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단편소설 40 - 중고생이 꼭 읽어야 할, 개정증보판 수능.논술.내신을 위한 필독서
김동인 외 지음, 박찬영 외 엮음 / 리베르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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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한국단편소설을 접했던 첫 기억은 부모님 곁에서 열심히 시청한 'TV 문학관'이 아닐까 합니다. 그중에서도 '백치 아다다'라는 작품이 기억에 남는데,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그냥 어른들이 울면 나도 따라 울며 심각한 분위기에 젖어들었던 기억이 희미하게 남아 있습니다.

 

본격적으로 한국단편소설의 맛에 빠져들었던 시기는 고모의 상자 때문이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함께 살던 고모가 독립을 한 후, 다락방 한 쪽 구석에 커다란 상자가 하나 놓였습니다. 고모가 필사한 시들이 적힌 수첩도 있었고, 사진첩도 있었지만, 대부분 책들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문고판을 하나 은밀히 꺼내 읽었는데, 짧은 이야기들이었지만 그 느낌이 아주 강렬했습니다. 아이들은 마시지 말아야 할 쓴 커피를 몰래 마신 것처럼, 어른들의 비밀을 알아버린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나도향이라는 이름을 그때 처음 외우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중학교에 올라가서는 시대별로 작가와 작품 이름을 외우기에 바빴습니다. "다음 중 활동 시기가 다른 작가는?" "다음 중 작가와 작품의 연결이 잘못된 것은?" "괄호 안에 그 작품을 쓴 작가의 이름을 써넣으시오." 뭐 이런 문제들을 풀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작품이 어떤 내용인지도 모르면서 참 달달달 열심히도 외웠습니다. 한 번은 도저히 작가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아무 이름이나 써넣었다가 선생님께 "남자 친구 이름이니?"라는 핀잔을 들은 적도 있습니다. 그때를 마지막으로 한국단편소설은 제 손에서 떠났습니다.

 

"중고생이 꼭 읽어야 할"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지만 <한국단편소설 40>을 보고 무척 반가웠습니다. 어린 가슴을 울렁이게 했던 "소나기", 내용도 모르면서 흉내를 냈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제목만 들어도 낭만적인 기분에 젖게 하는 "메밀꽃 필 무렵", 참 지독히도 슬펐던 "운수 좋은 날", 청년의 시기에 뜨거운 마음으로 읽었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등을 다시 읽어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중고생이 꼭 읽어야 할 한국단편소설 40>은 김동인의 "배따라기"를 시작으로 1920년대 작품부터 1970년대에 발표된 이청준의 "눈길"까지 시기별로 총 40편의 대표작을 선별해 수록했습니다. 이 책은 단순히 단편소설을 엮어낸 작품집이 아닙니다. 소설을 읽기 전에, 한국단편소설의 시대별 특징, 작가와 작품에 대한 설명, 구성과 줄거리를 파악하고, 생각해 볼 문제까지 제시해줍니다. 그리고 나서 본격적인 소설 읽기에 들어갑니다. "수능 시험, 수행 평가, 논술 고사에 대비해" 짜임새 있게 꾸며져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한편으로는 소설을 그저 소설로 감상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 어떨까 하는 배부른 생각도 듭니다.

 

<한국단편소설 40>을 다시 읽으며 가장 충격적으로 다가온 감상은 중고생이 읽어야 할 소설의 주제가 참으로 묵직하구나 하는 것입니다. 흔히 접할 수 있는 청소년을 위한 성장소설이 아니라, 일제 강정기하의 민족의 빈곤과 그 속에서 파괴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존엄성을 그린 작품(감자), 조국(사회)의 현실에 절망하는 지식인(술 권하는 사회), "인간의 이중성을 희극적으로 묘사한 심리주의 소설"(B사감과 러브레터), "극심한 이데올리기의 갈등 양상"을 보이는 광복 직후에서 6.25 전쟁까지의 작품들, "독재 정권의 경제 성장 정책으로" 소외된 민중의 삶을 그린 1970년대 작품들까지 이 어렵고 무거운 주제들을 청소년들은 어떻게 소화하고 있을까 궁금해집니다.

 

<한국단편소설 40>을 읽으며 다시 생각했습니다. '역사' 과목으로도 '역사'를 배우고, '사회' 과목으로도 '사회'를 배우고, '심리학' 과목으로도 '심리학'을 배우지만, 우리는 '소설'로도 역사를 배우고, 사회를 배우고, 심리학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소설이 말하는 역사의 비극, 사회의 부조리, 개인의 고통과 좌절, 그 모든 것이 어우러진 시대의 아픔은 우리가 진실이라고 소리내어 말하는 사실들보다 더 진실한 그 무엇을 가르쳐줍니다. 이야기(소설)는 독자를 울고 웃기는 힘이 있습니다. 요즘 우리는 글로벌 시대를 맞이하여 일본 소설에 열광하고, 유럽 소설의 매력에 사로잡히고, 아시아 소설까지 쉽게 탐독할 기회를 얻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이 담긴 옛 앨범같은 <한국단편소설 40>은 바로 우리의 이야기, 나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화들짝 놀라게 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내 핏속에 흐르는 이야기를 읽은 기분이라고 할까요. 이런 것을 우리끼리 통하는 우리만의 '정서'라고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남의 이야기를 들으며 웃고 웃다가, 오랫만에 나의 이야기 속으로 침전하여 속울음을 울고 난 기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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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토의 탄생 - 최초의 멘토가 가르치는 정의와 자유, 지도자의 덕목
프랑수아 드 페늘롱 지음, 강미란 옮김 / 푸르메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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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만큼 "누가 대통령(지도자)이 될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때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가진 한 표의 무게가 그 어느 때보다 무겁게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불행은 좋은 지도자를 선택하는 즐거움이 아니라, 드라마 추적자의 대사처럼 "더 나쁜 놈을 떨어뜨리는" 혈전이었다는 것입니다. 언제부터 우리는 당의 이익'만'이 우선되는 정치, 공약 가지고 거짓말을 하는 정치인을 용납하게 되었을까요? 왜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런 사람들이 나라를 이끌어가는 '지도자' 노릇을 하도록 놔두는 것일까요?

 

<멘토의 탄생>은 모든 지도자가 읽어야 할 책이지만, 대통령에게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멘토의 탄생>은 그리스 신화를 차용하여 지도자 덕목에 대해 가르치는 교과서 같은 책입니다. 원래 '멘토'라는 말은, 트로이 전쟁 때 그리스 연합국 중에 소속되어 있던 이타이가 왕국의 왕인 오딧세이가 전쟁에 출전하면서 자신의 어린 아들을 가장 믿을만한 친구에게 맡겼는데, 그 친구의 이름이 멘토인 것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멘토는 오딧세이가 전쟁에서 돌아오기까지 왕의 아들이 훌륭하게 성장하도록 도왔고, 그 이후로 백성 사이에서 훌륭하게 제자를 교육시킨 사람을 가리켜 "멘토"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멘토의 탄생>은 트로이 전쟁에 참가한 율리시스의 아들 '텔레마코스'가 주인공입니다. 텔레마코스는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떠도는 아버지 율리시스를 찾아 모험을 떠납니다. '멘토'는 그런 '텔레마코스'와 동행하며, "수많은 시련과 죽음의 고비를 만날 때마다 현명하고 올곧은 생각으로 힘겨운 여정을 잘 헤쳐나갈 수 있도록" 이끌어줍니다. 일종의 '제왕 수업' 같은 것입니다. 여정의 막바지에 멘토의 정체가 드러나는 대목은 이야기의 또다른 즐거움이기도 합니다.

 

멘토의 가르침은 시대와 문화를 초월하는 지도자의 덕목, 삶의 가치와 행복에 관한 것입니다. 멘토는 장차 왕이 될 텔레마코스에게 이런 왕이 되라고 당부합니다. "만약 아버지의 대를 이어 왕국을 물려받는 것이 신들의 뜻이라면 텔레마코스가 백성의 기쁨이 되셔야 합니다. 내 자식처럼 백성을 사랑하고 그들의 사랑을 받는 행복을 누리십시오. 그들이 항상 평화와 만족 속에 살도록 하세요"(33). 그리고 이런 교훈을 덧붙입니다. "누구나 자신을 두려워하게 만들고 더 처참한 복종을 얻어내기 위해 사람들을 괴롭히는 왕은 인간 말종과도 다를 바가 없어요. 결국은 그가 원하는 대로 되겠죠, 사람들을 벌벌 떨게 할 테니까요. 하지만 그런 왕은 미움을 받습니다, 증오의 대상이 됩니다.  그런 왕은 사람들이 자신을 두려워하는 것보다 더 사람들을 두려워해야 할 것입니다"(33). 구구절절이 옳은 소리입니다. 그런데 이 당연한 말씀을 '지금' 세상은 그저 당연하게만 생각하지 실현할 생각을 하지 않는 듯합니다.

 

<멘토의 탄생>은 어떠한 삶이 진정 행복한 삶인지에 대해서도 반복적으로 이야기합니다. 왕국의 화려함 삶보다 온화한 삶이 주는 행복을 노래합니다. "우리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야만인들처럼 살지 모르나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정의가 무엇인지 압니다. 충성할 줄 알고 재산을 탐하지 않는 것으로 영광을 취하려 하죠. 작은 것에 만족하는 삶으로 충분합니다. 가질수록 더 필요하게만 느껴지는 쓸데없는 사치에 물들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건강, 소박한 삶, 자유, 신체와 영혼의 강인함입니다. 정의롭고 용감한 삶에 대한 사랑, 신에 대한 겸손함, 가족들의 안정, 친구들에 대한 우정, 모든 이를 향한 신의, 풍요 속의 절제, 고통에 대한 인내, 늘 진실만을 말하는 용기, 거짓에 대한 증오만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에요"(240). 아무리 뛰어난 과학이나 예술도 부당한 승리와 영광을 위한 것이라면 그런 것 없이 사는 것이 더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어떤 지도자들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종이 되어 그의 영광만을 위해 태어났다고 착각"(267)하기도 합니다. 유권자들(백성)은 한 없이 '이기적인' 자신들의 욕심을 정치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무엇이 옳고, 무엇이 진정한 행복인지 이미 알고 있는지 모릅니다. 문제는 그것을 실제로 살아내느냐 하는 것입니다. 모두의 행복과 평화를 위해 내 욕심을 포기하고 덜어낼 용기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잘못된 길인줄 알면서도 일단 내가 살고 보자 하는 마음이 많은 사람의 희망을 꺾어버립니다. 세상에 실망할수록 이상을 향한 노력을 포기하게 됩니다. 하버드대의 나단 퍼시 총장은 "흔들 수 있는 깃발, 부를 수 있는 노래, 믿을 수 있는 신조, 따를 수 있는 지도자"가 젊은이에게 필요한 네 가지라고 말했습니다. 흔들 수 있는 깃발, 부를 수 있는 노래, 믿을 수 있는 신조를 제시해줄 지도자가 절실한 이때, <멘토의 탄생>을 정독하고 치열하게 고민하는 지도자가 많이 나와주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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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 창의적으로 생각하고 창의적으로 실행하는 법
사토 가시와 지음, 이근아 옮김 / 끌리는책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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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역할을 어디까지나 '끌어내는 것'일 뿐, 주체는 의뢰인이다"(92).

 

 

<공감>의 저자 사토 가시와는 "일본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아트디렉터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입니다. "유니클로 세계 전략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담당했고, 그가 진행한 '아버지와 아들'을 주제로 한 맥주 TV 광고가 대히트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공감>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의 실전 경험을 바탕으로 "창의적으로 생각하고 창의적으로 실행하는" 그만의 노하우를 소개하는 책입니다. 그는 그 노하우를 '공감'이라는 한 단어로 요약합니다.

 

디자이너들과 직접 일해본 경험이 있으십니까? 저는 디자이너라고 하면 먼저 '황소고집'이라는 단어부터 떠오릅니다. 디자인에 대한 수정 요구 자체를 자존심 상하는 일로 생각하고, 대부분 디자인의 '디'자도 모르는 사람의 의견 따위는 무시하겠다는 태도를 가진 디자이너들을 많이 만났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디자인에 담긴 의도를 설명하고 설득시키려는 분들이 많았지, 작업 시작부터 완성까지 의뢰인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 깊이 있게 이해해보려는 태도를 가진 분들은 만나기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공감>은 개인적으로 '격하게 공감'하게 되는 책이었습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마다 저자가 가장 먼저 하는 작업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라고 합니다. "먼저 상대방의 본심을 정확하게 끌어내는 기술이 필요하다"(22)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저자는 "의사가 병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환자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는 문진처럼", 프로젝트를 맡을 때는 먼저 문진부터 시작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본심을 끌어내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가설'과 '극단적인 발언'이라는 대화법을 소개합니다(24). "당신이 가장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군요." "이런 것을 목표로 하는군요." 이렇게 말로 확인하는 것이 '가설'입니다. 또 초점이 좀처럼 맞지 않을 때는 "이 프로젝트를 일단 중단해보면 어떨까요?"라는 극단적인 발언도 생각의 폭을 넓히는 한 방법이라고 합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듣는다는 것은 의뢰인과 깊이 있는 대화를 하는 것뿐만이 아닙니다. 이것은 상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 기업이 말하고자 하는 바, 즉 이 상품만이 가진 고유한 특성이나 가치, 본질, 그리고 기업의 경영 윤리나 철학이 무엇인가를 끌어내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저자는 일명 그가 말하는 "끌어내기 기술"로 '지킨다'는 본질을 끌어내어 감싼다는 이미지에서 누에고치를 연상하여 어린이 휴대폰을 디자인하고, 단원들과 토론을 거듭한 후 '상반되는 요소가 만나면 새로운 것이 탄생한다'는 것을 콘셉트로 도쿄 도 교향악단의 로고를 디자인했던 과정을 들려줍니다.

 

<공감>은 지금 우리는 '설득'에서 '제안'을 거쳐 '공감'의 시대에 이르렀다고 단언합니다(81). 저자는 공감을 기반으로 한 디자인을 상품에만 국한시키지 않습니다. 콘테츠뿐 아니라 '상황'을 디자인하고, '일하는 방식'을 디자인한다는 개념으로 확장시킵니다. "상황을 디자인한다는 것은 그 주변에 존재하는 사람, 물건 등 모든 대상과 관계를 맺는 일"(87)이라고 설명합니다. '일하는 방식을 디자인한다'는 것은 '근무 환경에서 조직에 이르까지, "일의 순서나 평가 시스템, 조직의 구조 등을 근본부터 다시 생각해 과감하게 변화를 시도"(136)하는 것입니다. 저에게는 '상황'이나 '일하는 방식'을 디자인한다는 개념을 갖게 된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었습니다. 저자는 창의적 사고를 연마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그걸로 괜찮을까" 하고 의문을 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5). 저자의 이 질문을 특별히 크리에이티브한 작업을 하는 직업이 아니더라도, 지금 처한 업무 환경이나 삶의 방식 등 전반에 걸쳐 적용해보면 좋을 듯합니다.

 

저자가 진행했던 프로젝트 중에 제 마음을 사로잡은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유치원 자체가 거대한 장난감"이라는 콘셉트(120)의 도쿄 다치카와 시의 후지 유치원 리뉴얼 프로젝트입니다. "옥상에서 끝없이 술래잡기를 할 수 있는 독특한 도넛 모양의 건물"로 재탄생한 유치원의 모습에 '창의적인 사고'가 얼마나 위대한 힘인가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창의적인 사고력, 이것은 기술이나 경험이나 이론만 가지고는 도달할 수 없는 감동과 경이로움의 세계입니다.

 

<공감>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현장에서 익힌 실전 노하우를 전하는 책이지만, 업무적으로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독자라 할지라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즐거움을 알게 해줍니다. 창의적인 생각은 마법과 같은 힘이 있어, 평범한 그 무엇을 전혀 특별하게 바꾸어 놓는 힘이 있습니다. 정말 훔치고 싶은 능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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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드라마로 읽는 성경 신약편 1부 - 주전 331~주전 4년, 알렉산더 대왕의 등장부터 헤롯대왕의 죽음까지 역사 드라마로 읽는 성경 1
류모세 지음 / 두란노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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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기다리던 <역사 드라마로 읽는 성경> 신약편이 나왔습니다. <구약편>을 공부하며, 성경을 이렇게 재미있게 공부해본 적이 언제인가 싶을 만큼 흥미진진하게 읽었던 터라 신약편에 대한 기대가 높았습니다. 성경의 역사가 한 줄로 꿰어지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그래서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하나 봅니다.

 

성경을 잘못 이해하면 그저 '좋은 말씀'을 담은 책이라거나, '교리'를 기록한 '그들만의 이야기'로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역사 드라마로 읽는 성경>은 기독교 역사(신앙)가 얼마나 생생한 "역사적 사실"인지를 새삼 깨닫게 해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상상 속에, 철학이나 사상 속에 하나님의 나라를 펼치신 것이 아니라, 생생한 역사 속에, 세계사 한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셨고, '이스라엘'이라는 유형 국가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펼쳐 나가셨음을 분명히 선포합니다. 거기에 더 나아가 성경의 역사와 세계사에 접목시켜 이야기합니다. 이것이 <역사 드라마로 읽는 성경>이 가장 가장 큰 매력이며, 다른 성경연구서적들과의 확실한 차별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역사 드라마로 읽는 성경> 신약편은 구약편과 마찬가지로 총 3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중 '1편'에서 다루는 역사적 시기는 알렉산더 대왕의 등장부터(주전 331년) 헤롯 대왕의 죽음까지(주전 4년)입니다. 우리는 이 시기를 '신구약 중간기'라고 부릅니다. 하나님께서 말라기 선지자 이후 광야에서 세례 요한의 소리가 들려올 때까지 침묵하셨다고 해서 '신구약 침묵기'라고도 부릅니다. 성경에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는 기간이기 때문에, 매일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성도들도 이 부분에 대한 역사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역사 드라마로 읽는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말라기서의 배경이 되는 페르시아 시대부터 마태복음의 배경이 되는 로마 시대 사이에는 무려 300년 이상의 역사적 간극이 존재한다. 그 기나긴 간극을 착실히 그리고 체계적으로 메우지 않고 곧바로 로마 시대로 점프한다면 우리는 신약 성경을 읽으면서 수시로 '공황' 상태에 빠질 수 있다." 왜냐하면 "이것은 신구약 중간기의 역사가 신약성경을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역사적, 종교적 그리고 사회적 배경이 되기 때문"(15)입니다. 

 

이 시기에 대한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 땅에 메시아를 등장시키시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준비하셨는지를 아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세계사적으로도 이 시기는 역사상 처음으로 동양과 서양이 충돌하게 되는 알렉산더 대왕의 등장과 전무후무한 로마라는 거대 제국이 등장하는 중요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신앙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모든 역사가 메시아가 이 땅에 등장하기 위한 무대 마련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로마라는 거대 제국이 온 땅을 그의 지배 아래 두고 천하를 호령하고 있을 때, 예수 그분이 오셔서 누가 역사의 참 주인인지 가르는 그 거대한 충돌을 준비하신 것입니다. 이제 그 가슴 뛰는 역사를 마주하기에 앞서 그 준비기간이라 할 수 있는 시기의 역사가 바로 이 책, <역사 드라마로 읽는 성경> 신약편 1부에 담겨져 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등장과 동서양의 충돌, 그리고 알렉산더 대왕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혼란의 소용돌이, 그 속에 등장하는 로마라는 거대 제국의 역사는 이스라엘뿐 아니라 초기 기독교 역사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알렉산더의 정복 전쟁으로 시작된 그리스 시대"는 두 가지 측면에서 의미심장한 영향을 남겼습니다(85-86). 이 두 가지는 성경을 깊이 있게 연구하기 원하는 성도라면 반드시 알아 두어야 할 중요한 내용입니다.

 

첫째는, "유대인들의 광범위한 디아스포라(분산) 현상"입니다. "그리스 시대에 만연된 유대인들의 디아스포라 현상은 이후 초기 기독교가 전파되고 확산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둘째는, "불후의 역작인 70인역 성경의 탄생"입니다. "히브리어 구약성경을 당시의 세계 공용어인 그리스어로 번역한 70인역 성경"은 "평상시 유대교 신앙에 관심을 보이던 이교도들을 흡입하는 강력한 도구"가 되었습니다. 유대인들만 가지고 있던 하나님의 말씀을 이방인들도 읽게 되는 역사적 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 "70인역 성경은 초기 기독교 전파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바울을 비롯한 신약 시대 사도들이 인용한 성경이 바로 70인역 성경이었고, 바울이 수차례 전도 여행을 다니며 로마 제국을 누빌 때 바울은 청중에게 전혀 생소한 교리를 설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청중은 이미 70인역 성경을 통해 구약성경에 무척이나 친숙해 있었기 때문"입니다(85-86).

 

 

  

<역사 드라마로 읽는 성경>은 "다신교를 믿는 로마인과 일신교를 믿는 유대인 사이에 일어난 최초의 문화적 그리고 종교적 충돌이라고 할 수 있"는 사건을 재미있는 에피소드 형식으로 소개합니다(163). 유대인들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진격한 폼페이우스는 유대인들의 신앙에 호기심이 발동하여 수행원 몇 명을 데리고 성전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는 대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는 지성소까지 범했는데, "로마의 신전과는 달리 유대교 신전에는 신을 나타내는 초상이 하나도 없는 것을 보고 약간의 호기심을 느꼈고 잠시 지성소 안을 두리번거리고는 밖으로 나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전쟁 중에도 요동함 없이 제사를 드린 제사장들에게 깊은 감명을 받은 폼페이우스는 텅 빈 지성소를 보고는 실망한 나머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뭐, 별 거 없구면!"(162)

 

이것은 유일하게 한 분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의 신앙이 문화적, 종교적 배경 안에서는 얼마나 독특하고 생소한 것이었는지를 잘 말해줍니다. 중동지역에서 유일하게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땅에서, 유일하게 하나님을 신앙하는 이스라엘 민족의 신앙을 볼 때, 이것은 하나님의 계시가 아니고서는 절대 불가능한 역사이구나 하는 것을 새삼 깨닫습니다.

 

 

  

신구약 중간기를 공부할 때,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에돔 왕, 헤롯의 등장입니다. 이 에돔 왕, 헤롯은 우리가 신구약 중간기를 공부해야 할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 시기의 역사를 알지 못하면, 신약성경에서 예수님 탄생하실 때부터 갑자기 등장하는 이 '헤롯' 왕의 정체에 대해서 도무지 알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의 성전이 '헤롯 성전'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는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두매(에돔) 출신의 헤롯은 정복자 로마가 인준한 유대인의 왕입니다. <역사 드라마로 읽는 성경>은 어지럽고 급박하게 돌아가는 세계 정세 속에 어떻게 별 볼 일 없는 가문의 출신의 헤롯이 타고난 정치력 하나만으로 유대인의 왕으로 등극할 수 있었는지 흥미진진한 한 편의 역사 드라마를 보여줍니다.

 

 

 

구약편과 마찬가지로 한 단원이 끝나면 '단원평가문제'를 풀며, 공부한 내용을 다시 한 번 정리할 수 있습니다. 세계사와 함께 성경 역사를 읽는 것은 참으로 흥미로운 작업입니다. 성경이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책이 아니라, 이 땅에 발 딛고 살았던 사람들 속에서 생생이 이어져 내려온 신앙임을 다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이렇게 역사적인 관점에서 세계사와 함께 읽는 작업은, 이 세상 역사라고 하는 것이 무엇이며, 이 역사는 어떻게 형성되어 왔고, 또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확인하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역사 드라마로 읽는 성경> 시리즈를 완독하고 나면 세계를 보는 눈과 역사를 보는 눈이 열릴 것이라는 기대를 해봅니다.

 

역사적 관점에서 성경을 읽는 작업은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그 분명한 뜻을 다시 확인하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딱딱하고 지루한 교리서를 우리에게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펼쳐 나가시는 역사를 '역사 이야기'의 형식으로 우리에게 전해주셨음을 깨닫습니다. 구약편부터 <역사 드라마로 읽는 성경>을 읽어나가며, 시간과 공간을 뚫고 인간의 역사 속으로 침투하여 들어오신 하나님, 그 하나님이 역사의 주관자이시며 진정한 역사의 주인이심을 다시 한 번 고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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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요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크레이그 톰슨 지음, 박여영 옮김 / 미메시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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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괴물같은 책이다. 장난 삼아 친구의 일기장을 몰래 훔쳐 봤다가 깜짝 놀랄 만한 비밀을 알게 된 그런 충격!

 

"미국의 천재 그래픽 노블 작가"라는 타이틀이 있어 "그래픽 노블"이란 단어를 검색해보았다. 백과사전에 이렇게 설명되어 있다. "만화책의 한 형태로, 보통 소설만큼 길고 복잡한 스토리라인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단편 만화의 앤솔로지를 그래픽 노블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래픽 노블은 대체로 보통의 만화 잡지보다 튼튼하게 제본되어 있으며, 인쇄 도서와 같은 재료와 방법으로 만들고, 가판대보다는 서점이나 만화 가게 등지에서 찾을 수 있다"(위키백과).

 

<담요>는 벽돌보다 큰 책의 크기도 그렇고(592쪽), 가격도 독자를 압도한다. 이 가격에 이 만한 크기의 만화책을 선뜻 사서 볼 용기 있는 독자가 있을까 싶을 만큼 위용이 느껴진다. 그런데 만화책을 읽었다는 느낌보다 영화를 한 편 본 듯, 소설을 한 권 읽은 듯한 기분이다. 그래서 이 책이 "그래픽 노블"이라 불리는구나 싶다.

 

<담요>는 작가의 성장기를 그대로 보여주는 자전적인 고백이다. 그런데 너무 솔직해서 징그럽다고나 할까. 위스콘신의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엄격한 기독교주의 가정에서 성장하며 만화만이 유일한 탈출구였던 한 사람의 성장기가 적나라하게 그려진다. 솔직히 이 책에 쏟아진 찬사 때문에 부풀어올랐던 기대에 비하면 그림은 투박하기 그지 없다. 그런데 그 거친 선들 속에 표현되는 감성은 지독하리만치 리얼해서 그 어떤 문장보다 날카롭게 빛난다.

 

<담요>의 작가는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한다. 한 침대에서 자는 동생과 장난을 치다 아빠에게 벌받는 이야기에서는 작가가 아니라 내가 죄책감을 고백하게 된다. 친구들의 놀림과 괴롭힘, 어린 인격에 대한 배려는 눈꼽만큼도 없는 매정한 선생님,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던 베이비시어터의 끔찍한 성추행,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어 매일 밤 꿈속으로 달아나는 주인공은 그저 덤덤하게 이렇게 말할 뿐이다. "어린애인 내 눈에 비친 삶은 이미 너무나 끔찍했기에, 난 틈만 나면 좀 더 살기 편한 곳으로 도망가는 꿈을 꾸었다"(38). 제 자신을 스스로 지킬 수 없는 어린이에게 끔찍한 삶이란 공포 그 자체이다. 돌이켜 보면, 희망만이 가득하고 푸르게만 자랐었어야 할 내 어린 시절도 세상과 치고받느라 이런 저런 멍이 들어 있다. 그때는 노련하지 못해서 작은 공격도 큰 상처로 남았나 보다.

 

기독교 '교리'와 세속(현실) 사이에서의 갈등, 온몸을 움츠려들게 하는 가난, 패배의식에 쩌든 청소년기, 그 속에 한 줄기 빛처럼 주인공을 찾아온 것은 열병 같은 사랑이었다. 오직 그녀와 함께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고, 생각하기도 싫었고, 생각할 이유도 없었던 첫 사랑. 그 사랑이 주인공에게 선물한 것이 바로 이 책의 제목 <담요>이다. "레이나가 준 담요는 그 어느 때보다 큰 위안이 되었지만" 어느 새 그 시간도 지나고, 기억은 희미해지고, 삶은 계속된다.

 

어떤 사람이 걸어오고 또 걸어가고 있는 삶의 발자취를 따라 밟으며, 내가 걸어온 길을 그 위에 살짝 포개어본다. 세상의 폭력에 무기력하게 얻어 터지기도 하고, 열병 같은 사랑에 모든 것을 걸어보기도 하고, 헤어나올 수 없는 절망에 모든 것을 내던지기도 하고, 불안한 희망에 기대를 걸어보기도 하고, 흘러가는 풍조에 휩쓸리기도 하면서, 그렇게 마음도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는가 보다. 어느 시절 한 때 내 마음을 덮어 주었던 나만의 '담요'를 작가처럼 덤덤히 추억할 수 있게 된 걸 보면 말이다. 삶은 그렇게 계속 된다.

 

<담요>는 지나온 어느 시절, 몹시도 춥고 외로웠던 나를 따뜻하게 감싸주었던 '나만의 담요는 무엇이었는지'를 추억하게 한다. 그리고 이 이야기 스스로가 사람들에게 그런 담요가 되어 준다. 문학이 주는 위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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