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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느 별에서
정호승 지음 / 열림원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하루살이는 하루만 살 수 있는데 불행히도 하루 종일 비가 올 때도 있다고 합니다.
그래도 그들은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를 열심히 살아간다고 합니다.
-작가의 말, 7
하루 종일 비가 오는 날이면, 하루살이 생각이 날 것 같습니다.
그러면 가만히 귀 기울여보겠습니다.
빗소리 틈으로 하루살이의 힘찬 날갯짓 소리가 들려올지도 모르니까요.
그러면 나도 그 하루를 열심히 살아낼 하루살이를 마음을 다해 응원하겠습니다.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고 나를 응원했던 하루살이처럼 말입니다.
<우리가 어느 별에서>는 정호승 시인의 산문집입니다.
시인은 익숙함 속에서 무심코 지나쳐버렸던, 우리가 놓쳐버렸던 삶의 교훈들을 되돌려주며,
지친 마음 잠시 쉬어 가라고,
바쁜 걸음 잠시 머물다 가라고,
다독다독 다독입니다.
곰곰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나의 불행이 남을 위로하는 일보다
남의 불행이 나를 위로하는 일이 더 많았다.
불행한 이들에게 많은 빚을 지면서 오늘을 살고 있는 셈이다.
- 아래를 먼저 보세요, 37
정호승 시인의 글은 읽을 때마다 언제나 "책이 주는 위안이 이런 것이구나" 느끼게 해줍니다.
미처 감사하지 못했던 것들, 알면서도 사랑하지 못했던 것들 하나씩 가슴에 새겨질 때마다
놓쳤던 감사, 잊어던 사랑이 다시 깨어납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다른 사람의 행복한 기억 속에서보다
누군가 눈물짓고, 슬퍼하고, 아파했던 고통스러운 삶의 기억 속에서 더 큰 위안을 얻는 듯합니다.
쉴 새 없이 올라오는 SNS의 글들보다 책 속에서 더 큰 위안을 얻는 건,
아마도 그 때문이 아닐까요.
SNS의 글들은 행복한 찰라의 기록일 뿐이지만,
책은 그 찰라의 기록을 통해서도 삶 전체를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 되어주니까요.
나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왜 이렇게 외로운지 모르겠다.
봄에 꽃이 피는 것을 봐도 외롭고, 꽃이 지는 것을 봐도 외롭다.
서울역을 떠도는 노숙자들의 술 취한 모습을 봐도 외롭고,
잠실 롯데백화점 입구 분수대 계단에 앉아 하염없이 사람 구경을 하고 있는
노인들을 봐도 외롭다.
우리는 사랑하지 않을 때 외롭다.
- 우리는 언제 외로운가, 192-195
내가 읽는 책이 아니라,
내 마음을 읽어주는 책이 좋은 책이라는 정의를 참 좋아합니다.
책을 읽고 있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면,
바로 그 책이 내 마음을 읽어주는 책이랍니다.
내 마음을 읽어주는 책, 몇 권이나 가지고 계신가요?
별다를 것도 없는 일상인데 유난히 외로워지는 날이 있습니다.
딱히 보고픈 사람도 없는데 괜실히 그리움이 차오르는 날이 있습니다.
익숙한 고통이지만 누구에게라도 위로받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이유도 없이 울고 싶어지는 날이 있습니다.
시를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문득 가난한 내 가슴에 아름다운 시 한 편 채우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느 별>에서는 그런 날 추천해주고 싶은 책입니다.
거창한 철학, 대단한 이론, 굉장한 에피소드가 들어 있는 책은 아니지만
소박해서 더 다정하게 다가오는 글들입니다.
우리가 어느 별에서
- 정호승
우리가 어느 별에서 만났기에
이토록 서로 그리워하느냐
우리가 어느 별에서 그리워하였기에
이토록 서로 사랑하고 있느냐
사랑이 가난한 사람들이
등불을 들고 거리에 나가
풀은 시들고 꽃은 지는데
우리가 어느 별에서 헤어졌기에
이토록 서로 별빛마다 빛나느냐
우리가 어느 별에서 잠들었기에
이토록 새벽을 흔들어 깨우느냐
해 뜨기 전에
가장 추워하는 그대를 위하여
저문 바닷가에 홀로
사람의 모닥불을 피우는 그대를 위하여
나는 오늘밤 어느 별에서
떠나기 위하여 머물고 있느냐
어느 별의 새벽길을 걷기 위하여
마음이 칼날 아래 떨고 있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