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연기와 뼈의 딸 1 - 판타스틱 픽션 블루 BLUE 4-1 ㅣ 판타스틱 픽션 블루 Blue 4
레이니 테일러 지음, 박산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영원한 사랑이라는 것이 가능할까?
한쪽에서는 영원을 맹세하지만 한쪽에서는 사랑의 유효 기간을 이야기한다.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연인들에게 누군가는 이런 말을 했다. "우리가 영원한 사랑이 있다고 믿는 것은, 길어야 백 년밖에 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한편에서는 서로를 포옹한 채 그대로 화석이 되어버린 연인의 사랑이 감동을 주기도 한다. 삶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찢기고 베이고 쓰라려도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또 다시 사랑을 꿈꾸게 되는 것은, 영원한 사랑에 대한 포기할 수 없는 신화가 우리 유전자 속에 꿈틀대로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옛날 옛적에 천사와 악마가 사랑에 빠졌다.
그 사랑의 결말은 해피엔딩이 아니었다."
2011 아마존 올해의 책 TOP 10, 2011 아마존 Teen Book 종합 1위, 2011 뉴욕타임스 올해의 책, 2011 커커스 리뷰 올해의 Teen Book, 2011 퍼블리셔스 위클리 올해의 책, 2011 LA 공립 도서관 선정 올해의 책, 전 세계 25개국 판권 계약, 유니버설 픽쳐스 영화화 예정 등등 다 읊기에도 숨이 찰만큼 어마어마한 이력에 빛나는 이 책의 제목은 그리 낭만적이지 않다. <연기와 뼈의 딸>, 이 책은 판타지 측면에서는 <해리포터>에, 로맨스 측면에서는 <트와일라잇>(시리즈)과 견주어질 듯하다. 한편으로는 <아바타>와도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 하나의 트랜드로 여겨질 만큼 '판타지 로맨스'가 전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이유가 무엇일까? 척박한 현실에 대한 반작용일까? <해리포터> 또는 <트와일라잇>, <아바타>와 견주어질 <연기와 뼈의 달>의 '비주얼 쇼크'도 만만치 않다. 천사와 악마라는 오래된 신화와 결합된 이 판타지 로맨스는 상반신은 인간이고 하반신은 말인 켄타우로스처럼 '괴물'처럼 생긴 '악마'가 등장한다. 그런 모습을 하고도 몹시 아름답고 사랑스러워야 할 악마의 모습이 어떻게 영상으로 그려질지 기대가 된다.
사건의 전말이 모두 들어날 때까지 모든 이야기는 '복선의 지뢰밭'이다. 스포에 주의하며 이야기의 시작을 정리하면 이렇다. 프라하에 사는 17세의 예술 학교 학생인 주인공 '카루'는 신비한 소녀이다. 그녀에게는 이렇다 할 가족도 없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한 적도 없고, 질문을 피하는 데도 명수였다. 그녀의 친구들은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그녀가 다니는 학교에 카루의 스케치북을 열렬하게 숭배하는 무리가 있었는데, 그녀의 스케치북에는 기괴한 트레이드마크 캐릭터들이 넘실거렸기 때문이다. 카루의 스케치북에 등장하는 주요인물은 이렇다. "허리 아래로는 뱀이고 허리 위로는 인간 여자로, 카마수트라 조각 같이 동그랗고 완벽한 젖가슴을 드러내고, 천사 같이 아름다운 얼굴에 우산처럼 생긴 코브라의 목과 이빨이 있는 이사", "기린 목의 트위가", "인간의 눈과 앵무새 부리에 스카프 사이로 동그렇게 말린 오렌지색 털이 삐져나온 야시리", 그리고 팔과 거대한 상체만이 몸에서 유일하게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고, 허리 아래는 인간이 아닌 또 다른 존재이며, 머리는 숫양과 비슷한 브림스톤"이 그들이다. 친구들은 이 모든 것이 터무니없이 기괴한 그녀의 상상력이 빚어낸 산물이라고 여기지만, 그것은 카루의 현실(진실)이었다. 느긋하게 미소를 지으며 진실을 말하면 사람들은 그 말이 정말이란 걸 믿지 않고 그냥 넘어가곤 했다. "만약 브림스톤과 이사와 트위가와 야사리가 가게에서 나온다면, 인간들은 그들을 괴물이라고 부를 것이다. 어쩌면 악마들이라고 부를지도 모른다. 그들은 스스로를 키메라라고 불렀다". 그러나 카루는 그들과 너무나 친숙하기 때문에 그들을 볼 때면 악마나 괴물이 아니라, 알 수 없는 이유로 그녀를 아기 때부터 길러준 다정한 생물로 봐왔다.
카루는 평범한 예술 학교 학생이면서, 인간이 아닌 생물의 심부름을 다니는 이중생활(?)을 하고 있다. 카루는 브림스톤의 가게에서 성장했는데, 아직도 거기가 어디인지 모른다. 브림스톤의 가게는 인간의 소원을 들어주는 곳이다. 그리고 인간의 소원을 들어주는 대가로 브림스톤이 받는 화폐는 딱 하나이다. 그것은 금도 아니고, 수수께끼도 아니고, 친절도 아니고, 옛날이야기에 나오는 허튼소리도 아니고, 영혼도 아니다. 그것은 그 어떤 것보다 기괴한 것이다. 그가 받는 것은 바로 이빨이었다. 브림스톤은 살인자들에게 이빨을 사들이고, 카루는 브림스톤의 명령이 있으면 그 이빨을 사오는 심부름을 해야 한다. 카루는 '포탈'이라는 신비로운 문을 통해 브림스톤의 심부름을 다닌다. 포털은 수십 개의 도시로 열렸고, 카루는 심부름을 위해 그리고 때로는 그냥 재미로 그 도시들을 다 다녀 봤다. 세계 어디를 가건, 그녀 뒤로 문히 닫힐 때면, 가게와의 연결은 그걸로 단절되고 말았다. 어떤 마법이 작용하고 있든, 그 마법은 바로 그곳-또 다른 세상-에만 있으며, 이 인간 세상에서는 만들어 낼 수 없었다. 심지어는 카루조차 브림스톤의 기분에 따라 그곳에 들어갈 수 있었다. 괴물들을 사랑을 받으며, 겉으로는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지만, "마법과 수치심과 비밀들과 이빨과 자신에게 뭔가 빠져 있다는, 끊임없이 그녀를 괴롭히는 깊은 상실감이 카루의 삶을 이루고 있었다. 카루는 그녀가 완벽하지 않다는 생각에 괴로워했다. 이게 무슨 뜻인지 정확히는 몰랐지만, 그 느낌은 평생 동안 그녀를 따라다녔다. 그 느낌은 마치 뭔가 잊어버리고 있는데 그게 생각이 나지 않아 돌아버릴 것 같은 느낌과도 비슷했다." 마치 그녀가 살아야 할 삶이 따로 있다는 듯이 말이다.
"또 다른 세계가 있었다."
카루의 이러한 삶은 어느 날 포털에 찍힌 이상한 자국과 한 신비한 존재의 등장으로 인해 파열되기 시작한다.
그녀는 어째서 이런 괴물(악마)과 같이 살게 되었을까?
도대체 브림스톤이 사들이는 그 이빨들은 무엇에 쓰는 걸까?
가게 반대편에 있는 문은 뭘까? 그 문은 어디로 이어지는 문일까?
키메라는 정확히 어떤 존재이고, 어디서 온 것일까?
그녀가 아는 것보다 더 많은 키메라들이 있을까?
그리고 그녀는 또 누구란 말인가?
그녀의 부모는 누구고, 어떻게 브림스톤이 그녀를 보살피게 됐을까?
어느 날, 포탈에 찍힌 그 검은 손도장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 불길한 파국의 냄새는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어깨에 불타는 듯한 날개를 달고 있는 '아키바'는 또 어떤 존재인가?
아키바는 갑자기 왜 나타났으며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연기와 뼈의 딸>은 스스로 이야기의 윤곽을 드러날 때까지 독자들에게 계속해서 여러 개의 퍼즐 조각만을 나누어줄 뿐이다. 조각이 스스로 제자리를 찾아들어갈 때까지.
"옛날 옛적에 한 천사가 안개 속에서 죽어가고 있었다.
그때 한 악마가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미소를 지었다."
'카루'라는 이름은 악마의 언어로 '희망'이라는 뜻이다. <연기와 뼈의 딸>은 천상도 지상도 아닌, "또 다른 세계"에 속한 천사와 악마의 전쟁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전쟁 안에 그들이 사는 세계가 통째로 갇혀 있었다. <연기와 뼈의 딸>은 다음과 같은 도전적인 질문을 던지며 천사는 곧 선이고, 악마는 곧 악(괴물)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에 도전한다. "괴물들이 전쟁을 일으키는 것일까, 아니면 전쟁 때문에 괴물이 생기는 것일까?" '희망'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카루, 그녀의 사랑이 이 비극적인 전쟁을 끝낼 수 있을 것인가?
개인적으로는 기괴하고 흉칙한 생물체를 친숙하게(?) 그려내는 작품을 좋아하지 않는다. 일종의 종말론적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마법사와 기괴한 생명체가 등장하는 <해리포터>도 사랑은 '인간'의 모습을 한 존재 사이에 이루어지며, 뱀파이어와 늑대 인간이 등장하는 <트와일라잇> 시리즈도 사랑은 '인간'의 모습을 한 존재 사이에 이루어지며, 외계 생명체가 등장하는 <아바타>도 결국은 '같은 모습'이 되어 서로 사랑을 나눈다. 그런데 <연기와 뼈의 딸>은 여기서 한 발 앞서 나아간다. (영상으로 표현되는) 남녀 주인공은 본연(?)의 모습을 감추고 극강 미모를 자랑하는 '인간'의 형상이겠지만, 인간과 짐승의 모습이 뒤섞인 악마의 형상을 어떻게 아름답게(?) 표현해낼지 궁금하다. (개인적인 호불호를 떠나) <연기와 뼈의 딸>, 한마디로 '트랜디한' 소설이다! 트랜디한 사랑의 감성이 전설이 되어 돌아왔다. 진부하나 진부하지 않은 전설. "마치 그는 장소이면서 사람이면서, 모든 이성에 반해서, 정확히 그녀가 있어야 할 곳이자 같이 있어야 할 사람처럼 느껴졌다."
시간과 공간과 존재까지 뛰어넘는 사랑, 만나야 할 사람은 반드시 만나게 된다는 운명적 사랑의 대전제, 또 하나의 전설로 남을 판타지 로맨스, 이 트랜디한 소설이 <해리포터>, <트와일라잇>, <아바타>의 돌풍에 이어 어떤 흥행의 광풍을 몰고올지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