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하나님께 놀라다 - 믿고 싶은 대로 믿던 불신앙을 끝내다
마이크 어 지음, 홍종락 옮김 / 두란노 / 2015년 4월
평점 :
품절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놀라 본 적이 언제인가?"
이 책이 하나님의 자녀에게 던지는 도전적인 질문입니다. 도전적이라 함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기독교인들이 하나님께 쉽사리 지루함을 느끼며, '기독교'의 이름으로 예수님 길들이기를 자행하고 있음을 이 책이 폭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자라면 자랄수록, 예수님과 동행한 기간이 길면 길수록, 그분은 더 커지셔야 한다. 하지만 대개 사정은 정반대다. 나를 포함해서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은 교리, 전통, 제도, 정책 등으로 그분을 수축포장하는 것에 만족한다. 그리하여 시간이 갈수록 그분은 더 커지고 신비로워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작아지신다. 하나님 때문에 깜짝 놀라는 일은 줄어들고 그분에게 쉽사리 지루함을 느낀다. (…) 아이러니하게도, 예수님을 길들이는 일은 대부분 그분의 거룩함과 위험을 보호해야 할 사람들이 '기독교'라는 이름으로 자행한다"(13).
하나님과 동행할수록 그분이 더 커지고 신비로워지고 있습니까? 혹시 오래된 연인처럼 예배가 지루해지고 하나님이 뻔해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이 책을 읽어봐야 합니다. 그런데 저는 누구보다 목회자들이 먼저 이 책을 읽기 원합니다. 특히 교회부흥을 목표로 목회 일선에서 분투하고 있거나, 반대로 영적 침체에 빠져 있으면서도 사실을 숨긴 채 홀로 죄책감(수치심)과 싸우고 있는 목회자가 있다면 반드시 이 책을 읽으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이 책 안에 문제의 원인과 해답이 모두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기독교가 어떻게 '실재적이고 필수적이며 성경적인 믿음'의 대체물이 되었는지를 다룬다"(14).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는데 하나님과 동행할수록 그분이 더 커지고 신비로워지기는커녕 더 작아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자가 첫째로 지적하고 있는 원인은 "소비자 복음에 물든 기독교'입니다. 현대 교회는 마치 상품을 판매하듯이 구매자들의 입맛에 맞춘 복음을 팔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성취감을 약속하는 다른 모든 상품이 그렇듯, 예수님도 성취감과 만족을 선사할 또 다른 상품으로 제시된다"(23). "소비자 복음"이란 예수가 구매자의 욕구를 채우는 하나의 상품이 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하나님께 놀라다>는 날카로운 성경적 통찰을 통해 하나님께서 정확히 '정반대의 일'을 하고 계심을 밝히 보여줍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의 욕구를 채워주기 위해 존재하는 하나의 상품이 아니라, 정반대로 우리의 삶에 "의도적으로" 역설, 욕구불만, 갈망, 공허감, 이별, 고독, 어려움, 허무감, 상실, 슬픔을 가져다 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생의 상처와 괴로움을 없애주는 분이 아니라, 오히려 툭하면 어려움, 긴장, 불확실성을 가져다 주는 분이십니다! 왜 하나님은 이런 일들을 행하십니까? 종교라는 틀안에서 우리에게 길들여지기를 원치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달리 말해,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싶은 모든 공식을 깨뜨리시고, 그분의 방식대로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만을 신뢰하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많은 이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이해하게 하고 우리의 안전을 보장해줄 신학적 공식과 하나님과의 계약을 믿는 것에 만족한다. 예수님은 그 모든 공식을 깨뜨리시고 우리가 아바라 부르는 하나님을 신뢰하라고 촉구하신다'(72).

"우리의 예배를 타오르게 만드는 연료는 바로 신비다"(139).
이 책이 보여주는 날카로운 통찰 중에 가장 심각하게 와닿았던 것 중 하나는, 성(聖)과 속(俗)을 구분하는 사고방식의 위험성입니다. 저자는 이러한 사고 방식이 교회 안으로 깊숙이 침투해 있는데 이것은 대단히 치명적인 현대 문화라고 일갈합니다. 성과 속의 구분은 "특정한 장소와 시간으로 하나님을 보내 버리고, 나머지 시간에는 실용적인 무신론자"로 살아가게 만들기 때문입니다(78-80).
<하나님께 놀라다>는 이처럼 현대 교회가 직면한 문제와 위험이 무엇인지 보여주며, 그 대안을 제시합니다. 대안은 단순합니다.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다시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 헤아릴 수 없는' 분임을 인정하며, 그분의 움직임에 놀랄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나의 나약함을 극복하기 위해 애쓰는 것이 아니라, 그 약함을 통해 일하실 하나님을 기대하며 '예수 말고는 답이 없다'는 절실함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신학적 공식 안에서 '믿고 싶은 대로 믿던' 불신앙을 끝내는 것입니다.
"나는 예수님 앞에 엎드려 간청하고, 그분을 향해 더 크게 소리치고, 예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려고 지붕을 뚫는 사람이 되고 싶다"(162).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에 매일 놀라게 되기를!"(271)
<하나님께 놀라다>를 읽으며 매서운 회초리를 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게 아프기도 했지만,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위로를 맛보기도 했습니다. 가장 큰 위로를 받았던 한 문장은 이것이었습니다. "오랫동안 메마름의 시기를 겪으면서 엄청난 죄책감과 수치심, 당혹감에 시달린 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 어려움이 그리스도인의 건강한 삶에 정상적인 부분이며, 꼭 필요한 부분이라는 것을 그들이 깨닫게 되기를 기도한다"(61). 이 기도 안에 담긴 진심이 나를 울렸습니다.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아 괜찮음을 가장했던 저의 가면이 벗겨져 나가는 듯했습니다. 바로 지금 저는 영적 메마름의 시기를 지나는 중입니다. 그런데 이제 비로소 "영적 메마름의 시기는 우리를 이끌어 하나님 나라로 더 깊숙이 들어가게 해주는 하나님의 선물"(57)임을 자신있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적 메마름의 시기가 시작되고 이 책에 이르기까지 저에게 '복음(믿음)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놀라다>는 예수님을 가두는 종교적 틀을 깨부수는 책입니다. 그리하여 "지금 이곳에 임재하시고 활동하시고 개입하시고 실재하시는 하나님"을 다시 바라보게 하며, 모험과 기대로 가득한 '오늘'을 꿈꾸게 만들어줍니다. 이 과정은 우리가 부정하고 터부시 했던 것들을 성경적 시각으로 다시 바라보는 훈련이기도 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탄식의 기술"(237)입니다. "탄식하는 시는 우리 문화가 억누르고 부인하길 원하는 현실에 새로운 음성을 들려준다"(248).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러한 훈련이 필요한 이유는, "아름다움, 강함, 약함을 재정의하여 세상에 해방을 가져다줘야" 할 사명이 예수님의 교회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놀라다>는 바알신앙에 물든 혼합종교처럼, 현대 문화에 젖어 능력을 잃어버린 현대 교회를 다시 일으켜 세워주는 책입니다. 마이크 어 목사님은 예수님의 교회가 싸워야 할 싸움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제시합니다. "주류 문화가 '불구'라고 여기는 이들을 교회가 귀하게 여기고 대접하고 사랑함으로써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그분의 백성 가운데 엄연히 살아 계심을 증언해야 한다. (...) 교회는 눈에 보이는 이미지가 전부가 아니라는 해방의 진리를 세상에 선포하고 구현해야 한다. 약함이 환영받고, 사람들이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받는 예언자적 저항문화의 장이 되어야 한다"(269).
<하나님께 놀라다>는 앞서도 말했지만, 매서운 회초리처럼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책입니다. 하나님께 동행하는 감격을 잃어버린 채, 하나님을 '기독교' 안에 가두어버렸던 우리의 어리석음과 무지를 회개하게 해줍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의 가슴을 다시 뛰게 하는 책이기도 합니다. 이제 하나님께 놀랄 준비가 되었으니까!
"하나님이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에 끊임없이 놀라고 감탄하게 되기를!"(2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