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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생각 - 과학자들이 알고 싶어하는
이고르 보그다노프 & 그리슈카 보그다노프 지음, 허보미 옮김 / 푸르메 / 2013년 10월
평점 :
품절
"내가 알고 싶은 것은 신이 세상을 어떻게 창조했는지라네. 현상이나 원리 따위는 내 관심사가 아니지. 나는 그저 신의 생각이 알고 싶은 거라네"(아인슈타인, 10).
이 세상에는 우주의 기원을 설명하는 두 가지 '론'이 있습니다. 하나는 창조론이고, 다른 하나는 진화론입니다. 합리적 사고와 과학적 지성을 추앙하며 특히 자신이 바로 그런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이들은 '진화론'을 신봉합니다. 진화론이 설명하는 우주의 기원은 한마디로 "우연"입니다. 우주의 기원과 생명의 탄생은 순전히 우연의 산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의 생각>은 이러한 주장이 "가장 비과학적인 가설"이라고 비판합니다. "가장 간단하면서도 가장 비과학적인 가설은 우주, 의식, 생명이 경의로운 '우주적 우연'이 빚은 산물에 불과하다는 이론이다. 생명은 단순히 '무작위로' 출현했으며, 우리의 존재 역시 순전히 임의적이라는 주장이다"(12).
이 책은 우주의 기원과 생명의 탄생은 절대로 '우연'일 수 없다는 논리와 증거를 제시합니다. 그렇다고 <신의 생각>이 창조론을 옹호하는 것은 아닙니다. <신의 생각>이라는 책의 제목은 (위에 인용되어 있는) 아인슈타인의 말에서 따왔습니다. 이 책에서 지칭하는 '신'은 (기독교의) 창조주가 아닙니다. "사실상 유신론자들이 자신의 신앙을 말할 때 사용하는 '신'이란 단어는 과학자들이 자신의 발견이나 의문을 비유할 때 말하는 '신'과는 의미가 전혀 다르다"(274). <신의 생각>에서 말하는 '신'은 '정보' 또는 '수'(숫자)의 다른 이름입니다.
수와 자연은 어떤 관계를 맺고 있을까?
수학 법칙과 물리적 현실 사이에는 어떤 연관성이 존재할까?
특히 우주는 우연에 의해 지배되고 있을까 아니면 아닐까?"(129)
<신의 생각>에 등장하는 수학자 또는 과학자들은 우주 또는 생명의 기원이 우연이 아니라, "기막히게 계획된 사건"이라고 봅니다. 겨울에 내리는 '눈'의 신비에 대해 들어보셨습니까? 지구상에는 역사 이래 똑같은 모양의 눈송이가 단 하나도 없었다고 합니다. "모두 6개의 기둥을 달고 있고, 모두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웠지만, 모양만큼은 전부 제각각"입니다. "그것은 흡사 대칭이 완벽한 6각형의 아름다운 별과도 비슷"합니다. <신의 생각>은 묻습니다. "그런데 대체 왜 기둥은 항상 5개나 7개가 아닌 6개인 것일까? 대체 어떤 기적에 의해 들판 위에 내리는 수십억 개의 눈송이는 하나의 견본을 보고 만들었는데도 전부 모양이 다른 것일까?"(39)
자연에 나타나는 신비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들판에 피는 꽃잎의 장수를 세어보면, 이파리가 모두 3장, 5장, 8장, 34장, 55장으로 나타난다고 합니다. "이 들판에는 꽃잎의 장수가 6장, 9장, 혹은 12장인 꽃은 존재하지 않는다! 꽃잎이 22장, 35장인 꽃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열심히 찾아도 그런 수의 꽃잎이 달린 꽃은 절대 찾을 수 없다"(113). 그런데 놀랍게도 이 꽃잎의 수는 약 8세기 전 발견된 괴상한 수열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피보나치 수열'(114)인데, 이 수열의 원리는 1부터 출발해 앞의 수를 하나씩 더해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나열하면 이렇습니다. "0, 1, 1, 2, 3, 5, 8, 13, 21, 34 등." 이 피보나치 수열은 꽃잎의 장수가 결코 무작위로 정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 수열이 "시대를 막론하고 세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어떤 상수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피보나치 수열에서 연속하는 두 수의 비를 구하면 수학자들이 황금수라고 부르는 유명한 수(1.618)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종종 '신의 비율'이라 불리기도 하는 이 상수-이른바 황금수-는 세상 어디에나 존재했다. 꽃에도, 조개에도, 심지어 그가 매일 연주하는 피아노곡 속에도 들어 있었다"(119).
<신의 생각>에서 주장하는 논지를 한마디로 말하면, "우주가 막 탄생하던 0의 순간에 우주는 물질로 이뤄진 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과학자들이 흔히 말하는 '정보'이며, "무의 한복판에 자리한 순수 사유. 수학적 사유"(16)라는 것입니다. <신의 생각>은 "당대 세계 최고의 수학 명문이자 오늘날 신화가 된 한 대학(괴팅겐)을 중심으로" "수학계를 평정하고, 세계 곳곳에 사상 초유의 혁명을 몰고" 온 소수 엘리트 계층에 속하는 수학자들의 사고 발전 과정과 이론을 소개합니다. 괴팅겐이 배출한 수학사조의 황태자들 - 민코프스키, 조머펠트, 힐레르트, 클라인, 린더만, 후르비츠, 바일, 라마누잔, 괴델, 아인슈타인, 하이젠베르크, 보른 등 -을 중심으로 그들이 "예정 조화"라고 이름붙힌 사상의 전개 과정을 상세하게 기술합니다. "우주에는 예정조화란 것을 통해 신의 생각을 보여주는 흔적이 남겨져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신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을까? 그것은 바로 수학 언어를 통해서다"(라이프니츠, 89).
기원전 540년경 피타고라스가 말한 "수가 우주를 지배한다"는 말이 얼마나 옳은지 깨닫게 될 것이다(35).
<신의 생각>은 숫자들이 "우주의 가장 근원으로 향하는 문을 열어줄 열쇠"라고 말합니다. 만물은 어떤 근원적인 질서에 기초하고 있는데, 오직 수학을 통해서만 그 질서를 해독하고 이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127). 이런 주장을 근간으로 물리적 현실계와 수학 사이에 존재하는 기이함을 매우 흥미롭게 밝힙니다. 수가 법칙을 낳고, 또 그 법칙에 의해 물질과 공간과 시간이 탄생했다는 주장도 흥미롭습니다.
<신의 생각>을 읽으며 가장 흥미로웠던 것 중 하나는 '수학'이라는 학문의 위대함이었습니다. 수학이 얼마나 정교한 논리이며, 또 심오한 철학인지 새삼 깨달았습니다. 또한 "오늘날 물리적 지식의 근간인 두 분야", 즉 "극대의 세계를 다루는 상대성 이론과 극소의 세계를 탐구하는 양자 이론"이 수학자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도 흥미롭습니다. 세계적인 우주물리학자인 스티븐 호킹이 수학을 더 열심히 공부하지 않은 것을 왜 그렇게 후회했는지 비로소 와닿았습니다. (수학이 이렇게 매력적인 학문이라는 걸 학창시절에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습니다. 저에게 자녀가 있다면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수학을 열심히 가르칠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우리 우주는 우주의 바깥에 있는 다른 무엇인가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는 <신의 생각>의 주장이 저의 신앙을 더욱 견고하게 해주었습니다. (비록 여기서 말하는 '신'이 그 '신'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물리적 세계가 창조되기 이전에 우주 창조의 시나리오를 "암호화해 놓은" 어떤 "정보"(수학적 법칙)가 있었다는 주장은,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그 정보일 것이라는 어떤 확신을 주기도 합니다. (억지스럽다고 비웃음을 살지도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수학자와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신의 생각>에 등장하는 이론이 과학이 아니라 동화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하지만, 노벨상을 거머쥔 수학자들의 오랜 연구 결과입니다. 흥미롭게 읽어볼 만한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