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리얼 푸드 - 갓 구운 베이글처럼 고소한, 노릇한 오믈렛처럼 부드러운
박혜정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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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뉴욕의 진짜 맛있는 이야기"

 

여행 경비를 줄어야 할 때, 미련 없이 삭감하게 되는 항목 중 하나가 저에게는 바로 밥값입니다. "여행" 하면 곧 "보는 것"이라는 개념으로 연결되는 제 머릿속에서는 어떻게 하든 한 곳이라도 더 많이 보고 싶은 욕심이 언제나 새로운 먹거리에 대한 호기심을 이깁니다. 맛집만 골라 다니는 맛집 여행도 있고, 여행지의 먹거리도 여행을 즐기는 한 방법이지만, 어쨌든 저에게는 "여행 경비가 넉넉할 때"라는 단서가 붙어야 가능한 즐거움입니다. 게다가 낯선 곳에서의 낯선 음식에 대한 모험심도 부족하여, 믿을 만한 음식(?)이 아니면 여행지의 낯선 먹거리에 대한 도전의식도 별로 없는 편입니다. 그런데도 <뉴욕 리얼 푸드>라는 여행책에 마음이 끌린 것은 그곳이 뉴욕이기 때문이며, "언젠가(!) 꼭 한 번은 가보고 말테야"를 외치고 있는 그곳에 정말 발을 디디게 되었을 때 최소한의 경비로 최대한의 즐거움을 누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뉴욕 리얼 푸드>는 독자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그런데 만약 그 카페가 내 입맛에 조금도 맞지 않은 곳이라면, 말도 안 되게 비싼 데다 양도 적어 간에 기별도 안 간다면, 뭘 시켜야 할지 모르겠다면, 더 최악의 경우 힘들어 죽겠는데 한 시간이나 기다려야 한다면?"(23) 저자의 표현대로 "그 순간 뉴욕 여행은 짜증 범벅"이 되고 말겠죠! 바로 이것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뉴욕 여행에서 절대로 실패하지 않을 식탁만 소개하기로" 했고, 이런 기획 의도로 출간된 책이 바로 <뉴욕 리얼 푸드>입니다.

 

 

  

"남녀노소 모두가 즐거움으로 배부를 수 있는 진짜 뉴요커들의 식탁"

 

<뉴욕 리얼 푸드>는 저자가 직접 발로 뛰며 먹어보고 쓴 뉴욕 푸드 체험기 같은 책입니다. "충분히 배부르고도 즐거울 수 있는 카페들에 주목하며", "너무 비싼, 그래서 당연히 맛있을 수밖에 없는 레스토랑보다 부담 없는 식탁"이 기준입니다. 책을 보고 있으면 뉴욕의 맛집이란 맛집은 모두 가보고, 뉴욕의 먹거리란 먹거리는 죄다 먹어본 듯 그야말로 샅샅이 훑었구나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일 년에 한 번, 한 나라에서 한 달 동안 홀로 살기"라는 자기와의 약속을 당차게 지키고 있는 그 기백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그녀의 글에는 그녀의 마음속에서 요동치는 설레임과 행복감이 한가득입니다. 글을 읽다 보면 그 두근거림에 절로 전염이 되는 기분입니다. 책 제목이 <뉴욕 리얼 푸드>이지만 먹거리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뉴욕에서 반드시 가봐야 할 곳, 뉴욕에서 잊지 말아야 할 식사 에티켓은 물론, 뉴욕만의 매력을 퐁퐁 풍기는 뉴욕 풍경 스케치도 빼놓지 않고 있습니다. 뉴욕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이 책으로 뉴욕 풍경을 간단하게 리서치하며 여행 일정에 따라 꼭 가보고 싶은 카페(또는 레스토랑)를 미리 정해두어도 시간을 많이 절약할 수 있을 듯합니다. 여행을 떠나보면 맛집 찾아서 들어가는 데만 해도 꽤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입니다. 데충 끼니를 떼울 생각이 아니라면, 천금 같은 경비와 시간도 아끼면서 가격대비 최고의 만족을 누릴 수 있는 노하우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국가 간의 경계도 희미해지는 글로벌 시대를 살다 보니, 뉴욕의 먹거리라고 해서 꼭 뉴욕에 가야만 먹어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음식에도 세계화 바람이 거세고, 덕분에 뉴욕의 먹거리가 우리나라에 상륙해서 꽤 인기를 끌고 있는 메뉴도 많습니다. 게다가 입맛의 서구화 덕분에 재료도 조리법도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이 많아 거부감이 드는 음식이 없다는 것이 저에게는 더 큰 매력으로 다가옵니다. 그런데도 꼭 뉴욕에 가서 꼭 먹어보고 싶은 메뉴가 있습니다. 뉴욕 풍경을 배경으로 해서 말이죠. 저와 같이 게으른 독자에게는 '주제별' 맛집이 아니라, 지역별로 맛집을 소개해주었다면 여행 동선에 따라 카페와 메뉴를 미리 점찍어 두기 더 편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습니다. 세월이 너무 많이 흐르기 전에, 그래서 이 책의 정보가 낡은 것이 되기 전에 뉴욕의 한 카페에 앉아 저자의 바람대로 이 책을 펼쳐놓고 메뉴를 고를 수 있는 날이 속히 오기를 꿈꿔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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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너 매드 픽션 클럽
헤르만 코흐 지음, 강명순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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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 게 제일 좋을까?"(169)

 

 

9시 뉴스가 세상을 떠들썩 하게 한다. 십대 청소년들이 힘 없는 한 노숙자를 괴롭히다 결국 그를 죽게 만든 영상이 공개되었다. 언론은 노숙자를 불쌍한 희생양으로 만들고 있고, 사회는 통제할 수 없는 청소년 문제로 들끓고 있다. '나'도 할 말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급하게 나의 의견을 보태기 전에 잠깐 생각해보자. 만일 그 사건을 일으킨 주범이 나의 아이라면? CCTV 화면이 흐릿하지만 분명히 그 화면 속의 아이가 내 자녀라면 어떨까? 그래도 그 사건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이나 의견에 변함이 없을까? 또한 내가 그 아이의 부모라면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제일 좋을까? 네덜란드의 국민작가라는 헤르만 코흐는 <디너>라는 작품을 통해 독자를 그 딜레마에 빠뜨린다.

 

<디너>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이루어지는 형제 부부의 저녁 식사를 배경으로 한다. 아페리티프, 애피타이저, 메인요리, 디저트, 소화제, 팁이 그 목차이다. 차기 총리로 당선이 확실시 되는 형제 세르게와 그의 아내 바베테, 그리고 세르게의 동생 파울과 그의 아내 끌레르가 함께 디너를 위해 식탁에 앉아 있다. 정치인 형은 승승장구 중이고, '한때' 역사 교사였던 동생도 현재 무직이지만 나름대로 행복하다. 그러나 그들은 완벽했던 인생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도 있는 위기에 처해 있다. 경제적 여유가 있고, 고등교육을 받은 '부모'로서 그들이 처한 딜레마, 한순간 정치 생명이 끝날 수도 있는 세르게와 남편을 어떻게 해서든 총리로 만들고 싶은 아내 바베테, 한 순간의 실수(?)로부터 아들을 지키고 싶은 파울과 끌레르의 긴장감은 메인요리가 나오도록 쉽게 노출되지 않는다. 가벼운 애피타이저로 시작된 이들의 이야기는 '메인요리'를 향해 갈수록 차츰 확대되다가, '디저트'에서 사건의 전말이 들어나고, 예상치 못한 반전이 이야기를 끝내는 '소화제' 역할을 하며, 사건 '그 후' 이야기를 팁으로 선이 끊어지듯 뚝! 하고 이야기는 끝이 난다.

 

<디너>는 독자로 하여금 쉽게 결론에 도달하지 못하게 만든다. 주인공 부부가 처한 딜레마가 뚜렷한 윤곽을 드러내기 전까지 우리가 가진 편견과 위선을 여러 모양으로 노출시킨다. 예를 들면, 동성애를 자연의 섭리에 어긋나는 아주 불건전한 짓이라고 생각하는 한 사람이 있다. 그는 동성애를 변태들이나 하는 짓거리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이웃의 동성애자가 자신의 고양이를 다정하게 보살펴 줬다는 한 가지 사실만으로 그들에 대한 혐오를 잊어버린다. 그 동성애자들이 "만약 고양이한데 먹이를 주기는커녕 돌멩이를 던져 내쫓거나 독을 넣은 미끼를 발코니에 던져놓는 사람이었으면", 그들은 "금세 다시 역겨운 게이가 됐을 것이다"(99). 작가는 이런 식으로 우리의 편견과 위선을 꼬집고, 우리가 가진 얇팍한 윤리의식의 이중성을 드러낸다. 세계2차대전으로 '희생'된 사람 중에는 "이 세상에서 사라질 경우 남아 있는 사람들이 안도할 수 있는 그런 인간들"이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는데, 그들 모두를 '희생자'로만 애도하는 태도라든지, <사건파일 XY>에 그 문제의 동영상이 방송되자 불량 청소년들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넘쳐나고 있지만, "자기 멋대로 아무데나 자리를 차지하고 사람들을 방해해는 비정상적인 노숙자나 부랑아들에 대해서는 다들 침묵"하는 집단적인 분노 같은 것들에 대해서 말이다.

 

<디너>는 사형집행과 사적 제재, 즉 "정상적인 법적 절차를 밟기 전에 개인적으로 행하는 개인적 사형 집형"(303) 같은 무거운 주제들을 슬며시 풀어놓으며, 예상치 못한 반전으로 독자들을 경악시킨다. 아무리 끔찍한 사건이라고 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이 사건을 그냥 덮어두려는 부모를 쉽게 정죄해서는 안 될 듯하다. 아들이 자신의 살을 계속 살아나갈 수 있기를 바라는 부모의 심정을 십분 이해해서라기보다, 사건을 지켜보는 군중의 '저속함'을 쉽게 드러내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디너>는 여러 모로 예상을 뛰어넘는 소설이다. 요리책 같은 표지에서부터, 주제를 미리 알지 못했다면 이야기의 중반까지 '메인' 스토리를 전혀 짐작할 수 없는 전개 방식, 느닷없이 터지는 음모까지 작가의 의도를 따라잡아 보려 할수록 계속 잘못 짚게 될지 모른다. 환상적인 맛은 아니었어도, 기억에 남을 만한 <디너>였던 것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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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처럼 떠나다 - 청색시대를 찾아서
박정욱 지음 / 에르디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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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바로 까다께스의 이 장소에 처음으로 발을 디뎠을 때였다"(99).

 

 

나에게 완벽한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장소가 있습니까? 나에게도 그런 곳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나의 존재를 뿌리까지 흔들며 나를 행복하게 해" 주는 아름다움, 그것을 맛볼 수 있는 그런 '의미' 있는 장소를 갖고 싶습니다. <피카소처럼 떠나다>의 저자는 고백합니다. "세상의 아름다움을 눈이 시리도록 보고 그 아름다움으로 인생을 채우며 살고 싶었다. 아주 소박한 꿈이었다. 그 아름다움이 내게 필요했다"고. 그는 아름다운 꿈을 꾸었고, 아름다움을 꿈꾸었고, 결국 까다께스라는 이국의 해안 마을에서 그 꿈을 발견했습니다. 그것도 젊은 시절에 말입니다. 이보다 더 운 좋은 청춘이 있을까요?

 

까다께스는 "프랑스와 가까운 스페인 해안 도시"입니다. 까다께스는 "달리가 태어난 곳이자 청년 피카소가 철저하게 입체파로의 전향을 구상했던 해변 마을"인데, "이 해변 마을은 예술적 기운이 충만하다 못해 활화산처럼 터져 나오는 곳"(45)이라고 합니다. <피카소처럼 떠나다>는 "스페인 북부 까다께스 항구에서부터 바르셀로나, 시쩨 해변까지 해안선을 따라" 떠나는 여행입니다. 이 여행에서 저자가 찾고자 하는 최종 목적지는 피카소가 젊은 시절을 보냈던 바르셀로나의 '네 마리 고양이 술집'이라고 밝힙니다. "그 술집에 앉아 피카소의 첫 작품인 목탄 데생 작품을 한번 보고 싶다"는 것이 여행의 이유이기도 합니다(프롤로그 中에서). 이 여행이 특별한 것은 그곳에 피카소가 있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피카소가 주인공이 아니지요. "한 마을에서 동시에 전 세계를 뒤흔든 두 명의 예술가가 탄생"(45)하게 한 청색의 까데스께 자체가 특별하기 때문이고, 푸르게 젊었던 시절 완벽한 행복감을 맛보게 해준 그곳을 잊지 못하는 한 인생으로 인해 까데스께는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됩니다. 누군가 그곳의 이름을 불러준 것이지요.

 

까다스께를 사랑한 한 여행자와 동행하며 우리는 피카소가 그린 여인의 몸과 유사한 덩굴을 만나고, 입체파 그림 속 풍경 같은 마을을 만나고, 피카소 그림 속에 배어 있는 청춘의 아픔을 만나고, 푸른 멍을 가진 피카소의 여인들을 만나게 됩니다. 피카소 만큼 배경에 바다를 많이 그린 화가도 없다(24)고 하는데, 저자는 바다로 '내려가는 길'에서 고독을 향한 길,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는 길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해변으로 가는 길이 피카소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읽어내기도 합니다. "그의 근원에는 바다의 청색이 있었다. 청색시대의 고독은 그것이었다. (...) 그림 속에 담긴 의미는 고독 속으로 청색 속으로 바닷속으로 한없이 추락하는 그 정신의 소용돌이에 있다. 해변으로 가는 길은 피카소에게 그림의 의미를 찾기 위한 길이었던 것이다. 그런 이유로 그의 그림 속 인물들은 거의 언제나 해변으로 가는 길을 서성거리고 있다"(24).

 

<피카소처럼 떠나다>는 스페인의 해변 마을을 따라 떠난 여행이자만 정보를 주는 여행서적이 아닙니다. 피카소와 그의 그림 이야기도 있지만 예술기행도 아닙니다. 누가 묻는다면 한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감성 에세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여행지에서 들리는 요란한 소음을 모두 지우고, 내면에 흐르는 은밀한 의식을 따라 걷는 기분입니다. 그리고 굉장히 시각적인 책입니다. 스페인 해안의 아름다운 청색에 매료되는 동안, 피카소, 달리, 피카소의 유일한 경쟁자였던 마티스, 그리고 입체파에 대한 지식도 어부지리도 얻었는데, 아름다운 풍경에 대한 저자의 극찬이 이어질수록 강렬해지는 하나의 바람은 나에게도 이런 장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욕구였습니다.

 

삶의 목적이 '여행'에라도 있는 것처럼, 여행병을 앓고 있는 나를 돌아봅니다. 성수기도 아닌데, 휴가철도 아닌데, 여행을 다니는 많은 여행자들을 보며 놀라기도 합니다. 막상 그렇게 바라던 여행지에 서서 '음소거'를 하고 내면을 들여다 본다면, 나의 내면에서는 어떤 목소리가 들릴까요? <피카소처럼 떠나다>는 여행의 의미에 대해, 아름다운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해주었습니다. 나의 까다께스를 찾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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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을 찾으면 인생이 달라진다 - 예수님이 선언하신 그리스도인의 4가지 지상 명령
스티븐 스콧 지음, 홍병룡 옮김 / 아드폰테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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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으로서 해방감을 맛보게 해주는 책이다. 사명, 이것만큼 신앙인들에게 뜨거운 감자도 없을 것이다. 나만의 사명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사명을 찾기에 게으르고, 사명을 알고 싶어하면서도 막상 사명을 따르는 삶을 두려워 하는 신자들이 많다. 일상에 떠밀리는 삶을 살다 보면 사명은 그야말로 추상적인 개념이 되어 저 높은 곳에 올려두고 잊어버리게 되는 물건이 되고 만다. "사명을 따르라", "사명을 따르는 삶이 행복하다"는 설교가 날마다 강대상에서 선포되어지지만, 그런 것은 특별한 열심이 있는 소수의 성도에게만 임하는 강력한 부르심으로 치부되고 우리는 그저 평범한 신앙인으로 남기를 몰래 소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때로 사명을 알고 싶은 강력한 열망에 사로잡히기도 하지만, 지금까지의 삶을 전부 갈아엎고 남은 생을 전부 사명에 올인하기에는 우리는 이미 벗어나기 어려운 타성에 젖어 있다. 사명 앞에 겁쟁이가 되고 마는 것이다.

 

사명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찾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꿈처럼 내가 소원하는 일이 아니라, 주어진 일이 있다는 뜻이다. 그것은 우리가 존재하는 목적이며, 목숨을 걸고 완수해야 하는 신의 신부름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사명을 찾기에 게으르고, 사명 앞에 겁을 내는가? <사명을 찾으면 인생이 달라진다>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교훈은 사명은 우리가 생각하는 어떤 '일'(직업)이 아니라는 사실이 아닐까 한다. 많은 사람들이 사명하면 구체적인 '일'(사역 또는 직업)을 떠올린다. 물론, 사명은 그런 형태로 우리에게 나타나기도 하지만 <사명을 찾으면 인생이 달라진다>는 보다 근본적인 사명이 우리에게 있음을 깨우쳐준다. 그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다.

 

 

 

 

  

<사명을 찾으면 인생이 달라진다>의 저자 스티븐 스콧은 매우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이다. "성경의 잠언을 연구해 인생의 성공 비결을 배운 미국의 기업가이자 베스트 셀러 작가'라고 한다. 그는 "대학 졸업 후 6년간 아홉 군데의 집정에서 실직과 해고를 거듭했으나 세계적인 마케팅 그룹 아메리칸 텔레캐스트를 공동 설립해 포춘 500대 기업의 CEO가 되었다." 또 "2년에 걸쳐 신약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모든 말씀을 225가지 주제로 정리해 책으로" 엮었다고 한다. 정리하면, 그는 신학자나 목회자는 아니지만, 성경 말씀을 연구하여 성공한 기업가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평신도 사역자라 할 수 있겠다. 그래서인지 그가 성경을 설명하고 해석하는 방식에는 신선함이 있다. 어떤 신학적 프리즘도 통과하지 않고, 순수하게 말씀을 읽어내려 하며 그렇게 읽어내는 말씀으로 오히려 교회가 오해하고 있는 잘못된 가르침들을 꼬집어 내기도 한다. 순수하게 말씀을 읽어내려 한다고 해서 오로지 문자적인 해석에 얽매이는 것도 아니다. 책을 읽어보면, 특히 원어에 대한 연구가 깊고, 성경의 배경(문화적) 지식이 풍부하며, 귀납적 성경연구 방식에 정통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명을 찾으면 인생이 달라진다>가 특별한 이유는, 그렇게 연구한 신약성경의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완수하신 29개의 사명이 있음을 밝히며, 그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남겨주신 4가지 사명이 있다는 주장이다. 저자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4가지 사명이 있음을 밝히며, 예수님의 27가지 사명을 통해 "예수님이 그 자신과 이 땅에서 행하신 일을 드러내는 방식"을 설명한다. 예수님이 그의 제자들에게 주신 4가지 사명은 이것이다. 첫째, 하나님과 더욱 친밀해져라. 둘째, 자신의 영적 성장에 힘쓰라. 셋째,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도우라. 넷째, 다른 이의 삶에 영향을 미쳐라. 저자는 "우리 삶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이 네 가지 사명과 더불어 이와 밀접하게 연관된 여러 활동과 목표를 추구하고 수행하는 것이라고 단언한다.

 

<사명을 찾으면 인생이 달라진다>가 주는 가장 큰 감동은 하나님과 우리를 친밀하게 해준다는 데 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가장 중요한 진리 중 하나는 우주의 하나님이 당신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싶어 하신다는 사실이다"(33). 저자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와 친밀해지기를 얼마나 간절히 바라시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하나님과 더 친밀해지고 싶은 간절한 열망이 벅차게 차오르는데, 그것보다 더 큰 감동은 우리가 바라는 것 이상으로 하나님이 그것을 더 간절히 바란다는 사실의 확신이다!

 

<사명을 찾으면 인생이 달라진다>는 우리가 어떤 자리에서 어떤 삶을 살든, 어떤 일을 하든, 매순간 그리스도인이 추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것은 그동안 '사명'이라는 무거운 짐 밑에서 우리를 꺼내주는 선언과 같다. 오히려 어떤 '일'을 사명으로 알고 실행하려 했을 때보다, 더 구체적이고 도전적이다. 그것은 사명을 완수하고자 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도달해야 할 목표이며,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는 방식이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보인다. 그리고 거기서 자유함을 맛본다.

 

베드로는 물 위를 걷는 예수님을 보고 곧 "불가능한 일(물위를 걷는 것)을 하고 싶은 소원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맨 먼저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하는 주님의 명령이 필요했다. 베드로에게는 그의 믿음을 세워주고 발을 내딛게 하는 명령이 필요했던 것이다. (...) 예수님은 "오라"는 한마디로 그에게 필요한 것을 주셨다"(63). <사명을 찾으면 인생이 달라진다>에서 나는 '오라" 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다. 어떻게 사명에 집중하는 삶을 살아야 할지 길을 찾은 기분이다. 나는 인생의 하프타임을 보내는 심정으로 이 책을 읽었다. 사명을 완수하고자 하는 예수님의 제자, 사명을 찾고 싶은 모든 성도들에게 이 책을 우선순위로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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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사계절 - 그리스도의 임재와 지혜를 누리는 영성
마크 부캐넌 지음, 윤종석 옮김 / 두란노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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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가 떠받드는 신화들이 있는데, 그중 가장 사람을 홀리는 것 하나는 균형의 신화다. 계절이란 본래 균형과 거리가 멀다. 우리는 균형에 눈독을 들이지만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리듬이다. 만사에 다 때가 있다"(214).

 

 

확실히 영적 거장들의 통찰력에는 지식의 힘으로 따라갈 수 없는 깊은 진리가 존재하고, 그 진리는 우리 영혼을 자유하게 하는 힘이 있다. <영혼의 사계절>은 성경적 진리를 풀어쓴 가르침이 아니다. 교리서도 아니고, 설교집도 아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순례의 길을 걷는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며 깨달은 진리를 탁월한 영적 통찰력으로 담아낸 책이다.

 

<영혼의 사계절>은 말한다. 열매가 자라려면 사계절이 모두 필요한 것처럼, 우리 영혼에도 사계절이 있고, 또 필요하다고 말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독수리처럼 날개 치며 올라갈 때도 우리와 함께하시지만, 힘이 없어 걷지 못할 때도 변함없이 함께 계신다. 그렇다. 분명히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에도 힘이 없어 걷지 못할 때가 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영혼에도 사계절이 있다는 것이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에도 겨울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이 책은 "어두운 계절 속에서 싹텄"으며, 그 "깊고 어두운 계절을 영혼의 겨울이라 부른다"(7).

 

<영혼의 사계절>을 읽으며 가장 크게 부딪혀온 깨달음이 있다면, "균형의 신화를 깨고 리듬을 타라"(214-226)는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많은 신앙인들이 균형의 신화를 가지고 있고, 또 그것을 올바른 하나님과의 잣대로 제시한다. 나도 그렇게 배웠다. "일과 놀이와 휴식이 조화를 이루기만 하면 삶이 단순하고 멋있고 쉬워진다"는 단순한 논리이다. 이것이 얼마나 위험한 논리인지 신앙생활을 인도하는 모든 영적 지도자들에게 외치고 싶어진다. 우리의 삶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이것을 달리 표현하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있기만 하다면 우리 영혼은 언제나 '맑음' 상태일 것이라는, 그러니까 우리 영혼이 '맑음' 상태가 아니라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른지 의심해봐야 한다는 생각이 바로 우리가 가진 균형의 신화가 아닐까 한다.

 

어쩔 수 없이 나의 고백을 해야겠다. <영혼의 사계절>의 표현대로 하면 나는 분명 지난 몇 년 동안 영혼의 겨울에 처해 있음이 분명하다. 사명이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사역을 해도 기쁨이 없고, 알 수 없는 자기연민에 빠져 괴로웠다. 그러나 그보다 더 괴로웠던 사실은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는 죄책감이었고, 사역자라는 이유 때문에 아무에게도 내 마음 상태를 열어보이지 못한 채 괜찮은 척 해야 했던 이중성이었다. 그 죄책감과 이중성은 하나님 앞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솔직하게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지 못하고 혼자 지쳐 버린 상태와 싸워야 했다. 하나님도 내게 등을 돌리고 계신 듯해 하나님께 친근하게 나아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영혼의 겨울은 순전한 믿음, 성경적인 믿음을 자라게 한다. 이것은 다른 어떤 계절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겨울 속에는 바라는 것들의 실상과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를 가꾸어 줄 만한 독특한 조건들이 배합되는 계절이다. 겨율이야말로 우리가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않고 믿음으로 행하는 계절이다. 당신의 삶에 닥쳐올 수 있는 최악의 상황, 그 상황을 이겨내는 불변의 믿음을 기르기에 겨울보다 더 좋은 토양은 없다"(51).

 

<영혼의 사계절>은 내게 하나님의 위로와 영적 자유함을 깊이 맛보게 해주었다. 우리 영혼에 겨울이라는 계절이 찾아올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당연하다는 것, 아니 그것은 필수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내 마음을 옥죄고 있던 족쇄가 풀려나가는 느낌이었다. <영혼의 사계절>은 우리의 영혼에 겨울이라는 혹독한 계절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다. 겨울에는 겨울에만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겨울만이 줄 수 있는 선물이 있고, 겨울에만 할 수 있는 놀이가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영혼의 겨울은 기다림을 통해 견고한 믿음이 자라게 해준다. 겨울이 만들어내는 "믿음은 군살이 빠지고 더 견고해져 회의나 침체에 잘 빠지지 않는다. 마크 부캐넌은 "이것은 겨울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선물"이라고 말한다(57). 우리는 영혼의 사계절을 즐기는 법을 배워야 하는데, 겨울을 즐기려면 겨울이 주는 선물을 알아야 한다. 예를 들면, "영혼의 겨울만이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우리에게 천국을 사모하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겨울은 이 세상에 중독돼 있는 우리를 일깨우고 우리 안에 보이지 않는 세상에 대한 동경을 불러일으킨다"(60). 마크 부캐넌은 영혼의 사계절을 즐기는 법을 알면, 그리스도의 임재와 지혜를 전천후로 누릴 수 있다고 말한다.

 

<영혼의 사계절>은 지금 영혼의 나의 영혼은 어느 계절을 지나고 있는지 점검하게 해주며, 이 계절에 내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이며 집중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일목요연하게 알려준다. 겨울을 지나고 있는 영혼은 위로를 경험할 것이고, 봄을 맞이한 영혼은 기대감으로 가득찰 것이고, 여름을 맞이한 영혼은 열정의 에너지로 뜨거워질 것이고, 가을을 맞이한 영혼은 결산을 위해 긴장하게 될 것이다. 나는 <영혼의 사계절>을 읽으며 겨울보다 더 무서운 계절은 가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어떤 씨를 어떻게 얼마나 뿌렸는가에 의해서 결실이 달라질 테니 말이다.

 

<영혼의 사계절>에 의하면 확실하는 나는 봄을 맞이하고 있다. 겨울을 통과하며 내가 도달하게 된 하나의 결론은 예수님으로 족하다는 사실이다. 전에도 물론 이런 신앙고백이 따랐지만, 이전과는 다른 차원의 고백이다. 나에게 다시 겨울이 닥쳐올 수도 있겠지만, 이젠 영혼의 겨울이 두렵지 않다. 그것을 어떻게 즐길 수 있는지 배웠기 때문이다. <영혼의 사계절>에 의하면 봄을 맞은 나는 이제 청소가 필요한 때이다. 하나님이 나의 삶에 청소하라고 하시는 구석들을 찾아 구석구석 깨끗이 청소하는 것! 겨울에는 진부하고 지긋지긋했던 뻔한 소리들이 봄에는 확실히 힘찬 응원가로 들린다.  

 

"그러니 어서 일어나라. 쟁기질하고, 파종하고, 청소하라. 그래봐야 잃은 것이 무엇인가?"(115)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여름'에 비유한 통찰력에는 새로운 깨달음으로 전율하는 사람도 있고,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고, 더 깊은 묵상과 연구를 필요로 하는 사람도 있을 듯하다. 그것 하나를 제외하면, 이 책은 탁월한 통찰력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영혼의 리듬을 찾아준다. 기억하라. "우리는 균형에 눈독을 들이지만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리듬"(215)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때'를 아는 것, 하나님에 때에 대한 영적 통찰력이 없다면 영혼이 고갈되도록 죽도록 헛 일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영혼의 사계절>은 영혼의 내비게이션과 같은 책이라고 하고 싶다. 목자는 반드시 읽어야 책이고, 신앙생활의 열매를 바라는 성도, 혹독한 겨울을 지나고 있는 성도에게는 꼭 필요한 책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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