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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가의 장수비결
정지천 지음 / 토트 / 2011년 1월
평점 :
신장의 정기를 보존하는 것이 비결!
"늙기도 서러운데 짐을 조차 지실까"라는 싯구가 한숨과 함께 토해질 때가 있다. 부모님이 들으면 야단하시겠지만, '예전' 같지 않은 몸의 변화를 느낄 때마다 늙는 서러움이 이런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섬뜩해질 때가 있다. 인간의 평균 수명이 연장된 것은 분명 축복이겠지만, 이율배반적이게도 노년의 경험은 그다지 행복한 것이 못되는 것 같다. 오래 산다는 것은 늙는다는 것이고, 늙는다는 것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늙을수록 어린 아이처럼 돌봐줄 사람이 필요한데 자녀의 도움이 없으면 그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해야 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고, 노화되는 몸은 여기 저기 적신호가 켜지고, 외로움과 소외감이라는 적과도 더욱 치열하게 싸우며 살아야 하는 것이 노년의 그림자이다. 인류의 소원은 단순한 생명 연장이 아니라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 사는 것이 되었고, 이제 사람들의 관심은 몸과 마음이 젊음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에 모아지고 있다.
<명문가의 장수비결>은 건강 프로그램 방송 패널로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한의사인 저자가 명문가의 생활방식에서 장수비결을 찾아본 책이다. 저자는 '장수비결'을 "노화를 조절하거나 예방할 수 있는 방법", 다시 말해 "노화로 인해 발생하는 질병을 치료하고 노화를 억제할 수 있는 처방"이라고 정의한다. 단순히 장수비결이라고 할 때보다 '노화를 억제하는 처방'이라고 하는 구체적인 설명에 귀가 번쩍 뜨인다. 저자는 평균 수명이 40세가 되지 않았던 시절에 보기 드물게 장수의 복을 누린 조선 명문가들의 생활상을 탐색한다. 저자가 명문가에 주목하는 이유는 수명이 짧았던 시절에 "자손이 번성하며 대대로 장수를 누려운 명문 집안이라면, 신장의 정기가 강한 체질을 대물림해 왔을 것"이라 짐작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명문가에 '신장의 정기를 보존할 수 있는 비결이 있었을 것'이라 추측한다.
저자는 장수비결을 다른 말로 '신장의 정기'라고 설명한다. "신장의 정기는 원기의 근본으로써 인체의 생장, 발육, 생식, 노화의 모든 과정에 결정적인 작용을 하고 있다"(6). 우리 몸의 멀티플레이어인 신장은 인체 전반에 걸쳐 영향을 끼치는데, 신장의 정기가 노화 억제에 직접적인 관련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한의학에서 신장은 콩팥뿐만 아니라, 부신, 고환을 포함한 비뇨생식기 전부와 성 호르몬을 비롯한 각종 호르몬을 모두 합한 개념이다. 그래서 방광, 뇌, 허리, 생식기, 뼈, 치아, 귀, 머리카락 등까지 신장의 정기를 받아야만 정상적으로 기능을 유지하는 부위를 '신장 계통'으로 분류한다"(12). 저자가 <명문가의 장수비결>에서 찾고자 한 것은 한마디로 신장의 정기를 보존할 수 있는 비결이다.
<명문가의 장수비결>은 총2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1부에서는 명문가로 이름을 날리면서도 장수했던 이익, 정약용, 이정구, 조헌, 김정희, 이항복, 박지원, 서유구, 윤선도, 이황, 정온, 송시열, 송준길, 허목, 허엽의 독특한 생활 습관과 그 집안의 풍습을 살피며 신장의 정기를 보존하는 비결을 찾아본다. 여기에 보너스 격으로 '왕과 영웅들의 장수비결'을 탐색하는 제2부가 첨가되어 있다.
<명문가의 장수비결>이 전하는 노하우는 소식하는 식습관, '콩식품, 녹차, 약주와 고구마, 고사리, 구기자'와 같은 음식은 물론, 종교생활, 노동, 자연과 음악, 생활습관까지 그 범위가 넓고 다양하다. 그러나 건강에 관심 있는 독자에게는 '특별하게' 색다른 비결은 없을 듯하다. 개인적으로는 노화 방지와 동안에 놀라운 효능이 있다는 '구기자'에 관심이 갔고, 마음을 다스리는 건강체조라 할 수 있는 퇴계 이황 선생님의 '활인심방 건강법'이 흥미로웠다. 활인심방 건강법은 "머리를 자주 빗고 이빨을 소리 나게 부딪치며 이마와 콧잔등을 자주 문지른다는 것"(186)이 특징이다. <명문가의 장수비결>은 명문가의 '(장수비결) 이야기' 정도로 생각하고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배부른'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반성이 든다. 평균 수명이 40이 되지 않았던 시절을 생각하면, 부르게 한번 먹어보는 것이 소원이던 시절을 생각하면, '절제'를 통해 건강을 유지했던 선인들의 지혜를 생각하면, 우리는 지금 얼마나 배부른 소리를 하고 있는가. 건강한 생활을 하려면 '탐욕'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제는 건강에 대해서도 무서운 탐욕을 보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대식민족'이라 불렸다는 것이다. "실제로 조선은 동북아 3국 중에서 가장 밥을 많이 먹는 나라였기에 대식국으로 불리었다고 한다. 다른 나라에서 하루 먹을 양식을 한 끼에 다 먹었다는 것이다"(37). 신기하기도 하고 믿기지 않기도 하다. <명문가의 장수비결>이 알려주는 중요한 사실 중 하나는 청빈하고 검소하게 살아 청백리에 선정된 사람들이 대부분 오래 살았다는 것이다. 성호 이익 선생은 "기름진 음식을 배불리 먹고 운동을 하지 않던 벼슬아치들과는 달랐기에" 장수할 수 있었고, 연안 이씨 가문은 "이름을 얻는데 넘치지 말고 먹고 입고 사는데 넘치지 않도록" 계일정이라는 지혜를 전수했고, 연암 박지원 선생은 빈둥거림으로 충분한 휴식을 누렸기에 장수할 수 있었다고 전한다.
저자는 <명문가의 장수비결>을 정리하며, 예로부터 전해져 온 무병장수를 위한 건강법을 소개한다. 바로 '양생법'이다. "양생법의 범위는 매우 넓은데 크게 나누어보면 음식, 운동, 정신, 방상(성생활), 기거(수면, 휴식, 노동), 환경, 계절, 기공 양생법 등이 있다. 그런데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정신 양생이다"(343). 다시 말해, 무병장수를 원한다면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하고, 마음 건강의 달인이자 자기 절제의 도사였던 분들을 본받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귀양을 다녀온 선비 중에 장수한 분이 많았다는 통계 결과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건강하게 오래 살기 위해 좋다는 것은 무엇이든 가리지 않는 탐욕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지혜와 절제하는 생활습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