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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중심의 교회 - 그 교회에 가고 싶다!
매트 챈들러 외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13년 10월
평점 :
품절

"우리 시대 교회, 왜 능력을 잃었나?"(13)
우리 사회는 어느 새 '안전 불감증'이라는 용어에 익숙해져 버렸습니다. 경각심을 가져야 할 단어인데, 충격은 사라지고 용어의 껍데기만 남았습니다. 문제가 뻔히 보이는데도 진지한 반성이나 변화의 조짐은 나타나지 않으니 참으로 답답한 노릇입니다. 안전 불감증에 걸린 사회처럼, 한국 교회는 '능력 불감증'에 걸린 것이 아닌가 우려 됩니다. 곳곳에서 "우리 시대 교회, 왜 능력을 잃어버렸나?" 하는 안타까운 외침이 들려오지만, 어느새 우리는 '성장이 멈춘 교회',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는 예배', '사회적 영향력을 잃어버린 신자'에 익숙해져 가는 듯합니다. 사회를 향해 정의와 공의를 요구해야 할 교회는 스스로 모범이 되지 못하고, 동성애 문제와 같은 사회적 이슈들에 대해 함께 고민하며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고, WCC의 종교혼합 문제 등은 교회 안에 심각한 혼란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거침없이 달려가 음부의 권세를 깨부수는 교회를 꿈꾸었"으나, "예배에 대한 갈증도 없고, 가난한 이웃에 대한 연민도 없"이 무미건조한 활동들만 반복하고 있는 교회를 향해 이 책은 외칩니다. "그리스도를 향한 열정으로" 돌아오라고 말입니다. 교회의 중심은 그 무엇도 아닌, 전적으로 "복음", 곧 "예수"여야 한다고 말입니다. "교회의 중심은 전적으로 예수님과 그분이 완성하신 일이어야 한다"(18).
예수 중심의 교회, 지극히 당연한 말입니다. 예수 중심이 아닌 교회는 이미 교회일 수가 없으니 말입니다. 예수 중심의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외침, 이것을 외면하거나 거부할 목회자는 당연히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본질을 '철저하게' 붙들고 있는 교회가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한국 교회에 불어닥친 열풍들을 보면 폭발적인 성장을 위한 프로그램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오늘날과 같이 무기력해진 교회입니다. 많은 한국 교회가 모델로 삼았던 윌로크릭교회는 <무브>라는 책을 통해 뼈아픈 고백을 했습니다. 윌로크릭교회는 다양한 활동과 프로그램으로 유명한 교회인데, 설문조사 결과 교회가 쏟아부은 그 모든 수고와 재정, 프로그램들이 성도들의 삶에 의미 있는 변화를 일으키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예수 중심의 교회>는 당연하지만, 어쩌면 너무 당연해서 그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는 한 가지 질문을 우리에게 던져줍니다. "우리 교회의 중심은 무엇인가?" 만일 예수님과 예수님이 이루신 일이 아니라, 다른 것에 눈을 돌리고 있다면 우리는 그 기초를 다시 놓아야 할 것입니다. "즉 이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복음을 머리로 아는 사람과 복음에 사로잡힌 사람. 말로만 "복음, 복음" 하는 사람과 실제로 복음으로 사는 사람. 복음을 목회의 여러 측면 중 하나로 보는 사람과 오직 복음을 중심으로 목회하는 사람. 둘의 차이는 그야말로 천지차이다"(17).

"죽은 교회와 공허한 교회에 대한 해법"(18)
<예수 중심의 교회>는 교회가 복음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이 교회를 형성한다고 강조합니다. 교회가 복음을 수호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정반대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존재 자체가 복음 중심적이기 때문에 결코 복음을 벗어나서는 안 되며, 모든 교회는 복음에 더 깊이 연결되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 중심의 교회>는 복음에 대한 정확하고도 깊은 이해의 바탕 위에 '교회론'을 세웁니다. "예수 중심의 예배, 예수 중심의 연합, 예수 중심의 섬김, 예수 중심의 전도, 예수 중심의 교회 문화, 예수 중심의 설교, 예수 중심의 주일학교, 예수 중심의 리더십, 예수 중심의 교회 실무, 예수 중심의 선교, 예수 중심의 사역"이 무엇인지 교회의 본질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짚어갑니다.
<예수 중심의 교회>는 교회의 실체, 교회의 문화를 정확히 판단하기 위해 방법으로 "조직의 영웅을 살피라"(133)고 조언합니다. "우리 교회의 영웅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담임목사님? 존경받는 리더? 탁월한 사역자? 섬김의 본이 되는 직분자? 만일 이 질문에 어떤 '사람'을 떠올렸다면, 당신의 교회는 그 중심이 '예수'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입만 열면 프로그램이나 창의성, 리더십, 혁신만을 외치는 교회는 복음 중심의 교회일 가능성이 낮다. 복음 중심의 교회라면 언제나 예수님을 얼굴로 내세운다"(134).
<예수 중심의 교회>가 주는 교훈 중에 가장 마음에 찔렸던 가르침은, "예수 중심의 중일학교" 편이었습니다. 복음을 통한 변화가 아니라, 행동 개조 프로그램에 가까운 주일학교 사역이, 아이들을 예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 날카롭습니다. 가정이나 교회에서 도덕식 교육만 받은 아이들은 "죄를 지어도 하나님에게서 도망칠 필요가 없다는 사실"(193)을 알지 못합니다. "현대판 율법만 강요하면 죄의 침에 쏘였을 때 예수님께 돌아오지 않는다. 그들의 머릿속에서 하나님은 법만 주시는 분으로 자리를 잡을 것이다"(198). <예수 중심의 교회>는 교회가 아이들에게 관심 가져야 할 것은 행동이 아니라 마음이라고 힘주어 강조합니다. "아이들을 세상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급선무가 아니다. 복음으로 아이들의 마음을 변화시키면 세상 따위는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다"(185).
<예수 중심의 교회>는 새로운 신학, 새로운 프로그램을 전하는 책이 아닙니다. 본질 중의 본질을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여서 새로울 것도 없고, 신선한 충격도 없고, 흥미로울 것도 없는 주제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 시대의 교회가 가진 문제 앞에 진지하게 선다면, 그 해답을 여기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동안 여러 사역에 지치고, 다양한 프로그램에 분주했던 교회라면, 예수(복음)님만으로 충분하다는 단순한 진리를 다시 발견하는 기쁨이 있을 것입니다.
저자가 인용한 어거스틴의 말이 마음에 남습니다. "교회는 음탕한 여자지만 여전히 내 어머니다." "교회는 복음 외에 수만 군데로 한눈을 팔아왔다. 하지만 어거스틴의 말처럼 교회는 여전히 우리의 어머니다. 교회는 온갖 더러운 행실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신부라는 사실만으로 더 없이 아름답다"(110-111). 능력을 잃어버린 교회,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교회 때문에 아파하고, 좌절하고, 고민하는 성도가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결코 교회를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며, 부족하고 미련하고 연약한 우리(교회)를 통하여 위대한 구원의 역사를 완성하실 것입니다. <예수 중심의 교회>로 돌아오라는 외침에 이제 우리가 응답할 차례입니다. 모든 교회가 이 부르심 앞으로 달려 가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