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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예수 붓다 - 그들은 어떻게 살아왔고,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프레데릭 르누아르 지음, 장석훈 옮김 / 판미동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위기를 뜻하는 프랑스어 '크리즈'는 '결정', '판단' 등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는데, 좀 더 살펴보면 '전환점, '결정의 시기'라는 뜻도 들어 있다"(8).
사춘기 시절 두 명의 친구가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는 일이 없었다면 지금 제 삶은 어떻게 달라져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오늘'이라는 시간을 온전히 올인하며 내일을, 미래를 설계하기에 바빴던 친구들이 그렇게 일찍, 그렇게 느닷없이, 너무도 허무하게 이 세상을 떠나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어느 날, 자고 일어나니 친구가 죽었다고. 어느 날, 학교 갔다 돌아오니 친구가 죽었다고. 친구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인생의 덧없음을 가르쳐주었고, 이렇게 허무한 것이 세상이라면 도대체 무얼 위해 살아야 하나 목표가 사라져버린 내 안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뜨겁게 던져졌습니다.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는 철학자이면서 종교사학자인 프랑스의 대표 지성이 우리 앞에 "왜 사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주는 책입니다. 저자는 지금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경제 위기를 맞고 있는 이때가 바로 또하나의 기회하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온 마음과 영혼과 삶을 송두리째 흔드는 삶의 위기가 바로 "왜 사는가?"라는 실존적 물음으로 우리를 데려다 주기 때문입니다. 바로 지금이 그것을 물어야 할 때이고,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입니다. "오늘날, 전 세계 많은 사람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생활양식은 소유하고 축적하며 물건을 끊임없이 신상품으로 바꾸는 것이다. (...) '더 많이 갖는 것이 퇴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비로소 우리는 제대로 된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경제의 의미, 돈의 가치 그리고 사회적 평등과 개인의 행복을 위한 진정한 조건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이다"(10).
'왜 사는가'?란 질문에 삶의 스승 3인이 내놓는 가장 실존적인 대답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는 삶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철학적 탐구의 과정이기도 하지만, 저자 자신의 내밀하고 치열한 구도의 산물이기도 합니다. 저자 자신이 누구보다 절실하게 "왜 사는가"에 대한 답을 찾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라는 3인의 스승으로부터 답을 찾았다고 고백합니다. 저자 자신이 그 답을 얻어가는 과정을 고백적으로 기록했다면 훨씬 흥미진진한 책이 될 뻔 했는데, 이 책은 그 3인의 스승을 심층 분석한 '자료'가 되고 말았다는 것이 좀 아쉽습니다. 저자는 학문적인 객관성을 담보로 어떠한 오해나 편견 없이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의 삶과 가르침을 독자에게 전해주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먼저는, 3인의 스승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탄생부터 죽음까지 파헤치며, 2부에서는 3인의 스승이 가르친 것은 무엇이었는지 탐구합니다.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의 행적과 가르침이 잘 정리된 노트처럼 정리되어 있는데, 이 때문에 이 책이 다소 지루하게 느껴지는 면도 좀 있습니다. 그러나 대단히 흥미로운 부분은 저자가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며 3인의 스승을 비교 분석한 지점입니다.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는 차이점도 있지만 공통점도 참 많다는 것이 흥미로운데, 예를 들면, 이들 가운데 그 누구도 직접 글을 남기지 않고 산 교육의 방식, 즉 모두 '삶'으로 가르쳤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저자가 전 지구적인 위기를 맞은 지금 이 3인의 스승이 우리에게 어떤 답을 줄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된 것도 이들이 '말'로만이 아니라, 그들이 자신의 삶으로, 전 존재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이 세 사람이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까닭은 그들의 말과 행동에서 진정성이 풍기며 그 말과 행동이 오롯이 진리를 구하기 때문이다"(147).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의 삶과 가르침을 비교분석한 내용 중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부분 중 하나는, 예수와 붓다의 대조적인 모습입니다. 불교에서는 싯다르타가 신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묘사된 그의 모습은 오히려 신에 가깝고, 기독교에서는 예수가 이 땅에 사람으로 오신 신이라고 하면서도 묘사된 그의 모습은 대단히 인간적이라는 사실입니다. "불교에서는 싯다르타가 그저 한 인간에 불과하다고 말하면서도, 그를 묘사할 때는 흐트러짐 하나 없고 항상 평정을 유지하는, 인간이라고는 볼 수 없는 초인 같다. 반대로 기독교에서는 예수가 신이자 인간인 신비한 존재라고 말하면서 복음서에서 그를 묘사할 때는 너무도 인간적이다. 슬픔, 기쁨, 낙심, 격정, 연민, 분노 등과 같은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인간 말이다. 종종 눈물도 보인다. 놀라운 역설이 아닐 수 없다"(120). 냉철한 지성을 자랑하는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신의 신탁을 사명으로 받아들인 영적인 사람(?)이었다는 것도 처음 안 사실입니다. 소크라테스를 연구하고 말하는 학자들이 그에게서 이런 점을 거세해버렸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의 공통점 중에서는 세 사람 다 먹기를 즐기는 인물이었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다른 사람과 더불어 음식을 기꺼이 즐길 줄 아는 것. 달리 말해 그것은 세상에 충실할 때는 충실하고 세상과 거리를 둘 때는 온전히 거리를 둘 수 있는 것을 말한다"(141).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는 모두 안주하지 않는 삶을 살았고, 세상에 균열을 내는 선구자였습니다. 어느 시대이고 기존 질서를 위협하는 자는 제거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와 예수는 제거대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소크라테스와 예수는 재판과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리곤 처형당했다(179). 여기서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붓다는 식중독으로 여든 살에 세상을 떠났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 이 3인의 스승을 가르는 결정적인 행적 중에 하나는, "붓다와 소크라테스의 경우엔 죽음에서 모든 것이 끝났"(206)지만, 예수는 다시 살아났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는 제자들이 그 스승의 부활을 믿는, 유일한 영적 스승이요, 현자요, 한 종교의 창시자인 셈이다. 실제로 살았던 피와 살을 가진 영적 스승이 죽었다 살아났다고 하는 이야기는 그 어디에도 없다"(209). 예수의 부활은 증인이 목격담을 전한 사실로서, 그 사실을 믿고 안 믿고는 온전히 개인의 믿음의 문제입니다.
"성공한 삶이란 진리를 실천에 옮기는 삶이다"(371).
소크라테스는 지혜를 통해 무지에서 사람들을 구하려 했고, 붓다는 깨달음을 통해 윤회에서 사람들을 구하려 했고, 예수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진리를 증언함으로 사람들이 영생을 얻게 하려 했습니다. 세 사람 모두 우리가 진리를 알기 바랬는데, 소크라테스와 붓다는 인간이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것, 깨달으려 노력해야 함을 강조했다면, 예수는 그 자신이 진리이고, 진리는 인간의 노력으로 얻어지는 게 아니라 하늘부터 즉, 계시로 주어지는 것임을 강조했다는 것도 차이점입니다.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는 우리가 진리를 알면 그 앎으로 인해 우리가 바르게 행동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바른 행동이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기도 한데, 소크라테스에게 최상의 덕은 "정의"이며, 붓다에겐 "자비", 예수에겐 "사랑"이었습니다(321). 여기서 소크라테스는 왜 사랑보다 정의를 더 최고의 덕으로 꼽았는지, 붓다의 자비와 예수의 사랑은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논의도 흥미로웠습니다. 세 사람의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3인의 스승이 무소유나 또는 공동소유의 삶을 살며 우리에게 강조하고자 했던 것도 삶이란 "소유보다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 책의 저자는 "우리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존재'의 의미를 탐구하며 개인적이든 사회적이든 책임 의식을 갖춰 나가는 것"(17)이라고 말합니다. 존재의 의미, 다시 말해 "나는 왜 사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참 지독하게 고민했던 문제이고, 길을 찾았다 싶은 순간에도, 또 답을 얻었다 싶은 순간에도, 어쩌면 삶을 마치는 그 순간까지 우리가 계속해서 사투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3인의 스승 가운데 예수에게서 저는 그 답을 찾았고, 그분을 따라가는 삶을 살려고 오늘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왜 사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문제로 잠 못 드는 밤을 보내고 있다면, 답을 얻지 못해 초점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면, 길 위에 서서 오늘도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이 책을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직접적인 해답은 얻을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더 치열한 싸움 속으로 우리를 데려다 줄 것입니다. 거기에 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사의 각오로 덤벼들지 않는다면 우리는 계속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 채 세상이 요동치는 대로 떠다닐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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