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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 월드 - 가장 도발적이고 창의적인 예술가 피카소의 삶과 예술 이야기
존 핀레이 지음, 정무정 옮김 / 미술문화 / 2013년 5월
평점 :
절판

"회화는 나보다 강하다. 나는 회회가 시키는 대로 한다"(147).
피카소가 남긴 유명한 말이다. 다른 번역은 "그림은 나보다 강하다"이다. 그의 그림은 강했다. 어릴 때, 제일 먼저 외우게 된 외국 화가의 이름이 '피카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벽이나 노트에 낙서 같은 그림을 그려 놓으면 우리 부모님은 "피카소네, 피카소!"라고 칭찬을 하셨다. 무엇을 그렸는지 잘 모르겠는 그림을 보면 우리는 "피카소"라고 했다. 그만큼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화가도 많지 않지만, '입체파'라는 이름을 얻게 해준 그의 작품들만큼 이해하기 어려운 그림도 없는 듯하다.
(나처럼) 피카소를 그저 '화가'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을 텐데, 그는 뛰어난 데생화가이면서 유화가, 판화가, 조각가이자 무대 디자이너이기도 하다. "20세기 최고의 거장"이라 불리는 피카소는 많은 작품을 남겼다.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왕성하게 활동한 만큼, 그 자신이 미술사에 하나의 이정표(갈림길)가 된 만큼 그와 그의 작품을 한마디로 규정 짓기도 어렵다. "때로는 환영받고 때로는 비난 받은 피카소는 천재, 보헤미안, 순응주의자, 고전주의자, 원시주의자, 샤먼, 초현실주의자, 이단자, 투우사, 시인, 공산주의자, 모방자 그리고 심지어 자기 미술의 혼성모방자로 알려졌다"(7).
<피카소 월드>는 "그의 삶과 작품을 이해하는 또 다른 방식"으로 "연대순으로 따라가며 그의 미술이 형성되는 데 크게 영향을 끼친 미술가, 문학작품의 주인공, 친구와 협력자 등을 탐구하는" 가운데 탄생한 책이다.

피카소가 거장인 거장인가 보다. 이 화가는 믿거나 말거나 식의 탄생설화(?)를 가지고 있다. "실제 이야기인지 아니면 완전히 상상력의 산물인지 알 수 없으나 피카소가 불과 연기에서 탄생하였다는 주장이 전해진다"(8). 사산된 것으로 여겨진 신생아의 얼굴에 그의 "삼촌"이 피우고 있던 담배의 연기를 뿜어 소생했다는 것이다. 다른 곳에서는 울지 않는 아기 때문에 불안해진 의사가 "시가"를 피우며 아기의 얼굴에 담배 연기를 뿜었더니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피카소 월드>의 저자는 피카소의 전기학자들이 "그의 출생을 낭만적으로 바라보고 다소 멋지게 각색하여 신화화하는 전통을 받아들였다"고 해석한다.
<피카소 월드> "미화된" 피카소에 대해 또다른 진실을 폭로한다. 열네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본적격인 화가의 길에 들어섰다는 피카소는 미술 교사였던 아버지가 물감과 붓을 건네준 즉시 완성도 높은 그림을 그린 "재능 많은 신동"으로 알려져 있다. (피카소는 그림을 "결코 어린이처럼 그려본 적이 없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피카소 월드>는 위의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의 초기 드로잉은 재능 많은 신동이기는커녕 숙달된 솜씨와 완성도를 갖추기까지 열심히 노력해야 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평가한다. "이 스케치는 아홉 살 소년의 실력 그 이상을 보여주지는 않는다"(11).

위의 사진은 <카사헤마스의 죽음>이라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는 빈센트 반 고흐의 영향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두텁게 칠한 표면, 점묘로 채색한 붓질, 강렬한 색채와 어두운 윤곽선의 구사" 뿐 아니라, 피카소는 "고흐의 슬픈 생애와 치명적이고 자학적인 총상으로 인한 끔찍한 종말"까지 차용했다. 피카소의 청색시대는 절친한 친구의 죽음이라는 충격에서 비롯되었다. "피카소는 분명 카사헤마스의 죽음으로, 그리고 자신의 경력을 위해 친구를 버리고 파리로 돌아간 일에 대한 후회로 괴로워했고, 친구를 자살로 몰고간 바로 그 여인과 관계를 가진 것에 대해 죄책감을 가졌다. (...) 카사헤마스의 죽음에 대해 숙고하면서 피카소의 팔레트는 점차 변화하였다"(15). 피카소에게 청색은 절망의 색이었다.

피카소의 삶에는 여인과 친구들이 많았는데, 피카소를 절망의 청색에서 구원해준 것도 한 여인과 친구들이었다. "그의 색채가 보다 따뜻해지고 다양해지며, 상징주의적 멜랑콜리가 희미해지기 시작하면서 곡예사, 유랑극단, 기타 서커스 공연자, 축제, 극장과 같은 이미자가 1905년경부터 작품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것은 부분적으로 그의 삶 속에 등장한 새로운 여인, 즉 페르낭드 올리비에와 많은 시인과 작가들뿐만 아니라 기욤 아폴리네르와 같은 영향력 있는 프랑스 친구들로 구성된 확장된 가족을 포함하는 개인적 환경의 변화 때문이기도 했다"(28). 다시 행복해지기 시작한 피카소의 그림이 청색을 버리고 강렬하고 화사한 장미빛 그림으로 나타나는 것이 흥미롭다.

피카소의 대표작이라고 한다면 "20세기 미술사에서 극적인 변화를 보여준 작품'이라 평가받는 <아비뇽의 아가씨들>을 꼽을 수 있다. 피카소는 "고전주의, 자연주의 그리고 입체주의에 대한 독특한 해석을 뒤썩어가며 인체를 그렸다." 재밌는 것은 이 파격적이고 선구자적인 거장이 사실은 대단한 '모방가'였다는 것이다. 르누아르, 뭉크, 고갱, 고흐 같은 거장들의 그림을 모방하여 나름의 파격적인 방식으로 해석하며 비상하고 획기적인 작품들을 많이 만들어냈다.

사진의 여인은 피카소의 임종을 지켰다는 그의 아내 재클린이다. 뒷쪽에 스카프를 한 사람이 피카소의 딸 마야다(147). "평화주의의 이상을 채택하고 파시즘, 전쟁, 가난에 반대"한 이 화가는 그림으로 자신의 신념을 표현하고, 그림으로 세상과 싸웠지만, 결국 다시 작품으로 돌아와 노년까지 엄청난 창조의 열정을 보여주었다. 사랑에도, 일에도, 신념에도 참으로 불꽃 같은 열정을 가진 사람이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그는 도안가, 판화가, 무대 디자이너, 도예가, 조각가로서 매우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176).
"비교적 최근까지 피카소의 후기 작품은 그의 이전의 작품에 비해 다소 열등한 것이라는 생각이 일반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피카소 월드>는 이렇게 재평가를 내린다. "최근의 연구는 그의 창의력과 재능, 상상력이 말년까지 위축되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다."

<황소의 머리>라는 이 작품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피카소의 작품이다. 이 조각이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다소 일관성"이 없다고 하는데, 널리 알려진 바로는 버려진 자건거의 안장과 손잡이를 가지고 만든 작품이라고 한다. 버려진 자건거로 만들어진 이 작품의 가격이 어마어마하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거장의 힘이 아닐까. 거장의 손을 거치면 버려진 것들도 예술이 되고, 그 가치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오른다.
<피카소 월드>는 피카소의 삶과 작품을 '소설처럼' 읽을 수 있는 재미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피카소의 전기를 기대했다면 다른 책을 보는 것이 좋겠다. <피카소 월드>는 전문적이고 학문적이다. <피카소 월드>는 "흔히" 알려진 이야기와는 달리 '사실과 진실'에 기반하여 피카소의 삶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하고, 그의 작품에 영향을 끼친 요소들을 탐구한다. (그러니까 어, 알고 있는 것이랑 좀 다른데, 싶은 면들이 있다.) <피카소 월드>를 보고 나니, 대가의 것을 모방하기를 주저하지 않으면서도, 기존의 규칙들을 거부하고 파격을 시도한 이 남자는, 자신의 내면(신념까지)을 "온 몸"으로 표현하며 살았던 불꽃 같은 인물이라는 인상이 남는다. 글쎄, 피카소를 공부하는 학도나 특별히 피카소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 책에 관심을 두고 이 책을 살 사람이 많지 않을 것 같지만, 미술관에 가는 마음으로 거장의 작품집을 하나 책꽂이에 꽂아두어도 특별한 즐거움이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