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변한다
밥 고프 지음, 최요한 옮김 / 아드폰테스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인생에 대한 태도의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책!

 

 

올해 읽은 책 중에 단연 베스트로 꼽고 싶은 책입니다. 책을 다 읽자마자 당장 책을 몇 권 주문해 주변에 선물을 했습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이 이렇게 흥미로운 일이었어?"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고, "나에게도 이런 삶이 가능했던 거야?"라고 반신반의하면서도, "여기 정말 내가 살고 싶었던 삶의 모범이 있어!"라는 것을 알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의 이야기는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의 터 위에 쓰여진 책이지만, 워싱턴의 한 괴짜 변호사의 이야기로 읽어도 충분히 재미있는 책입니다.

 

디즈니랜드에 있는 톰소여 섬이 그의 사무실이고, "가서 자네도 교과서를 사게"라고 한마디만 해달라며 학장실 앞에서 무작정 버티고 졸라 되지도 않는 성적으로 로스쿨에 입학을 하고, 세계 각국 정상들에게 편지를 보낸 후 초대 답장이 온 곳을 방문하기 위해 자녀를 데리고 세계 일주를 떠나고, 뚜렷한 계획은 없지만 사람과 친구가 되면 할 일이 보인다는 믿음을 가지고 무작정 우간다 행 비행기에 올라타는 '기발한' 변호사를 만나볼 수 있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으로 변한다>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이것입니다. "계획 세우기를 멈추고 새로운 변화를 위해 믿음을 '실천'하라"는 것, "사랑은 생각에 머물지도 않고, 계획에 머물지도 않다"는 것, 고로 "사랑은 행동하는 것"이라는 어찌보면 지극히 평범한 메시지입니다(17). 이 책의 위대함은 그 옳음을, 그 진리를 말로 전하지 않고, 삶으로 직접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충만한 삶, 신나는 일이 가득한 삶을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랑으로 변한다>는 바로 그런 삶이 언제든지, 누구에게든지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어려운 일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태도입니다. 계속 '다음 기회'로 미루기만 할 것인지, 아니면 당장 행동할 것인지!

 

 

 

"거절하면 죽을 것 같은 초대가 딱 하나 있는데 나는 늘 거절할 핑계를 찾는다. 날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온전히 몰입하는 인생, 기발함이 넘치고 사랑으로 행하는 인생을 살라는 초대다. 그 초대장은 봉투에 담겨 오지 않는다. 햇살과 새소리와 주방에서 느릿느릿 풍기는 커피 향에 실려 찾아온다. 인생을 인생답게 살라는 초대. 오늘 하루 더 경이로운 인생에 온전히 몰입하라는 초대다. 백안관의 초대를 거절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충만한 삶을 살라는 초대를 거절하는 사람은 많다"(108).

 

인생에게는 세 가지 "C"가 필요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기회(chance), 선택(choice), 그리고 세 번째 "C"는 도전(challenge)입니다. 직장 동료들에게 이 문제를 내었더니 신용(credit), 카드(card), 그리고 현금(cash)라고 대답을 해서 한참 웃었습니다.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보였기 때문입니다. <사랑으로 변한다>는 이처럼 우리의 발목을 쥐고 있는 족쇄에서 벗어나, 충만한 삶, 기발한 삶, 사랑으로 가득한 삶을 살라는 강력한 초대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삶으로 갈 수 있는 길이 바로 'challenge', 도전이라고 말합니다.

 

<사랑으로 변한다>를 읽으며 크리스천으로서 꽤 뜨끔했습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만났던 그리스도인들은 대부분 나약했고 뭔가를, 또 누구를 응원하기보다는 반대하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25). 그리고 또 이렇게 말합니다. "믿음이란 올바른 것에 대해 아는 것도, 일련의 규칙을 지키는 것도 아니었다. 믿음이란 누군가의 곁을 지키고 희생하는 것이므로 그보다 훨씬 더 값진 것이다"(27).

 

저자는 살리는 일,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을 하고 싶어 '변호사'가 되기로 했고, 또 그러한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자신의 한계를 바라보며 한탄하지도 않았고, 변호사가 되기 위해 거창한 계획을 세우지도 않았습니다. 그의 삶의 원동력은 사랑이었고, 그는 그 사랑을 '실천'했을 따름입니다. 그리고 이런 인생의 교훈을 전합니다. "우리가 할 일은 여러 사람을 살리는 것이다. 하나님은 늘 사람을 살리려고 하신다. 그리고 그 일을 위해 자격이 없는 사람을 쓰시는 게 보통이다"(93).

 

사랑으로 가득하고, 기발함으로 가득한 이 괴짜 변호사 선생님은 아름다운 자연을 마주할 때면, 그것을 하나님의 '구애'라고 해석합니다. 인생에 다가오는 역경은 흥미로운 모험의 여정 가운데 지나쳐야 하는 하나의 난관이라고 여기고 힘차게 헤쳐 나갑니다. 사실 모험은 그런 난관이 있어 더 흥미진진해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줍니다.

 

<사랑으로 변한다>는 말합니다. 계획을 세우지 말고, 큰 생각을 품으라고! 하나님이 초대하시는 모험, 인생 여행에는 우리가 소화해야 할 빡빡한 일정 따위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좋아하는 게 뭔지, 관심을 가지는게 뭔지, 영혼의 깊은 곳에서부터 간절히 바라는 게 뭔지, 이 세상에서 가장 경험하고 싶은 게 뭔지"(168). 그리고 바로 "그걸 해보러 가자"고 우리에게 속삭이십니다. 이 초대에 응하느냐, 거절하느냐는 우리에게 달렸습니다. 언제나 사랑이 그 길을 열어줄 것입니다. 내 계획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초대에 응할 때,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들로 우리 삶이 채워질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내가 존재하는 이유라고 여기는 걸 택하고 또 택하라"(27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북유럽 스타일 손뜨개 북유럽 스타일 시리즈
하야시 고토미 지음, 배혜영 옮김 / 진선아트북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북유럽 스타일의 10가지 손뜨개 기법, 손뜨개 고급과정에 도전해보세요!

 

 


(에스토니아의 독특한 '스파이럴')

 

언제부터인가 지하철을 타면 언제나 똑같은 풍경이 연출됩니다. (과장 조금 보태서) 열에 아홉은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있습니다. 손에 종이책을 들고 있는 사람이 튀어보일 정도입니다. 그런데 요즘처럼 찬바람이 부는 철이면 지하철 안에 가끔 또다른 진풍경이 연출됩니다. 이동하는 지루한 시간을 견디고 있거나, 스마트폰으로 심심함을 달래고 있는 사람들 사이로 열심히 뜨개질을 하는 분들이 보입니다. 빠른 손놀림이 신기하고, 열중하여 뜨는 모습이 사뭇 진지하여 넋을 놓고 바라본 적도 여러 번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속으로 '정말 생산적인 취미를 가지고 계시구나' 감탄하곤 합니다.

 

어릴 때 고모 옆에 붙어 앉아 머리띠를 떠보고, 목도리를 떠보고, 벙어리장갑을 떠보고, 전화기 받침같은 깔개를 떠본 것이 전부이지만, 학업에 쫓기고 사회생활에 쫓기느라 그런 기억은 까마득히 먼 옛일이 되어버렸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늘 코바늘을 다시 잡아보고 싶은 소망이 숨어 있었습니다. 자율학습 시간에 책상 밑으로 털실을 숨겨두고 선생님 몰래 뜨개질을 했던 그때의 기억이, 지금도 가끔씩 제 마음을 간질이곤 합니다.

 

<북유럽 스타일 손뜨개>는 얇고 가벼운 책이지만, 눈에 '확' 띄는 스타일을 자랑합니다. 무엇보다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은 소품들의 '배색'입니다. 털실 제품인데도 어딘지 차가워 보이는 면이 있고, 그래서 더 멋스럽고 고급스럽게 느껴집니다. 북유럽의 차갑고 투명한 공기가 색깔을 빚어낸 듯, 청량감이 가득한 배색이 정말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노르웨이의 크라운)

 

<북유럽 스타일 손뜨개>는 저자가 직접 북유럽에서 배운 손뜨개 기법 10가지를 소개하며, 이를 응용한 소품의 도안을 제공합니다. 핀란드 스타일의 (1) 코르스네스 지방의 알록달록한 코바늘뜨기인 '코르스네스', (2) 스웨터 칼라나 재킷 소매에 달면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할 수 '퍼 테이프', 덴마크 스타일의 (3) 독가적인 색깔의 사각 모티브를 만드는 '도미노뜨기', (4) 스웨터에 달거나 신발 끈으로 만드는 '아이코드뜨기', 스웨덴 스타일의 (5) 겉에서 떴다가 안에서 떴다가 하는 '자작나무뜨기', 에스토니아 스타일의 (6) 체인스티치를 연상시키는 '키흐누 비츠', (7) 독특한 원통뜨기 기법의 '스파이럴', 노르웨이 스타일의 (8) 둘쭉날쭉한 모양이 재미있는 '크라운', (9) 2개의 바늘로 주머니 모양을 만드는 '주머니 뜨기', (10) 가터뜨기를 하면서 비즈를 넣는 '비즈 니팅'이 그 10가지입니다.

 

그런데 손뜨개를 처음 시작하는 초보들에게는 과정이 다소 복잡하고 어려워 보입니다. 화려한 배색이 말해주듯이, 기본적으로 2가지 이상의 색을 섞어 떠야 합니다. 또 모양이 화려한 만큼, 단순한 기법이 반복되지 않기 때문에 중간 중간 실수할 가능성도 높습니다. 어쩌다 코가 하나 빠진 것이 발견되면 미련 없이 털실을 풀어버리곤 했는데, <북유럽 스타일 손뜨개>는 한 번 어긋나면 중간에 다시 시작하기도 어려워보입니다. 손뜨개에 숙련된 분들이 새로운 뜨개 기법을 배우는 고급과정으로 활용하면 좋을 듯합니다.

 

 

  

 

수영 강습을 다니며 평영 동작을 배울 때, 동양사람들과 서양사람들이 정반대의 손동작을 한다는 것을 알고 신기해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손뜨개를 하며 실 거는 방법에도 프랑스 방식과 미국 방식이 있다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처음 배울 때 그렇게 배웠거나, 단순한 습관의 차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었나 봅니다. 뜨개 기법에 따라 프랑스 방식이 유용할 때도 있고, 미국 방식이 유용할 때도 있으니 실 거는 방법도 연마해야 할 하나의 기술입니다.

 

초보가 시도하기에는 과정이 다소 복잡해 보이고 소개하는 도안도 몇 개 되지 않지만, 당장은 어렵더라도 꼭 익혀두고 싶은 고급 기술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무료하고 심심한 시간, 핸드폰으로 게임을 한 번씩 하고 나면 그렇게 보낸 시간이 또 후회되곤 합니다. 이마저도 강박일지 모르겠지만, 좀 더 생산적으로 시간을 보내면서 나만의 소품도 하나씩 만들 수 있다면 그야말로 일석이조, 금상첨화가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우리 어릴 땐, 학교에서 흉내라도 낼 수 있을 정도로 뜨개질도 가르쳐주었는데 요즘 학교 수업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건강한 취미 하나쯤 몸에 익히고 살고 싶어집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도 미술에 홀리다 - 미술사학자와 함께 떠나는 인도 미술 순례 처음 여는 미술관 1
하진희 지음 / 인문산책 / 201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술에 홀린 인도를 만나다

 

 

인도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성경에 등장하는 바알과 아세라 종교의 흔적이 인도에 남아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부터입니다. <인도 미술에 홀리다>에 그와 관련된 직접적인 내용은 없었지만, 관련 지식이 풍부했다면 그 흔적을 이 책에서 발견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인도 미술에 홀리다>는 한 분야를 집중 조명하지 않고, 인도 미술 전반에 걸친 이야기를 다양한 사진 자료와 함께 에세이 형식으로 풀어가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하나의 미술관으로 표현한다면, 전체를 다 돌고난 뒤의 인상은 한마디로 "천진함"이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인도 미술을 들여다본 것은 처음이니, 이것이 그들의 첫인상이라고 말해도 좋을 듯합니다. 인도하면 이제 신의 세계, 색의 세계, 예술의 세계라는 이미지가 떠오를 듯한데, 그 세 가지 세계가 모두 천진함으로 가득했습니다. 사람의 형상뿐 아니라, 태양, 코끼리, 원숭이, 황소 등 다양한 동물들의 형상으로도 표현되는 신의 모습은 장엄하고 근엄하기보다 익살스럽고, 장난스러운 분위기가 가득합니다. 옷감이고, 집이고, 장식품이고, 형형색색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인도의 색들은 유치할 정도로 현란합니다. "선택된 캔버스 공간에 한정되지 않고 현대적인 재료나 기법에 의존하지 않는"(11) 인도의 미술은 땅의 백성들의 삶에 맞닿아 있어 서양의 그것과는 대조적일 만큼 경쾌합니다. 미술을 특별한 사람들이 즐기는 고상한 그 무엇으로 구별짓지 않는 인도인들에게 미술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놀이와 같았습니다. 인도에서는 "인간이 살아가면서 만나는 거의 모든 것이 미술로 표현될 수 있다"(13)고 할 만큼 일상의 모든 공간, 모든 요소들이 미술의 주제가 되고 있었습니다.

 

"인도 사람들은 지구상 어느 나라보다도 장식 본능이 뛰어나다. 무엇이든 장식하거나 꾸미지 않으면 못 견디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아무리 가난한 시골집이라도 흙담에 문양을 그려 넣거나 채색을 해서 활기를 불어넣는다. 집에서 키우는 소에게도 장식과 치장을 해준다. 그들에게는 무엇보다도 자신들의 미의식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어서 즐거운 일일 뿐이다"(171).

 

그래서 그런지 그렇게 많은 신과 신화를 가진 나라이지만, 그들의 미술은 (종교적) 성스러움보다는 인간적인 욕망과 애환, 일상적인 삶의 이야기가 주를 이룹니다. 종교적 신념이 그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지만, 그들의 미술을 보면 그들의 중심은 신에게 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에게 가 있다고 보여집니다. 삶과 죽음은 하나라고 가르치고 죽음을 일상과 분리하지 않고 가까이에 두는 인도들이기에, 그들의 삶을 다양한 문양과 다양한 색상으로 화려하게 물들이는 모습이 더 강렬하게 와닿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인도인들의 미의식은 삶의 구석구석을 물들이고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입는 옷감은 신분을 구별하기도 하지만, 감정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흰색은 브라만 계층의 색으로 순수와 동시에 슬픔을 상징하고" "붉은색은 크랴트리아나 계층의 전사나 왕의 색으로 용맹의 상징이자 다산과 성적 에너지를 상징"하고, "힌두교도들에게 검은색은 슬픔과 나쁜 징조를 나타내는 불길한 색이었다"고 합니다(124). 민속 목공예의 전통이 잘 표현된 것 중 하나가 아이들을 위한 장난감이기도 합니다(152-153).

 

<인도 미술에 홀리다>는 사진 자료가 많아 인도 미술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도 접근하기 쉬운 책입니다. 글도 쉽고 정감있게 써 있습니다. 침을 튀겨가며 열정적으로 작품을 설명하는 도슨트처럼, 인도 미술에 완전히(?) 홀린 저자의 애정이 얼마나 각별한지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인도 미술을 좋아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에 몰리기도 합니다. 재미없는 책은 아니지만, 아직은 인도 미술에 홀렸다기보다 미술에 홀린 인도를 만났고, 그런 인도에 홀린 한 분을 알게 된 정도인 것이 살짝 아쉽습니다. 그렇지만 이만하면 첫 만남은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알래스카 100배 즐기기 - 앵커리지.페어뱅크스.주노 & 인사이드 패시지 100배 즐기기
알에이치코리아(RHK) 편집부 엮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김상덕 씨~~~!" 

알래스카의 설원에 서서 나도 이 이름을 목놓아 불러볼 수 있을까요. <알래스카 100배 즐기기>를 탐닉(!)하며 기분 좋은 꿈을 꾸어봅니다. 그런데 알래스카에서 김상덕 씨를 찾겠다고 무작정 길을 나선 '무한도전'팀의 도전이 얼마나 무모했는지 새삼 깜짝 놀랐습니다. 그들이 하는 일은 늘 무모하지만, 이 보다 더 무모하기도 힘들 것 같습니다.

 

우선 알래스카는 우리나라 16배 크기를 자랑하는 광활한 땅이라고 합니다. 이 책에서 가장 많이 강조되는 단어 중 하나가 바로 "넓다"라는 말입니다. 이 여행 가이드는 "넓다"라는 말을 잔소리처럼 되뇌입니다. 그래서 한마디로 정의내리기 힘든 곳이 바로 알래스카이기도 합니다. 이 땅은 계절과 장소에 따라 다채로운 얼굴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이 곳을 여행하려면 변덕스러운 날씨를 고려해야 하고, 길고 혹독한 추위에도 만반의 대비를 해야 하고, 이동 시간과 루트도 꼼꼼히 계산해 넣는 것이 좋습니다. 만일 관광이 목적이라면 6월 초부터 8월 말까지의 따뜻한 계절이 관광을 하는 데 최적의 시기라고 합니다. 그 이 외의 다른 계절은 시설들이 문을 닫거나 진행하는 투어도 많지 않다고 합니다(365). 무한도전팀이 '김상덕 씨'를 찾으려고 알래스카를 방문한 기간은 2월 달이었습니다. 끝도 없는 길을 달리고 달리다 추위와 배고픔에 지쳐 결국 차를 세우고, 눈을 녹여 라면을 끓여 먹으려고 바람과 사투를 벌이던 장면이 떠오릅니다. 알래스카는 누구에게도 이런 추억(?)을 안겨줄 수 있는 "넓은" 땅입니다.

 

 

 

 

 

 

<알래스카 100배 즐기기>는 나에게 2가지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알래스카에 대해 2가지 그릇된 상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알래스카 하면 설원이 자동으로 그려질 만큼, 저는 알래스카에는 '겨울'이라는 한 계절만 존재하는지 알았습니다. 그래서 알래스카 여행은 단조로울 것이라는 편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좀처럼 지지 않는 태양 아래, 사람도 동물도 약동하는 여름"(12)이 그곳에 존재한다는 사실에 저에게는 충격에 가까웠습니다. 저자는 "당신이 어느 쪽이든 하나의 계절만 경험했다면, 그것은 알래스카의 매력을 반밖에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라고 하네요. 알래스카의 여름은 6월부터 8월 말까지 약 3개월 간 계속되는데, 일조시간이 극도로 길기 때문에 눈이 녹자마자 식물은 놀라운 속도로 성장한다고 합니다. 싱싱한 초록이 번지는 알래스카라니요! 또 한 가지, 공용어는 영어지만, 남부를 중심으로 스페인어도 널리 사용되고 있는 사실도 전혀 몰랐던 사실 중 하나입니다(세상은 넓고 배워야 할 것도 참 많네요). 

 

 

 

 

 

"아는 것이 많아서 먹고 싶은 것도 많겠다"는 말을 친구들끼리 자주 합니다. 여행도 아는 것이 많아야 즐기고 싶은 것이 많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여름이 존재하지만 그래도 1년 중 대부분이 겨울인 알래스카는 길고 혹독한 겨울을 견디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겨울을 더욱 즐겁게 보내려고 애쓴다고 합니다. <알래스카 100배 즐기기>는 알래스카에서 즐길 수 있는 다채로운 '액티비티'를 소개합니다. 경치는 장관이겠지만, 여행 자체는 단조로울 것이라는 저의 편견이 여지 없이 박살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다양한 '액티비티' 중에서도 단연 여행자들의 마음을 잡아끄는 것은 오로라 관측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로라 관측 하나만으로도 알래스카는 제게 여행할 이유가 충분한 곳이 되었습니다. 에스키모인들은 심한 추위 속에 북극의 밤하늘을 장식하는 수상한 빛을 보고 영혼의 춤이라고 생각했다고 하네요(19). 오로라의 출현은 태양 활동과 날씨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깊은 밤이 돌아오는 8월 중순부터 다음 해 4월 초까지가 오로라 관측에 가장 좋은 시즌이라고 추천합니다. 이 시기에 페어뱅크스 주변에서 3박 이상 머무르면 오로라를 볼 확률이 꽤 높다고 하니 오로라 관측이 그리 꿈 같은 일만은 아니라는 기대도 생깁니다. 단, 껴입고, 또 겹겹이 껴입으며 추위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는 것!

 

이 밖에도, 야생동물 관찰, 카누 & 카약, 크루징이 제 마음을 잡아끕니다. 미국의 다른 모든 주의 해안선을 합한 것보다 길고, 변화무쌍하며, 눈 앞에서 거대한 빙하가 무너져 내리고 흑등고래가 점프하는 드라마틱한 광경을 즐길 수 있는 크루즈 여행에 욕심이 생깁니다.

 

 

 

 

 

<알래스카 100배 즐기기>는 "욕심부리지 않는 것이 성공의 열쇠"라고 조언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알래스카는 넓습니다. 그래서 이동 시간이 많이 걸리고, 하고 싶은 일을 이것저것 생각한다 해도 날씨가 도와주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갖가지 변수를 계산해 넣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매우 광대한 알래스카는 교통수단이나 숙박 시설이 한정적이기 때문에 날씨에 따라 스케줄을 변경해야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합니다(347).

 

그래서 알래스카 여행은 어느 여행보다 목적을 분명히 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무엇을 보고 싶은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따라 크게 맞는 시기가 결정되고, 액티비트가 가능한 지역, 루트 등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몇 가지 중요한 팁을 제공합니다. 여행기간에 따라 10일 정도의 여행이라면 체류 장소는 3곳 이하로 정하고 각 장소에서 2박 이상의 일정을 계획하는 것이 좋고, 최대한 알래스카의 다양한 모습을 보고 싶은 사람은 패키지 투어를 선택하는 것도 좋다고 합니다. 최근 수년 간 관행되는 투어는 전세기를 이용해 알래스카(앵커리지나 페어뱅크스)까지 직접 갈 수 있기 때문에 시간도 많이 단축된다고 합니다. 개인여행을 선호하는 경우에도 패키지 투어의 스케줄을 참고해 계획을 세우는 것도 좋은 전략입니다. <알래스카 100배 즐기기>는 약 일주일간의 일정으로 6가지 테마의 여행 코스를 추천하고 있으니 꼭 참조해 볼 일입니다.

 

여행은 떠나기 전이 더 설레인다고 하는데, 100배 즐기기 시리즈는 볼 때마다 즐거운 설레임이 가득합니다. 때로 떠나고 싶은 욕구가 너무 간절할 때는 그 설레임마저 고통이 되기도 하지만, 그것 또한 그 자체로 즐거운 고통입니다. 100배 즐기기 시리즈 덕분에 즐거운 고통과 꼭 이루고픈 소원이 하나 더 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 사람의 아들 - 하나님의 아들
김세윤 지음, 최승근 옮김 / 두란노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예수는 자신이 하나님에 의해 임명받은 자라는 자기이해를 "그 '사람의 아들'"이라는 자기 칭호를 통해 표현하고자 한다"(127-128).

 

"예수, 그는 누구인가?" 이 질문은 오고 오는 세대가 물어야 할 가장 중요한 질문입니다. 왜냐하면 이 질문에 대한 대답에 따라 우리는 영원한 형벌에도, 영원한 구원에도 처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기독교가 지금까지 전하고 선포하는 진리입니다. 그러니 누구나 한 번은 반드시 이 질문 앞에 서야 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더, 정작 이 땅에 발 딪고 살았던, 예수, 그는 자신을 누구라고 인식했을까요? 어떤 학자들은 예수는 스스로를 메시아로 생각하지 않았고, 따라서 하나님의 아들(신성)이라고 주장하지도 않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예수를 신격화하고 종교화한 것은 초대 교회의 작품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완전한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완전한 인간이셨던 그분은 스스로를 누구라고 인식했을까요? 김세윤 박사님의 <그 '사람의 아들 - 하나님의 아들>을 읽으며, 다시 생각해보게 된 질문이 바로 이것입니다. 교회에서 성경을 가르치고, 예수가 어떤 분이신가를 아무 의심 없이 전하면서도, 예수는 자기 이해를 어떻게 했는가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무관심했다는 반성이 들었습니다.

 

김세윤 박사님의 <그 '사람의 아들' - 하나님의 아들>은 논문을 쓰기 위한 사전 작업(?) 같은 느낌을 줍니다. "그 '사람의 아들'"이라는 주게를 연구함에 있어서 신학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은 무엇인지,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물들은 무엇인지, 그리고 이를 종합한 저자의 개요적인 논지가 정리되어 있습니다. 신학생일 때 이 책을 읽었을 때와 목회자로서 이 책을 읽었을 때의 감회가 사뭇 다릅니다. 신학생일 때는 지적 논리를 따라가는 학문적 호기심이 많았다면, 목회자로서 이 책을 읽을 때는 우리가 선포하고 있는 복음의 진정성 문제, 우리의 해석은 올바른가 하는 자기 비판적 책 읽기가 되었습니다. 구원을 위해서는 예수가 나를 위해 대속의 죽음을 죽었다는 아주 단순한 진리 하나만 붙들어도 충분하겠지만, 성경의 깊이는 알고자 하면 할수록 오히려 그 목표 지점은 더욱 멀어지는 기분입니다.

 

이 책의 논의와 논지를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그 사람의 아들"이라는 예수의 자기 칭호를 통해 예수님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이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즉, "그 사람의 아들"이라는 칭호를 통해 예수님은 자기를 어떻게 이해했고, 또 그 칭호가 내포하고 있는 예수님의 임무는 무엇이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예수는 자신을 어떤 메시아로 이해했는가, 그가 자기 칭호로 표현하고자 했던 자기이해가 예수의 메시아적 이해와 어떻게 일치하는가를 묻습니다.

 

 

예수는 "그 '사람의 아들'"이라는 자기 칭호를 사용하여 종말에 하나님의 새 백성(= 하나님의 자녀들)을 창조하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자기 자신을 나타내고자 했다. 그래서 그들로 하여금 창조주를 "우리 아버지"로 부르고 그의 사랑과 풍요 속에서 살 수 있도록 했다"(270).

 

학자들 중에는 예수가 "그 '사람의 아들'"이라는 칭호를 실제로 사용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학자도 있습니다(39). 왜 "예수는 그리스도다, 주다, 하나님의 아들이다" 등과 같이 "예수는 "그 '사람의 아들'"이다"라는 칭호를 사용한 케리그마적 형식이 발견은 없는 것일까(47) 하는 질문을 제기합니다. "그 '사람의 아들'"이라는 말씀들이 교회의 창작물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문제는, 예수 시대 당시에 묵시적 '사람의 아들' 메시아 사상이 있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최근 연구(이 책은 원래 1983년 독일에서, 그리고 1985년 미국에서 처음 출판된 책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에 "최근 연구"라는 말은 1983년 어간의 상황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다행히도(?) 이 주제에 관한 신학적 논의가 오늘날까지 이 책에 실린 논의 이상으로 발전된 내용이 없다고 하니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는 신약시대 이전에는 "그 '사람의 아들'"이라는 메시아적 칭호가 없었다는 점을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합니다(70). 김세윤 박사님은 이 주제에 대한 논의를 길게 이끌어가는데, 사실 이 부분은 신학생이 아닌 일반 독자가 소화하기 다소 까다로울 것입니다.

 

<그 '사람의 아들' - 하나님의 아들>이 전하는 바는 이렇습니다. 예수는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았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기 원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피로물인 우리를 하나님과 화해시켰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다시금 "우리 아버지"라 부르고 그의 사랑과 풍족함 속에서 살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구원이다. 예수는 자신이 이 구원을 이루도록 예정되어 있음을 알았다. 그는 다니엘 7장을 통해서 이렇게 자기를 이해했고, "그 '사람의 아들'"이라는 자치 칭호를 사용하면서 그 이해를 표현했다. 그리고 이사야 42-61장에서 예언된 야훼의 종의 임무를 완수함으로써 그 이해를 성취했다"(199).

 

"그 '사람의 아들'"은 예수님의 분명한 특성(자기이해)을 보여주는 예수의 자기 호칭입니다. 예수는 그의 메시아적 자기 이해를 표현하기 위해서 자기 자신에게 메시아, 다윗의 아들, 또는 하나님의 아들과 같은 전통적인 메시아적 칭호를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칭호들은 정치적 정복자로서의 메시아에 대한 당시의 기대를 담고 있었을 뿐 아니라, 이러한 정치적 의미를 담고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예수가 이해한 메시아의 개념을 표현하기에는 적절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당시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해했던 메시아적 개념과는 상이한 독특한 메시아적 이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219). 그런 점에서 "그 '사람의 아들'"은 완벽한 칭호였습니다(271). 왜냐하면 예수는 "한 사람의 아들 같은" 신적 인물의 관점에서 자신이 메시아임을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의 아들' - 하나님의 아들>은 예수의 자기 칭호에 대한 이 같은 해석이 하나님에 대한 아바-호칭, 하나님 나라(basileia) 선포, 메시아적 자기 인식이라는 세 가지 독특한 방법으로 표현된 예수의 자기 이해와 잘 일치된다는 것을 논증합니다.

 

<그 '사람의 아들' - 하나님의 아들>은,  "그 '사람의 아들'"이라는 이 색다르고 이해하기 어려운 칭호는 예수께 매우 적절했을 뿐 아니라, 유일하게 선택할 수 있었던 자기 칭호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진정한 정체성을 나타낼 수 있는 칭호로 이보다 완벽한 칭호는 없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는 누구인가?", 나아가 "예수, 그는 자신을 누구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얻고 싶다면, 우리는 그 해답을 "그 '사람의 아들'"이라는 호칭에서 얻을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힘써 여호와를 알자"고 초청합니다. <그 '사람의 아들' - 하나님의 아들>은 힘써 여호와를 알려고 하는 책입니다. "연구원으로서 수행한 연구의 결과물"이기 때문에 일반 독자가 소화하기에는 다소 어려운 논증의 과정이 포함되어 있지만, 복음을 맡은 사람이라면 한 번은 진지하게 읽어봐야 할 책입니다. 아마도 현대 '고전'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오래 사랑받지 않을까 싶습니다. 김세윤 박사님의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우리에게 이런 신학자, 이런 신학서적이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