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조니 에릭슨 타다의 희망 노트
조니 에릭슨 타다 지음, 유정희 옮김 / 두란노 / 201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진실로 이 사람은 하나님의 딸이도다!
인생에 고난이 없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제 짐을 지고 신다. 그러나 '사지마비'라는 고난 앞에 서게 된다면, 많은 사람이 오히려 지금의 고난에 감사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많은 문제가 그 앞에서는 작아지고, 가볍게 느껴지리라. 만일 내가 사지마비가 되어 손가락 하나, 발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몸이 된다면? 상상만으로도 고개가 절레절레 흔들어진다. 그런데 여기 45년을 사지마비의 몸으로 살아온 사람이 있다. 어느 여름날의 다이빙 사고로 그녀가 사랑했던 인생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꿈을 꾸고, 왕성하게 활동하며, 웃는다. 휠체어서 보내는 인생에 감사하며, 기뻐한다. 그녀가 그럴 수 있는 이유는 오직 하나, 살아계신 하나님 때문이다! 사지마비의 몸으로 살면서도 '행복한' 조니 에릭슨타다의 삶은 그 자체로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증거가 되고 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은 실로 기이하고, 놀라울 따름이다.
그런데 이번에 발간된 조니 에릭슨타다의 <희망 노트>는 조금 다른 문제를 제기한다. "내가 지금 다루고 있는 것은 아쉬운 실망감이나 이따금씩 찾아오는 좌절감이 아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몰려오는 공격, 곧 파도처럼 밀려오고 또 밀려오는 나의 아래 쪽 등과 골반부의 통증이다. 이제는 치유를 생각할 때, 꼭을 꺾거나 말을 타거나 풀밭을 뛰어다닐 수 있는 능력보다는 이 극심한 고통에서 해방되게 해 달라고 아버지께 간구한다. 비록 내가 계속 마비된 상태로 있더라도 이 만성 통증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더 없이 행복하고 즐거운 일상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구하는 것은 그것뿐이다"(45-46).
2년 전, 만성 통증이라는 불청객이 조니 에릭슨타다의 삶에 찾아왔다고 한다. 그 통증은 매순간 그녀를 괴롭히고 조롱하며 평안과 능력을 빼앗아갔다고 고백한다(212). 사지마비의 몸에 찾아온 극심한 고통! 그것은 그녀가 사지마비의 몸으로 '행할 수 있는' 모든 능력을 앗아가며 그녀를 공격하고 있다. 그녀는 사지마비로 살아오는 동안 하나님이 능력을 주셔서 할 수 있었던 많은 일들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조니는 이 예상치 못했던 고통 앞에서 "육체적 치료"에 관한 오래된 질문들을 모두 다시 되묻고 있다. 굉장히 긴급하고 절박하게 말이다. "나는 사지마비에 '익숙해졌다.' 하지만 끊임없이 몰아치는 고통에는 어떻게 '익숙해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212).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하나님은 나를 치유하시는 것이 아니라 잡아 주시는 쪽을 택하셨다. 고통이 심할수록 하나님은 더 꼭 안아주신다. 그것이 앞으로 내가 말하고 싶은 진리 가운데 하나다. 하나님이 나를 도와주고 계신다는 것이다"(42). 조니는 지금 고통과 전면전을 치르는 중이다. 그 고통은 '사지마비'의 고통보다 훨씬 더 큰 고통이 되고 있다. 그녀는 지금 유방암과도 싸우는 중이라고 한다. 하나님은 참 모진 분이라는 한탄이 나올만도 한데, 그녀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다시 묻고, 다시 성찰하고, 하나님에게서 다시 답을 얻는다! 조니 에릭슨타아의 <희망 노트>는 바로 그 결과물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의 43년 전의 사고가 결코 하나님의 계획이 아니었다고 말하며 나를 설득하려 했다. 나의 마비는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고 만성 통증도 꼭 있어야 할 필요가 없었으며 많은 눈물과 고뇌와 싸움과 잠 못 드는 밤들은 불필요한 것들이며 나의 에너지와 삶을 낭비할 뿐이라고 말이다"(264). 불청객처럼 불쑥 불쑥 나타나는 통증보다, 이런 고통을 허락하신 하나님보다, 어쩌면 그녀를 더 괴롭히는 사람들은 바로 '믿음의 사람들'이다. 하나님은 모든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전능하신 분이며, 하나님은 우리를 치료하기 원하시며, 예수님은 우리의 질고를 짊어지셨다. 그러므로 조니는 지금 이런 고통을 당할 이유가 없다. 그러니 조니는 치료받아야 마땅하며, 지금 치료의 기적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면 그것은 조니의 숨겨진 죄 때문이거나 믿음이 부족해서라는 논리(?)를 가진 사람들. 그들의 '신앙'이 바로 조니를 괴롭히는 더 큰 고통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시련 가운데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지 못한다. 극적인 기적이 일어나지 않으면, 곧 홍수가 멈추거나 암이 낫지 않으면 하나님이 역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68). 조니 에릭슨타다의 <희망 노트>를 읽으며, 순례자의 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았다. 때로 믿는 자의 삶, 그 순례의 여정은 우리의 이성으로 납득할 수 없는 아이러니로 가득하다. 사지마비의 고통 속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만나고, 그 하나님으로 인해 다시 웃으며 행복을 노래할 수 있게 되었다면, 그 후 "오래 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고백으로 이야기가 끝을 맺는 것이 맞지 않는가.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은 또다른 고통을, 그것도 사지마비보다 더 큰 고통을 그녀에게 허락하셔야 했을까. 그런데 그 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러한 고통 속에서 조니는 다시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고, 그 사랑을 찬양하며, 고통에 감사하며, 다시 희망을 노래한다는 것이다. "물론 나는 고통을 없애 달라고, 그 고통이 끝나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고통을 견딜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그것으로부터 유익을 얻을 수 있는 은혜를 달라고, 고통을 찬양의 제물로 하나님께 바칠 수 있는 믿음을 달라고 기도한다. 그렇게 되면 휠체어에 앉아 편안하게 여생을 보낼 때마다 더 깊이, 더 높이, 더 풍성하게, 더 넓게, 훨씬 더 온전히 하나님을 알게 된다"(42).
세상 사람들은 세상에 넘쳐나는 악을 보며 하나님은 없다고 말한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세상이 이렇게 돌아갈 수 없다고 주장한다. 내가 아는 동생은 백혈병으로 언니를 잃고, 그 언니를 간호하다 지친 엄마까지 잃게 되자, 하나님을 떠났다. '그런' 하나님을 신앙할 수 없다고 했다. 가족을 괴롭히는 아버지 때문에 오래 기도했던 내 친구는 자신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는 하나님을 떠났다. 자신이 아는 하나님은 사랑이 아니라고 했다. 3년간 병원에서 이모부를 간병해야 했던 이모는 자신의 기도가 부족해 이모부가 낫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더 괴로워했다. 어떤 사람들은 고난이 가득한 인생을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증거라 생각하고, 흔히 말해 '믿음이 적은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고난 때문에 하나님을 떠나기도 하고, 또 '믿음이 큰 사람'은 고난(병)이 곧 믿음 부족의 증거처럼 생각되어 괴로워하기도 한다. 하나님은 왜 도무지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이기도 힘든 삶의 아이러니 속으로 우리를 내모시는 것일까? 하나님의 의도는 무엇일까? 우리가 가져야 할 성숙한 믿음의 태도는 무엇일까?
조니 에릭슨타다의 <희망 노트>는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이다. 이해할 수 없는 '고난' 때문에 하나님께 실망한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어보기 권한다. 특별히 하나님의 치유하심에 대해 의심을 품고 있다면 이 책이 대답이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로마 백부장은 예수님이 힘 없는 어린 양의 모습으로 초라하게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바로 그 모습을 보고, 바로 그 현장에서 예수님이 그렇게 돌아가시는 모습을 보고,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고백했다. 조니는 사지마비의 몸으로 휠체어에서 45년을 살고 있고, 그러면서도 극심한 고통에 신음하며, 이제는 유방암이라는 암덩어리와 싸우고 있다. 나는 하나님이 너무하신다고 생각했지만, 그녀는 그렇게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었다. 그 안에서 또다른 은혜를 발견하며, 이전 보다 더욱 굳건한 소망을 품고 있었다. 나느 그녀를 보며 이렇게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진실로 하나님의 딸이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