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여름 가을 겨울 별자리 이야기
지호진 지음, 이혁 그림 / 진선아이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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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아이들 책을 좋아하지만, 진선아이의 <봄 여름 가을 겨울 별자리 이야기>처럼 재밌게 읽으며, 또 공부가 많이 된 책도 드물 것입니다. 분명 학교 다닐 때, 별자리에 대해 배웠을 텐데 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은 별자리에 대한 지식은 계절을 따라 자리를 이동한다는 것뿐이었습니다. 게다가, 제가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직접 찾을 수 있는 별자리는 북극성과 북두칠성과 카시오페이아 고작 3개 뿐입니다. 그것이 봄의 별자리라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습니다(물론, 다른 계절에도 찾아볼 수 있는 별자리입니다).

'별자리'는 별을 쉽게 찾도록 별에게 지어준 이름입니다(16). 그런데 별자리는 보는 사람에 따라 그 모양이 다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양을 상상해서 붙인 이름이기 때문입니다(18). 그래서 별자리는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데, 북두칠성을 예로 들면 이렇습니다. 이집트 사람들은 여러 별과 함께 소와 누워 있는 사람으로 상상했고, 중국에서는 황제의 마차라고 생각했고, 점성술이 발달한 아라비아에서는 관을 메고 가는 여자들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27). 또 로마시대에는 북두칠성을 시력검사표로도 사용했다고 합니다. 북두칠성 옆에 '알코르'라는 작은 별이 있는데, 이 별은 눈이 좋은 사람만 볼 수 있어서.... 옛날 시대에 병사들을 뽑을 때, 알코르가 보이는지 아닌지를 기준으로 시력 검사를 했답니다(28). 별자리로 시력검사를 했다는 사실이 참 재밌습니다!

10월에 태어난 저의 별자리는 천칭자리인데, 천칭자리의 저울은 단순히 무게를 다는 저울이 아니라 선과 악을 구분하는 정의의 저울이라는 것(117), 또 황소자리에 얽힌 '에우로페' 공주의 이름을 따서 '유럽'의 이름이 생겨났다는 것(249), 수성은 아주 짧은 시간 동안만 볼 수 있고, 지구가 태양을 한 번 도는 데 365일이 걸리는 데 비해 수성은 88일밖에 걸리지 않아서 수성을 날쌘돌이 헤르메스의 영어 이름을 따서 '머큐리'라고 한다는 것, 초저녁에 가장 먼저 떠오르고 새벽 마지막까지 빛나는 별이 금성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초저녁 금성을 개밥바라기, 새벽 금성을 샛별이라고 부른다는 것(272) 등 별자리에 담긴 이야기가 얼마나 많은지 별자리를 공부하니 상식까지 풍부해집니다! <별자리 이야기>를 읽고 나니 삶이 풍성해지는 기분입니다.

<별자리 이야기>에는 이처럼 재밌는 별자리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나누어 계절별로 관찰할 수 있는 별자리는 무엇이며, 그것을 찾는 방법에서부터, 별자리에 담긴 재미있는 신화 이야기, 별자리에 관한 자연과학적 지식까지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공부가 되도록 꾸며져 있습니다.

별들의 색깔이 조금씩 다른 건 별들의 표면 온도가 각기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48), 등급은 그런 별들의 밝기 차이를 나타내는 것인데, 베가는 별의 등급을 정하는 기분이 되는 별이고, 이 별을 표준별로 다른 별들의 등급을 매길 수 있다는 것(86)도 모두 이 책을 읽으며 배운 지식입니다. 교과서로 배울 때는 그렇게 딱딱하고 지루하게만 느껴졌던 '별자리' 공부가 이렇게 재밌을 수도 있는 것을 알고 나니, 새삼 학습 방법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어떻게 가르치느냐에 따라 아이들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무한대로 끌어낼 수도 있고, 흥미를 잃고 무관심하게 만들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어른으로서 어떤 책임감도 느낍니다. 우리나라에 있을 때는 별로 인정을 받지 못했지만 그를 알아본 한 사람에 의해 더 큰 무대로 진출한 박찬호 선수라든지, 좋은 스승을 만나 미래가 바뀐 사람들을 보면, 무조건 공부하라, 노력하라 다그치기 보다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를 깊이 연구해야 할 필요를 느낍니다.

옛부터 별자리를 보고 미래를 예견할 만큼, 별은 인간 삶에 막대한 영향을 미쳐왔습니다. 별자리는 신화이자, 과학이며, 우리의 꿈입니다. 미래를 이어갈 세대가 반드시 품어야 할 신세계(新世界)이기도 합니다. 진선아이에서 나누어주는 '3D 별자리 도감' 샘플 책자와 '3D 입체 안경', '포스터'를 먼저 만나보았기에 <별자리 이야기>와 함께 온 '입체로 보는 3D 별자리 도감'은 아직 포장을 뜯지 않았습니다. 읽고 나서 누군가에게 선물을 할 계획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살짝 욕심이 생기네요! 포스터를 침대 맡에 붙여두고 3D 안경을 쓰고 별자리를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별자리는 여전히 동경의 세계이며, 꿈의 세계로 남아 있습니다. 밤하늘을 올려다 볼 여유가 별로 없고, 공해 때문에 별자리 감상이 쉽지 않지만, 적어도 별을 헤아리는 마음만은 잊지 않고 살고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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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자장면 꿈결 비단결 우리 그림책
이철환 글, 장호 그림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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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아름다운 이유를 발견하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12월이면, 어쩐지 세상이 온통 들떠보입니다. 어수선한 연말 분위기에 휩쓸려 내 마음도 안정을 찾지 못하고 둥둥 떠오릅니다. 크리스마스가 있는 12월이면, 어쩐지 누군가를 찾고 싶어집니다. 여기 저기 왁자지껄한 송년 모임을 보면, 그리운 사람들이 많아져서 그런가봅니다. 새해를 맞을 준비를 하는 12월이면, 부러운 사람들이 많아집니다. 극장가에서 쏟아져나오는 연인들도 부럽고, 백화점에서 선물을 가득 안고 나오는 사람들도 부럽고, 일출을 보기 위해 여행을 가는 사람들이 부럽습니다.

소리 없이 내리는 낭만적인 함박눈, 훈훈하게 울려퍼지는 구세군의 종소리, 선물을 들고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분주한 발걸음, 맛있는 음식과 즐거운 수다로 가득찬 식당들, 새로운 달력과 새해 계획으로 들뜨는 하루 하루, 내가 그리는 겨울 풍경은 그렇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우리는 눈(eye)은 내가 원하는 것, 꿈꾸는 것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지 모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경제가 어려운 것 맞아?' 할 정도로 부러운 풍경들이 가득합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이 겨울이 더욱 추운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다시 생각해봅니다. 겨울이라 더 외롭고 힘든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다시 생각해봅니다.

얼마 전, 어느 대학의 교수님이 '사진의 정치학'이라고 하시며 유명인사와 함께 찍은 사진을 연구실에 걸어두는 모습을 보고, 그 역겨움을 표정에서 숨기지 못했던 기억이 납니다. 겨울이 되면, 소외되고 외로운 이웃을 위한 나눔 행사가 참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대형 현수막을 걸어두고, 선물 상자를 가득 쌓아올리고, 그 앞에서 무엇인가를 전달하며 사진도 찍습니다. 외롭고 소외된 이웃을 돕는 일은 조심하지 않으면 받는 이들에게 오히려 굴욕감만 안겨줄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조심스럽게 해도 그런데, 아예 대놓고 홍보와 과시를 목적으로 한 나눔이라면 받는 사람의 마음이나 기분이 어떨까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자장면>은 나눔이란 이렇게 하는 것이다라는 것을 가르쳐주는 책입니다. 아니,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다시 자각하게 해주는 책입니다. 자장면을 두 그릇밖에 시킬 수 없는 형편이지만, 즐거워 하는 동생들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며 굶어도 웃을 수 있는 누나의 미소가 배불러도 행복하지 못한 우리를 부끄럽게 하는 책입니다. 이 겨울 우리가 돌봐야 할 이웃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책입니다.

하늘에서 죄를 짓고 인간이 사는 세상에 내려와 죄가 다 씻길 때까지 어려움에 처한 인간들을 도우라는 벌을 받게 된 한 천사가 있었습니다. 이제 그 죄가 용서되고 천사는 다시 하늘로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천사가 하나님께 묻습니다. "하나님, 제가 떠나면 어려움에 처한 이 사람들은 누가 도와주나요?" 하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이웃을 주었단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자장면>은 바로 그 '이웃'의 존재를 다시 생각해보게 해줍니다. 우리가 '이웃'으로 살아가는 방법과 의미에 대해서 말입니다.

이 책을 패러디한 듯한 한 대부업 광고가 요즘 한창 방송 중입니다. 엄마와 딸이 함께 식당에 찾아와 자장면을 한 그릇만 시킵니다. 사정을 알아차린 주인 아주머니가 1+1 행사라며 자장면 두 그릇을 내놓는 광고입니다. 역시 '돈' 버는 사람들은 좋은 것, 사람들 마음에 감동을 주는 것을 알아보는 눈이 있는가 봅니다.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대부업 광고에 따다 쓰는 것이 좀 불쾌하기는 하지만, 이와 비슷한 버전의 이야기가 세상에 많이 돌아다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처음 접했던, 이와 비슷한 이야기는 '우동집'이었거든요.

<연탄길>의 이철환 선생님이 글을 쓰시고, 2009 볼로냐 아동 도서전에서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를 수상한 장호 선생님이 그림을 그려주신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자장면>은 좀 더 특별합니다. 시처럼 압축되어 있는 따뜻한 이야기와 보기만 해도 행복해지는 예쁜 그림이 수백마디 말보다 더 진한 감동과 교훈을 전해주기 때문입니다. 어린이를 위한 동화지만, 누구나의 가슴에 간직해야 할 이야기입니다. 이 세상이 어째서 아름다운지,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 해답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자장면> 안에 들어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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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일꾼 - 오스왈드 챔버스의 오스왈드 챔버스 시리즈 16
오스왈드 챔버스 지음, 황 스데반 옮김 / 토기장이(토기장이주니어)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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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자가 되기를 꿈꾸었던 학부 동기가 있다. 당연하게 대학원 진학을 앞둔 4학년 겨울 방학 때였다. 교회에서 겨울 부흥성회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그가 신학생인 것을 알고 있는 청년 하나가 친구를 데려와 친구가 귀신에 들렸다며 기도를 요청했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 처음 맞닥뜨린 동기는 좀 당황스러웠지만, 열심을 다해 기도를 해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아무런 능력도 나타나지 않았다. 동기는 큰 충격에 빠져 들었고, 모든 학업을 중단하고 대학원 진학도 보류한 채 개인 기도실을 찾았다. 그리고 그 일을 계기로 어떤 자각이 생겨났다고 했다. 그 동기도 그렇고, 그의 고백을 들었던 나도 처음으로 '목회의 현실'이 눈앞에 그려지기 시작했다. 오랫 동안 신앙생활을 했고, 교회에서 봉사도 했고, 4년 동안 신학을 공부했고, 실천신학도 배웠지만, 목회의 실제가 그렇게 생생하게 자각된 것은 아마도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신학을 배우는 내내 늘 현장에 있다고 생각했지만, '진짜' 현장에 맞닥뜨렸을 때 우리는 이상하게 4년 동안 아무것도 배운 것이 없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돌아보니 그동안 우리가 꿈꾸었던 '목회'는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하나의 이상향으로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오스왈드 챔버스의 <하나님의 일꾼>은 실천신학보다 더 실제적인 현장의 가르침이다.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은 생생한 목회 현장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보냄 받은 현장에서 하나님의 일꾼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한 영혼 한 영혼을 대하는 '놀랍도록' 실제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이것은 신학교에서도 가르쳐주지 않고, 목회 현장에서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없는 귀한 가르침이다. 그에게 하나님의 일꾼이란 한마디로 '영혼을 치유하기 위해' 부름받은 사람이다. 하나님의 일꾼에게 가장 큰 어려움은, 사람의 몸을 다루는 의술과는 달리, 하나의 고정되고 일관된 원칙이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기계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어떤 원칙이 없다는 것은 의학적인 지식처럼 암기나 노력으로 터득할 수 있는 고정된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일꾼에게 적용될 원칙이 있다면 그것은 이것이다. 오스왈드 챔버스는 이것을 '하나님의 일꾼이 기억할 세 가지 요소'로 정리한다. "첫째, 하나님의 일꾼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있어야 하고 다른 영혼을 대할 때, 매 순간 성령을 의지해야 한다. 둘째, 하나님의 일꾼은 이론 가운데 사는 것이 아니라 인간사 속에서 살아야 한다. 사람들이 어떠하다는 선입견을 버리고 직접 그들이 어떠한지 발견하라. (...) 셋째, 당신이 아는 가장 실질적인 방법으로 이 오랜 성경책을 샅샅이 연구하라. 성경 사전을 사용하거나 시편을 필사하면서, 성경의 전문자가 되기 위해 모든 실질적인 방법을 총동원하라"(16). 하나님의 일꾼은 이론 가운데 사는 것이 아니라 인간사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이 마음에 부딪힌다. 신학 이론은 넘쳐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은 희미해지는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오스왈드 챔버스는 "하나님의 일꾼은 상대방이 어떤 부류의 사람이든 어떤 상태에 놓인 사람이든, 그를 예수 그리스도께 연결시키는 법을 알아야 한다"(32)고 말한다. 오스왈드 챔버스는 이것을 "비정상적인 영혼을 대할 때, 거듭나지 않은 도덕적인 영혼을 대할 때, 타락한 영혼을 대할 때, 이중인격의 영혼을 대할 때, 병든 영혼을 대할 때, 어리석은 영혼을 대할 때"로 나누어 구체적인 지침을 제시해준다. 특히 '거듭나지 않은 도덕적인 영혼'에 대한 그의 통찰이 매섭다.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의 가르침을 접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자기 계발', '자아 실현' 안에 숨겨진 위험성에 대한 경각심이 마음에 경종을 울린다. 거듭나지 않은 도덕적인 영혼을 가진 사람들은 "죄를 무시하라. 더 이상 생각하지 말라. 자아실현을 하라"고 가르친다. 자아 계발이라고 하면 우리는 열심히 살려는 순수한 노력으로 받아들이기 쉬운데, 그것이 목적이 될 때 우리는 얼마나 자주 하나님의 명령을 외면하고 주님께 불순종하고 있는지 모른다. 자기 계발보다 앞서야 할 것은 순종이다!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은 여섯 가지 영혼의 상태에 따라 각기 다른 대응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지만, 그 안에 한 가지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다. 그것은 성령을 의지하는 것, 다른 말로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그는 우리를 위해 이렇게 기도한다. "하나님께 우리가 성령을 의지함으로써 성령께서 우리의 중보기도의 수고를 통해(이것이 핵심이다.) 살아계신 전능하신 그리스도를 친히 소개하시기를 기도한다"(94).

<하나님의 일꾼>은 영혼을 치유하는 방법 외에도 하나님의 일꾼의 정체성, 즉 '영혼을 향한 열정을 가진 일꾼', '하나님께 인정받는 일꾼', '거룩한 일꾼'이라는 세 가지 범주를 통해 하나님의 일꾼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가르친다.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은 하나님의 일꾼이 가진 '영혼을 향한 열정'을 이렇게 설명한다. "그것은 삶의 처음부터 끝까지 밤낮으로 우리의 마음과 머리와 몸의 모든 에너지를 한가지로 집중시켜 소모시키는, 태우고 달구는 살아 있는 열정이다"(114).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은 하나님의 일꾼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왜 영혼 구원을 위해 일하는가? 왜 다른 사람을 위해 물질을 소비하고 우리 자신도 기꺼이 소비되기를 원하는가?"(143-144) 나는 이 물음 앞에 한참을 멈춰서 있어야 했다. 다른 사람을 위해 물질을 소비하고, 그 자신도 소비되는 것이 하나님의 일꾼이라는 증거라면, 나는 감히 "나도 하나님의 일꾼입니다"라고 대답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을 위해 내 물질을 소비하고 나를 소비하려 하기보다, 전문 사역자로 살며 물질을 벌고 나를 계발하려는 욕구를 가진 내가 과연 하나님의 일꾼이라 할 수 있을까?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의 따끔하고 실제적인 가르침은 언제나 나의 사역 태도와 자세를 돌아보게 하고, 지향하는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놓는다. '다른 사람을 위해 물질을 얼마나 소비하는가, 나도 소비되고 있는가', 이 두 가지 물음을 사역의 지침으로 삼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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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아트북 - 동굴 벽화에서 팝아트까지
데이비드 G. 윌킨스 외 지음, 한성경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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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땀과 천재성의 산물인 미술 작품은 예측 불가능할 만큼 무한한 다양성으로 가득 차 있다"(10).


미술 작품을 관람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미술 작품 감상법을 '속성'으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작품'이라고 하는데 그게 왜 작품인지 모르겠을 때, 매우 난감하기 때문이다. 예술은 감상하기 나름이라고 하지만, 최근 모 의원이 보온병을 들고 북한이 공격한 폭탄이라고 한 것처럼 미술 작품을 감상할 안목이 없다면 나도 같은 실수를 저지를지 또 누가 알겠는가. 미술 작품은 보는 사람의 안목에 따라 고려청자가 요강이 되기도 하고, 요강이 고려청자로 둔갑하는 일도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미술 작품 감상법을 '속성'으로 배우고 싶어 하는 것은 비단 게으름 때문만은 아니다. 미술은 인류와 태생을 같이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역사가 오래이고, 또 그림뿐만 아니라 조각, 건축, 공예, 서예까지 그 분야도 다양해서 작정하고 공부를 한다고 해도 '섭렵'이라는 목표에 도달하기 어렵다. 그러니 섭렵하고자 하는 욕심은 아예 처음부터 꿈꾸지 않고 시작하겠다는 것이다. 초보적인 수준이라 해도 작품을 작품으로서 알아볼 수 있을 정도만 되어도 만족할 수 있을 듯 하다.

마로니에북스의 <빅 아트북>은 다양한 미술 작품을 씨줄과 날줄로 감상할 수 있도록 꾸맨 책이다. '연대별 미술'과 '주제별 미술'로 나누어진 두 파트가 미술사의 씨줄과 날줄이 되어 미술이 걸어온 과정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다른 말로 하면, 미술사의 울창하고 거대한 숲길을 걷는 두 가지 길을 동시에 제시해주고 있는 것이다. 먼저, 연대별 미술은 역사적 발전 과정을 보여줌과 동시에 예술 작품들이 특정 시기의 사회, 종교, 문화 발전과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연대별 미술로 분류된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특정시점에서 미술이 겪은 변화와 원인을 알려주는 '전환점'을 만나게 된다. '전환점'은 미술운동의 결정적인 순간과 관련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다음으로, 주제별 미술은 초상화, 가정생활, 여가, 정물화, 몸, 풍경, 시골생활, 도시, 도시생활, 동물, 종교, 신화, 알레고리, 환상, 죽음, 문학, 역사, 정치, 전쟁, 사회 저항, 추상이라는 우리 삶의 가장 보편적인 주제들을 중심으로, 각기 다른 시기, 다른 장소에서 활동한 화가들이 개개의 주제를 어떻게 해석해왔는지를 보여준다.

"이 책에서 우리는 저마다의 작품이 제기하는 쟁점뿐 아니라, 미술 작품 전반을 관통하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이를테면 인간의 몸과 자연에 대한 관심은 대다수 문화권의 미술에서 발견되는 특징이라는 점, 이미 여러 사회의 구성원들이 미술을 이용해 정치적 목적이나 종교적 이상을 표현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는 점 등이다. 오랜 세월을 지내면서, 인류는 미술이 가족에 대한 관심과 사랑, 전쟁과 죽음에 대한 반응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임을 깨달았다"(8).

미술 작품을 다룬 다른 책들과 달리 특별히 <빅 아트북>에서 눈에 띄는 것은 '서예 미술'에 관한 설명이었다. 서예 미술은 '예술/대중문화' 장르 서적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설명이라 더 눈길이 갔는지도 모르겠다. 서예를 미술의 한 분야로 인식하지 못했던 내게는 신선한 설명이었다. '서예가들이 예술 기법을 이용해 신의 말씀을 전달하다'라는 소제목을 가진 설명 중 몇 가지를 옮겨 적어보면 이렇다. "서예 미술은 오랜 세월 동안 인류의 가장 중요한 기술 중 하나로 대접받아왔다. 글을 통해 의사소통하는 능력은 곧 막강한 힘과 영향력을 지닌 것으로 여겨졌다. 소수의 지식인만이 글을 읽을 수 있었으며, 그보다 훨씬 적은 수의 사람들이 쓸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무언가를 아름답게 적을 줄 안다는 것은 상당한 지위에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책은 아주 귀했으며, 특히 주요 종교가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신의 말씀을 담은 몇 안 되는 책들을 신성한 물건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또한 "서예 미술의 목적은 서체를 가능한 한 화려하게 꾸밈으로써 말씀의 중요성과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데 있었다. 성스러운 책들은 단순히 읽기 위한 목적보다는 경외감을 자아낼 수 있도록 제작되었다"(76),

미술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역사, 철학, 종교, 문학, 문화, 시대상, 작가, 심지어 해부학을 포함한 과학, 수학에까지 정통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말을 반대로 해석하면, 하나의 미술 문학 작품 안에는 역사, 철학, 종교, 문학, 문화, 시대상, 작가, 심지어 과학과 수학의 요소까지 들어있다는 말이 될 것이다. <빅 아트북>은 미술사라는 울창한 숲을 관통하며 이 모든 요소들이 어떻게 미술 작품 안에 녹아져 있는지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다양한 장르를 포괄하는 미술사의 큰 물줄기와, 같은 주제가 시기와 화가별로 어떻게 차별되게 해석되어 왔는지 대략적인 그림을 머릿속에 그려두고 싶은 독자에게 적극 추천한다. 작품을 중심으로 미술사를 속성으로 훑어보기에 알맞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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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자전거여행 - 산길.들길.바다.오름. 두 바퀴로 만나는 제주 풍경화!
김병훈 지음 / 터치아트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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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로 즐기는 제주도 일주!

 
늘 당연하게 반복되는 일상을 당연하게 살아가는 어느 순간, 문득 발걸음이 멈춰지는 때가 있다. '이건 아닌데' 하는 순간이 있다. 묵은 땅을 갈아엎어버리고 싶은 충동에 잠못드는 밤이 있다. '이렇게 살다 가는 것인가' 하는 생각에 초조해지는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난 항상 여행을 생각한다. 당연하게 반복되는 일상에 가장 근사한 쉼표를 찍어줄, 최선의 선택이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질식할 것 같은 시간의 초침에서 벗어나 잠시라도 깊고 여유로운 심호흡을 할 수 있는, 탈출구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그런 내 마음이 지금 꽂혀 있는 곳이 바로 제주도이다. 이국적 향취가 나면서도 정겨운 우리 땅이고, 세계에 자랑할 만한 아름다운 풍경과 소중한 민속문화를 자유롭고 안전하게 즐길 수 있다는 점이 큰 매력이다. 그런데 지난 여름, 난생 처음 제주도를 찾으며, 제주도 땅에 도착하자 마자, 해안도로 찍고, 중도 찍고, 서귀포로 향해 외돌개에서 쇠소깍 찍고, 섭지코지 찍고, 성산일출봉 찍고, 한라산 찍고, 어생승악오름 찍고, 도깨비도로를 찍으며, 3박 4일 동안 극기훈련하듯 열심히 돌아다녔다. 다시 못올 것처럼 조급한 마음으로 돌아다녔는데도 미리 조사해간 명소들을 다 둘러보지 못했다. 여유를 즐기러 떠난 여행이었지만, 전국에 '길' 열풍을 몰고 온 제주도 '올레길' 덕분에 제주도의 아름다움과 가치가 세계로까지 뻗어나가고 있는 이 때에 제주도의 아름다움을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은 욕심이 있었다. 그렇게 '훑어보기'에 급급했던 여행은 오히려 제주도에 대한 갈증만 더하게 만들었고, '어쩔 수 없는 여행 초보자'라는 딱지만 하나 붙이고 온 셈이 되고 말았다.

제주도를 다시 찾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제주도 여행을 제안하는 서적들을 들추고 있는 중이다.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것은 단연 '올레길' 걷기이다. 처음 올레길을 내며 제주도 걷기 여행을 제안했을 때, 전문가들의 의견은 부정적이었다고 한다. 비싼 비행기 요금을 내고 제주도까지 와서 과연 힘든 걷기 여행을 즐길 사람이 있을 것인가, 회의적이었다고. 그런데 이번엔 자전거 여행을 제안한다. "새로운 풍경을 만나기 위해 들여야 하는 땀, 주변을 체검할 수 있는 느린 속도, 안장에서 내리면 최악의 험로까지 갈 수 있는 공간 확대의 대자유까지, 제주도만의 풍경을 정녕 알고 싶다면 자전거가 명답이다"(11).

환경과 건강에 대한 관심 때문에 자전거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은데, 여기에 여행의 취미를 가지고 시간의 자유까지 허락된 사람들에게는 이보다 더 매력적인 여행이 없을 듯하다. 페이지, 페이지마다 푸르고 아름다운 자연 경관이 시선을 잡아 끈다. 제주도의 시원한 바람이 마음까지 파고든다. 해안도로, 들판, 숲, 산길, 오름, 섬을 테마로 총 36개의 코스가 소개되고 있는데, 한 곳도 놓치고 싶지 않을 만큼 장관이다. 자동차로 달리며 감상하기에는 아쉽고, 걸으며 감상하기에는 시간이 조급하다면, 때로는 달리고 때로는 멈춰서서 감상하기 좋은 자전거가 명답일 수 있겠다.

<제주 자전거 여행>은 자전거 여행자들을 위한 구체적인 정보와 자전거를 타고 즐길 수 있는 그 코스만의 매력을 잘 정리해주고 있다. 자전거 가져가는 방법에서부터 기본적인 자전거 정비까지 꼼꼼하게 챙겨주고 있어, 이 책 한 권이면 제주도 자건거 여행을 하는데 다른 도움이 필요 없을 듯 하다. 인천에서 제주항까지 운항하는 배편이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는데, 13시간 30분이 걸린다고 한다. 몇 년 전, 단동을 여행할 때 편도로 17시간이 걸리는 배편을 이용한 적이 있는데,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만한 색다른 경험이었다. 시간만 허락된다면, 꼭 자전거 여행이 아니라도 제주도를 갈 때 인천에서 출발하는 배를 이용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걷기와 자전거 여행은 닮은 듯, 다르게 다가온다. 반드시 홀로가는 여행이 아니라 해도 어쩐지 둘 다 '외로움'이라는 단어가 연상된다. 그러나 걷는 여행이 구도자의 여행, 즉 답을 얻기 위한 여행이라면, 자전거 여행은 비우기 위한 여행으로 내게 다가온다. 페달에 집중하며 생각을 비우고, 땀을 흘리며 번민을 비우고, 바람을 느끼며 욕심을 비우는 여행. 아무래도 직접 달려보지 않고 상상으로 떠나는 여행이라 감성이 앞서 가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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