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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차일드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3-1 ㅣ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3
존 하트 지음, 박산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9월
평점 :
품절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이 가족은 아름다운 가족이었다. 그러나 '조니'의 쌍둥이 여동생이 실종된 그날, 그녀의 짧은 생도 함께 실종되었고, 그 가족은 파멸됐다. '엘리사'를 데리러 가야 할 시간을 깜빡한 아버지는 죄책감에 괴로워하다 떠나버렸고, 엄마는 망가져버렸다. 그런데 엘리사의 실종으로 괴로워하는 또 한 사람이 있다. 그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 '헌트.' 그 역시 지난 1년 동안의 불면의 밤들과 고뇌, 12개월에 걸쳐 지속된 실패와 강박적으로 그 사건에만 매달리느라 박살난 가정으로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다. 그 1년 내내 그는 결코 그 사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352).
<라스트 차일드>는 "잃어버린 쌍둥이 여동생을 찾아 떠난 열세 살 소년(조니)의 슬픈 여행"을 이야기한다. 이 열세 살 소년은 왜 "소년다움"을 잃어버리고 잔혹한 세상에 홀로 맞서야 했을까. 떠나버린 아버지는 소식도 없고, 약에 취한 엄마는 오히려 조니가 돌봐야 할 형편이며, 엄마와 조니가 자신의 신세를 지게 만든 켄은 엄마를 더욱 망가뜨리며 조니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친척과 이웃은 무관심하고, 동생을 집에 데려다주겠다고 약속한 형사는 계속 실패하는 중이고, 매일 밤 간절히 기도하지만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외면하셨다. "누군가 그에게 왜 여느 아이들과 다른지, 왜 그렇게 얌전히 있는 건지, 그의 눈이 왜 그렇게 모든 빛을 삼켜버리는 것처럼 보이는지 물어보면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 안전한 곳은 없다는 걸, 자기 집 뒷마당이든, 놀이터든, 집 앞 현관이든, 혹은 마을 끄트머리를 지나가는 한적한 도로든 안전한 곳은 결코 없다는 걸 일찍 깨우쳤다고. 세상에 안전한 곳이란 없으며, 나를 보호해줄 사람도 없다고"(16).
조니는 쌍둥이 동생 엘리사가 성범죄자(소아성애병자)에게 납치 당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콜로라도에서 유괴된 여자아이를 찾았다는 뉴스는 조니의 마음을 더욱 조바심나게 했다. 그 여자아이는 유괴된 지 1년이나 됐는데 집에서 겨우 세 블록 떠얼진 곳에서 발견되었다. 결국 실종된 아이는 "항상 가까이 있었다"는 게 밝혀진다. 엘리사가 가족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지하실에 파놓은 흙구덩이 속에 갇혀 있다는 절망적인 확신이, 그리고 그 악몽에서 벗어나려면 자신이 직접 이 일을 해결해야 한다는 믿음이 조니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고, 냉혹한 사람들, 비열한 거리로 내몰았다.
"부당하고, 비극적이고,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로 수치스러운 일이 넘쳐나는 게 세상이다"(170). <라스트 차일드>가 보여주는 세상, 열세 살 소년이 마주한 세상은 '우리도 익히 아는 세상'이다. 그 거대한 부조리와 위선과 잔혹함과 비극적인 세상의 정체는 폭로될수록 오히려 사람들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라스트 차일드>가 폭로하는 세상을 마주하며 그 세상의 실체가 진실이라며 체념하게 된다면, 우리는 이미 그 비정한 세상에 압사당한 것이다. 그러나 이 열세 살 꼬마 주인공은 정신을 더 똑바로 차리고 자신을 더욱 강하게 무장하려 노력한다.
<라스트 차일드>는 "너무나 많은 죽음과 너무나 많은 의문"이 서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쇄 반응을 일으킨다. 500페이지를 훌쩍 넘기는 이 대작은, 시종일관 긴박한 템포를 늦추지 않다가 클라이맥스에 찍고 나서도 거의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모든 의문이 풀어지며 각각의 사건이 제자리를 찾는다. 엉커버린 사건의 실타래가 모두 풀어지는 순간, 독자를 휘어잡는 감정은 어쩌면 깊은 허무일지도 모른다. 악몽 같은 시간, 지옥 같은 삶의 진짜 비극은, 어쩌면 그 시작(원인)이 너무도 '사소하다'는 데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세상의 모든 비극의 시작이 열매를 한 입 베어문 한 여인의 지극히 사소한 행동 하나에서 시작된 것처럼 말이다.
<라스트 차일드>의 압권은 긴박한 전개, 문학적 감각을 꼽을 수 있는데, 그중에서도 "레위 프리맨틀"이라는 인물이 빚어내는 독특한 분위기와 메시지를 꼽고 싶다. "레위 프리맨틀"은 영화 <그린 마일>에 나오는 신비한 죄수 '존 커피'를 연상시킨다. 거구의 몸집에 흑인, 흉악범처럼 생겼지만 사실은 어린 아이와 같은 순진한 눈망울과 다정한 마음을 지녔고, 어리숙해보이지만 세상의 이치를 누구보다 잘 꿰뚫고 있는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 (스포일러의 위험성이 있어 자세한 이야기를 할 수는 없지만) 레위 프리맨틀은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며,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며,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신다"는 성경말씀의 한 모형을 보여준다.
'에드거 상'을 두 번이나 수상하며 미국 스릴러계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다는 <라스트 차일드>의 저자 '존 하트', 그에 대한 소문은 거품이 아니었다. 예를 들어, 아무 생각 없이 읽었던 다음과 같은 한 문장이 사실은 얼마나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는가를 깨닫고 "머리카락이 쭈뼛 선다"는 표현을 쓰고 싶을 정도로 감탄했다. "그 고리에는 쇼핑몰의 모든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들이 걸려 있었다. 아이들에게는 천국으로 가는 열쇠로 보일 것이다"(103).

"악은 인간의 마음에 자라난 암과 같아"(365).
조니는 레위 프리맨틀에게서 "삶은 순환"이라는 교훈을 얻었다(550). 삶은 순환이다? 이 말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올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심은 대로 거둔다'는 말로 들린다. 비극과 환희, 불행과 행복이 순환되는 것이 삶이다. 그 순환되는 삶의 고리에서 "분명 우리 중 하나"는 옳은 씨앗을 심고 있거나, 아니면 악한(잘못된) 씨앗을 심고 있을 것이다. 누구나 비극과 환희, 불행과 행복이 순환되는 삶을 살지만, 종국엔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 삶의 법칙이라고 믿는다. 조니의 할아버지가 심은 선한 씨앗의 열매를 조니가 거두게 된 것처럼 말이다.
<라스트 차일드>를 다 읽고 난 느낌이 그래도 '행복'한 것은 그 결말에서 "시적인 아름다움"을 봤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잔혹한 이야기지만, 그래서 슬픔을 간직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지만, 이 이야기에는 시적한 아름다움이 있다. 섣부른 추리는 금물이지만 한 가지 힌트를 주자면, 조니가 매일 밤 하나님께 드렸던 세 가지 기도가, 그러나 하나님께 거절 당했다고 믿었던 그 조니의 기도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응답하시는지 지켜보라고 일러주고 싶다. 조니의 세 가지 기도는 가족이 집에 오고, 엄마가 약을 끊고, 켄이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는 것이다. 혹시 '오늘' 사소한 욕망을 주체하지 못해 악의 씨앗을 뿌리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조니의 기도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켄이 우릴 두렵게 만든 것처럼 자신도 두려움 속에서 죽어가길 원해요. 무력하고 두려운 게 어떤 느낌인지 켄도 알길 원해요. 그리고 더 이상 우릴 건드릴 수 없는 곳으로 켄이 가버렸으면 좋겠어요"(247).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