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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형 이야기 ㅣ 생각하는 숲 13
모리스 샌닥 글.그림, 서남희 옮김 / 시공주니어 / 2013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아름답고 슬픈,
모리스 샌닥.
<나의 형 이야기>가 모리스 샌닥과의 첫 만남이지만, 그는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그림책 작가"라고 합니다. 그의 이력을 보면, 그의 작품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칼데콧 상,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상, 로라 잉걸스 와일더 상, 미국 국가예술상 등 수상경력이 화려합니다. 게다가 저자 소개를 보면, 모리스 샌닥은 "독특한 표현 기법과 풍부한 상상력으로 가득한 그의 그림책들은 전 세계 어린이들로부터 열렬한 사랑을 받았다"고 전하며, 하버드 대학 교수인 '스티븐 그린블래트'는 모리스 샌닥이 "우리 시대에 가장 상상력이 뛰어난 작가"라고 평합니다(여는 글 중에서). 또한 극작가이자 퓰리쳐 상 수상자인 '토니 쿠쉬너'는 "우리는 그를 영원히 그리워"할 것이라고 사랑을 담아 인사를 전합니다(표지 뒷면 중에서). 그의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별첨된 작품 설명을 보니, <나의 형 이야기>는 작가의 "작별 인사 같은 책"이라고 합니다. "형인 잭, 50년 간 연인이었던 유진 글린"을 그리는 비가이기도 하고, 작가가 이 땅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완성한 작품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형 이야기>는 이런 창작 배경을 알지 못하고 읽으면, 허무한 수수께끼처럼 읽힐지도 모릅니다. 5분이면 읽어버릴 수 있을 만큼, 짧은 동화이며, 그림책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형 이야기>는 형을 잃은 작가의 슬픔이 시처럼, 신화처럼, 환상처럼 그려진 작품입니다. 마치 시를 읽는 듯한 리듬감이 느껴지는 것은, 압축적인 서사 안에 환상의 세계가 그려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읽을수록) 이 짧은 이야기 안에, "셰익스피어 희곡 <겨울 이야기>의 일부 대사, 에밀리 디킨슨의 시 160번 첫 줄과 340번 마지막 연, 그리고 자신의 작은 그림책 <쌀을 넣은 닭고기 수프>의 한 대목을 살짝 변주"했다는 것이 놀라울 뿐입니다.
"으스스한 겨울밤, 화려한 빛을 내뿜"는 새 별이 돋아나 "쿵" 하고 지구에 부딪히는 바람에 지구가 두 동강 납니다.
그 바람에 '잭'은 얼음 대륙에 내던져져 돌처럼 굳어버립니다.
'가이'(작가)는 여러 세상을 지나쳐 곰의 굴속으로 떨어집니다.
곰이 가이를 잡아먹으려 하자 가이는 수수께끼를 알아맞히면 목숨을 드리겠다고 합니다.
가이는 "아주 오래된, 겨울 수수께끼"를 내고, 수수께끼를 알아맞히지 못한 곰은 '큰곰자리' 별이 됩니다.
가이는 "큰 곰의 목구멍"을 통해 지하 세계로 들어가 형을 만납니다.

모리스 샌닥은 형의 죽음을 "코가 꽁꽁 얼어붙"은 것으로 표현합니다(10). 그리고 다시 형을 만났을 때, 그가 "진짜로 형인가 보려고", 형의 "코를 깍, 깨물"자, 형 잭은 "훅, 숨을 쉬었"습니다(28). 어쩌면 잭은 차디차게 굳은 형의 코에 생기를 불어넣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을 번역하신 선생님은 이 장면을 두고 이렇게 묻습니다. "어려서 많이 하던 놀이였을까요?" 이 물음 때문인지, 이 장면에서 눈물이 또르르 굴러 떨어졌습니다.
책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이 이 책을 단숨에 읽어내려갔을 때는,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잘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책을 다시 읽으며 음미할수록 진한 슬픔이 끝없이 차오릅니다. 사랑하는 이를 잃어버린 사람이 들으면 아름다운 이별 따윈 없다고 야단을 칠지도 모르겠지만, 마지막 장면이 아름다워서 더 아리고, 슬펐습니다. 어린 언니를 먼저 보내고 오래도록 슬퍼하는 친구가 떠올라 더 가슴이 아팠습니다. 친구가 슬퍼할 때, 옆에서 등이라도 또닥여주어야 하는데 오래도록 친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질책하기도 했습니다.
언제 들이닥칠 이별을,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이 문득 깨달아질 때마다 가슴에 '쿵' 하고 떨어지는 것이 있습니다. 열심히 사랑했기 때문에 더 보낼 수 없는 것이겠지만, 천국에서 다시 만날 수 있으니 이별은 잠시 뿐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오늘 더 열심히, 내 곁에 있는 이들을 사랑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해줍니다. 그림책인데 어린아이들도 읽을 수 있는 책인가 잠시 생각하다, 어린아이들에게도 가르쳐주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얼핏 보면 썰렁한 책, 그러나 깊이 음미할수록 빠져들게 되는 환상적인 그림책을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