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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덤 라이터스 다이어리 (출간 10주년 기념 특별판) - 절망을 이기는 용기를 가르쳐준 감동과 기적의 글쓰기. 개정판
에린 그루웰 지음, 김태훈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6월
평점 :
품절
(이미지-네이버 영화)
월슨고등학교 '자유의 작가'들의 이야기를 처음 알게 된 것은 "프리덤 라이터스"라는 영화를 통해서입니다. 이런 류의 영화들은 대부분 꼴통들이 모인 학교에 새로운 선생님이 부임해오고, 온갖 역경과 갈등에도 불구하고 그 한 선생님으로 인해 변화가 시작된다는, 진부하다고 할 정도로 스토리가 "뻔"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프리덤 라이터스>는 그 진부한 스토리 라인에도 불구하고, 감동이 달랐습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십 대 청소년들이 내던져져 있는 현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독특한 교수법, 더불어 글쓰기가 얼마나 놀라운 치유력을 가지고 있는지까지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실화는 고개를 돌려버리고 싶을 정도로 지독한 현실을 똑바로 직시하게 하면서도, 변화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그런 바람은 이상일 뿐이라고 우리가 내다버린 어떤 꿈을 다시 꾸도록 도와주었습니다.
<프리덤 라이터스 다이어리>는 월슨고등학교 203호 교실에서 탄생한 실화입니다. 월슨고등학교는 "총과 그라피티가 넘쳐나는 갱스터 랩의 본거지"로 이름이 붙여진 롱비치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1994년 가을, 이 학교에 에린 그루엘이라는 새내기 국어선생님이 부임해옵니다.
그런데 그루엘 선생님은 공들여 준비한 수업 계획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흑과 라틴계, 그리고 아시아계 학생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웰슨고등학교는 매일 싸움이 벌어지는 인종 간 전쟁터와 다름이 없고, 실제로 가족이, 친구가 총에 맞아 죽는 것을 목격하는 일이 일상일 정도였습니다. "어느 1학년 학생에게 졸업할 때까지 학교를 다닐 생각이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 학생은 "졸업요? 젠장, 열여섯 살 생일까지 안 죽고 살 수 있을지나 모르겠어요"라도 대답했다. 그들에겐 졸업장보다 죽음이 더 가까운 현실인 것 같다"(109).
203호 교실에 모인 아이들은 평균 이하의 퇴학 후보생들로, 만약 총에 맞아 죽지 않는다면 대부분 마약중독자, 미혼모, 갱단이 될 것이 뻔한 아이들이었습니다. 문제는 가장 희망이 필요한 아이들이 희망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홀로코스트에 대해 들어본 사람 있니?" 그러나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이번엔 "그럼 총에 맞을 쩐한 사람은?" 하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거의 모든 아이가 손을 들었다"(27).
학생들의 현실과 문제를 알게 된 선생님은 수업 방식을 확 바꿔버립니다. 이유도 없이 어리석인 인종 전쟁을 계속하는 아이들에게 "관용"(Tolerance)을 가르치기 위해, 문학을 가르치는 데 온 힘을 쏟기로 합니다. 선생님은 이야기를 생생하게 느끼도록 아이들의 현실과 관계 있는 소설을 소개하고 읽게 했습니다. 처음에 저항하고 부정적으로 반응하던 아이들도 자기와 같이 "갱단과 친구들 때문에 고민하는 빈민가 소년의 이야기"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아이들은 책을 끝까지 다 읽은 게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76).
"변화를 위한 건배"
영화를 보며 펑펑 울어버렸던 장면입니다. 사람들은 이 극성스런 새내기 선생님에게 그냥 보통 교사들처럼 하라고 조언했지만, 그루엘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새 책을 읽히고 현장학습을 시켜주기 위해 아르바이트까지 해가며, 불량학생이라고, 멍청이라고 낙인 찍힌 아이들에게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합니다. 조금씩 마음을 열고 가까워지기 시작한 아이들과 선생님은 플라스틱 컵에 음료를 담아 건배하며 새로운 출발을 약속합니다.
그루엘 선생님의 문학 수업 중 특히 아이들에게 영향을 많이 끼친 작품은 <안네의 일기>와 <즐라타의 일기>입니다. 전쟁이라는 끔찍한 환경에 처한 십 대들의 일기를 통해 아이들은 책 속에 자신의 삶을 대입하며 자신의 현재 모습을 발견하고, 그 안에서 스스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루엘 선생님의 선생님의 문학 수업은 책을 읽는 것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안네 프랑크의 가족을 숨겨 주었던 미프 히스 씨를 초대하고, <즐라타의 일기>를 쓴 즐라타를 초대하여 아이들이 그들과 만나 직접 이야기를 나누며 교제할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책 속 영웅들과 만난 아이들은 현실에 눈뜨면서도 뭔가 "옳은 일"을 하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삶인지 깨닫기 시작합니다. "그분들을 만나고 나니 우리가 읽었던 책이 더 의미 있게 느껴지는 한편, 세상에서 이루지 못할 일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97).
결국 이 "평균 이하의 퇴학 후보생'이었던 203호 교실의 아이들은 모두 졸업을 하고 대부분 대학교 진학이라는 놀라운 변화를 이루어냅니다. 많은 학생이 집안에서 처음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위험한 아이들'이 여기까지 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하지만 우리는 억압적 교육 시스템에 굴하지 않고 목표를 이루었다. 사람들은 아직 어린 우리에게 평생 영향을 끼칠 '열등생'이라는 딱지를 붙였다. 누군가 그것이 잘못된 선입견이라는 걸 깨닫고 나서야 불량학생들에게도 기회가 주어졌다"(509)
"선생님이 나에게 신경을 써준 뒤로 나도 나 자신을 돌보기 시작했다"(103).
이 감동 실화는 여러 분야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이 많지만 무엇보다도 교육에 대한 반성을 많이 하게 해줍니다. "내가 어릴 때부터 선생님을 꿈꾸었던 이유가 바로 이거였지"라는 생각에 가슴이 뻐근했습니다. 교육 일선에 계신 선생님에게 가장 큰 도전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 우리나라에도 그루엘 같은 선생님이 10분만 계시다면 교육계에도 혁신이 일어나지 않을까 꿈꿔봅니다. "일방적으로 가르쳐야 할 대상이 아니라, 같이 대화를 나누는 어엿한 한 사람으로 대우받는 기분은 정말 최고다"(125).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여지며 비로소 행복을 느끼기 시작하는 아이들, 자신에게 필요했던 것은 좋은 집이나 좋은 음식이 아니라 아버지, 어머니와 나눌 수 있는 끈끈한 유대감, 따뜻한 공감과 사랑이었음을 고백하는 아이들을 보면, 그 지극히 정상적인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라는 아이들이 우리 주변에도 많이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아파옵니다.
"그녀(줄라타)는 전쟁 중에 일기만이 자신의 유일한 구원이었고, 일기 덕분에 이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른 학생들에게도 글쓰기가 끔찍한 환경과 개인적인 문제를 극복하는 최고의 방법이 될 거라고 덧붙였다"(269).
<프리덤 라이터스 다이어리>의 특별한 감동은 문학과 글쓰기의 힘을 여실히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책에 보면 <로미오와 줄리엣>을 읽은 한 십 대 소녀가 자신의 감상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줄리엣이 겨우 며칠 밖에 사귀지 않은 남자 때문에 자살했다는 점을 이해할 수 없다"(81).
문학을 읽고 일기를 쓰기 시작하는 아이들은 자신의 삶과 대면하며 솔직해지기 시작합니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성폭행의 아픈 경험을 털어놓기도 하고,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지만 자신이 마약이나 알코올에 중독되어 있음을 고백하기도 하고, 집을 잃고 노숙생활을 하고 있는 처참한 현실을 알리기도 하고, 가슴 아픈 가족사를 털어놓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그렇게 글쓰기를 통해 현실을 견디며, 새로운 꿈을 꾸기도 하고, 문제를 극복해갈 힘을 얻었습니다. "새가 울듯이 나는 글을 쓴다. 나는 견디기 힘든 현실에서 잠시라도 벗어나려고 거의 매일 시나 일기를 쓰고 있다"(491).
"자유의 작가들"
<프리덤 라이터스 다이어리>는 203호 학생들의 일기를 모아 "자유의 작가들"이라는 이름으로 엮은 책입니다. '자유의 작가들'이라는 이름은 1960년 인권 운동에 앞장섰던 "자유의 여행가들"에서 힌트를 얻은 이름입니다.
그루엘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각자 마음에 드는 일기를 하나씩 선정해 책으로 묶어내자"는 제안을 하며, "자신의 삶을 바꾼 일이 담긴 일기를 고르라"고 했습니다(277). 아이들은 익명으로 제출된 일기를 컴퓨터(워드)로 옮기는 작업을 하며, 친구들이 겪고 있는 아픔은 무엇인지 알게 되고, 친구의 아픔을 통해 자신의 상처를 다시 들여다보며, 그런 고통을 당하는 것이 자신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혼자 고통스러웠을 친구에게 몰래 격려의 메모를 남겨놓기도 합니다. 그들은 그렇게 함께 아파하며 함께 상처를 극복해갔습니다. "일기를 쓰고 교정하기 전까지는 다른 십 대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전혀 몰랐다. 일기를 읽으면서 친구들이 안고 있는 개인적 문제들을 더 잘 알게 되었다"(309).
"순순히 아늑한 밤을 맞이하지 말라"(310).
이들의 이야기가 실화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지금과 같은 감동은 느끼지 못했을 것입니다. 너무 '이상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프리덤 라이터스 다이어리>는 분명히 실화입니다. 그것은 이와 같은 일이 우리에게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뜻이기도 할 것입니다. 이 책은 가난과 폭력과 학대와 무관심 속에 처한 십 대 아이들의 고통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십 대 아이들이 자신의 고통을 직접 일기에 적은 것이기 때문에 더 사실적입니다. 영화도 감동적이었지만, 글로 전달되는 생생함은 영화가 다 보여주지 못한 간극을 메워주었습니다.
203호 아이들이 자신의 삶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책 속 이야기를 통해 스스로 문제를 극복해나갈 실마리를 마련한 것처럼, 이 책도 십 대들에게 꼭 읽히고 싶은 책입니다. 자신과 같은 또래의 친구들이 어떤 환경 속에서 어떤 싸움을 했고, 결국 어떻게 매순간 최선을 다하며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함께 따라가보라고 격려해주고 싶습니다.
<프리덤 라이터스 다이어리>는 번역이 참 잘 된 책입니다. 문장이 아름다우면서도 생생하고 번역서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쓱쓱 재밌게 잘 읽힙니다. 600페이지에 가까운 꽤 두꺼운 책인데 손에 잡은 채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다보니 어느새 마지막 장이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뚝뚝 떨어질 만큼 아프지만, 뭉클한 감동과 환희로 가슴이 뻐근해지는 이야기, 그 주인공들과 꼭 만나보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