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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튜이션 - 40년간 연구한 인지과학 보고서
게리 클라인 지음, 이유진 옮김, 장영재 감수 / 한국경제신문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최선의 선택이 언제나 최고의 의사결정은 아니다!
평소 쇼핑을 즐기지 않는 나는 어쩌다 물건을 하나 사려고 하면 머리에 쥐가 난다. 무슨 상품이 그렇게 다양한지, 합리적인 소비를 원한다면 두루마리 휴지 한 묶음만 사려고 해도 비교, 분석해봐야 할 정보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웬 꼼수를 그렇게 부리는지, 묶음 갯수는 같은데 롤 길이가 다르고, 높이가 다르고, 질이 다르고, 가격이 다르다. 평소에 쓰던 걸 사는 것이 쉽겠지만, 쇼핑에 실패하지 않아야 한다는 긴장, 합리적인 소비를 해야 한다는 강박에 붙들리면 내 머릿속은 자동으로 비교, 분석에 돌입한다. 그 선택의 과정 속에 낭비하게 되는 시간까지 계산에 넣어야 합리적인 소비인가? 아, 골치가 아프다.
사람들은 어떻게 탁월한 결정을 내리는가? 의사결정 과정을 연구하는 학문에서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테이터를 비교 분석하는 과정을 거쳐 합리적인 선택을 이끌어내는 분석적 의사결정이고, 다른 하나는 이른바 "촉"에 의한 선택, 직관적 의사결정이 그것이다. 일핏 생각하기에는 분석적 의사결정 과정이 안전하며 믿을 만하다는 인식이 있고, 직관적 의사결정은 다소 모험적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그러나 <인튜이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직관적 의사결정"의 힘이 세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꼭 필요한 순간이 있다는 것을 역으로 증명한다.
저자가 첫 번째로 연구한 사람은 '소방관'이다. 그는 첫 번째 프로젝트로 소방관을 인터뷰하며, 그들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생사가 걸린 결정을 내리는가에 주목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탱크부대 장교들, 미 해군 장교들, 간호사들의 의사결정을 지켜보며, 어떻게 그토록 다급한 상황 속에서, '초능력'으로 여겨질 만큼 놀랍고도 현명한 결정을 그토록 신속하고 능숙하게 내릴 수 있는지 살폈다. 그리고 얻은 결론이 바로 <인튜이션>, 즉 직관의 힘이다.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맹신하는 사람들은 직관의 힘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초를 다투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는 분석적 의사결정 과정이 코메디가 될 수 있다.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골든타임'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내놓라하는 전문의들이 모여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고 우왕좌왕 하는 동안 응급한 환자의 상태는 계속해서 악화되고 있었다. 긴박한 상황에서 신속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전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데이터를 분석한다고 문제를 붙들고 있으면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이러 할 때, 바로 더 나은 방식을 찾도록 해주는 것이 '인튜이션'이다.
그렇다면 직관의 힘은 어떻게 길러지는가? 타고나는 것인가, 아니면 학습될 수 있는 것인가? <인튜이션>에서 찾아낸 답은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의 축적으로 직관의 힘을 기를 수 있다는 것이다. 직관의 힘을 기를 수 있는 방법으로 맥락을 포착하는 멘탈 시뮬네이션, 문제를 해결할 '정곡'을 찾아내는 레버리지 포인트,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힘, 스토리의 힘, 유추와 비유, 팀마인드의 힘을 소개한다. 이런 것들을 자연주의 의사결정이라고 한단다.
<인튜이션>은 직관의 힘을 응용하는 두 가지 차원을 이야기한다. 첫째는 "비교가 필요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예리하게 판별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훈련과 관계"된 것이다(416). (적절한 비유인지 잘 모르겠지만, 책의 심오한 설명을 나의 생활 수준으로 끌어내려 적용을 해보자면) 첫 번째는, 휴지 하나를 사기 위해 몇 시간씩 상품 정보를 비교하는 것보다 주변의 입소문이나 경험치에 의한 선택이 더 전략일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두 번째는 운전을 잘 하는 사람을 키워야 한다고 가정했을 때, 많은 시간 전문지식을 교육시킨 후, 그 전문지식에 의존해서 상황에 대처하는 훈련을 하는 것보다, 필요한 전문지식을 기반으로 경험을 축적하며 운전의 '감'을 익히는 훈련이 더 현명한 결정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신속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서는 분석적 의사결정보다 직관적 의사결정이 필요하다는 말은, 정신 차리고 생각해보면 사실 지극히 당연한 말이다. 그럼에도, <인튜이션>이 우리에게 신선하게 느껴지는 것은 합리성이나 논리성을 맹신하는 '지적'인 사람들을 한 방 먹이는 책이기 때문이고, 빅테이터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능력은 데이터를 더 꼼꼼하게 분석하는 능력이 아니라, 생각들을 빠르게 통합할 수 있는 능력, 즉 직관의 힘이라는 사실을 환기시켜 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인튜이션>은 '40년간 연구한 인지과학 보고서'이다. 의사결정 과정을 연구하는 학도들에게는 연구 과정을 날 것으로 읽는 자체로 즐거움이겠지만, 일반 독자들에게는 이론을 한 번 씹어서 생활 속에서 이론을 찾아내고 적용해볼 수 있는 방식으로 풀이를 해주었다면 더 즐거운 책 읽기가 되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