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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모험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3월
평점 :
"이 경치도 뭔가 하고픈 말이 있을까"(산의 소리, 78)
내가 살아가는 이야기도 소설이 될 수 있을까. 살면서 누군가에게 들려준 말이 있고, 누군가 귀기울여 그 이야기를 들어준다면, 나도 작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오늘 나의 삶을 글로 써내려간다면, 나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게 될까.
<하늘 모험>은 내가 <사랑을 말해줘>라는 작품을 통해 처음 만난 요시다 슈이치의 단편소설과 여행을 주제로 한 에세이를 모은 작품집이다. "좀처럼 보기 힘들다"는 그의 단편소설집이라는 말에 단박에 마음에 끌렸다. 그의 이야기에서는 언제나 풋풋한 냄새가 난다. 이제 막 시작되는 청춘처럼, 햇살이 섞인 푸른 하늘색처럼 풋풋한 그 느낌이 좋았다. <하늘 모험>, 이 책은 제목부터 아예 그런 냄새를 풀풀 풍긴다.
<하늘 모험>은 '작품'이라기보다는 친구가 들려주는 이야기같다. 작가 자신도 이 글이 "한 달 늦게 적어온 일기" 같다고 했는데, 정말이지 혼자 써내려간 일기같은 느낌이 있다. 기내 잡지에 연재했던 단편소설과 수필을 모았다는데, 작가의 표현을 빌어서 말을 하면 "하늘에서 읽도록 만들어진 색다르고 신기한 잡지"를 위한 작품이다. 그래서인지 <하늘 모험>이 들려주는 이야기의 큰 테마는 '여행'이다. "한 달에 한 번 싣는 연재"였던 탓에 작가는 "그달에 만난 사람이나 눈으로 본 대상이나 느꼈던 감정에 많은 영향을 받"았단다. 그래서인지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이야기도 단편적이고, 호흡도 단편적이고, 감상도 단편적이다. 다른 말로 바꿔 표현하면, 짧은 호흡으로 끝나는 이야기의 끝이 대부분 수수께끼같은 의문과 여운을 남긴다. 가장 수수께끼같았던 이야기는 <선술집>이다.
"우리 아들놈은 1년에 한 번도 전화를 안 해요"라고 푸념을 늘어놓는 남자에게 "눈 깜짝할 사이예요"라고 다케이가 말을 받았다.
"눈 깜짝할 사이요?"
"네, 정말 눈 깜짝할 사이죠."
남자에게 그 말뜻이 전해졌을지 어땠을지는 모르지만, 다케이는 그 말을 되풀이하며 시원한 그 고장 토속주 잔을 기분 좋게 비웠다.
(선술집, 45)
업무로 방문한 지방 마을의 선술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취미를 가진(?) 주인공 남자가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와 사촌 누나를 짧게 회상한다. 그리고 그곳 선술집에서 만난 손님과 나누는 이 대화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눈 깜짤한 사이예요"라는 수수께끼같은 한마디를 남긴 채 말이다. 주인공 남자는 선술집에서 만난 손님에게 자신의 말뜻이 전해졌을지 어땠을지 모르겠다고 하는데, 그것이 이 책을 읽는 독자도 겨냥한 질문이라면 알듯 모를 듯하다고 대답해야겠다.
<하늘 모험>은 작가가 직접 겪은 여행담도 들을 수 있는데, 그곳에 한국 여행 이야기도 있다. 2009년 부산국제영화제에 다녀왔단다. 저자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것은 헌신적인 자원봉사자들의 모습이었는데, 덕분에 작가는 부산에 대한 단상을 이렇게 남긴다. "친한 친구 집을 방문한 느낌이랄까, 아무튼 영화제 전체, 아니 부산 거리 전체가 친한 친구 같은 인상이었다"(부산, 한국, 185).
그런데 직접 들려주는 부산 이야기보다 더 흥미로운 한국 여행 이야기는 <라볼, 프랑스> 방문기이다. 라볼은 프랑스의 서쪽, 대서양에 인접한 고급 비치리조트란다. 작가는 라볼에서 해마다 열리는 '해변의 작가들'이라는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그곳을 방문했는데, "모처럼 멀리서 오셨으니 사흘 동안 자유롭게 라볼을 즐겨주세요"(라볼, 프랑스, 157)라는 그곳 관계자의 말이 섬뜩했다고 한다. "평균적인 일본인에게는 프랑스의 고급 비치리조트에서의 자유 시간만큼 고통스러운 것도 없다"고. 낯 선 땅에서 길을 잃은 어린아이처럼 불안해하는 작가의 모습에 웃음이 났다. 그리고 이 대목. 작가는 여기서 한국의 '접대' 문화를 그리워한다. "헤어진 순간, 매일 밤낮을 분 단위로 '접대'해준 한국의 도서 전시회가 너무나 그리워졌다. 사인회, 술자리 모임, 술자리 모임, 취재, 술자리 모음으로 이어지는 코스였다. 결국 나는 프랑스의 고급 와인보다는 맥주에 소주를 타서 마시는 한국식 스타일이더 잘 맞는 사람임을 새삼 실감했다"(라볼, 프랑스, 157). 한국 접대 문화를 이 짧은 글 속에 이처럼 리얼하게 포착해내다니!
한국에 대한 그의 인상이 좋아서인지 더 친근하게 느껴지는 작가이다. 그러나 그 전부터 악의라고는 털끝만큼도 마음에 품고 있을 것 같지 않은, 착한 심성이 느껴지는 그의 글이 좋았다. 이 책도 역시 마찬가지이고. "그럴싸한" 작품이라기보다, 투명한 심성으로 들여다본 우리네 일상이라는 측면에서 (임팩트가 부족하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별점은 하나 깎았지만), 툭 던지는 인생의 단상과 잔잔한 여운이 살금살금 마음을 간질이는 책이라고 하고 싶다.
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