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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세트] 백년법 (상,하) : 제66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 대상 수상
야마다 무네키 지음 / 애플북스 / 2014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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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과 사의 경계를 잃은 자에게 영원한 삶이란 죽음과 동일한 의미지"(하, 120).
인류는 오랫동안 불로장생의 꿈을 꾸어왔습니다. 에덴동산을 잃어버린 인류의 역사는 죽음을 정복하기 위한 투쟁의 역사일지도 모릅니다. 누군가는 죽음이라는 불합리 앞에 자살이 가장 올바른 선택이라 주장하기도 했고, 누군가는 자손을 통해, 업적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영원히 역사에 새기고자 분투하기도 했습니다. 인간이 죽는 것이 늙는 것 때문이니 노화를 막으면 영원히 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논리로 과학자들은 죽음 자체가 아니라 노화를 억제하는 방법을 연구한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만일 간단한 시술만으로 영원히 젊음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 시술을 받으시겠습니까? 선택은 오롯이 개인의 몫이라고 한다면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제66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 대상의 영예를 안은 <백년법>은 "인간 불로화"를 정복한 미래 사회를 다루고 있습니다. 깊이 고민하지 않고 영원한 젊음을 덥석 받아들인 인류에게 닥친 문제. 그것은 바로 극복했다고 생각했던 죽음의 문제였습니다.
영원한 젊음을 얻은 인류는 축배를 들지 못했습니다. HAVI(일간 불로화 바이러스 접종)를 도입한 뒤, 일본 사회에 젊은 피는 줄어들고 오래된 피만 고이는 동맥경화 현상이 나타나자 국가는 새로운 고민에 빠집니다. 정책결정자들은 처음으로 HAVI 시술을 도입한 미국에서 실시하고 있는 백년법이 일본에서도 실시되어야 한다는 확신을 갖습니다. "백년법"이란 "생존제한법", 즉 "HAVI를 받고 100년이 지난 시점에 '생존권을 비롯한 기본적 인권은 모두 포기해야 한다"는 법률입니다. 다시 말해, HAVI 시술로 영원한 젊음을 얻었다 해도 시술 받은지 100년이 지나면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부는 안락사를 위한 전용 시설을 건설하고, 만일 이를 거부하는 '거부자'는 아이디를 몰수 당하기 때문에 생활 자체가 불가능해지며 죽을 때까지 도망자 신세로 지내거나 발각되면 강제로 안락사에 처해지게 됩니다.
백년법 시행에 불안을 느끼는 국민 대 정책 결정을 해야 하는 정부. 정치적 입지를 잃고 싶지 않은 책임자는 백년법을 국민 찬반투표에 부치고 결국 백년법 동결이라는 선택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백년법 동결 된 뒤 전국에서 자살과 살인 사건이 늘어나고, 정체 모를 광기와 불안이 사회를 뒤덮습니다. 생물학적인 영원한 젊음을 얻었지만 생명의 광채는 잃어버린 일본. 이제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백년법>은 영원한 젊음을 얻게 되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사회적 문제들이 깊이 있게 다뤄지고 있습니다. 먼저 가족의 리셋문제. 결혼을 해서 자녀를 낳아도 자녀가 20대가 되면 겉모습으로는 누가 부모이고 누가 자녀인지 알 수 없게 됩니다. 결국 자녀가 독립을 하면서 가족은 자연히 분해됩니다. HAVI 시술은 순전히 본인의 선택이라고 하지만, 도시구조와 생활용품도 사람들이 HAVI를 받은 걸 전제로 하기 때문에 노인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세상이 됩니다(상, 72). 겉모습은 똑같은 20대라고 해도 공유하는 추억과 삶의 경험이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개인은 점점 더 고립되어 갑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인구증가에 따른 일자리 부족과 사회의 노화입니다. "생존제한법이 없으면 옛날 사람들이 사회에 영원히 존재하게 됩니다. 그게 가장 큰 문제죠. 육체는 늙지 않아도 정신은 늙습니다. 마음이 늙은 사람은 더는 혁신을 이루어낼 수 없죠. 새로운 시대에 대응하지 못합니다"(상, 94).
물론 사고사하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여 늙고 병들어 죽는 것이 더 나을까요, 아니면 HAVI 시술을 받고 100년 동안 젊음을 유지하다가 강제적인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더 나을까요? 언제 어디서 맞닥뜨릴지 모르는 현실적인 죽음과, 죽을 날짜를 세고 있다 받아들여야만 하는 죽음, 어떤 것이 더 생기 있는 삶을 사는 길일까요?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인간에게 장수의 복을 주실 때, 형통의 복도 함께 약속해주십니다. 그 삶이 형통하지 않다면 오래 사는 것이 오히려 저주가 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백년법>을 보면, 영원한 젊음을 얻은 사람들에게서 활력이나 생기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잃어버린 죽음을 좇습니다. "죽음의 상실은 삶의 상실이나 다름 없어"(상, 302).
<백년법>은 우리가 예측할 수 있는 미래사회를 살짝 엿보면서 죽음이라는 묵직한 문제를 독자에게 던져줍니다. 죽음이라는 결말이 있어 삶이 더 아름답게 빛나고, 슬픈 이별이 있어 사랑이 더 애틋해지는 역설, 그게 인생의 묘미가 아닐까 생각되기도 합니다. 일본 사회와 비교되며 자주 등장하는 한국 때문에 더 친근감이 드는 소설, 현재의 모습과 다른 듯 닮은 미래, 영원한 젊음이라는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의 고뇌와 갈등, 매력적인 등장인물들이 상상력을 더욱 자극하는 재밌는 소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