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변태
이외수 지음 / 해냄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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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몰수된 젊은 날의 꿈들은 반환되지 않으리라. 오늘도 실종된 자아는 되돌아오지 않으리라"(새순, 115).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렇게 단숨에 읽은 책이 얼마만인지 모르겠습니다. 이외수 선생님의 <글쓰기의 공중부양>에 보면 이런 설명이 있습니다.

 

그놈은 흉기로 자주 자해를 하는 습관이 있다,

라는 문장보다는

그놈은 뻑하면 회칼로 자기 배를 그어대는 습관이 있다,

라는 문장이 훨씬 선명한 전달력을 가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흉기와 자해라는 사어 대신에 회칼이나 배를 그어댄다는 생어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완전변태>는 이외수 선생님이 말한 그 선명한 전달력, 현장감과 생동감으로 충만한 언어의 향연입니다. 눈앞에서 그림을 그리듯, 제 마음을 홀리는 문장들에 저절로 밑줄이 쳐졌습니다.

 

"잘 포장된 도로가 늦가을 식은 햇빛 속에 거대한 구렁이처럼 드러누워 있었다"(13).

"문득 청춘이 두엄더미처럼 썩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23).

"창살 사이로 들어온 초여름 햇살이 그의 머리와 어깨를 흥건하게 적시고 있다"(83).

"그는 유년시절부터 빈곤이라는 이름의 악마에게 영혼을 물어뜯기면서 혼자 험난한 가시밭길을 맨발로 걸어온 예술교 신도였다"(181).

"사방에 단풍이 축제처럼 불타오르고 있었다"(195).

그런데 이 아름다운 언어 안에 담긴 '메시지'는 누군가의 비유처럼 "날카로운 송곳" 같습니다. 매서운 통찰, 격분에 차서 마음껏 비웃어주는 해학적인 풍자가 우리 사회의 썩은 부분을 인정사정 없이 도려내는 듯합니다.

 

"대한민국은 돈을 종교처럼 숭배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유난히 많은 나라였다. 젊은이들마저도 돈이 없으면 공부할 자격도 없고 돈이 없으면 사랑할 자격도 없다는 말을 서슴지 않을 정도였다. (…) 돈이 없으면 교회에도 절에도 다니기가 미안할 정도였다"(15).

 

"그런데 젊은이. 법나무에는 법이라는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던가"(27).

 

"그는 세상이 썩었다는 사실에 격분하고 있었다. 썩지 말아야 할 것들이 더 썩었다는 사실이 격분에 기름을 끼얹고 있었다. 종교, 교육, 예술. 이 세 가지는 세상을 썩지 않게 만드는 방부제의 역할을 해야 한다"(192).

 

"그들은 조건과 배경을 선택해서 결혼하려는 오류를 당연시한다. (…) 그들은 재력과 권력과 학력을 미신처럼 신봉한다"(221).

눈치 채셨겠지만 이 소설은 다분히 "계몽적"입니다. 가르치려는 속셈이 훤히 보입니다. 그러니까 문학을 읽고 저절로 차오르는 미학에 심취하며, 스스로 깨달음을 얻으려는 독자들은 이렇게 노골적으로 누군가를 가르치려드는 소설이 불쾌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독자들과 오랫동안 소통하며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져온 작가로서 꿈과 자아를 몰수 당하는 청춘들을 그냥 보아넘길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총 10편의 단편이 실린 <완전변태>에서는 이외수 선생님이 소설 속 인물로 '완전 변태'하여 현현한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첫 번째 단편 <소나무에는 왜 소가 열리지 않을까>에서는 사법고시 합격으로 흥분하여 달려가는 청년을 불러 세우는 도인 같은 '노인'의 모습에서, <해우석>에서는 탐석광인 아버지에게 진짜 돌을 들이미는 다섯 아들의 모습에서. <새순>에서는 모두가 외면하는 폭력 앞에 서슬 푸른 노기를 띠고 지팡이를 휘두르는 노인의 모습에서, <명장>에서는 "명품은 모조리 장도리로 박살 내버리고 자신을 그대로 빼닮은 아집 한 덩어리만 덩그러니 남겨놓는"(135) 모습을 한탄하는 아주 특별한 시감각을 소유한 노인의 모습에서, <대지주>에서는 200자 원고지에 특수작물(글)을 경작하는 순박하지만 당당한 한 사나이의 모습에서 소설 속 주인공으로 완전 변태한 이외수 선생님이 보였습니다.

 

주로 지혜로운 노인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이외수 선생님은 <소나무에는 왜 소가 열리지 않을까>에서는 사법고시 합격으로 흥분한 청년에게 "법나무에는 법이라는 열매가 주렁주렁 열려야 한다"는 돌직구를 날리고, <새순>에서는 매질을 당하는 아이를 보고도 못 본척 하는 군중들의 "가슴밭에 양심이라는 이름의 새순 하나가" 얼굴을 내미는 꿈을 꾸고, <파로호>에서는 미친 세상에서 미쳐버린 듯한 기자의 모습을 환상적으로 그려내고, <유배자>와 <흉터>에서는 썩어버린 예술과 종교를 조롱하고, <청맹과니의 섬>과 <해우석>, <명장>, <대지주>에서는 본질을 잃어버리고 허영으로 가득찬 우리의 꿈 아닌 꿈을 비웃습니다.

 

그러나 위의 단편에서는 완전 변태를 이루었던 이외수 선생님이 정작 <완전변태>라는 단편 속에서는 직접 현현을 시도합니다. 대마법 위반으로 "나동 205호"에 입방한 "고명하신 (작가) 선생님"의 모습으로 말입니다. 동시에 그 "고명하신 작가 선생님"과 한 방에서 애벌레 놀이를 하는 청년의 모습으로 이중 현현을 합니다. "대마초를 피우고 호랑나비가 되는 꿈"을 꾸다가 들이닥친 마약 단속반에게 끌려와 "고명하신 작가 선생님"과 함께 수감된 이 청년은 이외수 선생님의 '꿈'이기도 한 것입니다.

 

몽환 속에서 호랑나비가 되는 꿈을 꾸고 있는 이 애벌레 청년은 "대마관리법이 위헌이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꿈꿀 자유를 박탈하는 악법 중의 악법이기 때문에 폐지되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꿈이 죄가 되는 법은 없다는 것이다. 꿈에 한 욕설은 욕설이 아니요, 꿈에 한 방화는 방화가 아니며, 꿈에 한 살인은 살인이 아니므로 무죄라는 것이다"(96).

그는 대마가 "인체에 미치는 해닥도 담배의 5분의 1 정도밖에 안 된다"는 상세한 지식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외수 선생님은 스스로를 변호하고 싶으셨던 것일까요, 꿈까지 통제하려 드는 법무부의 정체를 폭로하려는 것일까요, 꿈에는 위법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고 설득하려는 것일까요, "꿈꿀 자유를 박탈당하지 말라"고 선동하는 것일까요? 어쩌면 이 모두일 수도 있겠습니다.

성경에 보면, 사회를 고발하는 한 선지자가 다시는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지 않겠다 결심을 하다가도 그것을 외치지 않으면 심장에 불이 붙어 뼛속까지 타들어가니 외치지 않고는 답답하여 견딜 수 없다고 절규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소설을 읽으며 그 선지자를 생각했습니다. <완전변태>는 역설적이고 해학적입니다. 나도 모르게 실소가 터져나옵니다. 그런데 이 어처구니 없는 웃음에는 분노가 숨어 있습니다. 파괴적이고 폭력적으로 들끓는 분노가 아니라, 다시 꿈꾸고 다시 시도해보려는 슬픔이면서 희망이기도 한 분노입니다. <완전변태>는 가볍게 웃으며 읽어도 좋을 소설이고, 날카롭게 비판하며 읽어도 좋을 소설입니다. 여하튼, 아름답고 재미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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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소 옆 맛집 - 볼거리 먹을거리 콕 집어 떠나는
유은영.민혜경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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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거리 먹을거리 콕 집어 떠나는 명소와 맛집의 만남"

 


나폴레옹은 굉장한 독서광이었다고 합니다. 전쟁터에서도 책을 마차에 잔뜩 실고 다니며 읽을 정도였습니다. 나폴레옹에게는 전용(?) 사서도 있었습니다. 전쟁 중에도 사서를 데리고 다니며 책을 선택하도록 했다는 것입니다(말콘서트, 45).

 

요즘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면 여행지나 맛집에 대한 정보가 쏟아집니다. 문제는 신뢰할 만한(!) 알짜 정보를 찾아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최근에 많은 블로거들이 추천하는 맛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맛이나 서비스 수준이 함께 간 사람들에게 미안할 정도였습니다. 블로거들을 믿은 것이 몹시 억울하다 보니 혹시 "나만 죽을 수 없다"는 심정으로 추천한 맛집인가 하는 의혹까지 생겼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나폴레옹이 특별히 책을 관리하는 전문 관리까지 두고 책을 선택하도록 한 것은 많은 책 속에서 양질의 책을 골라내야 할 필요가 절실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중구난방으로 쏟아지는 여행 정보들을 볼 때마다, 내게도 여행지를 선정해주는 매니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렵게 찾아갔는데 돈도 버리고 시간도 버리고 즐겁자고 떠난 여행인데 마음까지 상하는 일이 없도록 말입니다. <명소 옆 맛집>은 그런 의미에서 제게 여행 매니저와 같은 책입니다.



 

 

"각 지역별 베스트 여행지는 어디?"

 

 

가끔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여행지 100선, 1000선이라고 해서 보면, 그중에서도 "꼭"(!!!) 가볼 만한 곳을 고르기가 쉽지 않고, 또 어떤 곳은 억지로 숫자를 채우고 있구나 하는 인상을 받기도 합니다. <명소 옆 맛집>은 각 지역별로 베스트 여행지를 선정하고, 그곳에서 가장 근거리에 위한 맛집(6) 정보를 담았습니다. 시간을 내서 좋은 명소를 찾아다니고 싶은 저에게는 국내 여행의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적어도 이 책이 추천한 곳은 꼭 시간을 내서 한 번 다녀와야겠다 싶습니다.

 

저자는 이 책이 "여행을 떠나기 전 "어디에 가서 무엇을 먹을까"라는 행복한 고민에서"(5) 탄생한 가이드 북이라고 소개합니다. "어디에 가면 좋을까"와 "어느 집이 맛앗나"라는 질문에 여행 전문가가 답하는 모범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와 같은 여행 초보에게는 보물섬 지도 같은 책입니다.

 




"여행지 선정, 코스, 맛집까지 한 번에"

 

 

전에 친구들과 차를 타고 가다 "강릉"이라는 표지판을 보고 그대로 직전을 해버린 적이 있습니다. 일출만 보고 급히 돌아와 출근을 하고(지각함), 부모님께 걱정과 꾸중도 좀 듣고, 빼먹은 대학원 수업 때문에 나중에 고생도 좀 했지만, 지나온 내 삶 어느 지점에 그런 행복했던 순간이 있었다는 것이 참 감사합니다.

 

<명소 옆 맛집>을 보니 마음이 조급해집니다. 그때의 그 무모함이 다시 도지려고 하는 것을 간신히 참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서 가장 가까운 명소부터 하나 점찍었습니다. 그곳은 바로 정조의 위대함과 세계문화유산을 직접 목격할 수 있는 "위대한 시간 여행 수원"입니다. <명소 옆 맛집>은 우선 "알뜰 여행 코스"부터 제안합니다. 수원 여행하면 '화성행궁' 정도만 알았는데, 함께 둘러보면 좋을 곳이 참 많습니다. <명소 옆 맛집>에서 제안하는 여행 코스는 "최적의 동선"을 고려한 "주요 스폿들"이라, 이동거리와 시간까지 한 눈에 파악할 수 있습니다. 참 친절하죠? ^^

 



 

 

여행지 정보도 알차게 수록되어 있습니다. 어디를 어떻게 둘러봐야 할지, 미리 알아야 할 정보는 무엇인지, 더 즐겁게 여행하는 팁까지 알뜰하게 챙겨줍니다. 미리 읽어보며 여행지를 만나는 것은 또다른 즐거움입니다. 이곳이 이런 의미를 지닌 명소이구나 하는 깨달음이 우리나라 곳곳을 이해하는 지식이 되어주니까요.

 



 

 

<명소 옆 맛집>은 제목 그대로 명소 옆(근거리)에 있는 맛집까지 소개해줍니다. 여기 실린 정보는 저자가 "직접 가서 보고 느낀" 그대로입니다. 맛집은 현지인에게 물어보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하지만, 다녀보면 현지인들의 취향이나 평가도 모두 제각각이어서 믿을만한 사람에게 물어보는 것이 최고하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명소 옆 맛집>은 직접 다니며 먹어본 여행가의 조언이니 더 기대가 됩니다. 찾아가는 법과 주메뉴, 가격까지 친절하게 소개되어 있습니다. 또 여행 코스를 따라 서너곳의 맛집이 더 소개되어 있어 사정에 따라 골라 먹는 재미도 있습니다.

 



 

 

<명소 옆 맛집>은 각 지역별로 명소와 맛집을 소개한 후, 월별로 "베스트 여행지 12곳"과 "맛집 베스트", "주전부리 베스트" (각각) 10선을 따로 선정해두었습니다. 베스트를 참고로 여행지 우선순위를 결정해도 좋을 듯합니다.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하루하루가 기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당장 눈앞의 것만 보고 살아서도 안 되겠지만, 내일만 위해서 사는 것도 말자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내일을 꿈꿀 때 순간순간 충실할 수 있으며, 또 순간순간 충실하여 내일의 꿈도 이루어지는 것이겠지요. 그래도 할 수만 있다면 '오늘' 행복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참 왜 살아야 하나, 어떻게 살아야 하나 치열하게 고민했을 무렵, 단 하루를 살더라도  후회 없이 살고 싶다,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살고 싶다는 생각에 열병을 앓았던 때가 있습니다. 다시 그때의 마음으로 돌아가 지금 나 잘 살고 있는지 계속 물어야겠습니다. 내일의 꿈을 위해 오늘의 즐거움을 잠시 유보해 둘 수는 있어도 인생 전체를 저당잡히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겠다 생각합니다. 날마다 행복하기 위한 시도, 그 첫발걸음이 제게는 여행입니다. 여행이 익숙하지 않아 망설임이 많은 성격인데, 이 책을 매니저 삼아 가까운 곳부터 여행을 시작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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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순간 - 녹초가 된 당신에게 찾아온
튤리안 차비진 지음, 최요한 옮김 / 터치북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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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하나님의 절대 사랑을 성도들에게 전하지 못했기 때문에 기독교는 대외적으로 지배와 심판의 도구라는 오명을 얻었음은 물론이고 탈진과 위선이 어느새 기독교의 특징으로 굳어졌다"(260).

 

 

목회자로서 부끄러운 고백을 해야겠습니다. 최근 몇 년간, 전 완전히 녹초가 되어 있었습니다. 사역하는 기쁨은 온데간데 없고, 만성피로에 시달리며, 이건 아니다 싶은 교회를 보며 자괴감에 빠져 있었습니다. 예배를 드리면서도 통곡만 터져나왔지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알게 하셨습니다. '복음', 그 완전한 은혜, 그 완전한 자유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 그것이 해답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깨달음은 경악과 충격에 가까웠습니다. 날마다 복음을 말하면서 그 완전한 은혜를 온전히 누리고 있지 못하다는 자각을 갖게 했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튤리안 차비진 목사님의 <JESUS ALL(예수로 충분합니다)>이라는 책이 첫 계기가 되어주었습니다. 그리고 매트 챈들러 목사님의 <완전한 복음>과 <예수 중심의 교회>, 팀 켈러 목사님의 <갈라디아서 : 복음을 만나다>, 앤드류 팔리 목사님의 <복음에 더할 것은 없다>까지, 마치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일처럼 책들과 만났습니다. 그리고 다시 이 책, 튤리안 차비진 목사님의 <은혜의 순간>까지, 하나님께서는 계속 복음의 완전한 은혜 가운데로 저를 초대해주셨습니다.

 



 

 

"성도들은 주일마다 목회자에게 복음을 들을 권리가 있다"(105).

 

 

튤리안 차비진 목사님은 예수님이 경계하신 율법주의가 오늘날 '성과주의'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경고합니다. 성과주의란, "업적과 성과로 사람의 정체성과 가치를 결정하는 태도이다"(17). 성과주의에 물든 현대인들의 모습은 참혹 그 자체입니다. "성과주의가 판치는 세상에서 성공은 곧 생명이고, 실패는 곧 죽음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실직을 하거나 투자에 실패하면 그 사실을 밝히는 대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17). 교회도 예외는 아닙니다. 은혜로 구원은 받았지만, 성장하기 위해 더 노력하라고, 착한 행실을 위해 더 노력하라고, '땀' 흘려 쌓은 공로로 복을 누리라고 부추깁니다.

 

율법주의는 또 도덕주의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가 일반적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이 있다. 교회는 성도들이 책임 있게 행동하도록 훈계하거나, 착한 행실을 위해 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즉, 성도들이 해야 할 일을 가르치는 게 교회의 주된 임무라고 여긴다"(155).

 

사회적으로 모범이 되기보다 지탄이 되고 있는 교회의 모습을 보며 윤리의 강화를 더 부르짖을 사람들도 많겠지만, <은혜의 순간>은 교회가 도덕주의에 빠지면 복음의 은혜는 잊혀진다고 경고합니다. "더욱이 나는 규칙에 규칙을 더하며, 규칙을 전부로 여기는 강압적인 기독교 도덕주의가 은혜의 복음을 가로채는 비극적인 모습을 자주 목격한다"(19).



 

 

"하나님의 차별 없는 사랑은 '종교적인' 사람들을 노엽게 만든다. 이유가 무엇일까?"(22)

 

 

사람들은 당연히 율법을 싫어하고, 은혜를 사모할 것 같지만, 튤리안 차비진 목사님은 더크 켈리 박사의 말을 빌어 "역설적이게도 은혜를 한층 더 싫어"하는 사람의 심리를 꼬집습니다. "성도들을 화나게 만들고 싶다면 율법에 대해 설교하세요. 성도들을 정말로, 정말로 화나게 만들고 싶다면 은혜에 대해 설교하세요"(85). 왜 '종교적인' 사람들일수록 은혜를 싫어할까요?

 

그 이유 중 하나는 은혜가 우리의 기준을 모조리 뒤집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은혜는 조건이 없습니다. 조건이 없는 것이 은혜입니다. "은혜는 무모할 정도로 관대하고, 불편한 정도로 무차별적"(34)입니다. 이러한 은혜는 "공정해야 하고, 공평해야 하고, 주고받아야 직성이 풀리는 인간의 지배를 거부"합니다. 은혜는 열심히 한 사람, 착한 사람, 뛰어난 사람이 상(또는 복)을 받아야 마땅하고, 게으른 사람, 나쁜 사람, 못난 사람은 벌(또는 저주)를 받아야 마땅하다는 인간의 기준을 뒤집어버리기 때문에 더 열심히 하는 사람들일수록, 더 착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일수록,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일수록 은혜에 거부감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튤리안 차비진 목사님은 이러한 인간의 심리를 '지배욕'이라고 풀이합니다(22, 61, 222). "스스로 신이 되고 싶은" 지배욕에 중독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은혜를 절대 사랑입니다. "절대 사랑은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불합리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절대 사랑의 핵심이다"(130). 그러니 성과주의에 빠린 사람들일수록 은혜가 불편할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에서 무조건적인 은혜를 강조하다 보면, 두 가지 저항이 생겨납니다. 하나는 "은혜가 게으른 사람을 만든다는 것"과, "은혜가 방종을 부추기고 이기적인 사람을 만든다"(228)는 주장입니다. 저도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던 사람 중의 하나입니다. 자신이 잘못을 하고도 비판을 하면 오히려 "은혜가 없다"고 역공을 하는 뻔뻔한 사람을 많이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튤리안 차비진 목사님은 이와 같이 행동하는 사람들은 은혜를 깊이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이라고 잘라 말합니다. 동시에 율법주의로 흐르는 사람들은 법을 보는 안목이 낮기 때문이며, 오히려 법을 보는 안목이 높을수록 은혜를 좇는다고 단언합니다(113). <은혜의 순간>은 우리에게 율법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가를 율법의 기능을 통해 설명하며, 은혜가 게으름과 방종, 이기심을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도덕주의가 결국 부도덕성을 낳는다는 원리를 논리적으로 설명합니다.

 

 


 

 

"결국 교회는 종교적 목적이 아니라 값없이 받는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278).

 

 

교회는 다음과 같은 지적을 깊이 고민해봐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자주 듣고 믿는 것과는 반대로 오늘날 교회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값싼 은혜'가 아니라 '값싼 율법'이다"(115). 튤리안 차비진 목사님은 '그리스도인이 이웃에게 긴급히 전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은혜의 복음이라고 말합니다. 조건부에 짓눌려 고통받는 사람들, "피로하고 지친 세상을 위해 예비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아름답고 무한하신 은혜이며, 이 기적같은 은혜가 바로 복음"(32)이기 때문입니다.

 

가끔 길거리에서 지나가는 행인들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간음하는 자, 거짓말하는 자, 불신자는 지옥"이라고 외치는 전도자를 만납니다. 죄를 깨닫고 하고 심판을 경고하려는 마음일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의 순간>은 인간을 진정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율법이 아니라, 은혜임을 강조합니다. <레 미제라블>의 주인공 장 발장은 "한평생 벌을 받고도 조금도 변하지 않았던 그가 한 순간의 은혜로 변"(127)합니다. 진정한 변화는 은혜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사람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혁명적으로 바뀔 것입니다. "은혜를 경험할 때 새 삶이 시작된다"(144).

 

 

<은혜의 순간>은 복음을 전혀 모르는 불신자보다도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이 먼저 읽어야 할 책입니다. 왜냐하면 예수의 증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먼저 복음을 완전히 이해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은혜를 제대로 알지 못할 때, 교회 생활은 또 하나의 의무가 되며, 기쁨이 아니라 피로 자체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더 깊이 이해하자고 모두를 초청하고 싶습니다. 오직 복음을 선포하자고 교회에 외치고 싶습니다. 복음으로 충만한 예배, 그러한 예배를 사모합니다. 은혜에 목마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오직 복음으로만 그 목마름을 해결할 수 있으며, 복음이면 충분하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해준 튤리안 차비진 목사님께 감사합니다. 더 노력해야 한다는,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발전해야 한다는, 자기계발을 해야 한다는, 자기를 증명해야 한다는 모든 압박으로부터 나를 해방시켜준 복음, 그 완전한 은혜, 그 완전한 자유를 묵상하며 날마다 더 깊이 은혜 가운데로 들어가고 싶습니다. 특별히 교회 생활에 지친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책을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복음은 예수가 강하시니 당신은 얼마든지 약해도 된다는 것을 선언한다. 예수가 이기셨으니 당신은 얼마든지 져도 된다. 예수가 유명하셨으니 당신은 얼마든지 무명으로 남아도 된다. 예수가 비범하셨으니 당신은 얼마든지 평범해도 된다. 예수가 성공하셨으니 당신은 얼마든지 실패해도 된다"(38)

 

"이제 당신은 그 누구에게 그 어떤 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 당신의 자존심과 자긍심은 결코 상할 일이 없다. 잘했든 못했든 당신의 행동은 심판의 대상이 아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완전히 의롭다고 여기신다"(223).

 

"당신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다. 그렇게 자신을 급진적으로 규정하라. 그게 진짜 당신이다. 그 외의 모든 정체성은 환상일 뿐이다"(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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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콘서트 - 지루할 틈 없이 즐기는 인문학
이윤재.이종준 지음 / 페르소나 / 201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갖은 앙념과 나물을 함께 넣어 비비듯 우리에게 잘 알려진 동서고금의 대문호, 사상가, 철학가, 종교인, 정치인, 배우 등이 쏟아내는 리파티(repartee 재치즉답) 등, 어록 사이사이 인문학적 지식-그들의 철학, 심리, 가치관 등, 당시 상황과 역사적 배경-을 집어넣어 버무려 꾸몄다"(19-20).

 

 

<말 콘서트>는 한마디로 세계적인 명언을 수집한 책입니다. 그런데 그 말이 튀어나온 배경을 알지 못하면 말 자체로는 별 의미가 없이 느껴지는 명언들도 많습니다. "경구"와 달리, 이 책에 담긴 명언은 대부분 "리파티", 즉 재치 있는 즉답(26)의 성격을 가진 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서 말하여진 즉답인지 알아야 그 번뜩이는 재치와 유머가 돋보이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1부 "대문호, 예술가, 철학자, 성직자 편"에 마르크스 어머니의 말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돈에 대해 많이 쓰지 말고 돈을 많이 벌었더라면 훨씬 더 좋았을 텐데." 상황과 따로 떼어놓고 보면, 이 말 자체에는 깊은 의미가 없어보입니다. 그런데 이 말이 아들의 책, <자본론>을 받아든 어머니가 "생의 상당부분을 전당포의 단골손님으로 빈궁하게 살았던 아들의 삶이 걱정스러워" 아들에게 보낸 답장에서 한 말이라는 것을 알면, 느낌이 달라집니다. 어떤 이는 역사적 아이러니에 쓴 웃음을 지을 수도 있고, 어떤 이는 박장대소를 터트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책이 다른 명언집에 비해 돋보이는 점은 단순한 명언 모음집이 아니라, 이와 같이 그 말을 배태한 역사적, 철학적, 정치적, 문화적 상황을 함께 읽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이러한 배경 이해를 '인문학적 지식'이라고 말합니다. 사실 읽다 보면, 명언보다 인문학적 지식에 무게가 더 실려 있어, 그것을 읽는 재미가 더 크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고전이란 사람들이 좋다고 말하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다"라는 마크 트웨인의 말을 소개하며, 여기에 이런 흥미로운 이야기를 덧붙입니다. 2008년 서울대 중앙도서관은 "서울대 선호도서 100선"과 "하버드대 선호도서 100선"을 발표했는데, 하버드에서 학생들이 가장 많이 사보는 책 100선의 상위권은 모두 고전으로 1위는 조지 오웰의 <1974>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서울대 선호도서 100선" 10권 내의 도서에는 소설이 9권, 에세이가 1편으로, 일본의 코믹소설 <공중그네>가 1위를 차지하고 있었다고 합니다(60). 물론, 하버드대의 결과는 서점에서 가장 잘 팔리는 책이고, 서울대는 가장 많이 대출된 책이라는 함정이 있습니다. 하버대생들은 수업 과제를 위해 책을 샀을 수도 있고, 서울대생들은 필독서는 구매를 하고 가볍게 읽고 싶은 책들은 대출을 한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우리나라 독서 성향에 단면을 보여주는 것은 분명한 듯합니다.

 

<말 콘스트>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 중 하나는 유대인과 우라나라 교육을 비교한 글입니다. 저자는 "세계 185개국 국민 중 이스라엘 국민의 평균 지능은 세계 45위"라는 사실을 말하며 이렇게 묻습니다. 그럼에도 "노벨상 30%, 하버드 30%를 차지하는 유대인의 비밀은 무엇인가?"(90) 저자는 그 이유를 유대인의 '하브루타' 교육에서 찾습니다. '하브루타'는 "원래 '함께 공부하는 짝"이라는 의미로 '짝을 지어 상호 간에 질문하고 대답하는 토론식 공부'를" 말합니다. 그들의 배움은 "질문과 대답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토론과정"임을 설명하며 우리나라 교육을 이렇게 평가합니다. "한국인의 교육이 100명의 학생에게 1개의 정답을 요구한다면, 유대인의 교육은 100명의 학생에게 100개의 생각을 장려한다. 이기지도 지지도 않고 맞고 틀리고가 없다"(90).

 

그런 맥락에서 <말 콘스트>는 1개의 정답이 아니라, 100개의 생각을 담은 책이라는 느낌을 줍니다. 저자인 '이윤재' 선생님이 영어저술가이며 영어칼럼니스트인 덕분에 이 책에서는 잘못 번역되어 알려진 유명인들의 말을 바로 잡아주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우리에게 잘 알려진 버나드 쇼의 묘비명은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자는 묘비명의 원본을 풀이하며 버나드 쇼의 말에 담긴 원래의 의도를 밝힙니다.

 

총 7부로 이루어진 <말 콘스트>는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잘 알려진 이야기에서부터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까지 명언보다 이야기를 읽는 재미가 더 깊습니다. 다만, 어떤 글들은 저자의 편향된 생각이나 정치적, 종교적 편견이 가미되어 보이는 것이 다소 아쉽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다양한 사람들의 입에서 튀어나온 촌철살인, 재치즉답의 말들을 담고 있기 때문에 누군가는 거하게 차려진 말의 향연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자칫 냉장고에 먹다말고 넣어둔 온갖 반찬들 다 꺼내놓은 잡다한 상차림이라는 인상을 줄 수도 있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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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 정리 해부도감 - 정리수납의 비밀을 건축의 각도로 해부함으로써 안락한 삶을 짓다 해부도감 시리즈
스즈키 노부히로 지음, 황선종 옮김 / 더숲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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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치우고 청소를 해도 금세 다시 집이 너저분해진다면, 그것은 당신 책임이 아닙니다. 집을 설계한 사람의 책임입니다"(5).

 

 

사람이건 물건이건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아름답습니다. 자신의 깜냥을 무시한 채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 때문에 여러 사람이 피곤한 것처럼, 물건들도 제자리를 찾지 못하면 우리를 피곤하게 합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어질러진 집을 보면 치워야겠다는 생각보다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좁은 집 탓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주거 정리 해부도감>은 치워도 그때 뿐이고 집이 계속 어질러져 있다면 "그것은 집의 설계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설계도를 그릴 때. "어떻게 하면 좀 더 쉽게 정리를 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에 위안을 받을 분들이 많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

 

 

이 책은 "어떻게 집을 지으면 덜 어질러질까" 하는 주택 설계의 근본에 해당하는 문제를 다루었습니다"(5-6).

 

그러니까 정돈이 잘 되도록 설계 단계에서부터 공간배치를 계획하자는 것입니다. 같은 면적의 공간이라도 집의 형태(주택 그 자체의 구조)에 따라 정돈이 잘 되는 집이 있고, 정돈이 잘 안 되는 집이 있다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정리"의 관점에서 설계를 고려할 때는, "사람들은 어떠한 물건을 집에 들여와서, 그것을 어떻게 이용하고, 어떻게 정리하려고 하는가라는 흐름을 파악하는 것"(6)이 관건입니다.

 



 

 

"필요한 곳에 필요한 수납공간 만들기"

 

 

<주거 정리 해부도감>의 핵심은 "필요한 곳에 필요한 수납공간 만들기"(12)입니다. 설계 단계에서 필요한 수납 공간을 "미리" 만들어두자는 제안이기 때문에, 이미 지어진 집에는 소용이 없는 팁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전체적인 집의 구조와 정리 공간을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 큰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도와줍니다. 수납공간을 어떤 위치에 어떻게 배치를 해야 편리한지 기본적인 룰을 알려주기 때문에, 응급처치식 대응이 아니라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이론적 배경을 배울 수 있습니다. 특히 새집을 짓거나 리모델링을 할 계획이 있는 분들은 꼭 읽어보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주거 정리 해부도감>을 잘 숙지하면 욕실을 1층에 둘지 2층에 둘지, 남향으로 할지 북향으로 할지와 같은 구조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빨래는 어떻게 널어서 말리고 정리할 것인지와 소파의 선택과 같이 세밀한 부분까지 미리 생각해둘 수 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이것만은 꼭 기억해두자 한 것이 있다면, 제가 그토록 원하던 "남쪽이 모두 대형 소제창"인 집은 수납이 불편하다는 것(수납이라는 기능 측면에서 말하자면 창문이 크면 클수록 쓸모가 없다고 조언합니다), 동시에 여러 일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작업공간을 마련해두면 항상 정돈되어 보일 수 있다는 것, 의외로 화장실이라는 공간이 수납하기 좋은 장소라는 것 등입니다.

 

이 책을 읽고 집을 이렇게 정리해야겠구나 하는 생각보다, 집을 이렇게 지어서 살고 싶다는 바람이 더 컸습니다. 그래서인지 주거공간을 만드는 분들이 조금 더 장인 정신을 가져주면 어떨까 하는 바람이 간절했습니다. 오직 '장사'를 위해 사는 사람에 대한 배려 없이 마구잡이로 지어진 집들을 많이 봐왔기 때문입니다. 이 책의 저자처럼 설계 단계부터 이렇게 세심하게 집을 짓는다면 수납을 위해 따로 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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