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은 그의 혀끝에서 시작됐다 - 심리학자와 언어전문가가 알기 쉽게 풀어낸 말의 심리
박소진 지음 / 학지사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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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낚였다는 생각이 든다. 예상과 기대를 완전히 빗나간 책이기 때문이다. "심리학자와 언어전문가가 알기 쉽게 풀어낸 말의 심리"라고 했는데, 말과 관련된 심리라기보다 일반 심리로 읽힌다. '말과 관련된 심리'가 아니라, '말'을 매개로 일반적인 심리학 이론을 풀어놓은 책이라고 하고 싶다. '말' 자체의 심리에 집중하지 않고 말에 담긴 일반적인(광범위한) 심리를 두루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심리학 서적을 처음 접하는 독자라면 유익하게, 그리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듯하다. 그러나 특별히 '말'에 담긴 심리, 말을 통한 상호작용 속의 역동을 분석한 전문서적을 기대했다면 (더구나 심리학적 기초 지식이 어느 정도 있는 독자라면) 실망할 것이다.

 

한 가지 염려되는 점은 이렇게 심리학을 배우면, 자칫 일반화의 오류에 빠지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제시된 구체적인 사례가 있지만, "그 말 속에 담긴 심리는 이렇다"는 공식이 머릿속에 박히면 그 말에는 의레 이런 심리가 담겨 있다라고 해석해버리는 버릇이 생겨나기도 하니 말이다.

 

(기대했던 내용은 아니었지만,) 구체적인 상황(사례)과 말에 담긴 심리가 풀어지는 과정을 읽어가는 작업은 나름대로 유익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통해 새롭게 배운 것 중에 하나는 '수동공격성'이다. "무조건 'YES'라는 말에 속지 말 것'이라는 제목의 글이다. 굉장히 유순하고 부드러우며 내성적이고 얌전한 성격인데, 절대 부정적인 의사표현을 하지 못하는 성격의 여자(영애)가 있다. 타인의 부탁 외에도 자신의 과제나 일에 대해서도 최대한 미루고 미루다가 겨우 완성을 하거나 혹은 완성하지 못하기도 한단다. 다른 팀의 팀원 중에 이런 성격의 타입이 있어서 그 팀장의 1년 동안 무척 고생을 하며 함께 일하는 어려움을 여러번 토로한 적이 있다. 이 책을 보니, "영애처럼 본인이 내키지 않는 일에 대해 솔직하게 거부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고 대신 수동적으로 그 일을 완성하지 못함으로써 타인을 공격하는 것을 '수동공격성'이라고 한다"(76)다. 우리는 단순히 그 팀원이 무책임하고 게으르다고만 생각했는데, 그런 행동 이면에 공격적 성향이 숨어 있었다고 하니 놀랍니다. "이 장애를 가진 사람은 대체로 저항 때문에 기대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성과를 낸다"(77)고 하는데, 그 팀원도 그런 이유로 괴로워하다가 결국 사직을 했다.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지 않아야겠지만) 그 팀원의 말과 행동 속에 이런 심리가 숨겨 있다는 것을 미리 알았다면 어땠을까. 의사소통에 변화가 있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그저 답답함으로 관계가 끝나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운 마음도 든다.

 

말보다는 비언적 의사소통에 담긴 의미가 훨씬 크다고 하지만 직접적인 의사소통의 도구는 '말'이기 때문에 <비극은 그의 혀끝에서 시작됐다>는 제목이 참 마음에 와닿았다. 기대했던 내용과는 달랐지만, 말에 담긴 심리를 알아가는 작업은 언제나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듯한 재미가 있다. 무심코 뱉은 말에 나도 모르게 담겨 있는 나의 심리를 알아가는 작업도 의미가 있고, 누군가 무심코 뱉은 말에 무조건 좌지우지 되지 않고, 그 말의 의미를 한 번 걸러낼 수 있는 '방패' 또는 '거름망'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알아두면 힘(치유)이 되는 지식이라고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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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볼 일 없는 인생 입문 - 잉여청춘을 위한 심리 테라피
가스가 다케히코 지음, 요시노 사쿠미 그림, 황선희 옮김 / 미래의창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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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괴롭히는 감정의 실체!

 

 

이 책을 읽으며 생각해본다. 나는 어떻게 처음 인생을 배우기 시작했을까. 과연 몇 살 때부터 인생을 알기 시작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리고 언제부터 인생 참 별 것 없다고 깨닫게 되었을까. 이 책의 제목을 보며 생각해본다. '별볼일 없는'이라는 책 제목의 글귀는 어디에 걸리는 것일까. 별볼일 없는 '인생'이라는 것인지, 별볼일 없는 '인생 입문'이라는 것인지. '잉여청춘'을 위한 심리 테라피라는 부제를 보니 '별볼일 없는 인생'이 맞는가 보다. 그런데 (순전히 주관적인 평이지만) 많은 독자가 이 책을 읽고 나서 '별볼일 없는' 인생 입문 책이라고 생각할 듯하다.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 '이건 뭐지?'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꺼림칙한 허무감이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꺼림칙한 느낌 이면에는 '독특함'이라는 생소한 맛이 숨어 있기도 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꺼림칙한 느낌을 뒤집으면 그것은 독특함과 맞닿아 있다. 시시한 느낌과 재밌는 느낌이 공존하는 이 책, 이런 느낌 처음이다.

 

<별볼일 없는 인생 입문>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책이다. 심리 테라피라고 하기에는 에세이적이고, 딱 꼬집에 말할 수는 없지만 뭔가 싱거운 듯한 이야기 속에 둔중한 교훈이 숨어 있다. 악동들의 재미난 놀이처럼 보이기도 하는 목차는, '세 글자'로 이루어진 부정적인 사고를 모은 것이다. "절망감, 상실감, 혐오감, 허무감, 고독감, 초조감, 무력감, 과대감, 죄책감, 불안감, 피해감, 공허감, 위화감"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 부정적인 사고의 정체를 추적해들어간다. 글을 쓴 이는 산부인과 의사를 거쳐 정신과 의사가 되었다고 한다. 저자는 의학적(심리학)적 이론 체계보다는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그 부정적인 사고의 실체를 그려낸다.

 

저자가 그려내는 세 글자로 이루어진 부정적인 사고 중에 '상실감'과 '죄책감' 부분이 마음에 남는다. 저자는 상실감에는 두 종류가 있다고 설명한다. "하나는 인생에서 결정적으로 소중한 것을 잃고 이제 되돌릴 수 없어 망연한 경우다. 또 하나는 괴장히 사소한 일로 감성적인 기분에 젖는 것이다"(48). 마음에 와닿았던 부분은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도 눈물을 흘리거나 상실감을 느끼지 못하는 반면, 자신이 아끼던 레코드를 대량으로 팔아치운 후 깊은 상실감에 휩싸였다는 저자의 고백이다. 자신의 잘못된 믿음이 깨어지는 순간, 잃은 것 하나 없이도 마음에 알 수 없는 상실의 씨가 뿌려졌다는 고백도 와닿았다. 살수록, 우리를 괴롭히는 많은 감정이 사실은 '논리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나를 괴롭히는 '상실감'이라는 감정의 실체를 객관해보며, 다시금 질문을 던져본다. 왜 우리는 정작 깊은 상실감을 느껴야 할 대상에 대해서는 무감각하면서 엉뚱한 상실감에 사로잡혀 사는 것일까.

 

또하나 '죄책감'에 대한 저자의 고백. 저자는 상당한 미인 어머니를 둔 외아들로서, 어머니의 아들에 걸맞지 않는 외모 때문에 죄책감을 느낀다고 고백한다. 응어리가 상당히 깊어, '어머니의 자랑거리인 잘생긴 아들'과 거리가 먼 데 대한 죄책감은 지금도 여전한단다. 참고로 저자는 1951년생이다. 저자는 이러한 죄책감을 "가슴 깊이 새겨진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라고 표현한다. 나는 저자와 비슷한 죄책감에 시달리는 친구를 알고 있다. 그 친구가 이 책을 읽는다면 자신을 괴롭히는 죄책감의 실체를 객관해보고, 그것으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감정은 사고를 지배한다. 부정적인 감정들은 부정적인 사고를 만들어내고, 부정적인 사고는 우리의 마음밭을 가시밭으로 만들어놓는다. 느끼면 느껴지는 대로 살 수도 있겠지만, 배움을 통해 어느 정도 통제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면 '감정'에 고스란히 당하지 않아도 된다. <별볼일 없는 인생 입문>은 인생의 쓴 맛을 음미해는 보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몇 살 때부터 인생에 입문하게 되는지 모르겠지만, 인생의 쓴 맛을 알 때 비로소 인생을 알아간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가벼운 마음으로, 그냥 한 번 읽어보기에 좋은 책이다. 뭔가 시시해보이지만(인생이 원래 시시하지 않은가), 묘한 여운을 남기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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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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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그 설명할 수 없는 - 사랑을 움직이는 아홉 가지 비밀
율리아 파이라노.산드라 콘라트 지음, 박규호 옮김 / 쌤앤파커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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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움직이는 '관계 성격'이 있다!

 

 

'마트로슈카'라는 러시아 민속 인형이 있다. 이 전통 목각 인형은 안에 사이즈가 다른 작은 인형을 여러 개 감추고 있다. 제일 바깥의 인형 안에는 좀 더 작은 인형이 감추어져 있고, 그 작은 인형 안에는 다시 좀 더 작은 인형이 감추어져 있는 형식이다. 우리의 사랑을 움직이게 하는 9가지 코드를 밝혀진 <사랑, 그 설명할 수 없는>는 우리의 성격이 어떤 면에서 이 러시아 전통 목각 인형인 마트로슈카와 비슷하다고 말한다.

 

<사랑, 그 설명할 수 없는>, 이 책에서 가장 주목해볼 점은, 우리가 친구나 직장 동료에게 내보이는 성격과 (사랑하는) 파트너에게 보이는 성격이 완전히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속에 작은 목각 인형을 감추고 있는 마트로슈카처럼 밖으로 보여주는 성격말고, 제일 깊숙한 곳에 오직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보여주는 사랑의 성격(관계 성격)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책은 묻는다. "사랑의 행복을 누리고 바람직한 관계를 경험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과 어떤 점이 다른 걸까? 그들은 도대체 어떤 능력과 태도를 지니고 있는 걸까? 그들은 어떻게 좋은 파트너를 만날 수 있었을까? 그들은 파트너를 선택할 때 어떤 점들에 특히 주의를 기울일까? 그들이 관계를 안정적이면서도 활기차고 행복하게 유지해가는 사랑의 비결은 무엇일까?" 그리고 심리학자이자 커플 치료사인 두 저자는 연구 결과, 이런 물음들은 모두 '성격'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물론 여기서 성격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일상적 성격'이 아니라, 부르크하르트 안드레젠이 언급한 '관계 성격'을 말한다." 이 책의 목적은 우리 자신 안에 숨겨진 사랑의 관계 성격을 파악하는 것이다. "우리 자신의 파트너십에는 가장 친한 친구들조차 상상할 수 없는 어떤 모습들이 감추어져 있을까?"

 

<사랑, 그 설명할 수 없는>는 사랑의 관계 성격을 파악하는 9가지 코드를 통해 자신의 유형을 진단해볼 수 있도록 돕는다. 그 9가지 코트는 "애착, 친밀감, 주도성, 배려심, 현실 감각, 갈등 해결, 외향성, 성적 욕구, 민감성"이다. 각각의 코드는 대비되는 성향이 있다. 예를 들면, 애착 코드는 안정적인 애착과 불안정한 애착(회피형과 집착형), 친밀감 코드는 과도한 친밀감과 일정한 거리를 두는 사랑을 구분하고, 또 '안달할수록 더욱 멀어지는 사랑'이라는 부제가 달린 민감성은 여유로움과 대비되는 성격을 구분한다.

 

여느 심리학 책과 마찬가지로, <사랑, 그 설명할 수 없는>도 우리들 각자가 만들어내는 관계는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결과임을 밝힌다. 사랑의 관계 성격 역시 어린 시절의 경험에 그 뿌리(원인)를 두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의 차별점이 있다면, 앞에서도 말했듯이 일반적으로 겉으로 들어나는 성격과 사랑할 때 오직 연인에게만 내보이는 사랑의 관계 성격이 다르다는 점이다! 어쩌면 우리는 사랑할 때 다르게 나타나는 나의 성격 유형 자체를 '사랑'이라고 착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에게만 원하고, 그에게만 다르게 반응하는 나의 그 무엇이 사랑의 감정이라고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는 손자병법이 사랑에도 통하는 듯하다. 나를 알고 상대를 알수록 사랑에 실패할 확률이 줄어들고, 사랑을 위한 더 나은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나를 알면 상대가 더 잘 이해되기도 한다. <사랑, 그 설명할 수 없는>는 일반 연애서들의 종합판처럼 읽힌다. "우리 자신이 어떤 존재이고 어떤 사람이 나에게 더 잘 맞는지" 파악해볼 수 있도록 돕는다. 사랑을 하는 나의 '전형적인' 방식을 테스트해보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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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나무의 일기
디디에 반 코뵐라르트 지음, 이재형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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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하다. 자연과 소통하고 교감했던 영화 <아바타>처럼, 신비로운 이야기이다. 소설이면서 사실이고, 사실이면서 소설이기도 한 이 신비로운 이야기는 정말이지, '나무'를 살아 있는 생명체로 다시 바라보게 해준다. 그것은 익숙하지만, 동시에 낯선 경이로움이다. 우리는 나무도 '생명'이라고, '살아 있는' 생명체라고 말한다. 그런데 정말 나무를 살아 있는 생명체로 대하고 있을까? 인간이 자연의 일부이듯이, 나무도 자기 생각을 가진 생명체로서 자연 안에서 서로 교감할 수 있는 소통할 수 있는 대상이라는 생각을 아주 오랫동안 잊고(?) 살아왔다. <어느 나무의 일기>는 망각의 잠을 깨우고, 우리가 잃어버린 오래된 기억을 깨운다.

 

<어느 나무의 일기>는 제목처럼 나무가 주인공이고, 일기처럼 적어내려간 나무의 이야기이다. 프랑스 한 시골 마을에 인간과 함께 3백 년을 살아온 배나무가 있다. 그 나무의 이름은 '트리스탕'이다. 그런데 작은 돌풍 때문에 이 나무가 그만 쓰러져버리고 말았다. 트리스탕은 자신의 현실을 덤덤하게 받아들이며, 앞으로의 자신의 운명을 궁금해한다. "내가 살아가기를 멈추면, 이 모든 인간의 기억들은 과연 어떻게 될까"(11).

 

<어느 나무의 일기>는 이렇게 뿌리가 잘려버린 트리스탕이 장작이 되고, 나무 조각이 되어 인간들과 소통하는 이야기이다. 트리스탕의 현재 주인인 의사 조르주 란 박사 부부, 트리스탕과만 은밀하게 소통하는 옆집 소녀 마농, 프랑스의 '주목할 만한 나무들'의 이야기를 쓰고 있는 작가 야니스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트리스탕이 심어진 루이 15세 때로 시간을 거슬로 올라가기도 하고, 트리스랑의 기억을 통해 드레퓌스 사건이 재구성 되기도 하고, 아마존 밀림으로 공간을 넘나들기도 한다. 3백 년이라는 트리스탕의 기억 속에서 프랑스 역사를 관통하는 날줄과 개인의 삶을 구성하는 '환경'이라는 씨줄이 신비로운 이야기를 엮어간다.

 

'트리스탕'의 기억에 깃든 인간의 역사와 그 기억을 통해 재해석되는 프랑스 역사도 새롭지만, <어느 나무의 일기>를 읽으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나무'가 가진 숨겨진 생물학적(?) 힘이었다. 자연을 헤치는 인간의 이기심을 응징하고자 나무가 인간에게 불임을 가져다주는 호르몬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사실일까. '순환'하는 자연 속에서 유독 인간만이 '한 번 살면 그뿐'이라는 자세로 살고 있지 않나 반성도 하게 해준다. <어느 나무의 일기>는 나무의 기억을 통해 프랑스의 역사를 재구성하고, 인간과 자연 사이의 소통 매개 역할을 하는 트리스탕을 통해 자연의 '균형'과 '상호작용'을 이야기하는데, 전반적으로 프랑스 역사보다는 환경문제 쪽으로 (독자의) 무게 중심이 더 기운다.

 

<어느 나무의 일기>는 가슴이 먹먹해지는 감동보다 뭔가 잊고 있는 기억을 일깨우는 데 목적이 있는 계몽적 소설로 읽힌다. 뿌리에서 분리되어 소멸되어가는 트리스탕을 통해 자연의 일부이면서도 자연에 속한 생명체로 살지 못하는 인간의 생활이 얼마나 위험하고 권태로운 것인가 하는 자각도 신선한 자극이 되었다. 자연을 사랑하는, 그리고 독특한 느낌의 소설을 찾는 독자에게 권하고 싶다.

 

"계절은 내게 아무 영향도 미치지 못한 채 아무 이유도 없이 바뀌어간다. 무르익어가는 봄을 기켜보는 게 대체 무슨 소용린 말인가. 나는 거기 동참하지도 못하는데. 여름을 느낀다 한들 무슨 소용인가. 겨울을 보내는 데 도움이 되는 저장물질을 얻어낼 수도 없는데. 가을을 알리는 첫 신호를 포착한들 무슨 소용인가. 붉은 거미가 내 옆의 침엽수를 공격하여 잎이 떨어지고, 내가 뿌리내린 토양을 산성화하고, 그 바람에 더욱 심각해진 살충제 오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른 식으로 영양을 섭취할 수밖에 없었던, 늘상 겪던 위기감조차 이제는 느끼지 못하는데. 그저 모든 게 권태로울 뿐이다"(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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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함께하는 1년
리처드 포스터 지음, 줄리아 롤러 엮음, 서진희 옮김 / 아드폰테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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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하나님과 1년 365일 동행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한 답입니다.

 

 

교회 안에 치유 프로그램이나 성경을 지식적으로 연구하는 프로그램은 많은데 영성 훈련을 위한 프로그램은 상대적으로 적은 듯합니다. 어찌 보면, '영성'이라는 말조차 낡은 것으로 느껴질 정도로 현대인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주제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교회마다 각종 프로그램이 넘쳐나는데, 문제는 많은 성도가 일정 '과정'을 이수하고 나면 교육을 마친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목사님은 우리 목사님은 교육과 훈련을 구분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몸에 익을 때까지 교육을 '반복'하는 것이 훈련이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에도 훈련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자주 잊습니다. 교육의 중요성은 강조되고 있는데, 훈련의 중요성은 놓치고 있는 것입니다. 영성이란, 행동으로 옮겨질 때까지, 자연스러운 일상생활의 일부로 자리잡을 때까지 교육받고, 반복하는 훈련을 통해 길러지고, 깊어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1년>은 하나님(그리스도)과 동행하는 생활 습관을 기르는 영성 훈련 교본 같은 책입니다. 이 책은 '성경 인물들이 실천했던 영적 훈련'이라는 한 가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합니다(16). 금식, 기도, 성경연구, 섬김, 순종, 홀로 거함, 고백, 예배, 묵상, 인도, 침묵, 순결, 희생, 교제, 축제 등 다양한 영적 훈련의 주제들 365일 동안 훈련하도록 꾸며져 있습니다. 날짜별로 훈련 주제와 관련된 성경말씀을 읽고, "그에 따른 해설이나 실제적인 적용, 그 외에 인용문, 기도, 관련 묵상 글"을 짧막하게 수록해놓았습니다. 하루에 읽어야 할 분량은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깊은 묵상을 요하는 글들이고, 지식적인 배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실제적인 적용을 해보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저자는 "영적 훈련은 하나님께로부터 능력을 받아 우리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것들을 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의도적으로 쏟아 붓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은혜 안에서 성장하기를 원한다면 맹렬한 노력을 쏟아 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들으며 내 안에 영적 성장을 위한 갈망이 얼마나 있는지, 이를 위해 '맹렬한 노력'을 쏟아 부었는지 돌아보며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은혜로 사는 삶이라고 해서 '거저 얻어지는' 은혜만을 바라왔던 신앙 자세를 회개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1년>은 무엇보다 성경적 가르침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모든 영성 훈련은 성경을 바탕으로 한다는 근본 정신 위에 "성경말씀을 묵상하고 영적으로 훈련하는 것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으로 들어가는 최고의 수단"이라고 말합니다. 빨리 배우고, 빨리 익히고, 빨리 결과를 보기 원하는 현대인들에게 1년 동안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생활 습관을 익히는 훈련은 지루하고 따분한 과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요셉을 쓰시기 위해 13년간 훈련하시고, 모세를 출애굽의 기도자로 세우시기 위해 40년간 훈련하시고, 이스라엘 백성도 광야에서 40년간 훈련하신 하나님의 인내를 생각하면,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 습관을 기르는데 1년이라는 훈련 과정은 결코 길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이 책의 훈련 과정이 '365일'로 구성된 것은 이 책의 가르침이 평생의 삶의 습관이 되어야 한다는 뜻을 담은 것인 듯합니다.

 

요즘 우리 사회는 스펙 쌓기, 자기계발에 혈안이 되어 있는 듯합니다. 문제는 세상 지식은 제한적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배운 것이 내일 쓸모없는 지식이 될 수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그 안에 생명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난미과 함께하는 1년>은 이 책에 담긴 훈련의 목적에 대해 이렇게 밝힙니다. "우리의 목적은 성경에 담긴 생명이 우리 삶에, 더 나아가 세상에 스며들게 하려는 것입니다"(9). 영성 훈련의 거장 리처드 포스터의 안내를 따라 스스로를 훈련하다 보면,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거하실 수 있는지, 그 방법을 매일 경험적으로 깨닫게 될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모든 상황에서 그리스도인답게 반응하는 삶을 꿈꾸며, 이 책의 가르침을 따라 느리더라도 한 걸음씩 전진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영적 훈련의 유일한 목적은 하나님 앞에 우리 자신을 들고 나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전부이고 그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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