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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제주 - 제주 여행을 꿈꾸는 당신을 위한 감성 가이드 ㅣ 당신에게 시리즈
고선영 지음, 김형호 사진 / 꿈의지도 / 2013년 6월
평점 :
품절
두 번째 제주 여행을 꿈꾸는 당신에게
날마다 새로운 것들이 쏟아지는 세상. 새로운 것들이 더 많아질수록 오히려 더 새로운 것, 더 새로운 것을 찾습니다. '새로운 것'에 중독된 마음은 새로운 것은 곧 좋은 것이라는 공식을 만들어냅니다. 읽어야 할 책이 많으니 소설을 두 번 읽는 일이 없고, 아무리 감명 깊게 본 영화도 두 번 볼 시간이 없습니다. 낯설음에 대한 호기심, 새로운 이야기에 대한 탐욕이 익숙한 것(그것도 착각이지만)에 대한 경멸을 불러옵니다. 그러다 보니 작정하고 떠나는 여행이라면 한 번 찾은 곳을 두 번 찾는 일이 없습니다. 그곳을 이미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짧고 가봐야 할 곳은 많으니 아직 가보지 않은 곳을 가야 한다는 강박이 제게 있습니다. 그런데 딱 한 곳, 이미 '가' '보았'으나 꼭 다시 한 번 더 찾고 싶어지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제주입니다.
함께 제주를 여행했던 동생과 가끔 이야기합니다. 제주도에는 꼭 다시 한 번 가보고 싶다고 말입니다. 동생도 시간이 지날수록 제주가 더 그리워진다고 합니다. 둘 다 휴직계를 내고 제주도 일주를 하자, 올레길을 완주하자 하는 다짐과 약속도 자주 합니다. 만나면 만날수록 더 좋아하지는 사람처럼, 제주도가 우리에게 그렇습니다.
<당신에게, 제주>는 제주도와 제대로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들려주는 제주 이야기입니다. 제주도가 좋아 제주도에 눌러 앉은 사람들, "오후 3시면 사계 바다가 제일 예쁠 때고, 화순 곶자왈 숲에는 햇빛이 가장 깊숙이 들어올 시간"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들려주는 제주도의 매력입니다. 책은 스스로 "제주를 많이 좋아하고 편애하는 한 부부가 행복한 마음으로 섬의 여기저기를 쏘다니며 보고 듣고 느낀 것들에 대한 소소한 기록"이라고 고백합니다.
이 책이 대상으로 하는 독자는 "두 번째 제주 여행을 꿈꾸는 당신"입니다. 아무래도 첫만남은 부산하고, 들떠있기 때문에 깊이 있는 만남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저도 처음 제주를 찾을 때 준비를 많이 했다고 생각했는데 정신 없는 3박 4일이 흘렀고, 눈앞의 만찬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듯 열심히 제주를 돌아다녔는데도 돌아오니 오히려 아쉬움이 더 커졌습니다. 제주의 진짜 매력은 두 번째 만남부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당신에게, 제주>에는 제가 처음 찾았던 여행지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제주에 대해 알려진 매력보다, 제주의 숨은 매력, 제주의 진짜 매력에 집중했기 때문입니다. 제주에 눌러앉아 살며 제주를 사랑하는 부부가 들려주는 제주 이야기는 느긋하고, 나른하고, 눈부십니다. 급하게 찍고 서둘러 이동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첫 번째 여행이 종종 걸음으로 달리는 출근길이었다면, 이 책이 제안하는 두 번째 여행은 하루 일과를 잘 마치고 충만한 마음으로 느긋하게 돌아가는 퇴근길 같습니다.
<당신에게, 제주>는 제주 여행의 '급소'를 알려주는 책 같습니다. 소소한 이야기들 속에서 '그곳'에 가야 할 이유와 '그곳'을 즐기는 아기자기한 방법을 찾고 배울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붉은 노을이 보고 싶을 때, '바다를 향해 난 들'이라 '난드로'라는 옛이름을 가졌다는, 대평리로 놀러가고 싶습니다. 볕 좋은 봄날에 제주를 찾았다면 가파도 청보리밭을 찾아 걸어보고 싶습니다. 유채꽃은 3월에 제주를 찾아야 할 이유입니다. 젊은 예술가들이 많이 정착한 동네라는 표선면 가시리에 가서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제주의 풍경을 마주하고 싶습니다. 꼭 하룻밤을 머물러야 한다는 교래자연휴양림에도 가보고 싶습니다. (유일하게 이름을 아는 일본 건축가) 안도 타다오가 설계했다는 본태뮤지엄, 숨 막히게 아름다운 물빛을 하고 있어 짜증이 난다는 월정의 바다, 서귀포 새벽 어시장, 이중섭 거리, 여름에 제주를 찾아야 할 이유 용머리해안, 겨울에 제주를 찾아야 할 이유 1100도로 눈꽃 드라이브, "기차게 멋진 제주의 비경 베스트 7"에 꼽힌 수월봉, 엉또폭포, 갯깍주상절리대, 5.16도로 숲 터널, 따라비오름, 황우지해안, 안덕계곡까지 다시 제주를 찾는다면 어느 한 곳도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에게, 제주>에는 '볼 것'만큼 '먹을 것'에도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제주도에서 먹는 이국 음식, 꽁치 김밥, 카페 등 먹거리에 대한 이야기가 절반이나 됩니다. 또 <당신에게, 제주>는 여행자들을 위한 정보도 빼놓지 않고 있습니다. 집을 통째로 빌려주는 하우스 렌트, 작품 속으로 걸어들어간 듯한 포토호텔에 대한 정보도 이곳에서 얻었습니다.
그런데 그저 여행을 위한 정보가 목적이고, 서둘러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면 급해진 마음 때문에 이 책의 알콩달콩한 수다에 오히려 몸이 배배 꼬일 수도 있습니다. <당신에게, 제주>는 제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천천히 음미하며 읽어야 할 책입니다. 정성스럽게 음식을 준비하듯 정성스럽게 차려낸 이야기입니다. 이곳에 수록된 사진도 정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제주의 아름다움을 담은 작품입니다. 서둘러 정보만 빼내는 것은 이 책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욱 "두 번째 제주 여행을 꿈꾸는 당신"에게 이 책을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