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여행법 - 경전선을 타고 느리게, 더 느리게
김종길 지음 / 생각을담는집 / 201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럼에도 걸음은 옛 시간의 흐름에 맞추느라 자연히 느려졌다"(223).
 
 
책상 속에 사표가 들어 있습니다. 이 자리에 앉아 일한지도 20년이 다 되어갑니다. 그렇게 훌쩍 흘러가버린 청춘입니다. 돌아보니 바쁘다는 말을 늘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같은 일이 반복되다 보니 일상은 미친 속도로 돌아가는데 인생은 오래 전에 일시정지되어 버린 느낌입니다.
 
이대로 살다가는 더 깊은 후회가 남을 것 같아 인생의 하프 타임을 가질 결심을 했습니다.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친구들에게 산티에고로 순례를 가보자고 제안했는데 아무래도 선뜻 나서기가 어려운지 관심을 보이는 친구가 많지 않았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두려움일 듯합니다.
 
그런데 우연치 않게 <남도여행법>을 보았는데, 먼 산티에고까지 갈 필요 없이 남도로 순례길을 떠나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저절로 발걸음이 느려지는, 관광지를 전투적으로 돌아다니지 않아도 되는 느린 여행이라는 것이 저에게는 가장 매혹적이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느린 경전선"
 
 
<남도여행법>은 경전선을 타고 남도를 순례하듯이 떠나는 여행법입니다. "경상남도 밀양 삼랑진역에서 출발하여 남도의 구석구석을 800리쯤 돌아 광주송정역에서 멈춘다"는 경전선은 세상에서 가장 느린 기차라고 합니다. "경정선의 느린 풍경 속에 쉼표처럼 찍혀 있는 역은 모두 60개인데, 60개 중 폐역이 16곳, 기차가 서는 역이 34곳, 기차가 서지 않는 역이 10곳"이라고 합니다. 삼량진에서 광주송정까지 총 300.6km를 1년간 여행한 기록이 바로 이 책, <남도여행법>입니다.
 
저자는 "경전선 여행은 좀 더 느린 방식의 여행, 떠나기만 해도 치유가 되는 여행, 일체의 근심걱정을 떨칠 수 있는 여행"이며, "이 책은 단순한 여행안내서가 아니라 사라져 가는 것들의 기록, 잊혀가는 것들의 기록이다. 로드다큐이자 인문지리서이다. 또한 문화기행서이자 철도여행서이다"라고 소개합니다. 저자의 말처럼 남도의 삶과 역사와 문화를 찾아떠난 로드다큐 같은 분위기가 강합니다. 또한 <남도여행법>은 매끈한 자동차를 몰고 편리하게 옮겨다니는 여행이 아니라, 기차를 타고 내려서 걷고 때로는 버스로 이동하며 다시 또 기차를 타고 그렇게 천천히 이동하며 그곳의 풍경과 사람과 과거와 이야기와 하나가 되는 순례의 길이자, 그렇게 떠난 길 끝에서 또다른 나와 만나게 되는 구도자의 길과 같은 분위기가 짙게 풍깁니다!
 





부모님 고향이 남도인데도 어쩌자고 그렇게 동해쪽으로만 휴가를 갔는지, 이 땅에 태어나 40년 넘게 발 딛고 살았으면서도 이 책에서 소개하는 곳 중 어느 한 곳도 제대로 가본 곳이 없습니다. 그동안 뭘하면서 살았나 싶습니다.
 
남도 여행에 관한 정보를 얻으려고 펼쳐 들었던 책인데, 남도를 어떻게 여행해야 하는지를 배웠습니다. 아름다운 사진에 마음이 끌려 가보지 않고 벌써 남도의 풍경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봉화마을에 가서 봉화산을 일러 '낮지만 높은 산'이라고 했던 노 대통령의 말의 의미도 알아보고, 마산역에 내려 예술인촌으로 조성된 골목길도 걸어보고, 함안역에 내려 왁자지껄한 가야시장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함안 말이산 고분군도 찾아보고, 반성역에 내려 줄을 서서 사먹는다는 순두부집에 가서 줄도 서보고, 횡천역에 내려 스탬프도 찍어오고, 순천역에 내려 법정 스님이 계시다는 불일암에도 올라보고, 벌교역에 내려 그 유명한 꼬막도 맛을 보고, 코스모스 축제로 유명하다는 북천역에도 가보고,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간이역이라는 남평역에도 가보고 싶습니다. 아니, 새롭게 길을 낸 이 책을 따라 나도 삼랑진역에서 광주송정역까지 완주를 해보고 싶습니다. 친구와 함께 간다면 이 책에서 알게 된 코스모스의 슬픈 사랑이야기도 들려주고, "논두렁에 덩그러니 버려진 듯 무심하게 서 있"(232)다는 작은 불상(석조인왕상)도 꼭 찾아 보여주고 싶습니다.
 
언젠가 이유도 없이 끓어오르는 마음의 불안과 격동을 이기지 못하여 춘천행 기차에 홀로 몸을 실었던 20대의 그 어느 날처럼, 나는 또다시 낯선 길로 뛰어들고 싶어집니다. 조금 특별한 여행을 원한다면, 낯선 곳에서 나와 마주할 고독한 시간이 필요하다면, 과거로의 여행을 경험해보고 싶다면, <남도여행법>을 추천해드리고 싶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더 크리스천 The Christian - 세상이 기대하는 바로 그 사람
튤리안 차비진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14년 6월
평점 :
품절


 


 

 
"겉으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과연 어떤 목표와 꿈이 우리를 움직이는지 솔직히 돌아보라"(252).
 
 
동네 주민들과 유흥을 위해 주변 상가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교회 주차장을 가득 메우는 바람에 저녁 기도회 때 성도들의 차를 주차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생각다 못해 스티커를 제작했고, 그 스티커가 붙어 있지 않는 차량은 교회 주차장 이용을 제안했습니다. 그랬더니 한 분이 교회를 찾아와 항의를 하며 스티커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물었습니다. 행정적으로 말하면 교회에 교인으로 등록된 교인이어야 한다고 했더니, 그 자리에서 자기도 등록을 하겠다고 큰소리를 쳤습니다. 교회에 등록된 교인이 된다는 것을 무슨 동호회에 가입하는 것쯤으로 생각한 모양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등록된 교인수는 많지만 진짜 크리스천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합니다. 교회가 모범이 되지 못하고,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아니러니하게도 세상이 교회를 비난하는 것은 교회가 교회이기 때문이 아니라, 교회가 교회답지 못하다는 것 때문입니다. 지금 세상의 문제는 누가 크리스천이고, 누가 불신자인가가 아니라, 누가 참 크리스천이고, 누가 이름뿐인 크리스천인가입니다. 세상의 타락에 더 문제가 되는 것은 불신자가 아니라, 이름뿐인 크리스천입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한 것은 죄인 때문이 아니라 의인 10명이 없었기 때문이듯이, 세상은 이름뿐인 크리스천들 때문에 더 병들어가는 듯합니다. 천국을 보여주어야 하고, 무엇이 참 생명이고, 가치이며, 사랑인지 보여주어야 할 크리스천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세상은 길을 찾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세상은 교회다운 교회를 절실히 필요로 한다. 말과 행동에서 하나님 나라의 시민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교회가 절실하다. 이런 교회가 많아져야 세상 사람들이 자신의 왕국이 무너질 떄 어디에 몸을 의탁해야 할지를 깨달을 것이다"(134).
 
그런데 그 사람이 진짜 크리스천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겉으로 보여지는 삶의 모양은 세상 사람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문제는 동기, 목표, 기준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튤리안 차비진 목사님은 "어떤 목표와 꿈이 우리를 움직이는지 솔직히 돌아보라"고 일갈합니다. 크리스천이라는 분명한 정체성은 죄를 용서받았다, 이제 지옥에 가지 않는다는 정도가 아닙니다. 크리스천이라는 분명한 정체성은 하나님은 누구신가, 지금 하나님이 하고 계신 일은 무엇인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무엇인가라는 큰 그림 속에서 찾아집니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전적으로 '성경' 안에 있습니다.
 
<더 크리스천>은 창조, 타락, 구원, 회복이라는 성경의 큰 그림 속에서 크리스천이란 누구이며,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의 문제를 풀어냅니다.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크리스천은 이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속한 시민이며, 이 세상을 회복하는 일에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라고 설명합니다.
 
튤리안 차비진 목사님은 여기서 굉장히 흥미로운 성경 해석을 시도합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물리적인 세상, 즉 지구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가에 대해 신학적으로 의견이 갈립니다. 한편에서는 현재 세상과 새 세상 사이에 연속성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근거 구절 중에 하는 베드로후서 3장 7절 말씀입니다. 마지막 때에 하늘과 땅은 "타 버릴"(불사르다) 것이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튤리안 차비진 목사님은 이 구절이 "찾아지다"로 번역될 수 있음을 지적합니다(91). "이 번역은 지구의 소멸이 아닌 일종의 정화를 함축한다"는 것입니다. 신학적 입장에 따라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있는 해석이지만, 하나님의 목적은 이 세상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회복하는 것이라는 주장은 부정하기 어려울 듯합니다. 차비진 목사님은 여기서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일, 즉 사명이 무엇인지 분명히 합니다.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이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회복을 위한 하나님의 도구로 섬길 소명을 받았다. 우리의 회복이 만물의 회복으로 확산되게 만들어야만 한다"(107). 한마디로 "회복" 이것이 우리의 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회복의 사명은 영적인 측면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교회의 사명은 영적인 동시에 물질적이며 개인적인 동시에 문화적이다"(111). 그리스도인은 인간 문화의 "모든 영역"을 하나님 말씀의 기준 위에 다시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와 세상, 그리스도와 문화의 적절한 관계는 무엇인가?"(137)
 
 
<더 크리스천>은 이 세상을 회복할 사명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돌아보는 책입니다. 이 책의 주장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세상에서 살되 세상에 속하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치비진 목사님은 "세상을 위해서 세상을 거스르는 자"가 되라고 거듭 거듭 반복하며 강조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되고 나서 영적 순결을 보존하기 위해 세상의 악함으로 자신을 분리시키는 사람들(분리주의자)이 있고,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기 위해 '그들처럼'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차비진 목사님은 이에 대한 D. L. 무디의 멋진 비유를 소개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배의 자리는 바다 한가운데입니다. 혹시 바닷물이 배 안으로 들어올 때는 하나님이 도와주십니다"(138). 세상을 외면하는 것은 물 밖에 있는 배와 같고, 세상에 물들어가는 것은 물 속으로 가라앉는 배와 같다는 것입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에 라는 기치 아래 새로운 시대에 맞게 새로운 방법으로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여러 가지 전도 방법론을 제시하는 컨퍼런스가 성행합니다. 그러나 차비진 목사님은 세상과 접촉하겠다는 열의가 지나쳐 세상적인 스타일과 기준, 전략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150). 세상을 위해 세상 속에 있지만 세상방식은 철저히 거부하는, 다시 말해 세상을 거스르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 최대의 걸림돌은 육체적 위험이 아니라, 세상적인 패턴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패턴은 영혼의 잠이다. 이 잠에 빠지면 세상의 지위와 쾌락, 안위가 매력적으로 보이고 성경의 진리는 뜬구름을 잡는 이야기처럼 보인다"(247).
 
너무 튀는 것을 두려워하고, 광신자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또 쿨한 그리스도인의 면모를 보여주기 위해 세상을 닮아가다 보면, 점점 더 세상에 필요 없는 존재가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세상과 구별되어야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분명한 사실을 깊이 새겨야겠습니다.
 
"세상에서 발을 빼지도 세상에 물이 들지도 말고 세상 속에서 저항 운동을 펼쳐야 한다. 세상과 접촉하면서 세상의 길과 충돌하는 것, 세상에 참여하되 세상에 흡수되지 않는 것, 세상을 버러지 않되 세상과의 불협화음을 유지하는 것, 바로 이것이 크리스천들의 숙명이다"(152).
 
그리스도인됨의 분명한 정체성은 하나님께 흠뻑 빠져드는 사랑 속에서만 찾을 수 있습니다. 튤리안 차비진 목사님은 복음의 완전한 은혜에 풍덩 빠진 사람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그의 책을 읽으면 복음이 주는 자유함과 충만한 은혜를 경험합니다. 그 안에서 우리가 붙들어야 할 목표, 걸어가야 할 방향,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분명하고 선명하게 보이기 때문에, 삶이 훨씬 단순해지고 가벼워지는 것을 느낍니다. 그리고 진짜 그리스도인, 믿음의 거인이 되고 싶은 거룩한 열정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리고 차비진 목사님은 공부를 매우 열심히 하는 목회자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진가가 이 책에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더 크리스천>은 교인된 우리가 다시 들어야 할 복음이고, 부름입니다.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주께 나아오리라는 말씀처럼, 이 책은 주의 거룩한 백성들을 불러 모으는 하나님의 나팔 소리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데미안 꿈결 클래식 1
헤르만 헤세 지음, 박민수 옮김, 김정진 그림 / 꿈결 / 201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새는 투쟁하며 알에서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그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144).
 
 
내 기억 속의 <데미안>은 질풍노도의 청소년이 친구의 어머니를 사랑하는, 다소 공감하기 힘들었던 고전문학 중 하나입니다. 이제 막 중학생이 됐을 무렵에 읽었기 때문인지, 알을 깨고 나오듯 내면의 폭풍을 겪은 뒤 드디어 자신을 찾아낸 주인공의 이야기에 나를 투영하지 못했고, 오히려 <데미안>은 가까이 하면 안 될 나쁜 친구처럼 불편했을 뿐입니다. 내가 목격한 싱클레어의 방황과 성장은, 일종의 공포였습니다.
 
꿈결에서 발간한 <데미안>은 "책을 열고 번역을 비교하라!"는 자신만만한 띠지 문구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어린 마음에 공감하지 못했던 고전이지만, 잘 된 번역으로 이 책을 다시 읽는다면 감상이 어떻게 달라질지 궁금했습니다. 어른이 된 뒤에 다시 찾았던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내 기억이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지 알고 쓸쓸한 웃음과 함께 당황스러운 가슴을 쓸어내렸던 것처럼, <데미안>을 다시 읽는다면 내 기억 속에 왜곡된 채 남아 있는 불편한 공포를 지울 수 있을 듯했습니다.
 
꿈결의 <데미안>은 자신만만했던 띠지의 약속 그대로 잘 읽힙니다. 번역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중간 중간 삽입된 컬러 일러스트도 상상력을 자극해주어 좋았습니다. 책의 부록에 실린 박민수 교수님의 해제를 읽지 않았거나, 이 책과 함께 <프로이트와 함께하는 세계문학일주>(이병욱, 학지사)를 읽지 않았다면, <데미안>은 순수한 성장소설, 또는 청춘소설로 남았을 듯합니다. 부모님의 보호 속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바깥 세계와 맞닥뜨린 뒤, 눈이 먼 것처럼 헤매 다니며 피폐해져가는 싱클레어의 모습이나,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지만 그 안에서 들끓고 있는 거센 내면의 폭풍이나, 알을 깨고 나오 듯 불현듯 찾아든 불꽃 같은 깨달음의 순간에, 지나온 내 시간들이 겹쳐졌습니다. 이해받지 못했던 내 불안과 고통이 누군가에게 이해받는 듯하여 어쩐지 새삼 서럽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박민수 교수님의 해제와 <프로이트와 함께하는 세계문학일주>를 통해 헤르만 헤세가 <데미안>을 통해 진짜 이야기하고자 했던 실체를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데미안>은 방황하는 삶을 그린 전형적인 청춘소설이 아니라 검은(?) 속셈을 가진 아주 사적인(?) 프로젝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단 주목해야 할 것은 <데미안>은 정신분석(프로이트와 융의 심리학)에 깊은 영향을 받은 책이라는 것과, 헤르만 헤세가 융의 영향으로 아프락사스라는 이교도의 신을 신봉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다시 보면, 아버지를 경멸하며 죽이는 꿈을 꾸고, 데미안의 어머니를 사랑하는 싱클레어는 오이디푸스의 소망을 설명하는 정신분석의 교본 같이 읽힙니다. "이런 꿈 중 가장 끔찍했던 꿈, 내가 거의 미쳐버릴 듯한 상태에서 깨어났던 꿈은 내가 아버지를 죽이려 한다는 내용이었다"(54).
 
그리고 <데미안>에서 가장 유명한 문장에 수수께끼처럼 등장하는 신의 이름. "새는 투쟁하며 알에서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그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144). 싱클레어는 데미안을 통해 아브락사스의 이름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는 내가 소년 시절 내내 가슴속에 품고 있었으면서도 아무에게도 말한 적 없었던 수수께끼와 맞닿아 있었다. 하나님과 악마, 공인된 신의 세계와 묵살된 악마의 세계에 관한 데미안의 이야기는 바로 내가 생각하고 있던 신화였다"(98). 아브락사스는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이 결합된 신성으로, 기독교의 신이 절대 선이라면, <데미안>은 절대 선이기만 한 신은 반쪽짜리 신이라고 말합니다. 선과 악을 동시에 지녀야 비로서 완전한 세계, 완전한 신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브락사스는 훨씬 더 많은 의미를 지닌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어떤 신성을 가리키는 이름쯤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의 결합이라는 상징적 사명을 지닌 신성 말입니다"(146). <데미안>을 통해 다시 보게된 헤르만 헤세는 아브락사스 숭배를 전파하는 이교도인의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세계 전체를 숭배할 수 있어야 하며, 따라서 동시에 악마이기도 한 신을 모시거나 신에 대한 예배 외에 악마에 대한 예배도 함께 올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바로 아브락사스가 그처럼 신인 동시에 악마이기도 한 신성이었다"(147).
 
<프로이트와 함께하는 세계문학일주>에서 저자는 싱클레어는 "헤르만 헤세" 자신을, 아브락사스의 존재를 알려 준 데미안은 "융"을 상징한다고 해석합니다. 그리고 "융과 헤세는 기독교 문명이라는 단단한 알을 깨뜨리기 위해서 은밀한 성전을 벌였던 장본인들이었다"(149, 프로이트와 함께하는 세계문학일주)고 말합니다. 그러나 결국 기독교로 다시 선회했던 헤르만 헤세의 생애를 생각하면, "헤세는 평생 구도의 길을 걸었지만 어느 세계에도 안주하지 못한 채 영원한 방랑자로 머문 셈"(156, 위의 책)이라고 평합니다.
 
이 책의 부록에 실린 해제 "데미안을 찾아가는 싱클레어의 여정"을 읽어보면, 유럽의 정신, 즉 기독교 가치관 속에 단죄되고 금기시 되었던 것들과 지배적 가치관, 그리고 그에 반하여 나타났던 시대적 징후들과 분위기가 <데미안>이라는 소설 속에 정밀하게 녹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헤르만 헤세가 누군가로부터 어떠한 영향을 받았건, 그가 어떤 속셈(?)을 가졌던, 우리에게 고전으로 남겨진 <데미안>은 "온전히 자신을 찾아가는 길"(269) 위로 독자를 인도합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이미 오래 전에 지났지만, 내 안에 일었던 내면의 폭풍은 아직 계속 되고 있습니다. 몸은 어른처럼 자랐지만 이렇다 할 방향 없이 아무런 목표에도 이르지 못하고 흥겨워하다 이내 시들해지는 꿈, 사납고 광포한 욕망의 불꽃에 흔들리는 싱클레어의 독백에 마음을 들킨 것같은 기분이 드는 건, 내가 찾아야 할 '데미안'을 아직 찾지 못했다는 증거일 테니까요.
 
"나는 그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대로 살고 싶었을 뿐이다. 그것이 왜 그토록 어려웠던지?"(15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HOLA! 남미여행 100 - 남미에서 꼭 가봐야 할 여행지100 꼭 가봐야 할 여행지 100
박명화 지음 / 상상출판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유럽보다 섬세하고, 아프리카보다 야성적이며, 아시아보다 신비로운 중남미!"

 

우리나라에서 땅을 파고 곧장 내려가면 만난다는, 지리적 대척점에 있는 남이 땅! 비싼 항공료 때문에 내 평생에 한 번 가볼 수 있을까 한숨을 쉬며 포기해야 했던 남미 땅! 그런데 이 책을 보면서 일생에 한 번은 남미를 만나고 싶다고, 나에게 주는 선물로 남미 여행을 계획해 보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내가 발 딛고 살았던 이 땅에 이렇게 멋진 곳이 있었다는 걸 알면서도 한 번도 직접 가보지 못했다면 죽을 때 반드시 후회할 것 같기 때문입니다.

 

 

 

 
 

<올라! 남미 여행 100>은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페루, 에콰도르, 쿠바, 멕시코 등 중남미 12개국 중 꼭 가봐야 할 여행지 100곳을 소개해주는 책입니다. 저자는 이 책을 활용하는 방법으로, 그리고 남미를 여행하는 팁으로 "중미와 남미에 녹여져 있는 유럽의 역사"를 꼭 알고 가라고 조언합니다. "중남미에는 역사적인 장소가 아주 많"은데 "배경을 모르고 간다면 후회의 눈물을 흘릴 정도로 흥미진진한 곳이 가득"하다고 알려줍니다. 흔히 그림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는데, 여행도 아는 만큼 즐길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올라! 남미 여행 100>의 저자는 "중남미를 가장 잘 아는" 사진작가입니다. 저자의 사진을 통해 만난 남미는 그야말로 매혹적입니다. 때로는 거대한 자연 앞에 경외심으로 가득 채워지기도 하고, 아름다운 풍경 속으로 풍덩 뛰어들고 싶기도 하고, 정렬이 가득한 이국적인 거리에서 자유를 만끽하고 싶기도 하고, 신비로운 땅으로 탐사를 떠나보고 싶기도 합니다.

 

 

 

  

<올라! 남미 여행 100>은 깨알같은 여행 정보가 가득한 가이드 북이 아닙니다. 사진과 짧막한 이야기로 여행지로서의 남미의 매력을 소개하고 그곳에 꼭 가봐야 할 이유를 알려주는 책입니다. 사진만으로도 남미의 매력에 빠져들기 충분합니다. 남미 여행을 계획한다면 이 책으로 남미를 먼저 만나고 여행지를 고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듯합니다. 잘 알려진 곳만큼이나 숨겨진 명소가 많기 때문에 어디로 가야 할지 힘겨운 과제를 먼저 해결해야 할 테니까요.

 


 

 

 

<올라! 남미 여행 100>은 남미 여행의 큰 그림을 그리고 싶은 독자들에게 추천합니다. 책 뒷부분에 부록처럼 딸린 "중미와 남미를 내 맘대로 골라 즐길 수 있는 테마 여행 인덱스"에 보면, 가보고 싶은 여행 테마에 따라 축제&음식 여행, 트레킹&레저 여행, 박물관 여행, 세계 7대 불가사의 여행, 아름다운 풍광 여행, 자연 생태 탐사 여행, 역사 여행, 나를 찾아가는 여행, 도시 문화 여행 등으로 나에게 맞는 맞춤 여행지를 고를 수 있습니다.

 

남미 여행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를 찾고 있는 독자들에게는 이 책 한 권으로 여행 계획을 끝낼 수 없다는 것이 다소 아쉬울 듯합니다. 그러나 남미에 꼭 가봐야 할 이유를 전혀 몰랐다든지, 남미를 한 번 가보고 싶은데 어디부터 가야할지 큰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 여행자에게 추천합니다. 이 책을 통해 만나본 남미는 거리가 멀고, 항공료가 비싸고, 여행자들에게 위험한 곳이라는 장벽에도 불구하고 모험을 해보고 싶을 만큼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장 잔인한 달 아르망 가마슈 경감 시리즈
루이즈 페니 지음, 신예용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타인의 눈으로 행복을 본다는 것은 얼마나 비참한 일인가"(519).
 
 
거센 질투의 불길에 삼켜져 본 적이 있습니까? 남편이 아내의 성공을 질투하기도 하고, 친구가 가장 친한 친구의 행복을 질투하기도 하고, 짝사랑 상대의 알콩달콩 연애를 지켜보며 질투심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기도 합니다. 질투가 치명적인 건 애정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질투할 수밖에 없는 이 양가적인 감정은 한 번 빠져들면 모두를 지옥불에 가둬버리고 맙니다. 죽음 같이 강한 사랑일수록 질투의 불길은 지옥처럼 잔혹하게 타오르기 마련입니다.
 
<가장 잔인한 달>은 질투의 심리를 예리하게 포착해낸 심리 추리소설입니다. '스리 파인스'는 작지만 평화롭고 아름다운 마을입니다. 서로의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 알 정도로 친밀하게 지내는 마을 사람들은 강한 결속력만큼 어쩐지 폐쇄적인 느낌을 풍기는 곳이기도 합니다. 4월 부활절을 맞이한 마을 사람들은 죽은 자의 유령과 접촉하는 '교령회'을 갖기로 합니다. 교령회는 악한 유령들이 사는 곳을 정화하는 의식인데,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호기심에 사로잡힌 주민들이 몇몇이 성금요일, 비스트로에 모여 들었습니다. 그러나 기대했던(?) 것과 달리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자 교령회를 한 번 더 하기로 합니다. 두 번째 교령회의 장소는 버려져 있는 옛 해들리 저택입니다.
 
<가장 잔인한 달>은 '아르망 가마슈' 경감을 주인공으로 한 시리즈물입니다. 첫 번째 작품은 가을의 추수감사절을 배경으로, 두 번째 작품은 겨울의 크리스마스, 그리고 이 책 <가장 잔인한 달>은 세 번째 작품으로 봄의 부활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스리 파인스 주민들이 두 번째 교령회를 열기로 한 '옛 해들리 저택'은 전작의 사건이 벌어졌던 장소였던 듯합니다. 사악하면서도 슬픔으로 가득한 해들리 저택의 사연이 궁금하다면 전작을 읽을 필요가 있겠습니다. 기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옛 해들리 저택에서 교령회를 하는 도중 결국 한 사람이 공포에 질려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아르망 가마슈 경감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현장 조사를 벌이던 중, 사망자의 부검 결과 다이어트 약으로도 복용되는 '에페드라'라는 물질이 검출되었음을 알게 됩니다. 사망자는 인생을 즐기며 언제나 활기와 즐거움으로 넘쳐 흘렀던 '마들렌'이라는 40대의 아름다운 여성입니다. 사람들이 기억하는 마들렌은 언제나 "마법을 품고 다디는 사람"(34)이었습니다. 그녀와 함께하면 언제나 주변이 빛처럼 환희 밝아지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마들렌은 왜 교령회에서 사망하게 된 것일까요? 
 
<가장 잔인한 달>은 스리 파인스에서 벌어진 살인사건과 아르망 가마슈 경감을 둘러싼 음모가 얽혀진 가운데 독자들에게 두 개의 사건을 동시에 추리하는 즐거움을 던져줍니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살인자를 추적해가는 아르망 가마슈 경감의 독특한 수사 방법입니다. 아르망 가마슈 경감은 "살인자를 찾기 위해 감정"을 모으는 사람입니다. "그는 감정을 모았다. 그리고 정서를 수집했다. 살인은 지극히 인간적인 것이기 때문이었다. 살인 사건에서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한 행동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이 훨씬 더 중요했다. 그 지점에서 모든 일이 출발하기 때문이다. 한때는 인간적이고 자연스러웠던 감정이 일그러진다. 그리고 기괴한 모습으로 변한다. 감정의 주체를 집어삼킬 때까지 비틀리고 부패한다. (...) 감정이 이 단계에까지 오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감정을 오랫동안 조심스럽게 키우고 보호하고 정당화하고 보살피다가 마침내 깊숙이 파묻는다. (...) 그러다가 어느 날 밖으로 빠져나와 끔찍한 실체를 드러낸다. (...) 아르망 가마슈는 살인자들은 보통 이와 같이 감정이 타락하는 단계를 거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142). 사건의 전말을 알고 나니 이 문장 안에 엄청난 단서가 들어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가마슈 경감은 사건을 수사하는 부하에게 이렇게 조언합니다.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하네. 말만 해서는 아무것도 배을 수 없어. 살인 사건을 다룰 때는 배우는 과정이 중요하네. 사실만 배우는게 아닐세. 살인 수사에서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보거나 만질 수 없는 것이지.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는가 하는 점이야. 왜냐하면." (...) "우리는 정상적이지 않은 사람을 찾고 있기 때문이지. 건강하고 멀쩡해 보이지만 사실 무척 아픈 사람을 찾고 있기 때문이야. 단순히 사실만을 수집하지 말고 느낌을 수집해서 범인을 찾아야 해"(222).
 
자, 이 문장 안에서 단서가 들어 있습니다. 이 말을 힌트로 마들렌을 "누가 왜 그런 방법으로 죽여야 했을지" 직접 추리해보시기 바랍니다. 스리 파인스의 그해 4월이 왜 가장 잔인한 달일 수밖에 없었는지 그 사악함의 실체가 드러날 때 독자는 분노보다 스스로 비참해지는 기분에 사로잡힐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의 행복을 누구보다 열심히 축하하며 박수하지만 그 일로 소리 없이 무너져내리는 자부심과 상대적인 비참함의 늪에 빠져본 적이 있다면, 작가가 등장인물들을 통해 치밀하게 그려낸 복합적인 감정이 내 안에서도 고스란히 소용돌이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