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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배 섬의 비밀 세트 - 전2권 ㅣ 오르배 섬의 비밀
프랑수아 플라스 지음, 공나리.김용석 옮김 / 솔출판사 / 2013년 7월
평점 :
"자신의 남은 인생을 모두 걸고 추구해왔던 목표에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면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까?"(2권, 118)
하나의 이상을 향해 가는 남자와 열린 세상을 지향하는 여자의 모험과 사랑이야기.
"당신이 그리고 있는 인생 지도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습니까?" 이 책은 내게 이런 질문을 던져주었습니다. 미지의 세계를 두려워하지 않고 용감하게 세상과 맞부딪히며 나만의 지도를 열심히 그려 나가고 있는지, 아니면 다른 사람이 그린 지도를 분석하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는지 물어오는 듯합니다.
<오르배 섬의 비밀>은 하나의 이상을 향해 중단 없이 나아가는 '남자'(1권 코르넬리우스의 여행)와 '열린' 바다를 자유롭게 누비는 '여자'(2권 지야라의 여행)의 모험과 사랑 이야기입니다. 1권과 2권은 서로 짝을 이루는 가운데, 2권이 1권을 보완해줍니다.
1권의 주인공 '코르넬리우스'는 천을 사고파는 천 상인입니다. 그가 아직 '애송이' 상인이었을 때, 폭풍우가 치는 어느 날 밤, 우연히 한 늙은 여관 주인을 만나게 됩니다. 여관 주인으로부터 신비한 '구름천'의 이야기를 듭니다. 이 구름천을은 바라볼 수는 있지만 결코 그곳에 다다를 수는 없는 "푸른 산"에서 나는 구름풀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푸른 산'은 그의 마음을 사로잡아 그가 길을 나서도록 부추기고 매혹했습니다. 코르넬리우스는 '푸른 산'을 목표로, 구름천의 기원이 되는 나라(오르배 섬)로 탐사를 떠나기로 합니다.
코르넬리우스는 먼 여행도 마다하지 않고 사막과 대양을 가로질러 갑니다. 온갖 어려움을 헤쳐나가며 "구름천이 어디로부터 왔는지 알아내기 위해 수없이 노력"합니다. 그는 "언제나 사물의 기원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야지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입니다"(1권, 96). 코르넬리우스는 '푸른 산'이라는 이상을 품고 하나의 목적을 향해 나아갑니다. '푸른 산'은 존재하는지도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 미지의 땅입니다. 존재한다 하더라도 볼 수는 있지만 닿을 수는 없는 산입니다. 그러나 이상을 향한 마음은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코르넬리우스는 인생 전부를 걸고 그 산에 도달하겠다고 결심합니다. 코르넬리우스를 사랑하게 된 지야라는 존재하지 않더라도 끝까지 가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 어떤 것도 코르넬리우스의 모험을 멈추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를 보내줍니다.
1권의 후반부에서 코르넬리우스는 '지야라'라는 신비로운 여인과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그러나 '지야라'의 본격적인 이야기는 2권에서 시작됩니다. 지야라는 캉다아의 시골 마을에서 "온 산을 휩쓸고 다니는 말괄량이" 소녀였습니다. "독수리와 솔개들처럼 하늘 높이 날고 싶었"지만, 출구가 없는 산골 소녀. "산골 소녀들에게는 날개가 없다. 소녀들은 빵 반죽 속에 자신의 꿈을 넣어 질식시킨다. 불씨를 쑤셔 불을 피울 때는 열정을 넣어 태워버린다. 침대 시트를 빨면서 욕망을 익사시킨다"(2권, 6).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와 함께 캉다아의 대축제에 참가하게 된 지야라는 자신이 대선단을 이끌 운명의 여인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상아로 만든 돌고래를 발견한 '사람'은, 캉다아 선단의 대선장이 될 것"(2권, 23)이라고 했는데, 돌고래가 선택한 사람이 바로 지야라였던 것입니다.
지야라는 도시에 행복과 번영을 가져다주는, 선원들과 선단을 이끄는 여선장이 되어 바다를 누빕니다. "여행을 거듭할수록 우리 선단의 배들이 오랜 항해로 녹초가 된 선체에 실어온 것은 단순히 갖가지 향기가 나는 상품이 아니었다. 비록 그것들이 귀한 물건이긴 하지만 우리 선단이 수평선 너머로 찾으러 갔던 것은 바로 바다 건너의 역사와 이야기였다. 우리는 언제나 신비롭고 다다를 수 없는 이국의 향기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일 년 내내 도시는 갖가지 신비한 이야기가 뿜어내는 화려한 광채로 자신의 꿈에 옷을 입힐 것이다"(2권, 32).
지야라가 이끄는 배들은 이미 개척한 항로들을 반복해서 오가는 것을 거부합니다. 지야라는 거센 바람을 맞으며 미지의 바다로 나아가 새로운 이야기, 이국의 향기를 싣고 왔습니다. 그러나 캉다아에 흑사병이 돌자, "해상 무역로를 벗어남으로써 전통과 관례를 모독"한 죄로 지야라는 대선장의 자격을 잃고 고향에서 추방당합니다. 그러나 미지의 세계를 향한 그녀의 모험은 멈추지 않습니다. 그녀의 배는 갇혀 사는 사람들은 상상하지도 못하는 세상을 누비며, 세상과 세상을 이어주는 대사와 같았습니다.
그렇게 코르넬리우스와 지야라는 자신만의 여행을 하는 중에 서로 만나 사랑에 빠졌습니다. 하나의 이상을 향해 나아가는 남자와 열린 세상을 마음껏 헤엄쳐 다니는 여자! 그들이 만나 사랑을 하게 되자, 남자의 이상은 여자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됩니다. 지야라는 "사람들에게 미쳤다는 소리를 듣는 사람들만이 가진 맹목적인 확신 같은 것이" 코르넬리우스에게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2권, 76). 그리고 그가 "크나큰 고독이라는 대가를 치르면서도 기꺼이 자신이 가진 확신을 버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하여 지야라는 다시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르는 여정이었지만, 코르넬리우스가 자신의 이상을 향해 가도록 놓아줍니다. "자신의 남은 인생을 모두 걸고 추구해왔던 목표에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면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까?"(2권, 118)라는 불안한 의문을 가진 채 말입니다.
한 가지 재밌는 것은, 코르넬리우스와 지야라의 여행에 등장하는 '지도'입니다. 지도는 신비한 구름천과 맞바꿀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습니다.
"우리에게 말해선 안 되는 것을 가져다주는 사람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오직 지도뿐입니다."
"지도라고요? 무엇에 쓰려고요?
"그건 나도 모릅니다. 그들은 지도를 원합니다.
그들은 가능한 한 많은 지도를, 모든 종류의 지도를 원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가장 손에 넣길 바라는 것은 개인적인 지도입니다"(1권, 137).
오르배 섬의 궁중에는 '우주학자'라는 계급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가능한 많은 지도를 수집하는 일을 하며, 오직 지도를 모으고 분석하는 일에 모든 것을 바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전대미문의 묘사, 다시 말해 열정과 영감으로 충만한 여행 안내도인 셈입니다. 한마디로 말해 가장 기이하고도 가장 독창적인 것들로 이루어진 지도를 원한답니다"(2권, 102). 지도를 분석하는 학자들은 "그렇게 만들어진 지도에서 그들은 갖자기 이야기와 다양한 법칙을 이끌어내곤 합니다."
오르배 섬의 우주학자들이 지도를 모아 '여행 안내도를 만드는 사람들'이라면, 코르넬리우스와 지야라는 여행을 하며 자신들만의 지도를 직접 만들어가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여러 나라를 직접 보고 경험하며 잘못 알려진 지도를 수정하기도 하고, 새로운 그림을 지도에 그려넣기도 합니다. 비취 나라 사람들은 코르넬리우스가 여행을 하며 만들어온 지도가 가장 비싸게 팔릴 것이라고 장담합니다. "지도 한 장을 완성하기 위해 들인 시간과 인내심, 그리고 노력과 기술을 모두 따진다면 사실 돈으로 가치를 매기는 것이 그리 옳은 일은 아니지요"(1권, 137).
"세상을 만나는 데는 셀 수 없는 다양한 방식들"이 존재합니다. 하나의 목표를 향해 올곧게 나아가는 사람들이 있고, 결정된 목표 없이 열린 마음으로 미지의 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모두가 나름대로의 인생 지도를 그리는 중일 겁니다. 지도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재료나 크기가 아니라 지도를 그리는 목적, 즉 지도의 용도일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지도는 무역로를 따라가는 데도, 새로운 나라들을 발견하는 데도, 경우에 따라서는 전쟁을 치르는 데도 사용되니까요.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지도의 용도가 곧 그 지도의 형식을 암시한다는 것입니다"(2권, 102). 여기에 우리의 인생을 대입해볼 수 있습니다. 내가 그리는 인생 지도는 무엇을 목적으로 하고 있을까요? <오르배 섬의 비밀>은 지도를 읽으려면, "어린아이의 눈이 갖는 신선함과 오랜 기억을 간직하고 한발짝 물러서서 볼 줄 아는 노인의 지혜"(2권, 171)가 필요하다고 일러줍니다.
'푸른 산'을 향해 가는 코르넬리우스를 바라보며 "자신의 남은 인생을 모두 걸고 추구해왔던 목표에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면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까?"(2권, 118) 불안한 의심을 가졌던 자야라는 "그것은 끝이 아니라 어떤 시작이며 도약과 같은 것이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하나의 이상을 품었던 코르넬리우스와 열린 세상을 지향했던 지야라가 모험과 항해를 멈추고 정착하게 되는 지점은 그래서 모험의 끝이 아니라, 어떤 시작이며, 도약일 것입니다. 그들의 새로운 시작과 도약이 가지는 의미는 여러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그들이 정착한 섬이 두 사람의 고향도 아니고, 오르배 섬도 아니고, 빈 가오 섬이라는 것이 의미심장합니다. '빈 가오'는 거센 바람을 맞으면서도 미지의 세계를 향해 나아가고, 가슴에 품은 하나의 이상 때문에 모든 것을 포기할 줄 아는 사람만이 그 가치를 알아볼 수 있는 섬일지도 모릅니다. 주어진 삶에 안주하지 않았던 사람들만이 찾아낼 수 있는 소박하지만, 서로의 사랑으로 충만하고, 삶의 만족으로 가득한 섬. 그것이 역설적인 오르배 섬의 비밀인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