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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유럽 - 전2권 - 1453년부터 현재까지 패권투쟁의 역사
브랜든 심스 지음, 곽영완 옮김 / 애플미디어(곽영완)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1453년부터 현재까지 패권투쟁의 역사
"그 핵심 지역은 언제나 독일이었다. 독일은 유럽의 심장부라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이면서, 경제적, 군사적 잠재력이 매우 클 뿐만 아니라, 근세 초기에는 황제의 나라라는 정치적인 정통성도 지니고 있었다"(2권, 442).
EU, 그러니까 유럽 국가들의 연합기구가 출범한다고 했을 때, 떠들썩했던 사회 분위기를 기억합니다. 언어도 다르고 경제 수준도 다른 나라들이 정치 공동체를 이루어 하나의 국가로 기능하는 일이 가능할까 의아하기도 했습니다. 또 유럽 연합은 일부 교인들을 긴장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성경의 예언에 따라 유럽 연합이 종말론적 신호로 해석되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서로 사이가 좋았던 것도 아니고, 국경을 이웃하고 살며 좁은 땅덩어리 안에서 때로는 적국으로, 때로는 아군으로 짝을 바꿔가며 생존 투쟁을 벌여왔던 나라들이 하나로 국가로 연합하겠다는 발상은 어떻게 해냈을까요? "1453년부터 현재까지 패권투쟁의 역사"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유럽 Ⅰ, Ⅱ>의 저자이며 역사학자인 브랜든 심스는 그 뿌리에 신성로마제국이 있다고 말합니다. 로마제국 없이는 유럽사를 해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1453년은 중세가 끝나고 근세가 시작되는 기준점으로 삼는 해입니다. 유럽은 철절히 분열되어 있었고 중세 내내 끊임없이 다툼을 벌여왔는데, "이 책은 15세기 오스만의 침략을 막기 위해 기독교권이 총집결한 내용을 시작으로 이야기를 풀"어옵니다. 중세 유럽의 정치 체제에서는 통치권이라는 개념이 없었고, 내부의 폭압 통치에 맞서 외부의 개입을 요청하는 정도였는데, 중세 중반부터 국가 건설이 가시화되면서 제후들마다 영토확장을 위해, 또는 살아남기 위해 군사력을 강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유럽 각국은 아무리 허약하고 힘없는 나라조차도 시시각각 변하는 정세 속에서 어제의 적을 오늘의 동지로 만드는 전략이자, 국가를 통합하고 지키고 유지하는 최선의 방안으로 외교 정책을 적절히 활용"하며 살아 남기 위한 투쟁을 계속해왔고, 동시에 외부의 위협이 있을 때는 단결하는 힘을 바탕으로 세계패권 다툼의 핵으로 떠오를 수 있었습니다.
<유럽 Ⅰ, Ⅱ>은 그 과정에서 1453년을 기점으로 지난 560년의 역사를 돌아보며, "유럽의 정치 체제는 어떻게 형성됐고, 경제는 어떻게 발전했고, 사회는 어떻게 변화했고, 문화는 어떻게 다듬어졌고, 국방 정책은 어떻게 수립돼 오늘과 같은 형태를 이루게 됐을까?"(1권, 9)를 탐구합니다. 수많은 전쟁과 외교와 동맹 관계 속에서 정착하고 발전한 대내외 정책과 제도를 해부합니다.
역사는 본질적으로 패권다툼의 역사입니다. 왕 싸움, 다시 말해 "누가 왕이냐?"를 가름하는 것이 역사의 기준입니다. 그럼에도 굳이 이 책에 "패권투쟁의 역사"라는 부제가 붙은 것은 근세 이후 "유럽 각국이 수세기 동안 변하지 않고 추구해온 영토 수호에 관한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영토 수호는 로마의 영광을 되찾겠다는 제국 건설의 꿈과 맞닿아 있는데,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은 그 패권다툼의 중심부에 "독일 영토"가 자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역자는 이 책의 논지를 한마디로 이렇게 정리해냅니다. "그가 초점을 맞추고 있는 지역은 고대 서로마 제국의 핵심 지역이자 로마제국의 명칭을 이어받은 신성로마제국, 즉 유럽의 중심부를 차지하고 있는 독일 영토다. 그 영토를 차지하고 그 곳을 다스리는 황제의 권위를 확보하기 위한 투쟁을 통해 오늘날의 유럽이 형성됐으며, 그 투쟁의 결과로 유럽이 세계의 주역이 됐다는 것이다"(1권, 9).
"신성로마제국은 유럽을 지배하고 싶어 하는 모든 인물들에게 그 합법성을 제공하는 원천"이었기에, 많은 나라들은 신성로마 제국의 영토를 놓고 전략적으로 다툼을 벌여왔습니다. 바로 그 격전지가 독일 땅이라는 것이고, 그 땅은 "힘의 원천지"이면서, 동시에 "위협이 끊이지 않는 땅"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핵심 지역은 언제나 독일이었다. 독일은 유럽의 심장부라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이면서, 경제적, 군사적 잠재력이 매우 클 뿐만 아니라, 근세 초기에는 황제의 나라라는 정치적인 정통성도 지니고 있었다"(2권, 442).
독일은 유럽이 독일을 지배하려는 투쟁으로 많은 굴곡을 겪어왔는데, "독일에서 승리해야 아메리카를 차지할 수 있다"는 월리엄 피트의 말이 많은 것을 함축적으로 말해줍니다. 이 책은 "17세기와 18세기에 걸쳐 잉글랜드 해군이 신대륙에서 생산되는 은이 적국으로 흘러들지 못하도록 막음으로써 신성로마제국 내에서 세력균형을 유지하려고 한 것, 19세기 후반 프랑스가 독일에 맞서 팽창 정책을 실시한 것, 2차 세계대전 이후 이스라엘 탠생의 기반이 된 벨푸어 선언을 통해 전 세계의 유대인들이 카어저에 맞서 투쟁하게 한 것 모두가 독일과 관련이 있"(1권, 26)다는 것을 밝힙니다. 뿐만 아니라, 독일은 유럽에서 발생한 이념 투쟁의 각축장이기도 했는데, 저자는 종교 개혁과 마르크스주의, 나치즘 등이 모두 독일에서 탄생하고 구체화됐다는 사실도 새롭게 환기시킵니다.
근세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유럽의 역사를 탐구해온 저자는 마지막으로 불확실성의 시기로 접어든 유럽이, 더 강력한 연합을 형성하게 될 것인가? 아니면 산산이 흩어지게 될 것인가?를 묻습니다. 그리고 이모든 것은 독일의 결정에 달려 있다고 말합니다. "유럽이 앞으로 좀 더 통합될지, 아니면 지금과 같은 국가 연합 형태로 남게 될지 여부는 독일의 결정에 달려 있다(443). 가장 강력한 경제력을 보유한 독일이 통합의 열쇠를 쥐고 있다면,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한 영국 정도가 독일에 비길 만한 힘을 가지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 저자의 진단입니다.
역사는 "중부유럽을 장악했던 국가가 유럽을 지배했고, 유럽을 지배했던 국가가 궁극적으로 세계를 지배했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미국이 왜 어느 한 국가가 유럽을 장악하지 못하도록 하는 전략을 수립했는지가 이해됩니다. 유럽 세력의 균형, 독일의 미래는 세계사에서 중요한 의미는 지닙니다. 저자는 "세계사는 유럽의 역사다 .... 유럽사를 지역사로만 보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라는 윌리엄 에워트 글래드스턴 영국 수상의 말을 인용해, 이 책이 단순히 유럽사가 아님을 역설합니다. 신성로마제국과 맞닿아 있는 유럽사를 알면 오늘날의 국제 정세를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혜안과 안목을 지닐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약속이기도 합니다.
유럽의 역사를 알아야 세계사의 흐름을 알고, 세계사의 흐름을 알아야 미래를 알 수 있다는 의미에서 이 책의 일독을 추천합니다. 책의 두께가 주는 부담감에 비해 잘 읽히고 번역도 깔끔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가끔 보면 인생사를 꿰뚫는 도인 같은 분들이 있습니다. 경제의 흐름이나 정세의 변화를 귀신 같이 예측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 삶에 작용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법칙 또는 어떤 흐름, 또는 복잡한 역학관계를 읽어내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는 자연 법칙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지요. 순전히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세계와 나를 관통하는 삶의 법칙, 그러니까 인생사를 통합적으로 꿰뚫는 어떤 혜안을 기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경'과 '역사'를 공부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