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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그림자의 춤
앨리스 먼로 지음, 곽명단 옮김 / 뿔(웅진)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올해는 노벨문학상의 수상자가 누가 될지 특히 더 관심을 가졌던 해였던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고은 시인이 수상을 할 수 있을지 두근거리기도 했고, 영국의 온라인 도박사이트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상이 점찍어지고 있다고 하는 소식도 들려오고 해서 말입니다. 그래서인지 정작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되었을 때, 다소 실망(?)스러운 기분이 들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제게는 '앨리스 먼로'라는 이름이 생소했고, 도박사들도 앨라스 먼로보다 고은 시인에게 더 표를 많이 주었기 때문입니다.
단편 소설 작가로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는 '앨리스 먼로'가 처음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단편 작가의 거장으로 알려진 앨리스 먼로는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권위 있는 상을 수차례 수상한 캐나다의 대표 작가입니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라는 수식어를 달고 그녀의 작품들이 활발하게 번역 출간 되고 있는데, <행복한 그림자의 춤>은 "1950년대부터 15년에 걸쳐 써온 단편들을 한데 엮어 1968년에 펴낸 책 첫 단편집"(404)이라고 합니다.
<행복한 그림자의 춤>은 총 15편의 글이 실려 있는데, 감상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개그콘서트의 인기 코너였던 "생활의 발견"과 같은 느낌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당황스러운 순간들이 어떻게 평범한 일상과 버무려지며 인생의 순간순간을 매워가는지 그 찰라를 촘촘하게 포착한 사진 같습니다. 먼 나라 낯선 땅에서 이미 오래 전에 일어난 일일텐데도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우리들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감정과 사건들이라는 것이 그녀의 이야기가 가진 힘처럼 느껴집니다.
앨리스 먼로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옮긴이의 말"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 책에 수록된 작품의 배경이 되는 캐나다 땅의 상황과 특히 다음의 글이 그녀의 작품을 새로운 의미에서 바라보게 해주었습니다. "1931년에 태어나 여든 살이 다 된 앨리스 먼로는 여자로서 치열하게 살아왔고 여성의 경험을 치열하게 그려내며 지금까지도 현역으로 활동하는 노작가이다. 영문학이라는 대학 강좌에 영국 문학과 미국 문학은 있어도 국문학(캐나다 문학)이 없던 시절, 여자가 책을 읽고 글을 쓴다는 일 자체가 비웃음거리였던 그 시절부터 글을 써온 작가는 지난 2009년 세계적으로 정평 있는 영국 부커상 국제 부분인 '맨부커상'의 세 번째 수상자가 되었다(408).
"여자로서 치열하게 살아왔고 여성의 경험을 치열하게 그려내며"라는 말처럼 <행복한 그림자의 춤>은 여성으로의 경험이 농밀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들은 행복에 달뜬 소녀의 감정이라기보다 좌절과 배신의 감정이며, 야비하고 천박하고 잔인하고 구질구질하고 교활하고 우롱하는 것들로 덧칠해져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우리의 일상 깊숙한 곳에 어떻게 침투해 있는지, 우리가 매순간 맞닥뜨려야 하는 세상의 실체라고나 할까요. 그 안에서 여성으로서, 딸로서, 느끼는 감정과 의식의 흐름이 섬세하게 포착되어 있습니다.
경제 공황으로 빈민가에 내동댕이 쳐진 뒤, 떠돌뱅이(워커브라더스) 회사의 판매 사원이 되어 시골 구석구석을 누비는 아버지. 그 아버지를 따라나선 하루, 그 하루를 반추하며 아버지의 삶을 더듬어보는 어린 딸의 모습이 슬픈 그림처럼 마음에 남고. "그리하여 아버지는 운전을 하고 남동생은 토끼가 지나가나 길을 살피고 나는 우리가 차에 타고 있던 아까 그 오후의 마지막 순간부터 거꾸로 흐르면서, 어리둥절하고 낯설게 변한, 아버지의 삶을 더듬는다. 마치 마술을 부리는 풍경처럼, 바라보고 있는 동안에는 친근하고 평범하고 익숙하다가도 돌아서면 어느새 날씨는 변화무쌍하고 거리는 가늠하기 어려운, 끝끝내 알 길 없이 바뀌어버리는 풍경 같은 그 삶을"(떠돌뱅이 회사의 카우보이, 88).
자신이 "계집아이"로 태어났다는 것의 의미를 깨달아가며, 나(딸)를 사랑하고 나(딸)의 까다로운 요구도 묵묵히 들어주는 엄마이지만, 때로는 엄마를 적으로 느끼기도 하는 딸의 모습에서 나의 엄마이지만 누군가의 딸이기도 한 내 엄마의 마음을 헤아려 보기도 하고. "엄마도 외로울 수 있고 샘을 낼 수도 있다는 생각을, 나는 그때 미처 하지 못했다"(사내아이와 계집아이, 217-218). "단 한순간도 엄마가 겪는 곤경이 무엇인지 제대로 깨닫지 못해서 집요한 눈물 공세에도 마음의 문을 열어주는 한가닥 동정심조차 내비치지 않았는지 모른다"(위트레흐트 평화조약, 357)
<행복한 그림자의 춤>이 그려내는 세상은 "축제처럼 마냥 즐거운 세상"이 아니라, "불행이 그칠 새 없는 수용소 같은 음침한 세상"에 가깝습니다. 부조리와 천박함과 배신과 패배감과 자괴감에 저만의 방식으로 날을 세우기도 하지만 속시원한 복수도 없고, 통쾌한 일탈도 없고, 비장한 결투도 없고, 장엄한 최후도 없습니다. 특별한 결론 없이 이야기가 끝나는 것은 야비하고 천박하고 잔인하고 구질구질하고 교활하고 우롱하는 것들로 덧칠해진 우리네 인생 또한 이렇다 할 매듭 없이 계속된다는 의미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간순간 찾아오는 어떤 성찰이 미약하게나마 우리의 삶을, 특히 여자로서의 삶을 계속 밀고 나가는 힘이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래서 내게는 이 노작가가 그 누구보다 치열한 전투에서 멋진 승리를 일궈낸 전사처럼 느껴집니다.
"메리 포춘의 말을 듣고 있자니, 내가 불행하다고 느꼈던 격렬한 통증이 스러지는 듯했다. 나와 똑같이 패배감 - 그것을 나는 보았다. - 에 시달렸지만, 여기 있는 이 사람은 에너지가 넘치고 자기를 존중했다. 자신이 할 수 없는 다른 무언가를 생각했던 거다. 하다못해 담뱃잎 따기라도"(붉은 드레스-1946, 2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