하우스까지 걷는 코스에 마음이 풍덩 빠져들었습니다. 카프카의 <변신>이라는 작품은 내 인생의 책으로 꼽고 있는 작품이라 프란츠 카프카 박물관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프라하는 저에게 꼭 가봐야 할 여행지가 되었습니다. 


<프라하 샐프트래블>은 가이드하는 선생님이 따라다니며 여기서는 이렇게 여행을 하며 이러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라는 조언을 많이 해주는 책입니다. 저처럼 해외여행을 하고 싶지만 경험이 부족하고 또 자유여행에 도전하고 싶지만 두려움이 앞서는 여행자들에게는 이만큼 든든한 가이드북도 없을 듯합니다. 지치고 더운 여름, 불쾌지수 조심해야 하는데 <프라하 셀프트래블>로 미리 가보며 프라하 여행을 꿈꿔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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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 입문
지그문트 프로이트 지음, 우리글발전소 옮김 / 오늘의책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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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인간의 과대망상은 지금의 심리학 연구에 의해 세 번째의 가장 민감한 모욕을 받을 위기에 처했다. 현대 심리학은 자아가 결코 자기 집에서조차 주인이 아니며, 자기의 정신생활 중에서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일에 대해 극히 적은 정보밖에 제공받지 못한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려 하고 있다. 인간의 내부에 대한 성찰을 촉구하는 이 경고는 우리 정신분석가들에 의해 제일 먼저 또 유일하게 제기된 것은 아니지만, 이를 가장 강력하게 주장하고 모든 개인들과 직접 관련된 경험적 재료를 통해 뒷받침한 공은 우리에게 있다. 이것이 온 세상이 우리의 학문에 저항하는 이유이며, 품위 있는 학문적 자세까지 내던지고 모든 공정한 논리를 무시하며 우리에게 반대하는 이유다"(367-368).



지금이야 인간 '무의식'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도 없고 부정하는 사람도 없지만, 처음 프로이드가 무의식의 세계를 강조했을 때 세상에 던져졌던 충격이 어느 정도였을지 가히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에 대한 저항과 비판이 얼마나 격렬했는지 프로이트는 스스로 "온 세상이 우리의 학문에 저항"하고 있다고 표현합니다. 세상이 프로이트의 이론에 이처럼 격렬하게 반대하는 이유는 프로이트의 이론이 세상에 모욕감을 안기기 때문이랍니다. 첫 번째 모욕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며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우주계의 아주 작은 조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이며, 두 번째 모욕은 "인간이 자기 것이라 여겨왔던 창조의 특권이 무너져 내리고, 인간은 단지 동물계에서 진화한 존재이며 그 동물적 본성을 제거하기 어렵다는 것을 지적받았을 때"라고 꼬집습니다. 그러나 가장 민감은 모욕은 "자아가 결코 자기 집에서조차 주인이 아니라"는 심리학의 연구결과입니다. (인간의 무의식을 겨냥한 마케팅 전략들을 살펴보면 실제로 심한 모욕감이 들기도 합니다.) 만물의 영장이요, 이성적 동물이라고 자부했던 인간이 사실은 자기가 의식하지 못하는 무의식 세계에 조정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프로이트의 분석은 무의식의 발견이 지동설이나 진화론이 맞먹는 혁명적 이론임을 스스로 밝힌 셈입니다. 프로이트는 세상과 세계에 완전히 새로운 문을 열어놓은 위대한 불멸의 인물로 남았습니다. 


<정신분석 입문>은 프로이트가 빈 대학에서 진행된 두 번의 강의 내용을 책으로 엮어놓은 것입니다. "정신분석에 대한 지식이 없는, 그리하여 기초적인 입문이 꼭 필요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이기 때문에 심리학 전공자(개인적으로 교류분석 상담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가 아니어도 충분히 소화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펼쳐들었습니다. 프로이트는 실수행위와 꿈, 그리고 노이로제 총론을 다루는 이 강의를 통해 두 가지 테제를 논증하는 일에 전력을 기울이는 듯합니다. 하나는 정신 현상 자체가 무의식이며 의식의 과정은 전체 정신 활동 가운데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성적(性的)이라고 부르는 욕구의 흥분이 노이로제나 정신질환을 일으키는 데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프로이트가 강의를 시작하는 첫머리에 밝혔듯이 세상이 정신분석 이론에 그처럼 반감을 사는 이유가 이 두 가지 주장에 있기 때문에 무엇보다 이를 증명하는 데 힘쓰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또 하나 재밌는 것은, 정신분석 요법은 의사와 환자의 상담, 즉 말을 통해 치료가 이루어집니다. 당시에는 "어떻게 말만 가지고 사람의 병을 고칠 수 있나?" 하는 의문이 많았던가 봅니다. 또 정신분석은 남의 말을 통해서 듣고 배울 수밖에 없는 필연적 불완전함을 가진 학문이라고 프로이트는 털어놓습니다. 이러한 한계와 불완점함에도 불구하고 심리학을 하나의 과학적 학문으로 이끈 프로이트의 힘이 새삼 대단해보입니다. 


그동안 프로이트의 이론에 대해 말하는 책은 많았어도, 프로이트가 직접 말하는 정신분석은 접하기 어려웠습니다. 이 책은 프로이트에게 직접 배우는 정신분석 입문이라는 점에서도 상당히 매력적이지만, 처음부터 전공자를 대상으로 한 강의가 아니기 때문에 전공자나 비전공자 모두에게 정신분석의 기초를 배우기에 더 없이 좋은 교재요, 대중적인 교양서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읽어내기 그리 녹록한 책은 아니지만, 프로이트가 진행하는 강의에 직접 참여하고 있는 기분이 왠지모를 은근한 자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세계적인 석학 중에 시공간을 초월하여 꼭 만나보고 싶은 천재 학자 중에 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생생한 프로이트의 육성을 직접 들어보고 싶은 호기심을 가진 독자라면 이 책의 존재가 무척 반가울 것입니다. 소장하고 싶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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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대 문명의 창조자들 - 10,000년 전 하이테크의 비밀
에리히 폰 데니켄 지음, 김소희 옮김 / 청년정신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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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천 년 전에 외계의 누군가가 이곳 지구에 왔었다!' (외계문명설)



그동안 사이가 좋지 않았던(?) 교회와 진화론자들이 오랫만에(?) 아니 처음으로 한 목소리를 낼 것 같습니다. 이 책은 교화와 진화론자 모두를 경악케 하는 책입니다. 어쩌면 진화론자들이 더 격분하여 "황당무계한 이야기"라고 일축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외계문명설의 고고학적 증거를 밝히고 있는 <초고대 문명의 창조자들>의 주장을 저자의 표현을 그대로 살려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홍수 이전에 외계 우주인들이 우리 행성을 방문했다. 석기시대의 우리 조상들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외계인들을 신이라고 믿었다. 당시 신이라 불린 존재들은 우리의 신화와 전설, 심지어 주요 종교에도 들어와 자리를 차지했다. 외계에서 온 방문객들은 인류에 대해 연구했다. 그들은 여기저기에 베이스 캠프가 필요했을 것이다. 호기심을 가진 인간이나 야생동물을 피해 기술 장비를 보관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그들은 하룻밤 사이에 푸마푼쿠를 지었다. 토착민들의 눈에는 영원의 도시 혹은 신들이 거주하는 곳이었다. 지구를 방문한 외계인들은 민족학 학자처럼 인간들을 연구했다. 그리고 소수는 토착주민들 가운데 일부 뛰어난 사람들에게 천문학을 비롯해 여러 실용적인 기술을 가르쳤을 것이다. 신전, 그러니까 여기 푸마푼쿠의 본질은 외계 기술 장비의 창고(베이스캠프)였다. 또한 토착민들 가운데 보다 앞서가고 호기심이 많은 이들을 가르치던 학교로 쓰였을 것이다. 외계인들은 떠나면서 먼 미래에 다시 돌아오겠다고 약속했다. 이러한 생각은 인간들이 믿는 종교에서 빠지지 않고 나오는 요소다. 외계인들이 떠난 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자연재해가 지구를 덮쳤다"(95-99). 그리고 이 책은 "신들의 귀환에 대처해야 한다"는 말로 끝이 납니다. "기성 주류학계나 기관이 더 이상 우리를 쥐고 흔들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만 인류는 이른바 신들의 귀환에 더 잘 대처할 수 있다"(243).

저자는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 하기 위해서 "선사학, 고고학, 문헌학, 언어학, 인류학, 진화론, 유전과학, 철학, 천문학, 천체물리학, 우주생물학, 우주여행까지도, 그리고 신학"까지 동원합니다. 저자는 외계인들이 초고대에 지구를 방문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반박할 수 없는 증거들"를 내세워 주류학계에 도전장을 내밉니다. 저자가 자신 있게 제시하는 대표적 증거는 볼리비아 고지대의 '푸마푼쿠' 유적지입니다. 푸마푼쿠는 하룻밤 사이에 지어졌다는 전설(!)을 가진 석기시대의 거석문화입니다. 푸마푼쿠가 외계문명설의 결정적인 증거가 되는 이유는, 석기시대 사람들이 돌도끼를 가지고는 도저히 만들어 낼 수 없는 경이로운 기술들 때문입니다. 매끄럽게 작업된 석재 플랫폼들은 돌도끼든 끌이든 간에 석기시대 도구로 제작하는 건 불가능할 정도로 놀라운 기술력을 보여주는데, 가장 오래 전 시기에 만들어진 푸마푼쿠가 이처럼 기술적으로 가장 완벽하다는 것은 기술상의 진화 법칙과 정반대의 진실을 보여줍니다. 


뿐만 아니라, 천상과 지상을 연결하는 수많은 사인들, 고도의 천체물리학적 지식을 요하는 완벽한 달력, 현대과학이 이제 막 문을 연 이종교배의 흔적, 또한 최소한 고대 기록이나 증거물들을 보면 '거인들'이 지구에 존재했었다는 사실 등 석기시대인보다는 훨씬 진보한 존재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명백한 유물들, 이집트 문명 이전에 분명히 존재했으나 어떤 이유에서인지(대재앙, 또는 홍수에 이해) 사라져버린 고차원 문명의 증거들을 제시합니다. 이 모든 유적(유물)들은 "우리가 당연시 하는 진화론을 완전히 뒤집는 것"(86)입니다. 때문에 저자와 같이 외계문명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주류 학자들로부터 학문적 멸시를 받고 있다고 폭로합니다. "당시 고고학계의 표준적인 관행은, 진화라는 멋진 이미지를 위협하는 것이라면 그 어떤 것이라도 억누르도 조작하고 속이고 날조했다. 고고학계는 진화론적 관점에 들어맞지 않으면 지질학적 사실들조차 깨끗이 무시했다"(82).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명백한 것은 푸마푼쿠에 사용된 기술은 석기시대 인류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당연히 던져야 할 질문은 이것입니다. "어떻게 이 모든 게 가능했을까?" 저자는 이것이 해석의 문제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사고력은 정확한 과학이 내놓은 결과들에게서만 일방적으로 영향을 받는 게 아니다. 즉 인문학을 비롯한 해석이 필요한 학문들은 우리의 사고방식에 영향을 받는다. 종교가 이러한 범주에 들어간다. 철학, 민족한, 고고학도 마찬가지도. 무슨 소리인가? 고고학은 단지 증명된 발견들만 인용하는 종합학문이 아닌가? 물론 그렇다. 하지만 발견들을 해석해야 하지 않겠는가. 즉 여전히 해석의 대상이다. 그리고 해석은 이성이나 시대정신에 따라 달라진다. 그리고 물론 역사적 기록에도 의지한다"(130). 


저자는 이러한 유적(유물)의 증거 앞에 인류가 쌓아온 지식과 이론체계가 무너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 일어날 수 있다는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역설합니다. 존경받는 과학철학자 폴 파이어아벤트는 "1975년, '무엇이든 일어날 수 있다'는 접근법을 발표했다. 다시 말해, 뭐든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에 대한 과학계의 반응은 두려움이었다. 뭐든 일어날 수 있다거나 뭐든 가능하다는 것은, 부단히 진실을 정립해온 과학 과정에 대한 오랜 믿음과 모순되는 얘기이기 때문이다"(137).



<초고대 문명의 창조자들>은 황당하기도 하지만 대단히 흥미로운 책입니다. 외계인이 지구를 다녀갔다는 저자의 해석에 동조하지는 않더라고도, 푸마푼쿠처럼 현존하는 과학적 지식이나 이론으로는 (아직) 풀 수 없는 초고대 유적(유물)들에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게 진실이 아닐 수 있다는 두려움을 내던지고 말입니다. 신학자든, 고고학자든, 진화론자든, 천체물리학자든, 우주생물학자든, 어떤 분야에 있든 저자와는 또다른 입장에서 "어떻게 이 모든 게 가능했을까?"를 생각해보는 것도 무척 흥미로운 도전이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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