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변신 ㅣ 꿈결 클래식 5
프란츠 카프카 지음, 박민수 옮김, 남동훈 그림 / 꿈결 / 2015년 5월
평점 :
"어느 날 아침 뒤숭숭한 꿈에서 깨어난 그레고르 잠자는 자신이 침대 위에서 흉측한 벌레로 변한 것을 알아차렸다"(9).
새로 이사한 집에는 작은 다락방이 있었습니다. 노끈으로 질끈 묶은 아버지의 책들은 그곳에 두었습니다. 부도로 우린 살던 집을 내주어야 했고, 살림을 모두 버리다시피 이사를 하면서도 아버지는 한쪽 벽면을 가득 채웠던 문학전집을 버리지 못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먼저 풀풀나던 다락방에서 처음 읽은 아버지의 책이 바로 카프카의 <변신>이었습니다. 온몸을 오싹하게 만들었던, 그 강렬했던 첫 문장의 충격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어느 날 아침 뒤숭숭한 꿈에서 깨어난 그레고르 잠자는 자신이 침대 위에서 흉측한 벌레로 변한 것"을 알아차립니다. 그런데도 성실한 영업사원으로 부모님과 여동생을 부양하며 살아온 그레고르는 오직 제 시간에 기차를 타지 못할까봐 걱정입니다.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를 가장 견딜 수 없어 하는 사람은 그레고르 자신이 아니라 바로 그가 부양해온 가족들입니다. 특히 아버지는 그레고르가 방에서 나오자 발을 쿵쿵 굴러대고 지팡이와 신문을 흔들어 대면서 그레고르르 다시 방 안으로 몰아넣으려 애를 씁니다. 그에게 그레고르는 더 이상 든든한 아들이 아니라, 한 마리 흉측한 벌레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그레고르의 변신과 함께 가족의 평온하고 유복하며 만족스러웠던 삶은 졸지에 종말을 고했습니다. 그동안 이처럼 훌륭한 집에서 편히 살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그레고르의 헌신 덕분이었으나, 그레고르를 돌봐야 할 처지에 놓인 가족들은 그 흉측한 벌레가 역겨울 뿐입니다. 벌레로 변해 방 한 칸을 차지하고 있는 그레고르는 이제 가족 모두를 불행하게 하는 끔찍한 재앙이었습니다. 처치곤란한 짐짝처럼 말입니다.
"이런 식으로는 더 이상 지낼 수 없어요. 아버지, 어머니는 모르실지 몰라도 저는 알아요. 저란 괴물을 오빠 이름으로 부르고 싶진 않아요.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어떻게 해서든 저것한테서 벗어나야 한다는 거예요. 우리는 저것을 돌보고 참아 내느라 인간으로서 할 짓은 다 했어요. 조금이라도 우리를 비난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90).
카프카의 <변신>이 제게 그처럼 강한 인상을 남겼던 것은 이 이야기의 결말, 마지막 장면 때문이었습니다. 어느 날, 방에서 기어나온 그레고르에게 화가 난 아버지는 그에게 무작위로 사과를 집어던졌고, 연이어 날아온 사과 한 알이 그레고르의 등에 정통으로 꽂히고 말았습니다. 사과 한 알이 그의 등에서 썩어가면서 그레고르는 그렇게 힘없이 죽음을 맞이하고 맙니다. 집에서 내쫓아서라도 그 끔찍한 벌레에게서 벗어나고 싶어 했던 가족들은 비로소 안도하며 계속 살아가기 위해 기지개를 활짝 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누이동생은 원래 그레고르에게 기식하는 인물들이었으나 그가 갑충으로 변하자 억압자로 변한다"(241).
카프카의 <변신>이 독자에게 던지는 일차적인 질문은 이것일지도 모릅니다. "내가 그레고르의 식구 중 하나였다면 흉측하고 거대한 갑충에게 정말로 다른 태도를 취할 수 있을까?" 비록 지금은 역겹고 흉칙한 몰골을 하고 있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우리의 식구이며, 그가 지금껏 가족을 위해 헌신했듯이 우리도 그를 돌봐야 할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레고르가 죽었을 때 진정으로 안도하면서 행복감마저 느끼는 가족들의 모습이 불편한 것은, 그들 안에 숨어 있는 이기심이 바로 나의 이기심이라는 걸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성인이 되어 카프카의 <변신>을 다시 읽으며 가장 가슴이 아팠던 것은, 그때 아버지의 다락방에서 이 책을 읽었을 때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의 모습을 왜 그레고르의 모습에 대입하지 못했을까 하는 자책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아버지 덕분에 누리며 살아온 것에 대한 감사는 온데간데 없고, 하필 한참 예민한 시기에 사업에 실패해버린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더 컸습니다. 등록금을 내지 못해 불려가고, 작은 교복을 참아내고, 친구들 생일에도 초라하고 궁색한 내 현실만이 괴롭고 힘들었지, 하루아침에 그 큰 사업을 접고, 빚에 시달리며, 가족들을 위해 비참하게 일자리를 구걸해야 했던 아버지의 괴로움은 보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를 한 번도 위로해드린 적이 없다는 걸, 이제야 깨닫습니다.
"한 권의 책은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부수는 도끼여야 한다"(225).
이 책에 덧붙여진 해제에 보면 카프카의 <변신>은 그동안 사회학적, 신학적, 실존주의적, 그리고 정신분석학적 등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되어져 왔다고 합니다. 이처럼 다양한 해석이 공존하는 것은 "현대 문학의 연구나 비평에서는 흔히 등장한다는 '카프카스러움' 때문일 것입니다. "독일어 사전을 보면 이 말은 "수수께끼 같으면서 섬뜩하고 위협적인"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달리 말해 그의 작품은 정말로 수수께끼 같으며, 따라서 독자는 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고심할 수밖에 없다"(226).
내 인생의 책으로 꼽을 만큼 <변신>이 충격적이었던 것은 (지금 생각해보면) <변신>에서 실존주의적 허무와 절망을 느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카프카의 말대로 <변신>은 제게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부수는 도끼였습니다. 한 때는 이 책을 읽은 사람과 안 읽은 사람으로 분류를 할 만큼 집착했던 작품이기도 합니다. 고전문학이라고 하면 지루하거나 어렵다는 인상이 강한데 카프카의 <변신>은 비교적 쉽고 재밌습니다. 더구나 <꿈결 클래식>은 번역도 부드럽고 수준높은 해제가 붙어 있어 작품을 깊이 이해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됩니다. 이 책은 꼭 읽어줘야 하는 책입니다. 카프카의 <변신>, 소외와 단절이 더 이상 철학적인 주제가 아닌 일상이 되어버린 오늘 더 큰 의미로 다가오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