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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로맨틱 명소 101
사라 우즈 지음, 조진경 옮김 / 시그마북스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영화 <당신이 잠든 사이에(While You Were Sleeping)>의 주인공 '루시'(산드라 블록)는 초라한 아파트에서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우며 시카고 철도국에서 토큰을 판매하는 일을 하고 있다. 가난하고 외롭고 무료한 삶이지만, 그녀는 매일 꿈을 꾼다. 지금은 비록 한 번도 사용해보지 못한 여권이지만, 언젠가 이 여권을 각국의 스탬프로 가득 채우리라는. 그녀가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은 플로렌스이다(플로렌스는 이탈리아의 피렌체를 영어식으로 발음한 것이라고 한다).

이 영화의 앤딩에서 루시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고 달콤한 신혼여행을 떠나면서 이런 독백을 남긴다.
"아버지 말씀이 백 번 옳았다. 인생은 계획대로 되는 게 절대 아니다. 하지만 잭은 내 여권에 도장을 찍어 주었다. 신혼여행으로 플로렌스에 날 데려간 것이다. 이런 걸 두고 세상을 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를 본 뒤로, 이 앤딩 장면은 내가 꿈꿀 수 있는 가장 로맨틱한 여행의 모델이 되었다. 여행은 어디를 가느냐도 중요하지만, 누구와 함께 가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데, 연인과 함께하는 여행이라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한다면 어디인들 아름답지 않다고, 어느 곳인들 로맨틱하지 않겠는가 마는, 루시처럼 꿈에 그리던 곳을 연인과 함께 여행하게 된다면, 정말이지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리라. 그야말로 꿈의 여행이다.

fantastic!
<유럽의 로맨틱 명소 101>은 그야말로 판타스틱한 꿈의 여행책이다. 요즘 다양한 '테마'를 가진 여행 서적들이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지만, 이보다 더 달달한 여행책은 아직 만나보지 못했다. 여행책이 유행을 하면서 나타나는 하나의 현상은 해외 여행의 경험을 책으로 담아내다 보니 작가의 경계가 희미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유럽을 여행한 우리나라 사람의 책이 아니라, 20년 동안 지구 곳곳을 종횡무진 누비며 60여 개국을 여행했다는 여행 작가 '사라 우즈'의 것이다. '모험가'라고도 불리는 '사라 우즈'는 2005년에 '영국 여행작가조합상'과 '올해의 여행안내서 작가상'을 수상했으며, 2007년에는 '여행 작가 부분 KWJ 기념상'을 받았다고 하니 신뢰할 만한 전문가의 책이라 할 수 있겠다.

(이탈리아의 플로렌스 / 아르노 강)
<유럽의 로맨틱 명소 101>은 유럽 여행의 대가가 연인들에게 추천하는 여행지이다. 꼭 '연인과 함께'가 아니더라도 그 자체로 명소라할 수 있는 여행지이지만, 여인과 함께할 때 감동과 행복이 100배가 될 수 있도록 '유럽의 명소를 연인과 함께 즐기는 비법'을 전수해주고 있다. 예를 들면, '루시'가 그토록 가고 싶어했던 '플로렌스'를 저자는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플로렌스(피렌체)에서는 어디서든 창문만 활짝 열면 로맨틱한 풍경을 볼 수 있다. 기복이 진 푸른 언덕을 배경으로 여러 가지 색이 조화를 이룬 테라코타 타일과 시계탑, 갈색의 첨탑들을 바라보노라면 이처럼 경외감을 일으키는 전경을 자랑하는 도시가 세계에 몇 군데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48).
저자는 연인과 함께 플로렌스를 여행한다면, 시뇨리아 광장으로 가서 거품 가득한 카푸치노 한 잔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우피치 갤러리에서 르네상스 시대 작품들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고, 호화로운 빌라 산 미켈레 호텔에 가서 아주 멋들어진 경치를 즐기며 점심식사를 하라고 권한다. 그리고 다시 도심으로 가면 아카데미아 미술관에서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상을 감상하고, 아르노 강의 양편을 잇는 옛날 다리인 베키오 다리를 천천히 건너보라고. 오후가 되면 산 미니아토 알몬테 교회로 가서 천상에 온 듯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베네딕트회 수사들의 그레고리 성가를 들어보고, 돌계단을 따라 플로렌스의 구시가지인 산 프레디아노로 내려가 다르딜리오네 거리에 있는 아늑한 카바올로 네로에서 아페리티프를 음미해 보자. 그리고 파올로 브루니에 다다르면 아르노 강을 따라가는 레나이올로 여행을 하라고 한다. 달빛이 비칠 때 느릿하게 나아가는 보트에서 담요를 뒤집어쓰고 앉아 플로렌스를 바라보라고. 여기서 끝이 아니다. 배에서 내려 매력적인 카페 콘체르토에서 이국적인 화분과 골동품들 사이로 강변이 내려다보이는 자리를 잡고 앉아서 부드러운 선율의 재즈에 맞춰 상쾌한 레몬 소스를 곁들인 크레페를 맛보아야 한다.

(스페인의 라나자로테 섬 / 연인과 함께하는 요가)

(아일랜드의 딩글 / 조랑말을 타고 아름다운 딩글 반도 탐험)
<유럽의 로맨틱 명소 101>은 신혼여행지로 가기 좋은 한폭의 그림 같은 목가적인 은신처는 물론이고, 연인에게 선사하기 위한 샴페인과 하트 모양의 패스트리 그리고 동백꽃다발을 주문할 수 있는 이벤트 장소, 수(水) 치료, 초콜릿을 몸에 바르는 테라피, 원기를 회복시키 주는 남녀 공용 사우나와 같이 건강까지 챙길 수 있는 휴양 장소, 숨 막힐 정도로 멋있고 열광적인 교향곡과 감동적인 협주곡이 울려 퍼지는 도시, 정열적인 살사, 매혹적인 전통 음악과 춤을 즐길 수 있는 문화 명소, 식도락의 중심지, 아름다운 건축물을 감상할 수 있는 역사적인 명소, 편안한 현대식 휴양 장소까지 다양한 명소를 소개한다.
유럽은 그 이름만으로도 로맨틱한 그림이 그려지는 곳인데, 그중에서도 특별히 '로맨틱'한 여행을 경험할 수 있는 명소를 뽑았으니 "fantastic"이라는 감탄사가 절로 터져나온다. 그런데 문제는, 전반적으로 저자가 추천하는 '로맨틱 여행'이 다소 사치스럽다는 것이다.
"전설적인 오리엔트 특급열차를 타고 국경을 넘는 기차 여행은 아마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흥미롭고 사치스러운 여행일 것이다.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기차였던 오리엔트 특급열차는 로맨스와 신비로움, 그리고 사치의 대명사였다"(46).
어쩌면, 사치스러워서 더 환상적이고 낭만적인 여행으로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 낭만적이고, 평화롭고, 여유롭고, 사치스러운 <유럽의 로맨틱 명소 101>은 여러 모로 내게는 '꿈의 여행'이다. 지금 마음 같아서는 저자가 추천하는 101곳 중에 단 한 곳만이라도 저자가 일러준 대로 연인과 함께 여행을 해볼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한 편으로는 내 평생에 이런 날이 올까 싶지만, 그래도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을 믿어보련다.
