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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서 연어낚시
폴 토데이 지음, 김소정 옮김 / 마시멜로 / 2012년 8월
평점 :
절판
"불가능하니까 믿는다"(크레도, 크비아 임포시빌레 에스트, 404)
불가능한 꿈! 그런 꿈을 꾸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대통령이 되겠다, 과학자가 되겠다 하는 그런 꿈말고, 투명인간이 되겠다든지, 공간이동을 하겠다든지, 무지개를 타보겠다든지, 아니면 이 책의 주인공처럼 사막에 연어낚시터를 만들겠다든지 하는 꿈말입니다. 어렸을 때, 우리는 이런 꿈을 꾸는 친구를 '돈기혼테'라고 부르는 낭만이 있었습니다. 요즘은 불가능하다면 아예 꿈을 꾸어볼 시도조차 하지 않는 듯합니다. 한창 자라나는 청소년이 지독히(!) 현실적인 계획을 세워놓고 그게 꿈이라고 말할 때마다,'그런 걸 꿈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씁쓸해지곤 합니다. 불가능하더라도 우리 마음을 뜨겁게 달궈놓을 수 있는 그런 꿈 하나 품고 살았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불가능하니까 꿈이죠! 안 그렇습니까?
여기 불가능한 꿈을 꾸는 거부가 한 분 있습니다. 예면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석유로 재산을 모은 게 분명한 '모하메드' 족장은 그의 고국에, 그러니까 사막 한 가운데에 연어가 뛰노는 강을 만들겠다는 '엉뚱한' 꿈을 꿉니다. "족장은 자신이 돈을 충분히 쓰면 예멘 우기 때 연어가 뛰어놀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고 믿었"고, "그에게는 큰일을 해낼 수 있는 의지와 돈이 있었"습니다(134). "내 국민 모든 계층, 모든 종류의 사람이 강둑에 나란히 서서 연어를 잡는"(74) 모습이 그의 마음속에서는 선명한 확신으로 들어차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멘 수로에 스코틀랜드의 살아 있는 연어를 갖져다줄 영국 어류학자에게 큰돈을 쓰고 싶어했습니다. <사막에서 연어낚시>는 이 엉뚱한 꿈을 꾸는 모하메드 족장과 그의 일을 돕는 부동산 컨설턴트 회사의 해리엇, 그리고 영국 국립해양원의 어류학자 존스 박사가 '터무니없고 위험한 연어 프로젝트'를 완성해가는 이야기입니다.
"대체 이게 뭐라고!" 사막에 연어낚시터를 만들겠다는 프로젝트를 위해 "그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얼마나 많은 과학적 연구를 해야 하는지, 어떤 생태 모형을 구축해야 하는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지, 예멘 수로의 용존 산소량을 어떻게 측정해야 하는지, 세균 표본은 어떻게 조사해야 하는지" 최고의 과학 지식과 기술이 총동원되고, 천문학적인 돈이 쏳아부어집니다. 거기에 이 엉뚱한 프로젝트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음모(?)가 진행되고, 이 연어 프로젝트가 이슬람의 종교와 문화를 침범한다는 이유로 모하메드 족장을 암살하려는 계획이 세워지고, 스코틀랜드 물고기가 사막에서 뜨거운 열기에 말라 죽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저항이 생겨나고, 각종 언론은 이에 대해 저마다의 논평을 쏳아냅니다. 한마디로 '진지한' 촌극이 벌어집니다.
불가능한 꿈이 한 축이라면 대립각을 세우는 축의 꿈은 이성적인 꿈, 실현가능한 꿈, 정상적인 꿈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책을 읽어갈수록, 오로지 승진과 성공을 위해 빈틈없는 계획을 세워놓고 전력질주하는 메리의 꿈(존스 박사의 아내), 존스 박사가 진행하는 프로젝트의 공을 자기의 것으로 가로채려는 서그든의 꿈(국립해양원 소장), 성공한 정치가라 자부하며 연어 프로젝트를 정치적인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꼼수를 피는 맥스웰의 꿈(수상관저 홍보실장)이 더 비정상적이고, 더 비뚫어지고, 더 한심하게 보이는 건 왜일까요.
<사막에서 연어낚시>의 결말은 다소 충격적입니다. 예상을 빗나가는 결말이라는 듯입니다. 인간 사회의 한 단면을 비꼬듯 꼬집는 풍자가 일품이지만, 이야기의 메시지는 훨씬 따뜻하고 생생합니다. 지구촌에서 벌어지고 있는 진짜 비극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해줍니다. 우리가 꾸어야 진짜 꿈이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이 책에서 아주 인상 깊은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존스 박사와 해리엇이 연어를 풀어놓을 건곡을 둘러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주전자를 이고 손에도 무언가를 들고" 있는 소녀가 다가옵니다. 수줍게 웃으며 짧막한 인사를 건넨 소녀는 그들에게 시원한 물과 빵 한 조각을 대접합니다. "소녀는 낯선 두 사람이 뜨거운 햇살 아래서 걷는 모습을 보고 자신이 하던 일을 내려놓고") 그들을 대접하기 위해 온 것입니다. "그것이 그곳의 전통이었고,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는 믿음 때문"(286)입니다. 존스 박사와 해리엇은 "성서에 나오는 장면" 같은 그 단순한 상황에서 경이로움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묻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이런일이 가능할까요?"
그들은 둘 다 머리를 흔듭니다. "이런 한적한 곳에서 모르는 사람이 목 마른 사람에게 물을 준다면 의심을 받거나 사악한 동기가 있다고 생각할 것'이고, "우리나라에서 누군가가 그 소녀처럼 다가온다면 머리가 조금 이상한 사람이라거나 구절하는 사람이라고 여길 것"이고, "그런 사람에게는 딱딱하고 불친절하게 대하거나 무시할 테고, 심하면 무례하게 굴 것"(286-287)이기 때문입니다.
모하메드 족장처럼, 그리고 이 장면의 소녀처럼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는 믿음"대로 사람이 우리 주변에, 이 사회에 과연 몇이나 될까요? 잘못된 길인줄 알면서도 가고, 이 길이 아닌 것 같은 의심이 생겨도 가고, 방향을 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데도 모두에게 떠밀려 그 길을 가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가 가진 과학적 지식과 상식으로 연어 프로젝트가 "터무니 없고 위험한 프로젝트"라고 평가했던 존스 박사가 모하메드 족장의 믿음에 동화되고, 소녀가 대접해준 그 시원한 물에서 희망(프로젝트의 성공 가능성)을 발견했던 것처럼, 어쩌면 우리가 불가능하다 낙인 찍어버린 꿈 속에 진정한 삶의 희망과 변화의 가능성이 내포되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사막에서 연어낚시>를 읽으며, 불가능한 꿈을 한 번 다시 꾸어보자고 제안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