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은 왜 교회를 떠나는가
데이비드 키네먼 지음, 이선숙 옮김 / 국제제자훈련원(DMI.디엠출판유통)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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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 안에 청년들의 이탈이 심각하다! 


2012년 통계조사에 따르면, 2030세대는 전체 인구 중 약 30%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인구 비율로 따지면 교회 안에서도 청년의 비중이 20-30%는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2011년 국민일보 보도에 따르면, 한국 교회에서 청년 비중은 겨우 5% 정도라고 합니다. 2013년 조사는 더 비참합니다. 고교 졸업생 10명 중 8-9명은 교회를 떠난다고 합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초토화"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대학가에 기독청년이 없다고 합니다. 기독 서클도 설 자리를 잃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교회 밖에서도 기독 청년들이 안 보입니다. 청년들의 교회 이탈은 오랜 시간에 걸쳐 진행된 일인데도 교회가 막아내지 못한 것을 보면 '속수무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합니다. "무슨 이유로, 영적으로 가장 적극적이여 할 수많은 젊은이들이 성인이 되면서 믿음 혹은 교회와의 관계를 버리는 것일까요?"



청년들은 왜 교회를 떠나는가?


수많은 청년들이 10대를 벗어나면서 교회를 이탈하는 현상은 우리나라만의 현실은 아닌가 봅니다. <청년들은 왜 교회를 떠나는가>는 미국의 유명한 기독교 리서치 그룹이 "18세부터 29세까지의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그들이 경험한 교회와 믿음에 대해, 왜 교회를 떠나게 되는지, 기독교와 그들 사이에 남아 있는 연결 고리는 무엇인지를 묻고 분석한 결과물입니다(23-24). 이 프로젝트를 위해서만 5천 건에 달하는 인터뷰를 진행했다고 하는데, 이 책은 교회를 떠난 젊은이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직접 들려줍니다. 동시에 이러한 작업은 "급변하는 문화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을 따르고, 젊은 세다들이 예수님을 신실히 따르도록 도울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이 책이 던져주는 많은 메시지 중에 가장 큰 울림과 뼈아픈 통찰을 제시해준 것은 "많은 젊은이들이 '세상에 있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는' 긴장 가운데, 격려와 칭찬이 아닌 비판받고 거부당하는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12)는 한 문장이었습니다. 교회를 떠나는 이유도 가지각색이고 교회를 충실히 다니는 이유도 다양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교회가 "세상에 있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하는 다음 세대의 긴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역동보다는 율법적인 옳고 그름만을 강조하며, 그들이 품는 신앙적 의심에 귀를 기울여주고 답을 찾아주기보다 무조건 금기시하는 태도로 일관하지 않았나 반성해봅니다.


청년들은 왜 교회를 떠나는가에 대한 물음에 대해 이 책이 찾아낸 이유는 여섯 가지입니다. 세상으로부터의 과잉보호, 깊이 없는 믿음, 신앙과 과학의 대립, 성에 대한 태도, 배타적인 문화, 가로막힌 질문이 그것입니다. 보통 교회 안에서 청년부가 부흥하지 못하고, 청년들이 교회에 정착하지 못하는 문제를 토론할 때 가장 지배적인 생각 중 하나가 문화의 영향력이 강력하다는 것입니다. 역으로 생각하면 교회가 그만큼 시대에 뒤떨어진 곳이 되어 문화의 영향력 앞에 맥을 못추고 있다는 말도 될 것입니다. "상투적인 말들, 제멋대로인 성경 해석, 틀에 박힌 외침"이 난무하는 교회 안에서 지루함을 느끼는 청년들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얼마나 능력 있는 삶인지 경험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청년들은 왜 교회를 떠나는가?>, 이 책은 한국 교회 안에도 시사점을 던져주는 책입니다. 모든 교회가 읽어야 할 책이며, 또 청년 사역을 담당하고 있는 사역자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입니다. 함께 읽고 함께 고민하며 돌파구를 찾지 않으면 우리는 다음 세대에 신앙을 전수하지 못한 무서운 책임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입니다. 사사기를 읽어보면, 신앙전수에 실패했다는 것은 지금 우리의 신앙이 본질을 잃고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는 어쩌면 교회가 세상과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 아니라, 세상을 닮아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다른 곳에서는 얻을 수 없는 것, 교회 안에 반드시 있어야 할 것, 교회만이 줄 수 있는 것을 교회가 주지 못하기 때문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에게 정말 심각한 문제는 교회를 떠난 청년들의 신앙이 아니라, 교회를 이끌고 있는 우리의 신앙을 점검하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이 책이 던져주는 최종 메시지는 결국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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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설레는 집 도감 - 라이프스타일을 담은 공간 배치 아이디어 123 집도감 마음이 설레는 집 도감 시리즈 1
X-Knowledge 지음, 박지석 옮김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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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즐거운 나의 집을 디자인하다"



드라마 <겨울연가>에서 함께 리조트 리모델링을 진행하던 민형(준상)은 유진에게 "결혼하면 어떤 집에서 살고 싶냐?"고 묻습니다. 유진은 민형에게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좋은 집은 서로의 마음이다"고 대답합니다. 또 드라마 <신사의 품격>에서 건축가인 김도진은 사랑하는 서이수에게 "살고 싶은 집을 들으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어떤 집에서 살고 싶냐?"고 묻습니다. 서이수는 "아무도 안 떠나는 집"이라고 대답합니다. 후일, 김도진은 서이수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나중에 집을 지어주겠다"고 약속합니다. 크고 넓고 볕도 잘 들어오고. 아무도 안 떠나는 그런 집"을 말입니다.


우리는 왜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함께 살 집을 그려보곤 하는 걸까요? 아마도 집은 함께 사랑을 표현하고, 가꾸고, 완성시키는 그런 공간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제 친구는 결혼날짜를 잡고 결혼식을 올리는 날까지 매일 밤마다 미리 계약해두었던 신혼집을 찾았다고 합니다. 아파트 앞에 차를 세워두고 신혼집을 바라보며 함께할 미래를 설계했던 그때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라고 고백합니다. <마음이 설레는 집도감>이라는 책 제목처럼, 친구는 두근두근 설레이는 행복한 꿈을 꾼 것입니다. 


<마음이 설레이는 집도감>은 나의 집을 디자인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꿈과 설레임을 가장 잘 이해하는 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두근두근 즐거운 나의 집을 디자인"하려는 사람들에게 이런 조언을 해주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집을 지을 때 공간 배치 계획은 그 공간에서 살아갈 가족의 라이프스타일을 잘 반영하는 일이다. 가족과의 소통을 이끌고, 쉼이 있는 공간으로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사람과 생활을 중심에 두고 설계를 해야 한다. 따라서 설계에 앞서 건축주가 가장 먼저 할 일은 가족의 생활 방식을 천천히 들여다보고 그에 맞게 공간을 구분해 보는 것이다"(뒷날개 中에서).


한 번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님과 한 오백년 살고 싶은 꿈"을 꾸어봤을 텐데요, <마음이 설레는 집도감>은 그런 꿈을 실행에 옮기려는 사람들을 위한 책입니다. 





 

 



"라이프스타일을 담은 공간 배치 아이디어 123"



<마음이 설레이는 집도감>은 123가지 공간 배치 아이디어를 총 11가지의 카테고리로 나누어 정리했습니다.


1장  조망 좋은 방을 갖고 싶다

2장  실외와 실내를 잇고 싶다

3장  자연 가까이 살고 싶다

4장  목재가 어우러진 집에 살고 싶다

5장  공간을 넓게 쓰고 싶다

6장  깔끔하게 수납하고 싶다

7장  주방을 중심에 두고 생활하고 싶다

8장  여러 세대가 함께 살고 싶다

9장  한 집에 오래 살고 싶다

10장  자연친화적으로 살고 싶다

11장  적절한 비용으로 괜찮은 집에 살고 싶다. 

전문가도 아니고, 전공자도 아니고, 당장 필요한 책도 아니지만, 제가 집도감이나 인테리어 책자에 관심이 많은 것은 작은 아이디어의 차이가 생활의 질을 결정한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공간이라도 한 두가지 아이디어로 정말 멋드러진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을 보면 마법처럼 신기하기만 합니다. 그리고 그 마법에 놀라는 일이 즐겁습니다.


<마음이 설레는 집도감>을 보며 가장 관심이 갔던 주제는 "5장, 공간을 넓게 쓰고 싶다", "6장, 깔끔하게 수납하고 싶다"와 "11장, 적절한 비용으로 괜찮은 집에 살고 싶다"였습니다. 당장 절실한 아이디어가 현재의 공간을 넓고 깔끔하게 활용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설레는 집도감>은 주제에 맞게 설계되고 지어진 실제 집을 모델로 힌트를 얻도록 만들어진 책입니다. 일본의 인기 건축가들의 지은 집답게 아기자기하면서도 아이디어가 돋보는 공간들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건, 수록된 사진들이 사이즈도 작고 한 장 뿐이여서 멋진 아이디어가 주는 감동이 확 와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공간 배치 포인트'를 잡아낸 이 책 자체가 일본 건축가들을 닮았다는 생각도 듭니다. 


<마음이 설레는 집도감>을 보면서 아이디어가 생활환경을 바꾸기도 하지만, 생활환경이 아이디어를 창출해낼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은 공간을 활용하는 습관이 몸에 벤 일본인들이기에 이런 아이디어도 가능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마음이 설레는 집도감은 인테리어보다는 리모델링이나 직접 집을 설계하고 지으려는 계획을 가진 사람들이 보면 좋을 책입니다. 톡톡 튀는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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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비비어의 결혼
존 비비어 지음, 유정희 옮김 / 두란노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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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천국에서 존(남편)과 함께 살지 않아도 된다고 약속만 하신다면 이 결혼생활을 계속 하겠습니다'(94).



남편에게 이보다 더 철저히 절망할 수 있을까요. 행복하려고 한 결혼인데 그 자체가 견딜 수 없는 고통일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존 비비어 목사의 아내이자, 이 책의 공동저자인 리사 사모는 자신들도 결혼생활을 끝장내고 싶을 때가 있었다고 털어놓습니다. 이 책을 집필하며 얼마나 큰 용기를 내었는지 존과 리사 부부는 결혼생활을 위협했던 자신들의 은밀한 죄까지도 숨김 없이 털어놓았습니다. 그래야만 결혼생활의 적나라한 실체와, 또 어떻게 해야 결혼생활의 위기와 고통을 극복하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특별한 연합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지를 가감없이 보여줄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모두에게 존경받는 위치에 있고, 또 그런 위치에 있어야 할 목사 부부가  부부 사이의 문제를, 특히나 자신들의 은밀한 죄의 문제를 이처럼 만천하에 드러냈다는 것은 정말 특별한 결단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 가정에 임한 회복의 은혜를 모두와 나누고자 하는 열망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으리라 봅니다. 이 책을 통해 역사하실 하나님의 회복의 은혜가 더 기대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안타깝게도 너무나 많은 결혼이 실패하는 이유는 비현실적인 기대와 비전의 결핍 때문이다"(105).
 


결혼에 대한 비유가 재밌습니다. 결혼은 해변으로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 산꼭대기에 오르는 등산에 더 가깝다고 합니다. "실제로 에베레스트 등반가들의 사망률보다 이혼율이 약 25배는 더 높다"는 통계가 흥미롭습니다. 결혼생활은 에베레스트 등반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행복하려고 하는 결혼인데, 사랑해서 만난 두 사람인데 함께 사는 일이 이처럼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책에서 지적하는 한 가지 원인은, 결혼이 "각 배우자의 결점들을 부각시켜"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123). 완벽한 배우자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결혼생활을 시작하지만, 곧 서로의 모든 결함들을 점점 더 알아가는 것이 결혼생활이며, 서로를 변화시키려고 애쓰기 시작하면서 결혼은 고집 센 두 사람의 전쟁터가 된다는 것입니다(124).


그런데 이 보다 더 문제는, 많은 부부가 사나운 풍랑에 가정이라는 배가 흔들리면 금방 배에서 내리고 만다는 것입니다(24). 존 비비어 목사는 "너무도 많은 결혼이 실패하는 이유는 비현실적인 기대와 비전의 결핍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결혼의 목적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배우자에 대한 환상이 깨질 때, 불행하기만 한 결혼생활을 더 지탱하고 이어갈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비전 없는 결혼은 인생의 무덤이다"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비전 없는 결혼은 처음부터 실망과 역경을 극복해낼 동력 없이 출발하는 여행과 같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결혼생활을 지탱하는 것이 아니라 결혼생활이 사랑을 지탱하고 있다"(317). 



기혼자나 미혼자나 결혼 앞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일 것입니다. "우리는 왜 결혼을 하며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72) <존 비비어의 결혼>은 '결혼'은 바로 하나님의 작품이며, 하나님은 분명한 목적과 계획을 가지고 결혼을 만드셨음을 가르쳐줍니다. 결혼에 담긴 이 비밀과 신비를 분명히 깨달을 때, 우리는 사나운 풍랑 가운데서도 결혼을 지켜가야 할 당위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존 비비어의 결혼>은 결혼이란 이처럼 위대한 하나님의 작품이니 우리는 무조건 결혼을 존귀하게 여겨야 하며, 비전과 목적이 분명하다면 누구나 결혼을 아름답게 가꿔갈 수 있다고 핑크빛 약속을 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비현실 기대와 두려움, 과거의 상처와 죄의 문제, 가정폭력, 자*와 음란물 중독 등의 문제와 맞닥뜨리며 결혼을 지키기 위해 처절히 몸부림쳤던 자신들의 고통과 지난했던 과정을 솔직하게 털어놓습니다.


가장 감동적이었던 부분은 리사가 존을 용서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우리는 문제가 있는 배우자를 변화시키기 원하며, 가정을 위협하는 배우자의 '문제'가 무엇인지 하나님께 고하며 씨름하는데, 하나님의 관심은 오로지 "나"였다는 리사의 고백에 눈물이 났습니다. "마침내 내가 깨어졌다. 하나님이 내 마음속에서 그의 뜻대로 행하시기 시작했다. (...) 내가 존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았다. 오직 하나님만이 존을 변화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하나님이 나를 변화시키게 할 수 있었다"(130). 그리고 "나중에야 남편을 미워하는 것이 오히려 남편의 변화를 방해한다는 걸 알게 됐다"(138)고 고백합니다.





 

 

 


 



결혼은,

너희가 아닌 하나님의 작품이다.

그 세부사항 하나하나에까지

그분의 영이 깃들어 있다

(말 2:15, 메시지성경)



<존 비비어의 결혼>을 읽으며 회개와 소망을 동시에 품었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결혼을 귀하게 여기지 못하고, 저런 게 결혼이라면 난 결혼하지 않을 거라고 결혼을 가볍게 여겼던 오만함과, 저런 가정도 결혼생활을 지속할 이유가 있을까 의구심을 품었던 오만함과, 저 가정의 최선은 '이혼'이 아닐까  멋대로 판단했던 오만함을 회개했습니다. 동시에 결혼에 담긴 하나님의 신비와 계획을 묵상하며 결혼을 꿈꾸어 보기도 했습니다. 여성을 억압하는 가부장제에 분노하며 그런 결혼을 기피하는 성향도 있었는데, 결혼이라는 모험에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 즉 결혼을 통해 하나님의 섬김과 신앙전수에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도 생겼습니다. 스스로 생각해도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존 비비어의 결혼>은 (예비) 부부가 함께 읽으면 좋을 책입니다. 각 장마다 행복한 결혼을 위한 묵상과 행복한 결혼을 위한 토론 질문이 제시되어 있는데, 예비 부부를 위한 결혼학교 교재로 사용해도 좋고, 부부모임 안에서 나눔 교재로 활용해도 훌륭할 것 같습니다. 위기를 겪고 있는 부부에게는 위기를 극복할 돌파구가 되어주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부부가 함께 읽고 나누면 가장 좋겠지만, 그것이 어렵다면 이 책을 통해 홀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시간을 가져도 좋을 듯합니다. 특히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부부 문제로 고통하고 있다면, 꼭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모든 가정이 교전지역이 아니라, 특별한 연합의 장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 책이 새로운 시작과 도전이 되어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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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놀라다 - 믿고 싶은 대로 믿던 불신앙을 끝내다
마이크 어 지음, 홍종락 옮김 / 두란노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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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하나님께 놀라 본 적이 언제인가?"



이 책이 하나님의 자녀에게 던지는 도전적인 질문입니다. 도전적이라 함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기독교인들이 하나님께 쉽사리 지루함을 느끼며, '기독교'의 이름으로 예수님 길들이기를 자행하고 있음을 이 책이 폭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자라면 자랄수록, 예수님과 동행한 기간이 길면 길수록, 그분은 더 커지셔야 한다. 하지만 대개 사정은 정반대다. 나를 포함해서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은 교리, 전통, 제도, 정책 등으로 그분을 수축포장하는 것에 만족한다. 그리하여 시간이 갈수록 그분은 더 커지고 신비로워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작아지신다. 하나님 때문에 깜짝 놀라는 일은 줄어들고 그분에게 쉽사리 지루함을 느낀다. (…) 아이러니하게도, 예수님을 길들이는 일은 대부분 그분의 거룩함과 위험을 보호해야 할 사람들이 '기독교'라는 이름으로 자행한다"(13).


하나님과 동행할수록 그분이 더 커지고 신비로워지고 있습니까? 혹시 오래된 연인처럼 예배가 지루해지고 하나님이 뻔해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이 책을 읽어봐야 합니다. 그런데 저는 누구보다 목회자들이 먼저 이 책을 읽기 원합니다. 특히 교회부흥을 목표로 목회 일선에서 분투하고 있거나, 반대로 영적 침체에 빠져 있으면서도 사실을 숨긴 채 홀로 죄책감(수치심)과 싸우고 있는 목회자가 있다면 반드시 이 책을 읽으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이 책 안에 문제의 원인과 해답이 모두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기독교가 어떻게 '실재적이고 필수적이며 성경적인 믿음'의 대체물이 되었는지를 다룬다"(14).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는데 하나님과 동행할수록 그분이 더 커지고 신비로워지기는커녕 더 작아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자가 첫째로 지적하고 있는 원인은 "소비자 복음에 물든 기독교'입니다. 현대 교회는 마치 상품을 판매하듯이 구매자들의 입맛에 맞춘 복음을 팔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성취감을 약속하는 다른 모든 상품이 그렇듯, 예수님도 성취감과 만족을 선사할 또 다른 상품으로 제시된다"(23). "소비자 복음"이란 예수가 구매자의 욕구를 채우는 하나의 상품이 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하나님께 놀라다>는 날카로운 성경적 통찰을 통해 하나님께서 정확히 '정반대의 일'을 하고 계심을 밝히 보여줍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의 욕구를 채워주기 위해 존재하는 하나의 상품이 아니라, 정반대로 우리의 삶에 "의도적으로" 역설, 욕구불만, 갈망, 공허감, 이별, 고독, 어려움, 허무감, 상실, 슬픔을 가져다 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생의 상처와 괴로움을 없애주는 분이 아니라, 오히려 툭하면 어려움, 긴장, 불확실성을 가져다 주는 분이십니다! 왜 하나님은 이런 일들을 행하십니까? 종교라는 틀안에서 우리에게 길들여지기를 원치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달리 말해,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싶은 모든 공식을 깨뜨리시고, 그분의 방식대로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만을 신뢰하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많은 이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이해하게 하고 우리의 안전을 보장해줄 신학적 공식과 하나님과의 계약을 믿는 것에 만족한다. 예수님은 그 모든 공식을 깨뜨리시고 우리가 아바라 부르는 하나님을 신뢰하라고 촉구하신다'(72).





 




"우리의 예배를 타오르게 만드는 연료는 바로 신비다"(139).



이 책이 보여주는 날카로운 통찰 중에 가장 심각하게 와닿았던 것 중 하나는, 성(聖)과 속(俗)을 구분하는 사고방식의 위험성입니다. 저자는 이러한 사고 방식이 교회 안으로 깊숙이 침투해 있는데 이것은 대단히 치명적인 현대 문화라고 일갈합니다. 성과 속의 구분은 "특정한 장소와 시간으로 하나님을 보내 버리고, 나머지 시간에는 실용적인 무신론자"로 살아가게 만들기 때문입니다(78-80).


<하나님께 놀라다>는 이처럼 현대 교회가 직면한 문제와 위험이 무엇인지 보여주며, 그 대안을 제시합니다. 대안은 단순합니다.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다시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 헤아릴 수 없는' 분임을 인정하며, 그분의 움직임에 놀랄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나의 나약함을 극복하기 위해 애쓰는 것이 아니라, 그 약함을 통해 일하실 하나님을 기대하며 '예수 말고는 답이 없다'는 절실함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신학적 공식 안에서 '믿고 싶은 대로 믿던' 불신앙을 끝내는 것입니다. 

 

"나는 예수님 앞에 엎드려 간청하고, 그분을 향해 더 크게 소리치고, 예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려고 지붕을 뚫는 사람이 되고 싶다"(162).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에 매일 놀라게 되기를!"(271)



<하나님께 놀라다>를 읽으며 매서운 회초리를 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게 아프기도 했지만,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위로를 맛보기도 했습니다. 가장 큰 위로를 받았던 한 문장은 이것이었습니다. "오랫동안 메마름의 시기를 겪으면서 엄청난 죄책감과 수치심, 당혹감에 시달린 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 어려움이 그리스도인의 건강한 삶에 정상적인 부분이며, 꼭 필요한 부분이라는 것을 그들이 깨닫게 되기를 기도한다"(61). 이 기도 안에 담긴 진심이 나를 울렸습니다.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아 괜찮음을 가장했던 저의 가면이 벗겨져 나가는 듯했습니다. 바로 지금 저는 영적 메마름의 시기를 지나는 중입니다. 그런데 이제 비로소 "영적 메마름의 시기는 우리를 이끌어 하나님 나라로 더 깊숙이 들어가게 해주는 하나님의 선물"(57)임을 자신있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적 메마름의 시기가 시작되고 이 책에 이르기까지 저에게 '복음(믿음)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놀라다>는 예수님을 가두는 종교적 틀을 깨부수는 책입니다. 그리하여 "지금 이곳에 임재하시고 활동하시고 개입하시고 실재하시는 하나님"을 다시 바라보게 하며, 모험과 기대로 가득한 '오늘'을 꿈꾸게 만들어줍니다. 이 과정은 우리가 부정하고 터부시 했던 것들을 성경적 시각으로 다시 바라보는 훈련이기도 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탄식의 기술"(237)입니다. "탄식하는 시는 우리 문화가 억누르고 부인하길 원하는 현실에 새로운 음성을 들려준다"(248).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러한 훈련이 필요한 이유는, "아름다움, 강함, 약함을 재정의하여 세상에 해방을 가져다줘야" 할 사명이 예수님의 교회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놀라다>는 바알신앙에 물든 혼합종교처럼, 현대 문화에 젖어 능력을 잃어버린 현대 교회를 다시 일으켜 세워주는 책입니다. 마이크 어 목사님은 예수님의 교회가 싸워야 할 싸움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제시합니다. "주류 문화가 '불구'라고 여기는 이들을 교회가 귀하게 여기고 대접하고 사랑함으로써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그분의 백성 가운데 엄연히 살아 계심을 증언해야 한다. (...) 교회는 눈에 보이는 이미지가 전부가 아니라는 해방의 진리를 세상에 선포하고 구현해야 한다. 약함이 환영받고, 사람들이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받는 예언자적 저항문화의 장이 되어야 한다"(269).


<하나님께 놀라다>는 앞서도 말했지만, 매서운 회초리처럼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책입니다. 하나님께 동행하는 감격을 잃어버린 채, 하나님을 '기독교' 안에 가두어버렸던 우리의 어리석음과 무지를 회개하게 해줍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의 가슴을 다시 뛰게 하는 책이기도 합니다. 이제 하나님께 놀랄 준비가 되었으니까! 


"하나님이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에 끊임없이 놀라고 감탄하게 되기를!"(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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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문학 여행 - 이탈리아를 거닐며 르네상스 천재들의 사유를 배우다 아트인문학 여행
김태진.백승휴 지음 / 오아시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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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인문학, 여행,

이 셋을 나란히 놓고 보면 공통점이 있다.

그건 우리를 성장시켜 현실을 '낯설게 보도록' 해준다는 것이다.


낯설게 볼 수 있을 때 우리는 익숙한 것들 속에 숨어 있던 새로움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제야 비로소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볼 수 있게 된다.

당장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가장 중요한 것, 말하자면 본질 같은 것.

이것이 바로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창조성의 핵심이기도 하다.


(프롤로그 中에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적인 여행이 시작된다!



평소 책을 즐겨 읽지 않지만, 독서에 취미를 가져보고 싶다는 친구가 있으면 가장 먼저 추천해주고 싶은 책입니다. 읽는 재미, 보는 재미, 꿈꾸는 재미까지 일타삼피를 노릴 수 있는 책입니다. 게다가, 여행 사진을 예술적으로 찍는 법까지 덤으로 배울 수 있는 굉장히 독특하고 흥미롭고 아름다운 책입니다.


<아트인문학 여행>은 "시대를 달리하여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네 도시를 방문하고 그 시대를 대표하는 다섯 명의 위대한 예술가를 찾아떠난 여행"입니다. 김태진 교수의 아트인문학 강연은 '열풍'이라 할만큼 이미 유명합니다. 덕분에 김태진 교수는 "귀에 착착 감기는 이야기꾼"이라 하여 "꿀구라"라는 애칭도 얻었습니다. 그가 아트인문학이라는 전혀 새로운 여행을 제안하는 이유는, 한마디로 "낯설게 보기"에 있습니다. 낯설게 볼 수 있을 때 우리는 익숙한 것들 속에 숨어 있던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으며, 그것이 바로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창조성의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그가 아트인문학 여행을 이끌며 르네상스의 본고장을 찾아 떠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역사를 통틀어 창조력이 용솟음쳤던 시대", "약소국이 만들어낸 창조와 혁신의 한판 뒤집기"의 현장으로 독자를 인도하기 위함입니다(5).


<아트인문학 여행>은 피렌체에서 시작된 작은 변화가 어떻게 "이탈리아 전역을 창조의 열기로 가득 채우고, 곧이어 주변의 다른 나라들로 빠른 속도로 펴져나가 세상을 완전히 뒤집어 엎는 문화 예술의 일대 혁명"이 될 수 있었는지를 탐구하며 "불가능한 것들은 어떻게 가능해지는가?"를 묻습니다. "이탈리아를 거닐며 르네상스 천재들의 사유를 배우며" <아트인문학 여행>이 찾아낸 창조성의 핵심 키워드는 다섯 가지입니다. 도전, 과감한 투자, 몰입, 헌신, 개방이 그것입니다. 그리고 여행을 마치며 "일어날 법한 일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그것을 '기적'이라 부른다"고 결론을 짓습니다. <아트인문학 여행>은 르네상스라는 기적을 만들어낸 원동력을 피와 땀을 흘리며 분투한 개인들의 힘에서 찾고 있습니다. 그들이 보여준 삶의 '태도'가 르네상스 부흥이라는 기적을 일구어냈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종교에 지배당하지 않겠다는 예술가의 선언!"



그런 의미에서 르네상스의 시발점이 된 "마사초"의 이야기가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마사초는 원근법을 회화에 적용한 르네상스 회화의 창시자라고 하는데,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가 그린 <새 개종자들에게 세례를 주는 베드로>라는 그림이 재밌습니다. 파란 내복에 노란 외투를 두른 베드로가 물로 세례를 주는 장면인데, 저자는 "뒷편에 팔짱을 끼고 있는 사내의 반응이 심히 노골적"임을 읽어냅니다(50). 화가는 추운 겨울에 세례를 받는 사람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것인데, "이 그림은 수도사들로부터 불경하다는 지적을 들었다"고 합니다. "세례가 주어지는 엄숙한 순간을 어떻게 이렇게 그릴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이 그림이 시대적으로나 회화적으로 의미심장한 이유는 "더 이상 종교에 지배당하지 않겠다는 예술가의 선언이 담긴 것"(60)이기 때문입니다. "그저 자연스럽게 인간다움을 표현하고 싶었을 뿐"인 화가의 그림 한 점이 르네상스의 시발점이 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이후로, 화가들은 종교화 일색이던 중세의 그늘에서 벗어나 이교도의 여신을 누드로 그려내기도 하고, 고대 그리스 조각이 보여주는 이상적인 몸매에 주목하며 고대 신화를 소재로 누드를 비롯해 인체의 아름다움을 그려내기 시작합니다.


<아트인문학 여행>은 "아는 만큼 보인다"는 명제를 증명해보이는 책이기도 합니다. 이에 관해서는 보티첼리의 이야기가 흥미로운데, <비너스의 탄생>으로도 유명한 보티첼리는 "당시 교양인의 기준"을 제시한 인물이기도 하답니다(95). 꿀구라 선생님의 설명을 들어봅시다. "보티첼리는 폴리치아노의 시를 그림에 담곤 했는데 그 시를 듣거나 읽어본 적이 없는 이들은 그림의 내용을 알기 어려웠다. 인문 교양이 있는 사람들은 척 보면 그림이 무슨 뜻인지 알고 미소를 지었는데 반대로 교양이 없는 이들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되었다. (...) 매번 이런 일이 벌어지자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고대 신화를 포함한 인문 교양 공부가 활발하게 되었다고 한다. 말하자면 보티첼리가 '당시 교양인의 기준'을 제시한 셈이었다"(95).


보티첼리의 그림이 당시 교양인의 기준을 제시하고 인문 교양 공부 열풍을 불러일으켰던 것처럼, <아트인문학 여행>은 인문 교양 공부 열풍을 넘어 아트인문학 여행이라는 새로운 열풍을 불러오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아트인문학 여행>은 길이 보이지 않는 시대에 새로운 길을 찾아나선 여행이기도 합니다. 그 길은 과거(역사)라는 문을 통해야 들어갈 수 있는 길이지만, 우리를 어디로 인도해갈지 예측할 수 없는 전혀 새로운 길이기도 합니다. 무리에서 낙오되더라도, 더디 도착하더라도, 새로운 길을 가고자 고집하는 모든 도전자들에게 <아트인문학 여행>은 흥미로운 푯대가 되어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개인의 삶에서든 조직이나 사회의 미래를 위해서든 때론 꼼꼼한 관리자를 내려놓고 지혜로운 바보가 되어보는 건 어떨까"(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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