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지 마라 떨리게 하라 - 프레젠테이션의 대가 길영로 소장이 전하는 실전 테크닉
길영로 지음 / 페가수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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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는 철저한 사전 준비에서 나오고, 자신감은 성공 경험에서 나온다"(44).

 

 

학교를 졸업하면 사람들 앞에 서서 프레젠테이션을 할 일이 없을 줄 알았습니다. 기업체에서 일하는 것은 아니지만, 성경을 전하고 가르치는 일을 하다 보니 프레젠테이션 실전 테크닉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멋모르고 할 때는 오히려 덤덤했는데, 하면 할수록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더 집중하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내용을 더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커집니다.

 

<떨지마라 떨리게 하라>는 이 분야의 대가로 알려진 전문가에게 배우는 프레젠테이션 실전 테크닉입니다. 저자는 기업체서 일하며 쌓은 풍부한 경험과 지독한 독학으로 터특한 원리, 그리고 악착같은 훈련으로 직접 하나 하나 쌓아올린 비법을 아낌없이 전수합니다.

 

이 책에 눈길이 갔던 것은 제목 때문이기도 합니다. <떨지 마라 떨리게 하라>는 기발한 제목부터 벌써 뛰어난 재치와 아이디어가 엿보였습니다. 저자의 이러한 재치와 아이디어는 엄청난 노력의 산물입니다. 입사 초기 첫 번째 프레젠테이션을 하며 '개망신'을 당했던 쓰라진 경험이 그를 프레젠테이션 대가로 바꿔놓았습니다. 저자의 목표는 "어떻게 하면 청중 앞에서 떨지 않고 프레젠테이션을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내용을 달달달 외울 만큼 준비하고 연습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를 만큼 덜덜덜 떠느라 프레젠테이션을 망쳐버렸기 때문입니다.

 



 

 

프레젠테이션의 관건은 무엇일까요? 저자는 먼저 기획의 3요소부터 설명합니다. "기획의 3요소는 플래닝(planning), 메이킹(making), 프레젠테이션(presentation)"입니다. '플래닝'은 어떤 사안에 대해 기획하는 것, '메이킹'은 기획을 마친 후 기획서를 작성하여 완성하는 단계이며, '프레젠테이션'은 그것을 상사나 클라이언트에게 제안하고 설득하는 일입니다. 프레젠테이션은 상대방을 '설득'한다는 데 초점이 있습니다.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프레젠테이션엥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실전 프레젠테이션이란 무엇인가), 2부는 떨지 않고 프레젠테이션을 잘 할 수 있는 방법(떨지 마라, 떨리게 하라), 3부는 프레젠테이션 준비 과정(프레젠테이션 전략은 어떻게 짜는가) 등을 다룹니다. 프레젠테이션은 어떻게 보면 사람들 앞에서 '논리적으로 말을 잘 하는 능력'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책을 읽어 보면 저자는 매우 박학다식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요소요소 적절한 화젯거리로 시선을 사로잡고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능력이 뛰어납니다. 저자의 노력은 "나는 말주변이 없게 태어난 사람이다"는 변명을 그야말로 변명으로 만들어버립니다.

 

이 책에 배운 구체적인 기법 중에 꼭 몸에 익히고 싶은 것은  "Show - see - Speak의 테크닉"입니다. "Show", 먼저 청중에게 스크린을 보여주고(이때 발표자는 이야기를 멈추고 몸을 돌려 스크린을 쳐다봐야 합니다), "see", 다시 몸을 돌려 청중 중 누군가이 눈을 보고(이때 발표자는 누군가와 아이 컨택 할 때까지 절대 말을 시작해서는 안 됩니다), "Speak", 아이 컨택한 청중을 향해 이야기를 한다, 이것이  "Show - see - Speak의 테크닉"입니다(75). 보통 스크린의 내용을 함께 읽거나 스크린에 시선을 고정한 채 강의를 할 때가 많았는데, "Show - see - Speak의 테크닉"을 배우며 이것이 얼마나 안 좋은 습관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저자의 이야기 중에 아돌프 히틀러가 프레젠테이션 천재였다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아돌프 히틀러의 말을 통해 새삼 프레젠테이션의 위력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는 건 '쓰여진 말' 보다 '이야기된 말'이며, 이 세상의 위대한 운동은 위대한 문필가가 아니라 위대한 연설가에게서 그 진전의 혜택을 입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44).

 

<떨지 마라 떨리게 하라>는 프레젠이션의 처음과 나중, 그리고 이론과 실제를 꼼꼼하게 다룬 책입니다. 신입사원이라면 꼭 한 번 읽어봐야 할 책입니다. 학업 성적이 아무리 뛰어나도 실무는 선배에게 배우는 것이 최고입니다. 현장에서 뛰어난 실력을 갖춘 친절한 선배에게 꼼꼼하게 실무를 배우는 것보다 더 좋은 스승, 더 빠른 지름길, 더 고마운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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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본질을 아느냐 김남국 목사의 창세기 파헤치기 1
김남국 지음 / 두란노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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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가 뚫이면 성경이 뚫린다"

 

 

교회의 청소년부 학생 한 명이 신앙상담을 청해 왔습니다. 길을 가는데 누군가 붙잡고 성경공부를 같이 해보지 않겠냐고 권하며 이상한 소리를 하더랍니다. 최초의 인류는 성경에 기록된 아담과 하와가 아니라 오스트랄로피테쿠스라고 했답니다. 그럼 왜 성경에 그런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지 않느냐고 물으니,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아직 부족한(?) 단계라 기록이 안 되어 있는 거랍니다. 그 사람의 주장에 무엇인가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순간 의문이 생기더랍니다. '진화론에서 주장하는 화석 인류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우리는 창세기를 앞에 놓고 창조론과 진화론의 문제를 함께 되짚어보았습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위대한 선언 위에 서 있습니다. 만일 진보한 과학이 성경 첫 줄, 창세기 1장 1절 말씀이 거짓이라고 증명할 수 있다면 이 땅의 모든 교회는 문을 닫아야 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성경을, 특히 구약성경은 이스라엘 역사의 기록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 공부를 하자고 하면 남의 나라 역사를 왜 공부해야 하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창세기를 포함하고 있는 구약성경은 이스라엘이라는 조그만 나라의 역사를 다룬 책이 아닙니다. 천지 창조에서부터, 인류에게 비극과 불행이 있는 이유, 인류 문명의 발생, 현재 존재하고 있는 이 세상의 모든 민족의 조상들을 가르쳐주는 학술적 정보까지 담고 있습니다.

 

김남국 목사님은 "창세기가 뚫리면 성경에 뚫린다"고 단언합니다. 특히 인류 일반역사를 이야기를 하는 창세기 1장부터 11장까지의 큰 그림을 그려놓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이끌어가는 역사의 의미와 방향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창세기 1-11장까지는 반드시 꿰뚫고 있어야 할 우리 신앙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번에 발간된 <김남국 목사의 창세기 파헤치기>는 시리즈 첫 번째 책입니다. 성경 전체의 메시지를 이끌어가는 기관차라 할 수 있는 창세기 1-11장까지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재구성했습니다. 창세기는 많은 성도들이 즐겨 읽고 사랑하는 본문이기도 하지만, 특히 1-11장까지는 읽어내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성경학자들간에도 의견이 분분하고 논란이 되는 난해구절을 많이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 우리의 지식으로는 명쾌하게 풀어내기 어려운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김남국 목사의 창세기 파헤치기>는 창세기를 거침 없이 읽어내려 갑니다. 창세기부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이렇게 첫 다섯 권의 책을 모세오경이라고도 하는데, 모세가 썼다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러니까 김남국 목사님은 모세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출애굽기의 바탕 위에서 창세기를 읽어야 한다고 설파합니다. 신학적으로 지식은 가지고 있었지만 모세와 출애굽한 백성의 관점에서 창세기가 어떻게 읽혀졌을지 생각해보지 못했던 터라, 이러한 시도가 매우 신선하게 와닿았습니다.

 

<김남국 목사의 창세기 파헤치기>는 신학적 쟁점을 다루면서도 하나의 대하드라마로 읽을 수 있도록 스토리가 전개됩니다. 신학적 해석에 깊이 있는 묵상이 더해져 페이지마다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 느껴집니다. 하나 하나의 퍼즐이 자리를 찾아가며 큰 그림이 모습을 드러내듯, 성경 전체를 이끌어가는 큰 그림을 머릿속에 그릴 수 있도록 해준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으로 꼽고 싶습니다.

 

다만, 창세기 1-11장까지는 워낙 읽어내기가 까다로운 본문이 많아 정답과 같은 하나의 해석을 받아들이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김남국 목사님의 해석 중에 한 두가지 물음표를 붙여놓은 곳이 있습니다.

 

첫째는, 생명나무와 성화의 문제를 다룬 부분입니다. "동산 가운데 서 있던 생명나무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피조물인 인간의 생명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담은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어야만 영생이 가능한 미완성의 존재였던 것입니다. 그는 죄가 없으나 죄를 지을 가능성이 있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존재였습니다. 아담도 성화의 과정이 필요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60).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후 "보시기에 심히 좋다"고 말씀하셨는데, 인간을 미완성의 존재로 창조하셨을까요? 하나님의 인간 창조가 불완전하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해석이라고 보여집니다.

 

둘째는, 죽음의 문제입니다. "공평하신 하나님은 모든 인간에게 똑같이 죽음의 운명을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도 죽음만은 피할 수 없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님의 영역인 천국에는 죄가 없기 때문입니다. (...) 예수님을 믿는 자라도 땅에서 비롯된 것을 다 끊어 버린 다음에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 땅의 모든 것을 끝내는 것이 바로 죽음입니다"(86). 반드시 죄인은 반드시 '죽음'이라는 통과 의례를 거쳐야지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면 죽음을 경험하지 않은 에녹과 엘리야, 그리고 휴거설과 모순되지 않나요?

 

셋째는, 에녹의 들림에 관한 해석입니다. "에녹에게 죽음이 비껴갔다는 것은 죄를 해결할 길이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여기에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135). 타락한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지 않고도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말로도 들립니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복음의 핵심을 제외하고, 성경은 여러 각도에서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이 말씀을 통해 우리와 교제하시고, 날마다 새로운 깨달음을 주시니 말입니다. 생각할수록 놀라운 성경 말씀입니다. <김남국 목사의 창세기 파헤치기>는 신앙생활을 오래한 성도들에게는 익숙하게 느껴지는 성경 이야기를 더 깊이, 그리고 오늘 여기에 적용되어야 할 말씀으로 신선한 생기를 불어넣고 있습니다. 말씀을 연구하는 자세로 읽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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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감정에 서툴까? - 감정 때문에 사람을 잃고 일을 망쳐본 적이 있는 이들을 위한 감정조절 해법
이지영 지음 / 청림출판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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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 요구하는 것은 단지 느껴지고 표현되는 것뿐입니다"(46).

 

 

대가족 속에서 자라다 보니 이런 저런 참견을 하는 어른이 참 많았습니다. 빨리 어른이 되어 내 삶을 스스로 완벽하게 통제하며 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어른이 되고 보고 내 삶을 휘두르려 드는 것이 더 많아진 느낌입니다. 특히 '감정'이라는 놈에게 한 번씩 휘둘리고 나면 삶의 에너지는 완전히 바닥나 버리고 관계마저 삐그덕 거립니다. 게다가 감정을 잘 조절하지 못했다는 자책감 때문에 몇날 며칠 맘고생을 하기도 합니다. 감정에 늘 휘둘리기만 하니 자존심이 몹시 상합니다.

 

그래서 이 책을 밑줄까지 뻑뻑 그어가며 열심히 읽었습니다. 쉽고 재밌기도 했지만 한 줄 한 줄 읽어가며 감정의 정체에 대해 알아갈 때마다 뭔가 시원해지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먼저 감정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라는 설명에서 감정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감정은 하나의 정보이며, 오히려 '감정'이 제공하는 정보를 통해 '나'에 대해 더 알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감정과 친해지고 싶은 바람마저 들었습니다.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는 것은 "내 안의 무엇인가가 건드려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감정은 어떤 자극이나 상황이 자신의 목표와 관련이 있을 때 생긴다고 합니다. 그러니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다면, 마음 안에 바라는 것이 때문"(30)이라는 것입니다.

 

심리상담에 관심을 가지고 이 책 저 책을 읽다 보니,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잘 모르는 것이 가장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 이거다 싶은 인사이트를 얻었습니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일이 잘 맞는지 찾지 못해 방황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쩌면 자신의 감정 코드를 무시하거나 닫아놓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다양한 경험을 하며 그 활동 속에서 매순간 느끼는 감정을 살펴본다면,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그리고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35-36).

 

돌이켜 보니, 어릴 때부터 감정은 표현하기 보다 억누르는 것이 더 좋다는 교육을 받아왔습니다. 함부로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가벼운 사람이며, 특히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무례한 행동이라는 무의식이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감정이 요구하는 것은 단지 느껴지고 표현되는 것뿐"이라는 저자의 말에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것, 그것을 죄악시 했던 마음에서 해방되니, 오히려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어떤 상황을 객관화해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이 생깁니다.

 

"감정은 충분히 느끼고 표현되지 못하면 결코 사라지지 않"(59)는다고 합니다. 감정을 들여다보고, 느끼고, 표현하고, 해소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문제는 고통스러운 감정, 부정적인 감정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풀고 가야할 중요한 개념 중에 하나는 "감정 해소"와 "감정 전달"은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감정 전달을 해소라고 오해하면 부정적인 감정이 들었을 때 그것을 상대방에게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에만 집중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우리는 화가 날 때 화나게 한 사람에게 화를 풀려고 듭니다. 저자는 이런 오해가 가진 문제점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만일 A라는 사람이 B를 화나게 했을 때, B는 90 정도의 화가 났는데 상대는 화를 유발시킨 정도를 60 정도로만 자각할 수 있다고 합니다. B가 만일 90 정도의 화를 내면, A는 30을 초과해서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A는 화를 유발시키기는 했지만 초과해서 받은 30 만큼 늘 억울하다는 것입니다(139). 나는 늘 나를 화나게 한 상대방에게 명백한 잘못의 증거를 들이대며 그러니까 내가 화내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를 펴왔는데, 그것이 왜 문제였는지 비로소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감정을 느끼는 것과 표현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95)라고 말합니다. 감정을 어떤 방식으로 표현할지는 우리의 선택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저자는 감정을 조절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려줍니다. 감정 조절 방법은 접근적 방법, 주의분산적 방법, 지지추구적 방법, 이렇게 세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나는 왜 감정에 서툴까?>는 먼저 자신의 평소 '감정 조절 패턴'을 진단해보고, 감정을 조절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훈련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감정을 잘 조절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감정을 정확하게 알아차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화가 났다고 생각하지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실제로는 서운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감정을 계속 억눌러 왔던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정확하게 알아차리는 훈련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자신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우선은 불쾌한 감정을 해소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감정을 조절하는 세 가지 유형 중에 저는 '주의분산적 방법'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불쾌한 감정이 들었을 때 그것을 마음껏 표현할 만한 상황이 아닐 때는 '주의분산적 방법'이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나는 왜 감정에 서툴까?> 이런 고민을 한 번쯤 해보신 분들이라면 이 책을 꼭 읽어보라고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감정의 정체를 다시 보게 되며, (부정적인) 감정과도 조금 더 친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쉽고 재미있게 설명되어 있으며 감정을 어떻게 해소해야 할지 구체적인 방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심한 경우에는 전문적인 치료를 받아야겠지만, '학습'만으로도 치유의 효과를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감정을 바라보는 시각을 조금 바꿔주는 것만으로도, 또 감정을 다루는 법을 몇 가지만 익혀도 훨씬 홀가분 하게 생활할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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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자수 레시피 SEASONS
아오키 카즈코 지음, 배혜영 옮김 / 진선아트북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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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자수 레시피

 

 

엄마가 시집 올 때 자수를 놓아 만든 배개가 아직 집에 있습니다. 이래저래 불편해서 사용하지 않은지 오래되었지만 엄마에겐 특별한 추억이 많이 깃든 것이라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습니다. 수를 놓으며 수줍었던 마음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아빠를 처음 만난 날을 추억하기도 하고, 함께 원앙금침을 만들어주셨던 외할머니와 어른들이 지금은 하늘나라에 계셔서 그리운 눈물을 흘리기도 하십니다. 배개를 볼 때마다  한 땀 한 땀 수를 놓고 있는 소녀시절의 엄마 모습이 아릿거립니다.

 

자수를 처음 배운 건 학교 수업 시간이었는데, 하얀 천에 알록달록 색이 채워지는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어서 한때는 자수틀을 손에 쥐고 살았던 기억이 납니다. 가지고 있는 손수건마다, 양말에다, 책가방과 신발주머니에도 은밀한 놀이처럼 제 이니셜을 새겨넣으며 혼자 좋아라 했습니다. 자수가 그렇게 좋았던 것은 오돌토돌 도드라지는 입체감과 색실이 주는 따뜻한 느낌, 그리고 무엇보다 나만의 그 무엇이라는 특별함 때문이었습니다.



 

 

<귀여운 자수 레시피 SEASONS>는 정말 제목 그대로입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별로 그 계절을 특징지울 수 있는 갖가지 사물이 가득합니다. 봄에는 소담스러운 벚꽃, 튤립, 홀씨, 벌, 부활절 달걀, 장미, 딸기 케이크, 개구리와 올챙이, 클로버, 화관 등이 여름에는 오디, 블루베리, 자두, 신부 부케, 샴페인 잔, 웨딩 케이크, 결혼반지, 선풍기, 수박, 부채, 모기향, 해바라기, 각종 곤충, 해변에서 볼 수 있는 조개와 불가사리 등이, 가을에는 각종 새, 사과, 애벌레, 단풍, 버섯, 박쥐, 빗자루를 탄 마녀, 달, 고구마, 바이올린, 빵 등이, 겨울에는 스웨터, 눈사람, 양초, 쿠키, 후지산, 가지, 하트, 강림절 달력 등이 수놓아져 있습니다.

 

하나 하나의 소품이 얼마나 앙증맞고 귀여운지 모릅니다. 자수실 하나로 이렇게 사물을 생동감 있게 사실적으로 표현해내는 작가의 표현력이 감탄하고 또 감탄하게 됩니다. 위의 사진은 부활절 달걀입니다. 매년 부활절이이며 달걀을 장식하는 특별한 아이디어를 찾아 고민하게 되는데, 이렇게 정성 가득 자수를 놓아 장식을 하면 기품과 특별함을 더할 수 있을 듯합니다.



 

 

<귀여운 자수 레시피 SEASONS>는 실물 크기의 도안은 물론 각종 자수 스티치를 하는 방법도 간단한 그림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자는 특별히 색상을 신중히 하라고 일러줍니다. "제 경험에서 보면 스티치가 다소 잘못되어도 색 균형이 좋으면 자잘한 부분은 신경 쓰이지 않아요. 모티브의 색 이미지는 깊은 인상을 줍니다"(69). 미쳐 생각지 못한 부분인데 중요한 팁을 하나 얻습니다. 

 

퇴근을 하면 잠들기 전까지 TV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늘고 있습니다. 뭔가 가벼우면서도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싶어 이것 저것 기웃거려보는 중입니다. 자수를 놓으면 TV 앞에 앉아 있어도 시간을 죽이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을 듯합니다. 집중력도 키우며 마음이 차분해지는데는 바늘질만한 것이 없는 듯합니다. 일단 자수틀이 어디 있는지부터 찾아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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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에 더할 것은 없다 - 율법을 벗고 복음의 본모습을 보다
앤드류 팔리 지음, 안지영 옮김 / 터치북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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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격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책입니다. 그런데 복음은 원래 혁명적이지 않습니까. 복음은 언제나 낡은 부대를 터치고 흘러 넘치는 생명력입니다. <복음에 더할 것은 없다>는 또 한 번 이 시대의 낡은 부대를 터치려는 시도입니다. 이 메시지가 선포되는 곳에 복음이 주는 자유가 생수의 강처럼 흘러 넘치는 것을 경험할 것입니다.
 
복음의 진수를 깨달아가고 있는 동생이 한창 전도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복음의 은혜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갈수록 도무지 이 좋은 복음을 거절하는 사람을 이해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전에는 그러려니 했던 일이 이제는 생각할수록 이상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책은 교회 안에 더 이상한 일도 있음을 깨우칩니다. 왜 우리는 이 좋은 복음에, 이 완전한 복음에 자꾸만 무엇을 더하려는 것일까요?
 
 

 
 
앤드류 팔리 목사님이 제출한 문제를 풀어풀어봅시다.
 
그리스도인은 아래의 경우에 율법을 의지해야 한다.
1. 구원을 위해 2. 윤리적인 나침반으로서 3. 죄를 규명하기 위해 4. 그리스도 안에서의 성장을 위해 5. 해당 사항 없음.
당신이 고른 답은 몇 번입니까? 또는 몇 개입니까?
 
이 책의 의도를 십분 감안하면서도 나는 5번 해당 사항 없음을 선택하지 못하고 갈등했습니다. 윤리적 나침반까지는 아니더라도 3번 죄를 규명하기 위해서는 그래도 율법이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당신도 나처럼 5번을 선뜻 택하지 못했다면 아직 율법의 옷을 다 벗어버리지 못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참고로, 율법은 죄를 규명하기 위해 여전히 유용한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스도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한 것입니다.)



 
 
<복음에 더할 것은 없다>는 철저히 성경에 기초하여 진리를 풀어냅니다. "규율, 율법, 그 무엇보다 십계명이 그리스도인의 삶과는 무관하다는 주장이 파격적으로 들릴 수"(55)도 있고, 십일조 헌금에 대한 의무는 "새 언약 아래에 사는 우리들에게 해당되는 시스템이 아니다"(77)는 주장은 큰 파장을, 우리가 아는 예정론은 성경은 없다는 주장은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합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모든 주장이 성경에 기초하며 그 풀이가 명쾌하다는 것입니다.
 
앤드류 팔리 목사님은 "신약의 '반전'을 무시한 채 구약을 읽어서는 안 된다"(53)고 힘주어 말합니다. 신약의 맥락에서 구약에 접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장 충격적이면서도 인상적인 가르침은 "율법은 단 한 번도 이방인을 위해 주어진 적이 없다"(54)는 주장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유대인이 아니라면, 애초부터 율법과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것입니다. 설명이 절망 탁월합니다.
 
 

 
 

<복음에 더할 것은 없다>는 세상에 던지는 메시지가 아닙니다. 믿는 자들에게, 교회에게 주는 메시지입니다. 아마도 "십일조는 없다"는 주장에 가장 많은 성도가 관심을 가지고, 가장 많은 교회가 반앙을 보일 듯합니다. 십일조 헌금을 무겁게 생각했던 성도들은 환호하고, 교회는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불순종이라고 난색을 표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가 십일조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재정적인 복을 주신다는 식의 가르침은 복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엔드류 팔리 목사님은 기꺼이, 자유롭게 드리는 헌금 가운데, 십의 2조도 드리고, 십의 3조도 드릴 수 있다고 말합니다.

 

'예정론인가 자유의지론인가' 하는 부분도 특히 일부 교단에서는 교리적인 혼란을 야기할지도 모르나, 지금까지 이렇게 시원하고 탁월한 설명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미리 정하신 것"은 "하나님의 그리스식 웨딩"에 관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예정에 관한 메시지는 개인에 관한 것이 아니라 무리에 관한 것입니다(127). 즉, 하나님께서 "불결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아낌없이 베풀어주는 것을 강조한 표현입니다(128). 이방인 구원은 십자가를 통해 예정된 하나님의 계획이란느 것입니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가르침은, 성찬식에 관한 것입니다. 보통 교회에서 성찬의식을 행할 때, 회개를 강조하다 보면 자기 죄에 시선을 고정한 채 후회와 아픈 눈물 가운데 성찬을 대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앤드류 팔리 목사님은  성찬식에서는 정반대의 역사가 일어나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우리의 죄에 시선을 고정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루어주신 일, 즉 십자가에 우리의 시선을 고정하고 기쁨과 감격 가운데 성찬을 대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성찬은 우리 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이 인생의 한복판에서 강력하게 역사하기를 원한다면 그리스도가 나를 새롭게 하신 일들이 아침에 눈을 뜨고 일상의 삶을 이어 가는 모든 것과 연관이 있다고 믿어야 한다"(262).

 

 

<복음에 더할 것은 없다>는 복음의 온전한 자유를 선포하며 선물하는 책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은 율법과 우리의 관계를 완전히 끝장냈습니다. 이제 우리는 오직 예수님 안에서 새 계약의 적용을 받습니다. 옛 언약(구약, 율법)은 효력을 완전히 상실했습니다. 우리가 굳게 붙잡아야 할 것은 "예수님을 통해 맺어진 새로운 언약"입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도 율법의 낡은 방식을 버리고 하나님의 새로운 방식을 수용하는 것은 크나큰 도전이었습니다(54). '복음'이 무엇인지 모를 때 자꾸만 대두되는 것이 율법입니다. <복음에 더할 것은 없다>는 복음에 깊이 잠기도록 우리를 초대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음이 얼마나 놀랍고 위대하며 완전한 것인지 나누고 싶어 마음이 두근거립니다. 누구보다 먼저 교회의 리더들이 이 책을 읽고 다시 복음을 붙드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소원합니다. 모든 교회의 필독서가 되어야 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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