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호랑이 이빨 - 최신 원전 완역본 ㅣ 아르센 뤼팽 전집 10
모리스 르블랑 지음, 바른번역 옮김, 장경현.나혁진 감수 / 코너스톤 / 2015년 3월
평점 :
괴도 신사 아르센 뤼팽, 그는 왜 영웅 페레나로 거듭나야 했는가?
<호랑이 이빨>은 "뤼팽의 기억 속에도 오랫동안 각인될, 뤼팽이 치렀던 아주 치열한 전투 중 하나"(106)입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우리의 주인공이 신출귀몰, 난공불락의 뤼팽이 아니라, 베일에 싸인 신비로운 인물, "돈 루이스 페레나"로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뤼팽은 전쟁이 터지기 2년 전, "불타버린 자그마한 오두막 잿더미 아래에서 케살바흐 부인의 시체와 함께 그의 시체가 발견됨으로써"(813, 아르센 뤼팽 4권) 이미 대중들에게는 "죽은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초인적 활력과 놀라운 담력, 기막힌 상상력과 넘치는 모험심, 육체적 민첩함과 냉철한 정신력"을 자랑하는 페레나를 "대중은 자연히 아르센 뤼팽과 겹쳐 생각할 수밖에 없"었지만, "페레나는 한층 더 이상적이고 도덕적이며 무공을 세워 고귀해진, 귀팽보다 더욱 위대한 또 하나의 뤼팽"(147)이었습니다!
뤼팽이 등장하지 않는 뤼팽 시리즈 7권 <포탄 파편>에서도 "괴도" 뤼팽이 잠취를 감춘 것은 "전쟁"이라는 특수한 시대 상황이 그 원인이지 않을까 짐작한 바 있습니다. 전쟁이라는 소용돌이는 세상을 어지럽히는 뤼팽이 아니라, 질서를 바로잡는 페레나라는 새로운 영웅을 더 필요로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하여 <호랑이 이빨>에서도 추격 당하고 쫓기는 신세인 뤼팽이 아니라, 영웅적이고 도덕적인 페레나가 공권력의 편에 서서 범인을 추적하고 사건을 해결하는 명탐정으로서의 활략을 유감없이 발휘합니다.
전작 <서른 개의 관>이 미신에 맞서는 과학적 사고의 승리였다면, <호랑이 이빨>은 치밀한 과학 범죄와의 한판 대결입니다. 한 달 전에 벌어졌던 살인 사건을 파헤치던 "베로 형사"가 의문의 죽음을 당하면서 사건이 시작됩니다. 베로 형사는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오늘 밤 두 명의 살인 사건이 발생한 것을 예고하며 이빨 자국이 찍혀 있는 초콜릿 조각을 단서로 남긴 채 숨을 거둡니다. 같은 날, 경찰청장 집무실에서는 코스모 모닝톤의 유언장이 공개되는데, 유산 상속 절차와 유산 상속의 조건이 발표되며, 만일 상속자가 단 한 명도 나타나지 않을 시에는 2억 프랑이라는 어마어마한 재산이 모닝톤의 친구인 페레나(뤼팽)에게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페레나가 유산 상속 집행인으로 지목된 가운데, 그날 밤을 기점으로 유언장에 따라 재산에 대한 권리를 소유한 사람의 순서대로 죽임을 당하는 연쇄 살인 사건이 벌이집니다.
"대체 누가 이토록 지독한 증오를 품을 수 있단 말인가?"(390)
페레나가 방문을 지키고 있던 밀실 안에서 벌어진 수수께끼 같은 살인 사건, 범인으로 의심 받는 페레나(뤼팽), 범죄 현장에 버려진 사과에 남아 있는 이빨 자국, 유산 상속자들을 둘러싼 음모! 사건의 실체에 조금씩 다가가는 페레나(뤼팽)는 이 사건이 악랄하기 그지 없는 증오로 빚어진 작품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악한 천재성을 발휘해 치밀하고 정교하게 짜인 그물로 희생자를 옭아맨 수수께끼 같은 인물은 누구인가?
"이 모든 재앙 한가운데에서 수수께끼 같은 여인이 맡은 역할을 과연 어떻게 정의하고 설명해야 할까?"(231)
아무래도 아르센 뤼팽 시리즈를 영화로 제작하려면 깜짝 놀랄만한 미모를 소유한 여배우가 많이 필요할 듯합니다. 지금까지 작품마다 미모의 여인들과 자주 사랑에 빠져왔던 뤼팽이지만 <호랑이 이빨>에서는 그 사랑이 더욱 심각합니다. 증오심을 품은 채 자신을 노리고 있을 게 분명한 여자인데도, 그녀를 향한 마음을 멈출 수 없는 뤼팽. 그는 과연 플로랑스의 비밀을 파헤치고 그녀와의 사랑을 완성해낼 수 있을 것인가? 자기를 죽이려는 여인을 사랑하게 된 아르센 뤼팽의 고독한 절규가 이 작품을 읽는 묘미이기도 합니다. "너는 누구냐? 정체가 무어냐? 가는 곳마다 시체를 널브러뜨리는 것이 정녕 네가 원하는 일이냐? 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내 목숨까지 필요하더냐? 대체 너란 인간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이냐?"(232).
비범하고 위대하며 악명 높고 수상하고 신비롭고 전능하며 신출귀몰한 뤼팽, 그는 마치 모든 걸 본 사람처럼 능수능란하게 여러 사건을 꿰며 진실에 다가갑니다. 그의 초인적인 통찰력과 천부적인 재능은 "가장 위대한 탐정들의 가장 뛰어난 추론을 뛰어넘는"(333) 것이었는데, 작가는 전설과 현실을 통들이 이 세상의 가장 경이로운 영웅들과 견주어봐도 전혀 손색이 없는 인물이라 자평을 합니다!
아직 아르센 뤼팽 시리즈가 더 남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호랑이 이빨>은 마치 아르센 뤼팽의 고별 작품처럼 느껴집니다. "사랑하는 여인과 오래 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같은 동화 같은 결말로 막을 내리기 때문입니다. 그는 또 어떤 모습으로 우리 앞에 다시 서게 될지, 다음 작품이 벌써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