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일로 하나님을 높이라
존 오트버그 지음, 오현미 옮김 / 두란노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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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야 한다"가 아니라, "하고 싶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 존 오트버그 목사님의 책을 모두 구입해서 읽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존 오트버그 목사님의 <나의 일로 하나님을 높이라>는 크리스천의 자기계발서 같은 책이다. 그러나 이것은 자기계발서 그 이상이다. 이 책은 잃어버린 생기를 찾아주고, 영적으로 억눌린 마음에서 자유를 선물해주며, 포기하고 있던 목표에 다시 도전하게 만들어준다. 무엇보다 '세상이 바라는 나'가 아니라, '하나님이 바라는 나'를 향해 곧장 나아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다.

<나의 일로 하나님을 높이라>는 '세상이 바라는 나 vs 하나님이 바라는 나', '하나님을 높이는 영혼 관리', '마음 관리', '시간 관리', '대인관계', 그리고 '하나님의 작품답게 사는 행복'이라는 총 여섯 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은 한 번 읽고 말 책이 아니라, 공부하듯 여러 번 읽으면서 가르침을 내면화 하고, 실행하는 습관을 들여야 할 책이다. 나는 책을 읽으며 중요한 부분이나, 새로운 가르침, 감동을 주는 구절이 있으면 책의 귀퉁이를 접어놓는 습관이 있는데, 이 책은 매장마다 계속해서 접어가며 읽어야 했다. 성경을 풀어주는 해석과 적용이 탁월하며,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하는 구절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나의 일로 하나님을 높이라>를 읽으며 무엇보다 좋았던 점은 "영적 성정이란 해야 할 일이었던 것이 하고 싶은 일이 되는 것"을 체험하는 일이었다. "사람들의 영적 성장을 도울 때 가장 힘든 부분은 대부분 사람들이 영적 성숙을 성경의 규칙을 따르려 열심히 노력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점이라고 한다. 규칙을 잘 지키는 사람들을 만들어 내는 게 하나님의 목표라 한다면 영적 성숙은 내 마음의 소원이라기보다 늘 하나의 의무가 될 것이다"(32). 그러나 존 오트버그 목사님은 영적 성장은 물론, '하나님이 바라는 내'가 되는 일이 "해야 한다"가 아니라 "하고 싶다"는 소망으로 가득차게 도와준다. "영적으로 성장하려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을 해야 한다'는 영역에서 '~하고 싶다'는 영역으로 이동해 가야 한다"(101).

<나의 일로 하나님을 높이라>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내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되느냐 하는 문제다"(11)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역설적이지만, 나에게만 초첨을 맞추면 내가 원하는 모습의 내가 절대 될 수 없다"고 단언한다. 또한 "어떤 사람은 영적 성장을 추구하면 자기 아닌 다른 사람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존 오트버그 목사님은 "내가 잘될 때 나는 단순히 더 거룩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욱 나다워진다"고 선언한다. 여기서 '잘되는 나'란 '하나님께서 나를 창조하실 때 의도하신 나'를 말한다.

<나의 일로 하나님을 높이라>에서 가르쳐주는 중요한 가르침 중에 하는 "내가 잘되어 번성하는 건 결코 나에게만 관계된 일이 아니다"(36)라는 사실이다. <나의 일로 하나님을 높이라>는 책의 전반에 걸쳐서 이것을 설명하고 있는데, 그중 가장 강력하게 가슴에 부딪혀 왔던 존 오트버그 목사님의 설명을 빌리면 다음과 같다. 애플사의 로고는 사과다. 애플사의 사과 로고는 우리의 손가락 끝에서 과학기술과 지식이 만나는 것을 나타내게 되었다. 애플의 아이콘은 사과이고, 애플의 상표는 '똑똑함'이다.  메르세데스 벤츠의 로고는 동그라미 속에 꼭지점 세 개 짜리 별이 있는 모양이다. 벤츠사가 이것을 회사 로고로 선택한 것은 이들이 생산하는 엔진이 땅과 하늘과 바다를 지배한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다. 이들의 로고는 원 속에 있는 별이고, 이들의 상표는 '권력'이다. 자, 그런데 이제 "자기 인생의 로고를 골라야 한다면 어떤 것을 고르겠는가?"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중에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로고가 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로고이다. 예수님의 로고는 무엇인가? 예수님의 로고는 사람을 죽이는 한 방법이었던 '십자가'이다. 예수님의 로고인 십자가는 성공이나 지식, 권력의 아이콘이 아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상징하는 바는 바로 '희생적인 사랑'이다. 동시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로고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로고이다. 배에서 솟아 흐르는 성령과 함께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 알고 싶다면 예수님을 보라. 갈보리 산에서, 십자가 위에서, 깨끗케 되어야 할 죄, 치러져야 할 죗값이 마침내 예수님에 의해 완전히 치러졌다"(348).

이것이 바로 세상의 자기계발서와 크리스천의 자기계발서가 정반대로 갈리는 분기점이다! 크리스천의 자기계발은 성공, 자식, 권력, 쾌락을 향하지 않는다. 크리스천의 자기계발은 오직 하나님께 집중한 '잘되는 나'를 통해 이웃을 향하고, 세상을 향한다. 우리 삶이 가리켜야 할 것은 '십자가'이다.

<나의 일로 하나님을 높이라>는 스스로 자신을 점검하거나, 함께 읽으며 나눔을 가져도 좋을 책이다. 존 오트버그 목사님은 "내 영이 잘되면 삶에 목적이 생긴다"고 말한다. 이 책은 영이 잘되게 인도해주는 책이고, 진정한 삶의 목적을 향한 거룩한 열정이 폭포처럼 쏟아져 나오게 만들어준다. 해야 한다가 아니라, 하고 싶다는 열정으로 말이다! 신앙생활에 지쳐있거나, 삶의 방향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영적 성장을 꿈꾸지만 길을 찾지 못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기꺼이 선물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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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벗어던지기 - 교회에서 절대 가르쳐주지 않는 성경 공부
블루칼라 지음 / 미담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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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벗어던지기>는 수십 년간 교회를 다닌 교인이었다가 무신론자가 되기까지, 신(神)을 벗어던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밝힌 책이다. 자신의 주장을 근거로 '무신론'을 전파하고 싶어 하는 저자를 보니, '전도'를 하려는 것이 인간의 습성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블루칼라'라는 닉네임을 사용하고 있는 저자는 자신은 안티 기독교인이 아니라, 무신론자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니까 '불루칼라'가 부정하는 것은 기독교의 신만이 아니라, 모든 종교의 신이다. 이 책을 통해 그가 의도하는 것은 '신이 주는 죄책감', '죽음 이후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에 억눌린' 모든 종교인의 해방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수십 년간 꽤 열정적으로(?) 교회를 다닌 탓에 다른 종교의 경전보다 기독교의 경전 내용을 많이 알기 때문에 기독교 교리를 비판하고 있다고 밝힌다. 그러나 이러한 분명한 입장 표명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안티 기독교적인 성향을 벗어날 수 없으며, 안티 기독교 서적으로 읽힐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기독교 신자이지만 기독교를 변증하고, 반박하기 위해 이 책을 읽은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책의 첫 페이지에서부터 논박의 의지가 끓어오르게 만든 것은 사실이다. 저자는 다른 종교를 인정하지 않으며 학살을 일삼는 기독교의 '유일신 사상'을 비난하며, 그 근거의 하나로 성경의 출애굽기 32장 사건을 제시한다. 여기서 저자는 시내산에 올라간 모세에게 소식이 없자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버리고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새로운 신"으로 섬겼다고 해석한다. 그리고 이 때문에 학살을 명령했다고. 그러나 신학적 지식이 없어도 이 본문을 주의 깊게 읽는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버리고 새로운 신을 섬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방신이나 우상을 섬기기 위해 금송아지 형상을 만든 것이 아니라, 자신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의 형상'을 만들어낸 것이다(출 32:4,5). 그들은 자신들의 불안을 떨쳐내기 위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아니라 보이는 하나님이 필요했고,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닌 "자신들을 위하여"(출 32:1,8) 예배 행위를 했다. 그러니까 이 본문을 다른 종교인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로 해석하는 것은 명백한 오역이며, 숨은 의미는 고사하고 눈에 보이는 문장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는 독해력 수준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주장이 전혀 근거가 없는 말은 아니라고 해도, 주장을 뒷받침할 논거의 기초에서 이러한 오류가 발생할 만큼 부실하다면 진지한 대화를 이어가기가 어렵다. 논거가 부실한 한 주장은 억지 주장이 될 수밖에 없다.

반박을 하려고 들면 끝이 없을 것이다. 내가 이 책에 관심을 가진 것은, 무신론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그 '이유'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가 신(神)을 벗어던진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정리된다. 하나는 자신(현대인)의 보편적인 윤리와 상식, 가치관에 비추어 용납될 수 없는 가르침(성경)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무례하고 폭력적이기까지 한 종교인들(특히 기독교인들) 탓이다. 모순투성이로 보이는 성경의 가르침 때문에 무신론자가 되었다고 하면, 다른 종교의 신들은 좀 억울한 면도 있을 듯하다. 사실 저자가 성경을 문제 삼고 비판하는 수준은 좀 실망스럽다. 이보다는 훨씬 예리하고 그럴 듯한 이유를 기대했는데, 진지한 성찰은 고사하고 사고의 깊이마저 없는 것이, 에덴동산에 선악과를 놓아둔 것부터가 잘못된 것 아니냐고 질문하는 초등학생적 논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극히 상식 수준의 비판이라고? 조금만 주의 깊게 살펴보아도 우리는 우리의 상식이 얼마나 불완전한 것인지 금방 알 수 있다. 국가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을 만큼 심각한 저출산의 위기를 겪고 있는 우리는, 불과 몇 십년 전까지만 해도 인구폭발을 걱정하여 "아들, 딸 구별 말고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 했다. 그것이 그때 그 문제에 대한 상식 수준의 해법이었다. 

저자가 제기한 문제들은, 교회가 먼저 귀기울여 듣고, 교회와 성경을 가르치는 자들이 함께 성경을 연구하고 숙고해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섣불리 신(神)을 벗어던지기 전에, 놓치지 말아야 할 본질적인 문제가 있다. 한 가지 예로, 모순과 오류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것. 또한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만이 선(善)이 되는 논리는 문화도, 윤리도, 상식도, 가치관도 '상대적'인 것으로 만들고 만다는 것이다(상대주의). 모든 것이 '상대적'이라는 논리는,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비난받아야 마땅하다고 주장하는 논리 기반을 스스로 무너뜨린다. 상대적으로 볼 때, 자신들의 주장도 편협하고 독선적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신 벗어던지기>를 읽으며 깊이 반성하게 되는 것은 신앙과 도덕성이 일치하지 않는 종교인들의 무례하고 위선적인 모습이다. 저자의 주변에 저자가 깊이 존경할 만한 신앙인이 있었으면 하는 안타까움과 함께, 신앙인으로서의 나의 삶의 태도와 모습을 반성해보게 된다. 또한 수십 년간 신앙생활을 했는데도 어째서 저자는 죄책감과 죽음 이후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에 억눌려 살았는지, 교회가 깊이 반성해야 할 일이다.

한 사람이 수십 년간 의지했던(형식적인 것일 뿐이었을지라도) '신'(神)을 벗어던지기까지 얼마나 큰 갈등과 고민이 있었겠는가. 신을 벗어던지고 무신론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는 호소를 가장 먼저, 가장 진지하게, 깊은 애정을 가지고 들어야 할 사람은 바로 그가 비난해마지 않은 종교인들이요, 특히 기독교 신앙인들일 것이다. 무신론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의 절반의 책임을 느껴야 할 것이고, 대답할 말을 준비해야 할 것이고, 그와의 대화를 포기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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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도시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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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을 망치는 것은 무엇일까?
'나'만 위해 살다가는 모두 함께 망하고 말 것이라는 경고의 목소리가 들린다.

 
<꿈의 도시>는 우리 사회의 오늘을 분석하고 미래를 예측한 소설로 읽힌다. 개인화 되어가는 사회에서 개인들의 이기심이 충돌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를 과장 없이 그리고 있다. 사회의 단면이 확대되어 보이기 때문에 다소 과장되어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디테일하게 리얼하기 때문에 더욱 과장되어 보인다는 것이 이 소설의 묘미이기도 하다. 코믹한 분위기 안에서도 비극적인 감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이야기가 전개되는 내내 유메노 시는 이상 기온 현상으로 추위가 계속되며 폭설에 시달린다. 이것도 환경 문제와 함께 유메노 시의 분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작가의 장치로 해석된다.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곳은 지방의 세 개의 군이 합쳐서 탄생한 일명 '꿈의 신도시, 유메노'이다. 그러나 '꿈의 신도시, 유메노'의 실상은 우울하기 그지 없다. 작은 가게들은 대형 마트에 밀려 모두 문을 닫았고, 젊은이들은 대도시로 떠날 기회만 엿보고 있고, 턱 없이 부족한 일자리에 생활보호비보다 적은 월급으로 생계를 근근이 이어가는 사람들이 대다수이다. 사회적 기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곳에 남아 있는 지방 유지나 정치인들도 제 잇속 차리기에만 급급한 채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대도시 생활을 꿈꾸며, 마지 못해 살고 있는 형편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하려는 사람들보다 생활보호비를 타내려는 사람들이 더 많고, 조직적인 사기 세일즈가 판을 치고, 좀도둑이 극성이고, 경제적인 어려움과 무료한 일상을 핑계로 매춘이 젊은 주부들의 새로운 아르바이트가 되고, 이혼율이 급증하고, 혼자 사는 노인 인구가 늘어나고, 그 와중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신흥 종교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유메노 시 안에서 저마다 무지개빛 꿈을 안고 살아가는 다섯 명의 이야기가 릴레이로 이어지며, 하나의 결말을 향해 나아간다. 현청으로 복귀할 꿈을 안고 있지만 당장은 생활보호비 수급자를 줄여야 하는 공무원, 도쿄에서의 대학 생활을 꿈꾸며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여고생, 성공을 꿈꾸며 노인들을 대상으로 사기 세일즈를 하는 조직의 일원인 전직 폭주족, 내세의 행복을 꿈꾸며 마트 식품 매장의 좀도둑을 적발하는 보안 요원, 출세 가도의 야망을 안고 선거를 준비하고 있는 재력가 시의원. 전혀 관계 없는 유메노의 이 다섯 시민이 제각각 예상밖의 곤경에 처하게 되면서 이들의 삶은 점점 서로 얽혀 들기 시작한다. 그들의 일상이 씨줄과 날줄로 엮이면서 개인화 되어가는 현대사회의 병폐가 점점 더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시민운동가의 방해로 곤란에 처한 시의원은 도시 문명이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놓기 전, 시민운동 따위는 없었던 시절을 그리워 하며 이렇게 회상한다. "예전에 무코다 지역에는 시민운동 따위 없었다. 유권자는 순종적이어서 겉으로 드러내놓고 이의를 주장하는 일도 없었다. 자신들이 태어나고 자란 동네, 혹은 일터마다 똑같은 이해관계를 가진 공동체가 있었고 주민은 모두 그중 어디간에 속해 있었다. 개인이라는 건 없었다"(133). "그래서 정치와 행정은 편한 직업이었다. 약간의 뇌물은 윤활유로서 묵인되고, 공공사업은 알짜배기 단물이었다. 야마모토 가문이 부를 형성한 것은 대대로 지역 정치가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만큼 정은 있었다. 돈줄이 막힌 사람에게는 일거리를 대주고, 서로 도우며 지내왔다. 누구든 이권을 독차지하는 건 허용되지 않고 부자에게는 베풀 의무가 있었다. 치안이 좋았던 것도 그 덕분이었다. 모두 어딘가에서 서로 연결되기 때문에 안심하고 살 수 있었다"(134).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 이혼을 하고 혼자서 생계를 꾸려가는 마트의 보안 요안 다에코는 지독한 고독감에 시달린다. "가족이 있어도 그 가족이 고민의 씨앗이다. 형제는 타인과 그다지 차이가 없다. 자식들은 그보다 더 무서워서 하소연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냉대가 돌아온다면 자신은 나락의 밑바닥에 굴러 떨어질 것이다"(543).

 
"인간이란 참으로 별별 이유로 막다른 궁지에 내몰리는 모양이다"(526).

<꿈의 도시>에 등장하는 다섯 명의 주인공은 다소 어처구니 없는 사건에 휘말리며 궁지에 몰리게 된다. 계속되는 곤경으로 삶이 차츰 무너져내리고, 망가지는 데도 누구 하나 도와줄 사람이 없다. 모두들 외면할 뿐이다. 생활보호비에 의존하는 사람들을 깔보았던 공무원은 생명의 위협을 받지만 제도적인 시스템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 도쿄에 있는 대학 진학을 꿈꾸었던 여고생은 평소 무시하고 지냈을 법한 은둔형 외톨이에게 납치 당해 그의 지배를 받는 몸이 된다. 다른 사람에게 폐만 끼치고 살다가 마음 잡고 열심히 살아보려고 발버둥 치는 사기 세일즈맨은 이혼한 전처에게 발목이 잡혀 갓난 아이를 떠맡게 되고, 그 때문에 부모의 빚을 대신 갚아주어야 했고, 설상가상으로 평소 존경해마지 않던 선배가 졸지에 살인자가 되면서 그 사건에 말려들어 끌려다니게 된다. 마트에서 좀도둑 잡아내는 보안 요원으로 일했던 여성은 종교 간 다툼으로 직장을 잃게 되면서 자신이 그렇게 경멸해마지 않았던 좀도둑이 되고 만다. 야쿠자 형제와 결탁해 세력을 유지해 온 시의원은 결국 그 때문에 모든 것을 잃어버릴 위기에 처한다. 자신보다 약자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을 거침 없이 몰아부쳤는데, 자신이 그 위치에 처하게 된 것이다. 잘못인 줄 알면서도 끌려들어가고, 발버둥을 칠수록 문제는 더 꼬여가고, 결국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무기력해진다.

 
"나는 어쩌면 이렇게도 사회적 약자인가"(543).

사회가 거대해질수록 한 개인은 점차 사회적인 약자가 되어가는 듯하다. 세상은 참 잘 짜여서 돌아가고 있지만, 그 거대한 톱니바퀴를 돌리고 있는 약자들은 일개 시민으로서 생명의 위협을 받으며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일인지를 날마다 몸소 체험하며 불안과 두려움에 시달린다. <꿈의 도시>는 아무리 큰 꿈을 품고, 많이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이라도 한순간에 사회적 약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우리는 서로에게 기대지 않을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환기시킨다. 


충돌하라! '충돌'을 통한 희망!

<꿈의 도시>의 클라이맥스, 하이라트는 광고된 것처럼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엔딩"에 있다.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상당히 인상적이고 폭발적인 결말이다. 어치구니 없는 사건에 휘말리며 제각각 곤경에 처했던 다섯 인물은 이 마지막 엔딩 장면에서 서로 충돌한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모든 것이 망가져버린 듯한 그 충돌이 탈출구가 되고, 새로운 희망의 빛이 된다.

현대사회를 축소해서 보여주는 <꿈의 도시>, 두껍지만 지루할 시간이 없다. 현대사회의 병폐를 확인하며 그 안에 갇혀 살아가는 불쾌감이 온몸에 퍼지지만, 아직 늦지 않은 것은 아닐까 하는 희망 한조각을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동시에 점점 망가져가는 삶을 지켜보며, 우리 삶을 망치는 것은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도록 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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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켄 스토리콜렉터 1
아리카와 히로 지음, 윤성원 옮김 / 북로드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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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힘을 다하여 무의미했고, 온 힘을 다하여 무모했고, 온 힘을 다하여 진지했다.
도대체 그런 시절을 인생에서 얼마나 보낼 수 있을까"(301).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여, 죽지 않고 살아 있다면 누구나 20대 청춘 시절을 보낸다. 그러나 누구나 '폭발하는 청춘'을 사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온 힘을 다하여 무모할 수 있고, 온 힘을 다하여 진지할 수 있는 청춘의 것이리라. <키켄>은 그렇게 온 힘을 다하여 무의미했고, 온 힘을 다하여 무모했고, 온 힘을 다하여 진지했던 청춘남들의 이야기이며, 그런 청춘을 보낸 남자들만의 은밀한 추억이다.

세이난대학교의 수많은 동아리 중에, 캠퍼스 제일의 쾌적 공간을 자랑하는 '기계제어연구부'가 있었다. 약칭 키켄(機硏)! 그러나 세이난대학교에서 동아리 '키켄'은 곧 '위험'으로 통한다(危險의 일본어 발음이 키켄이라고 한다). '키켄'은, "동아리와 얽힌 갖가지 사건 때문에 일종의 두려움과 전율 속에 붙어진 이름"이기 때문이다. 

"황금기의 키켄은 그야말로 위험 인물이 이끄는 위험 집단이었다"(7). 키켄을 이끄는 부장은 이 대학 제일의 위험인물인 2학년생 우에노, 그의 별명은 '세이난의 유나바머'(폭탄마의 이름)이다. 키켄의 차장은 '오오'랑 '가미' 사이에 '마'(魔)가 숨어 있다고 '성을 한 글자 감춘 오오가미'로 불리는 대마신 오오가미! 역시 2학년생인 오오가미와 우에노라는 환상의 콤비가 이끄는 '키켄'에 신입생 모토야마와 이케타니가 새로 가입을 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키켄>은 총 다섯 편의 동아리 이야기와 세월을 훌쩍 건너뛴 오늘의 이야기 한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느 대학교에나 있을 법한 열정적인 괴짜 이야기, 열병 같은 청춘들의 사랑 이야기, 녹초가 되도록 열과 성을 다하여 놀았던 젊은이들의 축제 이야기, 그 안에서 벌어졌던 무모한 싸움과 혈기왕성했던 경쟁 이야기, 지나고 보면 별 일 아니었지만 그때는 무엇보다 절실했고 진지했던 열정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리고 이제는 지나버린 그때 그 시절을 잔잔한 그리움과 행복한 미소로 추억할 수 있는 오늘의 우리가 있다.

표지 때문에 나처럼 이 책을 만화로 오해하는 독자가 있을 듯 하다. 한 편의 이야기마다 한 면씩 등장하는 만화는 이 작품을 처음 연재할 때부터 작업한 것이라고 한다. "소설이라는 매체를 통해 이런 식으로도 즐길 수 있다는 걸 시도해보았다"는 저자의 의도대로, 혈기왕성 청춘남들의 모무한 스캔들이라 할 수 있는 <키켄>은 소설이지만 만화 같은 재미가 있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지만 뭉클한 감동과 교훈이 있다. 의기투합된 청춘남들만의, 그 남자들의 이야기는, 절대 그들이 될 수 없는 여성 독자만이 아니라, 청춘을 지나온 자도, 청춘을 보내고 있는 자도, 청춘을 맞이할 자도, 모두 부러워 할 수밖에 없는 즐거움이 가득하다.

<키켄>은 이제는 가정을 일구고 살아가는 인물이(혹시 스포일러가 될까봐 비밀로 한다) 아내에게 '그때 그 시절'의 모험담을 들려주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자신의 추억담을 즐겁게 들어주는 아내와 함께 '지금' 여기에 있는 그 남자는 한 때는 자신의 것이었으나, 이제는 '그 즐거운 장소, 즐거운 시간'을 현역에게 넘겨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282). 더 이상 '키켄'의 부원이 아닌 때가 되어서야, 학교 축제에서 라면을 한 그릇이라도 더 많이 팔기 위해 수풀에 머리를 쳐받고 잠들어버릴 만큼 열성적일 수 있었던 그 시절이야말로 얼마나 즐거운 것이었나를 깨닫게 된 그 남자는 자신의 모교를 다시 찾는 일을 조금은 두려워 한다. 빛나던 시절은 이미 지나버렸다는 사실을 확인하기가 싫었을 것이다. 왜 우리는 항상 잃어버리고 나서야 그것의 소중함을 깨닫는 것인지. 생각해보면 평범하지 그지 없는 일들이 왜 이렇게 특별하게만 느껴지는 것인지. 다시는 그런 시간을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정말 인정하기 싫다. 그러나 아내의 손을 잡고 축제일에 맞춰 다시 방문하게 된 대학교 강의실 칠판에서 그 시절을 함께 보낸 '키켄' 부원들이 남겨둔 낙서를 발견한 그 남자는 한 가지 사실을 다시 깨닫는다.

"우리는 키켄이었다. 키켄은 우리의 것이었다. 그 시절은 사라지지 않는다. 없어지지 않는다. 추억은 늘 거기에 있다. 그것은 없어진 것이 아니라, 보물이 되었다"(301).

이 책의 역자도 후기에서 이렇게 적고 있는데, 역자처럼 나도 "마지막의 '칠판'에서는 생각지도 않게 가슴이 뭉클해졌다"(308). 없진 것이 아니라 보물이 되었다는 한마디의 선언이, 진한 그리움과 함께 쓸쓸함으로 물들어가던 가슴에 따뜻한 보석상자 하나를 남겨 주었다. 내게도 보물이 있는 것이다! 아슬아슬한 줄타기처럼 불안했지만, 온 힘을 다해 무모할 수 있었던 그 시절로 언제라도 다시 돌아가고 싶다. 그러나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은 이제 내게 보석으로 남아 있다. 내게도 빛나는 시절이 있었음에 감사하며, 그 시절을 함께했던 모무한 친구들이 있었음에 감사하며, 오늘의 보석을 만들기 위해 다시 온 힘을 다하여 무모하고, 온 힘을 다하여 진지하게 오늘을 살아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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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 걷기여행 - On Foot Guides 걷기여행 시리즈
프랭크 쿠즈니크 지음, 정현진 옮김 / 터치아트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프라하는 한마디로 걷기 위해 만들어진 도시다. 어디를 가나 수백 년 된 예술 작품과 건축물, 살아 있는 역사를 품고 있는 이 중세 도시의 참모습을 경험하고 숨겨진 보물들을 발견하려면 걷기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표지 날개 中에서).

 
책을 받아들고 일단 세계지도를 검색해 '프라하'의 위치부터 다시 확인해보았다. 유럽이라고는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곳이 공산주의 국가였다는 사실이 이 도시를 더욱 생경하게 느껴지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여러 모로 '낯선' 그 이국적인 향취가 호기심을 자극한다. 요즘 드라마 촬영지로 자주 등장하는 '프라하'를 볼 때마다, 어쩐지 차가운 듯한 인상과 중세적인 분위기가 자아내는 고풍스러운 멋에 이끌린다. 한 눈에도 역사가 느껴지는 광장과 높게 솟은 건물 사이로 곡선을 그리며 좁다랗게 나있는 골목길,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돌다리 밑으로 유유하게 흐르는 운하를 볼 때마다 그 생경한 풍경 속으로 뛰어들고 싶은 충동이 인다. 프라하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좀처럼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터치아트에서 발간한 <프라하 걷기여행>이 내 눈길을 끈 것은, "이 책에 소개된 12개의 코스들은 모두 한두 시간 안에 걸을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는 문구 때문이다. 걷기여행의 치명적인 매력이라고 할 수 있는 '장시간 걷는 고통'에 발목을 잡힌 경험이 있어 더구나 낯선 외국으로 걷기여행을 떠난 것이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프라하 걷기여행>을 보니, 걷기여행을 위해 억지로 짜맞춘 코스가 아니라 '프라하'야말로 걷기여행이 가장 안성맞춤인 여행지라는 것을 알았다. 첫째는, 역사, 문화적으로 의미 있는 공간은 여유롭게 둘러보아도 이삼일이면 충분할 정도로 프라하가 작고 조밀하다는 것, 둘째는 관광안내 책자에 나오지 않는 고유한 거리, 중세의 모습을 간직한 카페, 아름다운 조각상 등이 시내 여기저기에 숨어 있어 걸으며 감상을 하기 좋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프라하에서는 길을 잃는 일이 흔하다고 한다. 특히 구시가의 미로 같은 중세 골목에서는 더더욱 길을 잃기 쉽다고 하는데, 오히려 길을 잃었을 때가 프라하의 숨겨진 매력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고 하니, 시간이나 일정 따윈 잊어버리고 우연한 만남을 기대하며 할일 없이 이 골목 저 골목을 걸어보고 싶어진다.

<프라하의 걷기여행>의 걷기 코스는 "말라 스트라니와 구시가, 신시가는 물론, 강을 따라 늘어선 흥미로운 장소들과 비교적 개발이 덜 된 구시가 동쪽까지" 소개하며, 여행자의 편의를 위해 트램이나 메트로 역 주변에서 시작하고 끝을 맺는 것이 특징이다. 코스마다 제공되는 "독창적인 3차원 고공 촬영 지도"는 프라하 걷기여행을 소망하는 이들에게 프라하의 구석구석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며, 코스를 한 눈에 파악하도록 도와준다. 여름 걷기, 겨울 걷기, 주말 걷기, 주중 걷기, 어린이와 함께 걷기 등 다양한 걷기 Tip을 제공하는데, 그중에서 "박물관이나 미술관, 교회와 사원 등 수많은 실내 관광지는 계절과 상관없이 춥고 비가 오는 날을 위해 아껴 두는 게 좋다"는 Tip을 꼭꼭 챙겨두었다.

어느 곳이라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이상하게 프라하는 연인과 함께 가고 싶은 여행지이다. 다른 도시처럼 혼잡하고 요란한 도시가 아니어서 혼자 여행하기 좋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 조용하고 낭만적인 분위기 이면에 어쩐지 외로운 기운이 느껴진다. 공산당 전제정권이 남긴 우울한 잔해 때문일까, 두 세계 대전 사이 체코슬로바키아가 명실상부한 '유럽의 중심'이었다는 이제는 지나버린 옛 명성의 그림자 때문일까, 보헤미아 최고의 유서 깊은 문화유산과 그 낡은 유산 위로 우뚝 솟아오른 자본주의 성채가 뒤섞여 과거와 현재가 교차해 흐르는 프라하에 가면 들뜨기보다 외로워질 듯한 예감이 든다.

코스 중심의 <프라하 걷기여행>은 구체적인 여행 정보가 비교적 단순하다. 그런데 그 단순함이 오히려 이 도시의 성격과 분위기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듯하여, 프라하의 매력을 더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을 통해 들었던 이야기들을 기억하며, 프라하의 구석구석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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