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복음을 만나다 - 갈라디아서 깊이 읽기 (Study Guide)포함 팀 켈러의 새롭게 열리는 말씀 시리즈 1
티머시 켈러 지음, 김성웅 외 옮김 / 베가북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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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는 다이너마이트다"(16).

 

 

'Timothy Keller'를 '티머시 켈러'라고 번역하는 출판사가 있고, '팀 켈러'라고 번역하는 출판사가 있습니다. '맥스 루케이도' 목사님의 저서가 한국에 처음 소개될 때도 비슷한 혼란이 있었는데, 티모시 켈러 목사님의 이름도 한 번 정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이분의 영향력을 생각하면 한 두권 번역으로 끝날 저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요즘 '핫'하게 번역되는 미국의 신앙서적을 보면, 티모시 켈러 목사님의 저서를 인용하는 문구를 자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영향력이 크다는 얘기겠지요. 마가복음 강해서인 <왕의 십자가>를 읽고 켈러 목사님의 책을 꼭 챙겨 읽어야겠다고 결심했는데, 이 책을 만나 얼마나 반갑고 기쁜지 모릅니다.

 

<갈라디아서; 복음을 만나다>는 복음의 진수를 보여주는 책입니다. 켈러 목사님은 갈라디아서를 한마디로 "다이너마이트"에 비유합니다. 갈라디아서라는 다이너마이트가 우리 안에서 터질 때,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불러 누리게 하신 복된 삶, 즉 깊은 존재감과 안전과 만족의 전제 조건이 되는 기쁨과 자유가 폭발"한다고 선언합니다. 갈라디아서는 우리를 "복음"과 직면시키기 때문입니다(16).

 

신앙생활을 오래한 성도들은 복음을 불신자나 새가족에게 필요한 무엇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복음이 우리가 들어야 할 가장 기초 단계이고, 교회생활을 하며 더 '고급한' 교리나 '수준 높은' 성경지식을 배워야 한다는 도식이 성도들의 머릿속에 들어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책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복음'이고, 그 '복음'이면 충분하다고 역설합니다. 어쩌면 이 복음이라는 다이너마이트가 우리 안에서 제대로 폭발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 한국교회가 이와 같은 위기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복음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심각한 수준일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우리는 믿음의 수준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 때문에 구원받는다"(34).

 

 

<갈라디아서; 복음을 만나다>는 복음을 위협하는 가장 큰 대적의 정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복음의 대척점에 있는 것은 '죄'가 아니라, '율법' 다른 말로 하면 바로 '자기 의'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때, 빠지기 쉬운 오류는 바로 '자기 의'(유럽)라는 강력한 유혹입니다. '자기 의'는 복음(예수 그리스도) 외에 무엇을 덧붙이려는 시도입니다. 다시 말해, 복음(믿음)만으로는 부족하고 여기에 어떤 것, 우리의 노력(행위)이 필요하다는 노력입니다. 바울의 선교 당시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할례'가 필요하다고 하는 주장처럼, 복음만으로는 부족하다 선하게 살아야 한다, 복음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떠어떠한 것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들이 모두 이런 논리에 속합니다. 바울의 '할례 없는 복음"이 얼마나 충격적이고 혁명적인 선포였는지 이 책을 읽으며 다시 절감했습니다. '갈라디아서'는 바로 이 "다른 복음", 복음을 오염시키는 "자기 의"와 격렬하게 다툰 사도 바울의 신학의 진수이기도 합니다.

 

<갈라디아서; 복음을 만나다>는 끊임없이 자기를 증명해야 하는 영혼에게 참된 자유를 선포하는 복음을 깨닫게 하며, "복음을 잃거나 잊어버릴 때, 혹은 이 복음대로 살지 못할 때 그리스도인의 삶에 닥치는 문제들"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복음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하나님을 위한' 우리의 모든 열심과 희생이 사실은 자신을 위한 것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바울이 복음의 진수를 이처럼 깊이 깨달을 수 있었던 이유는 누구보다도 그가 "율법에 열중"했기 때문일 것입니다(94). 지금 교회 안에서도 그리스도가 주시는 참된 자유를 알지 못한 채, "자기 의"에 매달려 신음하고 있는 영혼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복음을 잃는 것은 그리스도를 잃는 것이며, 그것은 곧 그리스도가 주시는 구원과 축복, 자유를 잃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갈라디아서'를 읽고 배운다는 것은 모든 신앙의 뿌리를 점검하는 것이며, 내 안에 있는 영생을 확인하는 일이라 할 수 있겠스빈다. 그런 점에서 모든 교회가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 '갈라디아서'의 진리에 푹 잠겨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켈러 목사님의 <갈라디이서; 복음을 만나다>가 좋은 길잡이가 되어주리라 확신합니다.

 

  

 

 

 

"복음으로 살라"(267)

 

 

켈러 목사님은 복음의 본질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복음은 세상을 살아가는 지침이기 전에 역사적인 사건들에 관한 선언이다. 우리에게 내려진 지시이기에 앞서, 우리를 위해 어떤 일이 행해졌다는 선포다("104). 복음의 본질은 조언이나 지시가 아니라, 뉴스(기쁜 소식)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제대로 깨달아도 아마 우리 영혼은 엄청난 자유를 느낄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해주신 일을 기뻐하고 찬양하는 일이라는 것이라는 설명에서 나의 예배가, 예배에 임하는 나의 태도가 달라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갈라디아서; 복음을 만나다>는 매 장마다 갈라디아서의 진리를 깨닫고 묵상할 수 있는 질문을 세 가지 정도 던져줍니다. 성경말씀을 배운 것에서 그치지 않고 나의 상태를 점검하며 말씀을 적용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진지하게 읽고 답한다면 신앙성장에 큰 유익이 있으리라 기대됩니다.

 

 

"이 진리들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한평생이 필요할 것이고, 즐거워하는 데 영원이 소요될 것이다"(150).

 

켈러 목사님의 이 한마디가 마음에 깊이 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계시된 진리를 깨다는데는 한 평생이 필요하다는 말에 공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시작한 이후로 교회를 떠난 적이 없고 늘 말씀을 배우고 가까이 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매일 새로운 깨달음들이 우리 영혼을 다시 깨어나게 하니까요. 뿐만 아니라, 그 진리를 즐거워하는 데는 영원히 소요될 것이라는 선언이 큰 영적인 기쁨을 선물해줍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 받은 구원(은혜)가 얼마나 위대하며 완전하며 충만한 것인지 생각할수록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이 책은 "팀 켈러의 새롭게 열리는 말씀" 시리즈 첫 권으로 소개되고 있는데, 연이어 발간될 다른 시리즈도 기대해봅니다.

  

베가북스의 <갈라디아서; 복음을 만나다>는 구성이 독특합니다. 본 서와 함께 갈라디이서를 더 깊이 읽을 수 있도록 '스터리 가이드'(study guide)가 별도로 제공됩니다. 리더를 위한 지침서도 포함되어 있는 소그릅 모임 교재로 안성맞춤입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보면, 말씀은 그 은혜를 서로 나눌 때, 배가 되는 것을 느낍니다. 모임에서 갈라디아서를 읽으며 복음의 진수를 알아가는 기쁨을 함께 누리기 원합니다. 이 책을 통해 갈라디아서 읽기 열풍이 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켈러 목사님의 말씀처럼,) 모든 죽어가는 영혼들 안에 갈라디아서라는 이 복음의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리는 자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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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리아드
마릴린 로빈슨 지음, 공경희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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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살의 아버지가 7살 아들에게 남기는 마지막 편지.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남길 것인가?

 

 

'상속자'라는 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습니다. 우연히 한 장면을 보았는데, 고등학교 학생들이 집안의 재계 서열을 운운하며 건방을 떨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으로서 서로의 성품이나 재능, 그 사람만의 색깔에는 관심이 없고, (그들만의 세상에서) 오로지 부모의 재산에 의해 개인(학생)의 가치가 판단되고 있습니다.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을 '상속자'라는 이유만으로 오만과 편견에 사로잡힌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이 드라마가 몇 세 미만의 아이들에게 시청 불가한 작품인지 궁금했습니다.

 

<길리아드>는 77세의 노목사가 죽음을 앞두고, 7살의 어린 아들에게 남기는 마지막 편지입니다. <길리아드>는 마치 누군가의 자전적 고백처럼 읽혀, '소설'이라는 것을 깜빡 잊기도 했는데 화자인 '존 에임스 목사'는 어디까지나 작가의 상상이 빚어낸 인물입니다. 아직은 젊은 아내와 어린 아들을 남겨두고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늙은 아버지는 성직자로 살아온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다정하게 풀어놓습니다. 이 노목사의 인생 이야기는 역시 목사였던 그의 아버지, 또 역시 목사였던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뿌리와 가지처럼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로 연결된 이들의 이야기는 미국 역사라는 밑그림 위에 그려지며 아름다운 색채를 덧입어갑니다.

 

<길리아드>는 루게릭 병을 앓는 노스승과 제자가 나누는 대화로 많은 감동을 주었던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남을 착취하는 삶이 싫어 '선생'을 직업으로 택했다는 모리 선생님처럼, 성직자로서 선한 삶을 살고자 애썼던 존 에임스 목사의 인생은 평범하지만 진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아름다움과 순간순간 마주하는 인생의 소중함에 눈 뜨게 해줍니다. 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젊은이들이 서로 깔깔 데는, 별 뜻 없는 장면에서도 삶의 환희를 느끼게 해줍니다. 교회에 걸어가던 길에 만난 젊은 커플을 보면서도 신의 축복을 느낍니다. "젊은 커플이 내 앞에서 걷고 있었지. 대비가 내린 후에 햇살이 쏟아졌고, 나무는 젖어서 반짝거렸지. 어떤 충동이, 충일한 느낌이 밀려왔는지, 남자가 펄쩍 뛰어올라 나뭇가지를 붙잡았지. 반짝이는 물방울이 쏟아지자, 두 사람은 웃으면서 달아났어"(47).

 

존 에임스 목사는 이 모습을 지켜본 감상을 이렇게 술회합니다. "그런 순간이면 물이 만들어진 주목적은 축복을 위해서고, 채소를 키우거나 씻는 데 쓰기 위함은 두 번째라고 믿고 싶긴 하다만. 그런 것에 더 관심을 두었더라면 좋았으련만. 내가 이상한 것들을 후회하는 것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 누가 알 수 있겠니. 이곳은 흥미로운 행성인 것을. 어떤 것이든 우리가 관심을 기울일 가치가 있지."

 

노목사인 아버지가 어린 아들에게 남겨줄 수 있는 유산은 몇 권의 책과 자신의 삶의 기록이라고도 할 수 있는 설교 원고 뭉치, 그리고 이 편지가 전부입니다. 값나가는 재산은 없지만 아버지와 할아버지로 이어지며, 또 할아버지와 아버지로부터 내려오는 삶의 유산은 매순간 선하게 살려고 애쓰는 마음, 그리고 삶을 대하는 진실한 태도입니다. 노예 해방을 위해 북군으로 남북전쟁에 참전했던 노목사의 할아버지는 전투 중 심한 부상을 입어 한 쪽 눈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은 아들에게 아버지(할아버지)가 처음으로 한 말은 "난 이 일에서도 큰 축복을 찾을 것으로 확신한단다"였어(58)라고 합니다.

 

인생을 되돌아보는 노목사는 "가장 고생한 일 때문에 웃게 되더구나"(33)라고 고백합니다. 그런 것 같습니다. 살아보니 돌아보면 가장 고생했던 일 때문에 웃게 되고, 그 고생을 함께했던 가족에 감사하게 되고, 그것을 지켜봐주는 친구 때문에 충만한 행복을 느끼게 되는 듯합니다. <길리아드>는 그렇게 우리가 별 일 아닌 것이라고 무시하며 살아가는 일상, 불행이라고 탄식하는 고통 속에도 축복이 있다는 것을 잔잔하게 알려주는 책입니다.

 

책의 제목인 <길리아드>는 구약성서에 "길르앗"이라고 번역되어 나오는 지명입니다. 작가는 책의 제목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아프거나 다친 사람들을 치유하는 데 효과가 있었다는 발삼나무는 성서에 나온 '길리아드'라는 지역에서 서식하였는데, 이로 인해 '길리아드'라는 이름은 특유의 상징적 의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 마을의 이름 '길리아드'는 정신적, 육체적 온전함에 대한 소망, 특별히 친절과 정의와 관련이 있습니다"(8). 제목이 상징하는 것처럼 <길리아드>는 상처난 일상을 치유하는 향료 같은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은 '착함'이 지루한, 답답한 느낌을 주기도 하는 세상이라 이 책에 가득한 '선함'이 어쩌면 "뻔하다"는 느낌을 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어린 아들을 세상에 남겨두고 이제 긴 잠을 자야 하는 한 아버지가 아들에게 들려주는 삶의 기록들은, 평범한 일상에 대한 경외감과 함께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남겨주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진지한 고민을 하게 만들어줍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며 우리 아버지의 인생을 한 남자의 그것으로 객관화해서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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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스타일 손뜨개 소품 2 - 북유럽 스타일에 로맨틱을 더한 두 번째 손뜨개 레슨 북유럽 스타일 시리즈
주부와생활사 지음, 배혜영 옮김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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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보내는 여가 시간을 온통 TV 보는데 쏟아붓는 습관을 고치려고 손을 움직이며 하는 건전한 취미를 찾고 있습니다. 요리, 퍼즐 맞추기, 드로잉, 인테리어 소품 만들기 등을 기웃거려 보았는데 겨울에 꼭 한 번 도전해보고 싶은 분야가 바로 손뜨개입니다. 그중에서도 특별히 "북유럽" 스타일을 좋아하는 이유는 독특한 배색이 만들어내는 그 청량한 색감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북유럽 스타일 손뜨개 소품>은 북유럽 스타일이 가진 또다른 매력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독특한 디자인입니다!


 


 
 
<북유럽 스타일 손뜨개 소품>은 1, 2권 시리즈로 된 책입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것은 그중 2권입니다. 2권에는 목도리, 벙어리장갑, 모자 목도리, 스톨, 넥 워머, 작은 가방, 난쟁이 모자, 핸드 워머, 리스트 워머, 파우치, 가장, 레그 워머 등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중에서 가장 탐이 아는 손뜨개 아이템은 바로 "에스토니아 스타일 모자 목도리'입니다. 모자와 목도리가 합쳐진 것으로 "빙글빙글 둥글게 떠서 완성한 뒤 모자로 쓰고, 남은 한쪽을 목에 둘둘 감아" 목도리로 활용하는 것입니다.
      
 


 
 
"뱅글뱅글 둥글게" 뜨면서 "원하는 길이로" 마음껏 조절할 수 있습니다. 모자와 연결되어 있는 목도리라는 컨셉이 신선하고 재밌습니다. 모자가 필요 없을 때는 목도리로만 사용해도 좋고, 목도리가 원형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풍성하면서도 두 겹의 효과가 있어 보온 효과가 훨씬 뛰어날 것 같습니다.


 


 
 
7개 또는 4개의 색상으로 이루어진 모자 부분의 배색(무늬)과 코를 줄이는 부분만 조심한다면 목도리를 부분을 뜨는 것은 매우 쉽습니다. 모자를 잘 뜨는 분이라면 문제 없을 듯합니다.


 


 
 
다음으로 눈길을 끄는 것은 "숲 속 나무 무늬 벙어리장갑"과 "스와치"인데, 이 "스와치"의 활용법이 기발합니다. 스와치는 시험(연습) 삼아 떠본 '견본'을 말하는가 봅니다. <북유럽 스타일 손뜨개 소품 2>은 "애써 뜬 스와치를 버리는 건 좀" 아깝다며, 브로치로 사용하거나 원피스의 주머니 장식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일러줍니다. 스와치를 활용하니 독특한 원피스가 탄생했습니다. 편집자의 말대로 "참으로 멋진 아이템"입니다. 북유럽 스타일의 배색을 연습 삼아 스와치를 많이 떠보고, 책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기초로 다양하게 활용해보아도 재미있을 듯합니다.


 


 
 
북유럽 스타일 손뜨개를 하려면 여러 색상의 실을 교차해야 합니다. 초보자들에게는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배색무늬는 간단한 겉뜨기와 안뜨기만으로 뜰 수" 있습니다. "잡아당기는 요령을 익히면 초보자도 손쉽게 뜰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위의 사진은 "가로로 실을 걸치며 왕복해 뜨는 방법"입니다. 이처럼 평면을 왕복해 뜨는 방법 외에 원형으로 뜨는 방법도 소개되어 있습니다. 배색무늬 뜨는 법만 확실하게 익혀두면 "북유럽 스타일 손뜨개"의 다양한 아이템에 도전해볼 수 있을 듯합니다.
 
4계절 중에 눈이 내리는 겨울을 제일 좋아하는데, 북유럽 스타일 손뜨개 소품을 몇 가지 가지고 있다면 겨울이 더 기다려질 듯합니다. 따뜻하게 보내는 것은 물론이고요. 디자인도 독특하고, 아이템도 다양하고, 특별히 색감이 예뻐서 누군가를 위해 손뜨개에 도전한다면 정성이 가득 담긴 특별한 선물이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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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중심의 교회 - 그 교회에 가고 싶다!
매트 챈들러 외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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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 교회, 왜 능력을 잃었나?"(13)

 

우리 사회는 어느 새 '안전 불감증'이라는 용어에 익숙해져 버렸습니다. 경각심을 가져야 할 단어인데, 충격은 사라지고 용어의 껍데기만 남았습니다. 문제가 뻔히 보이는데도 진지한 반성이나 변화의 조짐은 나타나지 않으니 참으로 답답한 노릇입니다. 안전 불감증에 걸린 사회처럼, 한국 교회는 '능력 불감증'에 걸린 것이 아닌가 우려 됩니다. 곳곳에서 "우리 시대 교회, 왜 능력을 잃어버렸나?" 하는 안타까운 외침이 들려오지만, 어느새 우리는 '성장이 멈춘 교회',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는 예배', '사회적 영향력을 잃어버린 신자'에 익숙해져 가는 듯합니다. 사회를 향해 정의와 공의를 요구해야 할 교회는 스스로 모범이 되지 못하고, 동성애 문제와 같은 사회적 이슈들에 대해 함께 고민하며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고, WCC의 종교혼합 문제 등은 교회 안에 심각한 혼란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거침없이 달려가 음부의 권세를 깨부수는 교회를 꿈꾸었"으나, "예배에 대한 갈증도 없고, 가난한 이웃에 대한 연민도 없"이 무미건조한 활동들만 반복하고 있는 교회를 향해 이 책은 외칩니다. "그리스도를 향한 열정으로" 돌아오라고 말입니다. 교회의 중심은 그 무엇도 아닌, 전적으로 "복음", 곧 "예수"여야 한다고 말입니다. "교회의 중심은 전적으로 예수님과 그분이 완성하신 일이어야 한다"(18).

 

예수 중심의 교회, 지극히 당연한 말입니다. 예수 중심이 아닌 교회는 이미 교회일 수가 없으니 말입니다. 예수 중심의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외침, 이것을 외면하거나 거부할 목회자는 당연히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본질을 '철저하게' 붙들고 있는 교회가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한국 교회에 불어닥친 열풍들을 보면 폭발적인 성장을 위한 프로그램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오늘날과 같이 무기력해진 교회입니다. 많은 한국 교회가 모델로 삼았던 윌로크릭교회는 <무브>라는 책을 통해 뼈아픈 고백을 했습니다. 윌로크릭교회는 다양한 활동과 프로그램으로 유명한 교회인데, 설문조사 결과 교회가 쏟아부은 그 모든 수고와 재정, 프로그램들이 성도들의 삶에 의미 있는 변화를 일으키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예수 중심의 교회>는 당연하지만, 어쩌면 너무 당연해서 그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는 한 가지 질문을 우리에게 던져줍니다. "우리 교회의 중심은 무엇인가?" 만일 예수님과 예수님이 이루신 일이 아니라, 다른 것에 눈을 돌리고 있다면 우리는 그 기초를 다시 놓아야 할 것입니다. "즉 이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복음을 머리로 아는 사람과 복음에 사로잡힌 사람. 말로만 "복음, 복음" 하는 사람과 실제로 복음으로 사는 사람. 복음을 목회의 여러 측면 중 하나로 보는 사람과 오직 복음을 중심으로 목회하는 사람. 둘의 차이는 그야말로 천지차이다"(17).

 

 

 

  

"죽은 교회와 공허한 교회에 대한 해법"(18)

 

<예수 중심의 교회>는 교회가 복음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이 교회를 형성한다고 강조합니다. 교회가 복음을 수호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정반대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존재 자체가 복음 중심적이기 때문에 결코 복음을 벗어나서는 안 되며, 모든 교회는 복음에 더 깊이 연결되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 중심의 교회>는 복음에 대한 정확하고도 깊은 이해의 바탕 위에 '교회론'을 세웁니다. "예수 중심의 예배, 예수 중심의 연합, 예수 중심의 섬김, 예수 중심의 전도, 예수 중심의 교회 문화, 예수 중심의 설교, 예수 중심의 주일학교, 예수 중심의 리더십, 예수 중심의 교회 실무, 예수 중심의 선교, 예수 중심의 사역"이 무엇인지 교회의 본질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짚어갑니다.

 

<예수 중심의 교회>는 교회의 실체, 교회의 문화를 정확히 판단하기 위해 방법으로 "조직의 영웅을 살피라"(133)고 조언합니다. "우리 교회의 영웅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담임목사님? 존경받는 리더? 탁월한 사역자? 섬김의 본이 되는 직분자? 만일 이 질문에 어떤 '사람'을 떠올렸다면, 당신의 교회는 그 중심이 '예수'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입만 열면 프로그램이나 창의성, 리더십, 혁신만을 외치는 교회는 복음 중심의 교회일 가능성이 낮다. 복음 중심의 교회라면 언제나 예수님을 얼굴로 내세운다"(134).

 

<예수 중심의 교회>가 주는 교훈 중에 가장 마음에 찔렸던 가르침은, "예수 중심의 중일학교" 편이었습니다. 복음을 통한 변화가 아니라, 행동 개조 프로그램에 가까운 주일학교 사역이, 아이들을 예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 날카롭습니다. 가정이나 교회에서 도덕식 교육만 받은 아이들은 "죄를 지어도 하나님에게서 도망칠 필요가 없다는 사실"(193)을 알지 못합니다. "현대판 율법만 강요하면 죄의 침에 쏘였을 때 예수님께 돌아오지 않는다. 그들의 머릿속에서 하나님은 법만 주시는 분으로 자리를 잡을 것이다"(198). <예수 중심의 교회>는 교회가 아이들에게 관심 가져야 할 것은 행동이 아니라 마음이라고 힘주어 강조합니다. "아이들을 세상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급선무가 아니다. 복음으로 아이들의 마음을 변화시키면 세상 따위는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다"(185).

 

 

<예수 중심의 교회>는 새로운 신학, 새로운 프로그램을 전하는 책이 아닙니다. 본질 중의 본질을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여서 새로울 것도 없고, 신선한 충격도 없고, 흥미로울 것도 없는 주제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 시대의 교회가 가진 문제 앞에 진지하게 선다면, 그 해답을 여기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동안 여러 사역에 지치고, 다양한 프로그램에 분주했던 교회라면, 예수(복음)님만으로 충분하다는 단순한 진리를 다시 발견하는 기쁨이 있을 것입니다.

 

저자가 인용한 어거스틴의 말이 마음에 남습니다. "교회는 음탕한 여자지만 여전히 내 어머니다."  "교회는 복음 외에 수만 군데로 한눈을 팔아왔다. 하지만 어거스틴의 말처럼 교회는 여전히 우리의 어머니다. 교회는 온갖 더러운 행실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신부라는 사실만으로 더 없이 아름답다"(110-111). 능력을 잃어버린 교회,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교회 때문에 아파하고, 좌절하고, 고민하는 성도가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결코 교회를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며, 부족하고 미련하고 연약한 우리(교회)를 통하여 위대한 구원의 역사를 완성하실 것입니다. <예수 중심의 교회>로 돌아오라는 외침에 이제 우리가 응답할 차례입니다. 모든 교회가 이 부르심 앞으로 달려 가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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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인테리어 - 콕콕 짚어 주는 인테리어 특강
일본 신성출판사 편집부 지음, 하정 옮김 / 에디터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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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테리어 특강 

어떤 집에 들어서면 저절로 탄성이 나오는 집이 있습니다. 같은 크기와 구조를 가진 공간이라도 인테리어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훨씬 넓어 보이기도 하고, 더 세련되어 보이기도 하고, 쾌적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단순히 몇 가지 아이디어를 얻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보다 체계적인 인테리어 이론을 단기 과정으로 배우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습니다. 살면서 '이론'의 힘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야이든, 아떤 일이든, 기본적인 '이론'이 토대를 이루지 않으면 아무리 감각이 뛰어나도 한계를 극복할 수 없다는 사실이 새삼 깊이 와닿습니다. 특히 인테리어는 고수들의 아이디어를 하나 둘 조각조각 모방하다 보면, 오히려 공간의 어울림이나 전체적인 균형을 깨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친절한 인테리어>는 인테리어의 모범을 보여주기만 하는 책이 아니라, "인테리어 기본 공식"을 콕콕 짚어주는 책입니다!


  

 

"이 책에서는 사람들이 원하는 4가지 인테리어 취향을 바탕으로 7가지 라이프스타일로 분석해 자신에게 꼭 맞는 인테리어를 디자인할 수 있게 해준다."

   

<친절한 인테리어> 특강을 들으며, 가장 도움이 된 부분은 무엇보다 나의 인테리어 취향을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친절한 인테리어>가 가진 인테리어 철학은 "인테리어는 나와 내 가족의 삶이 반영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인테리어를 시작하기에 앞서, 자신과 가족의 취향, 그리고 생활방식을 파악하는 작업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공간의 크기나 구조가 아니라 '먼저' 자신과 가족의 취향을 파악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도움을 줍니다. <친절한 인테리어>는 "조합의 편의와 이해를 위해" 독자들의 다양한 취향을 총 4개의 카테고리로 분류하여 인테리어 방향을 설정해줍니다. 

 

 

 

  

<친절한 인테리어>의 기본 방향은 "장식성을 척도로 절제된 아름다움의 '심플'부터 풍부하고 화려한 아름다움의 '데코'를 가로축"으로 하고, "시간을 척도로 전통적인 것이나 오래된 것에 애착을 갖는 '트래디셔널'부터 20세기 이후의 새로운 디자인을 선호하는 '모던'을 세로축"으로 설정하여, 심플 트래디셔널, 심플 모던, 트래디셔널 데코, 모던 데코라는 4개의 콘섭트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책에서 제시하는 검사 도구와 가이드라인을 참고해 볼 때, 저의 취향은 '모던 심플'에 해당합니다. 4가지 취향의 척도에 따라 인테리어의 방향과 주제가 결정되기 때문에 자신의 취향을 정확하게 아는 것이 인테리어의 관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취향을 정확하게 모르는 독자들은 꼭 한 번 검사해보라고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의외"의 결과가 나올니도 모르니까요.

 

 

 

 

"멋진 인테리어를 실현하려면 실패하지 않는 계획과 충분한 준비가 필요하다."

 

<친절한 인테리어> 특강은 몇 가지 빛나는 아이디어로 시선을 끄는 정도의 수준을 훨씬 넘어섭니다. 공간의 분석에서부터, 색과 소재의 조합 방식, 공간별 가구 배치와 조합의 테크닉, 빛을 연출하는 방법, 똑똑한 수납까지, 과학을 토대로 한 종합예술에 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을 읽으니 당장 이사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합니다. 현재의 공간에서 무엇을 바꾸기보다, 처음부터 완전히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훨씬 쉬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친절한 인테리어>는 인테리어를 시작하기에 앞서, 공간 분석을 통해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부터" 정리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책에서 제시하는 인테리어 법칙을 당장 "완벽하게" 실행하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지만, 몇 가지 가구 배치를 바꿔보거나 조명을 고르는 것 정도는 당장 적용해 볼 수 있을 듯합니다. 욕심 부리지 않고 한 공간, 한 공간씩 바꿔가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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