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미국을 만든 책 25 - 어떻게 하얀 고래, 콩코드 호숫가, 피곤한 블루스는 미국의 정신을 형성했는가
토마스 C. 포스터 지음, 이종인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1월
평점 :
절판
"미국 사회는 역사와 관련하여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천 년 전, 2천 년 전, 3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가 결핍되어 있다.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역사라는 것도 우리가 바라는 소망의 역사와 일치하지 않는다. 이런 사회에서 우리는 역사를 우리 앞에 들어 올리며 검토해 보기를 바라는 작가, 우리가 이해하고 받아들여 소유해야 할 역사를 제시하는 작가들을 절실하게 필요로 한다"(453).

태산을 하나 넘은 기분입니다. 계곡은 깊었고 숲은 울창했고 울림은 컸고 그곳에서 마주하는 모든 것이 아름다웠습니다. <미국을 만든 책 25>, 제목부터 참 도발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역사가 짧은 나라라고 하지만 이런 리스트를 만들고 또 평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궁금했습니다. 앞으로 토마스 C. 포스터라는 이름을 기억해두려 합니다.
저자의 이야기는 그를 도발시킨 한 질문에서 시작됩니다. "세상의 네 구석에서 누가 미국 책을 읽는가?"(7) 이 문장은 영국의 목사이자 작가인 시드니 스미스의 말입니다. "미국이 독립한 후 30여 년 동안 인간의 이해에 도움이 될 만한 것 혹은 영국 문학을 증진시킬 만한 것을 내놓지 못했다"는 경말의 말입니다. 이에 저자는 이렇게 대응합니다. "당시 우리는 그런 것들 말고도 화급한 문제가 많았다. 우선 굶어죽지 않아야 했고, 삼림을 개간하고, 원주민들을 제압하고, 당대의 철학 사상과 착잡한 인간관을 바탕으로 공화국을 수립해야 했고, 황무지에서 도시와 마을을 건설해야 했으며, 한편으로는 자유의 개념을 옹호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동료를 노예로 만드느라 너무 바빴다"(8-9). 미국의 숨가쁜 역사가 눈앞에 펼쳐지는 듯합니다. 이 독특한 나라, 그 나라를 형성하는 독특한 사람들, 그들이 새로운 눈으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저자는 영국의 도발에 다시 이렇게 맞대응합니다. "스미스가 미국의 한심한 문화를 지적하기 위해 열거한 저 훌륭한 작가와 사상가들을 모두 데려온다고 해도, 그들은 독립선언서와 미국헌법만큼 이 세상을 바꾸어 놓지 못했다"고 말입니다. <미국을 만든 책 25>는 이 "두 문서를 일상의 궤도에 올려놓는 과정에 도움을 준 책"들을 다시 살피는 과정입니다. "그 과정은 미국 혹은 미국 정신의 형성이라고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나는 문장이 무엇인가를 변화시키고, 누군가를 형성하며 또 문장 이상의 의미를 성취한다고 확신한다"(10).


<미국을 만든 책 25>는 미국의, 미국인에 의한, 미국인을 위한 책입니다. 선별된 25권의 책은 "미국(인)의 국민적 특성을 발전시키는 데 도움을 주고, 또 미국인이 누구인지, 무엇을 하며 사는 사람인지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책이라고 평가되는 책들입니다. 평가는 철저히 저자 개인의 주관적 견해입니다. 저자는 자신의 이러한 기준을 "미국의 신화"라고 표현합니다. "지난 250년의 세월 동안에 구축되어온 이야기들의 묶음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위대한 책" 리스트는 철저히 "미국이라는 나라의 국가적 스토리에 집중"됩니다. "우리 자신, 우리의 역사, 우리의 능력, 우리의 가치, 우리의 관심사, 우리의 가장 소중한 원칙들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담겨 있다"(11).
여기 수록된 25권의 책은, 미국적인 재료를 가지고, 미국적 문제를 다루며, 미국적 예술을 구축한 대표주자들입니다. <미국을 만든 책 25>는 미국 문학사 여행입니다. 만약 이런 강의를 직접 들을 수 있다면 어떠한 희생을 치루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혼자 할만큼 매력적인 여행이었습니다. 문학이라는 것이 어떻게 시대정신을 반영하며,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그것에 매몰되지 않고 새로운 통찰을 제시하는지 한 발 한 발 발견해나가는 작업은 그것 자체로 다시 새로운 문학이 되었습니다. 미국 문학에 대한 저자의 깊은 이해와 통찰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미국을 만든 책 25>는 그 25권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미 읽은 책"에 대해서도 똑같은 호기심을, 아니 더 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신기하게도 아직 읽지 않은 책보다 이미 읽은 책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졌습니다. <주홍글씨>, <작은 아씨들>, <헤클베리 핀의 모험>, <위대한 개츠비>, <분노의 포도>, <앵무새 죽이기>는 이미 읽은 책들이지만, 다시 '제대로' 읽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만듭니다. 읽으면서도 내가 놓쳤던 것,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던 숨은 의미가 이 책을 달리 보이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첫 충격은 첫 권 <프랭클린 자서전>에서 시작됩니다. 저자는 자서전을 읽을 때 너무 많은 리얼리티를 기대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프랭클린 자서전>에서 만나는 '벤저민 프랭클린'은 어떤 목적을 가진 하나의 캐릭터라는 것입니다. "그가 진정으로 경배한 것은 개인의 발전을 극대화시켜주는 사회였다. 그는 인간들이(어느 정도까지 여성도 포함) 그들의 능력에 따라 성공하거나 실패할 수 있는 사회, 상속이나 특혜의 제약이 없는 사회, 이성을 가진 인간들이 군주제나 귀족제의 간섭 없이 그들 자신을 다스릴 수 있는 사회, 창조성과 지식의 진보가 교회의 권위나 검증되지 않은 신념의 제약 없이 번성할 수 있는 사회를 존중"(36)했고, "이런 욕망이 <프랭클린 자서전>의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이고 또 그의 실제적인 목적이었다"(37)는 것입니다.
저자는 별로 마음에 들어하지 않지만, <주홍글씨>에 대한 그의 평가는 소설만큼이나 매혹적입니다. "호손을 다른 미국 작가들과 구분시키는 것은 그의 시선이 머무는 방향이다. 미국문학의 전통에서 대부분의 작가들은 앞을 내다보는 방향으로 진행해왔는데, 그 대표적인 모범이 휘트먼이다. 우리는 어디론가 가는 민족이고 그 장소는 우리 뒤에 있지 않다. 우리는 스스로 자기 자신을 발명했고, 유럽의 과거와 단절되어 있으며, 밀고 나아가고, 노력하고, 경쟁하고, 소송을 벌이고, 때때로 부담스러울 정도로 고집을 부린다. 하지만 언제나 앞을 향해 움직인다"(64). "그러나 호손은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본다. 그의 관심은 우리가 어디로 가는가에 있지 않고, 우리가 어떻게 하여 지금 이 저점에 왔는가에 있다. (...) 호손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미래에 관심이 있으나 거기에 도달하는 다른 접근로를 취하고 있다. 그는 습관적으로 식민지 시대, 특히 청교도주의의 먹구름이 기승을 부리던 시절을 뒤돌아본다"(65).
이 책은 특별히 미국에 관심이 없는 독자라도 '문학' 그 자체에 대한 관심으로 읽어도 좋을 책입니다. 따로 줄거리(내용)를 요약해주고 있기는 하지만, 이미 읽은 책들에 대한 이야기가 더 술술, 더 재미있게 읽힙니다. 그러나 아직 내가 모르고 있는 위대한 책은 무엇인가, 왜 그 책이 그토록 위대한가에 대한 새로운 시각도 얻을 수 있습니다.
여행을 계획할 때마다 고민하는 것이 있습니다. 가이드 있는 여행을 떠날 것인가, 자유 여행을 떠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많은 경우 자유로운 여행을 선호합니다. 가이드 여행은 어쩐지 효도관광 같은 느낌이 들고, 떼를 지어 몰려다니는 모습이 촌스러워 보이기도 하고, 여행 초보인 것을 티내는 것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는 '가이드'가 있어야 여행이 더 풍성하고 안전하고 더 많은 것을 얻고 돌아오기도 합니다. <미국을 만든 책 25.> 가이드가 있는 미국 문학사 여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탁월한 가이드는 자유여행으로는 절대 찾을 수 없고, 볼 수 없는, 그리고 절대 놓쳐서는 안 될 숨겨진 명소, 보물이 있는 곳으로 독자를 데리고 갑니다. 이 충만한 느낌을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