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 운동하는 목사 최성규의 고집
최성규 지음 / 두란노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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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교육 패러다임 제시, 삼심(신앙심, 효심, 애국심) 운동

 
'목사님'이 무슨 효운동이지 할 것이다. 최성규 목사님의 효운동은 1995년 온 나라를 경악에 빠뜨렸던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를 계기로 시작되었다. 그 콘크리트 더미에서 기적적으로 생환한 세 명의 젊은이가 있었다. 그 사건을 지켜보았던 최 목사님은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그 세 명의 젊은이를 지켜주셨다면, 그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했다. 각종 뉴스 보도 자료를 통해 목사님이 발견한 것은 그들이 모두 '효자, 효녀'였다는 것이다. 최 목사님은 그때 성경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성경에서 '부모 공경'(효)을 얼마나 강하게 명령하고 있는지를 발견하고 충격을 받으셨다. 하나님은 십계명을 통해 부모공경을 강하게 명령하시며, 효자, 효녀에게 장수의 축복은 물론 형통의 축복까지 약속하고 계셨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 20:12),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신 5:16). 신약에서 사도 바울은 부모 공경(효)을 "약속 있는 첫 계명"이라 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 6:1-3).

'효 운동'하는 목사 <최성규의 고집>은 이후 기독교 목사의 신분으로 고집스럽게 효 운동을 펼쳐온 17년 간의 기록이며, 그보다 앞서 효 운동하는 목사로 '최성규'라는 한 인물을 택하여 준비시키신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의 증언이며, 다음 세대를 위해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광야의 외침이다. 최성규 목사님이 발견한 성경적 효는 '부모 공경'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최성규 목사님은 하나님을 꼭 "하나님 아버지"라 부르는데, 성도는 먼저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하는 효자가 되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그리고 성도가 실천해야 할 하나님 아버지의 명령을 7가지로 정리해냈다. 성경의 명령을 크게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김 / 부모, 어른, 스승 공경 / 어린이, 청소년, 제자사랑 / 가족사랑 / 나라사랑 / 자연사랑, 환경보호 / 이웃사랑, 인류봉사"로 정리하여, 그것을 '7대 사명'이라 이름 붙였다. 그리고 이를 실천하는 운동이 바로 최성규 목사님이 말하는 '효(HYO, Harmony of Young & Old) 운동'인 것이다. 

최성규 목사님의 이러한 효 운동은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신앙심'과 뿌리를 같이 하고 있고, 나라를 향한 '애국심'으로 확장된다. <최성규의 고집>은 다음 세대를 위해 '삼심 교육'을 함께하자고 주문한다. 신앙심, 효심, 애국심이라고 하면 고루한 주제라고 생각할 사람들도 있겠지만, <최성규의 고집>을 읽고, 이것이야 말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앎)이 삶으로 확장되는 '옳은 길'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최성규의 고집>은 신앙은 생활과 분리될 수 없음을 잘 보여준다. 다윗의 삶을 통해 "현실에 뿌리 박은 영성"을 이야기했던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가 여기에도 적용된다. <최성규의 고집> 매우 "잘 읽히는 책"이다! 한 사람을 택하셔서 위대한 일을 이루어가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놀라운 섭리를 발견할 때는, 내 삶의 고난에도 숨어있는 뜻이 있겠구나 하는 위로가 넘친다. 고난과 아픔이 어떻게 사명으로 연결되는지 발견할 때는,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법에 전율이 인다. 최 목사님은 세계 제일의 교회인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교부국장까지 하신 분이 "최 목사, 가야겠네"라는 한마디에 순종하여 인천의 어둡고 습기찬 지하성전으로 가셨다(75-76). 엎드려 그곳으로 보낸 이유를 묻고 또 묻는 최 목사님에게 "33년 전을 기억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은 그야말로 전율이었다. 인천에 빚진 목숨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고, 그것을 지역목회로 이어지게 하신 하나님의 섭리가 놀랍다. 하나님 안에서 이유 없는 고난, 이유 없는 시간이란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절절히 깨닫는다. 

<최성규의 고집>에는 뜨거운 감동과 냉철한 비판 의식이 동시에 존재한다. 시어머니 때문에 홧병이 난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목욕탕에서 화해를 할 때는 나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최성규의 고집>은 삼심 운동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 이루고 계신 일, 이루어가실 일을 보여준다. 삼심 운동을 통해 개인과 가정과 공동체를 회복시키시고, 새롭게 하시고, 하모니를 이루시는 현장을 직접 목격하며, 이 시대에 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 교회가 감당해야 할 사명이 무엇인지 새롭게 깨달아진다. "중앙일보의 한 기자는 효의 원조를 자처해 온 중국에서 한국 성리학자도 아닌 목사가 현직 철학 전공자들을 상대로 효 강연을 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는 내용의 기사를 썼다"(198). <최성규의 고집>은 효에 대한 고정관념을 치워버린다. 이 책을 읽고 '효'를 매개로 한 선교 전략들이 활발하게 논의되기를 기대한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이 시대의 진정한 애국이 무엇인지 냉철한 시각으로 진지하게 접근하는 '성경적' 고민들이 일어나기를 소망한다. 

<최성규 고집>을 읽고 생각해보니, 삼심(신앙심, 효심, 애국심)을 품은 사람은 바로 "은혜를 아는 사람"이라는 깨달음이 생긴다.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를, 사람의 은혜를, 공동체의 은혜를 아는 사람으로 살자는 것이 바로 <최성규의 고집>이 말하는 효 운동이요, 삼심 운동이라 생각한다. 이것은  서구 신학의 '개인중심적'인 신앙생활에서 벗어나, 교회, 가정, 국가라는 공동체로 그 관심과 신앙 영역을 확장해가는 새로운 신학 패러다임이다. 성경적이면서도 동양적인 가치관이라 할 수 있겠다. 실제 삶의 현장에서 삼심 운동을 실천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국내 교육계와 군은 물론 세계적인 석학들과 신학자들이 최성규 목사님의 효와 삼심 운동에 관심을 갖는 이유가 이 때문이리라.

책을 읽고 나면 보통 "이 책은 누구에게 추천하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한다. <최성규의 고집>은 "모두"가 읽어야 할 책이라고 확신한다.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대로 살려는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고 있는 목회자, 차세대 교육을 위해 고민하는 모든 이,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 모두가 함께 읽어야 하는 책이고,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그만큼 재미있고 교훈적이며, 교회와 다음 세대를 위해 함께 고민해야 할 주요한 시사점을 던져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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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5
이반 투르게네프 지음, 이항재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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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문학이 서구를 향해 말을 걸기 시작하고 세계문학의 중심에 우뚝 서게 된 것은 톨스토이나 도스트옙스키가 아닌 바로 투르게네프의 펜 끝을 통해서였다"(317).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작가 '이반 투르게네프'와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작품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게 되었다. 옮긴이의 해설에 의하면, 이반 투르게네프는 "섬세한 서정적 문체와 인간 내면의 미묘한 움직임을 포착하는 시인의 마음과, 동시대의 사회, 정치적 현실을 지진계처럼 기록하는 사냥꾼의 눈을 겸비한 탁월한 작가"(317)라고 한다. <아버지와 아들>은 투르게네프의 걸작 중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며, 1940-70년대 러시아의 핵심적인 문제들이 완전히 예술로 승화된 작품이라 평한다. "아버지와 아들 세대의 갈등을 다룬 이 소설은 러시아 문학사에서 가장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킨 작품으로도 유명하다"(319-320).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버지 세대와 아들 세대의 갈등을 이룬 이 작품은 시골 농장의 지주인 '니콜라이 페트로비치 키르사노프'가 학사 학위를 받고 집으로 돌아오는 아들 '아르카디'를 애타게 기다리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아버지 니콜라이 페트로비치는 아들 아르카디와 함께하는 생활을 그리며 기대에 부풀지만, 그러한 아버지의 기대는 곧 실망과 좌절고 바뀌고 만다. 아르카디는 친구이자 스승처럼 따르는 '바자로프'와 함께 왔는데, 스스로를 '니힐리스트'라 칭하는 바자로프(와 아르카디)는 아버지 세대(니콜라이와 그의 형 파벨 페트로비치)와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우며 갈등하기 시작한다.

아버지 시대는 '니힐리스트'라 칭하는 아들 세대를 '아무것도 인정하지 않는 사람', '아무것도 존경하지 않는 사람'이라 비난하고, 아들 세대는 자신들을 "모든 것을 비판적 관점에서 보는 사람"이라 변호한다. "니힐리스트는 어떤 권위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아무리 주위에서 존경받는 원칙이라고 해도 그 원칙을 신앙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입니다"(39).

"철학과 예술을 삶의 금과옥조로 삼고 있는" 아버지 세대는 일체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권위를 믿지 않는 아들 세대에게 "어디 그 공허 속에서, 그 진공 속에서 너희들이 어떻게 존재하나 두고 보자"(40)고 벼르고, "자연과학을 비롯한 실용학문을 삶의 지표로 삼고 있는" 아들 세대는 이러한 아버지 세대를 "구식 낭만주의자들"(31)이라고 경멸한다.

아들(아르카디)은 어느새 "아버지에게 훈시 같은 것을 하고 있는"(35) 자신을 깨닫고, 아버지(니콜라이)는 어느새 늙고 낡은 세대가 되어버린 자신을 깨닫고 쓸쓸해진다. "처음으로 그는 자신과 아들 사이의 간격을 분명히 깨달았다. 그리고 날이 갈수록 그 간격이 점점 더 커지리라는 걸 예감했다. 이렇게 되고 보니 그가 겨울에 페테르부르크에서 며칠씩 최신 서적들을 읽었던 것도 젊은이들의 대화에 귀 기울이곤 했던 것도 헛된 일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열띤 논의에 자기의 말 한마디를 끼워놓고는 즐거워하던 것도 헛된 일이었다"(90).

재밌는 것은 오만할 정도로 자신만만하고, 지주 귀족 계급의 흔적을 가진 구세대를 마음껏 경멸하며, 일체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아들 세대의 대표 '바자로프'를 바라보는 작가 '이반 투르게네프'의 시선이다.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급진적 젊은이의 패기와 그 대단한 우월성이 '생'(生)이라는 커다란 수레바퀴와 함께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나아가며, 아버지 세대의 젊음과 같이 순식간에 사라진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거부하고 부정하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에 휩싸여 자신의 마음 하나 제어하지 못하고, 의사인 그가 전염병에 감염되어 힘 없이 사그라든다. 투르게네프는 이 작품에서 '바자로프'를 조롱하고 있다는 의심이 든다. "아아! 경멸하듯이 어깨를 으쓱하던, 농군들과 얼마든지 이야기를 할 줄 안다던 바자로프(파벨 페트로비치와 논쟁했을 때 그가 자랑하던 점이다), 그 자신만만한 바자로프도 농군들이 볼 때는 한낱 광대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바자로프는 이것을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290).

<아버지와 아들>을 읽으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아들 세대와의 거리를 느끼며 '구세대'가 되어버린 아버지의 쓸쓸한 탄식이었고, 가장 재미 있었던 부분은 남녀 사이를 오가는 불안한 사랑의 감정, 그 미묘한 순간의 포착이었고(사랑일, 가장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던 것은 작가의 손에 의해 결정된 '바자로프'의 운명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가였다.

고대동굴벽화에도 "요즘 젊은이들은 버릇이 없다"는 글이 적혀 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듯이, 아버지 세대와 아들 세대의 갈등은 오래된 주제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근대화라는 대격변을 겪었던 19세기만큼 그러한 갈등이 두드러진 세대도 없었을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은 19세기 사회정치적 현실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면서도, 그러한 소용돌이 속에 살아가는 '개인'의 삶과 감정과 갈등을 상징적이면서도 사실적으로 밀착하여 보여준다. '고전'의 냄새가 물씬 나지만, 우리에게는 낯선 어투와 철학적 대화에도 불구하고 재미있게 잘 읽히는 책이다.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쟁쟁한 작가이며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니 후회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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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한민국의 마지막 선비다 - 해산우고
이은춘 지음 / 자연과인문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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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장록'이 무엇인지 이 책을 통해 처음 배웠다. 몇몇 인터넷 검색엔진으로 뜻을 찾아보려 하였으나 검색결과가 없었다. 그리 오래전 풍습도 아닌데 문화와 함께 말까지 사라졌가 보다. 만장은 "고인의 행적을 기리고 슬픔을 나누는 글귀를 써서 상여 뒤에 따라 붙는 깃발"이고, 이런 만장을 작은 글씨로 베껴 써서 책자로 역은 만장록은 "고인의 인생 행적을 제 삼자가 평가하는" 귀한 자료가 될 수 있다. <나는 대한민국의 마지막 선비다>는 퇴계학파인 한강 정구의 후학으로 성리학을 공부한 해산 이은춘 공의 만장록을 공개한 것이다. 1966년 한 시골 선비가 생을 마감했을 때, 주변의 유림들이 몰려 들어 떠나는 자를 위한 만시를 지었고, 그렇게 지어진 이별의 시를 비단이나 종이에 붓글로 써서 만장으로 만들었다. 당시 상여가 나갈 때 뒤에 따라 붙은 만장 행렬만 오백 미터가 넘었다고 한다.

해산 이은춘 공의 만장록을 공개하는 증손 이봉수 님은 이런 말을 남겼다. "디지털 시대일수록 우리는 우리 민족의 고유한 정신문화를 생각해 봐야 한다. 삶과 죽음을 생각하면서 하루하루를 살고, 죽는 날에도 멀리서 친구가 찾아와 이별의 시 한 수 적어 보내는 여유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먼 옛날의 이야기가 아니다. 불과 50년 전 이 땅에는 이런 문화가 있었다."

<나는 대한민국의 마지막 선비다>는 우리 시대의 마지막 선비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기념하는 지인들의 증언이라 할 수 있다. 예전 TV의 한 예능 프로에서 연예인의 '가상 장례식'이라는 컨셉의 프로그램을 방영한 적이 있다. 그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나의 친구들은, 나의 지인들은 나의 장례식에서 어떻게 나를 추억할까, 내게 어떤 이별의 말을 건넬까 무척 궁금해지곤 했다. 이 시대의 마지막 선비로 살다가신 해산 이은총 공을 기리며 문하생들과 친지들이 남긴 이별의 시는 '시골 선비'의 소박하고 성실했던 삶을 보여준다.


부모님을 지극히 모시고 농사에도 힘을 쓰며
가는 곳마다 사람 대함에 스스로 겸손하네.
마음은 항상 대쪽 같아 바람과 서리 견뎌내고
두터운 덕은 꽃잎 속 비와 이슬로 무르익었다.

깊은 정 맺은 처세 멀고 가까움 없게 하고
본업을 간직한 채 춘하추동 있게 하네.
일가 모이는 정자 지어 조상도 받들면서
오가가는 손님 친구 매번 만나도 기뻐하도다(62).


한시로 기록되고 그것을 번역한 것이여서 서사를 읽는 것보다 이해가 더디지만, 한시를 읽는 맛과 멋이 있다. 대한민국 마지막 선비의 삶은 지극히 평범한 것이었지만, 이별하는 사람들의 노래는 그것을 숭고하게 기억한다. 성실하게 땀흘리고, 사람과 자연을 사랑하며, 청빈하고 검약한 생활을 추구했던 선비정신과 삶이야말로 얼마나 숭고한 것인가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벗을 떠나보내는 슬픔을 경건한 이별의 시로 표현하는 우리 조상님들의 지혜가 참으로 멋스럽고 아름답다. 고인을 이보다 더 아름답게, 숭고하게 보내줄 수 있는 다른 방식이 또 있을까. 사는 일에도, 죽는 일에도, 죽은 이를 보내는 일에도 예를 다하는 진실함이 지켜보는 이의 마음을 경건하게 한다. 증조부의 만장록을 공개하는 증손자는 "만장록을 읽어 본 사람은 인생을 함부로 살 수 없다"고 말한다. 평범하고 소박했지만 먼지 하나 끼일 자리 없이 투명했고 한 점 부끄러움 없었던 한 선비의 삶을 돌아보며, 함부로 살지 말자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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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가는가 - 최민식의 포토에세이
최민식 지음 / 하다(HadA)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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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50년 동안 인간의 모습을 찍어 왔다.
언제나 내 사진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있다.
나는 높은 사람이나 가난한 사람 모두 동등한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中에서, 15)

다큐멘터리 사진가 최민식 선생님의 포토에세이에는 '인간'이 있다. 독학으로 사진을 연구하며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인간'을 찍기 시작했다고 한다. 최민식 선생님은 "진실만이 사진이다"(259)는 글에서 직접 자신의 사진을 이렇게 설명하신다. "내 사진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은 현실의 생활형태 속에, 즉 인간 생활 속에 존재한다. 그렇기에 나는 늘 길 위에서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이 살아가는 삶의 현장 속에 직접 뛰어 들어가 그들과 함께 생활하고 느끼면서 그들의 어려움을 알리며, 그 안에 숨겨진 아름다움을 발견해내어 그것을 표출하는 데 주력해왔다."<사람은 무엇으로 가는가>에는 흑백사진도 있고, 컬러사진도 있고, 노인도 있고, 젊은이도 있고, 어린이도 있고, 사람도 있고, 자연도 있다. 그런데 선생님의 사진에는 "연출이 없다." 모두 길 위에서 만난 사람이고 얼굴 표정과 삶의 모습들이다. 선생님은 이제 여든 셋의 노인이 되셨지만, 여전히 거리에서, 골목에서 쉼 없이 흑백필름으로 사진을 창작하는 데 바쁜 열정적이고, 성실한 삶을 살고 계시다.

 
인간은 부유해지거나 위대해질 의무는 없다. 현명해질 의무도 없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성실할 의무가 있다.
(사람으로 산다는 것 中에서, 11)

평생을 길 위에서 사람을 찍으며 살아온 여든 셋의 사진작가 할아버지가 '사람으로 산다는 것'에 대한 생각을 들려주신다. 사진과 글마다 다음 세대를 위해 무엇을 남겨줄 것인가를 깊이 고민하신 흔적이 보인다. 여든 셋 사진작가 할아버지의 눈을 통해 바라본 세상은 그리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삶이란 그리 녹녹한 것이 아니고, 인생이란 그리 즐거운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은 무엇으로 가는가>가 불러일으키는 감정은 고통 당하는 이웃을 돌아보게 하는 긍휼이요, 우는 자와 함께 우는 공감이요, 고단한 자에게 손을 내밀어주는 동정이다. 생의 빛나는 환희는 바로 그 속에서 발견된다. 잊혀져가는 나눔의 가치, 진실한 우정의 소중함, 소박한 삶의 행복, 자연의 위대함을 깨닫는 순간, 우리 마음속에 숨어 있는 경박한 계산기 따위는 치워버리게 되리라.

 
무엇인가를 얻기만 하는 사람은 가난하다.
그러나 씨를 뿌리는 사람은 부자이다. - 노자 -
(명언(名言)을 읽자 中에서, 71)

여든 셋 사진작가 할아버지가 다음 세대를 위해 <사람은 무엇으로 가는가>라는 씨 하나를 남겨주셨다. 한 권의 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만 권의 책을 읽어야 한다고 말했던 톨스토이(43)처럼, 마치 이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 평생을 살아오신 듯 깨달음의 순간들을 기록으로 남기셨다. 사랑하는 사람은 잔소리가 많다고 했던가. <사람은 무엇으로 가는가>는 사랑의 잔소리 같은 책이다. 우정, 나눔, 실천, 정직, 독서 습관, 성실, 효, 자선, 아름다움, 그것이 옳다는 것을 알면서도 각박한 세상살이에 밀려 자꾸 잊게 되는, 옆으로 밀어놓게 되는, 생의 진정한 가치들을 놓치지 말라는 간곡한 당부이다. 

 
사랑에 빠진 사람의 눈에는 길거리의 휴지 조각도,
발 디딜 틈 없는 거리의 인파까지도 아름답게 보인다.
1년 365일, 사랑에 빠진 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내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시골의 달빛에서, 어린 아이의 눈빛에서, 바람에 떨어지는 잎사귀에서 감동받을 수 있는 삶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풍요롭다.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한다 中에서, 114)

여든 셋 사진작가 할아버지는 "우울과 불안, 영혼의 결핍에 허덕이는 현대인들을 구원할 유일한 길은 결국 쓰레기 더미에서도 아름다움을 읽어낼 수 있는 남다른 눈, 즉 심미안에 있다"(114)고 말씀하신다. 그대, 쓰레기 더미에서도 아름다움을 읽어낼 수 있는 심미안을 가졌는가? 이 책은 "한 권의 노트, 한 통의 문자 메시지, 한 소절의 음악"에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위로받고 감동받을 수 있는 묵상 노트이다. 나를 둘러싼 평범한 세계에서 읽어낸 진실한 아름다움에 대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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컵케이크 & 디저트 - 하루에 하나씩 달콤한 습관
김정은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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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지는 시간, 컵케이크&디저트와 함께!
 

선물을 해야 할 때마다 뭔가 색다르면서도 실용적이고 정성과 감동이 느껴지는 것이 없을까 늘 고민을 한다. 그런데 최근 직접 만든 쿠키와 브라우닝과 컵케이크를 선물해주신 분이 계셨는데, 지켜보는 사람들까지 그 예쁜 모양과 정성에 감탄사를 연발했다. 주는 사람의 따뜻한 마음까지 고스란히 전달되는 정말 특별한 선물이었다. 특별한 날, 특별한 분께 드리는, 특별한 선물로 '컵케이크' 몇 가지를 필살기로 익혀두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중학교 때, 선생님 심부름으로 번화한 사거리 제과점까지 버스를 타고 나가 '조각 케이크'를 몇 번 사온 적이 있다. 처음 본 조각 케이크는 큰 케이크를 그냥 잘라놓은 것이라 생각했지만, 작고 귀여운 모양 때문인지 큰 것보다 더 '귀하게' 느껴지는 특별하고 묘한 매력이 있었다. 그런데 컵케이크는 좀 더 색다르다. '재미'가 느껴진다고나 할까. 초등학교 앞에서 사 먹었던 컵 떡볶이처럼 '재미'있고, '특별'하다.

인터넷으로 한 두 가지 레시피를 다운받지 않고 <컵케이크&디저트>와 같이 전문 레시피 책자를 보는 이유는, 단순히 만드는 법만을 배우는 것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전문 책자는 기본기를 탄탄하게 익히면서도, 재료의 활용과 장식 노하우를 익히면 일반적인 음식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비법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컵케이크&디저트> 역시 홈베이킹 기본 재료와 기본 도구에서부터, 6가지 케이크 기본 반죽, 5가지 케이크 기본 장식을 먼저 익히도록 도와준다.

 

 

<컵케이크&디저트>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재료이다. 토마토, 버섯, 잔멸치, 유자청, 감자, 시금치, 흑임자 등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재료들로, 건강을 생각하면서도 컵케이크 재료에 대한 고정 관념을 깨고 재료 활용 범위를 확장했다. 똑같은 재료를 사용하면서도 독창적이고 멋진 모양을 창조해내고, 일반인들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재료를 사용해 맛의 조화를 만들어내는 솜씨가 전문가는 역시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해준다. 특별한 컵케이크를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장식' 노하우는 맛있는 행복에 보는 즐거움까지 더해준다. 앙증맞은 '당근케이크', 재료의 기발함에 웃음짓게 되는 '잔멸치컵케이크', 창가에 놓아두고 싶을 정도로 진짜 화분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미니화분컵케이크'는 꼭 도전해보고 싶은 컵케이크이다. 

 




  

 

<컵케이크&디저트>는 티 한 잔과 즐기는 컵케이크, 건강한 재료로 맛있게 만든 홈메이드 영양 케이크, 특별한 날을 위한 스페셜 케이크와 함께 '버라이어티 디저트'로 달콤한 마침표를 찍는데, 디저트가 정말 버라이어티하다. 달콤한 향기와 사치스럽게 느껴질 만큼 예쁜 <컵케이크&디저트>를 보고 있자니, 그저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기분이다. 이런 것이 삶의 여유이고, 생활의 행복이구나 하는 감탄과 함께! (좀 오버를 하자면) 지구촌에는 아직 한 끼 식사도 배불리 하지 못하는 이웃들이 많아 미안해지지만, 한편으로는 <컵케이크&디저트>를 즐기며 살 수 있는 우리는 얼마나 축복받은 사람들인가 하는 감사까지 차오른다. (자신은 없지만) 일단은 이 봄이 가기 전에 '미니화분컵케이크'를 익혀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깜짝 놀래켜주며 행복을 선물하는 달콤한 꿈을 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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