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그림 보면 옛 생각 난다 - 하루 한 장만 보아도, 하루 한 장만 읽어도, 온종일 행복한 그림 이야기
손철주 지음 / 현암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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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멋에 취하고, 이야기의 향에 취하다!

 
길을 걷다 보면 문득 바쁜 걸음을 멈추게 되는 노래가 있다. 다른 일에 집중하고 있다가도 자꾸만 귀를 기울이게 되는 이야기가 있다. 애써 시선을 주지 않으려 해도 자꾸만 시선을 잡아끄는 그 무엇이 있다. <옛 그림 보면 옛 생각난다>가 그러하다. 한 폭의 그림이, 우리의 옛 그림이, 그 정겨운 이야기 한 자락이 바쁜 발걸음을 멈춰 세우고 귀를 기울이게 한다. 좋은 것을 보면 사랑하는 사람이 생각난다 했던가. 좋은 것을 보고, 멋스러운 이야기를 들으니 나만 알고 있기에는 아까워진다. 글을 나누고 싶다. "우리의 옛 그림 이야기 한 번 들어보겠니?" 나도 모르게 선뜻 손을 뻗어 낯 모르는 이의 옷자락이라도 잡아끌 기세다.

서양 화가들의 명작은 심지어 샴푸 용기에도 프린트 되어 나올 정도로 우리에게 익숙하다. 어떤 이들은 그림만 보고도 누구의 것, 어떤 화풍, 어떤 시대의 것인지 빠삭하게 알고 있을 정도로 친숙하다. <옛 그림 보면 옛 생각난다>가 보여주는 우리의 옛 그림은 어디서 한 번쯤 보암직한 그림이면서도, 어디서도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그림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 미안해지고, 그래서 더 재밌기도 하다. 기다리고 기다렸던 인연을 만난 것처럼, 이제야 만난 것이 아쉽기도 하고 이제라도 만난 것이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옛 그림 보면 옛 생각난다>에 왜 이처럼 겉잡을 수 없이 빠져드는 것일까. 일단 저자 손철주 선생님의 이야기 솜씨가 아찔할 만큼 현란하다. '글맛'이라는 단어를 실제 맛보기라도 한 것처럼 글자 그대로 맛깔스럽다. 이렇게 빛나는 글쏨씨가 우리의 옛 그림을 보고 해석하는 탁월하고 예리한 눈과 만나니 이 한 권의 책이 그 자체로 한 폭의 그림이 되었다. 그러나 이야기의 대상이 되는 그 주체가 영 글렀다면 아무리 빼어난 글솜씨도, 대상을 해석해내는 예리한 눈도 쓸 데가 없어질 것이다. <옛 그림 보면 옛 생각난다>에 그렇게 빠져들었던 이유도, 우리의 옛 그림이 가진 그 정겨운 마음과 멋스러운 삶의 향취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림에 담긴 이야기는 우리의 것이며, 옛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오늘 우리의 이야기이고, 오늘 우리의 삶이기도 하다. 그렇게 우리의 인생은 나고 자란 이 땅에서, 그리고 결국 자연의 한 자락으로 돌아가는 이 땅에서 그렇게 돌고 돌며 돌고 있었다. 

장맛비의 시끄러운 소음도 잊게 만들고, 습한 더위도 잊게 만들고, 시름도 우울한 기분도 잊게 만들었던 <옛 그림 보면 옛 생각난다> 중 가장 먼저 보여주고 싶은 그림은 이것이다.



정선, <꽃 아래서 취해>, 고래대박물관

 

저자의 이야기를 날 것 그대로 들어보자. "산 아래 푸르른 이내가 깔려 몽롱한 초봄의 한갓진 언덕. 오가는 이 뵈지 않고 복건을 쓴 도포자락의 노인이 혼자 노란 꽃 붉은 꽃 앞에 두고 휘청거린다. 술병과 술잔과 잔대가 발밑에 어지럽다. 춘풍이 코끝을 간질이는데, 낯술에 취한 노인은 눈이 반이나 감겼다. 꽃향기는 술잔에 스며들고 꽃잎은 옷 위에 떨어진다." 관찰하는 눈빛이 예리하다.

그림은 보이는 것만이 아니다. 이 그림 안에 감추어진 이야기가 이렇게 풀어진다. "권커니 잡거니 짝이 없는 노인은 꽃과 더불어 대작했다. (...) 흥을 돋워보려 하나 꽃피는 이 봄을 몇 번이나 더 볼는지, 마음 한 구석으로 수심이 파고든다. 꽃 꺾어 곁에 둔들 가는 봄을 잡아두랴." 노인의 마음속을 엿보았던가. 꽃 앞에 두고 휘청거리는 노인의 마음이 내게 전달된다.

그림에 인생이 담겨 있다. 그림은 우리에게 이런 지혜를 전한다. "청년은 봄맞이가 즐겁고 노년은 봄앓이가 힘겹다. 하여도 젊은 이들아, 우쭐대지 말거라. 봄나들이 길에 꽃 아래 취해 쓰러진 노인을 보거들랑 뒷날의 날인가도 여겨라"(20-21). 노인도 아니건만 서러웁다. 봄이 오면 노인도 앓는다! 봄을 앓는 저 노인 옆에 앉아 마시도 못하는 술 친구라도 되어드릴까. 세월이 지금처럼 빠르게 흘러 어느 새 저 그림 속으로 쏙 들어가 앉아 있게 되는 날이 오면, 나는 오늘을 떠올리게 될까. 

<옛 그림 보면 옛 생각난다>는 뻔하고 당연한 이야기에 머무르지 않는다. 저 혼자 싸구려 감상에 젖어 들지도 않는다. 그림 안에 담긴 것은 이야기만이 아니다. 여기 놀라운 이야기 한 토막! 사대부 화가 남계우는 별명이 '남 나비'일만큼, 나비 그림에 있어서는 조선 제일이었다고 한다. 그는 수 백 종의 나비를 채집해서 꼼꼼히 관찰하고 치밀하게 묘사했는데, 생물학자는 나중에 그의 그림에서 희귀한 열대종 나비까지 찾아냈단다(60-61). 우리의 조상님들은 어찌 이리 지혜로우셨는가. 자랑스럽기만 하다.

최근에 천문학자가 미스터리였던 신윤복의 활동시기를 밝혀냈다는 보도가 있었다. 신윤복은 조선시대 3대 풍속화가로 일컬어지지만 그에 대해 알려진 역사적 사실은 1758년에 출생했다는 것 단 하나뿐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한 천문학자가 신윤복이 그린 '월하정인'에 담긴 '빨간색 둥근 달'을 주목했다. 그 달의 모습을 분석한 결과 그것이 1793년 8월 21일 밤에 일어난 월식을 그린 것임을 확인했다고 한다. 천문학자도 알아볼 만큼 그리 정교한 그림을 화폭에 담았단 말인가. 감탄스러울 뿐이다. 그런데 신윤복은 그 '월하정인'과 1805년에 헤어졌는가. 봄, 여름, 가을, 겨울로 우리의 옛 그림을 담아낸 <옛 그림 보면 옛 생각난다>는 '가을' 자락에 헤어진 여인의 뒷모습을 그린 신윤복의 <처네 쓴 여인>을 담았다. 뒷모습이여서 더 처연한 느낌이 드는 이 그림의 낙관에 그린 때가 적혀 있다. '을축년 초가을에 혜원이 그리다.' 을축은 1805년이고, 혜원은 신윤복의 호다(200-201). 내 마음은 그렇게 신윤복의 두 그림을 연결지으며 저절로 이야기를 짓고 있었다.

이 밖에도 "대찬 임금의 그림 솜씨"를 볼 수 있는 정조의 <들국화>와의 만남도 귀하다. 그림에 있는 낙관에 정조는 이렇게 새겨넣었다. '만천명월주인옹', 풀이하면 '온갖 물줄기를 고루 비추는 밝은 달의 임자'란다. "조물주에 버금가는 이런 대찬 호를 쓴 이는 나라 안에서 단 한 사람, 바로 정도다"(156). 참 알수록 멋진 임금이요, 그리운 군주이다.

<옛 그림 보면 옛 생각난다>는 "우리만" 알 수 있는 정겨움이 있다. "우리만" 알아볼 수 있는 멋이 있다. "우리끼리만" 통하는 정서가 있다. 술 취한 선비의 모습까지 어찌 그리 귀여운지 저절로 미소 짓게 하는 순박함이 있다(176). 희디 힌 매화 꽃 눈송이 흐드러지게 핀 날 거문고 가락으로 춘흥을 돋우려고 사랑하는 동무를 찾아갔던 멋스러움이 있다(16-17). 

내 그대를 모르오나, 수줍은 손 뻗어 그대의 옷자락 살포시 잡아끄는 것은 나만 알기 아까운 그림이, 그 정겨운 이야기 들려드리고 싶기 때문이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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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쾌한 논어, 21세기에 답하다 - 알기 쉽게 풀어쓴 알기 쉽게 풀어쓴 동양철학 시리즈 2
푸지에 해설, 이성희 옮김 / 베이직북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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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될 줄 알지만 끝까지 도전할 수밖에 없다"(91).

 
오래 전,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책이 핫 이슈가 된 적이 있다. 도발적인 제목이었다. 공자의 도덕은 사람을 위한 도덕이 아니라, 정치의 도덕이었고 남성을 위한 도덕이었고 어른의 도덕이었고 기득권자를 위한 도덕이었다고 혹평했다. 공자는 이 유교 이데올로기를 대표한다고 했다. 저자는 골수에까지 사뭇쳐 있는 그 유교 이데올로기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고 역설했다. 공자로 대표되는 유교문화의 망령을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러나 십 년도 지나지 않아 그 책은 우리의 관심에서 지워졌지만, <논어>는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다. 공자는 죽지 않았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대한민국의 지도층 인사들이 공자와 유교에 애착을 느낀다고 비꼬았다. 유교 이데올로기는 수직윤리를 가진 지배이데올로기이기 때문이란다. 이유는 다르지만, 대한민국의 지도층 인사들이 공자에 애착을 느끼는 것은 맞는가 보다. 삼성가에서 3대째 전수되어 내려오는 단 한 권의 책이 <논어>라는 뉴스가 있었고,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다시 <논어>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읽는다면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확신 때문인지, <논어>가 다시 유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저자의 주장이 전혀 근거 없는 말은 아니었고, 공자로 대표되는 유교 이데올로기가 폐해를 가져온 것도 사실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에서 공자가 여전히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것은 '날 것 그대로의 그의 가르침'이 가진 지혜와 성찰 때문이리라. 유교가 종교라면 그 경전은 <논어>이다,라고 할만큼 <논어>의 가르침은 여전히 권좌를 지키고 있다. 시대마다 그 사상과 가르침이 재해석되고, 적용되어지고 있는 것은 그의 가르침이 시대를 관통하고, 문화를 뛰어넘는 교훈과 성찰을 담고 있다는 반증이리라.

<알기 쉽게 풀어쓴 명쾌한 논어 21세기에 답하다>는 전통적인 <논어>를 "이 시대의 지식과 사상에 새로운 트렌드와 즐거움을 더해주도록" 재해석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논어>는 중국 최초의 어록이라고 한다. <알기 쉽게 풀어쓴 명쾌한 논어 21세기에 답하다>를 보니, 이것이 모두 <논어>에 나오는 명언이었다는 것이 새삼 놀라운 정도로 유명한 말이 많다.
배우고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17)
아랫사람에게 묻기를 부끄러워하지 마라(25)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보다 못하다(44)
지나친 것은 오히려 모자란 것만 못하다(78)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100)
아는 것은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라(150)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228)
 
읽으면서 다시 한 번 가슴에 새겨진 인생의 교훈은 이것이다.
나무가 숲에서 빼어나면 바람에 부러지고 만다(21)
남이 한 번에 하는 것을 내가 못하면 백 번 해보라(38)
안 될 줄 알지만 끝까지 도전할 수밖에 없다(91)
남에게 덕을 베풀면, 그것을 잊으라(158)
만 가지 악 중 게으름이 으뜸이다(275)
 
"공자는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끝까지 시도하며 크고 작은 일을 가리지 않고 어떤 일이든 성실한 태도로 실천하는 사람"이었다는 증언이 공자를 달리 보이게 한다. 그는 점잖은 옷을 입고, 한가로이 거닐며, 공자 왈, 맹자 왈, 하는 말쟁이라는 이미지가 내게 있었는가 보다. <알기 쉽게 풀어쓴 명쾌한 논어 21세기에 답하다>와 만난 시간이 나름 의미는 있었지만, 글 전개 방식이 어쩐지 우리 정서(?)와는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한마디로 "명쾌하게" 와닿지 않는다고 할까. 본문(해석)에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한문이나 영어도 좀 불쾌했고, 여러 문헌을 넘나들며 인용되는 수준 높은 해석도 읽기 불편했다. 중국의 것(고전)을 많이 알고 있는 독자라면 이러한 해설이 보다 흥미롭고 재밌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한 줄 명언만으로도 가슴에 담아두고, 깊이 성찰하고, 삶에 담아내야 할 지혜가 충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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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명화 속 성경과 신화 읽기
파트릭 데 링크 지음, 박누리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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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이야기하는 동물이다"

 
그림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그림 읽어주는 여자>를 만나고 나서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누가 그림을 읽어주니, 보아도 보이지 않았던 그림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신기했습니다. 그림 안에 그렇게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줄 예전엔 미처 몰랐습니다. 이번에 만난 <세계 명화 속 성경과 신화 읽기>에서는 그림이 직접 성경을 읽어주고 있었습니다. 제목처럼 성경뿐만 아니라, 그리스로마 신화도 들려주지만 하지만, 그 이야기는 잘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열심히 성경 이야기를 읽고 있는데 신화 이야기가 불쑥 불쑥 튀어나오는 느낌이 들어 오히려 불편했습니다. 아무래도 성경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 때문인가 봅니다. 

인류의 가장 오래된 문자는 사물의 형태를 본떠 만든 상형문자입니다. 그러나 상형문자보다 앞단계의 문자가 있습니다. 선사시대 유물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는 그림문자가 그것입니다. 상형문자보다 유치한 단계의 문자라 평가되지만, 그림도 문자와 같은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세계 명화 속 성경과 신화 읽기>는 들어가는 첫 페이지에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매우 미안하지만 인간은 이야기하는 동물이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 파트릭 데 링크의 말인지, 누구의 말인지 모르겠지만, 인간은 이야기하는 동물이라는 정의에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그림도 이야기의 수단이라는 깨달음이 새삼 그림을 다시 보게 했습니다. '화가가 그림에 어떤 이야기를 담았는가' 하는 질문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인류 최고의 베스트셀러라고 할 수 있는 '성경'은 오랜 세월 인류의 역사와 함께하며 예술인들의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세계 명화 속 성경과 신화 읽기>는 "역사, 신화, 또는 성경 속 장면을 그린 역사화는 미술 장르 가운데서도 가장 어려운 고급 장르로 여겨졌으며, 역사화를 그리는 화가들은 이성과 감성을 자극하고, 그 주인공들을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게 하는 최고의 재능을 가진 다재다능한 예술가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합니다. 다시 말해, 최고의 예술가들이 성경(역사화)을 소재로 최고의 작품을 탄생시켜왔다는 말입니다.

성경을 그린 그림은 그 자체로 하나의 메시지가 되었던가 봅니다. "신약성서의 에피소드를 그린 그림들은 문맹들에게는 성경 그 자체로 받아들여졌다"고 합니다. "일부 그리스도 교인들은 그림으로 그려진 이야기들 역시 문서화된 텍스트만큼이나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림이 성경'책'의 하위 도구는 아닙니다. "회화 작품들은 텍스트의 파생물이 아닌 독립된 예술 작품으로 기능"했습니다.

성경의 에피소드가 그림으로 표현될 때, 그림 안에는 성경을 "해석하는 과정"이 포함됩니다. 작가의 상상력과 성경을 해석하는 작가의 관념이 그림 안에 담깁니다. 화가의 상상 속에서 성경의 에피소드가  재해석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명화는 설교자의 설교와 같이 하나의 '메시지'가 됩니다. 명화는 하나의 명 설교인 것입니다.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은 적절한 시대 간격을 두고 선정하였지만, 15, 16, 17세기의 작품들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성경을 그린 많은 화가들의 그림 중에서 개인적으로는 카라바조의 것을 가장 좋아합니다. 성경교육을 할 때, 카라바조의 작품을 보여주는 것으로 강의를 시작합니다. 그의 작품은 자극적일 정도로 사실적이고 생생합니다. 백마디 말보다 더 강렬한 울림이 있습니다. 

<세계 명화 속 성경과 신화 읽기>는 그림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그대로 들려줍니다. 목차가 일목요연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 아쉬움이라면 아쉬움입니다. 신화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림책은 꽤 있지만, 상대적으로 '세계 명화 속 성경 읽기'를 들려주는 그림책은 만나기 쉽지 않아 그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의 에피소드에 익숙하고 성경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더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최고의 예술가들이 그 최고의 재능으로 들려주고자 했던 이야기가 무엇인지 귀 기울여보아도 좋으리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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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의 발견 - 내 안에 잠재된 기질.성격.재능에 관한 비밀
제롬 케이건 지음, 김병화 옮김 / 시공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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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성격은 아주 가는 흑백의 실로 짜인 회색 태피스트리와 비슷하다. 태피스트리는 기질, 흑백의 실은 삶의 경험이다. 우리가 보는 것은 회색의 표면뿐이고 희고 검은 실은 보이지 않는다"(33).


우리는 가끔 "한 배에서 난 형제인데도 왜 저렇게 성격이 다를까?"라는 의문을 갖는다. 형제라면 같은 부모(양육자)를 통해 양육되고, 자라난 환경도 비슷하다고 볼 수 있는데 왜 그렇게 다른 성격을 갖게 되는 것일까? 또 한 사람의 성격 형성에 있어서도 환경의 지배적인 영향을 주장하지만, 비슷한 환경 조건이라고 해서 비슷한 성격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님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성격을 결정짓는 변수는 다양하며, 그 다양한 변수가 복합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리라.

<성격의 발견>은 우리의 성격을 결정짓는 주요 변수로 타고난 '기질'의 영향력을 발견해냈다. 같은 환경에서 아이들이 순간적으로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주목한 실험을 통해 아이들이 똑같은 방식으로 행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활발하게 움직이면서 자주 우는 아기, 활발하게 움직이지만 거의 울지 않는 아이, 움직이지는 않지만 우는 아기, 움직이지 않고 울지도 않는 아기), 아이의 행동 반응이 성격에 영향에 미치고 있음을 논증한다. 각 개인은 고유한 성격적 프로파일을 지니고 태어난다는 것이다.

가장 재밌게 읽은 실험의 결과 중 하나는, 소심하고 수줍음을 타던 아이와 활발하고 대담한 아이가 어른이 되어 어떤 직업을 선택했을까 하는 질문이었다. 실험 결과, 생후 첫 3년 동안 지독하게 소심하고 수줍음을 타던 아동 10명의 그룹은 성인이 된 뒤 가진 인터뷰에서도 확신감이 없고 조언이 필요할 때는 부모에게, 기혼자인 경우에는 배우자에게 무척 의존하며, 위험한 취미를 즐기지 않고, 어려운 도전을 받아들이기 꺼려한다고 대답했다. 이 그룹에서도 가장 겁이 많은 소년 4명은 음악 교사, 물리학자, 생물학자, 심리학자를 직업으로 택했다. 이들 직업에서는 하루 동안 예상치 못하게 일어날 수 있는 스트레스의 총량이 통제가능하다. 생후 첫 3년 동안 가장 겁이 없었던 소년 3명은 불확실성이 큰 직업을 선택했다. 그들은 고교 축구팀 코치, 기업가, 지영업 엔지니어가 되었다(26-27). 타고난 기절이 직업까지 결정했다고 볼 수 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태어날 때부터 우리의 유전자에는 장차 어떤 직업을 갖게 될 것인지에 대한 힌트가 숨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성격을 결정하는 것이 오로지 '기질'뿐일까? <성격의 발견>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의 성격은 아주 가는 흑백의 실로 짜인 회색 태피스트리와 비슷하다. 태피스트리는 기질, 흑백의 실은 삶의 경험이다. 우리가 보는 것은 회색의 표면뿐이고 희고 검은 실은 보이지 않는다"(33). <성격의 발견>은 자녀의 성격 형성에 영향을 마치고 싶다면, 아이의 기질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러나 기질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기질을 이해하고 대응하면 삶의 경험을 통해 타고난 기질을 좋은 방향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타고난 것(결정된 것)을 인정하지만 후천적으로 수정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동안 배워왔던 심리상담 등에서는 한 사람의 인격을 결정짓고, 인생을 좌우하는 것은 0-2세, 혹은 7세 이전에 '양육자'의 양육 태도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해왔다. 타고난 기질도 배제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무게 중심이 '양육자', 다시 말해 '환경'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성격의 발견>은 그 무게 중심이 (상대적으로) 타고난 '기질'에 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기질과 삶의 경험을 동시에 이야기하지만, 그동안 타고난 기질이 운명론적인 요소로 배제되어왔던 탓에 더 강조되는 이 책에서는 기질이 더 강조되는 듯한 극적 긴장감이 있다. 경험이 기질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닫아 놓지는 않지만,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말한다. '개꼬리 삼 년 묵어도 황모 되지 않는다'는 옛 속담의 원리를 인용하며 여운을 남긴다고 할까(131).


"이 책은 수많은 과학자가 몇 가지 인간 기질에 대해 알아낸 내용을 다루고 있다. 특히 영아기의 모습, 유년기 후반에 나타나는 그 파생물, 그것의 생체적 연원, 몇 그룹의 편향이 각기 다양한 성격 유형이나 정신 질환의 징후로 만들어져가는 경험, 남녀라든가 민족 집단 사이에서 나타나는 심리학적 차이에 어떤 기여를 하는가 등이 중요한 내용이다. 그러나 나는 오직 한 가지 성격 유형만을 낳는 기질은 없다고 본다. 각 지질은 수많은 가능성의 무더기에서 한 가지 프로파일 조합을 개발해 내는 원천적 성향으로 간주되어야 한다"(33).

<성격의 발견>은 실험과 논증의 과정을 담은 한 편의 논문으로 읽히기 때문에 생각만큼 재밌게 읽히지는 않는다. 그 학문성(전문성)이 설명을 다소 지루하게 만든다. 관심이 있는 독자는 공부하는 마음으로 읽으면 좋을 책이다. 다소 지루하게 느껴져도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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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와 모네 그들이 만난 순간 - 인상파 화가들의진솔한 한 기록
수 로우 지음, 신윤하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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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박수근이 새로운 화법을 시도했을 때, 당시의 주류는 그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박수근의 그림은 최고의 경매가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우고 있다. 지금은 천재화가라고 일컬어지는 화가 김점선의 그림이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근본 없는 그림이라는 혹평도 받았다고 한다. 새로운 시도와 주류의 저항이라는 도식은 그렇게 돌고 돈다. 어떤 분야든 기득권의 안정을 위협하는 새로운 시도는 주류에게 반항으로 받아들여기 마련이니까.

서양미술사에서 '인상주의'만큼 잘 알려지고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는 화풍이 있을까. 동시에 인상주의만큼 주류의 저항과 조롱과 비난이 거셌던 화풍이 또 있을까 싶다. '인상주의'는 당시 주류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했던 화가들을 가리키는 집단적인 명칭이며 동시에 그들을 경멸하려는 의도로 붙어진 이름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코메디 같은 일이지만, 당시의 인상주의는 모진 저항과 조롱과 혹평을 이겨낸 은근과 끈기의 그룹이다. "그 기간 내내 이들은 화가로서의 명성을 얻고자 고군분투했지만, 이들의 작품은 살롱의 편견 가득하고 속물적이며 퇴행적인 삼시위원들의 기준을 통과하지 못했다. 대부분의 시간 동안 인상주의 화가들은 거의 가족을 부양하기도 어려운 처지였다"(8).

<마네와 모네 그들이 만난 순간>은 인상주의의 이러한 은근과 끈기를 보여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예술가들보다 더 '극적'이었던 화가들의 삶과 역사, 그 뒷 이야기! "이 책은 인상주의 화가들이 처음 만난 때로부터 뒤랑 뤼엘이 뉴욕에 작품을 소개한 절정기에 이르기까지의 26년 동안에 초점을 맞추어, 이들 화가들이 어떻게 모이게 되었는가, 그들의 삶과 사랑, 성격, 작품의 주제가 어떠했으며 또 그것이 어떻게 발전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9). 제목에 등장하는 모네와 마네는 물론 피사로, 르누아르, 드가, 세잔, 고갱, 고흐 등 대표적인 인상주의 화가들의 삶과 (그 대가들의) 교류를 읽어볼 수 있다.

"저 흉측한 바보들 좀 봐! 대체 어디서 저런 모델들을 구해온 거지?",
"도대체 왜 저 화가들은 세탁부나 오페라 극장의 무용 연습생, 또는 경작해놓은 밭을 쳐다보는 데 비싼 돈을 쓰게 만들었는가?"
당시 "살롱에서 높게 평가하는 작품은 도덕적인 교훈을 고취시키는 역사적, 신화적, 또는 종교적 주제의 작품과 프랑스의 영광을 찬양하는 작품들"이었다. 또 아카데미의 가치관은 회화 기법을 결정하기도 했는데, "작품은 아주 미세한 부분까지 정확해야 했고, 적절한 '완성도'를 갖추어야 하며 형식적으로도 틀이 잡혀 있어야 했다. 또한 적절한 원근법과 익숙한 모든 예술적 관습을 준수해야 했다." 이러한 전통적인 회화 기법을 거부한 마네의 그림은 '쓸데 없는 손장이나 치는 인간'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세탁부, 오페라 극장의 무용 연습생, 경작해놓은 밭을 그린 인상주의 화가들의 전시회를 본 관객들은 환불을 요구했다. "관람객들은 르누아르의 작품을 비웃었다면 드가와 세잔의 작품을 보고는 실제로 화를 냈다. 작품의 이상한 구도와 기괴한 원근감이 매우 터무니없어 보였기 때문이다"(172). 인상주의 화가들은 이러한 혹평에도 불구하고 고전주의의 귄위와 감상적인 낭만주의에 대한 '반항'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들은 '고상한' 미술계와 (중산층의) 사회를 뒤흔들었다.

<마네와 모네 그들이 만난 순간>을 읽다보니, 인상주의 화가들이 억수같이 쏟아지는 혹평과 조롱을 견딜 수 있었던 힘은 어쩌면 '마네'와 '모네'가 만났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말해, 서로를 알아주는, 그리고 뜻을 같이 하는 친구가 있었기에 비난을 견디며 저항의 물살을 헤쳐나갈 수 있지 않았을까. 

 
"무엇보다 '인상주의'라는 명칭이 화가들을 난처하게 했다. 이 용어는 이들 화가들에 대한 대중들의 반감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거신데다, 이들을 경박하고 세련되지 못하며 조잡한, 체제에 타협하지 않는 반동분자들로 간주하는 대중들의 견해에 일조하는 셈이었던 만큼 화가들의 처지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세잔은 깊은 수치심을 느꼈다"(178).
'잘난' 사람들은 모욕하려는 의도로 그들을 '인상주의'라고 불렀지만, '인상주의'는 인류의 미술사에서 최고로 명예로운 이름이 되었다. 관람객들(대중들)은 인상주의를 비웃었지만, 지금은 우리가 그 관람객들을 비웃고 있다. 살롱과 아카테미의 전문가들은 인상주의에게 화를 냈지만, 그들이야 말로 인류 최고의 '얼간이'로 남게 되었다. 꿈이 있고, 뜻이 있고, 믿음이 있다면, (당장) 세상의 인정쯤 못 받는다 할지라도 좌절하지 말자! 어떤 모욕과 조롱이 뒤따른다 할지라도 이겨낼 만한 가치가 있다! 이것이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교훈이 아닐까. 

격분에 찬 르누아르의 한마디가 가슴에 남는다.
"우리가 이 멍청한 글쟁이들과 뭘 하고 있는 거지? 이 사람들은 그림이 기술이라는 것을 절대로 이해하지 못할 텐데 말이야. 그림은 도구로 그리는 것이지 관념으로 그리는 게 아니라고! 그런 관념은 작품이 완성된 뒤에야 생겨나는 것이지"(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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