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최인호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나는 뫼비우스의 띠를 기어가는 개미다. 내가 가는 이 현상의 띠는 안과 밖이 없고, 시작도 끝도 없다"(292).

"옛날 옛적에 아버지와 아들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아들이 아버지에게 옛날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랐지. 그래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옛날이야기를 해주었어. 이렇게 말이야. 옛날 옛적에 아버지와 아들이 살고 있었다.......", "인생이란 이 우스꽝스러운 옛날이야기처럼 돌고 도는 거야"(337).

오래도록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있는 영화의 한 장면이 있다. 영화의 제목은 '미드나잇 익스프레스', 기억에 남아있는 한 장면은 '감옥에 갇힌 사람들의 하루 일과. 감옥에서 벗어날 희망이 전혀 없는 수감자들이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에서 방 한 가운데 있는 기둥을 중심으로 하루 종일 한 방향으로 무리지어 계속 돌고 또 도는' 장면이다. 어렸을 때 본 영화이기 때문에 기억이 과장되었을 수도 있지만, 이 장면이 그토록 강렬했던 이유는, 주인공의 변화 때문이었다. '무리 속에 끼어 계속 한 방향으로 돌기만 하던 주인공이, 어느 날 그곳에서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된다. 그러자 놓았던 정신줄이 차츰 제자리를 찾기 시작하면서 주인공은 갑자기 무리와 반대 방향으로 돌기 시작한다.' 하루 종일 돌고 또 돌기만 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갑자기 사람들과 반대 방향으로 돌기 시작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대비를 이룰 때, 꽃봉우리 터지듯 내 안의 무엇인가가 팍- 터지는 기분이었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에서 주인공 K가 자신을, 그리고 인생을 "뫼비우스의 띠를 기어가는 개미"에 비유했을 때, 또다시 이 장면이 불쑥 튀어나왔다. 그것이 옳다고 믿으며 한 방향으로 계속 돌고 있는 수감자들과 뫼비우스의 띠 위를 기어가는 개미들, 그리고 탈출하고 싶은 일상에 갇힌 내 모습이 겹쳐졌기 때문이다. 인생은 아무리 열심히 기어가도 결국 제자리 걸음일 뿐이라는 걸, 그걸 다시 확인해야 하는 마음에 서늘한 바람이 지난다. "뫼비우스의 띠 위를 기어가는 그림 속 개미는 영원히 종착지에 도착할 수 없다. 왜냐하면 가도가도 제자리로 돌아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291).
 

"너무나 익숙한 일상에서 길을 잃은 한 남자의 영원한 사흘"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는 어느 날, 자신도 모르게 저 뫼비우스의 띠 위에서 탈선한 한 개미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느닷없는 소음 때문에 강제로 잠을 깬 K는 잠과 현실의 모호한 경계에서 차츰 의식을 회복하며 기억을 재구성한다. 기억의 재구성은 곧 K가 누구인가를 말해준다. 잠을 깨운 소음은 자명종 소리, 잠을 깬 시각은 7시, 7시라면 출근을 위해 일어나야 할 시간, 오늘은 토요일, 출근할 필요가 없는 토요일은 늦잠을 자며 게으름을 피울 수 있는 날, 어젯밤 퇴근 후 H와 밤늦도록 술을 마셨다. 그렇다면 오늘은 분명히 토요일이다...

그런데 K는 무엇인가 낯익은 일상에 작은 균열을 느낀다. 분명 낯익은 일상인데, 무엇인가 자꾸 뒤틀린다.
자명종은 낯이 익지만 어제까지의 자명종이 아니다.
아내 역시 낯이 익지만 어제까지의 아내가 아니다.
딸아이도 낯이 익지만 어제까지의 딸아이가 아니다.
강아지도 낯이 익지만 어제까지의 강아지가 아니다(54-55).

이 돌연변이의 기이한 현상은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기인된 것일까(55). 주인공 K는 갑자기 찾아든 이 일상의 뒤틀림을 좇는다. 기억의 꼬리를 재구성하며 열심히 균열의 단서를 찾아나선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는 K가 토요일 아침, 잠에서 깨어나면서부터 일요일을 거쳐 월요일 아침, 출근하는 시간까지 이어진다. 소설가 김연수는 "환락의 금요일 밤을 거쳐 토요일부터 시작된 소설이 성스러운 주일인 일요일을 거쳐 다시 일상이 시작되는 월요일에 끝나는 건 흥미롭다"(391)고, 3일의 행적에 의미를 부여한다.


"월요일 아침이었다. 대부분 직장인인 승객들은 출근 시간에 맞추려고 바쁘게 지하도를 걷고 있었다. 지하도는 거대한 개미굴처럼 이리저리 뚫려 있었다. 그 미로를 바쁘게 걸어가는 사람들은 쉴새 없이 먹이를 실어 나르는 일개미들이었다"(368).

프로그래밍된 기계처럼, 토요일엔 늦잠을 즐기고, 일요일엔 미사를 드리고, 월요일엔 7시에 일어나 출근을 했던 K. 그런 K의 일상에 균열을 가져오고, 궤도를 이탈하고, 길을 잃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 

 
"이 모든 가상현실에서 바뀐 사람은 다름 아닌 K다"(296).

이 모든 불가사의한 현상 중심에는 K가 있다. 처음 본 타인들은 낯이 익고, 오히려 낯선 것은 자기 자신이다. 낯익은 타인들의 거리에서 발견하는 낯선 자아. K는 기억을 잃어버린 "금요일 밤의 미스터리한 한 시간 반에 걸친 의식의 공백"(296) 이후, 자신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났음을 느낀다. 

소설은 소설로 읽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나는 어쩔 수 없이 K에게 일어난 일상의 균열과 최인호 선생님의 암투병을 연결하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낯익은 모든 풍경이 한 순간 갑자기 자기에게 반기를 들고 역모를 꾸미는 듯한 불길한 예감", "평화와 태평을 위장하고 있지만 일치 단결해 K를 속이고 K의 허점"(54)을 노리고 있는 듯한 느낌은 선생님의 삶에 불쑥 끼어든 '암'의 존재를 의식하게 했다. 암의 침입, 그것이 모든 것이 예전 그대로이지만, 모든 것이 예전 그대로가 아닌 일상을 만들어놓지 않았을까.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는 끝까지 미스터리로 읽히기도 하고, 판타지로 읽히기도 한다. 책의 메시지를 이해하는 데, 소설가 김연수의 '발문'에서 많은 힌트를 얻었고, 큰 도움을 받았다. 몇 가지를 인용하면, <낯선 타인들의 도시>는 K라는 남자의, "사흘에 걸친 이별 이야기"라는 것. "익히 아는 현실", "익숙한 일상"과의 이별. 그리고 "모든 것과 작별한 뒤에야 우리는 본래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

주인공 K는 기억을 잃어버린 '금요일 밤의 한 시간 반 동안의 행적' 이후, 일상의 뒤틀림을 경험했다. 나에게는 이 책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가 그런 일상의 뒤틀림을 가져온다. 낯익은, 너무나 익숙해서 아무런 의문도 갖지 않았던 모든 것에 의문을 던져준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는 미스터리의 해답이 아니라, 뫼비우스의 띠 위에서 탈선한 한 개미가 길을 잃고 헤매는 과정, 길을 찾아가는 과정 속으로 우리를 끌어들인다. "미로를 바쁘게 걸어가며 쉴새 없이 먹이를 실어 나르는 일개미", 그게 바로 우리의 모습이라는 것을 알려주기라도 하려는 듯이.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는 잘 읽힌다. 선명하게 정돈된 문장은 대가의 필력을 확인하게 했고, 심각하게 책을 읽는 중, 너무도 진지하게 세일러문의 노래 가사가 인용된 것을 보고는 풋- 웃음을 터트렸다. 최인호 선생님이 귀여운 데가 있다 생각했다. 선생님이 '아름다운 죄의 꽃다발'이라 표현한, 그리 순결하지 않은 우리의 일상이, 인생의 숨겨진 이면이 드러날 때는 누군가의 치부에 눈길이 잘못 닿은 것처럼 낯을 들고 대하기에 부끄러운 데가 있었지만, 그 적나라함이 역겹지는 않았다. 누군가의 죄라고 생각했다면 구토가 나왔겠지만, 그것이 인생의 실체라는 생각이 드니 소리없는 비명이 나왔다.

K는 사흘에 걸친 이별을 통해 온전한 '나'가 되었지만, 바로 그 순간 나는 K를 놓쳐버리고 말았다. K의 뒤를 좇으면서도 나는 아직 K처럼 온전한 '나'가 되지 못했지만, 뫼비우스의 띠 위를 걷고 있는 '나'를 발견하기는 했다. 어디에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는 모른다고 해도, 적어도 오늘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발견하지 않았는가!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가 만들어준 일상의 작은 뒤틀림과 의문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기대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위험한 관계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공경희 옮김 / 밝은세상 / 2011년 5월
평점 :
품절


 

"내가 너무나 잘 아는 사람 그러면서도 전혀 모르는 사람"(556).


패션계에서 일하는 친구가 있다. 친구는 항상 패션은 도박이라고 말한다. 새로운 상품을 매장에 내놓을 때마다 꼭 도박하는 심정이라고. <위험한 관계>를 읽으며 내내 들었던 생각은 '결혼'이라는 선택도 일종의 '도박'이라는, 치명적인 '위험부담'이었다. 우리는 '결혼과 함께 돌변한 배우자' 이야기를 많이 알고 있지 않은가. "은밀하게 변심한 남편은 낯선 남자보다 더 위험하다!"는 문구가 머리카락을 쭈뼛 서게 하는 한여름밤의 공포영화처럼 섬뜩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친밀한 관계이며, 최후의 순간까지 유일한 내편이 되어줄 것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이 사실은 내가 아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면? 게다가 은밀한 속내를 감춘 연극으로 나를 속이고 있는 중이라면? 그것은 출구가 없는 미로에 갇힌 절망이 아닐까.

함께 읽은 최인호 선생님의 신작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에서 선생님은 "100미터를 달리는 스프린터들은 0.01초를 단축하기 위해서, 무호흡으로 질주한다", "나 또한 단편소설을 쓸 때의 단거리 주법을 되찾고 싶어 다시는 역사소설이나 대하소설을 쓰지 않겠다고 공언까지 했었다"고 고백했다. 그런데 <위험한 관계>는 한 남자를 만나고 그 남자와 완전히 끝장나는 결승선(?)까지 전력으로 질주한다. 장거리를 단거리 주법으로 달리고 있는 것이다. 글의 호흡이 얼마나 긴박한지 손에서 책을 내려놓을 수 없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제대로 실감하는 중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샐리 굿차일드'라는 이름의 외신기자이다. 36살의 성공한 외신기자인 샐리는 소말리아의 대홍수를 취재하기 위해 올랐던 헬기 안에서 '토니 홉스'라는 매력적이지만 냉소적인 기자와 만났고, 여태껏 만난 다른 특파원들과 달리 그에게 빠져 든다. "헬기에서 그는 처음 본 순간에 이미 그와 자게 될지도 모른다고 예상했다. 게임은 늘 그런 식으로 펼쳐지니까. 내가 현장에서 주로 맞닥뜨리는 기자들은 하룻밤은 고사하고 단 10분도 함께 눕고 싶지 않은 남자들이었다. 하지만 토니와 잠이 깼을 때 나는 그와 정말 통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시 만나고 싶었다. 사실은 오늘밤 당장 또 만나고 싶었다"(24).

많은 여성이 첫 눈에 눈이 멀고, 첫 눈에 심장이 멎는 사랑을 꿈꾸지만, 언제나 첫 눈에 반하는 사랑이 문제이다! 게다가 샐리처럼 스스로 매우 이성적이며 똑부러지는 성격이라고 자부하는 여성일수록 첫 눈에 반하는 사랑은 위험하다. 예전엔 결코 경험해보지 못했기에(!) 그 낯설지만 달콤한 유혹에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드는 것이다. "사실 내가 사랑에 빠졌다는 게 놀라웠다. 내가 만나고 싶어 했던 스타일의 남자를 만나 사랑받게 됐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만나길 바랐지만 그런 남자가 실제로 존재하는지도 몰랐다"(38).

이미 토니에게 빠져든 샐리의 귀에는 토니 친구들의 증언도 들려오지 않는다. 토니의 지인들은 토니를 이렇게 묘사했다. "대책 없이 무모할 뿐만 아니라 상사의 비위를 맞추지 못하는 것으로 유명하죠",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감정적으로 얽히면 토니는 항상 뭐랄까, 분별력 있게 표현하자면 성난 황소 같다고 해야겠지요", "토니 홉스에 대한 가장 큰 소문은 어떤 여자가 그의 가슴을 무너뜨렸다는 것이지요." 샐리는 이 모든 이야기들이 못마땅했을 뿐이다.

단거리 주법으로 전력 질주하는 <위험한 관계>는 쾌속으로 연애를 하고, 쾌속으로 임신을 하고, 쾌속으로 결혼을 한 샐리와 토니를 따라 독자를 '런던'에 덜컥 데려다놓는다. 샐리의 런던 생활은 갑자기 '현실'이 된다. 낯선 런던에서 살림집을 구하고, 임신 중독증을 앓고, 그 때문에 직장까지 그만 두게 되면서 그녀가 맞닥뜨려야 했던 '현실'은 '두려움'이라는 낯선 감정이었다. 무엇보다 그녀를 두려움에 빠지게 만든 건 그 매력적인 남자 토니의 쌀쌀맞은 태도였다. "토니는 그 말을 남기고 다른 방으로 가버렸다. 하지만 그날 새벽 5시, 나는 잠에서 깨어났고, 모든 게 괜찮지 않다는 걸 알아차렸다. 뭔가 아주 잘못 됐다고 깨달은 그 당황스런 순간, 나는 아주 오랫동안 경험하지 않은 낯선 감정과 맞닥뜨렸다. 그건 바로 두려움이었다"(89).

빠른 호흡과 더불어 <위험한 관계>가 보여주는 또다른 장기는 삼킬 듯이 휘몰아치는 여성의 심리 묘사이다. 출산을 하고 심각한 산후우울증을 겪는 샐리의 감정 기복이 너무 리얼해서 이 작가가 정말 남성인지 표지에 있는 작가의 사진을 몇 번이나 다시 확인했을 정도이다.

 
"우리는 짧은 생의 많은 시간을 타인과의 불화에 써버린다"(286).

첫 눈에 사랑을 예감하고,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출산에 이르지만, 이 책은 결혼과 동시에 갑자기 모든 것이 '대결 구도'로 바뀐다. '런던'이라는 낯선 환경에 던져진 샐리에게는 모든 것이 전쟁이 된다. 적응을 위한 싸움. 설상가상으로 남편 토니가 자신의 산후우울증을 악용해 무엇인가 꾸미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장미의 전쟁, 진짜 전쟁이 시작된다! 그런데 영국 남자인 남편, 영국인 친구들, 영국의 의료 제도, 영국의 법 제도 등 그녀가 해쳐나가야 할 모든 길목에 '영국의'가 장벽처럼 버티고 서 있다. <위험한 관계>를 읽는 또다른 즐거움은 우리에게는 모두 '서양 사람'으로 보이는 영국인(영국 사회)과 미국인(미국 사회)의 '극명한' 차이를 체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영국인들은 미국인들이 너무나 진지하고, 곧이곧대로 처신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미국인의 진지한 태도를 깃털처럼 가벼운 자세로 자극했고, 그러고 나서는 정작 자신들의 말은 그리 중요할 게 없다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 사실은 대화중에 그들이 한 말들이 모두 중요했는데 나는 그걸 몰랐던 것이다"(41). "미국인들은 인생을 심각하지만 가망 없진 않다고 믿는다. 그 반면 영국인들은 인생을 가망 없지만 심각하진 않다고 믿는다"(47).

한바탕 사랑을 했고, 한바탕 전쟁을 치른 후, 드러난 진실은 샐리가 사랑했던 토니가 사실은 아주 '나쁜 놈'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매력적이었던 남자가 어떻게 이렇게 비열하고, 비겁하고, 비굴할 수 있는지, 그 사람의 드러난 정체보다 더 싫은 것은, 저주하고 싶을 만큼 진저리가 처지는 것은, 아마도 그런 사람을 사랑했던 나 자신이 아닐까.

아예 작정한 사기결혼도 있고, 거래가 오가는 계약결혼도 있지만, 결혼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상대에 대한 '신뢰'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던가. 그런데 그 상대가 정말 믿을 만한 사람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누가, 무엇이, 어떻게 '보장'해줄 수 있을까?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세계적인 부흥강사인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 부부를 인터뷰했다. 인터뷰 중 사회자가 사모님에게 "남편인 빌리 목사님과 이혼을 생각해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사모님은 즉시, 그리고 단호하게 "없다"고 대답하셨다. 그런데 이런 말을 덧붙이셨다. "살인은 몇 번 생각해봤습니다."

멀쩡한(?) 사람들도 '결혼'을 해서 살다보면 '살의'를 느낄 만큼 서로가 미워질 때가 있는 것이 결혼생활인가 보다(아직 경험치가 없으므로). 샐리는 점차 기대가 허물어지는 결혼생활을 겪으며 '웃으며 견디기'가 바로 결혼생활 아니던가"(182)라고 자조했다. 그런데 이 '위험한 남자'는 그 '웃으며 견디기'조차 허락하지 않는 나쁜 놈이었다. 그래도 끝까지 정신줄을 놓지 않고, 책을 덮는 순간까지 비장할 정도로 씩씩한 샐리에게 박수를! 샐리 같은 늪에 빠졌다가 탈출에 성공한 여성이라면 다시 앞만 보며 씩씩하게 나아가기를, (결혼이든, 연애이든) 아직 그 늪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여성이라면 미련을 갖지 말고 샐리에게 배우기를 바라본다. 

한 여성에게 불어닥친 사랑과 결혼, 출산, 그리고 배신이라는 휘오리바람이 남의 일 같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공감하며 읽었다. 같은 경험의 선상에 있는 여성들은 샐리를 통해 스스로를 객관화시켜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같다. 문학적인(?) 측면에서 뭔가 1%의 아쉬움이 느껴지지만, 빠른 속도로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지의 구름 - 하나님과 하나되는 기도
무명의 형제 지음, 유재덕 옮김 / 강같은평화 / 2011년 4월
평점 :
품절


 

가끔 교회에서 '관상기도'에 대해 아느냐는 물음을 많이 받았는데,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관상기도에 대해 읽고, 배웠다. '무명의 형제'에 의해 쓰여졌다고 알려진 <무지의 구름>은 "영국을 대표하는 기독교 산문의 걸작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4)고 한다. <무지의 구름>은 직접적으로 관상기도를 배우고 실천해볼 수 있는 교본 같은 책이다. 

관상기도가 무엇인지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무척 어려운데, 역자는 이렇게 정의내린다. "관상을 간단히 정의하면,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영혼이 하나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는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7). 솔직히 책을 한 번만 읽어서는 관상기도가 무엇이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천하고, 또 어떻게 경험되는지 명확하게 알기가 어렵다고 단언한다. 왜냐하면 관상기도는 '신비'의 영역에 속한 일이기 때문이다. <무지의 구름>이 집필된 시기적 배경을 보면, "신비주의가 한창 꽃을 피우던 14세기 후반 영국에서 집필된 작품"(4-5)이라고 소개된다. <무지의 구름>, 그러니까 관상기도는 신비주의의 영향을 받은 작품(기도)이며, 또 신비주의를 이끌었던 작품(기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책을 읽으며 내가 파악한 관상기도란, 하나님'만'을 사랑하기 위한 훈련이요, 하나님과 하나되는 것을 경험하는 마음 상태인 듯하다. "관상의 핵심은 하나님을 지향하는 순수한 의도 그 자체"(100)이며, 관상은 "하나님보다 못한 모든 것을 완변하게 망각하도록 만드는"(102)데, "올바른 관상자는 자신의 고통이나 행복에 무관심하며, 오로지 자신이 사랑하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101) 바란다고 한다. "관상을 실천하는 데는 평정심, 영혼과 육체의 건강과 순수한 마음이 필요"(147)하며,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43), "간절한 사랑이라는 예리한 화살로 두터운 무지의 구름을 맞추"(44)어야 한다. 그런데 아무리 개념을 정리해보려 해도 관상기도가 무엇인지 선명한 그림이 그려지지가 않는다.

신비의 영역에 속하는 일들을 사람의 언어로 설명하고 이해하는 일이 쉬울 리가 있겠는가. 솔직히 아무리 곱씹어도 감이 잘 안 왔는데, 그나마 마르다와 마리아 이야기를 통한 설명이 조금 도움이 되었다. 음식을 준비하느라 분주했던 마르다와는 달리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듣고 있었다(눅 10:38-39). <무지의 구름>은 이를 두고, "마리아는 주님에 대한 사랑을 잠시도 멈추고 싶지 않았"(88) "예수님은 마리아가 영으로 자신의 신성을 간절히 사랑하고 있음을 알고 계셨습니다"(88-89)고 설명한다. 또한 분주했던 마르다를 전혀 의식하지 못했던 마리아의 '상태'에 대한 설명으로 볼 때, 관상기도는 일종의 '황홀경'의 상태 또는 '황홀경'의 경험으로 이해된다(231).

<무지의 구름>을 통해 알게된 '관상기도'에 대한 나의 결론은 한마디로 '위험하다'는 것이다. 신비주의의 영역에 속한 것이 늘 그렇듯이 '분별'의 문제가 따르고, 성숙한 신앙의 자세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신적 영역에 속한 신비적인 경험은 그 경험을 만들어내는 주체가 인간(나)이 아니기 때문에 함부로 판단할 수 없고, 또 함부로 판단해서도 안 될 것이다. 그러나 <무지의 구름>에서도 계속 경고하고 있듯이 우리는 '거짓 경험'의 함정에 빠질 수 있고, 하나님이 아니라 경험 자체를 사랑하고 신봉하는 유혹에 걸려들 수도 있다. 모든 것은 사라지고 오직 하나님만으로 채워지며, 하나님과 하나됨을 맛볼 수 있다면 정말이지 그것처럼 황홀한 경험은 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무지의 구름>에서도 경고하듯이, 신뢰할 만한 영적 조언자 없이 관상기도를 시도하는 것은 위험하며, 신중하고 조심하지 않으면 쉽게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이바이, 블랙버드
이사카 고타로 지음, 민경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다섯 명의 여자와 동시에 사귀고 있는, 이 남자를 결국 좋아하게 될까?


바람둥이보다 더 나쁜 놈이 양다리 걸치는 놈 아닌가. 그런데 동시에 다섯 명의 여자와 사귀는 남자가 있다. 그것도 완전 순진무구한 얼굴로, 누구든 하나를 선택할 생각은 없다고 말한다. 함께 있으면 즐거운 사람과 계속 관계가 이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다섯 여자와 동시에 사귀는 일에 일말의 죄책감아나 사소한 갈등조차 느끼지 않는 남자이다(104).  

 

 


"나는 앞으로 2주일 뒤면 '그 버스'를 타야 한다. '그 버스'가 어디로 가는지, 어떤 목적을 갖고 있는지, 왜 사람을 태우는지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마유미와 마유미 동료들의 이야기를 들은 바로는 평화로운 환경하고는 거리가 먼 곳으로 가는 게 분명했다"(100).
(자세한 사연은 알 수 없지만) 2주 후면 끌려가 '그 버스'에 타야할 처지에 놓은 이 남자는 인생 최대의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생뚱맞게도 자신이 사귀던 다섯 명의 여자와 이별을 할 기회를 달라고 "필사적으로, 한심할 정도로 애절하게"(24) 매달린다. 
 

"나는 오지 않는 사람을 계속 기다리는 쓸쓸함이 뭔지 잘 알아"(25).
남자가 이렇게 다섯 명의 여자와 이별을 하기 위해 필사적인 것은 자신의 트라우마 때문이다. 남자는 어린 시절, '자반을 사올게' 하고 나간 엄마가 도무지 돌아오지 않아 어머니 걱정을 하며 문을 열었다 닫았다 안절부절 하지 못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한 남자가 다섯 여자를 동시에 사귄다는 것에 대해서는 별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던 이 남자가, 다시 돌아오지 못할 자신을 기다리는 여자들을 걱정한다.
 

"사람한테 상처를 주는 것보다 더 즐거운 일이 있으면 말해봐"(99).
다섯 명의 여자와 이별식을 하려는 이 남자(호시노 가즈히코)와 동행하는 여자가 있다. '그 버스'에 남자를 태우기 위해 감시를 하고 있는 그녀는 키 180센티미터, 몸무게 180킬로의 거구 '마유미'이다. 외모 때문에 두려움의 대상이 되거나, 경멸을 받거나, 소외를 받아왔던(18), 마유미가 호시노 가즈히코의 다섯 번의 이별식을 허락한 이유는 단 한 가지이다. 그녀는 "그저 단순히 다른 사람에게 굴욕을 느끼게 하거나, 절망을 갖게 하는, 혹은 무력감에 시달려 고통스럽게 하는 일을 좋아할 뿐이다"(218).

그리하여 다섯 여자를 동시에 사귀었지만 그녀들의 불안과 걱정(?)을 덜어주려 이별을 고하러 가는 남자와 단순히 그 여자들이 상처받는 모습을 즐기고 싶은 한 여자의 기묘한 동행이 시작된다. 잘 생겼다고는 할 수 없지만 개성있는 한 남자와,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온 땅이 출렁거리는 듯한 기분에 젖게 만드는 괴물 같은 여자가 다섯 명의 연인을 차례로 방문한다. 남자는 다정하게, 여자는 그 다정함에 소금을 팍팍 뿌려대며 '바이바이'를 한다. 
 

 



"블랙버드라는 말은 불길하다거나 불행을 뜻하는 것 같습니다. 바이바이, 블랙버드. 너와 헤어져 이제부터 행복해진다, 그런 얘기입니다"(325).

저자는 이 책의 의도를 이렇게 밝힌다. "불합리한 이별이지만, 억지로 웃고 바이바이,라고 말해버리는, 그러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습니다"(앞 날개 中에서). 그러나 작가의 의도는 정확하게 빗나갔다. 도저히 다섯 명의 여자를 동시에 사귈만큼 치밀해(?) 보이지 않는 이 남자, 어수룩하게만 봤는데, 아니다! 치명적이다! 이 남자는 여자를 감동시키는 법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덕으로 사람을 다스려야 한다고 생각한 유비가 덕이 몸에 배여 자신에게 바로 그 덕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던 것처럼, 이 남자는 자신에게 여자를 감동시키는 능력이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는, 그래서 더 치명적인 남자였던 것이다! 여자는 이런 남자와 억지로 '바이바이'를 해도, 결코 잊지는 못할 것이다. 

"그것도 거짓말이었어?"
"그것도 거짓말이었네."
"그것도 거짓말이었네!"
"설마 그것도 거짓말이었던 건 아니지?"
"그것도 거짓말이었네."

다섯 명의 여자는 마치 서로 짠 듯이 이렇게 말했다. 어느 날, 갑자기 괴물 같은 거구의 여성과 함께 나타난 남자는 바로 그 여자와 결혼을 하기 위해 이제 '바이바이'를 해야만 한다고 고한다. 함께 온 거구의 여성은 이 남자가 그 동안 다섯 명의 여자와 동시에 사귀고 있었다고 까발린다. 

이 예기치 못했던 이별 앞에서 다섯 명의 여성들은 각기 다른 반응을 나타내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남자는 그 마지막 이별의 순간에 다섯 여자에게 모두 '감동'을 선물하고 떠난다. 믿지 못할 남자가 '바이바이'를 하며 남겨놓은 감동, 여자들은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내 경험으로 비추어봤을 때, 그 남자와 보낸 지난 날들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두고 두고 '아쉬운'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우여곡절은 생략하고) 강의실에 앉아 "눈부시다"라고 혼잣말을 했는데, 한 남자가 조용히 일어나 창가로 가서 블라인드를 내리며 내 눈에 햇살이 비치는지 확인을 했다. 그 남자는 나에게 '더 이상 널 좋아하지 않을 거야'라고 바이바이를 고한 상태였고, 후에 내 친구와 사귀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난 그날의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가슴이 '뭉클'하다. 날 위해 햇살을 가려준 자상한 그 동작 하나가 과장되어 좋지 않은 다른 기억을 덮어버렸다.

이별을 하면,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 때문에 행복했던 나'를 기억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 다섯 명의 여자들은 다섯 여자와 동시에 사귀며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한다며 '바이바이'를 고한 남자가 아니라, 그 남자 때문에 행복했던 자신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 순간에 그 뭉클했던 행복감을 말이다. 

어수룩해 보이지만 그래서 더 치명적인 이 '호시노 가즈히코', 괴물처럼 보일 만큼 거구의 '마유미'는 아이러니 해서 더 매력적인 '레옹'을 닮았다. 무자비한 킬러이지만 우유를 마시며 화초를 키우는 천진난만한 레옹처럼, 무심해보이는 이 남자는 사실 달콤할 정도로 자상하고, 그녀의 사전에 '배려'라는 단어조차 없는 거침없는 이 여자는 알고보면 연한 순처럼 푸릇한 여린 속내를 지녔다.

요즘 드라마들도 너무 종잡을 수 없는'열린 결말'로 끝냈다가는 악플 세례를 받기 마련인데, <바이바이, 블랙버드>의 '열린 결말'도 도대체 종잡을 수가 없다. 이야기의 '끝'을 알 수 없어, "그 남자와 그 여자는 도대체 어떻게 되었을까?", "'그 버스'는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걸까?", "절대 바이바이를 하지 않겠다고 했던 여배우와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 건가?" 하는 궁금증이 아마도 두고두고 긴 여운을 남길 듯하다. 

 <바이바이, 블랙버드>는 일본 문학의 거장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인 <굿바이>의 오마주 격이라고 하는데, 다자이 오사무도 <굿바이>라는 작품도 잘 모르는 일단 패스. 골치 아픈 이야기는 사절하고, 소설은 무조건 재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독자라면 이 책이 딱이다. 말장난 같지만 산뜻(!)한 농담이, 그러나 불쾌하지 않게, 절대 가볍지 않게, 이야기를 유쾌하게 끌어나간다. 상황도, 캐릭터도 아이러니 해서 더 웃기고 재밌으며, 가볍게 읽히면서도 뭔가 잃어버린 '순수'를 찾아주는 듯한 청정해역에 몸과 마음을 푹 담궜다 나온 느낌이다. 여자를 동시에 다섯 명이나 사귄 남자의 별난 이별식에서 잃어버린 순수를 느끼다니! 이사카 고타로, 명성을 얻을 만하다. '꾼'은 '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계절 우리 차 - 계절별로 즐기는 우리 꽃차와 약차
이연자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차'(茶)라고 쓰고, '건강'이라고 읽는다,
마음까지 맑게 하는 우리 차 백과사전!

 
차(茶)는 내게 '여유로움'과 동의어이다. 차를 마신다는 것은 곧 여유롭다는 표시이니까. 다르게 표현하면, 여유가 있어야 즐길 수 있을 만큼 차는 내게 '번거로운' 것이기도 하다. 다도를 정식으로 배운 적은 없지만, 차는 꽤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것으로 각인되어 있다. 쉽게 접할 수 있는 티백(tea bag)으로 차를 마시기도 하지만, 어쩐지 짝퉁같고 괜히 반칙같은 느낌이 든다. 

얼마 전, 동료가 이웃에게 얻었다며 꽃잎을 동동 띄운 따끈한 차 한 잔을 건네주었다. 투명 유리잔에 우러난 꽃잎의 향과 빛깔이 은근하면서도 강렬했는데, 그것이 '목련꽃차'라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목련꽃을 차로 마실 수 있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코'에 관한 질환에 좋다며 봄에 꽃잎을 따서 말려둔 것을 나누어주었단다. "매연 많은 곳의 도심 목련꽃을 딴 거 아니야? 마셔도 돼?" 했더니, 살짝 눈을 흘긴다. 귀한 것을 주었는데도 못 알아보고 얄미운 말을 한다고 야단만 맞았다.

<사계절 우리 차>를 받아들고 제일 먼저 '목련꽃차'를 찾아보았는데, 동료에게 그런 말을 들을 만도 했다. 목련차에 대한 자료가 드물어 "우아하고 고고한 목련차를 마셔본 사람은 그리 흔치 않"을 것이라고 하는데(38), 그 귀한 목련차를 마셔보았으니 말이다. 꽃차에 대해 좀 아는 사람들은 "붉은 꽃을 피우는 자목련에는 독성이 있지 않을까" 걱정을 하기도 하는가 보다. 책의 저자는 "차로 마실 때는 독성이 우러나지 않으니 염려 놓아도 된다"고 일러준다. 


  




<사계절 우리 차>는 우리 차에 대한 백과사전이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로 알차게 구성되어 있다. 차에 관한 이야기, 차로 즐기는 꽃(다른 재료도 있다)에 대한 정보, 차의 효능, 차를 만들고 즐기는 방법까지, 책을 만든 정성과 노력과 애정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꼬박 10년하고도 두어 해 더" 걸린 원고와 사진이 책으로 나온 것이니, 다도의 정신으로 만든 책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사계절 우리 차> 덕분에 "흔히 접하는 것으로 유백색 꽃을 피우는 백목련은 중국이 고향이고, 제주도가 고향인 우리 목련이 순수 토종"이라는 것과, "우리 목련은 꽃 색이 하얗고 꽃잎도 아홉 장이다. 여섯 장인 백목련보다 세 장이 많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일본의 아이누족은 목련 껍질을 달여 차로 마신다는 기록이 있"고, "우리의 한의서에도, 진통과 소염, 두통, 치통에 도움이 되고 코와 관련된 각종 염증에도 특별히 효과가 있다"고 한다. "껍질에 있는 효능이 꽃이라고 없을 리 없다"는 대목이 좀 애매하기는 하지만, 한의원의 자문에 의하면 "목련차는 여자들의 자궁병에 좋다"고 하니 이제 목련꽃을 더 귀하게 대해야겠다. 동료는 말린 꽃잎을 뜨거운 물에 우려주었지만, <세계절 우리 차>는 생 꽃잎을 흐르는 물에 살짝 헹구고 꽃술을 뗀 다음 우려 먹으라고 권한다.

"근세 중국의 석학 임어당은 '차는 하늘이 내린 최고의 선물'이라고 극찬을 했다. 물질문명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는 지금에도 차는 4대 장수식품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고금을 막론하고 사람을 이롭게 한다는 한결같은 찬사로 우리는 약초의 뿌리를 달여도 차라고 했고, 잎을 우려 마셔도 차라 하고, 꽃을 띄워 마셔도 차라 했다. 심지어 커피까지 가배차라 했다"(27).

<사계절 우리 차>는 제목 그대로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동안 제철의 향과 맛과 효능을 그대로 즐길 수 있도록 우리 꽃차와 약차를 소개하고 있다. "개나리꽃차, 목련꽃차, 생강나무꽃차, 진달래꽃차, 복사꽃차, 제비꽃차, 민들레꽃차, 벚꽃차, 매발톱꽃차, 도라지차, 솔잎차, 햇차, 뽕잎차, 모시차, 검은콩차" 봄에 즐길 수 있는 차만 이 정도이다. 꽃차만 있는 것도 아니다. "도라지차, 검은콩차, 청매실차, 수박차, 메밀차, 보리차, 포도차, 다시마차, 무차, 모과차, 석류차, 생강차"도 있다. 이런 꽃도 차로 마실 수 있구나 감탄스러운 것 중에는 무궁화꽃이 가장 신기하고, 수박 겉껍질을 깎아내고 흰 속만 남겨서 차로 끓여먹는 수박차가 눈에 띈다.

 

  



 

 

<사계절 우리 차>에서 보고 그 매력에 푹 빠져들게 된 차가 있는데, 바로 "서민과 함께하는 영양차, 무차"이다. "가을에 나는 가을무를 두고 세간에서는 인삼이나 보약이라고 부른곤 한"단다(164). 그 효능을 보고 평소 무를 하찮게 대했던 나의 태도를 반성했다. 무는 "소화기능을 원활하게 하고", "공복에 마셔도 부담이 없고", "비타민B군과 비타민C 등의 영양소가 풍부하면서 만복감을 느낄 정도의 양을 먹어도 칼로리가 굉장히 적어 비만을 해소하는 데에 효과적인 식품"이며, "식이섬유와 수분이 풍부해 체내 노폐물의 배설을 촉진시키고 변비도 예방"하고, "기침과 천식에 놀라운 효과를 나타내 약이 없던 시절에는 무를 씹어 먹으면서 기침을 잠재우기도 했다"고 한다. 또 무는 재밌는 성질을 가졌는데, "원래 날것인 무는 소염작용을 해 몸을 차게 하지만 무에 열을 가해 조리하면 그 반대로 몸을 따뜻하게 한다. 예를 들면 생으로 먹는 무는 술 마신 다음날 취기로 인해 위에 열을 가지고 있는 경우, 염증을 막고 열을 식히는 작용을 한다. 반대로 어묵에 넣어 삶은 무는 몸을 덥혀준다." 그래서 "급성 타박상이나 염좌 등에는 무즙을 그대로 사용해 열을 식히고, 만성관절염 등에는 데운 무로 혈액순환을 촉진해 통증을 가라앉힌다. 때문에 무차는 여름내 땀이 빠져나와 차가워진 속을 달래주는 차라 할 수 있다." 게다가 구하기도 쉽고 값도 저렴한 장점까지 있으니 정말 사랑받아 마땅한 무다.


 



만들기도 간편해서, 
1. 무를 길이 2cm, 폭 1cm 크기로 썰어 전자레인지에 돌려 바싹 말린다.
2. 말린 무를 방앗간에서 볶아 온다. 뻥튀기처럼 튀겨도 된다.
3. 찻주전자에 조각내어 튀긴 무 3개를 넣고 뜨거운 물 150ml를 부어 2분간 우려 마신다.


환절기 목 건강에 좋은 차(도라지차), 우울증을 치료하는 차(원추리꽃차), 신장염 치료 약재로도 쓰이는 차(아까시꽃차), 피로회복과 노화방지에 효과가 있는 차(장미꽃차) 등 차를 마시는 습관은 그야말로 건강을 마시는 습관이다. 증세에 따라 마시면 좋은 차를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차의 효능만을 한 눈에 파악하도록 편집, 디자인을 해주었면 좋아겠다. <사계절 우리 차>는 "꽃차에 대한 자료가 빈약한 시절이어서 가까운 한의사에게 자문을 구하고, 꽃 박사에게 물어보고, <식물도감>, <동의보감> 등 고전들"을 스승 삼았으며, "만들어서 직접 마셔보고 그 느낌을 표현했다"고 한다. 저자는 "책에 실린 꽃차, 약차 대부분은 내 손으로 키운 꽃과 나무들로 인체실험을 마친 검증된 마실거리이니 안심해도 된다"고 일러준다.

<사계절 우리 차>를 마시려면 부지런해져야겠다. 귀찮은 생각도 들지만 시각을 달리하면 건강을 지켜주는 이렇게 좋은 차가 지천에 널려 있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 앞선다. 차보다는 커피에 익숙하고, 손내밀면 쉽게 잡히는 인공 쥬스가 더 가까이 있지만, 건강한 취미 하나 가져봐야겠다. 건강은 물론 일상까지 향긋해질 듯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