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명 중 98명이 헷갈리는 우리 말 우리 문장
김남미 지음 / 나무의철학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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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문법적으로) 틀리게 사용된 문장의 예입니다. 틀린 곳을 찾아 바르게 고쳐보세요.



1. 경찰 조사 결과, 절도범은 술을 마시는 등 유흥비로 대부분 사용했다고 합니다.


2. 나라에 충성, 부모에 효도


3. 열차가 도착하고 있습니다.


4. 이번 수능은 가능한 쉽게 냈다.


5. 좋은 하루 되세요.


6. 여자 친구 좀 소개시켜 줘.


7. 피로회복제


8. 식당을 미리 예약해두다.


9. 새로운 혁신안을 내놓지 않는다면 문제를 해결한 가망이 없다.

 

답이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면,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가 충분합니다. <100명 중 98명이 헷갈리는 우리 말 우리 문장>은 "우리 글" 뿐 아니라, 잘못 사용하는 "우리 말"의 문법적 오류에도 주목합니다. 습관적으로 잘못 사용하는 말에서 잘못된 문장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좋은 문장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좋은 문장은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제대로 표현한 문장입니다"(8). 한마디로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한가", 이것이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좋은 문장을 쓰려면 내가 이 문장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먼저 점검해야"(18) 한다고 일러줍니다.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해 저자가 특히 강조하는 작업은 "쓴 글을 고치는 과정"입니다. 이 책은 "글쓰기"보다 "고치기"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글을 고치는 훈련을 통해, "생각하면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쓰면서 생각하는" 습관을 기르고, 글쓰기 습관은 물론 자신이 어떤 사고를 하고 있는지 점검하며, 비판적 사고도 기를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지론입니다.

 

 

 

 


 

 

"문장에서 가장 중요한 구성 요소는 '서술어'입니다. 서술어가 문장에 필요한 성분이 무엇인지를 결정하기 때문이에요"(35).

 

 

문장의 오류를 빨리 찾는 비법 중 하나는 "서술어"에 주목하는 것입니다. 우리 글에서 가장 중요한 성분은 서술어이기 때문입니다. 주어와 서술어가 호응하는지만 제대로 살펴도 문장의 오류를 확실하게 줄일 수 있습니다.

 

이 책은 간결하고 명확한 문장으로 수정하는 방법을 훈련하는데, 특히 일상에서는 의미가 통하는 말이라도 문서로 작성할 때는 주의해야 할 문장에 주목합니다. 공식적인 문서에는 명확한 뜻이 중요한데, 틀린 문장이 아니라 하더라도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문장은 주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문장을 수정할 때, 크게 두 가지 틀에 주목하라고 일러줍니다. "글의 목적이 무엇인가"와 "강조하고자 하는 핵심어가 무엇인가"가 그것입니다. 이렇게 큰 틀 안에서 보다 단어들을 고심하다 보면, 어느 새 어휘도 풍부해지는 경험을 합니다.

 

<100명 중 98명이 헷갈리는 우리 말 우리 문장>은 내가 '습관적'으로 잘못 사용하는 우리 말, 우리 문장은 무엇인가를 점검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그리고 보다 간결하면서도 명확한 문장을 쓸 수 있는 능력을 길러줍니다. 어렵지 않지만 쉬워서 더 자주 틀리고 헷갈리는 오류들이라, 글쓰는 직업을 가지고 있거나, 글쓰는 능력을 기르고자 하는 독자라면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직접 강의를 듣는 듯한 서술방식이라 쉽고 재밌게 읽어나갈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말 한마디, 글 하나라도 정확하게 사용하는 것의 중요성, 그것을 일깨워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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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의 옹호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지음, 손영미 옮김 / 연암서가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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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에는 성별이 없다"(10).

 

 

인류가 진화하고 있는 것이 맞다면, 인간의 지성은 바로 지금이 인류 역사상 가장 고등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진화'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여성 차별"이라는 뿌리 깊은 편견의 문제는 여전히 극복되지 않고 있습니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하고 여성 대통령도 나오는 때이는 여권이 많이 신장되었다고 보는 사람들도 많지만, 아직도 생활 곳곳에서 차별을 경험하는 여성들이 많습니다. 저 역시 차별을 경험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평등의 문제는 오늘날에도 참 풀기 어려운 숙제입니다. 현대 사회에서도 여성 차별 문제를 들고 나오면 "그럼 여자들도 군대 가라"는 식의 답변이 돌아옵니다. 평등의 문제를 잘못 다루면 역차별의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고, 분명 남자와 여자 사이에 존재하는 생물학적 "차이"를 무시하게 되는 일도 벌어집니다.

 

18세기 후반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인간 이성의 빛이 암흑(!)을 밝히기 시작하였을 때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나봅니다. 자유와 평등의 가치가 새롭게 조명되었지만 그 이성의 빛은 남성편향적이었습니다. 계몽주의를 이끌었던 루소도 봉건적 전제 지배를 격렬하게 공격하고 출신에 관계없이 인간은 평등하다고 주장했다지만, 이 책에 보면 그 역시도 성차별적 인식을 벗어나지 못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책은 1789년 혁명 후 프랑스 의회에 제출된 탈레랑의 교육 법안에 대한 반론으로 6주 만에 완성되었다"(9)고 합니다. "교육 법안의 골자는 공화국의 모든 소년에게 국민 교육을 시행한다는 것"이었는데, 저자 울스턴크래프트는 바로 그 점에 분개했습니다. 소년만이 아니라, "소녀들도 국민교육의 대상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책은 교육의 불평에 맞서 왜 여자도 남자와 똑같이 공교육을 받아야 하는가를 역설한 책입니다.

 

<여권의 옹호>는 "근대 페미니즘 혁명의 선구자"로 불리는 울스턴크래프트의 "불멸의 저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이 페미니즘 역사에서 보면 초기 저작이라는 것을 충분히 감안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급진적 페미니스트의 눈에는 그녀도 싸워할 '적'일지 모릅니다. <여권의 옹호>에 담긴 그녀의 주장도 여전히 가부장적 사고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 한계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권의 옹호>는 교육의 불평등, 법적 불평등에 맞서 여성의 법적 사회적 평등을 요구하는데, 그 첫 걸음으로 공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합니다. "여성의 권리에 대한 여러 논의의 핵심은 바로 여성이 교육을 통해 남자의 동반자가 되지 않으면, 그들은 지식과 미덕의 진보를 막게 될 것이라는 단순한 원칙에 기초합니다"(25). 울스턴크래프트는 "이 비참한 현실의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잘못된 여성 교육이라는 사실을 절감"(32)하며, "여자는 이래야 한다"는 관습과 사교육이 여성을 무지에 묶어두는 주범이라고 보았습니다. 순결을 강조하고, 순수와 여성다움을 강조하는 교육이 여성을 '유순한 가축 같은 존재"로 만들고 있다고 본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상당 부분 여성이 받아온 교육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여자들은 언제나 남자가 먹여살려 주기를 기대하고, 자신의 몸을 그들의 노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로 간주하도록 교육받아 오지 않았는가. 음란한 자태와 갖가지 교태는 욕망이나 허영심보다 더 강력한 자극을 가진 셈이고, 이는 순결을 잃은 여성은 존중받을 모든 걸 잃는 셈이라는 세간의 말이 정당하다는 걸 보여준다. 여성은 인간이 가지는 여러 열정 중 사랑만을 키우도록 교육받아 왔는데, 순결이라는 한 가지 미덕을 잃으면 순식간에 나쁜 여자가 되고 만다. 그렇다면 여성의 인격은 자신의 의지에 의해 결정되는 게 아닌 셈이다"(143).

 

울스턴크래프트는 이 문제를 깰 수 있는 방법이 남자와 여자에게 똑같이 행해지는 '공교육'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울스턴크래프트의 한계는 이러한 교육의 목표를 남자의 동반자, 즉 남자와 "똑같은" 교육을 통해 얻어지는 교양과 미덕으로 가정을 잘 이끌어가는 멋진 아내, 좋은 엄마가 되는 것으로 설정했다는 것입니다. "남녀를 모두 제대로 가르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같은 학교에서 교육해야 한다는 것과, 가정에 대한 사랑을 길러주기 위해 밤에는 집에서 자게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바다"(316).

 

그럼에도 이 책이 "근대 페미니즘 혁명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것은 다양한 인간 관계에 내포되어 있는 다층적으고 구조적인 종속의 문제를 끄집어 냈다는 것, 여성이 독립적이지 못하고 남성 의존적이며 무능하게 비쳐지는 이유는 선천적이고 자연적인 차이 때문이 아니라 차별적인 사회 구조 속에서 양산된다는 것을 포착해냈다는 데 있습니다. <여권의 옹호>는 200년도 더 전의 저작이지만, 스스로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고전'으로서의 가치가 충분하다고 여겨집니다. 또한 굉장히 시적으로 다가오는 문장들이 섬세하면서도 문학적 아름다움까지 더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기쁨의 원천인 신의 존재를 느끼며 가만히 멈춰 서서 이 순간의 만족을 즐길 수 있게 해주는 부드러운 우울함이 가진 장엄한 암흑을 느낄 수 있는 정신이 아니면 진정으로 순결하다고 하기 어렵다"(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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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식민사관 - 해방되지 못한 역사, 그들은 어떻게 우리를 지배했는가
이덕일 지음, 권태균 사진 / 만권당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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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되지 못한 역사, 그들은 어떻게 지배했는가

 

 

"수능 국사 의무화 폐지" 소식에 역사 교육이 도마에 오른 적이 있습니다. 일본도 중국도 역사를 왜곡해가며 호시탐탐 우리 영토를 노리는 이때에 국사 교육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폐지한다는 소식에 열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이제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조선사편수회 출신과 그 훼들이 역사 관련 기구를 장악하고 있고, 조선총독부 사관을 추종하는 식민사학자들이 아직껏 한국 사회에서 역사해석권을 독점하고 있다면, 그들이 주입식으로 가르치는 역사 과목을 아예 학교에서 폐지시켜 버리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라도 해서 그들이 장악하고 있는 학문권력을 빼앗고, 독점하고 있는 밥그릇을 빼앗아야 식민사관 해체의 길이 열리지 않을까요! 학교 다닐 때 국사를 열심히 공부하지 않은 것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우리 안의 식민사관>은 "조선사편수회 = 중국 동북공정 = 한국 식민사학의 삼각편대"가 한국사를 유린하고 있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식민사관이란, "조선총독부가에서 한국을 영구 지배할 목적으로 만든 조선총독부 사관"을 뜻합니다. "즉 한국으로 이주한 일본 사람들의 시각으로 한국사를 바라보는 것이 식민사관"(10)입니다. 이는 식민지 백성들의 영혼까지 노예로 만드는 작업입니다. <우리 안의 식민사관>은 우리 몸은 해방되었지만 정신은 아직까지 노예 상태임을 꼬집습니다. 조선총독부 역사관이 지금까지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은 이제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인데도, 학계에서 그들을 추방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통탄스러울 뿐입니다.

 

 

 

 

 

한국 고대사는 늘 현대사였다 : 전쟁 중인 두 사관

 

 

독립 운동가 사관과 조선총독부 사관이 충돌하는 핵심사안은 "한사군의 위치는 어디였는가"라는 주제와 "임나일본부는 실제로 있었는가?"라는 주제입니다. 이 두 주제를 둘러싸고 지금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한 세기 전의 식민사관이나 지금의 동북공정에서 한국 고대사를 집중적으로 왜곡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저자 이덕일 선생님은 "역사 침략은 항상 영토 침략의 전초전의 성격을 갖는다"고 강조합니다. "영토 침략의 속셈이 없으면 역사 침략에 나설 이유가 없다"(49)는 것입니다.

 

한사군이란 중국 고대 한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세웠다는 군현의 이름입니다. 조선총독부에서 만든 식민사관의 핵심은 둘입니다. 하나는 한사군 한반도설(고조선 한반도설), 또 하나는 임나일본부설('<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입니다(130). 한마디로, 한반도 북부는 한사군이라는 중국의 식민지, 한반도 남부는 임나일본부라는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것입니다. "한반도 북부에는 한사군이 있었고, 한반도 남부에는 임나일본부가 있었다"는 것, 이것은 지금까지 우리가 주입식으로 배웠던 역사이고, 현재도 배우고 있는 역사입니다!

 

이 두 이론을 가장 먼저 만든 일본인 식민사학자는 "쓰다 소키치"와 "이나바 이와키치"였는데, "해방 후 이병도를 비롯해서 이 땅의 여러 식민사학자들이 이 이론을 그대로 추종하든지 조금 변형시켜서 현재까지 식민사관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131)이 이 책이 폭로하는 골자입니다. 식민사관이 해방 후 어떻게 주류 사학이 되었는지, 그 역사와 그들의 생존술도 함께 파헤쳤습니다. "대한민국의 외형은 독립되었지만 그 정신세계, 즉 역사관은 아직도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가 장악하고 있다"(133)는 사실을 심각하게 직시해야 합니다. <우리 안의 식민사관>은 실명을 직접 거론하면 현재도 한국 고대사학계를 장악하고 있는 식민사관 후예들의 정체를 폭노하고 있는데, "식민사학은 극복되었다"고 말하는 역사학자는 그대로 식민사학자로 분류하면 정확하다고 일러줍니다.

 

식민사관은 학문이 아니라 정치 논리입니다. 독립 전쟁의 최전선이기도 했던 우리의 고대사는 지금도 격렬한 전쟁터입니다. 이것은 학문 논쟁이 아니라 정치 논쟁이며, 역사 전쟁은 곧 영토 전쟁으로 이어진다는 경고를 무섭게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진짜 적은 외부에 있지 않고 내부에 있습니다. 역사를 바로 세워야 할 장본인들, 그 역사권력 한복판에 있습니다. 총론으로는 식민사학을 비판하는 척 하면서 진짜로 식민사학을 비판하는 학자가 등장하면 온갖 수단을 동원해 학계에서 추방하고 매장시키는 그들의 수법에 더 이상 놀아나서도 안 됩니다.  

 

"일제가 가장 무서워한 것이 바로 제대로 된 역사였다"(381)는 한마디가 가슴을 찌릅니다. 자비를 들여가며 모진 핍박을 받아가며 "독립운동을 하는 자세"로 우리 역사 바로세우기에 앞장서고 계시는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역사 주권을 제대로 행사해야 영토 주권도 제대로 행사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제 한국의 고대사는 역사학자들만의 전쟁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전쟁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많이 많이 읽혀지기를 소망합니다. 바로 지금 모든 국민이 나서서 빼앗긴 역사해석권을 속히 되찾지 않으면 치욕의 역사가 반복될 것이라는 경고의 나팔 소리가 들려오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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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 꿈결 클래식 2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백정국 옮김, 김정진 그림 / 꿈결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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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내세울 것 없는 집안 배경과 일천한 교육 그리고 이를 무색하게 하는 빼어난 작가적 역량으로 살아서는 각광과 질투, 죽어서는 끊임없는 숭배와 간헐적인 의심의 대상이 된 영국의 극작가 겸 시인"(표지 앞날개 中에서).

 

 

셰익스피어 의 4대 비극을 열심히 암기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상식이었으니까요. 사랑하는 두 남녀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로미오와 줄리엣>이 그 4대 비극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 때 다소 의외였을 뿐, 셰익스피어가 세계적인 대문호라는 것과 4대 비극이 명작이라는 데에 이의를 제기할 마음 따위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명성이나 익숙함에 견주어보면 그의 작품을 제대로 읽은 적이 없다는 것이 함정입니다.

 

특히 <햄릿>은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로다", "죽느냐 사느냐, 이것이 문제로다"라는 명대사가 친숙한데, 햄릿이 왜 고뇌하는지, 어떤 맥락에서 그런 말을 내뱉은 것인지는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햄릿>의 독서는 아는 사람이긴 한데 아는 사이가 아니었던 셰익스피어와의 본격적인 만남이었다고 의미를 부여해두고 싶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셰익스피어가 실존 인물이 아니라는 등 그에 관한 여러 미스테리가 제기되곤 하는데, 꿈결에서 발간한 <햄릿>은 "해제"를 통해 셰익스피어의 삶과 작품을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길잡이 역할을 해줍니다.

 

 

 

  

"이 미지의 세계를 방황하는 영혼인 아버지의 유령이 자신의 핏줄인 아들 햄릿을 인식론적, 존재론적 고통 속에 방황하게 하는 것이 햄릿의 비극이다. 햄릿의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독백은 존재와 무, 삶과 죽음, 결행과 인내, 행동과 무행동, 사랑과 미움, 권리와 의무의 복잡한 관계 속에서 자기 자리를 찾아보려고 인간힘을 쓰는 그의 고뇌를 상징적으로 함축한다"(309).

 

 

<햄릿>의 기본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햄릿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의 삼촌이 왕위를 계승하면서 어머니는 삼촌의 아내가 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의 유령이 나타나 자신은 동생에게 독살되었음을 알리며 그에게 복수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습니다. 그때부터 햄릿 왕자는 비극적 운명의 소용돌이 속으로 삼켜집니다.

 

누군가는 고뇌하는 햄릿을 두고 우유부단하다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이 책의 역자이며 숭실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이기도 한 "백정국" 교수님은 <햄릿>을 읽는 몇 가지 관점을 소개합니다. 첫째는, "정신분석학적 접근"입니다. "이 접근법은 햄릿을 아버지-어머니-아들이라는 심리 역동적 삼각관계에 위치시키고, 남성의 어머니에 대한 무의식적인 성적 애착을 가리키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개념을 사용해 그의 행동을 마치 하나의 임상 사례처럼 분석"(313)합니다. 두 번째 관점은, "페미니스트적 접근"입니다. "이 접근법으로 <햄릿>을 읽으면 엘시노어에 불행을 가져온 근본적인 원인 제공자는 거트루드며, 여성은 가부장적 사회 질서를 위협하기 때문에 감시되고 통제되어야 하는 대상이"(315) 됩니다. 세 번째는, "신역사주의적 접근"인데, "제왕 살해의 무대 연출을 용납했던 것은 정교한 통치술의 일부였다(319)는 해석 등이 이러한 관점에 해당합니다.

 

셰익스피어가 그것을 의도하지 않았다 해도, 여러 관점의 텍스트로 읽힌다는 것은 그만큼 그의 통찰이 인생과 사람을 관통하기 때문이라고 결론지어도 될까요?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의 유일한 아들인 "햄닛"의 죽음이 "셰익스피어로 하여금 인간의 실존적 한계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만들었다"(310)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다.

변덕스런 운명이 쏘아 대는 돌덩이와 화살을

맞아야 하나, 아니면 고난의 파도에 맞서

무기를 들고 대항하다 끝장을 내야 하나.

어느 쪽이 더 고결한가. 죽는 건-잠드는 것,

그뿐이다. 잠 한숨으로 윣니이 상속받은

고뇌와 피할 길 없는 숯너 가지의 불화를

마감한다 한다면, 그건 애써 간구해야 할

귀결이다. 죽는 건, 잠드는 것.

잠들면, 아마도 꿈을 꾸겠지-아, 거슬린다.

이 뒤엉킨 삶의 허물을 떨쳐 냈을 때

죽음이란 잠 속으로 어떤 꿈이 찾아올지

생각하니 멈출 수밖에 없다-불행한 삶일망정

그토록 질질 끄는 것도 그러한 까닭이다.

세월의 채찍과 멸시, 압제자의 횡포,

거만한 자의 욕설, 모멸당한 사랑의 아름,

늑장 법집행, 관청의 오만불손, 겸손한

공로자가 하찮은 놈한테 받는 발길질,

이 모든 걸 그 뉘라 감당하겠는가,

단검 한 자루면 자신의 빛을 조용히

청산할 수 있는데? 그 뉘라 고달픈 인생의

짐을 걸머지고 투덜대며 땀을 흘리겠는가.

죽음 후의 그 무엇, 어떤 나그네도 경계를

넘어 돌아오지 못한 미지의 나라에 대한

두려움이, 의지를 곤경에 빠뜨리고 알지 못하는

곳으로 날아가느니 차라리 익숙한 악행을

참아 내도록 만들지 않는다면?

그걸 되새기기에 우린 전부 겁쟁이가 되고,

결단에 고유의 낯빛은

창백한 상념에 사로잡혀 병색이 완연하고,

지취적 포부 또한 결정적인 높이와 순간에

진로가 틀어져 실천이란 명예로운

이름을 상실하는 것이다. 아니, 잠깐,

아름다운 오필리아! 요정이여, 기도 속에

내 모든 죄를 기억해 주오(126-128).

줄거리만 보면 막장 치정이 빚어낸 궁궐암투극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이야기에 몰입하게 만드는 오락성과 셰익스피어만 특유의 "비유 언어의 풍미"가 이 작품을 세계적인 반열에 올려놓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셰익스피어와 관련해 남아 있는 기록과 기억의 파편들을 더듬어 살펴보면, 보르헤스의 낭만적인 상상과는 달리, 세상의 흐름에 민감하고, 권력의 속성을 알고, 사업 수완이 뛰어나고, 성공에 대한 야심이 충만하고, 손해 보는 것을 싫어하고, 재능과 능력을 발휘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던 민첩한 사나이가 머릿속에 그려진다. 대문호의 삶에서 기대하는 어떤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 같은 것은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279).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사실은 <햄릿>이 셰익스피어의 순수 창작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셰익스피어의 극작품 중 상당수는 그가 집필할 당시 이미 존재하던 동일한 줄거리의 이야기들에 많은 신세를 지고 있"는데, "당시는 소위 지적소유권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던, 남의 글이나 작품을 아무 죄책감 없이 '편하게' 가져다 쓰던 시대"(292)였다고 합니다. <원형 햄릿>말고도 "삭소의 앰릿 이야기"가 존재하는데, 이 책에 상당히 자세한 줄거리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셰익스피어가 이미 존재하는 이야기를 어떻게 각색하고 어떻게 극적 변용을 시켰는지 비교하는 읽는 재미가 있습니다.

 

이 밖에도 이 책은 "210여 개의 각주"를 통해 <햄릿>을 보다 더 깊이 읽을 수 있도록 돕습니다. 역자는 "다른 사람들이 명작이라고 치켜세운다고 덩달아 명작이라고 부르는 것은 지적 굴종이다"(320)라고 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햄릿>을 비판적으로 읽기 원하는 독자들에게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습니다. 일단 번역이 아주 유려합니다. 잘 읽히면서, 시적 아름다움을 풍성하게 느낄 수 있고, 각주를 통해 보다 정확한 의미에 접근해볼 수도 있습니다. 번역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준 작품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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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집 셀프 인테리어 - 페인팅부터 욕실 개조까지 내 손으로 고친 집 20
박진영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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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인팅부터 욕실 개조까지 내 손으로 고친 집 20"

 

 

사랑하는 '님'이 생기면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알콩달콩 살아가는 꿈을 꾸지요. 아늑한 보금자리에 대한 소망이 가장 간절할 때가 이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제 친구는 신혼집 계약하고 이사갈 때까지 매일 신랑과 차를 타고 가 그 집을 바라보며 이런 저런 꿈을 설계했다고 합니다. 신혼집 꾸미기는 고된 노동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가장 달달한 놀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셀프 인테리어의 가장 큰 매력은 적은 비용을 들여 원하는 스타일대로 집을 꾸밀 수 있다는 점이다"(5)

 

 

신혼집 "셀프 인테리어"에 도전하는 것은 아무래도 짝궁들만의 개성을 담고 싶어서겠지요. 소박하게 시작하는 대신에 꿈꿨던 공간을 현실화하는 것! 문제는 한정된 예산 속에서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인 인테리어를 완성해내느냐 하는 것입니다. <신혼집 셀프 인테리어>는 페인팅부터 욕실 개조까지 "내 손으로 고친 신혼집 20"을 소개합니다. 할 수 있는 부분만 직접 손 본 집도 있고, 모든 부분을 직접 완성한 집도 있고, 부부가 모든 과정을 주도해서 리모델링한 집도 있지만, 누누이 강조하는 것은 셀프 인테리어가 "결코 만만한 작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의욕만 앞서 나갔다가는 오히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늪에 빠져들 위험도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적은 비용으로 최고의 결과물을 얻으려면 실전에 들어가기 전에 준비부터 꼼꼼하게 해야" 하며, 이 책은 바로 그 준비 과정을 도와주는, 실전을 위한 훈련 교재와 같은 책입니다. 기본에서 큰 그림까지 꼼꼼하게 일러주는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면 이 책을 꼭 참고해보라고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기본적인 마감재와 페인팅만으로도 집은 확 달라질 수 있다.

 

 

인테리어 관련 책을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은, 인테리어는 아이디어라는 것입니다. 작은 아이디어 하나가 똑같은 면적, 똑같은 낡은 집을 전혀 새로운 공간으로 뒤바꾸어 놓을 수 있습니다. 마치 해리포터의 마법처럼 말입니다. <신혼집 셀프 인테리어>는 문에 바르는 페인팅 색깔 하나, 벽에 붙이는 마감재 하나, 작은 공간 배치 하나가 집의 분위기를 어떻게 바꾸어 놓을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특히 전에는 새로 이사를 가면 도배를 하는 것이 관례처럼 여겨졌는데, 요즘은 페인팅이 대세라고 합니다. "냄새가 거의 안 나는 친환경 페인트를 사용하면 하루 이틀 만에 완전히 다른 스타일로 벽을 바꿀 수 있고 페인트 색을 취향대로 조색할 수 있어서 벽지에서는 찾을 수 없는 색감을 집 안에 표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특별한 기술 없이 시간과 노동력을 들이면 셀프로 누구나 시도해볼 수 있다는 점도 페인티의 매력"이라고 꼽아줍니다. 간단한 페인팅으로 집에 포인트를 주는 인테리어, 도전해볼만 하다 싶습니다.



 

 

 

"부부의 생활 패턴과 취향에 맞게 공간을 꼼꼼하게 설계하자"

 

 

이 책에서 본 신혼집 셀프 인테리어 중에 우리집에 꼭 적용해보고 싶은 것은 "(베란다) 문 리폼"과 "슬라이딩 도어"입니다. 뒷베란다 문에 레터링 시트지 하나만 잘 붙여도 집안 분위기가 싹 달라지는데, 14평 아파트인데 거실 겸 침실로 들어가는 입구에 망입유리를 끼운 슬라이딩 도어를 달아두니 마치 호텔 객실 같은 분위기가 연출됩니다!

 

<신혼집 셀프 인테리어>를 보니 무조건 잘 지어진 넓은 집을 선호할 것이 아니라, 작고 낡은 집을 구해 내가 꿈꾸는 공간으로 개조해나가는 것도 꿈꿔볼 만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꼭 신혼집이 아니더라도 셀프 인테리어는 한꺼번에 모든 것을 완성하려 욕심부리지 말고 시간을 가지고 여유있게 진행하는 것이 실수를 줄이는 방법이다 싶습니다. 인테리어 아이디어에서 개조의 실제 모델까지 한 권에 담아낸 <신혼집 셀프 인테리어>는 말합니다. "당신의 집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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