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루스트라도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29
미겔 시후코 지음, 이광일 옮김 / 들녘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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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정치가 뭐예요?"

 

"그러니까, 그게 말이야, 이런 식으로 설명할 수 있겠지. 우선, 나는 집안의 우두머리야. 그러니까 나는 대통령이라고 할 수 있겠지. 엄마는 규칙을 정해. 그러니까 엄마는 행정부야. 우리는 너희를 돌봐주지. 그러니까 너는 국민이라고 할 수 있어. 인데이 아줌마는 우리를 위해서 일해. 그래서 우리는 아줌마한테 월급을 주지. 그러니까 아줌마는 노동계급이라고 할 수 있어. 남동생은 미래라고 해두자. 이제 잘 생각해 봐. 정치가 어떤 건지."

 

걸리는 잠자리에 들어 아빠한테 들은 얘기를 곰곰 생각한다. 한밤중에 걸리는 잠에서 깬다. 남동생이 우는 소리가 들린다. 그래서 살펴보니 기저귀에 똥을 한 바가지 싸놓았다. 걸리는 엄마, 아빠 방으로 간다. 그러나 엄마는 비몽사몽이다. 매일 밤 수면제를 먹기 때문에 깨워도 소용이 없다. 걸리는 아줌마 방으로 간다. 그러나 문이 잠겨 있다. 열쇠 구멍으로 들여다보니 아빠가 인데이 아줌마랑 침대에 누워 있다. 걸리는 다시 자기 방으로 돌아간다.

 

"아빠, 정치가 뭔지 이제 알 것 같아요. 그러니까 대통령은 실제로는 노동계급하고 이상한 짓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정부는 자고 또 자는 것 말고는 아무 일도 안 해요. 국민한테 관심을 쏟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리고 미래는, 그러니까, 미래는 똥덩어리를 뭉개고 있어요."

 

보이 바스토스는 흐뭇한 마음에 딸의 머리에 뽀뽀를 해준다. 마침내 걸리도 다 컸다(522-524).

<일루스트라도>는 한 필리핀 작가의 부음기사로 시작된다. 책을 다 읽고 그 부음기사를 다시 보니 "의미심장"하기 그지 없다. "크리스핀 살바도르"가 "느닷없이" 인생을 끝맺게 된 것에는 여러 미스테리가 존재한다. 그의 시신은 왜 뉴욕 허드슨 강을 떠다니고 있었을까? 그의 죽음은 자살인가, 타살인가? "필리핀 엘리트층이 여러 세대에 걸쳐 어떻게 끈끈한 인맥으로 연결되고, 불법 벌목을 일삼았으며, 도박과 납치, 부패 및 그와 얽히고설킨 범죄를 저질렀는지 낱낱이 까발리"겠다고 장담했던 그의 원고는 어디로 사라졌는가? 그가 정말 죽은 것은 맞는가?

 

제자 미겔 시후코(그는 이 책의 저자와 이름이 같다)는 스승의 죽음에 얽힌 의문을 풀어내기 위해 마닐라로 향한다. 미셀 사후코가 쓰는 전기를 통해 크리스핀의 인생이 복원되기 시작한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요 화자는 미겔 시후코지만, <일루스트라도>는 스승의 궤적을 쫓는 미겔 시점의 이야기, 크리스핀 시점의 이야기, 소설 속의 소설, 인터뷰 등이 퍼즐 조각처럼 교차한다. 각각의 퍼즐이 제자리를 찾아야 하나의 그림이 완성되는 것처럼, 이야기 조각들이 하나씩 더해갈수록 크리스핀의 개인사를 감싸고 있는 필리핀의 거대한 근현대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스페인 사람에 의해 발견되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는 필리핀은, 스페인의 식민지가 되었다가, 미국-스페인 전쟁으로 시 미국의 식민지가 되었다가, 다시 "백인의 아시아 지배를 종식해야 한다" 명분 아래 대동아공영권을 내세운 일본의 점령까지 무려 400년 간이나 외세의 통치 아래 있었다. 그리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계속되는 부정과 부패로 얽룩진 사회. 몇 년 전, 필리핀을 가볼 기회가 있었는데 골곡의 역사를 말해주듯 식민지의 흔적이 곳곳에 가득했던 기억이 난다. 가톨릭 문화를 보여주는 건축물들, 미군의 주거지였다가 필리핀 상류층의 주거지가 된 타운, 타칼로그어보다 영어를 더 많이 사용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한 때는 아시아의 진주로 불렸던 사람들이 현대에 이르기까지 후진성을 면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이들이 가지고 살아가는 정체성은 어떤 것일까 궁금했던 적이 있다.

 

<일루스트라도>는 그 필리핀의 후예가 "우리의 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는 무엇을 했는가?" 묻고 있는 듯하다. 독립을 꿈꾸지 않았는가? 변화의 가능성은? 개혁의 의지는? 어떻게 그 오랜 세월 그렇게 어치구니 없는 역사를 써내려올 수밖에 없었는지 되묻는 듯한 소설로 읽힌다.

 

<일루스트라도>는 한 개인의 가족사를 통해 필리핀의 근현대사를 복원하며, 아이를 갖는다는 것의 의미, 그 아이를 교육 시키는 문제에 "유난히" 집착하고 집중한다. "아이를 갖는다는 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낙관의 제스처"로 받아들인다(230). 그래서 "우리의 가장 큰 숙명은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다. <일루스트라도>를 보면, 필리핀의 많은 부모 세대가, 엘리트층일수록 자녀의 교육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아이를 타국으로 보내 "일류" 교육을 시키려고 달러를 쳐들인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그들이 얻으려고 했던 것은 무엇일까? 부정과 부패로 얻은 권력과 유산을 대물림하는 것?

 

그러면 그런 사람들 속에 이상을 꿈꾸고, 사회를 변화시켜 보겠다는 사람은 없었는가? 이런 물음에 대해 한 아버지는 이런 고백을 한다. "젊은 우리는 이상에 불탔다. 새벽이 밝아온다. 불쌍한 마리아 클라라는 내가 피곤해 하는 게 우울증 때문이라고 잘못 알고 있다." 이상에 불타는 젊은이었던 '아버지'를 나약하게 만든 것은 어쩌면 '아들'(자녀) 자신이기도 하다. "애들은 나의 자부심이다! 아침에 애들이 좋다고 달려들면 조국이 어쩌고 하는 거창한 생각들이 싹 가신다. (...) 우리가 떠드는 이념이며 변화의 가능성, 우리의 인내심 같은 것들은 우리가 내뿜는 담배연기처럼 뿌옇다. 그런 얘기들이 다시금 내 머리에 불을 댕기고 또 잠 못 이루는 밤이 다가온다. 지긋지긋한 과정이 반복되고 다시 아침이 온다"(190).

 

비극의 역사를 보면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한다. "우리가 과거로 돌아가서 잘못한 일들은 뒤집고, 잘한 일들은 더 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534). "하지만 우리는 그럴 수 없다. 시간은 역류할 수 없는 것이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의 이 말이 참 뼈아프다. 왜 그런 역사를 써왔느냐고, 왜 사회를 이렇게 만들었냐고 지난 세대에게, 기성세대들에게 따지고, 질타를 하지만, 우리에게도 그것을 바꿀 기회가 있었다는 것. "다만 이제 무대에서 내려왔을 뿐"(534)이라는 것. 우리처럼 우리의 아이들도 우리의 실수를 되풀이 할 것이라는 것. 필리핀의 식민지 역사, 부정과 부패로 얽룩진 근현대사는 그렇게 되풀이 되어 왔다.

 

<일루스트라도>는 지난 역사를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며, 이제는 "다른 사람의 그림자 속에 끼어서 살지 않겠다"고, "성공하든 실패하든 최소한 자신이 믿는 삶을 살겠다"고, "우리의 존엄을 지키자"고 노래하는 이야기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혁명이 필요하다. 그런데 혁명은 "단순히 부모를 죽이는 정도가 아니란 걸" 깨닫는다(258). 이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간다." "남아 있는 가족들에게 나 돌아간다. 내 자식한테로 돌아간다. 그 딸내미가 이제는 준비가 되었을 터이므로"(553). "그가 집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은 최소한 어떤 시도를 할 의지는 있다는 증명이다"(526).

 

 

<일루스토라도> 안에는 크리스핀의 <자신을 표절한 자>라는 작품이 등장한다. (내가 제대로 읽은 것이 맞다면) <자신을 표절한 자>라는 컨셉이 이 책을 뒤덮고 있다. "에필로그"에 보면, 미겔이 크리스핀을 표절하고, 크리스핀이 미겔을 표절하고, 필리핀의 역사를 보면 '아버지'의 역사를 아들이 다시 표절하고, 그 인생을 다시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환각이 일어난다. 거기에 이런 문장이 등장한다. "내게 일어나는 일들을 이해하기 위해 나는 그에게 일어난 일을 끊임없이 골똘히 생각했다"(549). 필리핀에 일어난 일을 끊임없이 골똘이 생각하다 보면, 우리에게 일어난 일이 보일지도 모른다는 한 가지 기대가 이 책을 읽어야 할 하나의 의미로 다가온다. 

 

"언젠가 노벨문학상 심사위원회를 고민하게 만들 작가"라는 미겔 시후코의 <일루스트라도>는 (애석하게도) 잘 읽히지 않는다. 너무 잘게 쪼개진 퍼즐 조각들, 눈치 빠르지 않으면 알아채기 쉽지 않은 중첩의 의미들,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전개 등, 작가는 저만치 성큼성큼 뛰어가는 데 독자는 좇아가기 버거운 소설이라고나 할까. (미겔 시후코를 보니 인도를 보여주었던 로힌턴 미스트리가 연상되는데, 로힌턴 미스트리의 작품이 훨씬 재미있게 잘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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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에이티브 블록 (핸드북) - 당신의 창의력에 불을 붙여 주는 500개의 아이디어
루 해리 지음, 고두현 옮김 / 토트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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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의 서평을 쓰기 위해 책상 앞에 30분 쯤 앉아 있는 중입니다. 어떤 말로 시작하면 좋을까, 고민 중인데 참신한 첫 문장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뭔가 시작할 말이 생각나면 이야기를 풀어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번쩍' 하고 아이디어가 떠올라 주기를 기다리는 동안 플래시 게임을 한 판 했고, 인터넷 뉴스를 검색했고, 일어나서 아이스커피를 한 잔 만들어왔습니다. 그러다 문득 30분이나 시간이 흘러간 것을 알았고, 그 순간 이 책에서 본 한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 중에서 일정 부분을 끝낼 때까지는 절대로 인터넷 검색을 하지 마라.

산만한 검색을 자료 찾기로 합리화하기 쉽다(35).

빨리 써야 한다고 초조해 하면서도, 첫 문장을 핑계로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다 문득 이 이야기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뻗다"

여기 "뻗다"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 단어를 보는 순간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스파크가 튀듯이 파바박 하고 튀어나오는 생각이나, 감정이나, 이미지가 있습니까? <크리에이티브 블록>은 우리의 감각과 생각에 "자극"을 주는 책입니다. "동생이 야구선수들의 사인을 모으고 있을 때", 자신은 "읽고 있던 책의 저자들에게 편지를 써서 사인을 부탁했다"는 저자의 톡톡 튀는 아이디어들이 창의력에 불꽃을 일으킵니다.

 

<크리에이티브 블록>과 <아이디어 블록>은 세트로 나온 책인데, 이 책은 "당신의 창의력에 불을 붙여 주는 500개의 아이디어"를 담았습니다. "불꽃이 튀케 하는 단어", "불꽃이 튀게 하는 말", "불꽃이 튀게 하는 장소", 상상력을 발휘해서 구체적인 사항들을 채워넣을 수 있도록 상황을 제시하는 "설명하라", 창조적인 아이디어로 먹고사는 "전문가의 조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생각나는 단어를 그대로 적어라.

멈추지 말고 계속 써라.

5분 동안.

단어들을 연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그때 연결하라(16).

절박할 때 나는 단어 사전을 읽습니다(38).  

- 전문가의 조언

뮤지컬 영화를 보라.  

특히 <메리 포핀스>에서 '설탕 한 스푼'이 나오는 장면을 주의해서 볼 것(51).

"결국에는 서로를 파멸시키고 말 두 사람의 첫 만남을 그려보라"(69). 

 

문제를 더 단순화하라 

 

해야 할 일을 요리법으로

바꾸어 써 보자.

필요한 재료는 무엇인가?

무엇이 주재료이고

넣어야 할 양념은 무엇인가?

요리의 순서를 정하고

그 순서대로 일을 요리해 보라(113).

이 책을 읽으며, 저에게 자극이 되었던 미션들입니다. 실제로 <메리 포핀스>라는 아주 오래된 뮤지컬 영화를 보며 '설탕 한 스푼'이 나오는 부분을 주의해서 보았고, "결국에는 서로를 파멸시키고 말 두 사람의 첫 만남"을 상상해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만남을 그린 드라마나 영화, 소설의 주인공들, 그들의 첫 만남을 떠올려보려 애를 쓰기도 했습니다. 이 과제를 수행하는 시간들이 저에게는 재밌는 놀이였습니다. 

  

 

30분간 틈을 내서 자질구레한 일들을

가능한 한 많이 처리하라.

몇 시간마다 삼십 분씩 시간을 내서 소소한 일들을 처리할 수 있도록

스케줄을 짜라.

<크리에이티브 블록>을 통해 실질적으로 가장 큰 도움을 받은 부분입니다. 늘 무엇인가 집중해야 할 일이 있을 때는, 유독 머릿속에 잡생각이 가득 들어차는 것을 느낍니다. 그때마다 시간을 다투는 일을 앞에 두면 잊고 있던 약속이 기억나 전화를 한다거나, 계획하고 있는 여행 정보를 얻기 위해 검색을 한다거나, 한가할 때는 깍지 않았던 손톱을 깍기도 합니다. 이런 증세가 어느 새 습관이 되어 버렸습니다. 빨리, 잘 해야 한다는 어떤 압박 때문에 스스로 도피하고 있다 생각하면서 해결하기가 어려웠는데, "30분간 틈을 내서 자질구레한 일들을 가능한 한 많이 처리하라"는 조언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창조의 장벽을 만들어내는 요인과 창조력을 가장 많이 자극하는 요인은 같습니다. 그 요인은 다름 아닌 좌절감입니다. 좌절감으로부터 가장 훌륭한 작품이 나옵니다(260).

'인간'이라는 동물이 가진 가장 큰 무기를 생각이라고 합니다. 인간이 저보다 덩치가 큰 동물이나 맹수를 제압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을 잡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랍니다. 요즘은 아이디어가 자산이고, 또 경쟁력이 되는 시대입니다. 꼭 경쟁이 아니더라고, 창의력을 훈련하는 일은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고 즐거움을 창조하는 일이라 생각됩니다. 불꽃 같은 아이디어를 위해 자극이 필요하다면 이 책을 권합니다. 옆에 두고 한 번씩 아무 페이지나 읽어도 뇌 운동이 될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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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빵 - 오늘은 무슨 빵을 구울까?
이시자와 기요미 지음, 박정애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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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제빵 전문가를 위한 레시피와 일반 홈베이커를 위한 레시피는 다를 수밖에 없다."

(표지 날개 중에서)

 

 

어릴 적, 엄마는 옥수수빵을 자주 만들어주셨습니다. 우린 사먹는 게 더 맛있다고 우겼지만, 엄만 우리가 진짜 맛을 모르는 거라 하셨습니다. 사먹으면 간단할텐데, 엄마는 별로 힘든 기색도 없이 빵을 만들어 모락모락 김이 나는 따끈한 빵을 우리 앞에 자랑스레 내놓으셨습니다. 그때는 맛보다도 이스트를 넣으면 두 배로 불어나는 반죽이 신기하고 좋았습니다. 어느 날은 케이크도 만들어주셨는데 '우리 엄마'가 '케이크!'도 만드실 줄 안다는 사실이 충격이었습니다! "엄마, 어떻게 이런 것도 다 만들줄 알아? 어렸을 때 먹어본 적도 없을텐데" 하며 감탄을 하면, "돈만 줘봐. 먹고 싶은 거 다 만들어줄께" 하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엄마는 빵을 만드는 기본 원리를 알고 계셨고, 그것을 잘 응용하셨던 것 같습니다.

 

<세상의 모든 빵>은 "엄마가 만들어주시는" 바로 그 빵 같은 빵입니다. 본격 홈베이킹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겠습니다. 집에서 빵을 만드는 사람을 배려하고, 고려한 레시피라는 뜻입니다. 저자는 "10년 가까이 거의 매일 빵을 굽는 생활"을 했다는 빵의 달인이지만, 홈베이커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깊이 공감하고 있습니다. "최적의 환경에서 일하는 전문가에겐 반죽도 발효도 어렵지 않지만, 협소한 주방에서 전문 기구 없이 빵을 굽는 홈베이커에겐 재료 계량부터 온도 맞추기까지 모든 과정에 손이 많이" 가는 것을 십분 고려하여 홈베이킹 노하우를 일러줍니다.

 

 




"여섯 가지 기본 반죽만 익히면 세상의 모든 빵이 뚝딱!"

 

<세상의 모든 빵>은 무척 똑똑한 책입니다. 공식을 알면 숫자가 바뀌어도 같은 유형의 문제를 풀 수 있는 수학처럼, 여섯 가지 기본 반죽의 공식을 토대로 재료를 응용하여 '세상의 모든 빵'을 만들어낼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갖게 해줍니다. 기본 빵 반죽, 기본 식빵 반죽, 기본 크루아상 반죽, 기본 바케트 반죽, 기본 천현효모빵 반죽, 퀵브레드 반죽을 마스터하면 다양한 재료의 응용이 얼마든지 가능해집니다. 이렇게 여섯 가지 기본 반죽의 개념을 잡고 나니, <세상의 모든 빵>이 가뿐하게 정리되는 기분입니다.

 

 

 

 

"일본에 가면 꼭 먹어봐야지 했던 멜론빵"

 

<세상의 모든 빵>은 저자가 일본 선생님이니 당연히 재팬 스타일 홈베이킹입니다. 일본에 가면 꼭 먹어봐야지 했던 빵이 있습니다. 일본을 상징한다는 '멜론빵'입니다. 단팥빵과 함께 일본인들은 멜론빵을 '추억의 빵'으로 꼽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리에게는 낯설지만 일본인들에게는 가장 대중적인 빵이라고 합니다.

 

멜론빵은 멜론이 들어간 빵이 아니라(지금은 멜론이 들어간 멜론빵도 있다고 합니다) 빵의 표면이 멜론처럼 격자무늬라고 해서 멜론빵이라고 부른답니다(76). 멜론빵은 기본 빵 반죽에 건포도와 쿠기 반죽을 응용하여 더한 것입니다. "겉은 바삭바삭하지만 건포도를 넣은 속은 달콤하고 폭신폭신해 간식으로 안성맞춤"이라고 하네요.

 

 

 

 

<세상의 모든 빵> 레시피는 제가 지금까지 본 홈베이킹 레시피중에 가장 친절하고 꼼꼼하고 자세합니다. <세상의 모든 빵>을 대표하여 멜론빵의 레시피를 보면 이렇습니다. 몇 개 분량의 빵을 만들 수 있는 재료인지 설명하고, 미 준비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일러준 뒤에, 만드는 과정을 전체적으로 큰 덩어리로 나누고, 세부 과정은 사진 설명과 함께 진행됩니다. 만드는 과정을 번호로 정리했는데, 그 번호에 해당하는 과정을 사진으로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만드는 과정에서 주의해야 할 점은 "point"라 쓴 말풍선으로 한 번 더 짚어줍니다.

 

 


 

어렸을 때 엄마가 만들어주신 빵을 먹으며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지 하는 꿈을 꾼 적이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세상을 좀 알게 되어서 그런지, 삶의 의미를 자꾸 되새기게 되어서 그런지 몰라도, 훌륭함의 가치가 급속하게 바뀌어갑니다. 소박한 일상에 자꾸 마음이 갑니다. 전에는 별로 대단찮게 보였던 일이 지금은 가슴 찡한 감동을 줍니다. 엄마가 직접 빵을 만들어주셨던 일이 얼마나 큰 사랑이었는지, 그 따끈한 빵을 나눠먹는 일이 얼마나 큰 즐거움이었는지 지금에야 제대로 보입니다.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는 야무진 꿈을 잊고 산지 오래지만, 그 꿈을 다시 불러낼까 합니다. 이제는 진짜 훌륭한 일이 무엇인지 알 것 같으니까 말입니다. (홈베이킹 레시피를 보면 너무 오버하는 것 같지만) 맛있는 빵을 만들어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누어 먹는 그런 삶 속에서 진짜 행복을 찾고 싶습니다. 그래서인지 이런 예쁜 요리책을 보면 마음이 참 흐믓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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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곧 법이라는 그럴듯한 착각
스티븐 러벳 지음, 조은경 옮김 / 나무의철학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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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이 곧 정의라는 그럴듯한 착각

 

 

멋모르던 시절, '하버드대학의 공부벌레들'이라는 외화는 내게 '법'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었습니다. 치열하게 법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이상에 감동받은 나에게 "법은 공정한 것"이라는 등식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당연한 '믿음'이었습니다. 지금의 나는 <정의가 곧 법이라는 그럴듯한 착각>이라는 제목을 보며 씁쓸하지만 이렇게 되내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의가 곧 법이라는 그럴듯한 착각을 아직도 하는 사람이 있나?"

 

"내 글에서 말하는 일관된 주제는 사법체계의 청렴성, 즉 '정의의 실현과 법의 역할이 과연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6). <정의가 곧 법이라는 그럴듯한 착각>은 "미국 법학계의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린다"는 스티븐 러벳 교수의 책입니다. 저자는 병리학자가 질병을 연구하고, 도시계획자가 교통체증을 측정하고, 기상학자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측정하는 심정으로, 사법체계의 "잘못"된 행위와 관행을 분석하여 '보다 나은 대안'을 찾고자 한다고 밝힙니다. 그러니까 '법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스스로 법과 정의의 딜레마를 폭노하고, 그럼으로써 그 딜레마를 극복할 방안을 찾아보고자 함입니다.

 

저자 스티븐 러벳 교수는 '하버드대학의 공부벌레들'에 등장하는 킹스필드 교수님을 닮았습니다. 킹스필드 교수님은 집요한 질문 세례로 법학도들을 떨게 만들며 공부하지 않고는 견뎌내지 못하게 만드는 무시무시한 교수님입니다. 유능한 변호사가 허를 찌르는 질문으로 사건의 핵심을 파고들고 진실을 드러내듯이, 재판 사례와 사건을 예시로 우리가 간과할 수 있는 문제의 핵심을 파고듭니다.

 

월마트의 사진현상소에서 근무하던 직원이 고객의 사진을 현상하다 아동학대를 발견하고 신고하여 한 아기를 구했습니다. 그러나 그 직원은 월마트의 업무 규정을 어긴 잘못으로 해고되었습니다. 고객의 개인정보를 지키려는 월마트 규정과 학대 당하는 아이를 구하려고 빠른 판단을 내린 직원. 우리는 쉽게 직원의 영웅적인 행동을 칭찬하며 부당해고는 당연히 취소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미국 법학계의 살아 있는 전설"은 "이 상황에서 윤리적으로 올바른 단 하나의 해결책을 내놓기란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저자는 어째서 그런지 미묘한 법의 세계로 독자를 초대합니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이 사건은 월마트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총 5부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월마트의 재판이나 변호사를 믿지 않은 클린턴의 실수, 동성애 혐의로 감옥에 간 오스카 와일드 재판과 같이 흥미진진한 사례가 등장하는 부분은 상당히 재미있게 읽힙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좀더 어려운 사법'체계' 문제로 들어가면서 다소 지루해지는 부분도 있지만, 배울 것, 생각할 것을 많이 던져주는 책입니다.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입니다. (맞지요?) 법이 정의롭고, 공정하려는 노력을 스스로 포기하면 이 사회의 약자는 기댈 곳이 없습니다. '합법적'인 폭력과 착취가 날뛰겠지요. 법조인 스스로 자존심을 세워주지 않으면 사법체계는 정화되기 어렵지 않을까란 생각이 듭니다. 자신에 맞서려 한다면 언제든 '법'의 힘을 휘두르려 들테니 말입니다. 법의 딜레마, 재판의 허점, 사법체계의 불완전함을 알수록 더 깊은 절망을 느끼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정의와 공평한 집행을 위해 법이 스스로 반성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법보다 불합리하고 무서운 존재는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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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 월드 - 가장 도발적이고 창의적인 예술가 피카소의 삶과 예술 이야기
존 핀레이 지음, 정무정 옮김 / 미술문화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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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는 나보다 강하다. 나는 회회가 시키는 대로 한다"(147).

 

피카소가 남긴 유명한 말이다. 다른 번역은 "그림은 나보다 강하다"이다. 그의 그림은 강했다. 어릴 때, 제일 먼저 외우게 된 외국 화가의 이름이 '피카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벽이나 노트에 낙서 같은 그림을 그려 놓으면 우리 부모님은 "피카소네, 피카소!"라고 칭찬을 하셨다. 무엇을 그렸는지 잘 모르겠는 그림을 보면 우리는 "피카소"라고 했다. 그만큼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화가도 많지 않지만, '입체파'라는 이름을 얻게 해준 그의 작품들만큼 이해하기 어려운 그림도 없는 듯하다.

 

(나처럼) 피카소를 그저 '화가'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을 텐데, 그는 뛰어난 데생화가이면서 유화가, 판화가, 조각가이자 무대 디자이너이기도 하다. "20세기 최고의 거장"이라 불리는 피카소는 많은 작품을 남겼다.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왕성하게 활동한 만큼, 그 자신이 미술사에 하나의 이정표(갈림길)가 된 만큼 그와 그의 작품을 한마디로 규정 짓기도 어렵다. "때로는 환영받고 때로는 비난 받은 피카소는 천재, 보헤미안, 순응주의자, 고전주의자, 원시주의자, 샤먼, 초현실주의자, 이단자, 투우사, 시인, 공산주의자, 모방자 그리고 심지어 자기 미술의 혼성모방자로 알려졌다"(7).

 

<피카소 월드>는 "그의 삶과 작품을 이해하는 또 다른 방식"으로 "연대순으로 따라가며 그의 미술이 형성되는 데 크게 영향을 끼친 미술가, 문학작품의 주인공, 친구와 협력자 등을 탐구하는" 가운데 탄생한 책이다.

 

 

 

 

 

  

피카소가 거장인 거장인가 보다. 이 화가는 믿거나 말거나 식의 탄생설화(?)를 가지고 있다. "실제 이야기인지 아니면 완전히 상상력의 산물인지 알 수 없으나 피카소가 불과 연기에서 탄생하였다는 주장이 전해진다"(8). 사산된 것으로 여겨진 신생아의 얼굴에 그의 "삼촌"이 피우고 있던 담배의 연기를 뿜어 소생했다는 것이다. 다른 곳에서는 울지 않는 아기 때문에 불안해진 의사가 "시가"를 피우며 아기의 얼굴에 담배 연기를 뿜었더니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피카소 월드>의 저자는 피카소의 전기학자들이 "그의 출생을 낭만적으로 바라보고 다소 멋지게 각색하여 신화화하는 전통을 받아들였다"고 해석한다.

 

<피카소 월드> "미화된" 피카소에 대해 또다른 진실을 폭로한다. 열네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본적격인 화가의 길에 들어섰다는 피카소는 미술 교사였던 아버지가 물감과 붓을 건네준 즉시 완성도 높은 그림을 그린 "재능 많은 신동"으로 알려져 있다. (피카소는 그림을 "결코 어린이처럼 그려본 적이 없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피카소 월드>는 위의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의 초기 드로잉은 재능 많은 신동이기는커녕 숙달된 솜씨와 완성도를 갖추기까지 열심히 노력해야 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평가한다. "이 스케치는 아홉 살 소년의 실력 그 이상을 보여주지는 않는다"(11).

 

 

 

 

  

 

위의 사진은 <카사헤마스의 죽음>이라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는 빈센트 반 고흐의 영향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두텁게 칠한 표면, 점묘로 채색한 붓질, 강렬한 색채와 어두운 윤곽선의 구사" 뿐 아니라, 피카소는 "고흐의 슬픈 생애와 치명적이고 자학적인 총상으로 인한 끔찍한 종말"까지 차용했다. 피카소의 청색시대는 절친한 친구의 죽음이라는 충격에서 비롯되었다. "피카소는 분명 카사헤마스의 죽음으로, 그리고 자신의 경력을 위해 친구를 버리고 파리로 돌아간 일에 대한 후회로 괴로워했고, 친구를 자살로 몰고간 바로 그 여인과 관계를 가진 것에 대해 죄책감을 가졌다. (...) 카사헤마스의 죽음에 대해 숙고하면서 피카소의 팔레트는 점차 변화하였다"(15). 피카소에게 청색은 절망의 색이었다.

 

 

 

 

피카소의 삶에는 여인과 친구들이 많았는데, 피카소를 절망의 청색에서 구원해준 것도 한 여인과 친구들이었다. "그의 색채가 보다 따뜻해지고 다양해지며, 상징주의적 멜랑콜리가 희미해지기 시작하면서 곡예사, 유랑극단, 기타 서커스 공연자, 축제, 극장과 같은 이미자가 1905년경부터 작품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것은 부분적으로 그의 삶 속에 등장한 새로운 여인, 즉 페르낭드 올리비에와 많은 시인과 작가들뿐만 아니라 기욤 아폴리네르와 같은 영향력 있는 프랑스 친구들로 구성된 확장된 가족을 포함하는 개인적 환경의 변화 때문이기도 했다"(28). 다시 행복해지기 시작한 피카소의 그림이 청색을 버리고 강렬하고 화사한 장미빛 그림으로 나타나는 것이 흥미롭다.

 

 

 

 

 

 

 

  

피카소의 대표작이라고 한다면 "20세기 미술사에서 극적인 변화를 보여준 작품'이라 평가받는 <아비뇽의 아가씨들>을 꼽을 수 있다. 피카소는 "고전주의, 자연주의 그리고 입체주의에 대한 독특한 해석을 뒤썩어가며 인체를 그렸다." 재밌는 것은 이 파격적이고 선구자적인 거장이 사실은 대단한 '모방가'였다는 것이다. 르누아르, 뭉크, 고갱, 고흐 같은 거장들의 그림을 모방하여 나름의 파격적인 방식으로 해석하며 비상하고 획기적인 작품들을 많이 만들어냈다.

 

 

 

 

  

 

사진의 여인은 피카소의 임종을 지켰다는 그의 아내 재클린이다. 뒷쪽에 스카프를 한 사람이 피카소의 딸 마야다(147). "평화주의의 이상을 채택하고 파시즘, 전쟁, 가난에 반대"한 이 화가는 그림으로 자신의 신념을 표현하고, 그림으로 세상과 싸웠지만, 결국 다시 작품으로 돌아와 노년까지 엄청난 창조의 열정을 보여주었다. 사랑에도, 일에도, 신념에도 참으로 불꽃 같은 열정을 가진 사람이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그는 도안가, 판화가, 무대 디자이너, 도예가, 조각가로서 매우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176).

 

"비교적 최근까지 피카소의 후기 작품은 그의 이전의 작품에 비해 다소 열등한 것이라는 생각이 일반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피카소 월드>는 이렇게 재평가를 내린다. "최근의 연구는 그의 창의력과 재능, 상상력이 말년까지 위축되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다."

 

 

 

 

 

  

<황소의 머리>라는 이 작품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피카소의 작품이다. 이 조각이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다소 일관성"이 없다고 하는데, 널리 알려진 바로는 버려진 자건거의 안장과 손잡이를 가지고 만든 작품이라고 한다. 버려진 자건거로 만들어진 이 작품의 가격이 어마어마하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거장의 힘이 아닐까. 거장의 손을 거치면 버려진 것들도 예술이 되고, 그 가치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오른다.

 

 

<피카소 월드>는 피카소의 삶과 작품을 '소설처럼' 읽을 수 있는 재미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피카소의 전기를 기대했다면 다른 책을 보는 것이 좋겠다. <피카소 월드>는 전문적이고 학문적이다. <피카소 월드>는 "흔히" 알려진 이야기와는 달리 '사실과 진실'에 기반하여 피카소의 삶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하고, 그의 작품에 영향을 끼친 요소들을 탐구한다. (그러니까 어, 알고 있는 것이랑 좀 다른데, 싶은 면들이 있다.) <피카소 월드>를 보고 나니, 대가의 것을 모방하기를 주저하지 않으면서도, 기존의 규칙들을 거부하고 파격을 시도한 이 남자는, 자신의 내면(신념까지)을 "온 몸"으로 표현하며 살았던 불꽃 같은 인물이라는 인상이 남는다. 글쎄, 피카소를 공부하는 학도나 특별히 피카소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 책에 관심을 두고 이 책을 살 사람이 많지 않을 것 같지만, 미술관에 가는 마음으로 거장의 작품집을 하나 책꽂이에 꽂아두어도 특별한 즐거움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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