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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의 아들 - 하나님의 아들
김세윤 지음, 최승근 옮김 / 두란노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예수는 자신이 하나님에 의해 임명받은 자라는 자기이해를 "그 '사람의 아들'"이라는 자기 칭호를 통해 표현하고자 한다"(127-128).
"예수, 그는 누구인가?" 이 질문은 오고 오는 세대가 물어야 할 가장 중요한 질문입니다. 왜냐하면 이 질문에 대한 대답에 따라 우리는 영원한 형벌에도, 영원한 구원에도 처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기독교가 지금까지 전하고 선포하는 진리입니다. 그러니 누구나 한 번은 반드시 이 질문 앞에 서야 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더, 정작 이 땅에 발 딪고 살았던, 예수, 그는 자신을 누구라고 인식했을까요? 어떤 학자들은 예수는 스스로를 메시아로 생각하지 않았고, 따라서 하나님의 아들(신성)이라고 주장하지도 않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예수를 신격화하고 종교화한 것은 초대 교회의 작품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완전한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완전한 인간이셨던 그분은 스스로를 누구라고 인식했을까요? 김세윤 박사님의 <그 '사람의 아들 - 하나님의 아들>을 읽으며, 다시 생각해보게 된 질문이 바로 이것입니다. 교회에서 성경을 가르치고, 예수가 어떤 분이신가를 아무 의심 없이 전하면서도, 예수는 자기 이해를 어떻게 했는가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무관심했다는 반성이 들었습니다.
김세윤 박사님의 <그 '사람의 아들' - 하나님의 아들>은 논문을 쓰기 위한 사전 작업(?) 같은 느낌을 줍니다. "그 '사람의 아들'"이라는 주게를 연구함에 있어서 신학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은 무엇인지,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물들은 무엇인지, 그리고 이를 종합한 저자의 개요적인 논지가 정리되어 있습니다. 신학생일 때 이 책을 읽었을 때와 목회자로서 이 책을 읽었을 때의 감회가 사뭇 다릅니다. 신학생일 때는 지적 논리를 따라가는 학문적 호기심이 많았다면, 목회자로서 이 책을 읽을 때는 우리가 선포하고 있는 복음의 진정성 문제, 우리의 해석은 올바른가 하는 자기 비판적 책 읽기가 되었습니다. 구원을 위해서는 예수가 나를 위해 대속의 죽음을 죽었다는 아주 단순한 진리 하나만 붙들어도 충분하겠지만, 성경의 깊이는 알고자 하면 할수록 오히려 그 목표 지점은 더욱 멀어지는 기분입니다.
이 책의 논의와 논지를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그 사람의 아들"이라는 예수의 자기 칭호를 통해 예수님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이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즉, "그 사람의 아들"이라는 칭호를 통해 예수님은 자기를 어떻게 이해했고, 또 그 칭호가 내포하고 있는 예수님의 임무는 무엇이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예수는 자신을 어떤 메시아로 이해했는가, 그가 자기 칭호로 표현하고자 했던 자기이해가 예수의 메시아적 이해와 어떻게 일치하는가를 묻습니다.
예수는 "그 '사람의 아들'"이라는 자기 칭호를 사용하여 종말에 하나님의 새 백성(= 하나님의 자녀들)을 창조하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자기 자신을 나타내고자 했다. 그래서 그들로 하여금 창조주를 "우리 아버지"로 부르고 그의 사랑과 풍요 속에서 살 수 있도록 했다"(270).
학자들 중에는 예수가 "그 '사람의 아들'"이라는 칭호를 실제로 사용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학자도 있습니다(39). 왜 "예수는 그리스도다, 주다, 하나님의 아들이다" 등과 같이 "예수는 "그 '사람의 아들'"이다"라는 칭호를 사용한 케리그마적 형식이 발견은 없는 것일까(47) 하는 질문을 제기합니다. "그 '사람의 아들'"이라는 말씀들이 교회의 창작물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문제는, 예수 시대 당시에 묵시적 '사람의 아들' 메시아 사상이 있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최근 연구(이 책은 원래 1983년 독일에서, 그리고 1985년 미국에서 처음 출판된 책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에 "최근 연구"라는 말은 1983년 어간의 상황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다행히도(?) 이 주제에 관한 신학적 논의가 오늘날까지 이 책에 실린 논의 이상으로 발전된 내용이 없다고 하니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는 신약시대 이전에는 "그 '사람의 아들'"이라는 메시아적 칭호가 없었다는 점을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합니다(70). 김세윤 박사님은 이 주제에 대한 논의를 길게 이끌어가는데, 사실 이 부분은 신학생이 아닌 일반 독자가 소화하기 다소 까다로울 것입니다.
<그 '사람의 아들' - 하나님의 아들>이 전하는 바는 이렇습니다. 예수는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았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기 원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피로물인 우리를 하나님과 화해시켰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다시금 "우리 아버지"라 부르고 그의 사랑과 풍족함 속에서 살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구원이다. 예수는 자신이 이 구원을 이루도록 예정되어 있음을 알았다. 그는 다니엘 7장을 통해서 이렇게 자기를 이해했고, "그 '사람의 아들'"이라는 자치 칭호를 사용하면서 그 이해를 표현했다. 그리고 이사야 42-61장에서 예언된 야훼의 종의 임무를 완수함으로써 그 이해를 성취했다"(199).
"그 '사람의 아들'"은 예수님의 분명한 특성(자기이해)을 보여주는 예수의 자기 호칭입니다. 예수는 그의 메시아적 자기 이해를 표현하기 위해서 자기 자신에게 메시아, 다윗의 아들, 또는 하나님의 아들과 같은 전통적인 메시아적 칭호를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칭호들은 정치적 정복자로서의 메시아에 대한 당시의 기대를 담고 있었을 뿐 아니라, 이러한 정치적 의미를 담고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예수가 이해한 메시아의 개념을 표현하기에는 적절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당시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해했던 메시아적 개념과는 상이한 독특한 메시아적 이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219). 그런 점에서 "그 '사람의 아들'"은 완벽한 칭호였습니다(271). 왜냐하면 예수는 "한 사람의 아들 같은" 신적 인물의 관점에서 자신이 메시아임을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의 아들' - 하나님의 아들>은 예수의 자기 칭호에 대한 이 같은 해석이 하나님에 대한 아바-호칭, 하나님 나라(basileia) 선포, 메시아적 자기 인식이라는 세 가지 독특한 방법으로 표현된 예수의 자기 이해와 잘 일치된다는 것을 논증합니다.
<그 '사람의 아들' - 하나님의 아들>은, "그 '사람의 아들'"이라는 이 색다르고 이해하기 어려운 칭호는 예수께 매우 적절했을 뿐 아니라, 유일하게 선택할 수 있었던 자기 칭호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진정한 정체성을 나타낼 수 있는 칭호로 이보다 완벽한 칭호는 없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는 누구인가?", 나아가 "예수, 그는 자신을 누구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얻고 싶다면, 우리는 그 해답을 "그 '사람의 아들'"이라는 호칭에서 얻을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힘써 여호와를 알자"고 초청합니다. <그 '사람의 아들' - 하나님의 아들>은 힘써 여호와를 알려고 하는 책입니다. "연구원으로서 수행한 연구의 결과물"이기 때문에 일반 독자가 소화하기에는 다소 어려운 논증의 과정이 포함되어 있지만, 복음을 맡은 사람이라면 한 번은 진지하게 읽어봐야 할 책입니다. 아마도 현대 '고전'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오래 사랑받지 않을까 싶습니다. 김세윤 박사님의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우리에게 이런 신학자, 이런 신학서적이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