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학 이야기 - 다윈에서 뇌과학까지 생물학의 모든 것
김웅진 지음 / 행성B(행성비)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지구의 작은 부분만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생물학에 처음으로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철학자 꽁트 때문입니다. '사회학'이라는 용어를 처음 만들어냈다는 꽁트는, "자연과학 중 가장 일반적이고 단순한 천문학이 제일 먼저 발달하고, 시간에 따라 물리학, 화학, 생물학, 마지막으로 사회학이 그 뒤를 따른다"고 주장했습니다. 꽁트에 의하면, 가장 복잡하고 다른 모든 과학들이 다 발전하여야만 나타날 수 있는 사회과학은 이 위계상에서 가장 꼭대기에 위치하며, 위계상 바로 아래에 있는 생물학에 매우 크게 의존합니다. 사회학이 생물학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생물학의 전체적인 성격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각 요소들을 분리시킴으로써 발전되어 온 물리학이나 화학과는 달리 생물학은 유기적 전체를 연구함으로써 발달하는데, 각 요소들을 전체 체계라는 관점에서 보는 생물학에 사회학이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생물학은 유기적 전체를 연구함으로 발달한다고 하는데 문제는 생물학의 영역이 매우 방대하다는 것입니다. 이 책의 저자도 주지시키 듯, 유전학, 분자생물학, 진화심리학, 사회생물학, 뇌과학과 인지과학까지 생물학의 영역은 그야말로 광활합니다. 한 권의 책으로 생물학 전체를 소개하기가 어려우니 "대부분 생물학 관련 교양서적들은 특정 주제만 다룬다"는 것이 생물학의 함정이기도 합니다. <생물학 이야기>는 특정 주제만 다루는 생물학의 함정을 극복하기 위한 책입니다. "생물학의 고전이론들을 포함한 기초지식이 있으면 첨단 분야나 응용 분야의 시사적 사실들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며, 그래야 "생명현상을 보는 '생물학적 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랍니다(9). "생명현상과 생물학을 전체적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생물학을 소개하는 책"이 이 책의 취지이자 목표입니다. 


생물학의 역사에서 뇌과학에 이르기까지 저자는 특별히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의 원리를 중심으로"(43) 생물과 생물학의 요소들을 일관되게 설명합니다. 저자에 따르면, 생물의 가장 근본적인 성질은 '진화'이며, 원자와 분자로부터 생명현상을 창출해낸 진화의 원리가 이 책 <생물학 이야기>의 주요 주제라고 밝힙니다. 저자는 "생물학에서 '왜?'라고 하는 질문은 자연선택적 진화의 원리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30)고 주장합니다. 생명현상이 발생하고 변화되고 다양화되어 지구를 온갖 특이성을 갖는 생물체로 가득히 채우게 된 것은 '진화의 결과'라는 것입니다(36). 저자의 이러한 주장 뒤에는 전투적 무신론자로 더 유명한 리처드 도킨스의 향기가 납니다. 저자는 그의 제자이거나 추종자가 분명해 보입니다. 


이 책을 통해 몇 가지 흥미로운 가르침을 얻었습니다. 생명의 근본적인 메커니즘은 모두 분자적이라는 것, 가급한 다양한 종, 서로 다른 개체, 다양한 표현형질을 만들어내려고 하는 경향성은 생물의 기본적 성질이라는 것, 생물의 다양성이 생물의 번식에 도움을 준다는 것, 그리고 진화심리학에서 보면 뇌는 철저히 환경에 적응한 진화의 산물이라는 것 등이 흥미로웠습니다. 가장 흥미로운 주장은 이것입니다. "뇌 용량의 업그레이드나 정보처리 프로그램의 변경과 같은 변화가 일어나려면 최소 수만 년 내지 수십만 년의 기간이 소요됩니다. 따라서 생물학적으로 우리의 뇌는 현대사회가 아니라 대부분 문명 이전의 삶, 수렵채취인 사회에 적응된 상태입니다. 문명의 발달이 가져다준 삶의 변화 속도가 자연선택에 의한 뇌 진화의 속도보다 수백 배 혹은 수 천배 빠르게 때문에, 우리는 21세기를 살고 있지만 생물학적으로는 대략 3만 년 전의 환경에 적응되어 있습니다"(170). 



그런데 <생물학 이야기>는 "생물학의 모든 것"을 담아내겠다는 처음의 포부와 달리, 한쪽으로 편향되어 있다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생물학의 모든 것"이라기 보다, "자연 선택적 진화의 원리"라고 이름부치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저자의 주장대로 "자연 선택적 진화의 원리'를 큰 틀로 하여 생물학의 모든 것을 설명하려다 보니, 그 틀 안에 모든 것을 끼워 맞춘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저자는 "과학의 역사는 대자연이 흩뿌려놓은 퍼즐 조각을 맞추어온 역사"(178)라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저자도 '자연 선택적 진화의 원리'에 생물학의 퍼즐들을 끼워맞췄나 봅니다. 예측가능성을 토대로 인과적 논리로 유추를 하는 과정 속에서 '그럴 듯한 추리'를 '사실'이라고 믿어버리는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저자의 설명을 듣고 있으면 모든 생명현상은 오직 인과율의 법칙을 받고 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저자 자신이 유추와 논리의 함정에 빠져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직 풀지 못한 생명현상을 보면 인과적 논리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가장 먼저는 빅뱅 현상이 그렇고 저자가 설명하는 캄브리아기도 그렇습니다. "인간의 시간 감각으로 보면 결코 짧지 않지만, 에디아카라 말기의 최소 수백만 년의 시간은 지질학적으로 매우 짧은 시간이다. 그 시간 동안 존재하지 않았던 수많은 동물들이 캄브리아기 초에 폭발적으로 나타난 것은 깜짝 쑈와 같이 놀라운 일이었다.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생물들에 관한 한, 에디아카라기의 생물계는 새롭게 등장한 캄브리아기의 생물계에 의해 완전히 교체되었다"(83). 생명의 진정한 경이는 오히려 인과 법칙으로 다 설명할 수 없는, "폭발적인 깜짝 쑈"에 있지 않을까요? 

저는 저자만큼 생물학적 지식이 있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러나 저자에게 <장하석의 과학, 철학을 만나다>라는 책을 꼭 추천해주고 싶습니다. 이 책은 과학에 철학이 꼭 필요한 이유, 그리고 과학이 겸허해야 하는 이유를 말하는 책입니다. 장하석의 책에서 "과학의 정수는 비판정신이며, 또 언제든지 지금은 진리라고 믿고 있는 이론을 버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독단성은 과학적 태도에 위배된다고도 배웠습니다. <생물학 이야기>의 저자도 말했습니다. "과학은 자연현상에 대한 질문과 검증을 통해 인간의 주관과 직관의 오류를 극복하고 누가 보기에도 사실과 부합하는 객관적인 지식체계를 수립하는 학문이다"(193). 그런데 진화론에 대한 저자의 신앙이 오히려 저자가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는 객관성을 해치고 있음을 꼭 지적해주고 싶습니다. 저자는 아직 풀지못한 생물학의 과제와 한계를 분명히 말하지 않고, "이럴 것입니다", "이랬을 것입니다"라고 설명하며 은근슬쩍 넘어갑니다. "관측 자체가 객관적 사실을 그대로 전달해지 않는다"는 과학(학문)의 태생적 한계를 아예 무시하는 학자들도 많은데, 한계를 알기에 더 겸손하고 정직한 태도가 오히려 과학을 더 매력적인 학문으로 이끌지 않을까요? 저자가 우리에게 들려준 찰스 월콧의 말을 저자에게 다시 들려주고 싶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지구의 작은 부분만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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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의 영웅들 - 필멸의 인간 영웅 아킬레우스에서 아고라의 지성 소크라테스까지
그레고리 나지 지음, 우진하 옮김 / 시그마북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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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영웅인가?



요즘 개그콘서트에서 '핵존심'이라는 코너가 인기입니다. 영웅적인 행동을 좋아하고 영웅인 체 하는 남자들 특유의 영웅심리를 희화한 것이지만, 구나 한번쯤은 영웅이 되기를 꿈꿔보지 않았을까요? 그런 점에서 <고대 그리스의 영웅들>은 우리에게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져줍니다. 영웅은 신처럼 불멸의 존재도 아니고, 때로는 비극적 운명에 처하기도 하고, 도덕적인 결합도 지닌 그런 '사람인듯 사람아닌 사람 같은' 영웅을 동경하고 신과 가티 숭배하는 사상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이것은 유한하고 필멸의 존재인 인간이 어떻게 무한하고 불멸의 존재인 '신' 인식을 갖게 되었는가, 그러니까 '신'이라는 관념을 가지게 되었는가 하는 오래된 질문만큼이나 철학적인 주제이기도 합니다.


<고대 그리스의 영웅들>은 이런 질문을 던짐과 동시에 이에 답하는 책이기도 합니다. 하버드대 그레고리 나지 교수의 강의록을 모은 것인데, 인류가 가진 영웅 이야기에 대한 '기록'이 그 연구 대상입니다.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와 같은 (인류 최초라 할 수 있는) 서사시와 서정시, 아이스킬로스와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의 비극과 같은 산문, 그리고 플라톤의 <대화편>에 이르기까지 기원전 8세기부터 4세기까지에 걸쳐 기록된 문학적(철학적이면서 역사적인 의미도 함축된) 텍스트를 분석한 일종의 원전연구인 셈입니다. 인류가 가진 가장 오래된 '영웅전'의 연구라고 이름붙여도 좋을 듯합니다.


텍스트를 분석적으로 읽어내려가는 일종의 주석, 주해이기 때문에 이 책은 그리 드라마틱한 영웅담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학술적인 영웅담에 더 가깝습니다. 그러니까 텍스트가 담고 있는 문학적 감동은 독자의 몫이기도 합니다.




"영웅은 영웅을 숭배하는 의식의 과정에서 절정의 순간에 신으로 불릴 수 있다"(779).



저자가 관심을 갖는 주제는 왜 영웅이 신과 같이 특별한 숭배의 대상이 되었는가 하는 종교적 관점입니다. 주요 논지는 '영웅'은 신과는 달리 필멸성이라는 한계에 갇혀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모두는 영웅의 운명은 필연적으로 '죽음'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데 어떻게 그런 존재가 신적인 영역에서 숭배대상이 될 수 있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죽하며, 두려운 것이 아니라 환영할 만한 것이 되어야 한다. 영웅은 궁극적으로 완벽한 죽음이라는 완벽한 순간에 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73).  그래서 저자가 던지는 첫 질문이자 가장 핵심적인 질문은 "도대체 누가 영웅인가?" 하는 점입니다.


저자가 서사시적 영웅의 전형을 정리한 것을 보면 매우 흥미로운 내용이 있습니다. 영웅 헤라클레스를 모델로 영웅에게는 세 가지 중요한 특징이 있다고 말합니다. 영웅은 적절치 못한 때, 예기치 않은 시기에 나타난다는 것, 또 극단적으로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 또 영웅은 영웅과 매우 흡사해 보이는 신에 대해 적대적이라는 것이 그것입니다. 동경의 대상이자 숭배의 대상이기도 한 영웅에게서 극단적으로 부정적인 모습이 나타난다는 사실이 참 흥미롭습니다. 오이디푸스가 그러하듯이 영웅은 실수하기도 하고 죄를 짓기도 하며 비극적인 운명에 처하기도 합니다. "오이디푸스가 저지른 부정적인 행위들과 그로 인해 죄에 물들게 된 것은 영웅시대에는 전형적인 일상이었다"(819).


<고대 그리스의 영웅들>은 신비한 징조를 지니고, 초인적인 능력을 겸비했으며, 불의를 응징하는 구원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죄를 짓고 비극적인 운명에 처하기도 했던 불완전한 존재이기도 합니다. 초월적인 능력을 가졌으면서도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 있고, 불멸의 존재인 신들의 후예이기도 하지만 신들과는 구별되며 신에 대해 적대적인 존재이기도 합니다.


이런 영웅들이 어떻게 신처럼 특별한 숭배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까요? (저자가 말하는) 제가 찾아낸 정답 중 하나는 영웅과 관련된 의식 자체가 조상 숭배의식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좀 더 기본적으로 보면 특별한 영웅을 추종하는 현상 속에서 영웅들을 숭배하는 일은 죽은 자를 추종하는 현상과 관련된 것으로, 다시 말해 조상 숭배라고 볼 수 있다"(763).


이것은 마치 어릴 때 태산처럼 크고 바위처럼 든든하며, 모르는 것이 없고 못하는 것이 없었던 아버지였지만, 어느 순간 '아버지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이었구나' 하는 깨달음이 공존하게 되는 그런 이미지와 닮았다고 할까요? 그 불완전함이 오히려 동질감과 친밀감을 불러이르키면서 신보다 조금 더 가깝게 다가오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서 신은 아니지만 신보다 더 매력적인 존재가 될 수도 있는 것이지요.


다시 말하지만, 이 책은 하버드대 교수의 강의록을 모은 것입니다. 그만큼 학술적이고 그래서 읽기 까다롭고 지루한 일면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만큼 학술적 가치가 있고 소장 가치가 있는 노트이기도 합니다. 소설적 재미보다 진지한 배움을 선호하는 독자들에게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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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구를 타고 5주간 쥘 베른 걸작선 (쥘 베른 컬렉션) 12
쥘 베른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림원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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쥘베른 걸작선

 

 

<기구를 타고 5주간>은 모험소설을 좋아하는 독자에게는 전설적인 이름으로 기억될 쥘 베른의 첫 번째 소설입니다. 수많은 영화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80일간의 세계일주>가 바로 이 작가의 작품입니다. <기구를 타고 5주간>은 출판되자마자 큰 인기를 얻었고, 덕분에 당시 35세였던 작가는 재정적으로 독립하여 소설 집필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436). 

 

그런데 이런 문학사적(?) 의미를 걷어내고 1863년에 출판된 모험소설을 2015년에 다시 읽으니 솔직히 재미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가 있다면, 우선 스릴러 영화광들에게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이라는 작품만큼이나 중요한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의 해설을 맡은 빅터 코헨은 "쥘 베른은 이 세상에 'SF'(Science Fiction)를 가져다주었다"고 평가합니다(426). SF의 효시이며 전설적인 SF 걸작은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인줄 알았는데, <기구를 타고 5주간>에게 그 자리를 내주어야 할 듯합니다. 뿐만 아니라, "모험소설 작가들도 모두 베른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고 평합니다(426).

 

 

 

"나는 내 길을 가는 게 아니다. 내 뒤에 생기는 것이 나의 길이다"(19).

 

 


<기구를 타고 5주간>은 세 영국인의 아프리카 탐험 여행입니다. 지리학자이자 탐험가인 새뮤얼 퍼거슨 박사, 그의 친구이자 사냥꾼인 딕 케네디, 퍼거슨 박사의 하인인 조 윌슨이 그 주인공으로, 함께 기구를 타고 아프리카 중앙부를 횡단하는 탐험 여행에 나선다는 것이 줄거리입니다(436). 기구를 타고 아프리카를 동쪽에서 서쪽으로 횡단하는 목적은 2가지입니다. 아프리카 탐험에 나선 선구자들의 성과를 연결하여 하나의 커다란 성과로 정리하는 것, 아프리카 대륙의 심장부라고 알려진 나일 강의 발원지를 확인하는 것입니다(24). 

 

기구 여행을 계획한 퍼거슨 박사의 대담한 계획에 기대와 환호가 쏟아지기도 하지만, 무모한 시도라며 비판적이고 회의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의 가장 가까운 친구 딕 케네디만 해도 (결국 그와 함께 여행에 나서기는 하지만) 퍼거슨 박사의 탐험 여행을 완강히 반대했습니다. "나일 강의 발원지를 발견하는 일이 과연 그렇게 중요한 일인가... 아프리카 탐험이 인류의 행복에 얼마나 도움이 된단 말인가... 아프리카 원주민이 문명인의 대열에 들어오면 행복해질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유럽에 비해 아프리카에 문명에 없다는 것은 확실한가.. (...) 물론 아프리카 횡단이 언젠가는 성공할 것이다. 하지만 그 성공은 훨씬 덜 위험한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이다"(49).

 

기구를 타고 아프리카 중앙부를 횡단하겠다는 계획은 아무리 준비를 철저히 한다고 해도 무모한 도전에 가까웠습니다. 바람이 원하는 방향대로 불어주느냐, 식량과 물이 제대로 공급될 수 있느냐 뿐 아니라, 아프리카 원주민의 공격과 야생동물의 공격을 어떻게 막아내느냐 등 그들 앞에 버티고 있는 통제할 수 없는 문제들이 이 여행에 불길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구를 타고 5주간" 동안 벌어지는 아프리카 탐험 여행, 독자들은 손에 땀을 쥐는 긴장감과 박진감을 기대하겠지만 현대의 독자들에게는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듯합니다. 우리는 그보다 쎈 모험을 많이 경험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우리가 문학적 상상력이라는 타임머신을 타고 과학이 막 태동하기 시작한 1863년으로 되돌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할 때, 적대적이고 공포에 사로잡힌 원주민들의 습격이 계속되고, 열병에 걸리기도 하고, 기구를 타고 날며 폭풍우를 견뎌내기도 하고, 원하는 방향으로 바람이 순조롭게 불기를 기다려야 하고, 코끼리 상아에 닻이 걸려 끌려가기도 하고,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 퓨마, 승냥이를 경계해야 하고, 공격을 피해 날아오르기 위해 기구에 있는 식량과 무기를 모두 버려야 하기도 하고, 기구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누군가 몸을 던지는 희생도 감행해야 하는 등 목숨을 잃을 뻔한 위기를 숱하게 넘기며 기구가 너덜너덜해지도록 계속되는 그들의 위험천만한 탐험과 도전이 좀더 입체적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나일 강의 발원지는 바다처럼 호수 안에 있었어. 거기서 나일 강이 태어나지. 이것으로 나일 강에 대한 낭만적인 생각도 사라질 거야. 강의 왕인 이 나일 강의 발원지는 하늘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많았으니까. 옛날 사람들은 이 강을 바다라고 불렀고, 태양에서 직접 흘러온다고 믿었지"(191).

 

쥘 베른이 이 세상에 'SF'를 가져다 주었다고 평가되는 것은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계몽적 과학주의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탐험여행이라고 하면 신비가 모험이 가득한 세계를 '상상'하게 되는데, 쥘 베른의 기이한 여행들은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사고의 토대 위에 미래 사회에 대한 예측이 숨어 있습니다. 과학의 시대가 이제 막 열리기 시작하는 시대에 계몽적 과학주의 색채가 짙게 배어 있는 이 작품에서 탐험가이면서도 과학자이기도 한 퍼거슨 박사와 선교사가 아프리카 오지에서 만나는 장면은 참 의미심장합니다. 둘 다 목숨을 걸고 아프리카 땅으로 걸어들어간 사람들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 사는 선교사와 눈에 보이는 세계 안에 사는 과학자, 이 책은 이 둘이 서로를 의지하고 있지만 이 둘에게 닥칠 운명을 미리 내다보고 있는 듯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문학사적 의미를 걷어내면 2015년의 독자가 읽기에는 재미 없는 책입니다. 그러나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이라는 작품을 보지 않고서는 스러물의 역사를 논할 수 없듯이, 이 책을 읽지 않고서는 SF적 탐험소설을 논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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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득키득 스쿨 영단어 - 그림으로 완성하는 초등 영어!
심재경 외 지음 / 두앤비컨텐츠(랜덤하우스코리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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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에서 꼭 떼어야 할 영단어, 그림으로 공부해요!



우리 할머니가 저를 보실 때마다 늘 "넌 좋은 시절을 타고 났다" 하시더니, 요즘은 제가 아이들에게 같은 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특히 요즘 출간되는 아이들 영어 학습 교재를 보면 저도 모르게 '요즘 아이들은 좋겠다'는 소리가 절로 터져나옵니다. 저도 이런 교재로 영어를 공부했다면 제 인생이 지금과는 많이 달려져 있지 않을까요? ^^; 


<키득키득 스쿨 영단어>는 초등에서 꼭 떼어야 할 영단어를 그림을 통한 연상기법으로 쉽고 재밌게 공부할 수 있도록 기획된 교재입니다. 기발한 영어 학습법 개발이 주 특기인 초등학생 아들을 둔 아빠와 상명대학교에서 영어와 만화를 5년째 가르치고 있는 원어민 교수님이 함께 고민하여 만들었습니다. 






 


 

 


<키득키득 스쿨 영단어>는 교육부에서 지정한 초등영어 약 800단어와 미국 현지에서 아이들이 쓰는 영어 표현을 학습하는 교재입니다. <학원을 이기는 독학 영어 회화>의 저자가 학원에 가서 영어 회화를 공부할 생각을 하지 말고, 독학으로 표현을 연습한 뒤 학원에 가서 써먹어야 영어 실력이 향상된다고 말했던 것처럼, <키득키득 스쿨 영단어>는 영어 캠프를 준비하는 어린이들을 위한 교재이기도 합니다. 이 책으로 영어 표현을 익히고 영어 캠프에 가면 두려움 없이 완벽하게 적응할 수 있다는 전략이지요. 




 

 



 

 

<키득키득 스쿨 영단어>는 한 아이의 아빠가 "내 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친다는 생각으로" 만들어진 교재라 그런지 참 깊은 애정과 고민으로 만들어진 책이구나 하는 것을 금방 느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아이가 가급적 스트레스 없이 재밌게 영어를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을 위해 고민했으며, 한 번 익힌 영단어를 오래 기억할 수 있는 방법까지 고심했습니다. 


<키득키득 스쿨 영단어>가 고심 끝에 찾아낸 방법은 바로 그림을 통한 연상 기억입니다. 각 과마다 먼저 그림을 보고 어떤 단어를 배울지 미리 살펴봅니다. 또 QR 코드를 활용하여 플래시 영상을 보고 언제 어디서나 쉽게 재밌있게 따라하며 영어를 학습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무작정 암기하는 것보다 "이해"를 통해 기억에 오래 남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한 단어가 만들어진 역사와 이유, 자주 쓰는 경우를 뿌리로 이해하고 있으면 가지치기로 확장된 영단어까지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한 개의 단어가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을 때는 한 단어로 여러 단어를 동시에 공부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예를 들어, 파트 4 "학교 다녀오겠습니다"에서 "나만 믿어, 계산기야"라는 과를 봅시다.여기서는 "수를 세다, 계산하다"는 뜻을 가진 영단어 "count"를 공부한는데 "의지하다, ~를 믿다"를 의미하는 표현 "count on"까지 함께 공부합니다. 계산기가 "I can count!"(내가 계산해 줄게"라고 하면 똑똑한 학생이 "You can ount on me!"(나만 믿어)라고 대답합니다. count와 이웃표현은 countdown과 counter도 함께 배웁니다. CD로 원어민 발음까지 익히면 완성!


 

요즘 연상기억법으로 학습 능률을 올리려는 교재들 중에는 좀 억지스러운 것들도 많습니다. 그림과 이미지를 이용한 연상법으로 영단어를 익힐 수 있도록 구성된 <키득키득 스쿨 영단어>는 그림과 영단어가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잉크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는 그림을 통해 fountain(분수, 분수대)이라는 영단어도 익히고, 더불어 fountain pen(만연필)이라는 단어까지 공부합니다. 이렇게 공부하면 정말 잊어버리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키득키득 스쿨 영단어>는 조선일보에 연재 중이기도 한데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하니 독자들이 이미 효과를 입증해준 셈입니다. 초등학생 뿐 아니라 영어를 처음 시작하거나 기초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은 어른들에게도 추천해주고 싶은 책입니다. 영어 실력에 고개가 숙여질 때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인연이 항상 아쉬움으로 다가옵니다.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선생님을 잘못 만났고 선생님도 우리를 귀찮아 했고 우리도 선생님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렇게 재미없고 지루한 시간을 견디며 1년을 보내고 났더니 이미 다른 반 친구들과 경쟁에서 많이 뒤쳐져 있었고, 그만 영어수업 자체에 흥미를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책은 무엇보다 본격적인 영어 공부의 첫 단추를 끼우는 책으로 제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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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의 탄생 - 사라진 암호에서 21세기의 도형문까지 처음 만나는 문자 이야기
탕누어 지음, 김태성 옮김 / 김영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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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갑골문을 만나다!



이 책의 앞 표지 왼쪽 상단에 나오는 그림 같은 글자는 오늘날 "집"(家)을 의미하는 갑골문입니다. 원래는 용맹하고 포악했던 야생 돼지가 길들여지고 사육 당하는 가축으로서의 돼지가 된 형상입니다. 다소 철학적인 저자의 문자 이야기가 재밌습니다. "거대한 자연계에서 가장 프로이트적인 동물인 돼지는 이때부터 주거형 동물로서 더 이상 반하을 하지 않고 자포자기한 것처럼 미친 듯이 먹어대면서 살만 쪘다. '집'(家)은 우리에게 가장 따뜻한 공간이자 고향을 멀리 떠나 있을 때 그리워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대상이다. 돼지는 이제 즐거운 마음으로 이곳에서 뿌리를 내리게 됐다"(145).


<한자의 탄생>은 굉장히 독특한 책이면서 심오한 책입니다. 한자의 탄생 과정을 추척한 '문자학'이라고 해서 다소 딱딱하지 않을까 예상했는데, 오히려 철학책처럼 읽힙니다. <한자의 탄생>을 읽으며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아름다운 '갑골문'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것 때문입니다. <신비한 성경 속 한자의 비밀>에 보면 갑골문이 출토된 상나라는 동이족이 세운 나라이며 따라서 갑골문은 동이족의 문자라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국이 갑골문이나 상나라 유적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봉쇄하고 있기 때문에 더 깊은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아 안타깝다고 토로하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나름 갑골문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애정이 있었는데 여기서 갑골문을 보니 어찌나 반갑던지요. 더구나 <한자의 탄생>은 갑골문이 얼마나 아름다운 문자인지 보여주고 있어 갑골문에 대한 애정이 더 깊어졌습니다. 


"문자는 도대체 어떻게 발생된 것일까? 아니면 어떻게 발명된 것일까?" 이 책의 기본적인 물음은 이것입니다. 지금껏 중국은 황제의 사관이었던 '창힐'에 의해 발명되었다는 신화를 가지고 있나 봅니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중국인들이 수천 년 동안 교활하게도 이 문제를 창힐이라는 인물에게 미루어 피해왔다"(17)고 비판합니다. "문자 형성이 하나의 시간대에 한 지역에서 한 사람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한자의 탄생> 과정은 인류가 가진 '상형문자'에서부터 지사문자, 전주와 가차, 성애의 문자, 오늘날의 도형문자까지 한자의 발전 과정을 추적합니다. (탄생의 과정이라기보다 발전 과정이라고 하는 것이더 정확할 듯합니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갑골문의 위치도 바로잡습니다. 갑골문은 정확히 3,000년 전의 문자로, 상나라 사람들이 소의 견갑골이나 거북이의 배 위에 새겨 넣은 문자를 말합니다(6). 일반적으로 "갑골문자가 중국에서 발견되 최초의 문자"라고 알려져 왔습니다(18). 그러나 저자는 갑골문자가 절대로 최초의 문자가 아니라고 단언합니다. 오히려 "상당히 성숙된 문자 형태"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입니다.


<한자의 탄생> 과정을 읽으며 한자의 발전과정보다 갑골문의 아름다움에 더 주목하게 된 것은 문자 이야기의 근간에 갑골문이 자리하고 있고, 그 갑골문에 담긴 "역사와 충만한 미적 감각, 철학적 감성, 상상력"들을 저자가 무척 흥미롭게 들려주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으로서 한자을 대할 때 또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한자의 발명이 기독교 신앙의 야훼 하나님과 관련이 있다는 주장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 책에서도 "중국의 문자 발명도 하나님 야훼에게로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라는 흥미로운 사실이 매우 조심히, 그리고 아주 살짝 언급되지만, 저자는 "몇 가지 물증만으로는 문자의 발명을 단정"할 수 없다고 뒤로 살짝 발을 뺍니다. 




"문자가 생겨남으로써 인류의 사유와 표현은 시간의 독재에서 벗어나 순간적으로 공기 속으로 흩어지지 않으면서 축적되기 시작하고, 점차 두께를 형성하게 된 것이다. 문자는 공간적 거리와 시간적 거리를 포함하는 언어 연계의 확장력을 크게 증가시켰고, 인간이 영감, 발견과 발명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하게는 (인간의 사유를 지속시켜주는 중요한 근원으로서의) 곤혹감을 더 이상 고독하지 않고 안정적이며 지속적이고 면밀한 상태로 유지할 수 있게 해주었다. 또한 문자는 장시간 추상적인 사유를 할 수 있게 해주었고, 중간에 발길을 돌릴 수 있는 반성적 사유를 가능하게 해주었으며, 수정되고 보완된 항로를 따라 회구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에 따라 사유는 수정되거나 부완됐고, 앞을 향해 대담하게 더 멀리, 더 깊이 나아가면서도 길을 잃어 돌아오지 못할 것을 걱저앟지 않고 계속 기존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었다"(21-22).

<한자의 탄생>을 읽으며 문자학이 얼마나 흥미로운 학문이지 조금 알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문자가 생겨남에 따라 인류는 완전히 새롭고 전면적인 보존 형식을 확보하게 됐고, 이를 통해 기억과 대화, 사유를 몸 밖에 둘 수 있게 됐다"(22)고 이야기합니다. <한자의 탄생>은 문자를 통해 사유하는 즐거움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책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닙니다. 역자도 저자의 책은 번역하기 힘들기로 유명하다고 하는데, 정말 그럴 것 같다는 느낌이 옵니다. 확실한 논증보다는 문자를 통한 유희를 저자가 더 즐기고 있다는 생각도 합니다. 그럼에도, 이 책은 아름다운 갑골문과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는 있는 책이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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