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Your BooK 네이티브가 사용하는 영어패턴은 따로있다 I'm Your BooK 시리즈
Jaymax Lee 지음 / 삼영서관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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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초보를 위한 왕기초 패턴 책"

 

학교 다닐 때 좀 열심히 했으면 좋았는데, 시험 스트레스가 없어서 그런지 뒤늦게 영어를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시험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소통을 위한 도구로 말입니다. 칠순을 맞으신 엄마에게 큰딸이 해외 여행을 선물하겠다고 큰소리를 쳤는데, 영어 한마디 변변히 하지 못하는 실력이라 걱정이 앞섭니다. 좋은 어플도 많고, 또 가이드가 있는 패키지 여행을 가면 된다고 마음을 다독이며 욕심을 버리고 정말 간단한 몇 마디 말이라도 확실하게 익혀두자는 목표로 이런 저런 책을 보는 중입니다. "네이티브가 사용하는 영어패턴은 따로 있다"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 <I'm Your Book>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쉬운 왕기초 패턴 책"이라고 자기 소개를 합니다.




 

 

 <I'm Your Book>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가장 필수적이면서도 쉬운 회화패턴을 연습"하여 영어화회의 기본 틀을 탄탄하게 다지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이 책을 보니 필리핀으로 단기선교를 갔을 때가 기억에 났습니다. 영어에 주눅이 든 저는 가급적 입을 열지 않으리라 다짐을 하고 줄곧 침묵을 지켰는데, 한 친구는 쉴 새 없이 필리핀 친구들과 대화를 시도하고 계속해서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친구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왜 저렇게 단순한 문장조차 자신있게 말하지 못하나 하는 자책과 함께, 여행을 하며 사용하게 되는 간단한 회화는 그리 어려운 문장을 구사할 필요가 없구나 깨달았던 적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 가르쳐주는 왕기초 영어 패턴을 찬찬히 살펴보며 속으로 '맞아, 그때 이 말이 하고 싶었는데 이 단순한 문장조차 기억이 나질 않았다' 혼잣말을 했습니다.




 

 

욕심을 버리고 목표를 낮춰잡으니 단순한 패턴 하나를 익히는데도 새로운 재미가 있습니다. 누가 좇아오는 것도 아니고, 시험을 치룰 것도 아니어서 편한 마음으로 패턴 하나씩 외워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이런 말을 하겠구나 머릿속으로 상상을 하며 직접 대화를 하듯 한 문장씩 따라하다 보니 무조건 달달달 암기하려고 노력할 때보다 훨씬 기억에 또렷하게 새겨지는 효과도 있습니다. 이 책에서 다루는 문장은 영어 공부를 좀 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고 바로 그 뜻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쉬운 단어와 문장들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 간단한 문장조차 말이 되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겠지요?


<I'm Your Book>은 먼저 "기본패턴"과 "확장패턴"으로 개념을 잡고 대화문을 통해서 실제 상황을 연습합니다. 한창 공부할 때 같았으면 너무 왕기초 책이라고 가볍게 여겼을지도 모르겠는데, 당장 사용해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보니 이 책의 패턴만 제대로 익혀도 영어 회화에는 어느 정도 자신이 생기겠다 싶은 생각이 듭니다. 하루에 한 문장만이라도 제대로 말하는 연습을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완전 정복에 도전해봐야겠습니다! 어쩐지 이 책은 정복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듭니다. 교재 자체가 처음부터 부담은 확- 덜어주고, 자신감은 확- 높여주도록 기획되었기 때문인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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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이버섯이 내 몸을 청소한다
에구치 후미오 지음, 성백희 옮김 / 전나무숲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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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의 독소를 쓸어내는 팽이버섯의 힘"

 

몸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는 말이 건강을 잃고 나니 비로소 확 와닿습니다. 엄청난 속도로 체중이 불어나고 있는데도 몸에 반응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여러 모로 감당하기 힘든 스트레스 상황이었기 때문에 '에라, 나도 모르겠다'는 심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설픈 다이어트 시도로 몸은 더 만신창이가 됐습니다. 결국 몸에서 이상 신호가 오고 더이상 무시할 수 없는 빨간 불이 켜지고 난 후에야 "이래선 정말 안 되겠다"는 경각심이 생겼습니다.

건강에 관심을 가지고 다이어트 방법을 찾다보니 한 가지 깨달아지는 사실이 있습니다. 건강을 망친 주원인도 식습관이요, 건강을 다시 찾는 비결도 식습관이라는 깨달음입니다. 처음 다이어트를 시작할 때, 무조건 굶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굶으며 운동을 하면 정상 체중이야 언제든지 되찾을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굶는 다이어트를 반복할수록 폭식하는 버릇이 생겨났고, 운동을 해도 전처럼 개운하지 않고 오히려 짜증이 늘었습니다. 결국 요요가 얼마나 무서운지 온몸으로 절실히 깨달은 뒤에야 굶는 다이어트를 포기할 수 있었습니다.

안 먹으려고만 생각하다 잘 먹으려고 목표를 수정하니 그동안 얼마나 잘못된 식습관을 가지고 있었는지 여실히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건강의 첫째 조건은 건강하게 먹고 에너지로 잘 활용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지금은 건강하게 먹는 습관을 들이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팽이버섯이 내 몸을 청소한다>에 관심을 갖은 것도 살을 빼야겠다는 목적보다 내 몸을 건강하게 만들어야겠다는 바람이 더 절실했기 때문입니다. 건강한 먹거리를 섭취하기 전에 독소부터 빼야겠다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팽이버섯이 몸안의 독소를 쓸어내는 효과가 있다고 하니 눈이 번쩍 뜨이더라고요.


 

"버섯이 우리 몸의 청소부라 불리는 이유"(23)


저자가 버섯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말기 암 아버지가 버섯 달인 물을 음용하는 민간요법으로 병에 대한 저항력을 높여 22년을 더 사신 것이 계기였다고 합니다. 버섯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지속한 저자는 버섯의 뛰어난 약효 성분은 바로 '배설력'에 있다고 말합니다. 버섯은 우리 몸의 청소부로 불릴 만큼 체내에 불필요한 요소를 말끔하게 배출시키는 기능이 있다고 합니다(24). 버섯에 들어있는 "버섯키토산"이라는 성분은 "장을 자극해 연동운동을 촉진"할 뿐만 아니라, "비만의 원흉인 피 속의 남아도는 지방을 붙잡아서 변과 함께 배설"(26)시키는데 팽이버섯의 함류량이 버섯 중 최고라고 합니다.


 

 

"3개월이면 내 몸은 다시 태어난다"(29)

 
이 책은 팽이버섯을 하루 100g씩만 꾸준히 섭취하면 몇 주만에 몸의 변화를 확실히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우선 변비부터 해소되고 뱃살부터 빠진다고 하니 꾸준히 실천만 한다면 효과는 금방 확인할 수 있을 듯합니다. 팽이버섯은 많이 먹는다고 효과가 더 좋아지는 것도 아니고, 한꺼번에 많이 먹으면 일시적으로나마 "변이 물러지거나 설사를 일으키는 경우가 있다"고 하니 하루 섭취량은 최대 150g을 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조언합니다(36).



"팽이버섯얼음을 개발하다"(93).

 
이 책은 팽이버섯이 가진 놀라운 효능을 밝히는데, 아마도 많은 독자의 관심을 끄는 것은 요요 현상이 거의 없는 다이어트 효과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구하기도 쉽고, 값도 비싸지 않고, 해독주스처럼 만드는 방법이 번거롭지도 않기 때문에 마음만 먹는다면 누구든지 쉽게 실천할 수 있을 듯합니다. 특별히 삼가해야 하는 음식도 없고 어떤 음식과 함께 먹어도 상관 없지만, 한 가지 "짧게 잘라서 꼭꼭 씹어 먹는 것"만 유의하면 될 듯합니다. "팽이버섯의 세포벽은 매우 단단하기 때문에, 긴 상태 그대로 먹으면 제대로 소화되지 않은 채 변에 섞여서 배출"되기도 하기 때문에, 짧게 잘라 먹어야 흡수율을 높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62-63). 전골 등에는 1/2 정도 길이로, 다른 요리에서는 4등분 정도가 적당하다고 합니다.

이 책에서는 "팽이버섯얼음"이라는 독특한 섭취 방법을 소개합니다. 개발자는 "팽이버섯을 매일 먹으면 혈액이 맑아져서 혈행을 촉진하는 효과가 있음"을 알게 되었는데, 어떻게 하면 더 쉽게 팽이버섯을 섭취하며 효능을 볼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팽이버섯얼음을 만들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팽이버섯 얼음은 팽이버섯과 물을 믹서에 넣고 갈은 뒤, 냄비에 넣고 끓이여 얼음조각처럼 얼린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얼음조각으로 만들어 놓으면 보관하기도 좋고, 매일 3조각 정도를 된장찌개 같은 요리에 넣어먹으면 되니 먹기도 간편합니다. 오히려 이 방법이 귀찮으신 분들은 꼭 이렇게 드시지 않아도 상관 없습니다.

건강과 다이어트에 관해 이런 음식이 효과가 있다, 이런 방법이 효과가 있다고 여기 저기서 많은 선전들을 하는데 팽이버섯 효과는 정말 믿어보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방법이 간단하고, 팽이버섯만 꾸준히 먹어주면 되니 어렵지도 않고, (지금 제게 가장 절실한) 몸안의 피를 맑게 해준다는 약속 때문입니다. 일단 3개월 꾸준히 실천하며 이 책에서 밝히는 팽이버섯의 효과를 온 몸으로 경험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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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고금통의 1 - 오늘을 위한 성찰
이덕일 지음 / 김영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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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통의'(古今通義)는 예나 지금이나 관통하는 의(義)는 같다는 뜻이다(5).


얼마 전에 읽은 소설책에 잊혀지지 않는 장면이 있습니다. 국가 위기를 빌미로 구테타 세력이 하루아침에 정권을 장악하자 그 기세에 놀란 한 정치인이 굴욕적이지만 무릎을 꿇으려 합니다. 그러자 선배 정치인이 "역사를 배우라"고 조언합니다. 그렇게 정권을 잡은 세력은 오래 갈 수 없다는 것을 역사가 가르쳐준다고 말입니다. 또 인간과 원숭이는 DNA가 유사하지만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는데, 원숭이는 "왜?"라는 질문을 하지 못하고, 역사를 성찰할 줄 모른다고 지적하는 인문학 책도 기억이 납니다. 인간은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면 그 인생도 지워진다는 것을 우리는 어려운 책과 이론이 아니어도 알 수 있습니다. <메멘토>나 <내 머리속의 지우개>라는 영화만 봐도 알 수 있으니까요.

<이덕일의 고금통의>는 왜 우리가 역사를 알고 배워야 하는가를 깊이 생각하게 해주는 책입니다. 과거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라고, 이미 지나간 일이라고, 그러니 오늘과 내일에 집중하는 것이 더 지혜롭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올바르게 설정하기 위해서는 내일이 아니라 어제를, 역사를 돌아보아야 한다는 사실을 이 책이 새삼 깨우쳐주었습니다.

이덕일 역사학자의 책은 빠지지 않고 읽으려고 노력하는 독자 중 한 사람입니다. 이덕일 선생님이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가 흥미롭고 새로워서 읽는 재미가 쏠쏠한 이유도 있지만,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고자 하는 열정과 사명이 제 빈곤한 역사의식을 깨워주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풍부한 사료와 냉철한 논리를 바탕으로 역사의 진실을 추적하는 선생님의 글은 거짓으로 덧칠해진 역사의 외피를 날카롭게 걷어내고, 우리가 잃고 있던 자긍심을 찾아줍니다. 지금 중국은 "국가적 차원에서 조직적이고 치밀하게 역사와 영토 뺏기에 나서고 있다"(15)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다른 나라의 역사 왜곡을 바로잡기는 커녕 우리나라 역사 교과서조차 일제식민 사학의 틀을 말끔히 털어내지 못하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입니다. 이 책에 "싸우지도 않고 잃어버린 섬"이란 글에 보면, "백두산 반쪽을 중국에 넘겨준 데 이어" 1990년 북한이 옛 소련과 영토 조약을 체결하며 "녹둔도"이라는 섬을 러시아에 넘겨주었다고 한탄합니다. "박지원이 [열하일기] <도강록>에서 '조선의 옛 강토는 싸우지도 않고 오그라들었다"라는 한탄"(89)을 똑같이 토해내며 말입니다. 지금 동북아는 역사 전쟁, 영토 전쟁이 치열한데 우리는 그 싸움조차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일제식민 사학의 잔재를 밝히고 반도사관을 극복하기 위해 붓으로 싸우고 있는 이덕일 선생님과 같은 역사학자가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이덕일의 고금통의>는 짧은 역사칼럼 형식의 글을 모은 것인데, 역사에 비추어 오늘을 반성하고 내일로 향하는 길을 모색하는 책입니다. 글은 총 5개의 카테고리(진실은 힘이 된다, 어제의 마음으로 오늘을, 사람에게서 길을, 역사 속 자기 경영, 어떻게 살 것인가)로 나뉘어입니다. 이 책을 통해 우리 역사에 대해 새롭게 배우며 흥미를 가지된 부분은 "고인돌 문화"입니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 고인돌의 절반에 육박하는 3만여 기가 군집하고 있는 고인돌 왕국"인데, "고인돌은 고조선이 만주와 한반도 전체를 아울렀던 대제국임을 나타내는 유물의 하나"(19)라고 설명합니다. 다시 말해, 고조선이 대륙의 지배자였음을 말해주는 유물이라는 것입니다. 또 "유럽에 고인돌과 함께 청동기를 전한 민족"(67)이 우리 선조들이라는 주장도 흥미로웠습니다. 영국의 "스톤헨지 근처 에이번 강 주변 수십 기의 무덤의 주인공이 청동기 문화를 갖고 영국으로 들어온 아시아 계열 사람이라는 연구 결과"(67)가 놀랍습니다.

그동안 유럽 여행을 꿈꾸며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이나 영국의 대영 박물관에는 꼭 한 번 가보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알고 보면 세계 3대 박물관으로 꼽히는 이들 박물관은 "이집트나 아시아 지역에서 강탈해 온 유물이 훨씬 더 많은 약탈 박물관"(32)이라는 지적도 이 박물관들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했습니다. "전 지구적 약탈 문화재 반환 운동이 필요한 때"(33)라는 지적도 강탈 당한 채 손놓고 있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주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역사 속 자기 경영"이라는 카테고리에서 읽은 선조들의 독서법이 흥미로웠습니다. 정사를 돌보느라 독서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제왕들은 주로 밤 9-11시에 책을 읽어 이것을 '을야지람'(乙夜之覽)이라고 한다는 것, 세종 때에는 사가독서라는 유급 독서 휴가 제도가 있었다는 것, 조조는 누워서 책을 볼 수 있게 책상을 개조했는데 "이 때문에 조조는 누워서 하는 와독서의 원조로 비판받기도 했다"(324)는 이야기 등 재밌는 역사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지구촌 곳곳에 번지고 있는 한류 바람을 바라보며 우리 동이족은 노래와 춤을 좋아하는 흥이 많은 민족이었다는 역사적 기록도 고찰합니다. 옛부터 일할 때 열심히 일하고 놀 때 열심히 노는 민족이었다는 것이 새삼 재밌습니다. 외국에서 생활하다 돌아온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외국에서는 저녁이 되면 갈 데가 없고, TV를 틀어도 볼 것이 없어 심심했다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한류 문화가 우리 민족의 DNA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재밌습니다. <이덕일의 고금통의>를 읽어보면, 대륙을 지배하고 천문강국이었던 우리라면 문화의 한류 뿐 아니라, 역사의 한류, 과학의 한류, 경제의 한류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역사는 예언의 두루마리를 펼치는 것이다"라고 합니다. 역사의 원리는 반복된다는 것입니다. 역사를 알면 미래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덕일의 고금통의>가 말하는 것도 그것입니다. 역사를 기억할 때 새로운 미래를 써나갈 수 있다는 것을 마음에 새기며,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는 무엇인지 진지하게 함께 고민하는 마음으로 이 책이 널리 읽히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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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티컬 처치 - 하나님의 강력한 임재를 회복하라
제임스 맥도날드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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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식만 중시하는 교회, 전통만 따지는 교회, 봉사만 외치는 교회, 감정을 자극하는 교회, 율법 중심의 교회, 성경만 펴는 지루한 교회, 세상을 따라가는 교회, 이 모두는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수평적인 대용물이다. 우리 모두는 수직적 교회를 철저하게 왜곡시키고 변질시켰다"(20).

 무기력한 한국 교회. 슬프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입니다. 누군가는 그런 현실에 좌절하지 말고 절망하지 말고 믿음의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고 하는데, 그 전에 먼저 현실을 직시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문제의 원인이 내게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면 철저히 회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버티컬 처치>는 현대 교회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책입니다. 왜 하나님의 교회가 이토록 무기력한지,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우리가 잘못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짚어주는 책입니다. 저는 한국 교회가 이 책을 함께 읽고 회개의 자리에, 영적 대각성의 자리에 나아오는 꿈을 꾸었습니다.

한때 한국 교회에는 부흥을 위한 컨퍼런스, 세미나, 집회 등이 유행처럼 성행했던 적이 있습니다. 크게 부흥한 교회들이 교회 성장의 비결을 공개하고 나누었습니다. 외국의 유명 교회들도 한국을 찾았습니다. 매년 많은 프로그램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몰리는지 목회는 등한시하고 세미나만 좇아다니는 '중독자'가 있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한창 목회를 배울 때나 저도 많은 세미나를 접해 보았는데, 그때 제가 핵심적으로 배운 것은 이것이었습니다. "이웃의 필요를 살피라. 그 필요를 채워주는 교회가 되라!" 그것이 주님이 우리에게 맡져주신 사명이며, 교회 부흥의 비결이라고 배웠습니다. <버티컬 치치>는 그런 목회철햑과 방향을 가진 교회를 수평적 교회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책은 그런 교회를 향한 매서운 쓴소리입니다. 모든 교회는 수평적이 아니라 수직적 교회, 즉 버티컬 처치(Vertical Church)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우리를 지구 상의 다른 모든 집단과 구별 짓는 결정적인 요인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다"(74).

 

제임스 맥도널드 목사님은 현대 교회가 "복음으로 세상을 물들이기는 커녕 오히려 세상 문화에 깊이 물들어 있"(18)는 이유가 우리가 위를 바라보지 않고 세상이 주는 것과 똑같은 것들만 사람들에게 주려 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교회가 진정 갈망해야 할 것, 교회가 사람들에게 채워줘야 할 것은 오직 하나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교회에서 경험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임재인데, 많은 교회가 그 역할을 하지 못하고, "흔한 자기계발서에서 충분히 얻을 수 있는 것들"을 제공하는데 급급하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먼저 해야 할 일, 아니 교회가 해야 할 일은 오직 하나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는 것,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하는 것인데, 정작 사람들은 교회에 와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지 못한다면, 사람들은 그 어디에서도 "영원을 향한 갈망"을 채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세상이 줄 수 없는 것, 오직 교회만이 줄 수 있는 것을 세상에 주어야 하는데, 교회가 그 일을 감당하지 못함으로써 교회 스스로 세상과의 유일한 차이점을 포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현대의 많은 교회가 무기력함 속에 빠져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가봇, 하나님의 영광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분의 임재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69).

 

여기서 한 가지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은 "편재와 임재"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에 편재해 계십니다. 그러나 <버티컬 처치>는하나님이 어디에나 임재하시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가르쳐줍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적극적인 참여요 역사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며 영향력의 표현이다. 간단히 말해, 임재는 하나님이 이곳에서 지금 당장 역사하신다는 뜻이다"(77).

 

교회는 목적은 언제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어야 하며, 교회 지도자들은 교회가 하는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추구해야 합니다. 만일 교회 지도자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누구도 그 일을 대신해주지 않으며, 교회를 세상 조직들과 구별시키는 단 하나의 요소를 스스로 잃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교회의 존재 목적과 이유를 상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 영혼에 그분에 대한 갈망을 불어넣으셨다. 이 사실을 믿지 않으면 하나님이 이미 주신 초월의 갈망을 다루지 않고 그저 사람들의 흥미를 끄는 데 아까운 시간을 낭비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이 이미 주신 수직적 갈망을 자극하지 않고 수평적인 유익으로 사람들을 꾀려는 전도자들이 참 많다. 수직적 갈망을 깊이 느낄 만큼 익은 자들에게 다가가 그 갈망을 건드려야 할 텐데 많은 전도자가 수평적인 방법에 빠져 있다"(276).

 

오랫 동안 한국 교회의 가장 큰 이슈는 전도, 부흥이었습니다. 선교단체에서 훈련을 받고 온 한 청년은 교회의 존재 목적은 오직 영혼 구원이며, 선교가 사명의 전부라고 주장하며 교회의 다양한 사역을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제임스 맥도널드 목사님은 충격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오늘날 교회가 저지르는 가장 치명적인 오류는 하나님의 영광보다 복음 전도를 더 중요시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140). 영혼 구원이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우위에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 제임스 맥도널드 목사님은 다소 논쟁적일 수 있는 발언도 하십니다. "지구 상에서 하나님이 위대한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겠다고 약속해 주신 곳은 단 한 곳뿐이다. 그곳은 바로 교회다. (...) 영광은 심지어 선교 기관이나 '믿음의 가정'에도 약속되지 않았다. 영원, 초월, 임재, 영광은 오직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교회에만 약속된 것이다"(114).

<버티컬 처치>는 이러한 교회의 존재 목적을 분명히 깨닫고 모든 교회에 수직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고 말합니다. 수평적 모델을 버리고 수직적 교회를 세우기 위한 4가지 기둥을 제시하는데, 온 존재로 드리는 영적 예배, 변증 없는 설교, 담대한 복음 선포(전도), 실제적인 기도가 그것입니다. 핵심은 전도(영혼구원)이 우선 순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가 가득한 예배가 우선이라는 것, 자기계발서와 같이 사람들 입맛에 맛게 변질된 설교는 설교가 아니라는 것, 제발 믿어달라고 구걸하지 말고 담대하게 복음을 증언하라는 것, 수직적 교회의 처음과 끝은 기도이니, 생각만 하지 말고 실제적으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이 책을 읽으며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늘 기도의 자리에 가까이 하고 있지만, 진짜 기도를 드려야겠다는 마음이 간절해졌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고 하나님의 임재 속으로 깊이 들어가고 싶은 열망으로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왜 현대 교회가 이처럼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지 깨달으며 우리가 무엇을 회개해야 하는지, 어디에서 어떻게 새로 시작해야 하는지 분명히 보였습니다. <버티컬 처치>는 하나님께서 한국 교회에 주시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위기의 교회에 주시는 하나님의 응답,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선 같은 팀 동역자들, 우리 교회 사역자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며 한 권씩 선물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현주소에 대해 깊이 고민하며 교회를 위해 우는 목회자들이 있다면 꼭 이 책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출 3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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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예수 붓다 - 그들은 어떻게 살아왔고,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프레데릭 르누아르 지음, 장석훈 옮김 / 판미동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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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위기를 뜻하는 프랑스어 '크리즈'는 '결정', '판단' 등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는데, 좀 더 살펴보면 '전환점, '결정의 시기'라는 뜻도 들어 있다"(8).
  
사춘기 시절 두 명의 친구가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는 일이 없었다면 지금 제 삶은 어떻게 달라져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오늘'이라는 시간을 온전히 올인하며 내일을, 미래를 설계하기에 바빴던 친구들이 그렇게 일찍, 그렇게 느닷없이, 너무도 허무하게 이 세상을 떠나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어느 날, 자고 일어나니 친구가 죽었다고. 어느 날, 학교 갔다 돌아오니 친구가 죽었다고. 친구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인생의 덧없음을 가르쳐주었고, 이렇게 허무한 것이 세상이라면 도대체 무얼 위해 살아야 하나 목표가 사라져버린 내 안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뜨겁게 던져졌습니다.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는 철학자이면서 종교사학자인 프랑스의 대표 지성이 우리 앞에 "왜 사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주는 책입니다. 저자는 지금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경제 위기를 맞고 있는 이때가 바로 또하나의 기회하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온 마음과 영혼과 삶을 송두리째 흔드는 삶의 위기가 바로 "왜 사는가?"라는 실존적 물음으로 우리를 데려다 주기 때문입니다. 바로 지금이 그것을 물어야 할 때이고,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입니다. "오늘날, 전 세계 많은 사람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생활양식은 소유하고 축적하며 물건을 끊임없이 신상품으로 바꾸는 것이다. (...) '더 많이 갖는 것이 퇴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비로소 우리는 제대로 된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경제의 의미, 돈의 가치 그리고 사회적 평등과 개인의 행복을 위한 진정한 조건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이다"(10).
 

'왜 사는가'?란 질문에 삶의 스승 3인이 내놓는 가장 실존적인 대답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는 삶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철학적 탐구의 과정이기도 하지만, 저자 자신의 내밀하고 치열한 구도의 산물이기도 합니다. 저자 자신이 누구보다 절실하게 "왜 사는가"에 대한 답을 찾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라는 3인의 스승으로부터 답을 찾았다고 고백합니다. 저자 자신이 그 답을 얻어가는 과정을 고백적으로 기록했다면 훨씬 흥미진진한 책이 될 뻔 했는데, 이 책은 그 3인의 스승을 심층 분석한 '자료'가 되고 말았다는 것이 좀 아쉽습니다. 저자는 학문적인 객관성을 담보로 어떠한 오해나 편견 없이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의 삶과 가르침을 독자에게 전해주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먼저는, 3인의 스승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탄생부터 죽음까지 파헤치며, 2부에서는 3인의 스승이 가르친 것은 무엇이었는지 탐구합니다.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의 행적과 가르침이 잘 정리된 노트처럼 정리되어 있는데, 이 때문에 이 책이 다소 지루하게 느껴지는 면도 좀 있습니다. 그러나 대단히 흥미로운 부분은 저자가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며 3인의 스승을 비교 분석한 지점입니다.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는 차이점도 있지만 공통점도 참 많다는 것이 흥미로운데, 예를 들면, 이들 가운데 그 누구도 직접 글을 남기지 않고 산 교육의 방식, 즉 모두 '삶'으로 가르쳤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저자가 전 지구적인 위기를 맞은 지금 이 3인의 스승이 우리에게 어떤 답을 줄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된 것도 이들이 '말'로만이 아니라, 그들이 자신의 삶으로, 전 존재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이 세 사람이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까닭은 그들의 말과 행동에서 진정성이 풍기며 그 말과 행동이 오롯이 진리를 구하기 때문이다"(147).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의 삶과 가르침을 비교분석한 내용 중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부분 중 하나는, 예수와 붓다의 대조적인 모습입니다. 불교에서는 싯다르타가 신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묘사된 그의 모습은 오히려 신에 가깝고, 기독교에서는 예수가 이 땅에 사람으로 오신 신이라고 하면서도 묘사된 그의 모습은 대단히 인간적이라는 사실입니다. "불교에서는 싯다르타가 그저 한 인간에 불과하다고 말하면서도, 그를 묘사할 때는 흐트러짐 하나 없고 항상 평정을 유지하는, 인간이라고는 볼 수 없는 초인 같다. 반대로 기독교에서는 예수가 신이자 인간인 신비한 존재라고 말하면서 복음서에서 그를 묘사할 때는 너무도 인간적이다. 슬픔, 기쁨, 낙심, 격정, 연민, 분노 등과 같은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인간 말이다. 종종 눈물도 보인다. 놀라운 역설이 아닐 수 없다"(120). 냉철한 지성을 자랑하는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신의 신탁을 사명으로 받아들인 영적인 사람(?)이었다는 것도 처음 안 사실입니다. 소크라테스를 연구하고 말하는 학자들이 그에게서 이런 점을 거세해버렸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의 공통점 중에서는 세 사람 다 먹기를 즐기는 인물이었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다른 사람과 더불어 음식을 기꺼이 즐길 줄 아는 것. 달리 말해 그것은 세상에 충실할 때는 충실하고 세상과 거리를 둘 때는 온전히 거리를 둘 수 있는 것을 말한다"(141).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는 모두 안주하지 않는 삶을 살았고, 세상에 균열을 내는 선구자였습니다. 어느 시대이고 기존 질서를 위협하는 자는 제거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와 예수는 제거대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소크라테스와 예수는 재판과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리곤 처형당했다(179). 여기서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붓다는 식중독으로 여든 살에 세상을 떠났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 이 3인의 스승을 가르는 결정적인 행적 중에 하나는, "붓다와 소크라테스의 경우엔 죽음에서 모든 것이 끝났"(206)지만, 예수는 다시 살아났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는 제자들이 그 스승의 부활을 믿는, 유일한 영적 스승이요, 현자요, 한 종교의 창시자인 셈이다. 실제로 살았던 피와 살을 가진 영적 스승이 죽었다 살아났다고 하는 이야기는 그 어디에도 없다"(209). 예수의 부활은 증인이 목격담을 전한 사실로서, 그 사실을 믿고 안 믿고는 온전히 개인의 믿음의 문제입니다.
  
 
"성공한 삶이란 진리를 실천에 옮기는 삶이다"(371).
 
소크라테스는 지혜를 통해 무지에서 사람들을 구하려 했고, 붓다는 깨달음을 통해 윤회에서 사람들을 구하려 했고, 예수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진리를 증언함으로 사람들이 영생을 얻게 하려 했습니다. 세 사람 모두 우리가 진리를 알기 바랬는데, 소크라테스와 붓다는 인간이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것, 깨달으려 노력해야 함을 강조했다면, 예수는 그 자신이 진리이고, 진리는 인간의 노력으로 얻어지는 게 아니라 하늘부터 즉, 계시로 주어지는 것임을 강조했다는 것도 차이점입니다.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는 우리가 진리를 알면 그 앎으로 인해 우리가 바르게 행동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바른 행동이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기도 한데, 소크라테스에게 최상의 덕은 "정의"이며, 붓다에겐 "자비", 예수에겐 "사랑"이었습니다(321). 여기서 소크라테스는 왜 사랑보다 정의를 더 최고의 덕으로 꼽았는지, 붓다의 자비와 예수의 사랑은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논의도 흥미로웠습니다. 세 사람의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3인의 스승이 무소유나 또는 공동소유의 삶을 살며 우리에게 강조하고자 했던 것도 삶이란 "소유보다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 책의 저자는 "우리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존재'의 의미를 탐구하며 개인적이든 사회적이든 책임 의식을 갖춰 나가는 것"(17)이라고 말합니다. 존재의 의미, 다시 말해 "나는 왜 사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참 지독하게 고민했던 문제이고, 길을 찾았다 싶은 순간에도, 또 답을 얻었다 싶은 순간에도, 어쩌면 삶을 마치는 그 순간까지 우리가 계속해서 사투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3인의 스승 가운데 예수에게서 저는 그 답을 찾았고, 그분을 따라가는 삶을 살려고 오늘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왜 사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문제로 잠 못 드는 밤을 보내고 있다면, 답을 얻지 못해 초점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면, 길 위에 서서 오늘도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이 책을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직접적인 해답은 얻을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더 치열한 싸움 속으로 우리를 데려다 줄 것입니다. 거기에 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사의 각오로 덤벼들지 않는다면 우리는 계속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 채 세상이 요동치는 대로 떠다닐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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