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켈러, 결혼을 말하다 - 현대인의 뒤틀린 결혼의 실타래를 풀다
팀 켈러 & 캐시 켈러 지음, 최종훈 옮김 / 두란노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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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결혼으로 시작해서 결혼으로 끝나는 책이다.

 

 

한 때 교회 청년들 사이에서는 유행(?)했던 기도가 있습니다. 그것은 원하는 배우자감의 조건을 10가지 정도 적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도했더니 정말 내가 딱 원하는 사람을 배우자로 만나게 해주셨다는 간증이 넘쳐나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신앙을 가진 청년들에게 결혼은 더 어려운 과제로 다가올지 모릅니다. 세속적인 조건들 위에 신앙과 비전이 맞아야 한다는 조건이 하나 더 붙고, 점점 결혼을 가볍게 여기는 세태와 성경의 가르침 사이에서 더 심각한 갈등을 느끼기 쉽기 때문입니다.

 

<팀 켈러, 결혼을 말하다>는 잘못된 결혼관이나 결혼에 대한 비관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젊은 세대들에게 성경적 결혼관을 가르쳐주는 책입니다. 팀 켈러 목사님은 요즘 상당수의 젊은이들이 "싱글로 외롭게 사느냐, 결혼해서 지겹게 사느냐?" 하는 두 가지 선택지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믿고 있음을 꼬집습니다(24). 이런 태도는 서구 사회나 우리 사회나 별반 다르지 않는데, 이런 사고 방식은 결혼에 대한 모순된 감정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상적인 결혼을 꿈꾸면서도 갈수록 높아지는 이혼율이나 결혼은 자유를 억압하고 의무를 지운다는 부정적인 선입견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것입니다. 팀 켈러 목사님은 결혼에 대한 "시각이 잘못되어 있으면 결혼에 대한 기대가 넘치거나 모자라게 마련인데, 어느 쪽이든 바람직하지 않은 모습"(261)이라고 지적합니다.

 

팀 켈러 목사님은 결혼 생활을 안내하는 메뉴얼이 많지만, 무엇보다 성경적 결혼관을 확립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역설합니다. 그 이유는 첫째, 결혼은 하나님의 아이디어였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창세기의 결혼(아담과 하와)으로 시작해서 계시록의 결혼(그리스도교와 교회)으로 끝"(13)납니다. 학자들은 인간 사회에 나타난 결혼 제도가 "청동기 후기에 재산권을 규정하는 방식으로 출발해서 오늘에 이른 것"이라고 분석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과 다릅니다. "결혼은 하나님의 아이디어인 동시에 그 맡바닥에 깔린 특정한 인류 문화의 성격을 반영하는 인간의 제도이기도 하다. 그러나 결혼이라는 개념과 그 뿌리는 하나님께 있으므로 주님이 결혼을 어떻게 설계하셨는지 알려 주는 성경 말씀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13). 둘째 이유는, 결혼에 관한 많은 매뉴얼들이 몇 해만 지나도 구식이 되어버리곤 하는데, 성경은 "오랜 세월에 걸쳐 다양한 문화권의 수많은 이들을 통해 검증된 가르침"(14)을 주기 때문입니다. 팀 켈러 목사님은 "성경 말씀이야말로 결혼의 의미와 의도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최상의 무대"(14)라고 강조합니다.





 

"한없이 고통스럽지만 그만큼 근사한 일, 이것이 성경의 결혼관이다"(23).

 

 

<팀 컬레, 결혼을 말하다>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중요하고도 핵심적인 통찰 중 하나는, 오늘날 결혼이 우리에게 재앙이 되는 이유는 우리가 결혼에 대한 환상을 품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결혼을 바라보는 "비현실적인 이상주의" 때문에 결혼에 대한 비관적인 사고 방식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결혼에 대한 환상, 결혼에 거는 기대가 너무 크기 때문에 그만큼 실망도 크고 좌절도 깊다는 것입니다.

 

계몽주의 이후, 사람들은 결혼을 "개인적인 만족을 도모하기 위해 양쪽 당사자가 맺은 계약으로 인식"(32)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서 결혼"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결혼관이 "결혼에 대한 기대 수준을 끌어올려 배우자에게 치명적인 부담을 안기는 폐단을 낳게 되었다"(34)고 지적합니다.

 

팀 켈러 목사님은 "오늘날 남성이나 여성 모두 자신을 '생긴 그대로' 살게 내버려 두는 상대방과 결혼하기를 갈망한다"(38)고 지적합니다. "역사를 통틀어 이처럼 이상적인 기준을 세우고 배우자를 찾는 이들이 사회를 가득 채웠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결혼 상대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배우자에게 나를 행복하게 해줄 "완벽한 소울메이트"의 역할을 기대하고, 그 기대가 충족되지 않으면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결혼에 대한 이러한 환상은 "사랑하는 상대를 하나님의 지위로 격상"시켜 놓고, 거기서(결혼과 배우자에게서) 구원을 기대하는 행위입니다. 안타깝게도 완벽한 짝(소울 메이트)을 찾기만 하면 내 인생의 모든 흠결이 메워지리라는 것은 헛된 환상입니다. 현대인들이 배우자에게 거는 기대가 이렇게 높은 것은, "스스로의 가치와 목적을 깨닫지 못한 채 서로의 품안에서 존재 의미와 목표를 찾으려"(64) 하기 때문입니다. 굶주린 애정을 배우자를 통해 채워보려 하지만, 서로 굶주려 있기 때문에 아무도 원하는 만족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팀 켈러 목사님은 "지나치게 로맨틱하거나 이상적인 결혼관을 가졌다면, 인생에 미치는 죄의 영향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아닌지 되짚어 보아야" 하며, "반면 너무 비관적이고 냉소적이라면 결혼의 거룩한 기원을 놓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조언합니다(55).

 



  

 

"창조주께서 친히 만드신 제도라면, 결혼하는 이들로서는 마땅히 그 목적을 알고 거기에 맞추려 노력해야 하지 않겠는가!"(13)

 

 

전통적으로 보수적인 결혼관은 전통적인 성 역할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남녀의 차이가 강조되다 보니 가부장적 폐단이 나타나기도 하고, 역할 변화에 따라 사회적 논쟁이 끊이지 않습니다. 또 세속적인 결혼관은 자아실현이 결혼의 목표입니다. 이러한 결혼관은 자기중심성에 기름을 들어붓습니다. 자기중심성을 결혼이 파탄나는 근본 원인입니다. 이에 반해, 성경적 결혼관은 "성령의 역사에 기대에 자기를 부정하는 것"(84)입니다. 자기 부정은 힘들고 어려운 일이지만, 그만큼 보람 있고 경이로운 일이며, 성호 희생이야 말로 성호 성취하는 길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것이 성경의, 그리고 이 책의 가르침입니다.

 

행복한 결혼 생활의 비결, 그것은 바로 예수님처럼 사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자기 부정, 즉 상대방의 필요를 앞세우는 삶입니다. 이 때문에 팀 켈러 목사님은 결혼이 복음을 이해하는 통로가 된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셨던 모습 그대로 배우자를 대하면 나머지는 저절로 따라오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비밀이다. 예수님의 복음과 결혼은 서로를 해석하는 통로가 된다"(59). 복음을 알 때 결혼의 본질을 제대로 깨달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책에서 또 하나 주목할 점은 결혼을 맹목적으로 높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독신의 유익"에 대해서도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야말로 독신을 삶의 형식 가운데 하나로 제시한 첫 번째 종교"(263-264)였음을 역설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혼 제도 자체에 대한 회의 때문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치관과 삶의 방식이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기도 합니다. 당시 사람들은 가족이 미래를 보장해준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 싱글들은 가족이 아니라 주님을 소망으로 삼았"으며, 하나님이 미래를 보장해 준다고 믿었습니다(265).

 

<팀 켈러, 결혼을 말하다>는 커플과 싱글 모두에게 성경이 가르치는 결혼관을 제시합니다. 사랑의 감정과 사랑의 행동, 그리고 로맨틱한 열정과 언약적인 헌신 사이의 상관관계를 풀어내고, 싱글들에게는 결혼 문제를 지혜롭게 판단하도록 돕습니다. 이 책은 누구보다 젊은이들이 많이 공감할 책입니다. 성경의 진리는 이것이니 이 규범을 마땅히 따라야 한다는 식의 일방적인 강요가 아니라, 날카로운 통찰로 세태를 분석하고 젊은이들의 심리(결혼관)를 예리하게 꿰뚫기 때문입니다.

 

"당장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는 부부라 할지라도 이혼하지 않고 결혼 상태를 유지하면 적어도 3분의 2정도는 5년 안에 행복해진다"(29)는 통계가 흥미롭습니다. 이미 상처입고, 실망스러운 결혼이라 할지라도 자기 만족이 아니라 자기 부정에 토대를 두고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시작한다면 아직 희망이 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고 전에는 한 번도 가지 보지 못했던 결혼에 대한 비전을 품게 되었습니다. 결혼을 꼭 해야겠다는 결심이라기 보다, "결혼"이 얼마나 놀랍고 신비로운 하나님의 아이디어였는가를 깨닫게 되니 그 가치가 새롭게 와닿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결혼에 대해 지극히 현실적이지만 "숨이 멎도록 놀라운 약속들"로 가득합니다. 결혼을 앞둔 많은 청년뿐 아니라, 이미 결혼을 한 부부들도 이 책을 읽고 결혼을 바라보는 눈을 새롭게 하고, 자신의 결혼에 대해 놀라운 비전을 품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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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강물처럼
노먼 F. 매클린 지음, 이종인 옮김 / 연암서가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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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완벽하게 이해하진 못해도 완벽하게 사랑할 수는 있습니다"(199).

 

 

지금 부모님과 동생과 한 집에서 복닥복닥 살고 있지만 언젠가 이별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어떻게 이별하게 될지는 모르지만요. 사랑할 시간이 아주 적다는 것이 생각나면 조바심이 일다가도, 인생이란 흘러가는 강물 같은 것 세월따라 시간따라 나도 그렇게 자연스럽게 흘러가자, 마음을 다독여도 봅니다. 세월이 많이 흘러 우리는 이렇게 이별했구나, 깨달으며 그 완결된 스토리 한 부분이 내 인생에 새겨질 때, 나는 무엇을 추억하고 무엇을 아쉬워하게 될까요.

 

<흐르는 강물처럼>은 리즈 시절 브래드 피트가 주연을 맡아 화제가 되었던 영화의 원작인데, 올 봄, 이 영화가 재개봉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원작은 영문학 교수였던 노먼 매클린이 은퇴 후, "70세가 되어서야 소설을 쓰기 시작"(뒷 표지 中에서)한 후 젊은 시절 죽은 동생을 추억하며 써내려간 자전적 소설입니다. 서부의 목가적인 풍경이 스토리에 아름다운 숨결을 불어넣는 이 소설은 퓰리처상 후보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연암서가에서 발간한 <흐르는 강물처럼>에는 표제작 외에 <벌목꾼 짐과 그의 여자들>, 그리고 <산림청 임시 관리원의 수기> 이렇게 총 3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노먼 매클린의 작품이 번역되어 나오기도 했는데, 역자는 "<흐르는 강물처럼>에 든 세 편의 소설과 관련 서문 및 작가의 말을 단 한 줄도 빼놓지 않고 모두 번역한 명실상부한 완역본은 국내에서 이 책이 처음"(7)이라고 밝힙니다.

 

<흐르는 강물처럼>은 무엇보다 아름다운 소설입니다. 책을 읽고 있으면 아름다운 그림이 눈앞에 절로 그려집니다. 주인공이 가족을 추억하는 장면에 플라이 낚시에 관한 묘사가 많이 등장하는데, 영화의 예고편을 찾아보고 나서야 저자가 묘사하는 낚시의 아름다움과 짜릿함이 무엇인지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예를 들면, "낚시란 말이야, 10시 방향과 오후 2시 방향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네 박자 리듬이야"(41)와 같은 표현들말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가족의 강 혹은 우리의 일부라고 생각했다"(58).

 

형의 기억 속에서 또렷하게 새겨진 아버지와 동생 폴은 아름다운 낚시꾼의 모습입니다. 형은 아버지와 동생과 함께했던 플라이 낚시를 추억하며 자신이 스쳐지나왔던 시간의 점(点)들을 되새겨봅니다. "시인들은 '시간의 점(点)들'에 대해서 말한다. 그러나 영원을 순간으로 압축시켜 놓은 그 시간의 점을 실제로 체험하는 사람은 낚시꾼들이다. 온 세상이 물고기였던 순간이 있었으나 갑자기 그 물고기가 사라져버렸으니 그거야말로 시간의 점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나는 그 도망친 놈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107).

 

"나는 거기 앉아서 잊어버리고 또 잊어버렸으며, 마침내 흘러가는 강물과 그것을 바라보는 나만이 남았다. (....) 마침내 강물을 바라보던 자는 사라져버리고 거기에서 오로지 강물만 남았다"(134).

 

흘러가는 강물처럼 쉴 새 없이 흘러온 인생입니다. 플라이 낚시를 잘 했고 터프했던 동생은 이미 오래 전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없습니다. 이미 노인이 되었지만, 형은 그때 자신이 동생을 어떻게 도울 수도 있지 않았을까 다시 생각해봅니다. 세 살이 어린 동생이었지만 독립심이 강했던 동생을 형은 다소 어려워합니다. 많은 빚을 지고 있는 동생에게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지만,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 모릅니다. 막내아들의 문제를 눈치 챈 아버지는 이렇게 말할 뿐입니다. "누군가를 도와주기에 너는 너무 젊고 나는 너무 늙었어"(165).

 

"우리가 함께 살았고 사랑했고, 또 마땅히 잘 알아야 하는 사람이 실은 우리의 이해를 벗어나기 때문이지"(200).

 

우리는 가족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요? 어쩌면 가장 가까운 친구보다, 함께 일하는 동료보다 가족에 대해 더 잘 알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막내아들이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의 어머니는 많은 것을 묻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가장 사랑했으나 제일 아는 것이 없었던 막내아들에 대하여 내게 묻지 않았다. 아머니는 그 아들을 사랑했다는 것만으로 충분했다"(198).

 

"하지만 완벽하게 이해하진 못해도 완벽하게 사랑할 수는 있습니다"(199).

 

이 책이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은 '이해를 넘어선 사랑'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랑과 결혼도 경제원리가 지배하는 요즘 세대는 가족조차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지 따지고 묻습니다. 고통만 주는 가족이라면 참고 살 이유가 무엇이냐고 반문합니다. 차라리 헤어지는 것이 낳고, 안 보고 사는 것이 건강에 좋다는 논리입니다. 그런 우리에게 <흐르는 강물처럼>은 내 아들, 내 동생이 천하의 "개자식"이라도, 그렇게 사는 그를 다 이해할 수 없어도, 그에게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기꺼이 도우려하는 가족들의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지 보여줍니다.

 

"나는 언제나 강물 소리에 사로잡힌다"(201).

 

"그에게서는 언제나 비누냄새가 난다"는 강신재의 <젊은 느티나무>가 강렬한 첫 문장으로 기억되는 책이라면, 노먼 매클린의 <흐르는 강물처럼>은 "나는 언제나 강물 소리에 사로잡힌다"는 마지막 문장으로 기억될 듯합니다. 형은 동생 폴과 떠났던 낚시 여행에서 들었던 강물 소리를 기억합니다. "내 인생의 패턴이 그 강의 패턴과 합류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곳에서 동생을 기다리는 동안 이 스토리가 시작되었다. 그 당시에는 인생의 스토리가 종종 책보다는 강과 더 비슷하다는 것을 뚜렷하게 알지 못했다. 하지만 스토리가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래전에 강물 소리에서 이 스토리가 시작되었는지 모른다"(137).

 

형은 폴과 아버지와 마지막 낚시 여행을 떠납니다. 그때는 그것이 가족의 마지막 낚시 여행이 될지 몰랐습니다. 우리 인생은 이미 시작되었고, 지금도 흘러가고 있으며, 언젠가 끝날 것을 알지만 언제 어떻게 끝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그것은 느닷없이 닥치는 일일 수도 있고, 이별을 준비해야만 하는 시련으로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사랑할 시간이 아주 짧다는 것입니다. 완벽하게 이해하진 못해도 완벽하게 사랑할 수 있다는, 동생을 보낸 형의 한마디가 오늘을 사는 우리가 알아야 할 인생의 해답은 아닐까요.

 

<흐르는 강물처럼>은 강렬한 울림이 있는 소설입니다. 깊은 슬픔이 차오르기도 하지만, 비틀즈의 "오블라디 오블라다(Ob-la-di ob-la-da)"라는 노랫말처럼 인생은 그렇게 흘러가고, 삶은 그렇게 계속된다고 웃으며 노래할 수 있는 감정으로 삶을 다시 보게 해줍니다. 우리가 문학을 읽어야 할 이유를 알게 해주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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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국립 회화관 마로니에북스 세계미술관 기행 14
윌리엄 델로 로소 지음, 최병진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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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뒷편에 실린 주소지로 지도를 검색해보았습니다. 가보지 못한 곳이라 어디쯤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이렇게 위치를 알고 있으면 좀 더 가까운 느낌이 들고, 언젠가 한 번은 꼭 가게 되지 않을까 하는 꿈도 구체적으로 꾸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베를린 굴립 회화관은 "수세기에 걸친 독일의 문화유산이 집결된 곳"(뒷표지 中)이라고 합니다. "현재 소장품에 비해 공간이 너무 협소하"여, "1,600여 점의 작품들이 수장고에서 전시를 위해 기디하고 있다'고 할 정도로 많은 소장품을 자랑합니다(8). 이 책의 저자는 베를린 국립 회화관에 가면 "유럽 미술사를 대표하는 화가들의 작품을 통해 서구 미술사의 전통을 이해하며 감동을 느낄 수 있다"(8)고 약속합니다. 베를린에 자리하고 있지만 시대와 사조, 국적을 넘어 조토, 카라바조, 판 에이크, 렘브란트, 루벤스, 와토와 같은 유명 미술가들의 관람이 가능한 곳이 바로 여기 베를린 국립 회화관입니다.

 

얼마 전 유럽 여행을 하고 돌아온 후배가 있는데 미술관 방문이 기억에 남는 여행 중 하나였다고 합니다. 그림에 대해 잘 알지 못해도 분위기에 압도되어 그림 앞에 한참을 머물러 있었는데, 그림에 대해 좀 더 알았더라면 감동이 훨씬 컸을 것이라고 아쉬워했습니다. 구체적인 유럽 여행의 계획도 없으면서 후배의 말을 듣고 더 열심히 그림을 보고 있는 중입니다. 독일은 '종교개혁'이라는 테마로 비전트립을 가보고 싶은 나라이기도 하고, 또 유럽을 여행하고 온 많은 지인들이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좋았다고 하는 곳이 독일이기 때문입니다.




 

왜 '베를린 국립 회화관'이냐고 누가 묻는다면 그건 순전히 이 사람, '카라바조' 떄문입니다. 유명세로 보자면 렘브란트 작품에도 관심이 있지만, '카라바조'는 세잔, 고흐와 함께 인간적으로 제가 몹시 좋아하는 예술가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작품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에서 머리가 잘린 골리앗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그려넣었다는 에피소드 때문에 그의 그름은 처음부터 제가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살인를 저지르고(누명이나 오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쫓기며 살면서도 성경 그림을 그렸던 그의 작품들 속에 고뇌하는 그 자신이 보이는 것 같아 그의 작품을 볼 때마다 애잔해집니다. 성경을 가르칠 때, <성 마태오의 소명>과 같은 작품을 매개로 설명을 하면 딱딱한 강의가 감동의 옷을 입기도 합니다.

 




이 책, <베를를 국립 회화관>에서는 카라바조의 작품 중 '승리의 큐피트'(1601-1602)를 소개합니다. 이 작품은 "동시대의 화가들로부터 의심할 여지 없이 높은 평가를 받았고 당대의 박학다식한 인물들로부터 시적, 문학적인 소재를 잘 표현한 것으로 해석"되었지만, 지금은 해석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있다고 합니다(100). 장난스러우면서도 천진한 생동감이 가득한 어린아이의 모습의 큐피트가 인상적입니다.

 

카라바조는 "일반인들 중에서 모델을 구했"습니다(101). 거리의 부랑자나 집시의 얼굴을 모델로 예수님을 그리거나, 위에서도 말했지만 머리가 잘린 골리앗에 자신의 얼굴을 그려넣은 일은 유명합니다. "승리의 큐피트" 역시 실제 인물을 모델로 했나 봅니다. 이 책의 저자는 이 작품에서 "모호한 미소를 띠고 있는 젊은이는 체코 브라보이며 장난스럽지만 관심을 끌어올리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얼마 전, 한 TV 프로그램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헨리 8세의 벽화'를 거꾸로 보면 사탄의 얼굴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 벽화는 16세기 작업 기법으로 그려졌다는데, 헨리 8세는 종교개혁으로 가톨릭을 반대하고 제압한 인물입니다. 방송에서는 디아메이드 수도사들이 이 그림에 일부러 사탄의 얼굴을 그려넣은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그림에는 알게 모르게 많은 상징들이 숨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예술 작품은 그저 마음으로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겠지만, 이렇게 숨겨진 코드를 읽는 것도 그림을 감상하는 또다른 재미입니다.

 



 

 

카라바조의 "승리의 큐피트"도 알고 "보면" 더 재밌는 숨은 상징들이 있습니다. 저자는 이 작품에서 "큐피트는 천문학의 상징인 별들이 있는 푸른 천구 위에 앉아 있으며(표지 그림으로 봐야 더 선명하게 보입니다) 이는 세계 전체에 대한 승리를 의미"한다고 해석합니다(101). 또 큐피트 주변에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여러 물체들이 배경으로 그려져 있는데, "월계수는 불멸의 상징이며 문학적 명성과 연관"되고, "무구는 권력에 대한 욕구와 연관"되며, "뒤편에 굽힌 다리, 왕관, 그리고 해골은 지상의 권력을 의미한다"고 풀이합니다. 설명을 듣고 나면 언제나 "알아야 보인다"는 말이 새삼 실감이 됩니다.

 

<베를린 국립 회화관>은 대표적인 작품별로 간단한 설명과 해석을 담고 있는데, 회화에 대한 전체적인 그림보다 작품 한 점 한 점을 감상하는 힘을 키워줍니다. 단편적이지만 한 작품을 감상하는 눈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됩니다.

 

카라바조 뿐 아니라, 렘브란트와 보티첼리의 작품까지 감상할 수 있는 곳이라는 점이 베를린 국립 회화관에 가봐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됩니다. 더구나 지금도 잊지 못하는 만화영화 플란더스의 개에서 네오가 루벤스의 그림 앞에서 숨은 거두는 장면을 아직 기억하고 있는데, 그 루벤스의 그림도 소장되어 있다고 하니 베를린에 가게 된다면 국립 회화관이 일순위로 가보고 싶은 여행지가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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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환화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4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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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히가시노 게이고에 열광하는가?

 

자주 이용하는 작은 도서관에 가면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책을 잘 읽지 않는 내 동생도 히가시노 게이고의 것은 하룻밤에 뚝딱이다. 독서에 흥미가 없는 사람도 책을 읽게 만드는 그의 힘은 무엇일까? 추리소설이 주는 흥미도 있겠지만, 일본 추리소설 작가가 그 한 사람도 아니고, 다양한 작가의 작품이 소개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도 유독 히가시노 게이고의 명성이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는 그의 다작도 한 몫 하는 듯하다. 그처럼 많은 작품을 쏟아내는 작가를 나는 아직 알지 못한다. 가히 글노동자라 할 만하다. 써내는 족족 화제가 되고, 감흥이 대표작에 미치지 못한다 해도 어쨌든 계속 읽힌다는 것. 이것이 그가 유명세를 이어가는 한 이유가 아닐까. 전문가들의 시각에서는 여러 가지 분석이 가능하겠지만, 순수한 독자의 입장에서 보면 가장 중요한 이유는 딱 한 가지이다. 뛰어난 스토리 감각! 그의 작품이 자주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되어진다는 것이 그 단편적 증거가 아닐까.

 

그런데 문제는 그가 점점 명확한 추리와 논리보다 스토리에 더 집착하는 듯한 인상이다. "소재를 자유자재로 변주하는 능력"을 가진 "탁월한 이야기꾼"인 것은 맞지만, 추리물을 좋아하는 독자에게는 다소 애석한 일이다. <몽환화>도 본격 미스터리라고 하기는 어렵다. 일단 탐정이 등장하지 않는 추리소설이고, 책을 읽는 내내 "과연 범인은 누구일까?" 보다 "어떻게 된 사연일까?"가 더 궁금하다고나 할까. 수수께끼처럼 던져진 두 개의 퍼즐조각(프로롤그)과 감추어진 비밀이 만나며 뜻밖의 묵직한 교훈도 얻었지만, 기가막힌 트릭과 명쾌한 추리(논리)가 주는 희열의 맛은 없고 잘 짜여진 드라마 한 편을 재미나게 보고 난 기분이다.





  

 

두 개의 퍼즐 조각과 묻지마 살인 사건

 

<몽환화>는 대낮의 느닷없는 강도 사건으로 시작된다. 정확히 말하면 평온했던 출근 시간에 벌어진 일이니 대낮은 아니지만, 그만큼 느닷없는 사건이었다. 이것이 프롤로그 1이다. 프롤로그 2는 나팔꽃 시장이다. 1년에 한 번 가족 행사처럼 치뤄지는 나팔꽃 시장 나들이. 그곳에서 그 집안의 둘째 아들은 한 소녀와 가슴 뛰는 만남을 가졌지만, 그 둘의 만남은 어느 날 갑자기 납득할 수 없는 이별로 끝이 난고 만다. 그리고 본격적인 이야기는 장례식장에서 시작된다. 왜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했는지 짚이는 데가 하나도 없는 한 청년(손자)의 죽음과 범인을 찾기가 가장 어렵다는 '묻지마 살인 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파란 장미를 연구했던 꽃 연구가였다.

 

살해된 할아버지의 손녀와, 이제 청년이 된 나팔꽃 시장의 그 소년이 우연히 만나게 되면서 그 둘은 뭔가 숨겨진 비밀이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들이 함께 사건의 진상을 쫒기 시작하면서 프롤로그에서 던져주었던 두 개의 퍼즐 조각이 전체적인 그림 속에 자기 자리를 드러내기까지 독자들은 책에서 쉽게 눈을 뗄 수 없다.

 



  

 

몽환화, 금단의 꽃

 
 

독자들은 얼핏 희귀 꽃을 둘러싼 추악한 음모가 얽혀 있을 것이라 예측하기 쉬운데, 이야기는 그보다 훨씬 복잡하고 역사적이며 사회적 함의를 담고 있기도 하다. 아직 책을 읽지 않은 독자를 위해 한가지 힌트를 제공한다면 '과거가 현재를 지배한다'라고 해두자. 허락된 자들이 아니면 열어서는 안 되는 문. 주인공들이 그 금단의 문을 활짝 열었을 때, 그들은 오늘의 삶이 과거와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세상에는 빚이라는 유산도 있다"(409)는 사실이, 원하지 않을지라도 내가 걸어가야만 할 삶의 길이 있다는 것을 새롭게 일깨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이 작가는 범인을 동정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의 작품을 '다' 읽어본 것은 아니지만 그 사람이 끔찍한 일을 저지른 범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도 '그 어쩔 수 없었음'을 동정하고 만다. <브로크백 마운틴>의 작가 애니 프루는 "작가는 벌어질 수 있는 모든 일의 무수한 가능성들 중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과 벌어져야만 하는 일을 이끌어내는 사람이다"라고 했다. "벌어진 일과 벌어져야만 하는 일", 애니 프루는 <흐르는 강물처럼>(연암서가) 서문에서 저자 노먼 매클린이 "두 눈을 감고서도 그렇게 할 수 있"는 작가라고 평했는데, 히가시노 게이고가 가장 잘 하는 일도 바로 그 일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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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 묶여 있는 삶, 예수로만 풀린다
페리 노블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14년 5월
평점 :
품절


 

 
"머릿속으로 숫자 하나만 골라 보세요."
 
아무 숫자나 상관 없습니다. 어떤 숫자를 고르셨습니까? 페니 노블 목사님은 "이 실험을 해보면 하나 같이 1에서 100까지의 숫자 중 하나를 고른다"고 말합니다. 페니 노블 목사님은 묻습니다. 세상에는 숫자가 무한히 많은데 '1,284,383'이라는 숫자를 고르면 안 되느냐고 말입니다. 이 실험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진실은 이것입니다. "우리는 작고 뻔한 것만 생각하도록 프로그램되어 있다"(28). <해방>은 이처럼 작고 뻔한 것에 매여 있는 인생들을 하나님이 예비하신 크고 놀라운 삶으로 인도하는 초대장입니다. 단 하루를 살더라도 하찮은 일에 인생을 낭비하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잠재력을 자유롭게 풀어놓고 싶다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이 되지 못하도록 옭아매는 모든 올무를 끊어버리고 싶다면 이 책을 펼쳐 들어야 합니다.



  

 
"주여, 누구시니이까?"
 
페리 노블 목사님은 묶여 있는 삶을 해방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자리에서 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질문 하나가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놓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 질문이 그토록 중요한 것은 주님을 모르면 절대 그분이 원하시는 일을 할 수 없기 때문"(37)입니다. 페리 노블 목사님은 '다윗'을 모델로 하여 어떻게 하면 묶여 있는 삶에서 해방된 인생을 살 수 있는지 이야기합니다. "다윗은 애초에 위대한 일을 할 생각이 전혀 없었"(32)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작고 하찮은 양치기의 삶에서 풀려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자신을 위해 지금보다 훨씬 더 큰 삶을 예비하셨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해방>은 이것이 바로 "답답한 삶의 옥문을 여는 열쇠"(37)라고 선언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도, 아니 바로 나를 위해서도 훨씬 더 큰 삶을 예비하고 계시며, 그것을 깨닫는 그 순간부터 그러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사실말입니다. 그러니 절대 '그러려니' 체념하고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페리 노블 목사님은 해방된 삶으로 뛰어들기 위해 '용서'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과거, 상처, 비극적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꼭 붙들고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기 원하시는 하늘 아버지 앞에 고통과 아픔과 감당하지 못할 상황을 내려놓으라고 합니다. 스스로 과거의 감옥, 미움의 감옥, 절망의 감옥에 갇혀 있기를 원하는 자는 누구도 껴내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옥문을 열어주었습니다. 우리를 가두어 두었던 돌문은 벌써 옆으로 치워지고 없습니다. 용서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과거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64)는 한마디가 마음에 깊이 남았습니다. "영적 도약의 최대 걸림돌 중 하나는 가해자를 용서하지 못하는 태도"라는 지적을 마음에 새겨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은 "내가 뭘 할 수 있을까"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인생을 살고 싶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비전이 아닌 자기 비전에 빠져 열심을 내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자신이 작성한 화려한 인생 계획표를 하나님 앞에 펼쳐 놓고 이대로 이루어달라고 기도하는 청년들도 많습니다. 페리 노블 목사님은 "우리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누구시며 우리를 통해 무엇을 이루고자 하시는지에 초점을 맞추는 것"(83)이 중요하다고 역설합니다.
 
우리 수준의 꿈을 품으면 우리 수준의 인생밖에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초대하시는 인생은 우리 수준이 아니라, 하나님 수준입니다. <해방>은 하나님 수준의 삶으로 올라가라고 독려합니다. 다윗은 우리가 하나님 수준까지 높이 올라갈 때 우리의 인생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 지를 보여주는 좋은 모델입니다. "다윗은 평생 목자로 살 수도 있었다. 아마도 그는 꽤 좋은 목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는 음악가가 될 수도 있었다. 성경을 읽어 보면 그의 음악 재능이 남달랐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를 왕의 재목으로 창조하셨다. 그리고 그는 한 번에 한 걸음씩 그 운명을 향해 걸어갔다. 그러자 어느 순간, 그의 삶이 굴레에서 완전히 풀려났다"(101).
 


  

 
"우리 힘으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이 될 수 없다. 하나님은 우리 성과를 원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단지 우리가 그분의 자녀라는 지위를 그냥 받아들이기 원하신다"(42).
 
요즘 바울이 복음을 수호하며 율법주의와 싸웠다면, 현대 사회에서는 많은 목회자들이 성과주의와 싸우고 있는 것을 목격합니다. 성과주의는 내가 무엇을 해서 인정받으려고 하는 태도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내 열심으로 무엇을 이루어 인정을 받고자 하는 욕구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그 성과주의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는 좋은 소식입니다. 우리의 능력으로는 하나님 앞에 인정받을 수도 없고, 인정받을 필요도 없다는 선언입니다. <해방> 역시 우리가 성과주의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자녀라는 지위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누릴 때, "진정한 해방이 시작된다"(59)고 일러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해 놓으신 위대한 삶은 선물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하나님을 믿고 "한 번에 한 걸음씩 그분을 따라" 내딛기만 하면 됩니다(175).
 


  
"바로 지금이 우리 자신을 풀어 자유로운 삶을 살게 할 때다!"(21)
 
페리 노블 목사님은 "다른 이들을 우리 삶 속으로 초대하지 않고 혼자서 예수님이 원하시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은 영적으로 불가능하다"(213)고 잘라 말합니다. <해방>은 우리에게 신앙 공동체의 중요성, 교회의 위대함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합니다. 비록 허물투성이일지라도 교회는 여전히 "깨지고 상한 이들, 잊힌 이들, 가난한 이들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며, "영원한 역사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며, "세상에 다가가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임을 일깨웁니다. "그 무엇도 교회를 이길 수 없다"고 선언합니다(233). 세상도 손가락질 하는 교회의 허물과 비리 때문에 낙심하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 교회란 얼마나 위대한 하나님의 계획이며, 또 얼마나 놀라운 공동체인가 다시 깨달아져 왔습니다.
 
<해방>은 죽은 심장을 다시 뛰게 해주는 책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예비하신 "진짜" 삶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하는 책입니다. 모든 묶인 것으로부터 우리를 해방하는 힘을 가진 복음의 위력을 새롭게 확증해주는 책입니다.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엡 3:20)는 한 구절에 담긴 놀라운 약속을 믿을 때, 내 사람이 얼마나 놀랍게 변화될 수 있을지 기대하게 하는 책입니다.
 
페리 노블 목사님의 글은 맥스 루케이도 목사님의 것을 닮았고, 그 메시지는 '복음'의 진리를 완전하게, 보다 깊이, 그리고 새롭게 전하고 있는 팀 켈러 목사님, 튤리 차비진 목사님, 매트 챈들러 목사님의 것과 맥을 같이 하며, 그러면서도 이 모든 분들보다 훨씬 유쾌한 분이기도 합니다.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이며, 구원은 단지 지옥에서 건져진 것으로 끝이 아님을 흔들어 일깨우는 책입니다. 복음이 주는 흥분과 설렘으로 가득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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