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마음을 들여다보다 - 내 인생을 뒤흔든 명작 55편 깊이 읽기
이미령 지음 / 상상출판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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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어야 멋진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책과 더불어 내 인생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니까요. 한 권의 책이 내 삶의 몇 시간을 가져갔고, 나는 그렇게 삶을 삽니다"(91).

 

 

<사랑의 마음을 들여다보다>는 "일주일에 책 한 권을 소개하는 칼럼을 쓰기 시작하다가 방송에서 책을 소개하게 되었고, 급기야 매일 한 권의 책을 소개하는 프로그램까지 진행하게" 된 덕에, 공식적으로 책 관련 일을 한 5년 동안 천 권의 책을 미친듯이 읽어댄 저자가, 그렇게 읽어대는 중에 골라낸 명작 55권을 소개하는 책입니다. 저자는 천여 권의 좋은 책들, "그중에서 나의 벗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들을 고민 끝에 골라 엮어서" 드디어 이렇게 세상에 내밀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사랑의 마음을 들여다보다>는 책 읽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물론, 서평이나 독서론 또는 다이제스트 류의 책(글) 읽기를 그다지 즐기지 않는 독자에게도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나 역시 그런 독자였지만 이 책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으니까요. 이 책은 책을 사랑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저자의 표현대로 하면, 이 책 한 권을 손에 쥐고 있는 동안 행복했고, 천천히 읽어가는 동안 행복했고, 책을 덮으면서 행복했습니다. 이 한 권의 책이 내 삶의 몇 시간을 가져갔지만, 그 몇 시간은 잃어버린 시간이 아니라 '영원'으로 제게 남았습니다. (명작 55권을 만난 감상을 다 말할 수는 없지만) 책을 읽는 동안 저자와 함께 그동안 우리가 생명을 포장으로만 여기면서 살아왔다는 반성도 했고, 자기연민의 무게를 줄여야겠다는 결심도 했고, 무엇인가 이루었다 하는 그 순간에 기꺼이 다시 흰 띠를 매야겠구나 하는 깨달음도 얻었습니다.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천여 권의 책을 미친 듯이 읽어댄 저자는 이 책을 준비하는 동안 퍽 심각하게 "나는 왜 책을 읽을까?"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바로 이 책이고, 그 중에서도 내가 찾아낸 대답은 이것입니다. "책을 읽어야 멋진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책과 더불어 내 인생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니까요. 한 권의 책이 내 삶의 몇 시간을 가져갔고, 나는 그렇게 삶을 삽니다"(91). 책 읽기의 중요성을 가르쳐주는 책은 많지만, 책을 읽는 즐거움을 이렇게 몸소, 직접적으로, 맛보게 해주는 책은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왜 책을 읽을까요? 배움을 얻기 위해 읽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읽고, 시간을 떼우기 위해서도 읽고, 재미를 느끼기 위해서도 읽습니다. 그 목적이 무엇이든 자기충족이 있으면 그만이다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한 가지 더 생각해보고 싶은 것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자기 성찰의 즐거움'입니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자랑하고, 그래서 아는 것이 많다고 자랑하는 사람들 중에도 미성숙한 인격을 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저 책을 읽는다고 저절로 인격이 성숙해지는 것은 아닌가봅니다. <사랑의 마음을 들여다보다>는 책을 통해 자기를 돌아보고, 우리를 돌아보고, 세상을 돌아보고, 인생을 돌아본 이야기입니다. 저자의 글을 읽으며 "책을 이렇게 읽어야겠구나" 새삼 작심하게 된 것은, 글을 머리에 담아두는 것이 아니라 온 마음으로 글에 부딪히며 그 안에서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삶의 길을 찾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보다 글을 사랑하고 책을 사랑하는 민족이라는 말도 있지만, 가까운 이웃 나라 일본과 자주 견주어지는 우리의 독서량은 갈수록 형편 없는 수준으로 떨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서점은 연일 새로운 책으로 채워지고, 세계도 혀를 내두른다는 엄청난 학구열을 자랑하고, 세계에서 (가장) 낮은 문맹률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인데 독서량은 왜 그리 현저히 떨어질까요? 읽어야 할 책은 많은데 시간이 없어 고민이라면, 책을 읽긴 읽는데 큰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면, 책을 읽긴 읽어야겠는데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면 이 책을 먼저 읽어보면 어떨까요? 명작을 소개하는 책이지만, 명작이 가진 감동은 물론 명작을 넘어서는 뭉클함이 있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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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선 누구나 사랑에 빠진다 - 세계에서 가장 로맨틱한 여행지 101
옥토퍼스 퍼블리싱 그룹 엮음, 김수림 옮김 / 쌤앤파커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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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더 특별해지는 곳!

 

 

여름 휴가철을 맞이하여 어디를 다녀올까 행복을 고민을 했거나, 하고 계신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지구촌에는 한 달 휴가를 위해 열 한 달을 꾹 참고 일하는 사람들도 있다는데, 일 년에 단 한 차례 주어지는 이 황금 같은 휴가 기간을 황금 처럼 보내고 싶어 저도 몇 날째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중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어느 곳으로든 떠날 수 있는 형편이 아니라, 여행지 선택은 승부를 결정짓는 마지막 한 방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이 한 판에 올인하는 도박사처럼 비장하기까지 합니다. 어릴 땐 그냥 어디로든 가서 노는 것 자체로 좋았는데, 나이가 들수록, 모래알 처럼 빠져 나가는 젊음에 피가 마를수록, 그 심난한 마음을 보상받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여행을 통해 채우고 싶은 기대치가 갈수록 높이 올라갑니다. 여행 초보자의 촌티를 줄줄 흘리는 것이지요.

 

<그곳에선 누구나 사랑에 빠진다>는 상상만으로도 그 달달함에 빠져 들기 충분한 "세계에서 가장 로맨틱한 여행지 101"곳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세계의 여행 전문가들과 유력 여행 잡지, 각계각층 명사들의 추천으로 지상 최고의 로맨틱 플레이스 101곳을 엄선했다고 유혹합니다. "더욱 깊은 황홀감과 흔해빠지지 않는 새로움을 느끼고 싶다면 이 책을 집어 들고 세계 각지의 로맨틱 플레이스를 '미리보기' 해보자."

 

이렇게 '테마'가 있는 여행지 컬렉션은 목차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여행지의 분위기에 따라 크게 5범주로 구분된 101곳의 로맨틱 플레이스는, 로마, 프라하, 빈, 피렌체, 몰디브처럼 "그렇지, 이곳이 빠지만 안 되지" 하는 곳도 있지만, 알프스 고산 초원지대, 전설 속 괴물을 찾아나서는 호반여행이라는 스코틀랜드 호수지방처럼 "색다르네" 감탄하게 되는 곳도 있고, 서양인들, 특히 유럽인들에게는 '더욱' 이국적인 정취를 물씬 풍겨줄 이슬람과 불교 문화 중심지도 꽤 소개되고 있습니다.

 

연인과의 여행이라면 저는 "아기자기하고 고즈넉한 시골마을"에 우선순위를 두고 싶습니다. 시간이 멈춘 듯 평화롭고 한가로운 해변 마을을 산책하며  느긋하고 자유롭게 유유자적한 나날을 보내고, 자전거를 타고 구석구석 둘러볼 수 있는 고즈넉한 시골마을에서 꿈결 같은 낭만을 만끽해보고 싶습니다. <그곳에선 누구나 사랑에 빠진다>에서 소개하는 로맨틱한 여행지 101곳은 그곳이 한적한 시골마을이건, 도시의 화려한 문화와 예술을 즐기는 여행지이건, 청정한 자연과 풍성한 야생이 살아 있는 곳이건, 한 폭의 그림처럼 정지된 화면으로 다가옵니다. 전투적으로 빡빡한 여행일정을 소화해내는 익사이팅하고 에너지 넘치는 여행이라기보다, 느긋하고 여유로운 감상으로 채워집니다. 여행지에 대한 정보보다 '그곳 이야기'에 마음이 끌렸기 때문일 것입니다. 

 

마음속 우선순위는 "아기자기하고 고즈넉한 시골마을"에 있지만, 이 '미리보기' 여행이 실전으로 다가온다면 아마도 나의 첫 발은 "도시의 화려한 문화와 예술"을 향해 내딛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쉽게도 낯선 해외 여행의 두려움을 덜어줄 든든한 연인이 아직 없는 저에게는 인적이 드문 고즈넉한 시골마을보다, 세계인과 마주하며 따뜻한 미소라도 주고받을 화려한 여행지가 적합할 듯합니다. 꿈결 같은 낭만을 간직한 평화로운 시골마을이나 지중해 해변은 혹시 찾아올지도 모를 인연을 위해 아껴두겠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나만의' 로맨틱한 여행지를 하나씩 늘려가면 좋겠지만, 지금은 앞서간 이들이 추천하는 여행지 따라잡기를 목표로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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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먼 여행 아시아 문학선 2
로힌턴 미스트리 지음, 손석주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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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만 아시아의 수많은 언어가 제각기 품어 온 기억의 서사들을 존중하려 할 뿐이다"(아시아 문학선 기획위원회, 566).

 

지금은 우리 곁을 떠난 장영희 교수님이 청춘들에게 "왜 문학을 읽어야 하는가"에 대해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문학은 나와 남이 결국은 같다는 것, 인간적인 보편성을 갖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내가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어떤 방식으로 살아도 나와 남은 결국 인간이기 때문에 같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통로가 바로 문학인 셈이지요"(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中에서). 인도 작가의 <그토록 먼 여행>을 읽으며 가장 많이 느낀 감정이 이것이었다. '내가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어떤 방식으로 살아도 나와 남은 결국 같구나' 하는 것 말이다. <그토록 먼 여행>의 이야기는 지금 우리와는 시대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고, 지역도 다르고, 문화도 다른 '먼' 곳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토록 먼 여행>에 잠겨 있는 내내, 인생이라는 먼 여행을 하는 동안 부딪히게 되는 그들의 기쁨, 아픔, 슬픔, 갈등 들이 내 것처럼, 내 것으로 젖어 들었다. 지금 한창 열기가 뜨거운 올림픽 화면 속에서 인도인이라도 보게 되면 어쩐지 따뜻한 인사라도 건네며 응원의 말 한마디라도 전해주고 싶은 심정이다.

 

장영의 교수님은 우리가 읽어야 하는 문학의 힘에 대해 이런 말씀도 하셨다. "저마다 서로 경쟁하고 자리싸움하며 살아가지만, 결국 들여다보면 사는 모습이 거기서 거기이니 인간적인 보편성을 찾아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궁극적으로 화합하고 서로 기대로 사랑하며 살아가라고 가르치는 것, 바로 그것이 문학입니다." <그토록 먼 여행>을 읽으며 참으로 오랫만에 내가 문학을 읽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토록 먼 여행>은 (내 동생처럼) 순전히 재미로 책을 읽는 사람에게는 추천하기 어려운 책이다. <그토록 먼 여행>의 이야기는 극적 긴장감도 없다. 흥미진진한 재미도 없다. 스펙터클하지도 않다. 전개는 더디고, 내용은 일상적이고, 화면은 잔잔하다. 그런데 이 잔잔한 이야기가 자꾸만 마음을 잡아끈다. 후반부로 갈수록 그 힘이 더 세진다. 차분하게 번지는 소리 없는 파문이 마음을 울렁이게 한다. 

 

 

"잠은 그에게 행복이기보다 근심이 증폭되고 초점 없는 야릇한 분노가 끓어오르며 무기력해지는 시간일 뿐이었다. 탈진상태로 잠에서 깨어날 때마다 그는 또다시 밝아 오는 하루를 저주하곤 했다"(25).

 

언젠가 나에게도 이런 시절이 있었다. 잠들기 싫었고, 잠들면 다시 깨고 싶지 않았던 날들. <그토록 먼 여행>의 주인공 구스타드에게도 이런 시절이 있었다. 큰 서점을 운영하셨던 아버지의 몰락으로 함께 몰락해버린 그의 청춘과 꿈. 그러나 그는 이제 그때 그 시절의 자신만큼 푸르른 열아홉 살의 아들(소랍), 자신의 근육질 체형을 닮은 열다섯 살의 아들(다리우스), 그리고 귀여운 아홉 살의 꼬마 딸(로샨), 그리고 사랑스러운 아내(딜나바즈)의 행복을 책임지고 있는 한 가정의 가장이다.

 

<그토록 먼 여행>은 인도 붐베이에 사는 인도 파르시(페리스아 계통의 조로아스터교도) 가족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1971년 즈음의 이야기이다. 1971년 인도에서는 "동 파키스탄(현 방글라데시)의 독립을 둘러싸고 제3차 인도 파키스탄 전쟁'이 발발했던 때이다. 구스타드 가족의 지극히 일상적인 삶은 그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 우리는 <그토록 먼 여행>을 읽으며, 역사라는 큰 줄기 어느 한 틈새를 메우고 있는 한 가족의 일상을 촘촘하게 들여다보며, 시간과 공간을 넘어 그들과 연결된다.

 

 

"그는 이 모든 것을 소랍이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아마도 거의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 당장은 그럴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 그도 모든 것을 기억할 것이다. 내가 지금 아버지에 대해서 그런 것처럼 말이다. 기억은 항상 모든 것을 잃어버린 후에야 시작된다"(343).

 

한 세대가 가고 그 세대가 남겨준 가난의 짐을 지고 살아가는 구스타드는 여느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지신의 자녀에게만은 그 짐을 물려주지 않으려 한다. 그런데 언제나 기쁨과 자부심이 되어 주었던 큰 아들 소랍은 아버지의 바람대로 명문대에 진학하는 것을 거부하고 자신의 꿈을 좇으려 한다. 둘째 아들 다리우스는 하필이면 가장 사이가 좋지 않은 이웃의 딸을 좇아다니고, 귀여운 꼬마 로샨은 자꾸 아파 아버지를 걱정시킨다.

 

아이들의 자신의 가장 큰 행복일 때마다, 가장 큰 아픔일 때마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를, 어머니를, 또 할아버지를 생각한다. 구스타드의 기억 속에 재생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 '그러한 삶을 살다간 그 사람'이 구스타드의 아버지요, 어머니요, 할아버지였다. 구스타드는 궁금했을까. 자신의 인생이 자녀의 삶에 어떤 기억으로, 어떤 의미로 남을 것인가.

 

 

"태양이 바다 아래로 가라앉았고, 비로소 태양의 하루 여행은 끝이 났다. 그리고 그러한 달콤하고도 씁쓸한 기쁨 때문에 구스타드는 살면서 중요했던 것들이 생각났다"(376).

 

구스타드는 하루 시간을 내어 딸의 건강과 암 때문에 생명이 꺼져가는 친구의 통증이 줄어들기를, 그리고 소랍의 분별력이 돌아오기를 기원하기 위해 성모산에 오른다. 그리고 돌아오기 전, 홀로 바닷가에 앉아 수평선을 바라보다 알 수 없는 강렬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뭘까? 기쁨? 아니면 슬픔?" 그리고 그곳에서 살면서 중요했던 것들을 하나씩 기억해 내기 시작한다. "가구 공장의 경쾌한 공구 소리와 하루 일과가 끝난 후의 침묵. (...)" 그리고 아버지의 파티에 있었던 훌륭한 음식과 음악, 옷, 사람들, 장난감들. 그 옛 기억들과 함께 "눈물이 그의 두 눈을 뜨겁게 적셨다"(376-377).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그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신을 부여잡고 아뢰는 간절한 바람과 평온한 자연의 경계에 서서, 잃어버린 후에야 알게 된 소중한 것들을 기억하며 홀로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구스타드. 한순간 그를 사로잡았던 그 "알 수 없는 강렬한 느낌"이 무엇인지 나는 알 수 있을 듯하다. 그래서도 나도 그를 따라 울었다.

 

 

"이토록 긴 여행이 과연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걸까? 아니면, 그 어떤 여행이라도 고생할 만한 가치가 있는 걸까?"(423)

 

구스타드는 친구 '딘쇼지'를 떠나보내며 생각한다. "딘쇼지도 얼마나 먼 여행을 했던가." <그토록 먼 여행>은 이 책에 등장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먼 여행을 했던가, 그리고 나는 지금 얼마나 먼 여행을 하고 있나 묻고 있는 듯하다. 사고로 바보가 된 '테물'을 보며 "그에게 인간의 모든 권리와 가치를 되돌려 주고 싶"어 했던 구스타드처럼(494), <그토록 먼 여행> 이야기를 하는 작가는 이 땅에 살았던 모든 사람들, 그중에서도 소중했으나 소중한 대접을 받지 못했던 사람에게 그의 권리와 가치를 되돌려 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길가의 화장실이 사원이 되고 사당이 되며, 사원과 사당이 먼지와 폐허가 되는 세상에서 어디로 가느냐가 중요하겠습니까?"(550)

 

"어디로 가느냐" 묻는 구스타드에게 거리의 화가는 이렇게 대답했다. 삶은 여행이고, 얼마를 살았든 삶의 여행은 물리적인 시간과는 관계 없이 그토록 먼 여행이고, 그 아득한 여행길에서 중요한 것은 어디로 가느냐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럼 무엇이 중요하다는 말인가?  느닷없이 날아온 벽돌 하나가 나의 삶을 완전히 박살내버릴지도 모르는 세상 속에서도, 때로는 충격과 수치심이 우리를 덮치고, 신뢰와 우정이 우리를 배반하고, 소중한 것들이 하루아침에 폐허가 되어도, 구스타드처럼 우리도 묵묵히 이 길을 걸어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늙은 카바스지처럼 하늘을 꾸짖으며 항의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그는 묵묵히 갈 길을 갔다"(512).

 

<그토록 먼 여행>은 이에 대해 직접적인 답변을 해주지 않는다. 테물을 위해 흘리는 구스타드의 뜨거운 눈물에서, 두려움과 존경심으로 아버지를 바라보는 소랍에게서, 구스타드가 중국과 전쟁이 벌어졌던 9년 전에 창문과 환기창에 붙여 놓았던 검은색 등화관제용 종이를 걷어내는 마지막 장면에서 우리 스스로 그 해답을 찾아내야 할지도 모른다.

 

정치적, 사회적 소용돌이 한복판에 이름 없이 살아가는 한 가족의 소소한 이야기가 나에게 선사한 해준 것은 '삶의 경건성'이다. 삶의 경건성은 역사의 위대함 속이 아니라, 그 역사의 틈새를 촘촘히 메우고 있는 이름 없는 사람들의 일상성 속에 있었다. '그토록 먼 여행'은 오고 오는 세대로 이어지며, 우리는 각자 뜨거운 투쟁을 하다 소리 없이 사라지겠지만, 그러면서도 아무것도 아닌 우리의 존재와 삶이 한없이 쓸쓸하고, 그 뜨거운 투쟁이 사실은 아무것도 아니어서 더 괴롭겠지만, 그 속에서 비록 한순간이나마 진실했던 우리의 사랑과 서로를 위한 눈물이 계속 그 길을 가게 해줄 것이다. <그토록 먼 여행>은 그 진실한 사랑과 서로를 위한 눈물의 가치를 보여준다. 그러므로 이 땅에 비루한 인생이란 없으며, 진실한 사랑과 서로를 위한 눈물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라면 어떤 인생 앞에서도 겸손히 고개를 숙이며 숙연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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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래압력은 어떻게 세상을 치유하는가 - 소속감에 대한 열망이 만들어낸 사회 치유의 역사
티나 로젠버그 지음, 이종호 옮김, 이택광 감수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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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바꾸고 싶어 하는 것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첫째는 '나' 곧 자신이고, 둘째는 '너' 곧 타인이며, 셋째는 환경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중에서 실제로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나'뿐이라고 심리학은 말한다. 타인을 바꾸고 싶다면 나를 바꿔야 한다고. 내가 변해야 타인도 변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 <또래압력은 어떻게 세상을 치유하는가>에서 '나'는 물론, '너'와 '환경'까지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발견했다.

 

이 책은 사회적 변화와 사회적 치유책(social care)을 이야기하지만, 사회적 변화는 한 개인에서 시작된다는 측면에서 개인적 관점(개인적으로 적용 가능한)으로 읽어도 무리가 없을 듯 하다. 이 책에서 말하는 논지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빈곤, 에이즈, 폭력, 여성 차별과 같은 심각한 사회 문제를 치유할 방법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또래압력"이라는 것이다. "또래압력"(peer pressure)이란 또래 집단의 사회적 압력을 말한다. 

 

<또래압력은 어떻게 세상을 치유하는가>는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례들을 모은 책인데, 그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남아공의 '10대 에이즈 예방 프로그램'을 예로 들어 설명하면 이렇다. "사회적 병폐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대체 정보를 제공하는 데 집중하거나 사람들의 공포심을 자극한다. (...) 그러나 이런 전략은 틀림없이 실패하게 마련이다"(16). 어째서 그런가? 이것은 우리의 경우를 보더라도 쉽게 설명된다. 담배를 피우는 것이 건강에 해롭고, 결국 폐암으로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담배를 끊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몸에 해롭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먹게 되는 인스턴트 음식도 마찬가지이다. 또래압력은 정보를 제공하여 공포심을 자극하는 전략대신, "또래 집단의 존중을 얻도록 도와주어 행동 변화를 유도한다"(17). 그들은 10대 에이즈 예방 프로그램으로 '러브라이프'라는 "10대들이 동참하고 싶어 하는 단체"를 만들어냈다. 러브라이프의 성공 요인은 이것이다. "젊은이들에게 무엇이 너희들을 바꿔 놓았냐고 물으면 '정보를 주셨잖아요'라고 말하는 경우는 없어요. '삶을 살아가는 새로운 방법에 동질감을 느꼈어요. 나도 삶을 바꾼 내 친구처럼 될 수 있어요'라고 말합니다."

 

이 책은 이처럼 "긍정적 또래압력"을 강화하여 개인들의 행동을 변화시킴으로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전략을 제안한다. 거창한 이야기지만, 단순화시켜보면 옛부터 '좋은 친구를 많이 사귀라'고 가르쳤던 어른들의 지혜와 맞닿는다. 이 책을 통해 얻은 가장 큰 교훈은 개인의 행동 변화를 위한 전략으로 정보 제공이나 공포심을 자극하는 전략이 그리 효과적이지 않다는 분석이다. 공익광고를 만드는 분들에게도 귀가 번쩍 뜨일 이론이지만, 조직의 변화를 이끌어내야 하는 리더나 특히 아이들을 가르치고 지도하는 양육자들에게도 중요한 인사이트를 제공한다. "긍정적인 또래압력"이 가진 사회적 치유력에는 세부적인 전략과 실행적 측면에서 다시 많은 부분이 논의되어야겠지만, 흔히 말해 겁주기식 방식이 그리 효과가 없으며 오히려 상대방의 마음을 닫게 만든다는 것 하나만 분명히 알아도 큰 수확이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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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해외여행 - 1년에 한 번, 나를 위한 최고의 휴가
정숙영.윤영주 지음 / 비타북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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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컨설턴트를 만나다!

 

이런 직업이 있다면, <일주일 해외여행>의 저자 두 분을 '여행 컨설턴트'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남들은 훌쩍 훌쩍 잘도 다녀오는데 나는 왜 그게 안 되는지, 큰맘 먹고 계획을 한 번 세워보려고 하면 '이것도 문제고, 저것도 문제고' 또 왜 그렇게 걸리는 건 많은지, 해외여행은 내게 너무 어려운 과제라고 자포자기 해버린 저에게는 매우 반가운 책입니다.

 

해외여행 앞에 '일주일'이라는 한정적인 조건이 붙은 것은, 1년에 한 번 휴가 기간에나 해외여행이 가능한 직장인들을 위한 '맞춤형' 여행서적이라는 뜻입니다. 일주일이라는 짧은 휴가 기간을 이용하여 해외여행을 하고 싶은 직장인, 패키지 여행보다는 자유여행을 원하시는 여행자에게 필요한 여행 가이드북입니다. 저자 두 분은 이 책의 취지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지금까지의 많은 여행서들이 갈곳을 정한 이들을 위해 쓰였다면, 이 책은 내가 가진 시간과 예산의 여유, 그리고 취향 안에서 어디로 가면 좋을지를 보여주는 책이라고 보시면 됩니다"(12). "<일주일 해외여행>에는 일 년 내내 성탄절에 받을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을 기다리는 어린아이의 심정으로 여름휴가를 기다릴 모든 직장인들을 위해 고르고, 또 고른 21개의 여행 스케줄이 담겨 있습니다"(13). (참고로, 여행 스케줄은 21개이지만, 21개의 여행 스케줄 안에 담긴 여행지는 100곳이 넘습니다.)

 

<일주일 해외여행>이 여행지를 선정한 기준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항공 시간을 포함하여 일주일 정도면 만족스럽게 여행할 수 있는 곳"입니다. "지리적으로 너무 먼 곳, 일주일 이상의 시간이 필요한 곳, 또는 3박 4일에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곳들은 제외되었습니다." 둘째는, "직항, 또는 1회 경유편으로 갈 수 있는 곳"입니다. 일주일이라는 짧은 일정상 "비행기를 두 번 이상 갈아타야 하는 곳"은 제외되었습니다. "마지막이자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로망입니다." "평생 기억에 남고 자랑거리가 될 수 있는 여행지가 어디일까를 가장 중요한 선정 기준"으로 삼았다고 밝힙니다(이 책의 활용법 中에서).

 

 

지금 준비해서 10월에 떠나는 걸로~

 

곧 다가올 여행휴가를 위해 제가 제일 먼저 펼쳐든 곳은 바로 '스페인'입니다. 스페인은 '그래도 해외여행을 좀 했다' 하시는 분들에게 가장 많이 추천을 받은 곳이라 제 버킷리스트 첫 항목에 올라 있는 여행지입니다. <일주일 해외여행>은 이렇게 조언합니다. 스페인은 3-4월과 9-10월이 적기이고, 총 예산은 2인 기준으로 1인당 총 325만 원 정도, 저비용 여행자는 한인 민박이나 호스텔을 숙소로 적극 추천하며, '마드리드', 세비야, 론다, 네르하, 그라나다, 바르셀로나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총 7박 9일의 스페인 일주를 추천합니다. 어차피 항공료가 비싼 성수기를 피하려고 마음먹고 있었기 때문에 스페인이 특히 "10월 중순 이후부터 말까지" 여행하기 좋은 지역이라는 것이 다행입니다. 문제는 총 비용이 좀 부담이라, 패키지 여행 상품과 비교하여 더 저렴한 쪽을 선택할까 고민 중입니다.

 

<일주일 해외여행>은  저와 같은 직장인을 위한 책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일주일' 간 다녀올 수 있는 해외여행지를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이 가장 매력적이고, 해외여행 하면 제일 부담이 되는 경비(예산) 부분과 자유여행의 가장 큰 과제인 전체 일정(여행 스케줄)까지 고려해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는 것이 좋았습니다.

 

단체로 떠나는 선교여행 이외에는 해외에 나가본 적이 없습니다. 첫걸음마를 떼는 아기처럼 낯선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제 안에 가득하지만, 스스로의 생존력을 시험하는 마음으로 나홀로 떠나는 자유여행에 "도전!"을 외쳐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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