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가장 완벽한 선물, 은혜
맥스 루케이도 지음, 최요한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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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거리에 서 있으면 포교를 목적으로 접근해오는 사람이 꽤 많았다. 시간이 나면 나는 가끔 그 사람들과의 대화에 응했다. 어떤 사람은 지구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했고, 어떤 사람은 천주님이 직접 써주신 글씨를 보여주기도 했고, 어떤 사람은 집안에 '기'(흐름)가 막혀 있어 일이 잘 안 풀리는 거라고 했고, 어떤 사람은 기독교인이 믿는 지옥이나 천국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내가 하는 대답은 늘 한 가지였다. "당신이 진리라고 믿고 전하는 이야기들이 저는 하나도 기쁘지가 않습니다. 그 진리(?)가 나에게 기쁨을 주지도 않고, 행방감을 느끼게 해주지도 않고, 평안을 주지도 않네요." 그리고 꼭 이렇게 덧붙였다. "제가 알고 있는 기쁜 소식이 있는데 들어보실래요? 이 진리는 우리를 자유케 합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줍니다." 그 이야기가 바로 맥스 루케이도 목사님이 전하는 <은혜> 안에 있다.

 

 

  

 

"사탄아 어떠냐!"(47)

 

이 한마디가 왜 이렇게 통쾌한지. 하나님의 은혜를 안다는 것은 나를 누르고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의 해방임을 이 책을 읽으며 다시 깨닫는다. "사탄이 주는 죄책감은 우리를 종으로 부린다"(44).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더 힘이 쎄다. "죄 사함이 자백하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면 우리는 구원받을 길이 없다. 정확하거나 충분하게 자백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까. 죄 사함의 능력은 자백하는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백을 들으시는 하나님께 있다"(125).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면서도 순간 순간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이 내게 버거울 때가 있었다. 하나님을 알기 때문에, 예수님이 가신 길을 더 잘 따르려 하면 할수록, 내 안에는 기쁨보다 의무가, 해방감보다는 무거움이, 거룩함보다는 비장함이 더 깃들었었나보다. 내가 놓치고 있었던 것, 맥스 루케이도 목사님은 그것을 다시 찾아주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가장 완벽한 선물", <은혜>였다!

  

 

"그분은 나에게 변화를 요구하시기보다 내 안에서 변화를 만드신다. 하나님의 목표는 단순히 당신을 하늘나라로 데려가는 것이 아니라 당신 안에 하늘나라를 펼치시는 것이다"(27).

 

내가 받은 선물이 얼마나 완벽한(!) 것이었는지 잊고 있었다. 은혜 없이 하루도 살 수 없다고 고백하면서도 나는 왜 은혜를 힘입지 않았을까. 맥스 루케이도 목사님의 <은혜>는 우리가 입은 그 은혜가 얼마나 완벽한 것인지 정말 멋지게 설명해내신다. "하나님은 당신을 보실 때 먼저 예수님을 보신다. 중국에서 '의'(義)라는 말은 두 글자로 이루어져 있다. 양이 위에 있고 사람이 그 아래에 있다. 당신을 보호하고 있는 하나님의 온전한 어린양. 이게 바로 하나님이 당신을 대할 때 보시는 것이다"(44). <은혜>는 말한다. 나의 어떠함과는 상관이 없다고. 하나님의 은혜는 모자람이 없다고. 단지 그 은혜 속에 풍덩 빠지기만 하면 된다고.

 

 

  

"사실 우리는 은혜를 찾을 수 없다. 은혜가 우리를 찾는다"(28).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는 "항복"을 외치고 싶은 사랑이다. 내가 은혜를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도망치는 우리를 끝까지 추적해오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결코 나를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내내 하나님의 통치 앞에, 하나님의 그 사랑 앞에 다시 무릎 꿇었다. 죄란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할 수 없습니다. 나는 왕이 없는 왕국이 좋습니다. 아니, 내가 다스리는 왕국이 더 낫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56).

 

맥스 루케이도 목사님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가장 잘 설명하는 분이라고 확신한다. 맥스 루케이도 목사님의 책을 읽으면 언제나 행복하다. 그 깊은 사랑 속에서 내 영혼은 한 없는 자유를 경험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그 사랑이 얼마나 생생한지 전율하지 않을 수 없다. 세상에 이보다 더 기쁜 소식이 있을까. 맥스 루케이도 목사님의 메시지는 언제나 나를 다시 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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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후
기욤 뮈소 지음, 임호경 옮김 / 밝은세상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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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가 금방 나에게 질려버릴 거라고 확신한다. 난 내 생애에서 불처럼 뜨거운 사랑, 오직 하나뿐인 사랑을 만났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195-196).

 

 

기욤 뮈소가 다시 사랑 이야기를 들고 왔다. 기욤 뮈소의 이야기는 다시 사랑을 꿈꾸게 하는 마법 같은 힘이 있어 좋다. 사랑에 실망하고, 사랑에 상처입고, 사랑에 거절 당하며, 사랑에 마음을 닫아 걸기 전까지, 일생에 한 번은 내게도 이런 사랑이 찾아오지 않을까 믿고 싶었던 그런 사랑, 그런 사랑을 다시 꿈꾸게 해준다. 달달한, 사랑에 대한 환상 말이다.

 

<7년 후>라는 제목으로 찾아온 기욤 뮈소의 이번 사랑은 좀 더 성숙해 있다. 이번에도 역시 다소 '이상적인' 경향이 없지 않으나, 전작들에 비하면 꽤 '현실적'이라고 두둔해주고 싶다. <7년 후>는 한때 불같이 사랑했으나, 지금은 헤어진지 어느덧 7년이 지난 한 남자와 한 여인이 자녀(쌍둥이) 문제로 다시 만나게 되면서 한바탕 소동을 벌이게 되는 로맨틱 소설이다. 이혼을 할 때, 남자는 딸 아이를 맡고, 여자는 아들 아이를 맡았다. 남자는 청소년기를 맞은 딸 아이를 교육하는 문제만으로도 골치가 아픈데, 여자로부터 아들 아이가 사라졌다는 연락이 온다. 오랫만에 재회한 남자와 여자는 다시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아들 방에서 발견한 엄청난 양의 마약과 파리의 한 지하철역에서 괴한에게 아들이 납치되는 영상을 보는 순간, 둘은 싫든 좋든 아들을 찾기 위해 한 팀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도대체 아들을 납치한 사람들은 누구인가? 아들은 왜 납치되었는가?" 이 두 가지 의문이 이야기를 끌어가는 날줄이고, 두 남녀의 갈등과 용서와 화해(사랑)가 날줄로 엮인다.

 

<7년 후>가 전작에 비해 꽤 '현실적'이라고 생각한 이유는, 두 연인이 왜 헤어졌는가 하는 부분 때문이다. 남자는 잘 나가는 집안의 전형적인 모범생이고, 여자는 별 볼 일 없는 모델 일을 하며 신데렐라를 꿈꾸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다. 문제는, 남자가 여자에게 첫 눈에 반했다는 것. 남자는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불 같은 열정으로 여자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여자는 꿈결 같은 사랑에 들떴었다. 그러나 자라온 환경, 교육, 가치관, 취미 등 무엇하나 공통점이 없는 이들의 사랑을 응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 불행을 예언하는 가운데 두 남녀는 보란 듯이 결혼에 꼴인 했지만, 결국 그들의 예언이 맞았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고 말았다. 여자는 남자를 믿지 못했다. 남자가 금방 자신에게 질려버릴 것이라고 믿었다. 사랑하는 마음이 커지면 커질수록 여자는 불안했고, 그래서 먼저 선수를 쳤다. 자신에게 질려버리도록 말이다. 결국 남자에게 버림받게 되었을 때, 여자는 오히려 안정감을 느꼈다. 앞뒤 꽉꽉막힌 남자와 천방지축 여자, 그들은 그렇게 사랑했고, 그래서 싸웠고, 그래서 헤어졌다. 그리고 7년 후, 다시 만났다.

 

<7년 후>를 영화로 만든다면 로맨스 소설치고는 스케일이 굉장히 크게 느껴질 듯하다. 뉴욕과 파리, 브라질, 그리고 아마존을 오가는 배경에 국제적인 범죄 조직까지 얽혀들며 잃어버린 아들의 행방을 찾아 '미스테리'한 추격전을 펼치기 때문이다. 로맨스 소설이지만, 긴장감이 있다. 나와 '다름'을 사랑했지만 그 '다름'을 이해하지 못했고, 사랑에 빠졌지만 사랑을 표현할 줄 몰랐고, 오직 하나뿐인 사랑이었지만 사랑에 서툴렀고 두려웠던 두 남녀가 다시 사랑을 찾아가는 이야기, <7년 후>. 이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사랑'이 존재한다면, 나에게도 그런 사랑이 찾아오기를 다시 기도하게 만드는 <7년 후>. 그 마법 같은 사랑 이야기를 읽는 동안, 사랑에 두려워하는 여인의 마음에 공감했고, 사랑에 상처받은 남자의 애증에 이상하게 설레였다. 아름다운 동화 같으면서도 현실 감각을 잃지 않고, 동시에 무조건 "재미있는" 로맨스 소설을 찾는다면 단연 기욤 뮈소의 책이고, <7년 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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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픔 없는 세상 단비어린이 그림책 1
프랑수아 데이비드 글, 올리비에 티에보 그림, 전미연 옮김 / 단비어린이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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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급식이 나오지 않는 방학 때는, 우리나라에도 아직 굶는 아이들이 많다고 하는데 실감을 하지 못하고 삽니다. 그것이 남의 일처럼만 느껴지는 것은 내가 굶지 않는 까닭이요, 직접 보지 못한 까닭이겠지만, 바로 옆에서 누군가 굶는다고 해도 알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무관심한 탓이라고 자백합니다. <배고픔 없는 세상>은 배부른 자의 그런 게으른 무관심을 흔들어 깨우는 책입니다.

 

어린이 그림책이지만 이 책을 먼저 보아야 하고, 알아야 하고, 부끄러워 해야 하고, 고민해야 할 사람은 바로 우리 어른들일 것입니다. 배부르게 실컷 먹는 꿈을 꾸며 빈 배를 움켜쥔 아이의 슬픈 눈을 마주치기가 힘들었습니다. 아이들이 밥을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지쳐 잠이 들 때까지 냄비에 돌을 넣고 달구어야 하는 엄마의 슬픈 마음을 마주하기가 힘들었습니다. 화끈거리는 얼굴, 먹먹해져 오는 가슴조차 위선인 것 같아 힘들었습니다.

 

아침이 되어 자명종이 울려요.

나는 눈을 떠요.

아이 한 명이 죽었어요.

나는 일어나 침대에 앉아요.

아이 한 명이 죽었어요.

나는 빵에 잼을 빌라 먹고 코코아차를 마셔요.

아이 한 명이 죽었어요.

나는 따뜻한 물을 아주 세게 틀고 씻어요.

아이 한 명이 죽었어요.

나는 유치원에 가려고 현관문을 밀고 나와요.

아이 한 명이 죽었어요.

나는 건널목을 뛰면서 건너요.

아이 한 명이 죽었어요.

나는 세계를 바라봐요.

유치원에 늦을까 봐 더 빨리 달여요.

아이 한 명이 죽었어요.

세계 곳곳에서 6초마다 아이 한 명이 굶이 죽어요.

 

이 비극 앞에, 우리를 화나게 하는 것은 "지구는 식량을 충분히 갖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이들은 이 책을 읽으며 무엇을 생각할까요? "왜 지구는 충분한 식량을 가지고 있는데 굶어죽는 친구들이 있나요?"라고 묻는다면 어떻게든, 무엇이든, 대답하고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나요? 이것은 누구의 책임인가요?"라고 묻는다면 대답할 말이 없을 듯합니다. "작은 베풂이 작은 아이를 살아가게 해 줄 거예요"라는 한 줄 문장에 실천으로 응답하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배고픔이라는 그 원초적인 고통을 마주하니, 늘 부족한 것 투성이었던 내 일상에 감사가 스며듭니다. 그러나 여기서 그치고 나누는 삶을 살지 못한다면 이 책을 헛 읽은 것일 겁니다. 아이들과 함께 읽으며 고민해보고 싶은 책입니다. <배고픔 없는 세상>을 함께 꿈꾸고 싶습니다! 이런 꿈을 가지고 자라도록 우리 아이들을 교육한다면 세상은 얼마나 멋진 곳이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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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지마! 나 일본어책이야 - 대한민국에서 가장 쉬운 일본어 어휘 학습 프로젝트
이선옥.정경숙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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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외국어로 일본어를 공부할 때, 가장 신이 났던 부분은 우리말과 어순이 같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일본어가 만만하게 보일만큼 자신감이 충천했습니다. (물론 나중에 공부를 하면 할수록 어려워지는 부분이 있었지만,) 기초 문법 몇 가지를 겨우 뗀 초급 수준인데도 문장 구사가 그다지 어렵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장 집중공략했던 부분이 어휘입니다. 어휘실력이 곧 일본어 실력을 좌우했기 때문입니다. 한창 열심일 때는 친구들과 함께 하루에 10단어씩 외우기 내기도 할 만큼 재미를 붙였었는데, 일본어와 상관 없는 사회생활을 하다보니 어느새 머릿속은 다시 백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다시 시작하고 싶은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막막했는데, 이 책이 나를 보고 웃는 것 같았습니다.

 

 

 

<웃지마! 나 일본어 책이야>는 초급에서 중급을 목표로 하는 분들이 보면 좋을 교재입니다. 기본적으로 히라가나 정도는 막힘 없이 읽을 수 있어야 이 책을 '즐길 수 있습니다.' <웃지마! 나 일본어 책이야>는 "출퇴근길에도, 화장실에서도, 커피 한잔 카페에서도 자꾸만 읽고 싶어지는 일본어책"이라는 문구 그대로, 정말 '읽는' 책입니다! 형광펜 칠하고, 밑줄 쳐가며 앉아서 암기하는 일본어 교재가 아니라, 독서 하듯이 읽어나가면서 어휘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에피소드 형식으로 설명되어 있기 때문에 이야기의 상황과 이미지를 연상하는 효과가 있고, 에피소드를 한 번에 파악할 수 있는 일러스트가 있어 에피소드를 통해 익혀야 할 어휘가 무엇인지 한눈에 보기좋게 집어줍니다.

 

 

 

 


 

<웃지마! 나 일본어 책이야>는 '신체, 감정과 성격, 생활, 지구와 생물, 계절과 연중 행사'라는 다섯 chapter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新 일본어능력시험에 대비하여 필수어휘를 매 chapter마다 레벨별로 정리해두었고, 실제 유형을 그대로 살린 연습문제도 제시되어 있습니다. 일본어능력시험을 준비하는 분이라면 어휘 부분은 이 책으로 총정리를 하셔도 좋을 듯합니다.

 

이 책을 보고 있으니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요즘은 "즐기는 자가 계속하는 자를 이길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무엇이든 재미가 있어야 즐길 수 있고, 즐길 수 있어야 계속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필요에 의해서 하는 공부이지만 재미까지 있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겠지요. <웃지마! 나 일본어 책이야>는 바로 그런 재미가 담긴 교재입니다. 그 재미가 일본어를 꾸준히 공부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일본어를 재미있게 공부하고 싶은 분들께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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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1 - 시대가 만든 운명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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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마다 인물에 목말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연과 인간 사회에 모두 통용되는 법칙이 하나 있습니다. 약육강식의 법칙입니다. 약한 자는 강한 자에게 먹히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게 사는 이치이지"라고 관조하며, 힘 없는 백성들은 언제나 짓밟히고 당하며 살아야 할까요? 살아 남아야 하는 것이 생명의 과제이고 운명이라고 하지만, 세상에 진절머리가 납니다. 시대마다 인물에 목마른 이유는, 가만 두면 언제나 힘(폭력)에 의해 다스려지기 마련인 세상에 평화와 공존과 나눔과 균형의 가치를 존중하고 실현해줄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아니, 우리는 보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약자의 편에 선 인물이 세상을 얼마나 아름답게 바꿀 수 있는지 말입니다.
 
나라의 리더를 두고 온 국민이 고민하는 이 때에 딱 이런 인물만 같으면 좋겠다는 하는 사람이 둘 있습니다. 한 사람은 정조이고, 또 한 사람은 정약용입니다. 이 책의 제목은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이지만, 정약용은 정조를 빼고는 이야기할 수 없는 인물입니다.
 

"부친이 겨우 음직으로 지방관을 역임한 그는 부형의 음덕을 입을 수 없었고, 실세한 남인 가문의 후예로서 뚜렷한 스승이나 친구도 없었다. 그가 가진 것은 오직 자신의 재능이었고, 이를 알아주는 정조의 눈이었다"(295).

 
아버지 정재원은 정약용에게 귀농이란 아명을 지어주었다고 합니다. "당쟁에서 벗어나 농촌에 귀의하라는 의미"(46)였습니다. 그러나 "탄생부터 좋든 싫든 당쟁의 비극에 연루된" 정약용의 운명은 귀농으로 끝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저자는 "신하가 저군을 죽이는 불충의 시대, 장인이 사위를 죽이는 불륜의 시대, 부인이 남편을 죽이는 부정의 시대"가 그를 끌어내었다고 말합니다. "사도 세자의 훙서 직후 태어난 정약용과 세자를 살려달라고 애절하게 빌었던 세손 정조의 만남은 그래서 '시대가 만든 운명'이었다"(47)라고요.
 
전심으로 백성을 위하고자 했던 두 천재적인 인물은 시대의 축복이었지만, 조선은 그 축복을 누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양반 사대부의 기득권 지키기를 당론"으로 삼은 노론, 그들의 탐욕은 먹이를 움켜줜 독수리의 발톱처럼, 깊이 뻗어있는 노송의 뿌리처럼 사납고 강했습니다. 결정적으로 정약용의 운명을 뒤틀리게 만든 것은 '천주교'라는 큰 물줄기였습니다. 세계 교회사에서 조선은 매우 특별한 국가입니다. 정약용의 형 정약종과 함께 이 땅에 순교의 피를 흘린 이승훈은 세계 천주교 사상 자청해서 영세를 받은 최초의 인물입니다. 그러나 무슨 얄궃은 운명인지, 천주교는 그것을 반대한 노론에게 오히려 정치적인 '힘'을 보태주고 말았습니다.
 
저자는 "조선에서 천주교 신앙이 민감한 정치적 사건으로 비화한 데는 세 가지 요인"이 있다고 정리합니다. 첫째는, 조선 성리학의 교조화입니다. 노론은 일당독재를 계속하면서 성리학 이외의 모든 사상체계를 사문난적으로 몰았습니다. 둘째는, 천주교를 신봉한 양반 대다수가 남인이라는 데 있었습니다. 정조가 즉위하면서 남인들을 중용하려 하자 노론은 천주교를 빌미로 남인들을 실각시키려 했습니다. 셋째는, 당시 교황청의 경직된 교리 해석과 그 기계적 강요입니다. 특히 제사와 장례 문지에 대한 교황청의 경직된 해석과 강요는 노론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조선인들에게 거부감을 주었습니다(120). 만일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이 천주교를 몰랐다면 이 나라의 운명은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망하기로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결말처럼, 조선의 운명은 정조와 정약용의 힘으로 돌이키기에는 이미 역부족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약용이 곡산부사에 임용된 때의 일입니다. 관리들의 무능과 아전들의 농간으로 세금에 짓눌려 있던 억울한 백성들이 '이계심'이라는 자를 필두로 관아에 호소를 하였습니다. 이 일로 이계심은 소요를 일으킨 주동자로 몰려 도망자의 신세가 되었도, 사대부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이계심을 잡아 사형시킴으로 기강을 바로 잡으려고 혈안이었습니다. 이러한 때, 신임 부사로 임용된 정약용은 "조정 대신들이 때려죽이라고 주문한 이계심"을 무죄 석방했습니다.

 

"한 고을에 모름지기 너 같은 사람이 있어서 형벌이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만백성을 위해 그들의 어려움을 대신 호소했구나. 천금은 얻을 수 있을지언정 너 같은 사람은 얻기가 어렵다. 오늘 너를 무죄로 석방하겠다"(308-309). 

 

"천금은 얻을 수 있을지언정 너 같은 사람은 얻기가 어렵다"는 이 한마디가 정약용 같은 인물에 목마른 우리의 한탄이 아닐까 합니다.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면 잘못된 역사는 계속 되풀이 될 것입니다. 얼마전, 김훈의 소설 <흑산>을 읽었습니다.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은 정조와 함께 천주교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 소설과 함께 읽으면 좋을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빼어남이 마음에 와닿으면 닿을수록 그래서 더 안타까워지는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시대가 영웅을 낳는다고 하지만 인물이 시대를 만들어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을 보면 잘못된 시대가 인물을 앗아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줍니다. 그 시대를 서러워하지만 시대가 어두울수록 인물은 더욱 빛이 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은 다산 탄생 250주년을 기념하여 발간한 '개정 증보판'입니다. 알수록 그 빼어남에 마음을 빼앗기게 되고, 그 빼어남에 마음을 빼앗길수록 더욱 안타까워지는, 우리의 인물이요, 우리의 역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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