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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그렇게 연애하는 까닭 - 사랑에 대한 낭만적 오해를 뒤엎는 애착의 심리학
아미르 레빈.레이첼 헬러 지음, 이후경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10월
평점 :

인정하고 싶지 않다. 내가 지금까지 반쪽도 없고, 애인도 없고, 가까운 남자 친구도 없는 이유를 말이다. 분명 호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사람이 나에게 고백을 하면 이상하게 싫어지거나 '특별한' 관계가 되기를 원한다는 걸 알면 움찔 놀라 도망가곤 했다. 스스로 생각해도 납득이 되지 않을 만큼 하루아침에 달리지는 내 마음. 또 좋은 감정이 있던 사람인데 집앞에 불쑥 찾아와 기다리고 있다고 하는데도 나가는 것이 귀찮아 몇 번 거절을 하는 바람에 멀어진 일도 있다. 남자에게 관심이 없는 것도 아닌데, 결혼을 꼭 해야겠다는 간절함도 없었다. 외로움도 많이 타고 누군가 곁에 있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적극적으로 사람을 사귀려고 노력해본 적이 없다. 그러면서 난 내가 아직 혼자인 이유를 입버릇처럼 이렇게 말해왔다. "그 사람을 보면 내 심장이 뛰지가 않았어." "이 사람이다라고 확신이 드는 사람이 없었어." "만나야 할 사람은 꼭 만나게 된다고 하잖아! 아직 난 나의 짝을 못 만난거지."
<그들이 그렇게 연애하는 까닭>에 의하면, 나는 '회피형'에 해당한다. 안정형이나 불안형의 성향을 보이기도 하지만, 회피형이라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가 있다. 회피형은 완벽한 상대를 기다리거나, 이미 떠나간 운명의 반쪽을 그리워하거나, 누군가가 자신과 가까워지려고 하면 무의식적으로 멀어지려고 하는 전략을 사용한다. 회피형은 애착 욕구를 느끼지만 적극적으로 그 욕구를 억업한다. 그래서 '항상 교묘한 방법으로 사람들과 거리를 유지하려고 애쓴다.' 사랑에 빠진 자신을 속이려 할 때, 회피형이 사용하는 가장 교묘한 기술은 '지난 사랑에 미련 갖기'와 '완벽한 사랑을 꿈꾸기'이다. "회피형은 자신이 옛 연인을 진심으로 그리워하고 있거나 자신에게 꼭 맞는 상대가 가까운 곳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렇게 완벽한 파트너를 꿈꾸는 것은 지금 만나고 있는 파트너와 거리를 두고 싶을 때 회피형이 사용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 중 하나다"(136-137). 또한 회피형은 완벽한 파트너를 설정해놓고 자신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문제가 완벽하지 못한 파트너에게 있다고 믿는다. 나는 안정형이라고 우기고 싶은데, 나를 관찰한 관찰 일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정확한 묘사 앞에 고개가 숙여지니 어쩌란 말인가.

<그들이 그렇게 연애하는 까닭>은 성인들이 갖는 '친밀한 관계에 대한 욕구'를 연구한 '애착 이론'이다. 인간은 누구나 특별한 누군가와 가까이 지내고 싶은 욕구를 가지고 있고, 이 욕구는 인간에게 매우 중요하다. <그들이 그렇게 연애하는 까닭>은 애착 체계라고 부르는 메커니즘을 통해 "사랑하는 사람들과 가깝게 지냄으로써 그들로부터 안전과 보호를 보장받고자 하는 행동 방식과 감정들"(17-18)을 분석하여 3가지 유형으로 정리했다. 흔히 애정결핍증이라고 여겨질 만큼 연인에게 집착하는 '불안형', 애정결핍형을 질색하며 사랑을 느껴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싶어하는 '회피형', 비밀이나 밀당을 싫어해 연애를 할 때는 지루하게 느껴지는 면도 있으나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할 줄 아는 '안정형'이 그 세 가지 유형이다.
성인 애착의 연구 결과물인 <그들이 그렇게 연애하는 까닭>은 사람마다 친밀함과 친숙함에 대한 욕구가 다르며, 그 차이 때문에 갈등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이해시킨다. 그러한 욕구와 차이를 이해하게 되면 연인과의 의사소통 방식이 달라질 수 있으며, 자신에게 맞지 않는 유형과 소모적인 감정 싸움을 하지 않고 미련 없이 떠날 수 있는 용기도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생긴다.

일단 사과부터 해야겠다. 나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내게 상처를 받았을 모든 사람들에게. (이미 때가 많이 늦었을지라도) "사랑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미 다 잊었겠지만, 이제야 깨닫고 아쉬워 하는 저를 보면 고소하지 않을까요? 내가 '회피형'이라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그런 상처를 주지 않았을 텐데, 헤갈리는 신호를 보냈던 것, 정작 가까워졌을 때 냉정해졌던 것, 그래서 마음에 상처를 주었던 것을 사죄드립니다. 이 책을 20대에 알았더라면 놓치지 않았을 사랑인데, 사랑을 놓쳐버리고 말았네요."
안정형의 사람들은 항의 행동(애착 대상과의 친밀감을 회복하기 위해 과도하거나 적대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 예를 들면 일부러 질투심을 불러일으키려는 의도적인 행동 등)을 하지 않고도 효과적으로 자신의 기대치를 표현하고 파트너의 욕구를 수용할 줄 안다. 그러나 이 책은 모두 '안정형'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단지, '사랑할 때 나'와 '사랑할 때 상대'가 어떤 애착 유형인가를 아는 일이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가 할 일은 친말함에 대한 우리를 욕구를 상대에게 솔직하게 전달하는 것이다. 효과적인 의사소통의 기본은 자신의 욕구를 전달하는 것이다(262). 물론, 서로가 안정형이고, 또 안정형의 상대를 만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연애가 되겠지만, 불안형의 사람이라면 상대가 그 불안함을 이해하고 안심시켜 주면 된다. 회피형의 사람이라면 상대가 잠시 기다려주는 것으로 갈등이 해소될 수도 있다. 자신의 친밀감에 대한 욕구가 상대방의 독립성과 거리감에 대한 욕구와 조화를 이루는 것이 관건이다! 그런데 문제는 불안형인 당신이 회피형과 사귈 확률이 상당히 높다는 사실이다! 혹시 자신이 불안형이라고 의심이 된다면, 이 책을 반드시 읽어야 한다!!!
'나홀로족'이 급증한다고 한다. 혹시 독립성은 높이사지만, 친밀감이나 가까움, 특히 다른 사람을 의존하고자 하는 욕구를 경멸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지는 않는가. <그들이 그렇게 연애하는 까닭>은 "감정적인 욕구는 빨리 충족될수록 좋다"고 말한다. 충족되고 나면 그 사람은 다른 곳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애착 이론서들에서는 이를 '의존 역설'이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곁에 기댈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고 느낄 때 자기만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이것이 "의존 역설"이다"(36). 서로 더 효과적으로 의존할수록 더 독립적이고 거리낌 없는 사이가 된다는 이야기다.
성인 애착에 관한 기본 전제는 "독립과 행복을 얻는 길은 자신이 의존하고 자신에게 의존할 수 있는 누군가를 만나 둘이 함께 그 길을 걸아가는 것이다"(36). 문제는 "애착과 관계되지 않은 문제로 다투는 커플과 친밀감 때문에 다투는 커플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존재한다"(213)는 것이다. 친밀감 때문에 생기는 갈등으로 '답도 없는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커플에게 이 책은 행복으로 나가는 탈출구가 되어줄 것이다. 나의 욕구를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대의 욕구를 이해하는 것도 갈등 해결의 중요한 실마리가 되어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나와 상대의 애착 유형을 이해하고 효과적인 의사소통의 기술을 배운다면, 사랑하면서도 외로운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불필요한 밀당을 그만두고, 그토록 원하는 친밀감의 욕구를 만땅으로 채우게 되리라. 서로의 유형을 알면서도 개선의 여지가 없다면 이 책의 조언을 따라 과감하게 이별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는 '변심'했다. 사랑 따위 쿨하게 제껴놓고 혼자 사는 외로움에서 자유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는 사랑에서 참된 자유를 찾고 싶다. 다시는 사랑을 놓치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