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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 철학 - 인생이 허기질 때
오시로 신야 지음, 박현미 옮김, 오가와 히토시 감수 / 미디어윌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철학의 최종 목적은 선하게 사는 데 있다."
학문은 깊지만 가르치는 능력은 좀 부족한 교수님도 많습니다. <3분 철학>이 철학을 가르치는 교수님이라면, 제가 만난 교수님 중에 철학을 가장 흥미롭게 가르쳐준 분이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철학하면 제 머릿속에는 "심오하다"는 이미지가 각인되어 있습니다. 한때 철학사를 따라 철학자들의 깊은 사유를 정복해보자 야심찬 계획을 세운 적도 있지만, 암호처럼 읽히는 원전을 앞에 매번 좌절하고 말았습니다.
처음엔 <3분 철학>이라는 제목 때문에 이 책을 좀 가볍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굉장히 쉽게 읽히면서도, 철학 연표가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그려지고, 각각의 철학자들이 말하고자 했던 주요 논점이 한 눈에 파악되니 심봉사가 눈을 뜨는 기분이었습니다. 조각조각 흐트러져있던 철학 지식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기분, 정말 최고였습니다!
<3분 철학>은 철학자들이 사유했던 주요 쟁점을 한 문장의 질문으로 요약했습니다. 철학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묻는 학문이라면, 철학자들이 탐구하고자 했던 삶의 문제가 흥미로운 질문으로 제시됩니다. 그중에 제 관심을 끌었던 질문들은 이렇습니다.
진정한 자신이란 무엇인가?(소크라테스)
인생에 목적이란 게 있을까?(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모르는 사람이나 사물을 어떻게 하면 믿을 수 있나?(아우렐리우스 아우쿠스티누스)
제멋대로 사는 것이 자유인가?(이마누엘 칸트)
즐거움만을 추구하는 건 옳지 않은가?(제러미 벤담)
멋진 인생, 별 볼일 없는 인생이 있는 걸까?(프리드리히 니체)
계획대로 살아가는 일이 가능할까?(장 폴 사르트르)
자신 답다는 건 과연 존재하는가?(미셸 푸코)
<3분 철학>은 철학자들마다 답을 얻고자 했던 질문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런 맥락에서 볼 때, 모든 학문이 그렇겠지만 특히 철학을 한다는 것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내가 던지고 있는 질문은 무엇인가?", "내가 던져야 할 질문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생겨났습니다.
저자는 철학자들이 탐구해 온 중요한 주제 중 하나가 "자유"라고 말합니다. "자유는 철학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입니다. 철학은 '자유란 무엇인가'를 연구하는 학문입니다"(127). 이런 관점에서 철학자들의 사유와 사상을 비교해 보는 것도 꽤 흥미로운 독서였습니다. 인상에 남는 철학자들의 대답은 이것이었습니다. 에피쿠로스는 "주변 사람들의 기대에 휘둘린 인생을 살지 말라"(39)고 조언합니다. "정원 속에서 누리는 소소한 행복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쾌락이고, 커다란 목표 따위는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가르침"(41)입니다. 이 책에서는 마르틴 루터나 다윈, 프로이드와 같은 인물의 사상도 소개하는데, 사람은 자기를 추구할수록 왜 자기 이외의 뭔가를 배신하게 되는지를 간파한 루터, "공동"이야말로 자유이며, "제멋대로 행동하는 사람은 사실은 자유롭지 않다"(127)는 헤겔, 인간의 본질은 인간 자신이 만드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자유라고 한 샤르트르(188), "현대 권력은 사람들에게 자신답게 살라고 강요"(212)한다는 푸코의 철학은 더 깊이 공부해보고 싶은 주제이기도 합니다.
<3분 철학>은 철학자들의 사상을 나열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철학을 통해 스스로의 삶을 반성하고 사유해볼 수 있도록 돕습니다. "우리는 어떤 식으로 살아가건 현재의 삶 이외에 다른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에서 자유입니다. 하지만 달리 말하면 현재와는 다른 삶의 가능성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불안해집니다. 그렇기에 지금의 삶 이외의 다른 삶의 유혹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146)라는 키르케고르의 설명은 왜 우리 앞에 열려있는 많은 가능성들이 우리에게 불안의 요소가 될수밖에 없는지 생각해볼 수 있도록 해주고, "살아갈 힘을 잃은 사람일수록 멋진 인생이라는 거짓에 매달린다"(157)는 니체의 말은 열정 뒤에 숨어 있는 나의 나약함을 정직하게 돌아보게 해주었습니다.
이밖에도 <3분 철학>에는 철학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도 많습니다. 헤겔의 사상은 동시대인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신의 강의 시간을 헤겔과 같은 시간에 설정해서 수강자가 한 명도 없었던 철학자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쇼펜하우어라고 합니다. 요즘 현대인들은 세계 곳곳을 누비며 다양하게 견문을 넓히는 삶이 풍요로운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여행이 유행이기도 합니다. 이런 생각을 가진 현대인들에게 저자는 소크라테스의 삶을 이야기합니다. 소크라테스는 태어난 곳을 평생 동안 거의 벗어나지 않고 살았지만, 그의 인생이 시시하다거나 빈약하다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생 그 작은 유대 땅을 한 번도 떠난 본 적이 없는데, (신앙적인 측면이 아니더라도) 예수는 인류가 무시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저자는 철학이란 "어떻게 살아야 선하게 사는 것일까?"를 묻는 학문이며, 그것이 철학의 최종 목적이라고 말합니다. 프랑스의 시인이자 사상가였던 폴 발레리는 "용기를 내어서 그대가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머지 않아 그대는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성찰하지 않는 인생은 살 가치가 없다”고 했습니다. 혼돈의 시대, 무엇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철학하는 힘이 아닌가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