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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살롱 공화국 ㅣ 인사 갈마들 총서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1년 3월
평점 :
부패와 향락, 패거리의 요새, 밀실접대 65년의 기록
"칸막이 현상의 이익을 쟁취하고자 하는 게 접대고, 그런 접대의 무대가 룸살롱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한국은 명실상부한 '접대 공화국'이다. '접대 경제'의 규모가 너무 커져 '접대 규제'는 민생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 갈수록 포장술이 세련되어져 '인맥'이니 '인적 네트워크'니 하는 고상한 합법적 매커니즘의 길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룸살롱은 한국 사회의 또 다른 얼굴인 셈이다"(270-271).
강준만 교수님이 '지하경제 밀실권력의 리얼 분석'이라는 <룸살롱 공화국>을 내놓았다. 이 시대 최고의 논객으로 인정받는 강준만 교수님의 책이라 기대치가 높았다. 그러나 '리얼'은 있는데 '분석'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할까. '맺음말' 정도가 교수님의 의견을 담은 분석이고, 나머지 8장은 말그대로 "밀실접대 65년의 기록"이다. 강준만 교수님의 날카로운 '목소리'를 듣기 원했는데, 아쉽게도 '신문'을 읽어주셨다. 그러나 부패와 향락, 패거리의 요새가 되고 있는 '룸살롱'에 스포트 라이트를 들이댔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찾아지는 책이다. 이 책을 계기로 '관행'으로 무마되어 버리고 마는 '밀실접대'에 대한 비판적 관심이 환기되고, 정화를 위한 사회적 담론이 형성되기를 기대해본다.
<룸살롱 공화국>은 류승완 감독의 영화 '부당거래'와 짝을 이루는 책이다. 밀실거래 65년의 기록을 읽어나가자니 '부당거래'가 이루어지는 <룸살롱(요정) 공화국>의 질긴 역사에 이젠 분노가 아니라 한숨이 쉬어진다.
<룸살롱 공화국>에는 접대하는 남자, 접대로 소비되는 여자, 접대받는 남자가 있다. 롬살롱의 성황은 "중요한 고객이나 사업상 파트너, 계약 당사자 등을 접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접대부가 나오는 고급 룸살롱을 찾아야 한다는 우리 사회의 잘못된 남성중심 접대문화"(119-120)가 그 축을 이룬다. 이렇게 탄생한 한국의 밤문화는 부패와 향략, 부당거래의 온상이 되고 있다. "실력보다 인맥이 중시되며, 술과 여자가 동원되는 향응이 있어야만 비즈니스가 되는 한국적 밤문화 말이다. 물론 이는 법, 제도 이전에 관행과 문화의 문제지만, 그래서 그만큼 더욱 강고하다.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는 남성적인 접대문화, 밤문화가 여전히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는 한, 성적 서비스의 수단으로 착취되고 꺾이는 '나약하고 힘없는' 제2, 제3의 장자연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양성희, <중앙일보>, 197).
그러나 <룸살롱 공화국>의 보다 큰 문제는 '퇴폐적인 향략의 문화'가 아니라, "검은 발톱으로 대한민국을 찍어 누르고 있는 무소불위 포식자"(199)들이 그곳에서 패거리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룸살롱은 술과 더불어 다른 것이, '놀이'가 추가된다는 데에 그 매력이 있다. (...) 술집의 존립 관건은 바로 인기 있는 아가씨를 확보하는 것이다. '놀이'의 핵심이 무엇이건 본론은 그것을 매개로 해서 이루어지는 밀실대화와 그에 따른 '유사 친분'이다. 룸살롱의 물리적 본질은 '칸막이'가 아닌가. 칸막이는 패거리 만들기의 필수 요소이며, 패거리주의는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 핵이다. 그걸 이해하면 지역갈등에서부터 유흥문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수수께끼가 풀린다"(264).
<룸살롱 공화국>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가 가장 풍부한 '맺음말'에 보면, 한국 특유의 음주문화와 조직의 공동체와, 평가 시스템의 취약성이 '룸살롱'이라는 한국 사회의 악의 축을 양산해낸다고 분석한다. "조세 투명성이 낮으니, 지하경제만 번창한다. 대표적인 게 룸살롱이다. 그리고 공권력이 공정하게 집행되지 않으니, 다들 권력층에 줄을 대려고만 한다. 이들이 끈끈하게 어울리는 곳은, 역시 룸살롱 같은 유흥업소다. 마음에서 우러난 교제가 아닌, 억지 친분을 쌓으려면 술과 접대부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끼지 폭탄주를 주고받는 횟수가 잦아질수록 법과 질서는 기득권층에게만 유리해진다"(김정운, 263).
88서울올림픽은 '룸살롱올림픽'이기도 했다(63)는 보고는 충격이었다. 철없던 시절 '올림픽 개최국'이라는 자부심으로 활활 타올랐던 나의 애국심이 부끄럽다. 올림픽 개최국이라는 나라가 어떻게 그렇게 미개할 수 있었나. 대한민국을 지탱하고 있는 경제와 권력의 뿌리가 룸살롱의 양분으로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면 그것은 이미 썩은 뿌리일 것이다. 달콤한 열매 하나를 위해 그 뿌리가 질긴 생명력을 이어가기를 빌어야 하는 것일까, 열매뿐만 아니라 나무까지 잃더라도 뿌리를 도려내야 하는 것일까. 해외토픽에 보도되는 '나무인간'처럼 우리는 이미 썩은 나무와 한 몸을 이루어 썩어들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일단은, 당연한 것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도록, <룸살롱 공화국>이 대한민국 모두를 '불편'하게 만들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