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왕자 마음으로 읽는 더클래식 고전 명작 시리즈 2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Bon 그림 / 더클래식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전화로 이 책을 읽어주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전화기로 너머로 매일 이 책을 읽어주던 친구가 있습니다. 친구는 진심을 다해 읽어주었고, 저는 숨소리도 내지 않고 가만히 귀를 기울였습니다. 여고생이 되고 처음 맞이한 나의 여름방학은 그렇게 <어린 왕자> 이야기로 가득 채워졌습니다. 그후 친구들과 주고받던 편지는 항상 <어린 왕자>의 내용을 인용하는 것으로 끝을 맺었습니다. <어린 왕자>에 얼마나 열광했는지 제 첫 핸드폰 번호는 어린 왕자가 살고 있는 별 '소행성 B612호'를 기념한 '8612'였고, 한때 제 닉네임은 '어린 왕자가 사랑한 장미'였습니다.
 

"만일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질 거야"(171).

우리가 가장 열광했던 부분은 바로 '길들이기'였습니다. 어린 왕자는 자신이 사랑한 장미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꽃이라고 믿었는데, 사실은 그 꽃이 그저 평범한 장미 한 송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몹시 슬퍼합니다. 바로 그때 사막의 여우가 나타나 어린 왕자에게 '길들이기'를 설명합니다.

사막의 여우는 '길들인다'를 것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지금 너는 나에게 수많은 아이와 다름없는 작은 소년에 지나지 않아. 난 네가 필요하지 않고, 물론 너도 내가 필요하지 않지. 나도 너에게 수많은 여우 중 하나에 지나지 않으니까. 하지만 네가 나를 기들인다면 우리는 서로 필요한 존재가 되는 거야. 나한테 너라는 존재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사람이 되는 거고 너한테 나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여우가 되는 거니까"(165).

누군가에게 길들여지면 우리는 수많은 발소리 중에 그의 발소리를 구별하게 되고, 그가 만일 오후 4시에 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지고, 4시가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행복해지고, 마침내 4시가 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안절부절못하게 될 거라고, 사막의 여우는 말했습니다. 사랑한다는 고백 대신 "이 안에 너 있다", "충전"이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합니다. 그때 우리에게는 "나를 길들여주겠니?", "너에게 길들여지고 싶어!", '너를 길들이고 싶어!"가 최고의 사랑 고백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어린 왕자>를 읽으며 사랑을 배웠고, 어른들의 세계를 관찰했고, 또 동화처럼 아름다운 사랑을 꿈꾸었습니다. 

 
"어른들은 숫자를 무척이나 좋아한다"(46).

어린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면 그 집을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창가에는 예쁘게 핀 제라늄 화분이 놓였고, 지붕 위로 비둘기가 날아드는 멋진 장밋빛 벽돌집을 봤어요."
차라리 이렇게 말하면 쉽게 떠올린다.
"시가 100만 프랑짜리 집을 봤어요."
그래야 비로소 어른들은 탄성을 지른다.
"정말 멋지겠구나."

이제 나도 어른이 되었구나 하고 느낄 즈음 다시 읽은 <어린 왕자>는 새로운 충격이었습니다. 창가에는 제라늄 화분이 놓였고, 지붕 위로 비둘기가 날아드는 멋진 장밋빛 벽돌집을 상상하지 못하는 어른이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진짜로 "몇 평대 아파트에 산다"고 말해야 "굉장하구나" 탄성을 지르는 그런 어른이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새, 친구의 목소리가 어땠는지, 친구가 무슨 놀이를 좋아했는지, 나비 채집을 좋아했는지는 잊어버리고, 친구는 몇 살인지, 몸무게는 얼마나 나가는지, 수입은 얼마나 되는지 궁금해하는 '숫자를 좋아하는' 어른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어린 왕자>는 내 인생의 책으로 꼽기를 주저하지 않는 책입니다. 

<어린 왕자>는 언제 읽어도, 몇 번을 읽어도 새로운 감동이 있습니다. 서점에서 시간을 보낼 때면, 그 자리에서 한 권을 다 읽고 나선 적도 많습니다. 그때마다 선물을 해서 지금은 한 권도 남아 있지 않지만, 소장하고 싶은 욕심에 일러스트가 예쁜 책을 만나면 꼭 구매를 하곤 했습니다. 한때는 영어 공부를 위해서 원서를 구해 읽기도 했습니다. 이번에 '더클래식'에서 발간된 <어린 왕자>는 한글판과 영문판이 세트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예쁜 양장본 안의 일러스트가 환상입니다. 그동안 만나본 <어린 왕자> 책 중에 가장 예쁜 책이라고 자신있게 추천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만난 <어린 왕자>님에게서 한동안 헤어나지 못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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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카르테 2 신의 카르테 2
나쓰카와 소스케 지음, 신주혜 옮김 / 작품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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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양심에 부끄럽지 않은 것, 그것만이 우리가 받을 수 있는 확실한 보수이다"(170).

 
읽고나면 마음이 착해지는 책이 있다. <신의 카르테>가 그러하다. '하얀거탑'이 일본 의료계의 중심부에 선 의사들을 중심으로 의학계의 이면을 폭로했다면, <신의 카르테>는 일본 의료계의 주변부에 선 시골 병원을 중심으로 (가혹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이상과 순수를 지켜나가는 의사들의 고군분투를 이야기한다. 

많은 어린이가 장래 희망으로 '의사'라는 직업을 꿈꾸는 것은 그것이 생명의 존엄을 지키고,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고귀한' 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출세의 수단으로, 성공의 지름길로 여겨질 만큼 보상과 명예가 따르는 일이기 때문에 이상적인 직업군으로 꼽힌다. 그런데 만일 금전적인 보상이나 명예가 따르지 않는다면 어떨까? 여전히 고귀한 정신으로 '고된 노동'의 의료 현장을 지켜줄 수 있을까? 자신이 의사 출신이기도 한 <신의 카르테>의 작가 나쓰카와 소스케는 바로 그 순수한 고된 노동의 의료 현장 이야기를 정감 있게 풀어나간다.

<신의 카르테> 2편은 시골 병원의 열악한 현실을 1편보다 더욱 밀도있게 묘사한다. '24시간, 365일 진료'라는 간판을 내건 혼조병원. 이 말도 안 되는 지방 병원의 간판 속에는 사실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 실질적으로 혼조병원을 지탱하고 있는 왕너구리 선생님과 늙은 여우 선생님의 뜨거운 약속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약속은 바로 이것이었다. "이 고장에 누구나 언제든지 진찰 받을 수 있는 병원을!"(119) 두 선생님의 그 뜨거운 약속 안에는 두 분의 숨겨인 아픔이 담겨 있다. 괴짜 의사로 통하는 순수 청년 '구리하라'는 두 분의 사연을 통해 이 말도 안 되는 환경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두 분의 진심을 발견한다. 

<신의 카르테> 2편은 유난히 '슬픈 이별'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70년을 부부로 지낸 노부부의 이별 장면과 모든 것을 희생하며 혼조병원을 이끌어온 의사 선생님이 부인과 이별하는 장면은 슬픈 이별이면서 동시에 너무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였다. 어떻게든 해 주고 싶은데 아무것도 해 줄 것이 없는 의사들의 무력감은 늘 죽음의 현장에 함께해야 하는 의료진의 고통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러나 결국 죽음을 겸허히 받아들일 때, 오늘의 삶이 더욱 가치 있게 빛나고, 사랑만이 인생을 반짝거리게 해줄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주인공 구리하라와 '장기부의 삼각관계'를 형성했던 절친 '신도'의 등장으로 이야기는 흥미를 더한다. 잘 나가는 도시 병원에서 시골 병원으로 옮겨온 '의학부의 양심'이라 불린 신도 다쓰야는 밤낮도 없이 일하는 의사를 '훌륭한' 의사라 생각하는 사람들의 사고에 진저리를 친다. "의사는 환자를 위해 목숨을 바쳐 일해야 한다고 하지. 이 나라의 의료는 미쳐 있어. 의사가 생명을 갉아먹으며 가족을 버리고 환자를 위해 일하는 것을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세계. 밤에 잠도 못자고 몸이 망가질 때까지 일하는 것을 정의라고 생각하는 세계. (...) 스물 네 시간 자신의 담당 환자를 위해 뛰어다닌다니, 이상하지 않아? 우리는 인간이야"(222-223). 피를 토하듯 격분하는 신도 다쓰야의 모습에서 나는 오히려 일본이 부러워졌다. 역으로, 일본은 처음부터 의사를 하나의 인간으로 인식하지 않고, 의사에게도 가족이 있다는 사실이 도외시 되며, 환자를 위해 24시간 뛰어다니는 것을 당연하겨 여기는 사고가 통하는 나라인가, 하는 놀라움 때문이다. 


"아무리 가혹한 현장일지라도 내가 있고, 구리하라 군이 있어요. 자신이 책임져야 할 소중한 존재를 껴안고도 의사를 계속하고 있는 신도 선생님이 있어요. 이보다 더 든든한 희망은 없습니다"(250).
 
언젠가, 은사 한 분이 어떻게 신앙을 갖게 되었는지 들려주신 적이 있다. 젊은 시절, 대형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는데, 발가벗겨져 침대 위에 놓인 자신의 육체가 고깃덩어리처럼 느껴졌다고 하신다. 꼼짝하지 못하는 몸으로, 자신의 몸을 놓고 대화를 나누는 의사들의 눈빛과 말투와 손길을 느낄 때마다 그 치욕을 견디는 것이 육체적 고통보다 더 했다고. 병원에 가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대체로 생명(몸)에 대한 예의가 없는 병원의 태도에 불쾌감을 경험할 때가 많다. 환자는 생명이 아니라 '돈'일 뿐이라 여긴다 해도, 그 소중한 '돈'에게 불친절하기까지 한 이 이상한 논리가 그렇게 불쾌할 수가 없다. 돈은 돈대로 내고 무시를 당하니 말이다. 

그러나 이 세상 어딘가에 "양심에 부끄럽지 않은 것, 그것만이 우리가 받을 수 있는 확실한 보수이다"라는 신념을 가진, 왕너구리 선생님, 늙은 여우 선생님, 구리하라, 신도 같은 의사도 있다는 믿음을 갖고 싶다. 철부지 같은 순수함으로 '이상'을 포기하지 않는 구리하라와 신도에게 병원장의 한마디가 마음에 깊은 울림으로 남는다. 비단 의사만이 아니라, 어떤 삶의 자리, 어떤 직업을 갖고 살아가든 환경이 아무리 열악하고, 세상이 아무리 추악하도 해도 구리하라와 신도처럼 끝까지 지켜가야 할 '이상'이 있음을 다시 생각한다. 어떤 현장이든 현실에 발을 딛고 서되, 확신은 더욱 분명해지고 열정은 더욱 뜨거워지기를!
 

"세상에는 상식이라는 게 있지. 나는 그 상식을 깨고 이상만을 추구하려는 인간들이 싫어."

(...) 잠시 동안 침묵이 흐른 뒤 다시 흰 수염이 움직였다.

"하지만 그 이상마저 없는 젊은이는 더 싫어"(393-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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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산이 하하하 - 뒷산은 보물창고다
이일훈 지음 / 하늘아래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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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산이 하하하>라는 제목을 보고 있자니,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폭우로 인한 최악의 산사태 현장이 겹쳐진다. 비 피해는 늘 있어왔지만, 올해는 유난히 산사태 피해 상황이 많이 보고 되고 있다. 물폭탄으로 초토화된 강남을 비롯해서 폭우가 더 큰 재앙으로 이어진 것은 '뒷산' 때문이었다. 평소에 그저 볼품없는 그저 그런 산이라고 생각했던 뒷산, 우리는 뒷산을 그렇게 얕잡아 봐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이제서야 사람들은 무분별한 개발 탓이라며 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렇다고 이번 일을 교훈으로 멀쩡한 산을 허물고 까뭉개는 일이 그쳐지겠지 하는 믿음이 생기지는 않는다. 

<뒷산이 하하하>라는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 전국에 산재해 있는 숨겨진 뒷산을 찾아떠나는 '탐방 보고서' 같은 책일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뒷산의 가치를 재발견해주는 여행기일 것이라 짐작한 것이다.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첫 장부터 상당히 철학적이고, 주관적인 사색이 가득하다. 무엇보다 저자가 '뒷산'에 주목하게 된 까닭이 가장 신선하게 와닿았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앞만 보고 사는 사람들에게 잊혀진 '뒷산'의 존재를 일깨워주었다. "우리들 사는 곳은 어디서나 크고 작은 산이 보인다. 이 땅 대부분의 삶터에선 산이 보인다. 앞산이다"(6). 앞으로만 치달으며 눈앞에 보이는 앞산만 보지 말고, 앞만 보던 눈을 돌려 '뒷산'도 보자는 것이다. 눈앞에 있으면서도 가지 않아 '먼' 산은 앞산과 달리, 뒷산은 가까이에 있다고. <뒷산이 하하하>는 그렇게 우리 가까이에 있는 뒷산으로 독자를 초대하며 함께 보물찾기를 하자는 권유이다. 

<뒷산이 하하하>에는 뒷산에 가면 만날 수 있는 흔한 풍경, 낯선 풍경, 뒷산이 품고 있는 이야기, 놀이, 우리도 모르게 뒷산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뒷산을 품고 살며 저절로 모아진 이야기가 아니라, 작정하고 달려든 뒷산 이야기라 그런가, 글이 깊이 우러나는 맛보다 무겁게 누르는 듯 다가온다. 뒷산이 주는 소박하고 털털한 인상과는 달리 뒷산을 보는 시선에 날이 서 있다. 뒷산의 생태를 분석하고 약수터를 집중 해부하고 뒷산을 범하는 인간의 욕망을 고발한다. 뒷산의 사회학이라고 해야 할까. 건강한 뒷산의 신선한 공기를 기대하며 편안한 산책길에 오르려 했는데, 끊임없는 뒷산 공부에 좀 피곤해졌다고나 할까. 가까이 다가가려 한 뒷산이 무거워졌다.

"지방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은 뒷산과 약수터를 소홀히 할 수 없다. 약수터 뒷산에는 다니는 사람들이 많으니 얼굴을 알리고 인사하기 좋다"(80). 이제 정치인들은 뒷산을 더욱 소홀히 할 수 없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씁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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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100배 즐기기 100배 즐기기
홍수연.홍연주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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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날 때마다 인터넷으로 여행 상품을 검색하는 버릇이 생겼다. 영화 '버킷 리스트'을 본 후로,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을 메모할 때마다 가장 먼저 생각나고, 안 하면 정말 후회할 것 같은 것 중 하나가 바로 '여행'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1년간 세계일주를 다녀온 동기도 있고, 여행은 한 살이라도 더 젊고 기운 있을 때 다니는 것이 좋다는 어른들의 말씀 때문인지 더 조바심이 난다. 나이 들면 입맛도 없어 여행 가서도 재미가 없다고 이모가 농담처럼 한 마디를 던졌는데, 진심으로 '헉' 소리가 났다. 푹 쉬러 가는 여행이 아니면, 한 살이라도 '더' 젊었을 때 '투자'를 해야겠다!

요즘 인터넷 여행 상품 중 홍콩이 자주 눈에 들어오는데, 동생은 주로 '땡처리 항공권'에 주목하고, 나는 스케줄이 미리 정해져 있는 '가이드 여행'이나 적어도 '항공 & 숙박'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상품을 찾는다. 자유 여행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정한 여행의 맛은 '자유 여행'의 두려움에 있다고 주장하는 동생에게 설득을 당하고 있는 중이다. 두려움은 여전하지만 나름 믿는 구석이 하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믿는 구석은 바로 랜덤하우스의 <100배 즐기기> 시리즈이다. 

 



랜덤하우스의 <100배 즐기기> 시리즈는 초보 여행자들이나 자유 여행자를 위한 가이드북이다. <홍콩 100배 즐기기>도 역시 가장 따끈따끈한 최신 정보를 수록했고, 여행의 큰 그림부터 세밀한 밑그림까지 친절한 가이드가 반짝반짝 빛을 발한다. 실전에 앞서 벌써 몇 권째 접하고 있는 책이라 처음엔 다소 복잡해 보였던 구성이 이제는 머릿속에 그려질 정도이다. <홍콩 100배 즐기기>를 펴놓고 가장 먼저 '홍콩'의 사계를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홍콩 여행 아젠다'를 살편다. 어느 계절에 여행을 해야 내가 원하는 여행의 맛을 느낄 수 있는지 결정하는 것이 좋다. 비수기라 저렴하다는 이유로 6월에 제주도를 찾았다가, 여행지를 방문할 때 계절이 참 중요하다는 사실을 실전으로 배웠기 때문이다.

<100배 즐기기>의 최대 장점은 후회하지 않을 여행을 계획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데 있다. 나와 같은 여행 초보에게는 정보는 물론, 여행지를 100배 즐길 수 있는 여행의 노하우가 필요한데, <100배 즐기기> 시리즈는 다각도에서 정보와 조언을 제공해준다. <홍콩 100배 즐기기>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주목한 부분은 '홍콩의 아이콘 12'였다. "홍콩을 방문했다면 꼭 보고 체험해야 할 대표 아이콘들"이 무엇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홍콩의 엑기스이니 이 리스트만 체크하면서 여행해도 홍콩의 알짜배기는 다 챙긴 셈"이라고 하니, 어렵게 출발한 여행에서 본전을 뽑아야 하는 나와 같은 여행 초보에게는 이보다 더 유익할 수 없는 정보이다. 
 

 

 

 

 

  

 

 

가장 기대되는 홍콩 여행의 테마는 오감을 사로잡는 '먹거리 여행'과, 팔닥팔닥 거친 활력이 넘치는 '야시장', 그 유명한 "홍콩의 밤거리"를 대표하는 빛의 향연 '심포니 오브 라이트', 그리고 영화 '중경삼림'의 장면 속으로 쏙 빠져들어가 볼 수 있는 믿기지 않을 만큼 긴 '힐사이드 에스컬레이터'이다. 이것만은 놓치고 싶지 않다! <홍콩 100배 즐기기>를 보니 홍콩은 생동감과 활력이 가득한 곳이라는 이미지가 생성된다. 

  

 

필리핀을 여행할 때, 밤 버스를 탄 적이 있다. 배우 습하고 더운 날씨였는데 버스에 오른 승객들이 긴 팔을 껴입기 시작해 당황했다. 버스가 출발하고 에어컨이 가동되기 시작했는데, 그 버스는 시동과 함께 에어컨이 켜지고 시동과 함께 꺼지는 시스템이라고 했다. 그런데 냉기가 얼마나 빵빵하게 나오는지, 버스에서 내릴 때까지 (과장없이) 정말 오돌오돌 떨어야 했다. <홍콩 100배 즐기기>는 홍콩에서도 아무리 더운 날일지라도 얇은 긴팔 옷을 꼭 갖고 다니라고 조언한다. 워낙 습도가 높기 때문에 실내에서는 에어컨을 강하게 틀기 때문이란다. 이런 깨알같은 정보를 챙겨주는 <홍콩 100배 즐기기>를 아끼지 않을 수가 없다. 여행 계획을 세우고, 예산을 짜고, 숙소 예약을 하고, 각종 증명서를 만들고, 환전하고 짐꾸리고, 여행을 위한 마지막 점검까지 알뜰하게 챙겨주니 이 한 권이면 "홍콩 자유 여행 걱정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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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승리 - 도시는 어떻게 인간을 더 풍요롭고 더 행복하게 만들었나?
에드워드 글레이저 지음, 이진원 옮김 / 해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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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만'의 승리.

 
도시는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라는 명제를 세우고, 그것을 증명하고자 하는 책이다. 현재 전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도시에 산다고 한다. 그러나 인간은 '성공한' 도시 생활을 동경하면서도, 도시가 안고 있는 갖가지 문제를 비판하며 도시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양면적 태도를 취해왔다. 성공을 위해 도시로 몰려들기도 하고, 부자들은 도시에서의 성공을 만끽하기 위해 도시밖으로 나가기도 한다. 빈과 부를 동시에 양산하는, 양날의 칼같이 위험하게 느껴지는 '도시'가 과연 인류 최고의 발명품일까?

"전 세계 학자들과 언론이 극찬한 화제의 책"이며, 프린스턴 대학을 졸업하고 시카고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의 책을 비판하기가 겁이 나지만, 게다가 단 한 권의 책을 단 한 번 읽고 이런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 위험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한마디로 이 책은 전형적인 개발주의자적 사고방식을 드러내는 책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생태적 환경가치가 훼손되더라도 여가편익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는 경제지상주의적 정책으로 욕을 많이 '먹고' 계시는 우리의 최고 통치자처럼 말이다. (물론, 최고의 지성답게 이 책의 저자 에드워드 글레이저 교수도 환경 문제를 비롯해 도시가 안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를 간과하지 않으며, 정책적 대안까지 제시하는 바이다.)

'도시'라고 하면 아마 가장 먼저 '혼잡'한 이미지를 떠올릴 것이다. '쥐'를 밀집된 공간 안에 모아놓으면 쥐가 난폭해진다는 실험 결과를 들은 적이 있다. 도시의 혼잡한 이미지는 내게 높은 밀도 안에서 서로 부대끼며 살아야 하는 고단함을 먼저 떠오르게 한다. 그런데 <도시의 승리>에서 저자는 도시의 혼잡성을 '협력'이라는 단어로 대치해 놓는다. "도시는 특히 인류의 가장 중요한 창조물인 지식의 공동 생산이라는 협력 작업을 가능하게 해준다. 방갈로와 런던의 혼잡한 공간에서 아이디어들이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 원할하게 흐르고 있으며, 사람들은 인재들 주위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도시의 높은 물가를 기꺼이 감당하려고 한다", "도시는 인류를 가장 밝게 빛나게 만들어주는 협력 작업을 가능하게 해준다. 인간은 다른 인간으로부터 그토록 많은 것을 배우기 때문에 우리는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더 많이 배운다"(435). 논리가 대부분 이런 식이다.

도시에 몰려 있는 금융자본과 그래서 형성된 노동시장 자체를 성공의 '기회'로 여기는 저자의 논리가 나는 못마땅하다. 비유컨대, 강남에 모여사는 부자들이 많은 세금을 투자해 강남을 '살기 좋은 동네'로 가꾸어가고, 범죄를 줄이기 위해 경찰 배치를 늘리고, 자본을 집중화해 노동시장을 형성한다면, 아직 성공하지 못한 비강남인, 비도시인은 강남에 가정부, 정원사, 운전사, 경비, 종업원 등의 일자리가 많다고 기뻐해야 할까. 강남에서 노동임금자로 일하며 살기 좋게 가꾸어놓은 강남의 공원, 편의시설 등을 이용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고품격의 삶인가 즐거워 해야 할까. 강남에 집중된 교육 인프라가 대단하다고 우러를 일인가. 우리나라 국민은 개발이 집중된 강남을 세계에 자랑하며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곳이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박수하며 환영해야 할까. 성공한 도시인이 되지 못한 루저의 비딱한 시선이라고 해도 할 말은 없다. 

뉴요커들이 다른 지역의 미국인들에 비해 심장병과 암에 걸릴 확률이 미국 전체 평균에 비해서 더 낮다는 '흥미로운' 통계와, 숲에 사는 사람들은 숲을 태우며 살기 때문에 콘크리트에 사는 것이 훨씬 더 친환경적이라는 '기막힌' 해석이 읽는 즐거움을 주기는 한다. 그러나 <도시의 승리>는 새로운 지식이라기보다, 의식의 전환을 주장하는 쪽이 더 가까운 책이라고 본다. 똑같은 문제를 놓고도 단점에 집중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질 것이 아니라, 극대화된 장점에 집중하는식의 의식의 전환. 적어도 "도시화는 번영과 행복의 열쇠다"라는 그의 명제에 대해 도대체 행복을 무엇이라고 정의하는지 정도는 되묻고 싶어진다. 행복의 정의를 다시 내려야 할 때라는 딴지를 걸고 싶기 때문이다. 편안(편리)의 추구가 평안이라는 행복까지 보장하는지 다시 물어야 하고, 다시 점검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도시'의 위대함을 찬양하는 것에는 이상을 가장한 헛소리라고 말하고 싶은 심정이지만, 도시를 진단하고 도시의 문제점을 개선할 수 있는 정책의 방향 제안은 새겨들어야 할 소리도 많다. 이 글 자체가 무식한 독자의 헛소리일 수도 있음을 인정하며, 최고의 지성에게 미리 사죄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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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람다 2011-08-06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 잘 읽고 갑니다.

ㅇㅇ 2015-08-25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읽고 나서 뭔가 껄끄럽기는 했는데 님의 글을 읽으니 제 생각이 정리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느낌`에서 끝나는데 그 느낌을 글로 깔끔하게 전하는 능력이 부럽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charlie 2016-07-12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와! 유익한 서평 잘 읽고갑니다. 저자가 말한 도시의 다양성(양적측면의..)이 과연 개인과 나아가 도시 전체로의 발전(질적측면의..)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현대자본주의 시스템에서 개인의 영위와 평안(?)을 위해 가장 효율적인 생활양식이라고 볼 수 있는 도시생활을 추구하는 것이고 이러한 태도가 도시를 `찬양`하는 축에 속하는 것인지도 의문이구요. 서평을 읽고 오히려 더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되네요. 고맙습니다.

김유진 2016-07-28 0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단순히 눈에 보이는 근린녹지면적과 실제 통계의 에너지 소비량은 다른거 아닐까 싶어요. 보기엔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할 것 같은 고밀도 단지가 실제론 출근길을 단축시켜주니까요.

글쎄요. 2017-08-13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자의 말이 백번 맞는 말이네요.
반도체가 압축할수록 전기 사용량이 적어지고 발라지고 효율이 높아지듯이 인류는 효율을 극대화하면서 발전하것이죠. 인간이기에 할수있는 멋진 일 아닌가 싶습니다. 개발이 나쁜거라는 환경론자들은 진정한 환경 보호가 무엇인지 좀 과학적으로 생각해 보라는 이야기도 함게 하는것입니다.
괴학적으로 봐야지 감성적으로만 보면 미신이 되는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