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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벗어던지기 - 교회에서 절대 가르쳐주지 않는 성경 공부
블루칼라 지음 / 미담사 / 2010년 12월
평점 :
<신 벗어던지기>는 수십 년간 교회를 다닌 교인이었다가 무신론자가 되기까지, 신(神)을 벗어던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밝힌 책이다. 자신의 주장을 근거로 '무신론'을 전파하고 싶어 하는 저자를 보니, '전도'를 하려는 것이 인간의 습성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블루칼라'라는 닉네임을 사용하고 있는 저자는 자신은 안티 기독교인이 아니라, 무신론자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니까 '불루칼라'가 부정하는 것은 기독교의 신만이 아니라, 모든 종교의 신이다. 이 책을 통해 그가 의도하는 것은 '신이 주는 죄책감', '죽음 이후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에 억눌린' 모든 종교인의 해방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수십 년간 꽤 열정적으로(?) 교회를 다닌 탓에 다른 종교의 경전보다 기독교의 경전 내용을 많이 알기 때문에 기독교 교리를 비판하고 있다고 밝힌다. 그러나 이러한 분명한 입장 표명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안티 기독교적인 성향을 벗어날 수 없으며, 안티 기독교 서적으로 읽힐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기독교 신자이지만 기독교를 변증하고, 반박하기 위해 이 책을 읽은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책의 첫 페이지에서부터 논박의 의지가 끓어오르게 만든 것은 사실이다. 저자는 다른 종교를 인정하지 않으며 학살을 일삼는 기독교의 '유일신 사상'을 비난하며, 그 근거의 하나로 성경의 출애굽기 32장 사건을 제시한다. 여기서 저자는 시내산에 올라간 모세에게 소식이 없자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버리고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새로운 신"으로 섬겼다고 해석한다. 그리고 이 때문에 학살을 명령했다고. 그러나 신학적 지식이 없어도 이 본문을 주의 깊게 읽는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버리고 새로운 신을 섬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방신이나 우상을 섬기기 위해 금송아지 형상을 만든 것이 아니라, 자신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의 형상'을 만들어낸 것이다(출 32:4,5). 그들은 자신들의 불안을 떨쳐내기 위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아니라 보이는 하나님이 필요했고,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닌 "자신들을 위하여"(출 32:1,8) 예배 행위를 했다. 그러니까 이 본문을 다른 종교인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로 해석하는 것은 명백한 오역이며, 숨은 의미는 고사하고 눈에 보이는 문장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는 독해력 수준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주장이 전혀 근거가 없는 말은 아니라고 해도, 주장을 뒷받침할 논거의 기초에서 이러한 오류가 발생할 만큼 부실하다면 진지한 대화를 이어가기가 어렵다. 논거가 부실한 한 주장은 억지 주장이 될 수밖에 없다.
반박을 하려고 들면 끝이 없을 것이다. 내가 이 책에 관심을 가진 것은, 무신론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그 '이유'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가 신(神)을 벗어던진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정리된다. 하나는 자신(현대인)의 보편적인 윤리와 상식, 가치관에 비추어 용납될 수 없는 가르침(성경)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무례하고 폭력적이기까지 한 종교인들(특히 기독교인들) 탓이다. 모순투성이로 보이는 성경의 가르침 때문에 무신론자가 되었다고 하면, 다른 종교의 신들은 좀 억울한 면도 있을 듯하다. 사실 저자가 성경을 문제 삼고 비판하는 수준은 좀 실망스럽다. 이보다는 훨씬 예리하고 그럴 듯한 이유를 기대했는데, 진지한 성찰은 고사하고 사고의 깊이마저 없는 것이, 에덴동산에 선악과를 놓아둔 것부터가 잘못된 것 아니냐고 질문하는 초등학생적 논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극히 상식 수준의 비판이라고? 조금만 주의 깊게 살펴보아도 우리는 우리의 상식이 얼마나 불완전한 것인지 금방 알 수 있다. 국가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을 만큼 심각한 저출산의 위기를 겪고 있는 우리는, 불과 몇 십년 전까지만 해도 인구폭발을 걱정하여 "아들, 딸 구별 말고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 했다. 그것이 그때 그 문제에 대한 상식 수준의 해법이었다.
저자가 제기한 문제들은, 교회가 먼저 귀기울여 듣고, 교회와 성경을 가르치는 자들이 함께 성경을 연구하고 숙고해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섣불리 신(神)을 벗어던지기 전에, 놓치지 말아야 할 본질적인 문제가 있다. 한 가지 예로, 모순과 오류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것. 또한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만이 선(善)이 되는 논리는 문화도, 윤리도, 상식도, 가치관도 '상대적'인 것으로 만들고 만다는 것이다(상대주의). 모든 것이 '상대적'이라는 논리는,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비난받아야 마땅하다고 주장하는 논리 기반을 스스로 무너뜨린다. 상대적으로 볼 때, 자신들의 주장도 편협하고 독선적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신 벗어던지기>를 읽으며 깊이 반성하게 되는 것은 신앙과 도덕성이 일치하지 않는 종교인들의 무례하고 위선적인 모습이다. 저자의 주변에 저자가 깊이 존경할 만한 신앙인이 있었으면 하는 안타까움과 함께, 신앙인으로서의 나의 삶의 태도와 모습을 반성해보게 된다. 또한 수십 년간 신앙생활을 했는데도 어째서 저자는 죄책감과 죽음 이후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에 억눌려 살았는지, 교회가 깊이 반성해야 할 일이다.
한 사람이 수십 년간 의지했던(형식적인 것일 뿐이었을지라도) '신'(神)을 벗어던지기까지 얼마나 큰 갈등과 고민이 있었겠는가. 신을 벗어던지고 무신론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는 호소를 가장 먼저, 가장 진지하게, 깊은 애정을 가지고 들어야 할 사람은 바로 그가 비난해마지 않은 종교인들이요, 특히 기독교 신앙인들일 것이다. 무신론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의 절반의 책임을 느껴야 할 것이고, 대답할 말을 준비해야 할 것이고, 그와의 대화를 포기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